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L; Change the World~(새로운 시작) -제５장- 습격

ℒ 9-1

습격

  

"슬슬 스루가 씨와 합류할 지점입니다."

시야를 가로막은 나무들이 뜸해지자 L과 마키는 걷다 지친 다리를 멈추고 시가지의 야경을 내려다 보았다. 진정한 목적지인 오사카로 가기 위해 스루가는 다시 L과 따로 행동하고 있었다. 검문과 감시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 크레페 차의 외관을 바꾸고 위조 번호를 마련해 줄 뒷세계 업자에게 차를 가져간 것이다.

"그럼 이런 산길을 걷는 것도 이제 끝이지?"

마키는 진흙 투성이 스니커를 신은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면 좋겠지만…."

신종 바이러스 확산 대책 본부에 의해 경찰 및 후생 노동성의 합동 감염자 수색용 검문이 시작되었다. 오염 방호복과 마스크로 온 몸을 감싼 이상한 차림새를 전국에서 볼 수 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도서관 같은 공공 시설이나 대형 슈퍼마켓과 영화관, 번화가에서도 마키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 소녀들이 방호복 집단에 의해 구속 및 격리되었다. L과 마키는 검문을 피하기 위해 인기척이 뜸한 산길을 골라서 걸어갔다. 나무들 너머로 시가지의 불빛이 가까워지자 피로에 지쳐 무거웠던 마키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역 후문에서 스루가 씨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 내서…."

한 걸음 옮기는 마키를 돌아 보던 L이 갑자기 그녀를 뒤로 쓰러뜨렸다.

"뭐야, 류자키! 뭘 하는…."

한 발의 총성이 마키의 말을 가로막자 류자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부둥켜 안고서 비탈길을 구르듯이 이동하면서 L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하나, 둘…, 네 명. 각자 권총을 소지. 위협이 아니라 저격을 목표로…."

L은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마키의 손을 세게 쥐었다. '눈을 감으라'는 신호다. YB 창고에서 썼던 스트로보 탄이 여기에서도 이용되었다. 섬광이 주위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광원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모크 처리가 된 헬멧을 쓰고 있어서 효과는 거의 없었다.

"마키 씨, 상대는 프로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저에게서 떨어져 도망치세요. 그들의 목적은 저를 죽이는 것입니다."

"바보! 무슨 소리야. 도망칠 때에는 같이 가야지! 게다가 류자키는 나를 지키겠다고 했잖아.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지 않다니 무책임해!"

마키가 L의 셔츠 자락을 움켜 쥐고 격렬하게 흔들었다. L은 그 모습을 기묘한 광경이라도 보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건 제멋대로 구는 게 아니라 저를 격려해 주려는 거군요."

"일일이 확인하지 마, 멍청이!"

다시 총탄이 스치고 지나가 두 사람은 몸을 더욱 숙였다. 마을 쪽에서 불꽃이 몇 발 피어 올랐다. 오늘은 여름 축제가 열리고 있는지 마을의 소란이 숲 속까지 전해져 왔다.

"여름 축제에 숨어 들지요. 나무 뒤에 숨으면서 지그재그로 달리겠습니다."

"알았어!"

두 사람은 숲을 벗어나 단숨에 달려갔다. 마을로 들어서자 추격자는 사격을 멈추었지만 그래도 계속 뒤를 쫓아왔다. 여름 축제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번잡했다.

"마키 씨,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들키지 않도록 하십시오."

유카타 차림에 섞여 까만 드레스에 프릴을 단 고스 로리 패션으로 몸을 감싼 여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L은 인터넷 카페에서 보았던 아마네 미사의 홈페이지를 떠올랐다. 그녀의 복귀 제１탄 이벤트가 바로 이 여름 축제 행사 참가였다. 프로그램에 실린 미사의 사진을 보고 마키가 소리쳤다.

"앗, 미사 언니잖아. 활동을 재개했구나!"

지금은 전국에서 유명한 아이돌인 '미사미사'였지만 마키에게는 지금도 사이 좋은 이웃 '미사 언니'였다.

"류자키! 좋은 생각이 있어."

마키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L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추적자는 아무래도 헬멧을 쓰고서는 파고들 수 없어, 짙은 선글라스에 마스크로 '사신의 눈'에 대비한 채 L과 마키를 멀찍이에서 둘러 싸듯이 감시하고 있었다.

"이 인파 속에서는 분명히 저 쪽도 손을 쓰지는 않겠지만 이 쪽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맡겨 둬! 잠깐만 기다려."

마키는 그 말을 남기고는 L을 혼자 두고 스테이지로 다가갔다.

잠시 뒤 돌아온 마키가 "오케이야!"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뭘 하고 왔습니까?" 하고 L이 물어도 "뭐, 조용히 보고만 있어" 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할 따름이었다. L은 불만스럽게 마키를 내려다 보았지만, 이윽고 아마네 미사가 무대에 서자 그것도 잊어버린 듯 시선을 못 박은 채 고스 로리 패션의 젊은이들에 섞여 눈을 빛내며 성원을 보냈다. 미니 라이브에서는 <HEAVEN'S DOOR>에 이어 세컨드 싱글 <DEVIL'S EYE>를 처음으로 선보였으므로 사람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라이브가 끝나고 미사와 팬의 교류 이벤트 시간이 되었다. 미사의 사인이 들어간 비장의 물품의 전달 차례가 되자 미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행사장 안을 둘러 보았다.

"최근에 미사는 선글라스에 빠졌어요. 그러니까 선글라스를 낀 남자 분께 선물을 드릴래요. 무대에 올라와 주세요─!"

사람들의 시선이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쏠렸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추적자인 선글라스 일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엉겁결에 선글라스를 벗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마키의 책략을 이해한 L이 배에 감추었던 노트와 연필을 꺼내어 추적자들이 맨 얼굴을 보이는 순간을 기다리는 척하자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예, 거기 선글라스 씬 분. 부끄러워하지 말고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미사의 목소리와 주위의 시선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남자들은 머뭇거리며 무대로 올라갔다. 미사의 팬으로는 보이지 않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하나같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은 몹시 기괴했다.

"류자키, 이 틈이야!" 마키가 웃음을 참으며 L을 재촉했다.

"미사 씨에게 부탁했군요. 과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L은 아쉬운 듯 행사장을 돌아 보며 손톱을 깨물려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하지만, 뭐?" "저도 사인 물품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멍청이! 얼른 도망가자." "예."

L은 다시 한 번 멈춰 서서 무대 위의 미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마네 미사….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행복하게 살아 주세요."

L은 더 이상 돌아 보지 않고 마키의 손을 끌면서 달려갔다. 그러나 곧 마키는 L과 나란히 달렸고, 얼마 안 가 오히려 L을 잡아 끌고 달리게 되었다.

"왜 그래, 류자키. 벌써 지쳤어? 단 것만 먹으면서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야!"

"뇌세포가… 단 걸…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행사장을 벗어난 남자들이 마사의 사인 물품을 손에 들고서 다시 두 사람의 뒤를 쫓아왔다.

"위험해, 류자키!" 남자들이 총을 뽑은 순간, 한 대의 차가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차체 옆에는 커다란 군고구마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어서 타!" 스루가가 운전하는, 크레페 차를 개조한 군고구마 판매 차였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곧바로 도주를 개시했다. 역 뒤는 인기척이 적은 창고 거리였다. 추적자는 주저 없이 권총을 쏘았다. 그러나 이 차는 모양새는 나빠도 L이 '이동용 작전 차'라고 부를 만하여, 창문은 모두 방탄 유리였고 차체는 탄환의 충격을 흡수해 버리는 특수 망으로 덮여 있었다. 타이어만큼은 총에 맞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면서 스루가는 추적자를 따돌렸다.

"스루가 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지금 저들은 FBI인가? 상당히 위험하게 나오는데?"

"작전에 변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데스 노트를 빼앗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말 없이 갑자기 발포하더군요."

소리를 지르며 운전하는 스루가의 옆에서 L은 재빨리 컴퓨터를 두드려 FBI를 해킹했다.

"아무래도 저와 스루가 씨는 데스 노트를 들고 세계를 협박하고 있는 제１급 범죄 계획자로 낙인이 찍힌 것 같습니다. 발견 시 무조건 사살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세계를 협박했다니! 무슨 소리야?"

"미국 대통령 앞으로 L의 이름으로 협박장이 도착한 듯 합니다. 아무래도 키라 대책실의 시스템이 해킹되어 누군가 L이라고 하며 협박장을 보낸 것 같군요."

"누군가라니, 설마…."

스루가는 '무서운 여자는 적으로 돌리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아요?' 라는 쿠조의 말을 떠올리고는 등 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L은 대답하지 않고 손톱을 잘근 잘근 물어 뜯었다.

  

   

ℒ 9-2

숙청

  

블루십 아지트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비오톱.

쿠조는 유리 속 세계에서 움직이는 생물들을 어렴풋한 눈으로 쫓고 있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서 만든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더라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마키의 말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이 안의 생물들은 행복할까. 설령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바깥 세상을 마음껏 뛰어 다니는 편이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깨닫고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아 현실로 돌아왔다.

"미끼 정보로 우리들을 분산시켜 놓고 그 사이에 허술해진 아지트를 습격해서 데스 노트를 빼앗는다…. 과연 L, 호락호락하지는 않군요."

어젯밤의 전말을 들은 마토바는 어깨를 움츠리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멤버들도 L에게 휘둘려 헛수고를 하게 되자 실내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사기가 저하된 것을 민감하게 알아 차린 마토바는 지금은 실책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애써 밝은 말투로 말했다.

"자, 어떻게 할까요, 쿠조 씨. 데스 노트도 빼앗기고, 우리들은 L에게 내밀 카드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쿠조도 마토바의 의도를 깨닫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코니시 씨와 둘이서 이미 다음 방법을 손 써 두었습니다."

"호오, 다음 방법이라면?"

"방해물인 L을 죽이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멤버의 시선이 쿠조에게 쏠렸다. 대체 어떻게… 라는 믿기 어려운 마음이 조그만 소란을 자아 내었다.

"코니시 씨의 해킹 기술로 키라 대책실의 통신 회선에 파고들어 L인 척 합중국 대통령에게 협박장을 보냈습니다."

"협박장이라니, 어떤 내용으로?"

멤버 중 한 사람이 불안한 빛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미국 예산급의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데스 노트를 써서 핵 폭탄 스위치를 누르게 만든 뒤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마토바가 흥미로운 듯 몸을 내밀며 다리를 다른 방향으로 꼬았다.

"대통령은 겉으로는 L의 요구를 따르는 척 하면서 뒤로는 L을 암살하려고 할 겁니다. L만 사라지고 나면 우리들이 마키를 손에 넣기는 간단합니다."

"과연, 기대되는군요."

쿠조는 마토바가 다리 위에 놓아 둔 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질서와 통합을 중시하는 마토바 다운 단정한 손톱은 인공물처럼 보여 그의 인간성을 감추는 것 같았다. 카가미 박사가 천천히 일어나 비오톱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자연의 사이클은 이미 이런 상자 정원 속에서밖에 남아 있지 않아…. 지구를 이 비오톱 안의 상태로 돌려 놓기 위해서는 60억까지 늘어난 인구를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마토바 군이 제안한 바이러스에 따른 지구 정화…, 즉 인류 삭감 계획에 기대했던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카가미 박사님."

"그렇다면 마토바 군. 당신은 어째서 바이러스를 사 들일 곳을 찾고 있습니까?"

카가미가 돌아 보며 마토바의 등을 향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지요?"

"얼버무리지 마십시오. 유럽 기업 연합과 미국의 지배 계급, 게다가 러시아, 중동. 이 곳 저 곳을 저울질하는 것 같던데요."

마토바는 여전히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러자 멤버들은 얼어 붙었다. 마토바의 '감정'과 '표정'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은 과거에 몇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울질하고 있다니 듣기 거북한 말씀이군요. 오래도록 손을 잡기에 걸맞은 상대를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어찌 되었든 바이러스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뿌릴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이미 세계적인 연락망을 지닌 그룹을 동료로 받아 들이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토바의 온화한 모습은 여전했다. 그 '여전함'이야말로 그의 두려운 점이라는 사실은 카가미로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가미도 어느 시기부터 변해 버린 조직의 모습을 고치지 않으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바이러스의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는 소리로군요. 당신이 항 바이러스 약을 필요로 하는 것도 우리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어요. 결국 당신의 목적은 돈과 권력입니까? 그런 사리사욕이야말로 이 지구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마토바 군, 당신은 모르는 것 같군요."

한숨을 쉰 마토바가 하츠네에게 눈짓을 했다. 하츠네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 카가미에게 다가가 위로하듯이 말을 걸었다.

"카가미 박사님, 피곤하지 않으세요? 조금 쉬시는 편이…."

카가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돌아 본 그의 가슴에 단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파고들었다. 그 순간 카가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하츠네를 바라보았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날은 아픔을 느낄 틈조차 주지 않고 쉽사리 심장을 꿰뚫었다. 카가미는 가슴을 내려다 보며 칼이 손잡이 부분까지 깊이 '자신의 몸 속에 침입해 있다'는 상황을 그제야 이해했다. 하츠네는 칼날을 비틀어 심장에 공기를 넣으면서 뽑아 들었다. 카가미는 눈을 부릅뜨고 온 몸을 경직시키며, 말 그대로 막대기처럼 쓰러졌다. 아픔을 느낄 틈조차 주지 않는 쇼크사. 하츠네에게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모쪼록 푹 쉬세요."

시체 옆에 웅크리고 앉은 하츠네는 숨이 끊어진 카가미의 눈꺼풀을 가만히 감겨 주었다. 아직 육체는 그 죽음을 자각하지 못했는지, 심장의 움직임에 맞추어 가슴에서 혈류가 솟아 올라 주위에 스멀스멀 번져 갔다. 마토바는 소파에 앉은 채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물체'로 변한 카가미를 내려다 보았다.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이 노인이 움츠러 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러분도 느끼셨을 테지요. 한 사람의 망설임은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조직 전체에 파고들어 결국은 전체의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마토바는 내심 타이밍을 잘도 맞추었다고 은밀히 웃었다. L의 개입으로 계획이 틀어져 조직의 목표 실현에 대한 사기가 저하된 지금은 무엇이든 '당근'이나 '채찍'이 필요한 참이었다. 카가미 박사는 스스로 나서서 희생양이 되어 준 셈이었다. 멤버들은 멍한 표정으로 카가미의 시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토바 일당이 가입해서 활동이 단숨에 과격화된 이래 세 번째의 '숙청'이었다. 이런 '숙청'에 대한 감각은 이미 마비되어 있었다.

평소와 같이 멤버는 시체를 비오톱 안에 던져 넣었다. 식욕이 왕성한 뱀장어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소리는 무사히 나왔다는 거네. 어제? 그렇군,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어."

자택으로 돌아온 쿠조는 휴대 전화의 상대에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럼 곧 일본으로 와 줄 수 있어? 전미 지명 수배? 대체 어떤 이름으로 올 생각이야?"

쿠조는 친근감이 담긴 어조로 허물 없이 웃었다.

"당신이 일본에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냐고? 괜찮아. 아직 마토바의 손에는 넘어가지 않았어. 도망치는 게 특기인 명탐정이 시간을 끌어 줬거든."

쿠조의 입가에는 비밀을 가진 사람만이 보이는 은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과연 L이야. 잘 버텨 줬어. 세계 제일의 명탐정이라고 불릴 만 해. 덕분에 당신과 다시 손을 잡을 수 있게 됐어."

말과는 달리 그 말투에는 세계 제일의 명탐정에 대한 경의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슬슬 우리들의 계획을 실행할 때야. 괜찮아, 계획은 충분히 점검했으니까. 그럼 일본에서 봐. 이제 이 전화는 파기할 테니까, 새 번호는 평소에 하던 방법으로 알려 줄게. 그럼 이만."

쿠조는 착신 이력을 지우고 휴대 전화를 내려놓은 뒤, 이중으로 만든 서랍의 비밀 장소에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빛이 바랜 사진 안에서는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서 끄려고 하는 어린 쿠조와 아직 젊은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가족 셋이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갑자기 어떤 광경이 뇌리에 퍼뜩 되살아 났다. 눈 앞에서 타오르는 건물과 어쩔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멈춰 선 어린 자신….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영혼에 새겨진 기억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치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영원히 시간이 멈춘 부모님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또 한 장의 사진을 앞에 두자 쿠조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 인물은 여덟 살에 부모를 잃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던 쿠조를 이끌어 주고 믿어 주었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헤어질 때에 해 준 말이 기억 속에 되살아 났다.

─믿고 있는 길을 나아가도록 해─.

계속 잊으려 했던 그 말은 마음 깊은 곳에 가둬 두려고 하면 할 수록 커져 갔다. 그 말은 쿠조가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계를 위해 그 힘을 쓰리라고 신뢰하는 말이었다.

"이해해 주세요. 이게 제가 믿는 길…, 세계를 바꾸는 길이에요."

쿠조는 스스로에게 들려 주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현관 앞에 설치한 방범 시스템이 경보 음을 울렸다.

서둘러 사진을 집어 넣고 들키면 안 되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 뒤, 손님이 초인종을 누르길 기다려 문을 열었다.

"어쩐 일이에요, 코니시 씨. 이런 늦은 시간에."

불안한 표정인 코니시를 보고 조금 전의 '숙청'의 영향을 금세 알아 차린 쿠조는 코니시를 방으로 들였다. 의자에 앉히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껏 길들여서 써 먹을 만하게 된 장기 말 하나를 지금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나…, 나, 정말로 괜찮은 걸까요?"

코니시는 평소보다 더 말을 더듬거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쿠조는 테이블 위로 코니시의 손을 잡았다.

"코니시 씨, 마토바 대표님이나 요시자와 씨가 말하는 대로 따라서 당신에게 미래가 있을 것 같아요? 두 사람 다 당신의 프로그래밍이나 해킹 능력이 필요할 뿐, 당신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겠죠?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작전이 성공하고 나면 코니시 씨는 틀림 없이 마토바 대표님께 버림 받을 거예요."

"그렇지만, 하지만, 무서워서…. 오늘 카가미 박사님을 보니까 언제 나도 그렇게 될지 몰라서."

코니시는 생각보다 더 크게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있었다. 쿠조는 일어나 코니시의 옆에 섰다. 코니시는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듯이 쿠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아요, 제게 맡겨 두세요.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달래듯이 코니시를 끌어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다정한 몸짓과는 달리 쿠조의 얼굴에는 일말의 웃음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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ℒ 7-1

도주

  

군고구마 판매 차는 길이 아닌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때때로 스루가는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뛰쳐 나가 길을 막고 있는 바위나 쓰러진 나무를 옆으로 치워 놓고 다시 느릿느릿 차를 몰았다.

"정말로 이 길밖에 없는 거야?" 땀을 닦는 스루가를 비웃는 것처럼 도로 옆에는 세 자리 숫자가 표시된 파란 표지판이, 수풀과 덩굴에 반쯤 파묻혔지만 포장조차 되지 않은 이 산길이 '국도'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건 국도가 아니라 '고행도'잖아." 중얼거리는 스루가에게 아랑곳 않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컴퓨터로 주변의 지방 경찰에 부정 접속을 하고 있었다. 화면 위의 GPS에는 주변 도로가 표시되었고 그 모든 길에 검문 정보가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국도 19호선, 21호선, 현도 65호선, 402호선, 모두 검문이 있습니다. 7킬로미터만 더 가면 이 길도 끝이에요. 조금만 더 힘 내 주세요, 자기."

"소름 돋으니까 '자기'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했잖아!"

닭살이 돋은 스루가가 조수석의 여자에게 외쳤다. 그 사람은 긴 머리 가발을 뒤집어 쓰고 립스틱을 칠해 여장을 한 L이었다. 마키는 타이거즈 모자를 뒤집어 쓰고 남자 아이로 변장하고 있었다. 가족인 척 해서 몇 번이나 검문을 벗어났던 것이다.

"수줍어하지 않아도 되는데."

L은 몹시 진지한 얼굴로 스루가를 바라보며 윙크했다. 스루가의 닭살이 단숨에 늘어났다. 마키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어쩐지 진짜 가족이 된 기분이야. 옛날에 아직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 이렇게 조그만 고물 차로 셋이서 드라이브 했었는데…."

"조그만 건 맞지만 고물 차는 아닙니다." L이 어른스럽지 않게 반론한다.

마키는 부모님과의 그리운 나날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지었다. 그대로 L의 어깨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렸지만 L은 굳어 있었다.

"저는 세계 제일의 명탐정을 자부하고 있습니다만 이럴 때에 어떻게 해 주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L의 손이 어색하게 마키의 머리로 다가가 어느 정도로 힘을 주면 될지 모르겠다는 듯 쓰다듬었다. 마키는 쓰다듬는다기보다는 도리어 마사지라도 하고 있는 듯한 L의 손길에 고개를 꺾이면서도 그대로 얌전히 있었다.

"류자키, 이런 속도로는 도저히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 없어. 게다가 FBI도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고."

"알고 있습니다. 두 시간만 더 기다려 주세요." "두 시간?"

"예, 제게 작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 때까지 힘 내세요, 자기."

의미심장하게 말한 L은 슥슥 립스틱을 새로 칠하고 다시 스루가에게 윙크했다.

 

풀벌레 소리가 주위를 채우고 있었다, L과 마키는 뒹굴거리며 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앞에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탁 트인 시야 안에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별,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별도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마키는 눈물을 닦으며 손이 닿을 것만 같이 가까운 밤 하늘로 두 손을 뻗었다.

"제 마음에는 '감동'이라는 불완전하고 수동적인 감정은 없을 텐데도 지금 이 별을 보고 감동하고 있는 저 자신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빛을 언제까지나 올려다 보았다.

"이봐, 류자키, 류자키는 키라를 붙잡을 수 있었어?"

"아뇨, 살인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째서?"

"키라는 죽어 버렸으니까요."

"그럼 류자키가 졌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졌다'는 말에 L은 저도 모르게 상반신을 일으키고서 마키를 바라보았지만, '지기 싫어하는구나' 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마키가 마주 보자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냐면 나쁜 사람인 채로 죽어 버렸잖아? 류자키의 역할은 키라에게 자신이 한 일이 나쁜 짓이라고 알려 주고서 붙잡는 거잖아. 둘 다 못했으니까 진 거지."

"그렇군요…. 졌습니다."

"전혀 못 써 먹겠군."

"전혀 못 써 먹습니다."

드물게도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한 L은 다시 드러누워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왼손이 오른손에 찬 시계를 지키려는 듯 감쌌다.

"류자키, 무슨 생각 해?"

"제 유일한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라면, 망가진 손목시계 주인?" "예."

마키의 손이 뭔가를 바라는 듯 L의 손에 겹쳤다. L은 한동안 어색하게 경직되어 있었지만 이윽고 머뭇머뭇 마키에게 물었다.

"마키 씨…. 이런 경우에는 저도 같이 손을 잡는 편이 나을까요?"

"류자키, 이럴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꼭 잡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L은 마키의 손을 꼭 쥐었다. 마키는 드러누운 채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정말로 류자키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그런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 차가 나는 사이 좋은 남매처럼 나란히 웃었다.

"이봐, 너희들, 별 같은 거나 보고 있지 말고 좀 도와라! 또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매진 스루가가 스패너를 휘두르며 고함을 질렸다. 산길 한 가운데서 차는 결국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지나치게 혹사시켰던 탓이다.

"슬슬 시간이 됐군요."

L은 기계적으로 일어나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키라 대책실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각국 수뇌용 핫라인. 그 뒤에는 L의 필체로 '미국 대통령'이라고 휘갈겨 적어 놓았다.

"대통령? L입니다."

마치 친구를 대하는 듯 편안하게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L은 들려 오는 목소리를 모조리 무시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통령께서는 제 협박을 진심으로 생각지 않는 모양입니다. 지금부터 10분 뒤, 저는 데스 노트를 써서 살인을 하겠습니다. 애리조나 주립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마피아 보스, 로드 로스입니다."

L은 그 말만을 일방적으로 하고서 전화를 끊은 뒤 데스 노트를 펼쳤다. 그러고는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연필 꽁무니 부분을 집어 들고서 그 이름을 적었다.

─로드 로스

7월 23일 22시 30분 심장마비─

"무슨 짓이야, 류자키? 너, 데스 노트는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

넋이 나가 있던 스루가가 심각한 얼굴로 돌아와 L에게 캐 물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데스 노트를 써도 된다면 처음부터 블루십 쪽 중심 멤버의 이름을 적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리 뜬금 없는 행동을 해도 L 나름대로 앞 일을 예측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스루가는 굳이 참견하지 않았고, 사실 그렇게 해서 잘 되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궁지에 몰린 L이 자포자기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노트를 덮은 L은 스루가의 질문을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스루가 씨, 앞으로 10분 남았습니다. 커피 좀 끓여 주시겠습니까?"

 

10분 뒤, 이미 '당도'라는 개념조차 짐작할 수 없게 된 상태의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린 L은 다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 어떠십니까? 제 진심을 이해해 주셨는지요?"

"애리조나 주립 형무소에 확인했다. 분명히 로드 로스는 방금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대통령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면 제 요구인 100억 달러에 대해 다시 검토해 주십시오.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호프, 전 세계를 향해 핵 폭탄을 발사한 뒤 사망'이라고 기입할 수도 있습니다. 차후 저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 있을 경우에도 대통령의 지시로 보고 곧바로 당신의 이름을 데스 노트에 적겠습니다."

"알겠네. 검토할 시간을 주게, L."

 

     

ℒ 7-2

여럿

  

대통령 집무실은 무거운 침묵으로 뒤덮여 있었다. 부대통령과 각료들이 초췌해져서 머리를 감싸 쥔 대통령을 둘러싸고 거북하다는 듯 얼굴을 마주 보았다. 부대통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억누른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L이 가진 데스 노트는 진짜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다음 L 살해 계획이 실패하면 분명히 대통령의 이름을 노트에 적을 겁니다. 역시 소형 전술핵을 쓸 수밖에 없어요. 확실한 살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호국인 일본이라고는 해도 핵을 쓰기에는…. 특히 그 나라의 국민은 핵에는 민감합니다. 국제 문제로 비화할 겁니다."

여성 국무장관은 아무래도 부정적이었다. 대통령은 생각에 잠겼을 때의 버릇대로 책상을 검지로 톡톡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만이 시간 경과를 가리키듯이 실내에 조그맣게 울렸다. 이윽고 소리가 멎고 대통령은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네. 전술 핵을 쓰도록 하지. 키라를 확실하게 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면 돼. 실제로 L은 데스 노트를 얻어 살인을 저지르고 새로운 키라가 되었다."

'새로운 키라'라는 말이 사람들의 결심을 뒷받침했다. 대통령이 육군 특수 부대의 핫라인 회선을 연결하려 했을 때, 다시 핫라인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다시 L에게서 연락이 왔어."

대통령은 혀를 차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L. 자네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통령, 저는 지금 대통령을 협박하고 있는 L과는 다른 L입니다."

"다른 L…, 무슨 소리인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린 대통령은 도움을 청하듯이 주위를 보았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각료들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대통령, L이라는 존재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에 의한 수사 조직이라는 사실을 설마 모르시지는 않을 테지요?"

"으…음."

얼굴 없는 탐정 L.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과 억측 및 가설이 있었다. 70년대에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사망했다고 여겨지는 명탐정 로이드 F.스코프가 세상을 속이고 다른 이름을 쓴다는 소문(만일 그가 현재 살아 있다면 100세를 넘었겠지만), 세계 3대 탐정 L, 에랄드 코일, 드느브 모두가 동일 인물이라는 소문…. 그리고 가장 신빙성이 높고 여러 첩보 기관이 '랭크 A'로 다루며 해명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은 바로 L이 개인이 아니라 'L'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명에 의한 수사 조직이라는 소문이었다. L의 이름이 이 세상에 나타난 뒤로 그(혹은 그녀)가 해결한 어려운 사건, 기괴한 사건은 헤아릴 수 없어 단일 수사 기관의 범인 검거 수를 가볍게 뛰어 넘고 있었다. 그것을 한 인물이 이루어 냈다고 보기에는 질적, 양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L 자신이 'L이 개인이냐 조직이냐'라는 점에 대해 확언한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대통령을 협박하고 있는 사람을 일단 L`라고 하겠습니다. L`는 데스 노트라는 궁극의 살인 병기를 손에 넣게 되자 우리들 'L'이라는 조직을 이탈해 반역의 봉화를 올렸던 것입니다."

기계 변환된 L의 차가운 목소리가 대통령 집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들은 배신한 L`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L이라는 존재를 모독하며 지금까지의 L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그의 처분은 우리들 L에게 맡겨 주십시오. L의 이름을 걸고 1주일 안에 모두 수습하겠습니다."

"알았네…. 생각할 시간을 주게."

전화를 끊고 다시 톡톡 책상을 두드리던 대통령은 모두를 둘러 보며 말했다.

"전술 핵은 중지다." "대통령?!"

"지금의 전화를 100퍼센트 신용하지는 않아. 하지만 어쨌든 L이 여럿이라는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이상, 지금 한 명의 L에게 손을 대면 이번에는 다른 L을 적으로 돌리게 되네."

부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 쪽에서 손을 대지 않는 한 L이 대통령의 이름을 적지도 않을 테고요. L의 요구에 대한 대답을 늦추면서 1주일 동안 기다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대통령은 FBI 장관에게 회선을 연결했다.

"지금 L을 뒤쫓고 있는 FBI에게 계획 변경을 지시해 주게. L 살해 계획은 중지, 앞으로는 L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감시를 계속 할 것. 또 L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처리하도록."

 

     

ℒ 7-3

비행

  

"그럼 다음 작전으로 들어갈까요."

자리에서 일어선 L은 컴퓨터에 일기 예보와 기압 정보를 표시하더니 차 뒤쪽에서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열 기구였다.

─역시 이것도 예상되어 있었다는 건가….

풍선이며 곤돌라까지 새카맣게 칠한 기구를 눈 앞에 둔 스루가는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것은 지하 공장에서 차를 개조하고 있을 때에 스루가의 앞으로 배달되어, 보낸 사람이나 내용물도 알지 못한 채 실어 둔 짐이었기 때문이다.

"날짜가 바뀔 무렵에 바람이 서향으로 변합니다. 오사카 근처까지 가능한 한 날아 가도록 하지요."

"과연, 이거라면 밤 중에 날아가면 전혀 모르겠군. 하늘에는 낙석도, 나무도 없으니까 편하겠어."

고개를 저으며 곤돌라에 올라 타려던 스루가를 L이 가로 막았다.

"스루가 씨, 이 기구는 2인용입니다." "나더러 남으라고?"

"예, 오사카에 도착한 뒤에도 이 차는 필요합니다. 수리해서 오사카까지 어떻게든 가져와 주세요. 다만 이 차도 검문 대상이 되어 있으니 군고구마 판매 차가 아닌 다른 차로 개조해 주십시오."

어둠 속에서 버너의 불꽃을 받아 까만 기구가 천천히 솟아 올라 부풀고 있었다.

"그런데 스루가 씨는 2급 선박 면허를 가지고 계셨지요."

"그래, 내 경력은 조사를 마쳤을 테니까 물을 필요도 없겠지. 뭐야, 기구 다음은 배냐?"

"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루가는 이번에는 뭘 시킬 작정이냐 하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물론 물어 보면 L은 대답해 주겠지만, 이 쯤 되니 스루가는 '미리 물어 보면 재미 없으니까'라는 생각마저 슬슬 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구가 밤 하늘에 둥실 떠오르자 L과 마키가 올라 탔다.

"그럼 류자키, 오사카에서 다시 만나자. 마키, 힘 내!"

"스루가 씨도 조심해!"

까만 기구는 금세 상승해 이윽고 밤의 어둠에 섞여 들었다. 기구는 고도를 높여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발 아래에는 여러 마을의 불빛이 펼쳐져 있었다.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로등과 깜빡이와 신호, 그리고 집집마다 켜진 불빛…. 침묵하여 말이 없는 불빛이었지만 마키는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들이 결정이 되어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름답다, 류자키."

그 아름다운 빛과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생명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마키는 눈물 지었다. L은 이제 망설이지 않고 마키의 손을 꼭 움켜 쥐었다.

"이 조그만 빛 하나 하나에 사람의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망가뜨리려고 하면 제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