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9

 

 

　저녁의 어스름한 어둠이 완전히 어둠으로 바뀌기 전에, 시미즈 히로노(여자 10번)는 숨어 있던 수풀 속에서 서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온 몸에 열이 나, 마치 뜨거운 사막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 

　물이 필요했다. 

　미나미 가오리가 쏜 총에 맞은 상처는 왼쪽 팔 윗부분이었다. 피에 젖은 세일러복 소매를 찢어 확인했더니, 총알은 히로노의 팔을 완전히 관통해 버린 상태였다. 특히 총알이 빠져나간 쪽의 피부가 크게 찢어져 있었고, 굵은 혈관이 드러나 보였다. 찢은 세일러복 소매를 붕대 대신 감자, 출혈은 얼마 뒤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점점 열이 나더니,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오후 6시에 나온 사카모치의 방송을 들을 무렵에는, 히로노는 가지고 있는 물을 모두 마신 다음이었다. 가오리를 쓰러뜨린 뒤, 나나하라 슈야를 뒤로 하고 도망쳐, 200미터 정도 달려, 수풀 속에 숨었다. 그 때 상처를 닦아내려고 물을 많이 써버린 것이다(너무 후회스럽다).

　그로부터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한동안은 세일러복 아래로 땀이 많이 났지만, 지금은 땀도 나지 않는다. 거의 탈수 증세인 것 같았다. 사실 히로노는 나카가와 노리코와는 달리 진짜 패혈증을 보이고 있었고, 상처를 소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히로노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물이 필요했다. 

　숲으로 뒤덮인 산기슭을 나름대로 기를 쓰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는 히로노의 머릿속에는 미나미 가오리의 대한 증오가 들끓고 있었다. 온몸을 휩싸고 있는 열과 갈증이 증오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시미즈 히로노는 이 게임에서 누구 한 사람도 믿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녀는 소마 미츠코와 친하게 지내 왔고, 출석 번호로 따지면, 여자로는 미츠코 바로 앞이었다. 따라서 출발할 때 사이에 끼어 있는 스기무라 히로키만 보내면 미츠코와 합류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미츠코가 얼마나 무서운 애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른 학교의 불량 여학생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그 리더 격인 여자애(그 나이에 폭력단 멤버의 정부였다)가 차에 치어 중상을 입었다. 거의 죽을 뻔한 부상이었다고 한다. 미츠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미츠코가 아는 남자를 시켜서 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츠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남자는 얼마든지 있다. 

　만약에 합류했다고 하더라도, 아마 미츠코는 자기를 실컷 이용한 뒤에, 마지막에는 가차 없이 뒤에서 쏠 것이다. 같은 그룹이라도 약간 어수룩한 야하기 요시미라면 미츠코를 믿었을지 모르지만(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미 죽었다. 왠지 히로노는 미츠코가 한 짓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껴졌다.)그러나 히로노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같은 반의 다른 애들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착한 표정을 짓고 다니던 녀석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짓밟는 법이다. 기껏해야 15년을 살아왔지만, 히로노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 아이들을 죽이고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다. 매춘을 하기도 하고, 마약을 하기도 하고, 정나미가 떨어진 부모와 매번 다투면서도, 그래도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 살인이란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게임에서는 살인을 허락하고 있고, 아무런 범죄도 되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나쁜 짓을 해 왔는지는 몰라도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한 짓들이었다. 매춘을 하기는 했지만, 얌전을 빼면서도 몰래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애들에 비하면(텐도 마유미가 그런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소마 미츠코의 소개로 프로 조직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떳떳했다. 

　마약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거야 개인의 자유 아닌가?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물건을 슬쩍 했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대자본이 경영하는데? 그리고 이지메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이지메를 당하는 애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학교 애들과의 싸움, 그거야말로 서로 다칠 것을 각오하고 하는 거다. 초짜가 아니니까. 어쨌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할 여자애는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다만,

　다만? 

　정당방위라면 별개의 문제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가 이 게임에서 살아남으면, 집에 돌아가 샴페인이라도 마셔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시간 제한에 걸려 자기가 죽게 된다고 하면? 그녀는 그 점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래서 그녀는 내내, 미나미 가오리와 총격전을 벌인 그 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거기 눌러앉아, 이따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자기가 있는 본채 건너편 창고 안에 사람 그림자가 살짝 엿보여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두려움과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분 가량 망설인 끝에, 그녀는 자기가 집을 나가기로 했다(하긴 가출은 특기니까).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다고 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뒷문이 없었기 때문에 창고와 마주보는 제일 가장자리 창을 살짝 타고 넘었다. 

　그 때, 바로 그 때 가오리가 창고 입구에서 밖을 내다보듯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갑자기 총을 쏘았다.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가오리가 쏜 총알은 히로노의 팔에 맞았고, 히로노는 창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도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고, 지급받은 총을 꺼내들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한쪽 끄트머리, 벽에 달라붙어 움직이기 어렵게 되어 있을 때, 나나하라 슈야가 나타난 것이다. 

 

　저 내숭스러운 계집애. 평소에는 아이돌 그룹에 꺄악꺄악 소리나 지르던 것이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 들다니, 여하튼 가오리를 처치할 수는 있었지만(정당방위다, 이건. 배심원 평결 12대 0임이 분명하다)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라면 나도 가차 없이 해치워야 할 것이다, 아마. 

　그러고 나서 히로노는 나나하라 슈야를 생각했다. 적어도 나나하라 슈야는 자기에게 총을 겨누지는 않았다(그래서 여유를 갖고 가오리를 쏠 수가 있었다). 나카가와 노리코와 함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나하라 슈야와 나카가와 노리코? 그 두 사람은 사귀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둘이 도망치려는 걸까? 히로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심하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니, 그건 위험한 짓이다. 그룹 같은 걸 만들었다가, 뒤에서 누가 쏘면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도망친다는 건 도저히 무리다. 나카가와 노리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만약에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머지않아 나나하라 슈야는 나카가와 노리코를 죽일 것이다. 어쩌면 나카가와 노리코가 나나하라 슈야를 죽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누가 남건 그 때는 또 그 사람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물이 필요하다. 

　어느새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 있었다. 서쪽 하늘에 어슴푸레 남아 있던 햇빛이 이제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안에서 게임이 시작된 어제 새벽과 마찬가지로 둥근 달만이 기분 나쁘게 빛을 쏟아 내며, 히로노가 있는 이 섬을 푸르게 비추고 있다. 미나미 가오리를 쓰러뜨린 리볼버 콜드 하이웨이 패트롤 맨 38구경을 움켜쥔 채로 히로노는 수풀 사이를 재빨리 움직였다. 

　고개를 낮추고, 숨을 죽였다. 수풀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좁은 밭 건너편에 집이 한 채 덩그렇게 서 있었다. 히로노가 있는 위치에서 북쪽 산 쪽으로, 집 건너편에는 낮은 언덕이 서 있다. 왼쪽을 둘러보니 밭이 몇 개 있고, 그 너머로 또 집 두 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는 남쪽 산의 봉우리가 보였다. 지도로 보면 그 산 바로 앞에는,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비교적 넓은 도로가 한 줄기 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 위치로 미루어 보면, 어쩌면 히로노가 있는 곳은 이미 섬의 서쪽 해안에 가까운 곳인 것 같았다. 이동하기 전에 확인한 대로, 금지 구역이 근처에 있을 염려는 없었다. 

 

　히로노는 목이 타는 것을 참으면서, 잠시 바로 옆에 있는 집을 관찰했다. 주위는 매우 조용했다. 자세를 낮춘 채로 밭을 가로질렀다. 집은 밭보다 약간 높게 북돋운 땅에 서 있었다. 히로노는 밭 끄트머리에서 멈추더니, 일단 뒤를 돌아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집 쪽을 관찰했다. 아무 이상도 없었다. 낡은 1층짜리 농가였다. 다만 히로노가 먼저 숨어 있던 집과는 달리, 지붕이 기와로 되었다. 히로노가 있는 밭의 왼쪽에 비포장 도로가 나 있었고, 집 앞에 경트럭 한 대가 서 있다. 원동기와 자전거도 한 대씩 보였다. 히로노가 처음 숨어 있었던 집은 수도가 없었다. 아마 여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히로노는 좌우로 둘러보았다. 그것은 오른쪽, 비포장 도로 쪽에서 보면 집이 있는 방향의 제일 안쪽에 있었다. 

 

　우물이다. 두레박을 매단 기둥이 서 있다. 주위에 몇 그루인가, 이파리를 잔뜩 단 밀감 나누 같은 것이 서 있었지만, 나무 아래쪽에는 가지가 없었기 때문에 누가 거기 숨어 있을 염려는 없었다.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총을 일단 스커트 앞쪽에 꽂아 넣고, 히로노는 달빛 아래서 밭의 흙을 더듬었다. 손에 쥘만한 크기의 돌을 하나 찾았다. 

　위를 향해 던졌다. 방사선을 그리며, 돌은 지붕 위에 떨어져 "딱" 하고 꽤 큰소리를 냈다. 떼굴떼굴하며 기와의 골을 따라 굴러 떨어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툭" 하는 둔한 소리가 났다. 

 

　히로노는 총을 쥐고 잠시 기다렸다. 시계 바늘을 보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

　5분이 지났다. 집 창문이나 현관으로도 누가 얼굴을 내미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히로노는 밭에서 잽싸게 뛰어올라 우물 쪽으로 달렸다. 갈증과 열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우물은 높이 80센티미터 정도의 콘크리트 원통 모양이었다. 히로노는 총을 쥔 채로 오른손을그 가장자리에 얹었다. 

　6, 7미터 정도 아래, 달빛을 담은 작은 원이 보였다. 그 원 안에 자기 그림자가 실루엣으로 비치고 있었다. 물이 있다. 아아, 마른 우물이 아니었다. 히로노는 리볼버를 다시 스커트 앞쪽을 찔러 넣고, 부상당한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데이 팩을 오른손으로 내려놓았다. 두레박이 걸린 기둥, 가로로 놓여진 나무에 매달려 우물 안으로 늘어져 있는 낡은 로프를 잡았다. 로프를 당기자, 수면에 작은 양동이가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히로노는 필사적으로 로프를 끌어당겼다. 두레박이 걸린 나무에는 아주 낡은 도르래가 붙어 있었고, 양쪽에 달린 두 개의 양동이가 교대로 물을 퍼 올리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왼손이 거의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끌어올릴 때마다 우물 가장자리의 콘크리트에 로프를 무릎으로 눌러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간신히 끌어 올렸다. 

 

　드디어 양동이가 거의 다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무릎으로 로프를 누르면서 양동이의 손잡이를 잡고 우물 테두리에 올려놓았다. 물이다. 찰랑찰랑하는 물이 가득 들어 있다. 지금은 먹어도 좋은 물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몸은 무조건 물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히로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윽, 하는 신음소리룰 냈다. 

　손가락 끄트머리 크기 정도의 개구리가 물 안에 있었다. 달빛을 반사하며, 그 기분 나쁘게 작은 눈과 등이(낮에 본다면 그건 아마 징그러운 형광빛을 띤 녹색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저분한 흙빛이거나.) 번들거리는 빛을 내고 있었다. 히로노가 가장 싫어하는 생물의, 그 특유의 피부 느낌이 눈에 들어오자 등줄기가 푸르르 떨렸다. 그렇지만 히로노는 기분 나쁜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또 다시 물을 길어올릴 힘이 없었다. 갈증은 이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해져 있었다. 어떻게든 이 개구리를 쫓아내야 한다. 

 

　순간, 양동이 가장자리로 기어오르던 개구리가 펄쩍 뛰어, 히로노 쪽으로 튀어 올라왔다. 히로노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아무리 생사가 걸린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것이다. 덕분에 개구리는 피할 수 있었지만 오른손은 양동이를 놓치고 있었다. 양동이는 그만 우물 안으로 떨어져 있었다. 첨벙, 하는 소리가 울리고, 그리고 끝이었다. 

 

　히로노는 신음소리를 내며, 개구리가 튄 방향을 바라보았다. 죽여 버리고 말겠어, 죽여 버릴 테야, 죽여! 

　그런데 히로노의 시야에 뜻밖의 것이 들어왔다. 겨우 4, 5미터 앞에 교복 차림의 검은 그림자가 우뚝 서 있었다. 히로노는 집 쪽을 등 지고 있었는데, 그 그림자 너머로 부엌문 같은 것이 열려 있었다. 그림자의 멈추어 선 모습 때문에 히로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귀신이 나타났을 때는 움직이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무의식적으로 떠올랐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 야위고 키 작은-그야말로 왠지 개구리 생각이 들게 하는 못생긴 얼굴의 사내 아이 오다 도시노리(남자 4번)가 양손에 가느다란 리본 같은 것을 쥐고 있는 것이었다. 히로노는 바로, 그것이 벨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다 도시노리는 시로이와의 고급 주택가에 사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다. 평소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내아이였다. 아마 바이올린이 특기이고(현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점잖은 척 하는 얌전한 애였다. 그런 녀석이─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비디오 영상의 일시 정지가 풀린 듯이, 도시노리가 후다닥 움직여,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벨트를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큼직한 버클이 달빛에 반사되었다. 저런 것에 맞으면 살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거리는 겨우 4미터─

 

　충분했다. 

　히로노는 오른손으로 앞으로 가져가, 리볼버를 잡았다. 이젠 완전히 손에 익은 그립의 촉감이 느껴졌다. 도시노리는 이미 바로 눈 앞에 와 있었다. 쏘았다. 이번에는 세 발을 연속해서 쏘았다. 세 발 모두가 도시노리의 배에 명중하면서, 그의 옷이 터지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도시노리의 몸은 빙글 바 바퀴 돌더니, 엎어지듯 쓰러졌다. 흙먼지가 약간 일어났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히로노는 리볼버를 다시 스커트 앞쪽에 꽂았다. 달구어진 총신이 배에 닿자 뜨금하고 아팠지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물이 필요했다. 

 

　자기 데이 팩을 집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을 등지고 있었던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이제 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도시노리가 가지고 있던 물이 있을 것이다. 정부가 지급해 준 플래시를 꺼낼까 하고 망설였는데, 도시노리의 데이 팩은 문 바로 안쪽에 있었다. 히로노는 쭈구르고 앉아 오른손만 써서 간신히 지퍼를 열었다.

　물병이 있었다. 하나는 아직 뚜껑도 따지도 않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쯤 남아 있다. 다행이었다. 히로노는 무릎을 꿇고, 반쯤 남아있는 물병의 마개를 열어 정신없이 입을 대고 물병을 기울였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남자와, 게다가 이미 죽은 남자와 간접 키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런 건 아득히 먼, 어딘가 적도 아래라거나, 깃발에 눈이 쌓인 극점에서나 할 이야기다. 아니면 달 위에서라거나. 여기는 암스트롱. 이 걸음은 내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맛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물은 마셔 본 적이 없었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위로 내려감에 따라, 마치 빙수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꿀맛이었다. 단숨에 그 병을 비우고, 숨을 돌렸다. 갑자기 뭔가가 목을 휙 감았다. 바로 그, 학급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채워진 목걸이 바로 윗부분에. 쿨럭, 하고 기침을 하자, 입안에 남아 있던 물이,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히로노는 목을 파고 들어오고 있는 것을,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잡아 떼려고 허우적거리면서 고개를 꼬았다. 자기 얼굴 바로 오른쪽에, 일그러진 표정의 남자 얼굴이 있었다. 오다 도시노리, 조금 전에 죽은 남자애의 얼굴이! 

 

　목이 점점 조여 왔다. 자기 목을 감고 있는 것이 조금 전에 도시노리가 손에 들고 있던 벨트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몇 초가 걸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이 녀석이? 집 안쪽의 어둠을 보고 있는 시야가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벨트를 풀어내려고 하는 히로노의 오른손 손가락에서 손톱이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 총을─

　히로노는 스커트 앞쪽에 꽂아 놓은 총으로 손을 뻗었다. 그 팔이 고급스러운 구두를 신은 발에 차였다. 뿌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히로노의 오른손은 왼손에 이어 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 벨트가 느슨해졌지만 이내 다시 조여 왔다. 히로노는 이제 벨트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저 꺾인 오른팔이 이상하게 덜렁거릴 뿐이었다. 그것도 십여 초 동안이나 그랬다. 팔이 축 늘어졌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히로노는 치구사 다카코나 소마 미츠코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예쁜 여자애였고, 그것도 중학생이라기보다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어른스러운 매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얼굴은 피멍이 들어 부풀어 올랐고, 평소의 곱절 정도로 팽창한 혀가 입술 사이로 삐어져 나와 있었다. 그래도 오다 도시노리는 더 집요하게 히로노의 목을 조였다(물론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는 않았지만).

　5분 남짓 지나자, 도시노리는 드디어 벨트를 히로노의 목에서 풀었다.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는 히로노의 몸이 앞으로 털썩 고꾸라지더니, 마루 앞쪽에 쓰러졌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히로노의 얼굴 어딘가의 뼈가 부러진 것인지도 몰랐다. 펑크 스타일의 위로 치켜 올린 머리카락은 이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어둠 속에 묻혀, 세일러복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와 소매가 뜯어진 왼팔만이 새하얗게 떠올랐다. 

 

　오다 도시노리는 잠시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 있었다. 아직 배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다. 정말이지, 데이팩을 열고 주름잡힌 회색 빛의 이상한 조끼가 나왔을 때는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성능은 딸려 있던 사용 설명서대로였다. 대단한 것이었다. 방탄조끼라는 것은. 

 

【남은 인원 20명】

 

 

 

 

　이미 주위는 캄캄했지만, 꽉 찬 보름달 덕분에 북쪽 산기슭, 약간 높은 언덕으로 되어 있는 그곳에서는 바다가 멀리 내다 보였다. 검게 가라 앉은 바다 위에 세토나이의 섬들이 떠 있었지만, 정부의 항해 제한 때문인지, 가까운 곳을 지나는 배의 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감시선'도 이미 불을 끄고 정박해 있는지, 그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보았던 풍경이다. 다만 지난번에는 더 낮은 위치에서. 그랬다. 그 분교에서 나왔을 때, 하긴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아니지만. 

 

　「좋아, 여기다.」 

　신지가 말하면서 총을 벨트에 꽂고, 앞에 있는 바위로 기어오르더니 유타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로 올라갔다가, 거기서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갑자기 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긴장감도 더해, 유타카는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신지의 손을 잡고 간신히 그 바위를 기어 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엎드려서 바위 건너편 쪽을 내려다보았다. 눈 아래로 거뭇거뭇한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리고 그 너머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사카모치가 있는 그 분교였다. 

 

　빛이 거의 새어나오지 않는 것은 창에 철판을 쳐 놓았기 때문이다. 거리는 약 100미터 남짓. 물론 그 분교가 있는 G=7구역은 이미󰡒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거기 들어가면 바로 죽지만, 여유는 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지도와 자석을 이용하여, 크로스 베어링 수법을 써서, 신지는 거의 완벽하게 그 구역의 범위를 계산해 냈다. 분교는 어느 쪽이냐 하면, 그 G=7구역 안에서도 지금 신지 일행이 있는 F=7구역과의 경계선에 가까운 쪽에 있었고, 지도로 따지면 경계선으로부터 최단거리는 약 80미터. 그리고 6시 방송 때 통보된 추가 금지 구역에도 F=7과 H=7구역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6시 방송에서, 즈키오카 쇼가 그 금지 구역에 걸렸다고 사카모치가 말했었다. 징그러운 오카마였다(「신지, 나하고 데이트 하지 않을래?」). 남을 걱정할 때는 아니지만, 아마 폭탄에 목이 날아가 죽었을 즈키오카 쇼를 생각하면 약간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서 걸린 것일까? 

　그리고 치구사 다카코가 죽은 것도 신지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적어도 학급에서 가장 예쁜 여자애였고(아, 내가 좋아하는 타입인데), 그리고 그보다도 다카코는 스기무라 히로키의 소꿉친구였던 것이다. B반의 다른 애들은 대부분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히로키가 다카코와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 이야기는 히로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히로키에게는 틀림없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히로키, 어디 있는 거냐? 너. 

 

　그러나 신지는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아래 있는 분교와, 그 분교를 둘러싼 지형을 자세히 관찰했다. 여기서 저 분교 너머, 건너면 구역까지 로프를 쳐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두 구역의 간격은 역시 상당한 거리였다. 철판을 붙인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가느다란 빛을 보면서, 신지는 생각했다. 제길, 사카모치 일당은 저기 있는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니, 의외로 느긋하게 야키우동 같은 거라도(왜 야키우동이냐 하면, 그것은 숙부가 혼자 사는 좁은 셋집에서 신지에게 몇 번인가 해 준 이후 신지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으며, 지금도 먹고 싶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만)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 같은 자식들. 

 

　이미 필요한 것들은 모두 손에 넣었다. 지도 위에 표시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확인해 보니, 그것은 민가 취급을 해서 파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신지와 유타카는 분교 약간 남쪽,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 근처에서 '농협'을 발견했다. 

　벽과 지붕을 슬레이트로 만든 건물 입구에 '다카마츠 북부 농협 오키 섬 출장소'라고 적힌 그것은 (여기가 다다마츠 시 앞바다에 떠 있는 오키 섬이라고 하는 것을 신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타카는 아하, 하며 감탄했다.) 보통 머릿속에 그릴수 있는 농협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무실 하나, 현금 자동 인출기 하나 없었다. 그냥 창고 같은 그 건물 안에는 트랙터라거나 콤바인, 탈곡기 같은 것이 뒹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쪽 구석을 정돈하여 사무용 책상을 놓아 두었는데, 어쨌든 거기서 초산 암모니아를 쉽게 찾아냈다. 다행스럽게도 거의 새 것이었다. 그리고 차에서 모을 필요도 없이, 연료통에 가득 들어있는 가솔린까지 있었다. 도르래도, 그 농협 약간 동쪽에 있는, 신지가 게임 시작 직후에 매킨토시 파워 북을 손에 넣었던 집 옆의 우물에서 발견했다.

　초산 암모니아와 함께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로프였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G=7구역을 가로질러 로프를 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0미터 이상이 필요하다. 게다가 작전 결행 직전까지는 사카모치 일당에게 들키지 않도록 로프를 느슨하게 해 놓아야만 하기 때문에 사실은 더 길수록 좋다. 그런 정도 길이의 로프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농협 출장소에도 로프는 있었다. 그렇지만 기껏해야 200미터도 되지 않았고, 게다가 그것은 비닐하우스 같은 데나 쓰는 것인지 직경이 3밀리미터도 되지 않아, 강도에 약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이미 마을과 함께 금지 구역에 들어가 버린 부두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개인용인 듯한 어구 창고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어업용이어서 약간 바닷불에 절어 풍화된 로프였지만, 그래도 300미터 이상이 되니 상당한 무게와 양이었다. 신지와 유타카는 그것을 나누어 힘겹게 운반해 농협에 숨겨 두었다. 그리고 그런 재료들은 모두 거기 남겨 둔 채 이리 온 것이다. 

 

　신지는 어둠 속에서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 신지 일행이 있는 북쪽 산기슭은 분교의 이쪽, 즉 북쪽과 오른쪽, 즉 서쪽을 둘러싸는 형태로 펼쳐져 있다. 분교의 왼쪽, 동쪽에는 숲이 펼쳐져 있고, 거기서 시작된 숲은 부락의 북쪽, 해안 쪽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분교 건너편쪽은 밭이었다. 군데군데 나무가 있고, 그 사이에 주택도 몇 채인가 보였다. 그 너머로는 신지 일행이 도구를 모두 숨겨 놓은 농협 건물도, 어슴푸레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바로 왼쪽에는 듬성듬성 지붕이 이어지기 시작하여, 금지 구역 라인을 넘어 부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타카가 어깨를 두드려, 신지는 오른쪽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유타카가 학생 수첩을 주머니에서 꺼내 백지 메모란에 뭔가 쓰기 시작했다. 

 

　그랬다. 움직이기 전에 어쨌든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도록 글로 써서 다짐을 박아 두었다. 하긴 신지가 아직도 뭔가 '좋지 않은 짓'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사카모치가 알면, 이번에는 가차 없이 원격 조작으로 신지와 유타카의 목걸이를 날려 버리려 할 것이 뻔했다. 사카모치가 왜 바로 신지와 유타카의 목걸이를 날려 버리지 않았는지 그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 이 게임의 성격이 '가능한 한 학생들이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지에게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즉, 정부의 높은 관리들이 이 게임을 두고 '내기'를 한다는 소문. 아마, 만약에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유타카는 몰라도 이 시로이와 중학교 농구부의 천재 가드인 '더 서드 맨' 미무라 신지는 손꼽히는 우승 후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카모치는 자기를 쉽사리 죽일 수가 없다고 추측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출발 전에 죽은 구니노부 요시토키나 후지요시 후미요는 그런 내기와 거의 관계가 없었다. 아니, 확실하게 이야기하며 그 애들에게 걸 놈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사카모치가(제길, 그 사카모쵸 긴파티) 이 게임 진행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언제 목걸이가 터지더라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어떻게든 그 분교에 폭탄을 터뜨릴 때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신지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생사여탈권을 누군가가 쥐고 있다는 것은 숙부의 가르침에 따라 무슨 일이나 스스로 조절해 온 신지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신지는 분교의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신지.'

　숙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가령 가능성이 1퍼센트도 안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유타카가 글을 다 썼는지, 다시 어깨를 두드려, 신지는 그 글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워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로프를 어떻게 치지? 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무서운 로프를 저 건너편까지 던진다는 건 무리야. 그리고 로프는 두고 왔잖아. 어떻게 할 거야?'

　그렇다. 그 문제에 대한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로프웨이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모으려고 신경을 쓰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신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가지도 연필을 쥐고 그 학생 수첩의 메모란에 썼다. 

　"실은 갖고 왔어. 그걸 저기까지 치고, 건너편에서 거기에 로프를 연결하는 거야. 나중에 다시 한 번 이리 와서 실을 잡아당겨 로프를 끌어 당기는 거지. 작전 실행 직전에."

　유타카에게 건네주었다. 유타카는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이해가 되었는지, 신지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썼다.

　"돌이나 뭐에 묶어서 실을 던지는 거로구나."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유타카는 그럼? 하고 묻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글을 썼다.

　"화살 같은 거라도 만드는 거야? 거기 실을 묶어서 쏘게?"

　신지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수첩을 들고 연필을 놀렸다. 

 

　"그것도 괜찮을지 모르지. 어쨌든 나도 야구공이라고 하더라도 300미터나 되는 거리를 던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빗나가서 분교에 돌이나 화살 같은 게 맞아 봐. 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자칫 어디 걸려서 다시 하려고 잡아당기다 실이 끊어지면 더 이상 실을 구할 수가 없어. 더 확실한 방법을 써야지."

　이번에는 연필을 쥐지 않고, 유타카는 "그냥?" 이라고 하듯이 신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지는 또 수첩을 끌어당겨, 계속 썼다. 

　"이쪽에서 어떻게 해서든 실을 저 나무에 묶고, 우리는 실의 한쪽 끝을 쥐고 산을 내려가는 거야. 팽팽하게 똑바로 당기는 작업은 저쪽에 도착해서 해도 돼."

　유타카는 그걸 읽고, 이번에는 바로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며 서둘러 '불가능해.' 라고 썼다.

　"중간에 분명히 나무에 걸릴 거야."

　그러자 신지는 씨익 웃었다. 

 

　그렇다. 유타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 모른다. 하긴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신지와 유타카가 온 코스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으니까. 분교가 있는 G=7 구역을 피해 실을 깔고, 나중에 실을 잡아당기더라도 실은 그 나무에 걸려, 분교를 피해 큰 커브를 그릴 뿐일 것이다. 약간 괴상한 옥외 현대미술. 작품 자체는 거대한 것이지만, 5미터만 떨어지면 아예 전체 모습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묘한 밸런스가─특히 나무가 잔뜩 있는 것은 G=7구역도 마찬가지라 분교 바로 옆까지 계속되고 있다. 키가 100미터쯤 되는 거인이라면 몰라도(그러고 보니 신지가 숙부 집에서 본 영웅이 나오는 옛날 특수촬영 비디오에는 그런 거인이 있었다. 지구를 지키며 괴수와 싸우면서 도시를 저벅저벅 밟아버리는 녀석. 요새는 그런 비디오를 볼 수가 없다), 나무를 전부 베어내지 않는 한 실을 아무 문제없이 분교 가까이까지 이동시키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타카가 로프를 어떻게 던질 것인가(그렇지만 무리다), 라고 물어본 것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신지는 우아하게(그렇지만 엎드려 있기 때문에 효과는 별로였지만) 두 팔을 펼쳐 보이고 나서 글씨를 썼다.

　"애드벌룬 같은 거라도 올려야지, 유타카."

　유타카는 그 글을 읽고 다시 눈썹을 찡그렸지만, 신지는 손을 저으며 유타카에게 내려가자는 표시를 하고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바위 아래 걸터앉아, 데이 팩 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더니, 땅바닥에 늘어놓았다. 살충제 크기 정도의 봄베통이 하나, 100미터 정도 되는 가느다란 연실 몇 개(이것들은 모두 농협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비닐 테이프, 그리고 검은 가정용 쓰레기 봉투였다. 신지는 그 봄베통을 불쑥 유타카에게 보여주었다. 그 통에는 '보이스 콘버터'라고, 붉고 요란한 글자로 쓰여 있었고(바로 아래 "이제 파티의 주인공은 당신!" 이라는 문구. 아아, 그렇다) 그 아래, 신지는 알 수 있었는데, 미국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를 흉내 낸 오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봄베 위에는 피리의 입을 대고 부는 부분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사실은 말이야." 신지가 썼다. 

　"내가 이 작전을 펼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걸 파워 북을 찾아 낸 집에서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이게 뭔지 알지?"

　그랬다. 신지는 도르래를 입수하기 전에 이웃집에 들어가 이 봄베를 가져왔던 것이다. 유타카는 목에 손을 대고, 약간 입을 벌렸다.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꽥꽥거리는 오리 같은 소리가 나게 하는 공기야. 어쨌든 내용물은 헬륨 가스지. 게다가 이건 제조 중지가 된 불량품이야. 가스가 엄청 많이 들어 있어."

　유타카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신지는 실제로 보여 주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봉투 꾸러미를 뜯어, 한 장을 꺼냈다. 한쪽을 벌리고, 봄베 끝의 입을 대고 부는 곳 같은 부분(실제로는 공기가 나오는 곳이다.)을 집어넣은 다음, 비닐 테이프로 고정했다. 봉투는 완전히 밀폐되었다. 그리고 봄베의 스위치를 올리자, 봉투는 바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스위치를 계속 누르면서, 사실은 콘돔이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라고 신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부풀어 오르게 하더라도, 좀 작을 것이다. 뭐? 지금 갖고 있느냐고? 아니, 이건 원래 수학여행이었잖아. 여행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뭐? 갈아입을 옷을 버렸는데 아직도 갖고 있느냐고? 어쨌든 그건 갖고 있어. 어디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어. 가스를 가득 집어넣고 나서, 신지는 봄베에 붙어 있는 그 바로 위를 꼬고, 비닐 테이프를 붙였다. 연실을 한 바퀴 감아주고, 그 실의 끄트머리를 매듭을 지어 묶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의 테이프를 벗기고 봄베에서 떼어냈다. 만약을 위해 봉투 끄트머리를 접어 다시 한 번 테이프를 감았다. 

　신지는 봉투에서 손을 뗐다. 둥실, 그 쓰레기 봉투가 떠올랐다. 실패에서 실이 팽팽하게 위로 뻗어 올라, 실패를 들어올릴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거기서 멈추었다. 신지와 유타카의 눈높이 정도에서. 

 

　「어때?」 

　신지는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유타카는 이미 작업 도중에 눈치를 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신지는 이번에는 다른 실패에서 풀어낸 연실을 풍선 아래쪽에 붙여 있는 실에 묶었다. 만약을 위해 비닐 테이프를 단단하게 붙였다. 그리고 풍선에서 늘어뜨려진 두 가닥의 실을 두 손에 쥐더니, 걷는 사람의 다리처럼 움직여 보였다. 그리고는 근처에 서 있는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시 실을 움직였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거인의 다리이다. 시가지를 짓밟기에는 너무 빈약한, 지금은 아직 나보다 약간 짧은 정도지만. 

　유타카는 이제 완전히 이해했는지, 크게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만 움직였다. "대단해, 신지." 라고 하는 듯했다. 아니면 "끝내주는구나, 신지." 라고 한 건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어도 관계 없지만. 신지는 다시 수첩을 손에 들고 썼다.

　"풍선을 한두 개 더 만들어 붙이는 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실을 어느정도 끌어올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어. 그리고 바람 문제도 있고. 그렇지만, 어쨌든 해보자구."

　유타카가 그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봉투이기 때문에, 달빛의 방향을 감안하더라도 사카모치 일당에게 들킬 염려는 없다. 현재로는 바람도 그다지 세게 부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일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자, 서두를까?」 

　신지는 유타카에게 첫 번째 풍선을 들고 있으라고 손짓을 하고, 쓰레기 봉투를 또 한 장 꺼냈다. 

 

【남은 인원 20명】

 

 

　오후 10시가 지나서, 가와다가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침대에 누워 있던 노리코 곁에 내내 붙어 있던 슈야는 캄캄한 방 안을 더듬거리며 옆의 대기실로 나갔다. 

　「커피를 끓여 줄게.」 

　가와다는 슈야의 얼굴을 보자,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갔다. 밤눈이 상당히 밝은 모양이었다. 

 

　「저어…. 가와다에게 부탁해 줘. 물을 끓일 거라면 컵 한 잔 정도라도 괜찮으니까 좀 더 끓여 달라고.」

　창문의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 속에서 노리코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양쪽 허벅지 옆으로 손을 넣어 팔을 마주 잡았다. 약간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옆으로 향했다.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뭐하게?」 

　슈야가 묻자, 노리코는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저어… 땀이 나서 몸 좀 씻으려고….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인가?」 

　슈야는 「아, 그래.」 라고 하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이야기하고 올게.」 

 

　방을 나섰다. 

　가와다는 캄캄한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냄비 아래 넣은 탄불과 가와다가 물고 있던 담배 끝이 무리와 떨어져 있는 이상한 종류의 반딧불 한 마리처럼 쌍을 이루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가와다.」 

　슈야가 말을 걸었다. 가와다가 돌아보자 담뱃불의 위치가 이동했다. 잔상이 슈야의 눈에 한줄기 붉은 라인을 그리더니 바로 사라졌다. 

　「노리코가 물을 좀 더 끓여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던데.」 

　슈야가 말을 계속 했다. 

　「노리코가 컵 한 잔 정도라도 좋다고.」 

　「하하.」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가와다가 가로막았다. 담배를 입에서 떼고, 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가와다가 웃는 것이 보였다. 

　「괜찮아. 컵 한 잔이건, 세면기 가득이건.」 

　몸을 움직이더니 바닥에 놓아두었던 양동이에서 그릇으로 물을 퍼, 냄비 안에 넣었다. 꼭 다섯 번을 떠 담았다. 어쩌면 냄비 안의 물은 탄의 불길을 낮추고 계속 보온을 하고 있었던 듯이, 조금씩 김이 오르고 있는 것이 슈야의 피부에 느껴졌다. 가와다는 그러면서 「역시 여자로군.」 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가와다는 슈야만큼 둔감하지 않기 때문에 노리코가 왜 더운 물이 필요하다고 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슈야가 아무 말도 않고 있자, 가와다가 보기 드물게 스스로 말을 이었다. 

　「너하고 있어서 그래.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거야.」 

　가와다가 연기를 내뿜었다. 슈야는 잠시 침묵한 뒤, 「뭐 도울 일은 없니?」 라고 물었다. 

　「아니.」 

　가와다가 고개를 젓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 위에는 컵 세 개와 페이퍼를 세트한 드리퍼가 이미 놓여 있었다. 그리고 또 노리코를 위해서인지, 티백도 준비해 두었다.

 

　「너 말이야.」 

　가와다가 입을 열자, 슈야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뭐야. 웬일로 말이 많아.」 

　가와다가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구니노부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야, 노리코의 마음도 소중하게 여겨 줘.」 

　슈야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말했다. 왠지 불만스러운 듯한 말투가 섞여 있는 듯도 했다. 

　「알아.」 

　「너 사귀는 여자, 있냐?」 

　가와다가 계속해서 묻자, 슈야는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아니.」 

　「그럼 괜찮잖아.」 

　가와다는 여전히 창문으로 시선을 향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은 거야.」 

　슈야는 또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나서 물었다. 

　「너는 여자, 없니, 특별한?」 

 

　담배 끝이 환해졌다. 아무 말도 없었다. 연기가 천천히 어둠 속을 흘렀다. 

　「묵비권 행사니?」 

　「아니.」 

　가와다는 말을 하다가, 문득 담배를 입에서 떼고, 물이 든 양동이에 던져 넣었다. 

　「고개를 숙여, 슈야!」 라고 속삭이며, 동시에 자기도 몸을 굽혔다. 슈야는 가와다가 시키는 대로 후다닥 몸을 숨겼다. 습격인가?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노리코를 데려와. 소리 내지 말고.」 

　가와다가 또 속삭였다.

 

　슈야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노리코가 있는 진찰실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리코는 아직도 멍하니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슈야가 몸짓으로 몸을 낮추도록 하자, 바로 눈치 챘는지, 숨을 죽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슈야는 노리코에게 손을 내밀어, 몸을 부축하면서 부엌으로 이동했다. 도중에 현관 쪽을 돌아보았는데, 유리창 밖에 인기척은 없었다. 가와다는 이미 물을 보충한 세 개의 데이 팩을 정리하고, 쇼트 건을 손에 들고 부엌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뭐야?」 

　슈야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묻자, 가와다는 왼손을 들어 제지했다. 슈야는 입을 다물었다. 

　「밖에 누가 있어.」 가와다가 속삭였다.

　「만약에 들어오면 다른 방향으로 나가자.」 

 

　어둠 속에 냄비 아래 있는 탄의 불빛만이 환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싱크대 쪽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달그락 하는 희미한 소리가 슈야의 귀에도 들려왔다. 현관 쪽이었다. 안쪽에서 문을 버텨 놓은 막대기가 있기 때문에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유리는 깨져 있기 때문에 밖에 있는 누군가는 적어도 여기 사람이 있음을 눈치 챌 것이다.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가 사라졌다. 현관문을 여는 것은 포기한 듯했다. 

　「제길.」 가와다가 중얼거렸다.

　「불이라도 지르면 골치 아픈데.」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가와다가 현관 쪽으로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가와다의 귀에는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지도 모른다. 셋이서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이동했다. 도중에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가와다가 맨 앞에 있는 슈야의 팔을 잡아당겨 멈추어 섰다.슈야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서 어깨 너머로 가와다를 보았다. 

　「또 앞으로 오고 있어.」

　손을 뒤로 흔들었다.

　「뒤로 나가자.」 

　그리고는 다시 방향을 틀어 부엌 쪽으로 갔다. 부엌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와다가 다시 동작을 멈추었다. 「제길, 뭐하는 거지?」 라며 낮게 중얼거렸다. 말하자면 밖에 있는 누군가가 다시 뒤쪽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가와다는 쇼트 건을 쥐고 있었다. 슈야도 가와다와 자기 사이에 노리코를 두고, 미나미 가오리가 갖고 있던 시그 자우엘을 움켜쥐었다(스미스 앤드 웨슨은 가와다에게 맡겨 놓았다. 탄알을 한 발이라도 더 넣을 수 있는 것은 슈야가 갖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내 깨졌다. 부엌 창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기무라 히로키다.」 라고 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싸울 생각은 없다. 대답을 해라, 세 사람 모두. 도대체 누구지?」 

　그것은 틀림없는 스기무라 히로키(남자 11번)의, 미무라 신지와 함께 슈야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이럴 수가.」 슈야가 중얼거렸다.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다. 설마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노리코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노리코도 안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일어서려고 하는 슈야를 가와다가 제지했다. 

　「왜 그래?」 

　「쉿, 소리 내지 마.」 

　슈야는 가와다의 긴장한 표정을 들여다보며, 어깨를 크게 움츠리면서 웃었다. 

　「괜찮아. 저 녀석은 내가 보증할게. 믿을 수 있어.」 

　그러나 가와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우리가 셋인지 알았지?」 

 

　그 말을 듣고서야 슈야는 비로소 깨달았다. 가와다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모르겠는걸.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지금 히로키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빨리 히로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멀리서 여기에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본 게 아닐까? 그래서 누구인지 모르는 거고.」 

　「그렇다면 왜 이제야 이리 온 거지?」 

　슈야는 다시 약간 생각을 했다. 

　「누군지 확인하기로 결심하는데 시간이 걸렸겠지. 아마, 어쨌든 스기무라 히로키라면 믿을 수 있어, 걱정 없어.」 

　또 뭔가 이야기하려는 가와다를 무시하고 슈야는 창 밖을 향해 소리쳤다. 

 

　「나나하라 슈야다, 히로키! 가와다 쇼고와 나카가와 노리코가 함께 있어.」 

　「슈야?」 

　안심했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게 해 줘. 어디로 들어가면 되지?」 

　슈야가 대답하기 전에 가와다가 「가와다다.」 라며 소리쳤다. 

　「현관으로 돌어와라. 두 손을 머리 뒤에 얹고, 움직이지 마. 알겠나?」 

　「가와다.」 

　슈야는 힐난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지만, 바로 「알았어.」 라고 하는 히로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문의 간유리 밖을 히로키의 상반신이 가로질렀다. 가와다가 앞장서서 현관 쪽으로 갔다. 슈야는 노리코를 부축하며 뒤를 따랐다. 

 

　가와다는 현관문에서 고개를 숙이고, 깨진 유리 틈새로 밖을 내다 본 뒤, 쇼트 건을 든 자세로 얼른 몽둥이를 제거하고 문을 열었다. 스기무라 히로키가 머리 위로 손을 얹고 서 있었다. 가와다보다 약간 큰 키지만, 더 호리호리한 느낌이 든다. 슈야와 비슷한 모양의 헤어스타일이지만, 앞머리가 이마의 거의 반까지 내려오고 있다. 발 아래는 데이 팩과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의 몽둥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진짜였다. 

　슈야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히로키는 그런 슈야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보였다. 

　「보디 체크할게. 움직이지 마.」 

　「가와다, 이제….」 

　슈야가 말리려 하는데도 가와다는 주저하지 않고, 쇼트 건을 쥔 채로 앞으로 나서더니, 히로키의 뒤로 돌아가 바로 머리 뒤로 얹은 손을 조사했다. 그러고 나서 왼손을 움직여 히로키의 교복 입은 몸을 더듬었다. 주머니 부근에서 손길이 멈추었다. 

 

　「뭐지, 이건?」 

　손을 얹은 채로 히로키가 대답했다. 

　「꺼내도 돼. 그렇지만 빼앗지는 말아줘.」 

　가와다는 그것을 꺼냈다. 두툼한 수첩 같은 사이즈와 모양의 물건이었는데, 재질은 플라스틱이나 스틸인 것 같았다. 한쪽 면을 덮은 매끄러운 패널에 달빛이 반사되는 것이 슈야에게도 보였다. 가와다는 그것을 잠시 만지작거린 뒤, 「아하.」 라고 했다. 손에 든 채로 약간 몸을 움직여 패널 부분을 달빛에 비추며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히로키의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히로키의 바지 끝에서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마지막으로 데이 팩 안까지 점검한 다음에 마침내 「오케이.」 라고 말했다. 

 

　「미안해, 손 내려.」 

　그러자 히로키는 얹었던 손을 내리고, 발아래 있던 데이 팩과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아마 몽둥이는 무기로 갖고 있는 듯 했다. 

　「히로키!」 슈야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들어와. 커피가 있어, 마실래?」 

　히로키는 약간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슈야 일행과 함께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가와다가 밖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히로키는 거기서 멈추어 섰다. 가와다가 히로키의 옆쪽, 슬리퍼가 놓여있던 신발장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히로키를 바라보았다. 레밍턴의 총구는 내리고 있었지만, 가와다의 손가락은 아직 방아쇠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슈야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일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히로키가 다시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을 보고나서 가와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슈야는 자기가─노리코는 어찌 되었든─가와다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히로키가 의아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슈야!」 

　가와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기무라는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나하고 같이 있어도 괜찮겠느냐고.」 

　그러자, 히로키가 가볍게 웃으면서 가와다를 바라보며, 「아니야.」 라고 말했다. 

　「약간 기발한 팀 구성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네가 적이 될 사람이라면 슈야가 함께 있을 리가 없지. 얘는 내가 아는 한 아주 멍청한 때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가와다가 히로키의 말을 들으며 씨익 웃었다. 여전히 손가락은 방아쇠를 걸고 있었지만, 어쨌든 일단 히로키와 가와다의 인사는 끝난 듯했다. 슈야는 「심하군. 히로키.」 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리코가 「들어와.」 라며 입을 열었다.

　「어서. 남의 집이니 누추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할 수도 없지만.」 

　그러자 히로키는 씩 웃었다. 그러나 현관 문 앞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슈야는 노리코를 왼손으로 부축한 채로 오른손을 안쪽으로 움직였다.

　「들어와. 이제 곧 이동해야 하지만, 아직 좀 시간이 있어. 네 환영 파티를 하자.」

　그래도 히로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슈야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히로키가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히로키, 우린 도망갈 거야. 가와다가 우리를 구해 주기로 했어.」 

　그러자 히로키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래?」 

　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히로키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야─」 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좀 할 일이 있어.」 

　「할 일?」 

　슈야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렇지만 어쨌든 들어와라.」 

　히로키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거꾸로 「계속 셋이 함께 있었나?」 라고 물었다. 슈야는 잠시 생각한 뒤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하고 노리코는 함께였어. 그리고….」 

　그러자 아침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오오키 다츠미치의 갈라진 머리가 계속해서 떠올라,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쳤다. 

 

　「응, 어쨌든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가와다와 합류하게 되었어.」 

　「그래?」 히로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저어, 고토히키를 봤어?」 

　「고토히키?」 

　슈야가 되물었다. 고토히키 가요코? 여자 8번? 다도를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얌전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장난꾸러기 같은 느낌이 드는 그 여자애? 

　「아니.」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못 봤는데.」 

　슈야는 가와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가와다도 히로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못 봤어.」 

 

　물론 고토히키 가요코도 분명히 이 섬 안에 있을 것이다. 사카모치의 방송에서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이상,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오후 6시 이후에 죽지 않았다면. 그러자, 슈야는 여러 클래스 메이트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라는 사실에 새삼 생각이 미쳐, 마음이 어두워졌다. 

　「고토히키 가요코가 혹시?」 

　노리코가 물었다. 

　「아니.」 

　히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됐어. 고마워. 미안하지만 나는 가 봐야겠어.」 

　그렇게 말하더니 히로키는 가와다를 보고 눈인사를 햐며 몸을 돌렸다. 

　「잠깐, 히로키!」 슈야가 불러세웠다.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랑 함께 있으면 살 수 있다니까.」 

 

　히로키는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왠지 슬픈 듯한, 그러나 평소의 히로키다운,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유머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구니노부 요시토키(이미 죽었다, 제길)는 물론 미무라 신지라거나 슈야와 사이가 좋은 친구들─혹은 가와다에게도─의 공통된 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히로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고토히키 가요코를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어. 그래서 가야 해.」 

　일? 돌아다니면 죽기 쉬운 이 상황에서 일이라니, 도대체 무슨? 

　어쨌든 슈야는 말했다. 

　「잠깐. 간다니, 너 변변한 무기도 없잖아? 위험해. 그리고 어떻게 찾겠다는 거야?」 

　히로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 나서 주머니에서 아까 그 휴대용 정보 단말기 같은 것을 꺼내 슈야에게 보여주었다. 

　「내 데이 팩에 들어 있던 "무기"가 이거야.」 

 

　「저쪽의 가와다 선생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거면 충분해.」 

　장치를 든 손으로 자기 목을 가리켰다. 슈애에게나, 노리코와 가와다에게도 마찬가지로 둘러져 있는 은빛 목걸이가 빛을 냈다. 

　「이걸 찾고 있는 녀석의 위치를 알 수 있어. 아주 가까이까지 접근하면 스크린에 표시가 되지. 그게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자 비로소 슈야는 아까의 의문이 풀렸다. 히로키가 집 안에 있는 슈야 일행이 세 명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고 슈야 일행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추어 따라오던 것은 그 장치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분교에서 자기들의 위치를 관리하고 있는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목걸이를 차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였다. 히로키가 말한 것처럼 그것이 누구인가까지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히로키는 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이만─」 하며 발길을 돌리려고 하다가, 「아, 참.」 하며 멈추어섰다. 

　「소마 미츠코를 조심해.」 라며 슈야와 가와다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애는 싸울 작정이야. 다른 애들은 모르지만 그 애만은 확실해.」 

　가와다가 물었다. 

　「만났었냐, 소마를?」 

　「아니.」 

　히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지만, 다카코가─ 치구사 다카코가 그렇게 말했어. 죽기 전에. 다카코는 소마에게 당했어.」 

　그러자 슈야는 치구사 다카코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6시에 있었던 사카모치의 방송에서 그 이름을 듣고, 히로키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히로키를 만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히로키와 다카코는 사이가 무척 좋았다. 한때는 슈야도 두 사람이 시귀고 있는 거라고 오해한 적까지 있었다. 그러나 슈야가 한 번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히로키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다카코와 사귈 자격이 부족한 몸이야. 그냥 소꿉친구지. 옛날에 자주 술래잡기를 했었어. 서로 다투면 내가 울고 그랬어.」 

　그 말은 왠지 확실히 치구사 다카코는 여자로서는 빼어난 운동 신경을 지니고 있고, 충분히 배짱도 있는 여자애지만, 그래도 지금, 키가 180센티미터도 넘는, 권법이 수준급인 히로키를 생각하면(언제였던가, 그렇다, 집에 한 번 놀러 갔을 때 마지못해 손바닥 칼날의 가장 가까운 부분─그 손바닥 두께의 송판을 일격에 격파하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다. 

　그렇지만 이제 다카코는 죽고 없다. 그리고 지금 히로키의 말에 따르면 다카코가 죽을 때 곁에 있었다는 건가? 노리코가 「함께 있었니?」 라고 조용히 물었다. 히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죽기 직전에만. 나는 출발했을 때 그 분교 앞에 숨어서 다카코를 기다렸어. 그런데 아카마츠 요시오가 돌아왔지. 그쪽에 신경을 쓰다보니 다카코를 놓쳤어. 그래서 다카코를 찾아 다니다 너나 미무라 신지와 합류할 기회를 놓쳐 버린 거야.」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카마츠가 돌아올 때까지 히로키는 그 분교 앞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숲 속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물론 그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카코의 존재가 히로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설명해 주는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히로키가 말을 이었다. 

　「다카코를 찾아냈어. 그런데 이미 늦은 상태였지.」 

　거기까지 말하고, 히로키는 시선을 떨구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어도 히로키가 다카코를 찾아냈을 때, 다카코는 소마 미츠코에게 당해,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슈야는 아카마츠가 분교로 돌아온 다음에 덴도 마유미를 죽이고, 자기도 죽을 뻔했던 일을 설명할까 생각했지만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아카마츠 요시오도 이미 죽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노리코가 말했다. 「어쨌든 안 됐어.」 

　히로키가 살짝 웃으며 끄덕였다. 

　「고마워.」 

　「어쨌든.」 

　슈야가 말했다.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고 가더라도….」 

　늦지 않을 거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히로키가 서로 살아 있을 때 고토히키 가요코를 만날 작정이라면 꾸물거릴 여유가 없다. 치구사 다카코야 이해가 가지만, 히로키가 왜 고토히키 가요코를 찾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고토히키 가요코는 누군가와 싸우다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히로키가 그런 슈야의 마음을 읽었는지, 또 슬쩍 웃었다. 슈야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가와다 쪽을 힐금 보고나서 말했다. 

 

　「꼭 가야겠다고 한다면.」 

　히로키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함께 찾자, 고토히키 가요코를.」 

　그러나 히로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리코를 턱으로 가리켰다. 

　「노리코는 부상 당했잖아. 위험해. 그런 부탁은 할 수가 없어.」 

　「그렇지만.」 슈야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그렇다. 일단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가와다가 불쑥 「스기무라 히로키!」 하고 불렀다. 그 손은 아직도 쇼트 건을 잡고 있었지만,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에서 벗어나 있었다. 히로키가 고개를 돌리자, 가와다는 빈손으로 주머니에서 뭔가 작은 것을 끄집어 냈다. 입에 대고, 일단 금속으로 만든 물건을 이로 물더니, 몸통 부분을 돌렸다. 

　치이, 치, 치, 치, 치, 하고 새 우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꽤 크고, 그리고 맑게 들리는 새소리였다. 마치 개똥지빠귀나 박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았다. 가와다가 입에서 손을 떼자, 슈야는 그 소리가 가와다의 손에 들고 있는 것─버드 콜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가와다가 저런 걸 갖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은 별도로 하고─에서 나온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고토히키를 만나게 되건 못 만나게 되건….」 

　가와다가 말했다. 

　「우리를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모닥불을 피우고, 생나무를 태워. 그러면 연기가 오를 거야. 모닥불은 두 개를 피워 줘. 그리고는 물론 바로 거기서 떠나야해. 그리고 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러면 우리들이 그걸 보고 내가 이걸 꼭 15분에 한 번씩 그래, 15초씩 불게. 그걸 신호 삼아 우리를 찾아와.」 

　히로키에게 버드 콜을 보여주었다. 

　「이 소리가 티켓이야. 마음이 내키면 우리 열차에 타.」 

　히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맙다.」 

　「그리고 말이야.」 

　가와다는 주머니에서 접은 지도를 꺼내 펼치고, 연필과 함께 히로키에게 내밀었다.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지만, 다카코가 어디서 죽었는지 여기 적어 줘. 만약에 다른 애들을 만났다면 그 장소도.」 

　히로키는 약간 눈썹을 치켜 올리고, 그것을 받아든 다음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비추는 신발장 위에 그걸 놓고 연필을 쥐었다. 

　「네 지도도 꺼내. 우리가 알고 있는 시체의 장소를 적어 줄 테니까.」 

　가와다가 그렇게 말하자, 히로키는 손길을 멈추고, 자기 지도를 꺼냈다. 둘이서 나란히 지도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노리코가 「커피 내올게.」 라고 하면서 슈야의 팔에서 몸을 뺐다. 벽에 손을 짚고, 오른발을 절룩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카코는 미츠코가 머신 건을 갖고 있다고 했나?」 

　가와다가 작업을 하면서 물었다. 

　「아니.」 히로키도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다카코는 등에 몇 발 맞은 것 같아. 한 방은 아니야.」 

　「그래?」 

　두 사람이 작업을 진행하는 옆에서 슈야는 아카마츠 요시오, 오오키 다츠미치, 모토부치 교이치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히로키가 연필을 놀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는 작업을 마치고, 히로키에게 지도를 보여 주었다. 

　「여기서 미나미 가오리가 당했어. 시미즈 히로노가 도망치는 걸 슈야가 보았어.」 

　히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의외로 「나도 미나미를 만났었어.」 라고 하면서 지도를 보여주었다. 

 

　「오늘 오전이었지. 갑자기 총을 쏴대던데, 아마 당황했던 거겠지.」 

　가와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로키와 지도를 바꾸었다. 노리코가 컵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슈야는 다가가서 힘없어 보이는 노리코의 손에서 그 컵을 받아들었다. 히로키에게 내밀자, 그는 냄새를 맡더니,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컵을 받아 들었다. 노리코에게 「고마워.」 라고 하면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컵을 바로 입구에 놓았다. 커피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 이만.」 

　「잠깐.」 

　슈야는 벨트에서 시그 자우엘을 뽑아들었다. 손잡이를 앞으로 향하게 하고, 히로키에게 내밀었다. 주머니에서 예비 매거진도 꺼냈다.

　「이거 가져가. 꼭 가야겠다면. 우리는 쇼트 건 말고 총이 한 자루 더 있어.」 

 

　처음에는 모토부치 교이치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슈야가 가지고 있는 스미스 앤드 웨슨은 가와다의 바지 앞쪽에 차고 있었다. 슈야가 가지고 있는 시그 자우엘을 건네주면 아무래도 팀의 전투 능력은 떨어지게 되어 있지만, 가와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게 필요할 거야, 슈야. 노리코를 지켜줘. 나는 그거 가져가지 않을 거야. 주겠다고 해도 싫고.」 

　슈야와 노리코를 바라보더니,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부터 이상했었어. 왜 너희 둘이 사귀지 않나 하고.」 

　그 말을 마치고는 슈야와 노리코, 가와다에게 각각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이면서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히로키!」 노리코가 불렀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몸 조심해.」 

　「그래. 고마워. 너도, 행운을 빌어.」 

　「히로키!」 

　슈야는 왠지 자꾸 굳어지는 입술을 열어, 간신히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우리 또 만나자. 약속해.」 

 

　히로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슈야는 노리코를 부축하면서 현관문까지 내려가 히로키를 배웅했다. 히로키는 바로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 모습을 감추었다. 가와다가 아무 말도 없이 슈야와 노리코를 뒤로 물러나게 하더니 문을 닫았다. 

　슈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실내로 돌렸다. 입구에 남겨진 컵에서는 아직도 김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늘 높이 달이 걸려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다. 거의 둥근 원에 가까운 그 달이 쏟아내는 하얀 빛은 희미한 막을 이루어 나머지 하늘을 채우고 있다. 그 때문에 별은 보이지 않았다. 앞에서 가고 있던 가와다가 멈추어 서자, 슈야도 노리코를 부축한 자세로 멈추었다. 

　「노리코, 괜찮아?」 

　슈야가 말을 걸자, 노리코는 「괜찮아.」 라고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나 슈야의 어깨에 전해오는 느낌으로는, 아직 몸이 비틀거리고 있음이 틀림없는 듯했다. 슈야는 시계를 보았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금지구역에 들어간 G=9는 이미 빠져나왔다. 남은 문제는 새로 머물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일단 보건소를 찾았을 때 왔던 길을 따라 북쪽 산기슭을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미나미 가오리가 죽은 곳이 나올 것이다. 바로 왼쪽에 섬의 동쪽 해안 부락으로 이어지는 좁은 평지가 보였다. 밭 가운데 민가가 드문드문 서있는 평지는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있다. 그 가장 좁아진 부분에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있어, 서쪽 해안으로 통할 것이다. 

 

　가와다가 뒤를 돌아보며, 「자, 어떡하지?」 라고 물었다. 어깨에 걸친 데이 팩 위로 노리코가 쓸 모포를 둥글게 말아 얹었다. 

　「어느 집에건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집이라고?」 

　가와다는 슈야에게서 시선을 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기본적으로는 별로 좋지 않아. 움직일 수 있는 구역이 점점 좁아져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줄어들고 있고, 다른 애들도 뭐가 필요하면 집으로 들어올 거야. 밥이 필요하건 뭐가 필요하건.」 

　「저어….」 

　노리코가 말했다. 

　「나는 이제 괜찮아. 밖에 있어도 상관 없어.」 

 

　가와다가 슬쩍 웃더니, 아무 말 없이 평지 쪽을 건너다 보았다. 스기무라 히로키가 지도에 남겨준 메모를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히로키는 지도에 자기가 본 시체의 위치 이외에, 어떻게 죽었는지도 자세하게 적어 넣어 주었다. 치구사 다카코가 죽은 바로 옆에 니이다 가즈시의 시체. 이 시체는 눈이 터져 나왔고(!), 목에는 뭔가가 박혀 있었다. 

　이미 금지 구역에 들어간 부락 안에는 에토 메구미. 그녀는 칼에 목이 베었다(노리코에게서 "슈야를 좋아했어."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뒤여서 가슴이 약간 찡했다). 거기서 약간 동쪽, 섬의 동쪽 해안 부락에서 남쪽 산으로 내려간 쪽에 구라모토 요지와 야하기 요시미. 요지는 머리에 자상, 요시미는 총에 맞았다. 그리고 섬 남쪽 끄트머리에는 가나이 이즈미, 구로나가 히로시, 사사가와 류헤이, 누마이 미츠루가 한데 몰려 죽어 있다고 한다. 누마이 미츠루는 총알을 네다섯 발정도 맞았고, 다른 세 사람은 목이 칼에 벤 상태였다는 것이다. 기리야마의 부하들이 세 명 모두 함께 죽어 있는 것이다. 금지 구역에 걸린 즈키오카 쇼를 제외하고. 

 

　「가와다!」 

　슈야가 부르자, 가와다는 다시 슈야를 돌아보았다. 

　「유미코와 유키코를 죽인 게 미츠코라고 생각해?」 

　슈야는 그렇게 질문하면서고 아직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스기무라 히로키가 말한 것을 믿지 않아야 할 까닭이 없지만, 한편 여자는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일종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가와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 애들이 죽었을 때, 머신 건 소리 뒤에 두 발은 단발로 총소리가 났잖아. 그건 두 사람을 확인 사살한 거야. 그렇지만 다카코는 총을 맞은 뒤에도 스기무라를 만날 때까지 살아 있었잖아. 이 경우에는 좀 치밀하지가 않아. 뭐 하긴 바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놔 두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시간과 장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아무래도 소마 미츠코와 머신 건을 쓰는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해.」 

 

　슈야는 오전 9시 전에 들은 머신 건의 총소리를 떠올렸다. 그 녀석은 틀림없이 아직 이 섬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뒤, 멀리서 들려온 다른 총소리. 그것은 미츠코가 쏜 총소리일까? 

　「그 녀석은……」 

　가와다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만나게 될 거야. 아마도. 그 때 알게 되겠지.」 

　슈야는 또 한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 

　「히로키의 그 기계 때문에 생각난 건데, 우리들이 함께 있다는 걸 사카모치는 알고 있겠지? 그리고 우리 위치도.」 

　가와다는 평지 쪽을 바라보면서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슈야는 약간 어깨를 움츠려 노리코의 몸을 추슬렸다. 

　「그건 우리들이 도망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가와다는 등을 진 채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장애가 되지 않아. 전혀 문제가 안 돼. 걱정하지 마.」 

　그리고 가와다는 다시 평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처음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 

 

　「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녀석이 보통 선택하는 작전이라는 것은 무슨 소란이 일어나면 그 소리를 듣고, 그리 가는 거야. 24시간 기한이 없다면 무리할 필요가 없지만, 어쨌든 죽일 수 있을 때 많이 죽이려 들지.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돌아다닌다고 하는 것은 일단 혼자 있다는 의미이니까, 잠 잘 시간이 별로 없어. 단기 결전이 되는 거지. 가까운 곳이라면 그리 이동해서, 만약에 전투가 시작되면 상황을 지켜보다가 살아남은 녀석을 해치우는 거지. 그래서 우리들은 가능하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곳에 있는 게 좋아. 얼빠진 녀석들과 마주쳐서 소리를 내면, 다음에는 스타급이 나타날 거야. 처음에 있던 곳이라면 누군가를 마주칠 가능성은 적을 거야. 게다가 처음에 그 부근에 숨어 있던 오오키와 교이치는 이제 없으니까. 그리고 거기는 인가도 거의 없어.」 

 

　「그렇지만 시미즈는 우리들이 처음에 있던 방향으로 도망쳤어.」 

　「아니야, 그 애는 그리 멀리 이동하지 않았을 거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가와다는 그렇게 말하고 평지 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만 그녀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이쪽 산은 피하자. 다른 루트를 선택하는 거야.」 

　슈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평지를 지나가도 괜찮겠어?」 

　가와다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달이 밝아도 대낮하고는 달라. 오히려 수풀이 있는 산 속보다는 안전할 거야.」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가 앞장서서 완만한 경사면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슈야는 오른손에 시그 자우엘을 꼭 쥐고 노리코의 몸을 부축하며 뒤를 따랐다. 

 

　나무숲이 끊어지고, 풀밭을 지나, 처음 들어선 밭에는 호박 같은 것이 심어져 있었다. 거기를 지나자 보리밭이 나왔다. 작은 섬이기 때문에 판매용 작물은 아닐지도 모른다. 원래 대동아공화국 정부는 끊임없이 식량 지급률을 높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작은 밭도 거기에 공헌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밭의 끄트머리를 지나자, 섬에서 사람이 빠져나간 지 적어도 이삼 일은 지났기 때문인지 스니커 바닥에 전해지는 흙의 느낌이 약간 건조한 듯했다. 그래도 여름에 접어든 밤기운을 타고 보리의 풋풋한 냄새가 슈야의 코를 상쾌하게 자극했다. 좋은 냄새였다. 피 냄새를 지겹게 맡은 뒤라서 더욱 좋았다. 

　진행 방향 왼쪽에 트랙터가 한 대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약간 뒤편에 민가 한 채가 있었다. 

　수상한 기미는 없다. 비교적 얼마 안 되어 보이는 2층집이었다. 바나나 홈이니 조립식 건물이니 하는 그런 대량 생산형 싸구려였다. 밭 한가운데 있는데, 담까지 제대로 두르고 있었다. 

　슈야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가와다의 등을 바라보았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눈길을 돌렸다. 왼쪽 어깨에 달라붙어 걷고 있는 노리코의 머리 훨씬 위쪽 하늘에서 뭔가를 포착했다. 달빛을 받아 반짝 빛나는 것. 그것은 슈야 일행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리틀리그 시절, 슈야를 명선수로 떠오르게 한 것은 바로 동체 시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힘. 슈야는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지금 자기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무슨 깡통처럼 생긴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평온한 세토나이 지역에 토네이도 같은 게 일어났을 리도 없으니, 하늘에서 빈 깡통이 떨어질 리도 없다. 어쨌든 빈 깡통일 리는 없다. 

 

　설마…. 

 

　그 순간 슈야는 노리코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끼우고 있던 왼쪽 어깨를 빼냈다. 가와다에게 소리쳐 줄 틈도 없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가와다는 뭔가 느낌이 이상했는지 휙 돌아보았다. 슈야가 노리코의 부축을 풀자, 약간 비틀거렸다. 

 

 

 

 

　슈야는 이미 서너 발 달려 나가, 높이 점프하고 있었다. 무서운 점프력이었다. 예전에 리틀 리그 현 대회 준결승, 11회 말. 굿바이 안타가 될 뻔한 타구를 유격수 위치에서 기막힌 파인 플레이로 막아냈던 것처럼.

　슈야의 왼손은 허공에서 그 타구를 아니, 깡통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옮겨 들고, 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뒤틀어 힘껏 멀리 던져 버렸다. 슈야가 착지하기도 전에 번쩍, 하는 빛이 어둠을 지웠다. 그리고 공기가 팽창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슈야는 발이 아직 땅에 닿지도 않은 상태여서, 폭풍에 날려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나 물론 그것이 수류탄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대응했다면 슈야나 노리코, 가와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수류탄은 사카모치 일당이 분교에 던져 넣을 것을 우려해 화약의 양을 상당히 줄인 것이었지만, 사람을 살상하는 데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바로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귀가 이상해진 것이다. 그 무음 상태에서 슈야는 왼쪽에 노리코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가와다를 돌아보려고 고개를 든 순간 보았다. 깡통 하나가 더 날아오는 것을. 한 번 더!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기능을 잃은 귀에 "꽝" 하는, 분명히 아까 것과는 다른 약간 작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또 한 번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소리도 약간 작게 들렸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슈야는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가와다가 무릎을 세운 자세로 쇼트 건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치 클레이 사격 같이, 그 총으로 수류탄을 폭발하기 전에 날려버린 것이다. 

 

　슈야는 노리코에게 달려가, 안아 일으켰다. 노리코가 입가를 찡그리며 신음 소리를 낸 것 같았지만, 귀에 들리지는 않았다. 

　「슈야! 숙여!」 

　가와다는 왼손을 크게 휘두르며, 동시에 쇼트 건을 쏘았다. 따르르르륵, 하는 다른 총소리가 들리더니, 슈야 바로 앞에서 보리 이삭이 튀어 올랐다. 가와다가 다시, 이번에는 두 발을 계속해서 쏘았다. 슈야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노리코를 밭을 구분 짓는 밭두렁 뒤까지 끌고 가서 엎드렸다. 바로 가와다는 총을 쏘면서 옆으로 뛰어 들어왔다. 또 쏘았다. 따르르르르륵, 하는 소리가 나고, 바로 앞의 밭두렁 흙이 튀어 올랐다. 모래알이 몇 개 눈 안으로 들어왔다. 

　슈야는 시그 자우엘을 뽑아들고, 밭두렁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가와다가 쏘고 있는 방향으로 대충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슈야는 보았다. 30미터 약간 안 되는 지점, 그 민가의 블록 담 틈새로 눈에 익은 올백 머리가 살짝 숨는 것을. 

 

　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였다. 그리고 슈야는 약간 청각에 이상이 있었는데도, 그 따르르륵, 하는 총소리는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북쪽 산꼭대기에서 죽을 때, 멀리서 들려왔던 총소리. 물론 머신 건을 갖고 있는 것이 한 사람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지금 눈 앞에 있는 기리야마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기들을 죽이려 한 게 아닌가, 그것도 수류탄으로! 

 

　유미코와 유키코를 죽인 것은 기리야마였다, 라고 슈야는 확신했다. 두 사람의 죽음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다. 

 

　「뭐야! 뭐야, 저 녀석은!」 

　「소리 지르지 말고 빨리 쏘기나 해!」 

　가와다가 슈야에게 스미스 앤드 웨슨을 건네주었다. 자신은 쇼트 건의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슈야는 두 손에 총을 쥐고, 그 블록 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쌍권총이다! 바보같이!). 우선 스미스 앤드 웨슨, 이어서 시그 자우엘도 총알이 떨어졌다. 다시 장탄해야 한다! 기리야마가 그 틈을 타고 상반신을 쑥 일으켰다. 따르르르륵, 하고 기리야마의 총에서 불꽃이 튀었다. 슈야가 머리를 숙이자, 기리야마는 블록 담 뒤에서 몸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가와다의 쇼트 건이 불을 뿜었다. 기리야마가 다시 몸을 숨겼다. 쇼트 건의 총알들이 벽 일부를 날려 버렸다. 슈야는 시그 자우엘에서 매거진을 빼내고, 주머니에서 총탄이 들어있는 매거진을 꺼내 끼워 넣었다. 스미스 앤드 웨슨의 실린더를 열고, 실린더 한가운데 붙어 있는 로드를 눌러, 격발 때문에 직경이 팽창한 탄피를 배출했다. 탄피 하나가 총을 잡은 오른손 엄지 아랫부분을 건드려, 거의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가와다가 옆으로 던져 준 38구경 총탄을 급히 채워 넣었다. 다시 기리야마가 있는 집 쪽을 바라보았다. 

　가와다가 먼저 한 발을 쏘았다. 또 벽의 일부분이 날아갔다. 슈야도 시그 자우엘로 두세 발을 쏘았다. 

 

　「노리코! 괜찮아?」 

　슈야가 외치자, 옆에 있던 노리코가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가 들렸다. 슈야는 자기 귀가 정상 상태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노리코가 엎드린 자세로 슈야가 내던진 시그 자우엘의 빈 매거진에 9밀리 총탄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게임 시작 이후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광경보다 더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았다. 노리코 같은 여자애가 전투 행위를 돕다니. 

　간발의 차이로 기리야마가 몸을 일으켰다. 총을 계속 쏘면서 재빠른 동작으로 앞으로 달려나왔다. 바로 트랙터 뒤로 뛰어 들었다. 거리가 좁혀졌다. 가와다가 또 한 발을 쏘았다. 이쪽으로 옆구리를 보이고 잇는 트랙터의 운전 패널 부분이 날아갔다. 

 

　「가와다.」 

　두 발을 연속으로 쏘고 나서, 슈야는 가와다를 불렀다. 

　「뭐야?」 

　가와다가 쇼트 건에 총알 넣으며 대답했다. 

　「100미터 몇 초에 뛰니?」 

　가와다는 또 한 발을 쏘고(트랙터의 리어 램프가 박살이 났다), 대답했다. 

　「늦어. 13초는 걸릴 거야. 그렇지만 배근력은 자신 있어. 그런데 왜?」 

 

　그 순간 기리야마의 팔이 트랙터 뒤에서 튀어 나왔다. 따르르륵, 하고 불꽃이 튀며, 기리야마의 머리가 잠깐 나타났지만, 슈야와 가와다가 동시에 사격을 하자 쏙 들어갔다. 

　「산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겠지?」 슈야가 빠른 속도로 말했다. 

　「나는 11초대 전반에 뛸 수 있어. 노리코와 함께 먼저 가. 내가 기리야마를 여기 묶어둘 테니까.」 

　가와다는 힐끔 슈야를 바라보았다. 그뿐이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한 것이다. 

　「처음에 있던 그 장소야, 슈야! 록 음악 이야기를 하던 거기.」 

　간단하게 말하고, 가와다는 쇼트 건을 슈야에게 내주더니 엎드린 자세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슈야의 왼쪽에 있는 노리코 쪽으로 돌아갔다.

 

 

 

 

　슈야는 숨을 들이쉬고, 쇼트 건으로 세 발을 계속해서 트랙터에 쏘았다. 그걸 신호 삼아, 가와다와 노리코가 몸을 일으켜 오던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슈야와 노리코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기리야마가 불쑥 트랙터 뒤에서 상반신을 내밀었다. 슈야는 또 쇼트 건을 들고 계속 쏘았다. 가와다와 노리코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기리야마는 고개를 집어넣었다. 쇼트 건의 총알이 다 떨어진 걸 알고, 슈야는 스미스 앤드 웨슨으로 바꿔 들고 계속 쏘았다. 총알이 금방 떨어졌지만, 노리코가 채워 넣은 예비 매거진을 끼워 계속 발사했다. 계속 쏘는 것이 중요했다. 

　가와다와 노리코가 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시그 자우엘의 총알이 다시 떨어졌다. 이제 예비 매거진도 없다. 총알을 다시 끼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 순간 기리야마가 이번에는 트랙터의 땅을 파헤치는 포크가 달린 앞부분에서 팔을 내밀었다. 따르르르륵, 하는 잉그램 머신 건이 불을 뿜었다. 아까와 같은 소리였다. 기리야마가 달려올 것이다! 슈야는 이미 총격전에 구애받지 않았다. 총알이 다 떨어진 시그 자우엘만을 쥐고(주머니 안에는 아직 9mm 쇼트 산탄 총알이 일곱 발 있었다),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몸을 가릴 곳이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기리야마도 쉽게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슈야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동쪽으로 달려갔다. 노리코와 가와다는 원래 있던 곳을 향해, 서쪽으로 갈 것이다. 기리야마를 조금이라도 두 사람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고 싶었다. 대시력만이 승부였다. 짧은 시간 안에 어쨌든 가능한 한 멀리, 기리야마로부터 달아나야 했다. 머신 건이라는 것은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내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우면 반드시 맞게 되어 있는 총기다. 어느 정도 떼어 놓을 수 있느냐, 그것만이 승부였다. 

 

　슈야는 달렸다. B반에서 가장 빠른(그럴 것이다. 미무라 신지보다 0.1초 빨랐다. 기리야마가 체력 측정 때 대충 뛴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발만을 믿었다. 앞으로 5미터면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슈야는 왼쪽 옆구리에 심한 충격을 느꼈다. 슈야는 신음 소리를 내며, 밸런스를 잃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달려 들어가, 완만한 경사면을 위를 향해 달렸다. 또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나고, 이번에는 왼쪽 팔이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위로 튀어 올랐다. 팔꿈치 위에 총알을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슈야는 달렸다. 그대로 동쪽을 향해─어이, 어이, 형씨. 그쪽은 금지 구역이야.─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또 등 뒤에서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슈야 바로 오른쪽 옆의 가느다란 나무가 퍽, 하고 찢어지고, 성냥개비 크기의 파편이 몇개 튀어 올랐다. 또 따르르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기리야마가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만 했다. 오케이, 이제 적어도 노리코와 가와다에겐 시간이 생겼다.

　나무 사이로, 수풀 속을 뚫고 언덕을 올라갔다가 다시 언덕을 내려가며, 슈야는 계속 달렸다. 다른 녀석이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미 하지 않았다. 이제 얼마나 달렸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들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폭발음 휴우증 때문에 귀가 아직도 이상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멀리, 멀리 가야만 한다. 

 

　갑자기 슈야의 발이 미끄러졌다. 어느샌가 언덕 같은 곳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사면이 갑자기 끊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오키 다츠미치와 격투했을 때처럼 슈야는 급한 경사면을 굴러 떨어졌다. 몸이 그 아래서 퉁, 하고 튀어 올랐다. 시그 자우엘이 손 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슈야는 일어서려고 하다가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혈 때문에 의식이 흐려졌나 보다, 하고 멍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머리를 맞았나? 

　그럴 리가. 이 정도의 상처로 일어설 수 없을 리가 없다. 나는 노리코와 가와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노리코를 지켜줘야 하니까. 나는 노리코와 약속했어. 

 

　몸을 일으키려다가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슈야는 의식을 잃었다. 

 

【남은 인원 2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