데스노트 ~L; Change the World~(새로운 시작) -제４장- 반격

ℒ 11

보도

  

"토호쿠 대학의 키시카와 교수…, 그 사람이라면 항 바이러스 약을 만들 수 있습니까."

"아마. 아빠랑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모양이고."

"토호쿠 대학이라면 설비도 갖추어져 있겠죠."

L과 마키는 야마노테 선을 타고 있었다. L은 신발을 벗고 시트 위에서 무릎을 세운 평소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불안정한 모습이었지만 추파춥스를 오른손에 들고서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도 훌륭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젊은 남자가 '이상한 놈이다…' 라는 시선을 주면서도 무관심한 척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면 목적지를 향해 힘을 내서 가 볼까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우리들끼리만."

L은 목표의 땅이라고 결정이라도 한 듯이 추파춥스를 눈 앞에 들어 올렸다. 마키는 그런 L의 옆모습을 기묘한 생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나를 위해서…?"

"이게 제 마지막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이라니…, 무슨 뜻이야?"

추파춥스의 모양대로 오른뺨을 불룩하게 부풀린 L이 마키에게 고개를 돌렸다. 불면증이 생각나는 그늘 안쪽의 눈에 희미하게 미소가 어린 듯이 보였다.

"저는 키라와 싸움을 마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데스 노트에 적었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11일입니다. 마키 씨의 제한 시간과 같죠."

여전히 별 일도 아니라는 듯 L이 말하는 사실의 무게에 마키는 눈을 크게 떴다.

"죽는 게 무섭지 않아? 나는 무서워. 무지무지 무서운데."

말을 함으로써 한층 증폭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뿌리치려는 듯 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앞으로 조금밖에 살지 못하는데도 나랑 세계를 구하려는 거야?"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그 뿐입니다."

"똑같은 말이야…."

마키는 L의 옆모습에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겹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빠도 늘 말했어. 아무리 힘든 일이 다가와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아빤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사람들의 행복과 이어져 있는지 계속 고민했었어. 그래도 눈 앞에서 괴로워하며 죽어 가는 사람이 있는 이상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서."

"훌륭한 분이셨던 모양이군요."

마키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L은 스스로도 모르는 마음 속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련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는 부모라는 걸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로 여겨지는 존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키 씨의 아버지도 틀림 없이 그런 분이었겠지요. 만나 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L의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아들의 무죄를 믿으면서도 신념을 관철하고 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대량 살인범으로 체포하기로 결심한 야가미 소이치로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마키는 뭔가를 스스로에게 타이르듯이 중얼거렸다.

건너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여전히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간을 때울 겸 보고 있던 뉴스 사이트의 '속보' 표시에 별 생각 없이 시선을 주었다.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우려가 있는 소녀가 격리 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에서 탈주했습니다.

이 소녀를 발견한 분은 곧 경찰에 신고한 뒤 가까운 병원에서 감염 유무를 확인해 주십시오─.

 

남자의 시선이 화면 너머, 앞에 앉은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화상 속의 소녀와 눈 앞의 소녀의 모습이 겹친다.

"그럴 리가…."

그 말을 듣고 옆에 앉은 회사원이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글자와 소녀의 화상을 확인하고서 젊은이가 아연하게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우왁!" 회사원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 승객과 부딪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옆 차량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승객들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 없어."

동요한 젊은이는 몇 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에서 휴대 전화를 떨어뜨렸다. 발치까지 굴러 온 휴대 전화의 화면에 뜬 마키의 얼굴 사진을 본 L은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휴대 전화를 집어 든 마키가 일어서서 젊은이에게 건네 주려 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마키가 한 걸음 다가가자 젊은이는 착란 상태에 빠져 풀썩 주저앉더니, 마침 역에서 멈춰 서는 바람에 열린 문으로 엉금엉금 기듯이 뛰쳐 나갔다. 휴대 전화도, 짐도 내팽개친 채였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마키는 화면에 비친 자신의 사진을 보고 넋을 잃었다.

"이제 대중 교통은 이용하지 못할 것 같군요. 내리죠."

L은 마키의 손을 잡고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시부야 역이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스크램블 교차로를 달려 가려던 L은 마키의 걸음이 늦어진 것을 알아 차렸다. 돌아보자 마키가 넋이 나간 듯 뭔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길거리의 대형 화면에 마키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마키 씨, 최대한 고개를 숙이세요."

반쯤 얼굴을 감싸다시피 한 L은 마키의 손을 잡고 달려갔다.

"일본에는 이런 사태에 대한 지침은 일단 있습니다만, 책임론이 선행해서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랐어요. 아마도 쿠조 씨가 단독으로 보도 기관에 흘린 정보겠지요. 아무래도 그녀를 얕보았던 모양입니다."

마키는 L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몸 속에서 살인 바이러스가 발병할 때를 기다리며 계속 증식하고 있다는 잔혹한 현실이 마키의 사고를 빼앗아 갔다. 마키는 알고 있었다. 출혈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고열과 함께 온 몸에 발진이 생기고, 마지막에는 온 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죽어 간다. 그야말로 지옥도와 같았다.

"나, 죽는 걸까…."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L은 주머니에서 추파춥스를 꺼내어 마키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은 야마노테 선의 담장을 벗어나 논베요코쵸의 좁은 골목길을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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ℒ 10-1

포위

  

"쿠조 씨,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의 단독 행동 떄문에 현장이 크게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신종 바이러스 확산 대책 본부를 맡고 있는 후생 노동성의 사에구사 부장이 초조한 듯이 쿠조를 꾸짖었다.

"전염병 대책 기관인 우리들을 통하지 않고 갑자기 신종 바이러스 환자가 탈주했다는 경고를 언론에 발표하다니. 게다가 니카이도 교수가 아니라 대리인인 당신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늙은 교수가 안경을 닦으며 말했지만 쿠조는 그를 가로막았다.

"한 시를 다투는 상황이었어요. 당신들에게 말한다고 어떻게 되던가요? 위기를 발표해야 하나 그렇지 않나, 누가 책임 질 건가, 끊임없이 회의만 하고 계시지 않았나요? 실제로 이렇게 저를 이 자리에 부르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지요?"

"모든 사태를 정리한 뒤에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최종적으로는 쓸 데 없는 소모가 없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전염병에 대한 위기 관리가 얼마나 안 되어 있는지 드러났을 뿐이에요."

쿠조는 더 없이 일본적인 사고방식을 일축했다.

"뭐, 이미 끝난 일은 됐습니다. 하지만 쿠조 씨, 그만큼 텔레비전에서 정보 제공을 요청했는데 지금도 아직 유력한 목격 정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 아이가 존재해서 지금도 도주를 하고 있는 겁니까?"

위원들이 일제히 의심스런 시선을 쿠조에게 던졌다. 스스로는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지만 남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에는 남보다 더 관심을 보인다. 일본의 '조직인'이라 불리는 인종의 전형이었다. 쿠조는 그런 시선을 마주 쏘아보듯이 대치했다.

"감염된 사람은 니카이도 교수님의 딸입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다루고 있던 신종 바이러스에 실수로 감염되었습니다."

"감염 경로를 숨기고 병원에서 탈주했다고 사실을 덮어 둔 이유는 니카이도 교수를 지키려는 판단 때문입니까?"

"아니요, 사실을 공표하지 못했던 이유는 원래 그 바이러스가 니카이도 교수님이 극비리에 일본 국내에 가지고 들어온 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니카이도 교수님은 테러 조직에 가담해 바이러스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만, 그 과정에 딸도 전염된 것 같습니다."

"설마, 그 니카이도 교수가…."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났다.

"아시는 대로 니카이도 연구소는 바이오 해저드 레벨４의 설비를 갖춘 실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만, 주변 주민과의 약정에 따라 레벨３까지의 바이러스 밖에 다루지 못합니다. 시설의 장이 거기에 비밀리에 레벨４의 살인 바이러스를 들여 와 바이러스를 이용한 테러를 계획하고 행방 불명, 그 딸이 보균자가 되어 도망…이라고 있는 그대로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위원들은 그 문제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옆자리의 사람들과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눌 뿐, 조급히 결론을 내고 행동에 옮기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력은?"

위원 중 한 사람이 마음을 다잡은 듯이 물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이상의 치사율과 감염력입니다. 2주 간의 잠복 기간 뒤 폭발적으로 증식합니다."

"감염은… 설마?"

사에구사 부장이 그 뒷말을 하기가 망설여지는 듯 머뭇거렸다.

"공기 감염입니다." 쿠조가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렁거리던 회의실 안은 그 말이 떨어지자 정적에 휩싸였다.

환자의 가래나 기침, 구토물 등에서 미립자 상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돌다가 새로운 숙주의 폐로 들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치사율이 높은 살인 바이러스인 동시에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감염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조는 결단을 재촉하듯이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대로 내버려 둬서 일본을 전멸시킬 것인지, 조급히 대책 본부를 세울 것인지?"

한동안 아무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는 목소리로 사에구사 부장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대책 본부를 세우겠네. 쿠조 군, 자네도 책임이 있으니 대책 본부에 참가하도록."

사에구사 부장이 위압적인 말투로 쿠조에게 말했다. 쿠조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에구사의 '연기'에 내심 웃음을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코니시가 돌아온 쿠조를 보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일은 잘 해결된 모양이군요."

"예, 무사히 대책 본부에 들어갔답니다. 16시에 후생 노동성 안에 본부가 설치될 거예요."

쿠조는 웃옷을 벗으며 플로어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비오톱을 바라보았다.

"사에구사 부장과 제약 회사의 유착에 대한 정보가 도움이 되었나 보군요."

비오톱 너머에서 마토바의 유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예,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지만요."

"그럼 그 여자애는 곧 잡히겠네요. 쿠조 씨가 말한 대로 술래잡기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옳습니다. 어쨌든 이래서야…."

이제는 일본 전역으로 빨간 마크가 퍼져 버린 GPS의 화면을 흘끔 쳐다 본 코니시가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예, 하지만 그 아이의 GPS는 계속해서 탐색해 주세요." "예? 왜요?"

"우리들이 먼저 잡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목격 정보는 대책 본부로 일괄해서 들어오니 유력한 정보를 이 쪽으로 흘릴게요. 마키의 GPS 범위를 줄여 주세요."

"그럼 경찰이 먼저 잡은 경우에는?"

"그 아이는 발견되면 병원에 격리됩니다.병원에서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없어 대책 본부에 대응을 부탁하게 될 거예요."

"즉 어떤 시나리오든지 그 아이는 우리들의 손으로 돌아온다…."

마토바가 중얼거렸다. 그는 비오톱 안의 조화로운 세계를 희열에 들뜬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상 사회의 모습을 지구 상에 그려 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쿠조 역시 비오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유리 너머로 일그러져 보이는 마토바의 모습이었다.

"이상… 사회…."

조용히 중얼거린 쿠조의 입가에 비웃음과 비슷한 미소가 떠오른 것을 알아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ℒ 10-2

네트워크

  

"여기요, 설탕이 없는데요."

한밤에 인터넷 카페에서 젊은 여자 손님이 커피잔을 들고 무인 카운터에서 호출 벨을 눌렀다. 안에서 쉬고 있던 아르바이트 점원이 미안한 빛도 없이 "방금 보충해 뒀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스틱 설탕을 채워 넣는다. 인터넷 카페에는 거의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가득 차 있다고는 해도 때때로 기침 소리나 조그맣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 올 뿐 가게 안은 조용했다. 마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앉아서도 어느 누구와도 관련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소외감이 조용함을 한층 더 강조하는 것처럼.

커플석으로 되어 있는 한 방에는 한신 타이거즈의 야구 모자를 눌러 쓴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약간 나이 차가 있는 형제일까. 동생은 모포를 둘둘 감고 잠들어 있다. 형 쪽은 소파 위에서 기다란 팔 다리를 비좁게 구부리고 앉아 컴퓨터를 향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는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남자는 맨발의 끝으로 마치 독수리의 발톱이 사냥감을 움켜 쥐듯이 소파 끝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 균형이 흔들리지 않았다. 열심히 바라보는 화면은 네트워크 게임도, 성인 사이트도 아니었다. 남자는 실내에 있는 두 대의 컴퓨터,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노트북까지 도합 세 대를 사용해 동시에 몇몇 사이트를 띄워 놓고 정보들을 동시에 읽어 내고 있었다. 경시청, 후생 노동성, 각 지의 지방 경찰….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일반인은 볼 수 없는 내부의 극비 파일이나 정보 화면이었다. 남자는 머뭇거림 없이 각각에 차례로 뭔가를 입력했다. 키보드 옆에는 커피 잔 다섯 개와 대량의 스틱 설탕이 놓여 있었다. 인터넷의 화면을 보는 시선은 한 순간도 잔을 향하지 않은 채, 스틱 설탕만 몇 개씩 머피에 들이 부었다. 잔 안에는 이미 커피보다 설탕이 더 많아 '커피맛 설탕'이라고 불러야 할 물건으로 변질되어 있었지만 남자는 맛있다는 듯 들이키고 있었다.

컵을 들고 입력을 계속 하면서도 남자의 시선은 때때로 소파에 놓인 노트북을 향했다. 두 군데 사이트가 열려 있었다. 첫 번째는 도보, 자전거, 오토바이 등 여러 수단과 루트로 일본 일주를 목표로 하는 젊은이들이 서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리는 '도전 일본 질주!' 라는 사이트였다. 여름 방학도 시작된 만큼 '오늘부터 오사카 출발입니다!', '하코다테로 갑니다. 근처에 있는 사람은 역 앞 편의점에서 만나요!' 등의 게시물이 한밤중에도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얼마 전에 연예 활동을 재개한 아마네 미사의 홈페이지였다. 행사 정보에는 여름 방학에 들어서 각 지방 여름 축제 행사에 참가하는 스케줄이 게재되어 있었다.

"아마네 미사…. 다시 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데스 노트에 관한 기억을 잃었어.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야가미 라이토를 좋아했다는 기억 뿐…."

남자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잠결에 뒤척이던 동생이 가위에 눌린 듯 신음을 흘렸다. 이마에 흥건하게 땀이 배어 있었다.

"왜 그러지요?"

형이 흔들자 동생은 모포를 걷어내며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둘러 보곤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아냐…."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은 동생은 타이거즈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다. 모자 속에 정돈되어 있던 긴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변장한 L과 마키였다. 겉으로는 발랄하게 행동했지만, 마키는 요 며칠 깊이 잠들지 못하며 가위에 눌려 깨어나곤 했다. 발병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분한지 L은 잘근 잘근 손톱을 물어 뜯으며 마키를 바라보았다. 카운터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아닌 듯해 L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카운터를 살폈다. 경찰이 서 있었다. 불특정 인물이 한밤중에 모여 드는 이 장소는 '경찰관 단골 출입소'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늘 밤의 용무는 단순한 순회가 아닌 듯 했다.

"난 12시부터였고 손님 얼굴은 일일이 기억 못 한다니까요."

아르바이트 점원은 경찰관이 내민 사진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빛을 띠었다.

"아무튼 잠깐 가게 안 좀 확인해 봐야겠어."

경찰관은 딱 부러지게 말하고는 가게 안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마키 씨, 경찰입니다. 도망칩시다."

야구 모자를 다시 쓴 L이 마키를 재촉했다. 사용하지 않는 부스의 컴퓨터 책상 아래에 숨어 경찰을 지나쳐 보내고 카운터 아래를 포복 전진으로 통과한 뒤 단숨에 달려 나갔다. 그제야 알아차린 경찰관이 뒤를 쫓아 왔다. 가게를 뛰쳐 나오자 눈 앞을 다른 경찰관이 막아 섰다. L은 주차장의 체인에 발이 걸려 나뒹굴고 말았다. 그러나 일어서다가 휘두른 발이 경찰관의 턱을 직격해 상대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서 보면 카포에라 같은 동작이었다. L은 일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연치고는 아주 훌륭한걸."

"아니, '필연'입니다. 성공했어요."

마키는 자신만만해 하는 L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일은 잘 됐어?"

"예, 다음 작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L은 역 앞의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응? 자전거로 갈 생각이야?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L은 마키의 불평을 상대도 하지 않고 전동식 자전거 한 대를 찾아 내어 어렵지 않게 다이얼 키를 해제한 뒤, 건물 구석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등에 멘 가방에서 아키하바라에서 구입한 기판과 전자 부품 등을 꺼내어 뭔가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자의 마크는 뭘 의미하고 있습니까?"

"뭐냐니, 한신 타이거즈 마크잖아! 오사카의 야구 팀이야."

"G 마크 모자는 안 되나 보군요."

L은 모자를 살 때 처음에 'G 마크' 모자를 손에 들었다가 마키에게 퇴짜를 맞았다.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한신을 응원해야지!"

"그 팀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뜻이야…?"

"아니, 저는 제 출신지의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는 사람도 아닌 사람을 '응원'한 적이 없어서요. 기묘한 풍습이군요…."

마티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L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류자키…, 당신 머리는 좋은데 사람의 심리를 좀 더 공부하는 편이 좋겠어."

"곧잘 듣는 말입니다."

L은 마키의 말에 우울해하면서도 작업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개조가 끝났습니다. 뒤에 타십시오."

"개조라니, 뭘 한…, 빠르다! 이게 자전거라니 반칙이야!"

두 사람을 태운 자전거는 L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앞으로 쉭쉭 나아갔다.

"모터의 제어 기판을 개조해서 언제나 경사길을 올라가는 것처럼 회전 축을 변경했습니다. 이러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움직입니다."

 

 

ℒ 10-3

반격

  

"아니, 그러니까 그런 증상이라면 이번 바이러스 감염은 아니니까 가까운 병원에 가 보세요. 예,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괜찮으니까."

도내의 각 병원에서 긴급히 모여 든 의사들은 대책 본부에 끊임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미처 다 대응을 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홍역이나 수두까지 신종 바이러스 증상이라고 의심하고 있어요."

"고열이 나는 아이들의 진찰을 거부하는 병원에 뭔가 조치를 취할까요."

일시적인 외출에서 돌아온 쿠조는 곤혹스러운 표정의 의사들에게 냉정하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39도 이상의 고열이 난 지 2시간 이상 지나도 얼굴이나 손발에 발진이 생기지 않으면 이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검문에서 속속들이 용의자 정보가 모여 들었다. 쿠조는 대책 본부의 일원으로 전체를 지휘하면서도 뭔가를 찾아 내려는 듯이 그 보고서 뭉치를 넘겨 보곤 했다.

"0시 37분, 사이타마 시의 인터넷 카페에서 수상쩍은 20대 남성과 여자 어린이를 발견…, 1시 23분, 하스다 시내 도로에서 20대 남성과 여자 어린이가 불심 검문 후 도주,… 2시 55분, 시라오카쵸의 검문 경찰관에게 '감염된다'고 외쳐 협박한 뒤 자전거로 도주…."

쿠조는 휴대 전화를 들고 몰래 대책 본부에서 빠져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직의 요시자와에게 전화를 했다.

"L과 마키 같은 목격 정보가 있었습니다. 사이타마 시에서 북상하고 있어요. 이 속도라면 아마도 자전거일 것 같아요."

"자전거로 도망이라, 꽤나 궁지에 몰려 있는 모양이군. 사이타마에서 북상…이라면 예상대로네요."

"예, 센다이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요. 토호쿠 대학의 키시카와 교수가 니카이도와 사이가 좋았다는 사실은 그 애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항 바이러스 약의 제조를 부탁한다면 키시카와 밖에 없어요.… 다음 번 쿠키 시(市)에서 검문하기 전에 신병을 확보하고 싶습니다. 여자애의 GPS를 확인한 뒤, 연구소와 니카이도의 자택을 감시할 멤버만 최소한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쿠키 시로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쿠조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대책 본부실로 돌아와, 쉴 새 없이 날려 드는 문의를 신속하게 처리하면서도 앞으로의 단계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예상되는 경우는 세 가지였다. 다음 검문을 받기 전에 GPS로 위치를 알아 내어 조직 멤버가 붙잡는 경우, 검문에서 체포되어 병원으로 옮겨지는 경우, 토호쿠 대학의 키시카와 교수에게 다다르는 경우. 어느 쪽이든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 두었다. 키시카와 교수는 이미 협력하도록 협박을 마쳤다. 그러나 쿠조의 머릿속에서는 뭔가가 걸렸다. 상대가 L이라서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 된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새로운 정보를 체크했다.

─0시 30분, 아다치 구내의 인터넷 카페에서 수상쩍은 20대 남성과 남자 어린이가 도주─.

그 보고를 잠시 동안 바라보고 있던 쿠조는 보고서 뭉치를 뒤적여 처음에 눈여겨 보았던 L과 마키로 여겨지는 목격 정보를 찾아내어 최신 정보와 비교해 보았다.

"남자 어린이…. 마키가 변장했을 가능성도…. 설마… 미끼?"

그렇게 중얼거린 것과 동시에 쿠조의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요시자와의 "당했습니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일이죠?!"

"해당 GPS를 확인해서 추적했는데 잡고 보니 전혀 상관 없는 젊은 남자였어요. 자전거로 일본 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발신기는 어디에서 붙었는지 모르겠다더군요."

혀를 차며 전화를 끊은 쿠조는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끼였다면 목적은 우리들을 교란시키려고? 설마 스루가와 L은 따로 움직인다든가…. 또 다른 목적도 있을 수 있다?"

초조하게 중얼거린 쿠조는 차를 출발시켜 신호를 무시하며 한밤의 도로를 달렸다.

 

"류자키 녀석, 지금쯤 예상대로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다 쳐도…."

스루가는 정원수 그늘에 숨어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이것도 온난화 탓인가? 쿠조 일당의 이상 사회에서는 밤이 훨씬 더 시원하겠지."

스루가는 더위에는 익숙해져 있었지만, 바람이 없는 일본의 후텁지근한 밤과 날아 드는 모기 떼에는 진력이 날 지경이었다.

"제길! 저런 녀석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팀을 짜서 움직이면 1분도 채 안 걸릴 텐데. 뭐, 자업자득인가…."

스루가는 블루십의 아지트로 돌아와 있었다. L에게서 데스 노트를 빼앗기는커녕 다른 조직에게 빼앗겼다고 본부에 보고할 수도 없었고, 임무에서 제외된 지금은 동료에게 협력을 의뢰할 수도 없었다. L과 마키와는 따로 행동하고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트럭이 움직이겠군."

스루가는 훔쳐 온 대형 트럭을 근처의 경사진 길목에 세워 두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고 얼음을 타이어에 괴어 둔 채로. 낮 동안 태양 열을 받은 아스팔트 위에서 얼음은 10분도 되지 않아 녹아 버렸다. 족쇄를 잃은 무인 트럭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차 속도를 높여 경사길을 폭주하기 시작한 트럭은 전봇대를 들이박으며 멈추었다. 그 순간 근처 일대가 정전이 되어 어둠에 휩싸였다. 조직 아지트인 빌딩에 비상용 자가 발전 설비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을 마친 뒤였다.

"작전 개시. 03:21."

당당히 빌딩에 들어간 스루가는 계단을 올라가며 지나는 길에 비상 벨을 눌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둠의 루트를 통해 손에 넣은 러시아 군용 암시 스코프를 낀 스루가는 확인하러 뛰어 나온 한 사람을 스쳐 보내곤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실내로 침입했다. 테러 조직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오합지졸이다. 울려 퍼지는 비상 벨과 어둠 탓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L의 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본부에는 멤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 시에 지휘를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적의 덫일지도 모른다! 노트를 지켜라!"

스루가는 크게 소리쳤다. 상대의 지휘 계통이 혼란되어 있을 때에는 도리어 그것을 이용해 상대가 이 쪽에게 유리한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돌입의 기본이다.

"어떠냐, 노트는 무사한가?" 스루가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재빨리 이동해 전체를 내다 볼 수 있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의 남자가 서류 가방을 손에 들고 대답했다.

스루가는 말 없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상대의 코와 입을 막고 동시에 벽으로 밀어붙여 명치를 걷어차서 기절시켰다. 약간의 신음 소리는 들렸지만 벨 소리에 차단되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서류 가방을 든 스루가는 조용히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 재빨리 후퇴했다. 빌딩에서 나와 암시 스코프를 벗고 시계를 확인했다.

"작전 종료. 03:26. 소요 시간 5분. 뭐, 괜찮은 편이군."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스루가 씨."

막아 서는 조그마한 그림자. 그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아하, 이런 주택가에서 쏠 수 있나? 그렇지 않아도 사고와 정전 때문에 다들 밖에 나와 있는데. 경찰이 와서 켕기는 구석을 살펴 보게 될걸. 다행히 나는 그저 노트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말야. 그래도 쏠 텐가, 쿠조?"

수사원의 경험으로 보아 상대에게 쏠 마음이 있는지 아닌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쿠조는 쓰게 웃으며 총구를 내렸다.

"스루가 씨와는 좋은 팀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쿠조는 멋쩍어 하는 기색도 없이 다가와 과거의 알력 따위는 잊어버렸다는 듯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속여 놓고는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무서운 여자야."

"그런 무서운 여자는 적으로 돌리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쿠조의 손이 가만히 스루가의 손에 닿았다. 땀이 날 만한 열대야인데도 서늘한 쿠조의 손은 스루가를 유혹하듯이 손가락을 감아 왔다. 그대로 감겨 꼼짝도 못할 듯한 감각에 빠진 스루가는 황급히 그 손을 뿌리쳤다.

"당신과 L, 적으로 돌린다면 누가 더 무서우려나."

스루가는 손을 저으며 쿠조에게 거절을 알렸다.

"그러면 각오해 주세요, 스루가 씨. 아니, 스기타 히데아키 씨."

스쳐 지나가면서 그렇게 말한 쿠조의 목소리는 섬뜩할 만큼 냉정하고 조용했다. 스루가는 등줄기에 싸늘함을 느끼며 돌아 보았다.

"쿠조…, 너, 어떻게 내 이름을?"

"사람을 조사하는 건 거기에 있는 명탐정의 전매 특허가 아닌 거죠."

쿠조의 시선 끝에는 어제 헤어졌던 L과 마키가 서 있었다.

"마키, 미안해. 설마 네게 바이러스를 주사할 줄은 나도 생각조차…."

마키는 쿠조의 사죄를 가로막았다.

"있잖아, 쿠조 씨. 정말로 쿠조 씨는 바이러스를 써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거야?"

"아니야.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거야…."

"많은 사람을 죽여서…, 인 거잖아?"

마키가 곧바로 받아 치자 쿠조는 침묵했다. 한때는 가족처럼 서로 신뢰하며 시간을 보냈던 두 사람이 지금은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힌 것처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서 만든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더라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쿠조는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지만 곧 생각을 돌린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키, 분명히 그게 이상적이긴 해.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 하지만 그건 이미 무리야. 아버지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 마키는 알고 있잖아?"

이번에는 마키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한 여러 나라와 지역이 떠올랐다. 이 지구가 모순과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 이제는 더 이상은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인 마키도 느끼고 있었다.

"있지, 마키. 요전에 동물 사육실에서 했던 이야기, 기억 나? 마키가 지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실험 동물이 희생되어 주었기 때문이야. 어떤 일에든 희생은 필요해."

"정말로 그걸로 만족해? 나는 그게 쿠조 씨의 본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쿠조는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이게 내 본심이야. 니카이도 교수님 아래서 일했던 이유도 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야."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이 마키는 쿠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쿠조 씨를 잘못 봤어."

그것은 두 사람에게 있어 결별의 말이 되었다.

"류자키, 마키, 슬슬 전기가 복구될 거야. 가자."

스루가가 재촉했다. 마키와 쿠조의 대화를 듣고 있던 L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쿠조 씨, 당신들이 하려는 일은 이상 사회를 만든다는 명목을 붙였을 뿐 단순한 대량 학살 계획입니다. 계획이 실행되면 제가 반드시 당신을 사형대에 보내겠습니다. 당신은…."

L은 쿠조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눈을 부릅뜨며 선언했다.

"사형입니다!"

 

"예상대로…, 라는 얼굴이군? 따로 행동을 하면 내가 노트를 되찾으러 가리라는 사실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건가?"

L은 장난스런 웃음을 띠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스루가의 잠입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에 가능했던 '예상'이니까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럼 이것도 예상대로인가?"

스루가는 휴대 전화를 꺼내어 L에게 들리도록 상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Y286으로부터 보고입니다."

전화 상대는 분노로 언성을 높였다.

"뭘 하고 있었나, 스기…아니, Y286? 임무를 해제했는데 귀환도 하지 않고 심지어 회수 부대를 방해했다더군. 징벌을 각오하고 개인 행동을 했으니 타깃은 회수할 수 있었겠지?"

"예, 타깃은…."

스루가는 손에 든 데스 노트를 바라보더니 L에게 윙크를 하고는 던져 주었다.

"타깃은…, 죄송합니다. 작전은 실행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무슨 뜻인가, 스루가!"

"저는 레이와 나오미의 원수를 해치워 준 L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전화의 목소리는 초조한 빛을 띠었다.

"스루가, 상층부는 L이 데스 노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중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어. L과 행동을 함께 하는 이상 너는 면직이다. L과 함께 뒤쫓기는 신세가 될 거야."

"잘 알고 있습니다."

전화기에서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지만 스루가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듯이 휴대 전화를 끊고 통쾌하게 웃었다.

"괜찮습니까? 스루가 씨."

"그래, 마키가 최우선이다. 게다가 명탐정 L의 마지막 임무에 참가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런데, 그 쪽의 목표는?"

"잘 되었습니다. 양동 작전이 성공해서 니카이도 연구소의 감시는 허술했습니다. 덕분에 목표로 하던 물건을 손에 넣었습니다."

 

블루십 아지트에서는 불빛이 돌아온 뒤에야 겨우 사태가 판명되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앗, 쿠조 씨! 큰 일입니다! 데스 노트가…." "알고 있습니다."

코니시의 매달리는 듯한 목소리를 손으로 가로막은 쿠조는 L이 '선물입니다' 하며 준 추파춥스를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갔다. 포장을 풀자 거기에는 예상했던 대로 6행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쿠조는 YB 창고에서 L에게서 빼앗은 마이크로 칩의 작동 패스워드에 그 여섯 숫자를 입력했다.

"이번에는 음성 파일?" 쿠조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한숨을 쉬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이 목소리는…, 미사미사?" 등 뒤에서 상태를 엿보던 코니시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L이 극비리에 입수한 아마네 미사의 뉴 싱글 데모 데이터였다.

"L, 당신은 아무래도 저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든 것 같군요."

쿠조는 마치 L을 대하듯 추파춥스를 노려 보았다.

"코니시 씨, 키라 대책실의 시스템에는 지금도 침입할 수 있나요?"

"가능은 하지만 그 곳의 데이터는 전부 삭제되어서 쓸모가 없어요."

"예, 하지만 외부 회선에 대한 개입은 확보하고 있죠? 당신의 해킹 실력을 믿고 부탁할 게 있습니다."

"예? 예…."

쿠조는 추파춥스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짓밟았다. 평소와 다른 쿠조의 모습을 보고 코니시의 얼굴이 굳어졌다.

"L…, 세계 제일의 명탐정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조직이라는 뒷배경을 잃고 나면 대체 당신이 뭘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