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10

　거의 새카만 어둠 속, 오직 달빛만 희미하게 들어오는 창가에서 신지는 손에 든 것을 다시 한 번 바닥에 놓았다. 그것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접어서 깔아놓은 두둠한 모포 때문에 거의 나지 않았지만, 달그락 하고 작은 무언가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나고, 동시에 위잉,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신지는 바로 바닥에서 그것을 집어 들어, 모포 옆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그것의 한쪽 끄트머리에 밀어 넣었다. 소리가 멈췄다. 

　「자, 서두르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타카가 말했지만, 신지는 유타카를 제지하고 다시 한 번 테스트를 반복했다. 달그락, 위잉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신지가 집어 들었다. 

　이제 괜찮을까? 그렇지만 이것이 만약에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해 온 준비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한 번만 더 테스트를 해 볼까? 

　「서둘러 해야지….」 

　유타카가 또 다시 재촉하자, 신지는 약간 초조한 표정을 짓다가 간산히 참았다. 미련이 남았지만 「알았어.」 라고 하며 테스트를 마쳤다. 테스트를 위해 사용한 소형 모터와 전지를 연결한 리드 선을 벗겨내고, 모터 본체를 전지에 고정시켜 두었던 비닐 테이프도 벗기기 시작햇다. 

 

　신지와 유타카는 "다카마츠 북부 농협 오키 섬 출장소"에 돌아와 있었다. 이곳은 섬 안에 있는 건물 중에는 분교, 부두에 있던 어업 협동조합 건물과 함께 가장 큰 건물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불빛은 없었다. 어둠에 잠긴 공간은 거의 농구 코트가 하나 들어서도 괜찮을 정도였으며,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농기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수리 중이었는지 작키로 들어올려진, 차바퀴를 떼어낸 경트럭도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각종 비료 부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원래 위험 물질인 초산 암모니아는 더 안쪽, 일단 자물쇠가 걸려 있던 대형 캐비닛 안에 보관되어 있어, 신지가 그 자물쇠를 부수었다.) 슬레이트로 쳐놓은 벽의 높이가 5미터는 너끈히 되었으며, 안쪽 북측 벽에 붙인 듯한 형태로 반쯤 튀어 나온 2층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도 비료와 노약 등 자질구레한 것들이 놓여 있었다. 

　신지와 유타카가 지금 있는 곳과는 반대쪽, 즉 동쪽 벽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그 계단 옆에는 출입을 위한 커다란 미닫이문이 있다. 그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계단 맞은 편, 남동쪽 구석에는 사무실 같은 공간이 칸막이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열려 있는 문 안쪽으로 사무용 책상과 팩스 등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교가 있는 G=7 구역까지 연실을 걸치는 작업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그 바위 위의 키 큰 나무 꼭대기에 실 한쪽을 묶고, 그 다음에는 다른 한쪽을 잡고 나무들 사이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는데, 하늘에서 꽤 센 바람이 불고 있는지, 쓰레기봉투로 만든 풍선은 쉽게 따라와 주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 적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어둠 속에서, 유타카를 걱정하면서 했던 그 작업은 신지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어쨌든 세 시간에 걸쳐 간신히 실을 장치하고, 한숨을 돌린 순간, 아주 가까이서 심한 총격전 소리가 났다. 11시가 지났을 때였다.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왔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그 농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는 이미 총소리가 멎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신지는 뇌관의 전기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었는데, 이 작업도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하긴 충분한 도구도 없는데다가, 상당히 미세한 밸런스가 요구되는 장치였다. 분교에 충동할 때의 쇼크에 반응해서 전기가 흐르도록 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로프웨어' 중간─예를 들면 로프에 매듭을 도르래가 통과할 때 생기는 진동으로 스위치가 올라가 버릴 정도로 민감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겨우 해결하고, 전관대신에 모터를 연결한(전기 면도기에서 꺼낸 것이다) 그것의 테스트를 시작한 직후, 그러니까 조금 전, 오전 0시 방송이 있었던 것이다. 죽은 것은 신지가 게임 개시 직후에 보았던 시미즈 히로노(여자10번) 한 사람이었고, 그녀의 죽음은 22시 조금 지나서 벌어졌던 그 격렬한 총격전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사카모치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적어도 신지와 유타카 두사람에게는. 즉, 신지와 유타카가 분교를 내려다보던 그 바위가 있는 F=7 구역이 오전 1시를 기해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유타카가 안달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거기 들어갈 수 없게 되면 모근 것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완전히 아웃이다. 비장의 수법으로 체크 메이트 직전까지 가서, 반면 위에 최후의 한 수를 두기 직전에 갑자기 지뢰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신지는 재빨리 나이프에 붙어 있는 케이스에서 전기전관을 떼어냈다. 어둠 속, 둔한 금속 표면을 드러내고 있는 두 개의 부품을 조합하고, 맨 끄트머리에서 나온 리드 선의 비닐 피복을 벗겼다. 그러고 나서 먼저 전기가 통하는 장치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곤충 날개 모양의 플라스틱 작은 조각을 테이프로 고정해 두고, 전관의 리드 선 한쪽을 전기가 통하는 장치에서 나와 있는 선 한 가닥과 붙였다. 테이프로 둘둘 감아, 절대로 빠지지 않도록 했다. 실수로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또 한 가닥은 산 위에서 직접 작업하기로 하고, 피복을 벗긴 끝을 테이프로 전지 옆에 붙였다. 

　「좋아.」 

　신지가 말하며 일어서더니, 완성된 기폭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서둘러, 준비하자.」 

　유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는 만약을 위해 라디오 펜치와 예비리드 선 등도 데이 팩에 집어넣고, 여러 개로 나눈 로프 더미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아래를 보았다. 가솔린과 초산 암모니아를 섞어 가득 채운 등유통이 있었다. 산소를 보충할 수 있도록 공기를 넣고 봉한 에어쿠션 재료를 주름지게 만들어 집어넣었다. 주입구에는 지금은 뚜껑이 덮여 있지만, 주입구 옆에는 전관 홀더로 쓰기 위해 따로 준비해 둔 고무 캡이 손잡이에 비닐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시계를 보았다. 0시 9분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케이. 마치 전투를 앞둔 무사처럼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신지는 생각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재료는 다 준비되었다. 

 

　준비한 로프를 전부 연결하여 한쪽 끝을 H=7 구역 안에 있는, 그 산 위에서 점찍어 두었던 나무에 고정한다. 그리고 지금은 돌을 얹어, 끝을 움직이지 않도록 해 둔 연실에 로프를 또 한쪽을 묶는다. 로프를 느슨하게 하여 거기 두고, 분교를 우회하여 산 쪽, F=7로 간다. 나무 꼭대기에 묶어둔 연실을 잡고, 그것을 힘껏 끌어당긴다. 반대편 쪽에서 로프가 딸려온다. 그러면 기폭장치를 설치한 등유 통 끝을 곤돌라처럼 도르래에 붙여, 그 로프를 타고 내려가게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Ler`s party인 셈이다. Have fun! Yeah, we gone make it! 

　그리고 분교의 컴퓨터, 그 전원 계통이나 배선의 일부라도 파괴되어 시스템 불량 상태가 되면 된다. 아니, 이 정도의 화약이라면 아예 그 컴퓨터 자체, 아니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반 정도가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한다면, 구역 F=7의 바위 뒤에 이미 숨겨두었던 타이어 튜브를 들고 달려, 예정대로 섬의 서쪽 해안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도망친다. 트랜시버를 써서 가짜 조난 신고로 정부를 교란시키고, 계산대로 30분 못 미쳐 옆에 있는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배를 탄다(프레져 보트라면 다뤄본 경험이 있다. 정말로 숙부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거기서 오카야마 방향으로 도망친다고 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어느 해안에 배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이쪽이 하기나름이다. 시골 화물 열차라도 잡아탈 것이다. 아니면 지나가는 차를 빼앗는다. 어쨌든 우리는 총을 갖고 있다. 카 재킹. 멋지다. 

 

　그리고 신지는 바지 앞쪽에 꽂아 둔 베레타 M92F를 내려다 보았다. 개조한 트랜시버로 유도 작전을 쓸 생각이지만, 그래도 해상에서 발각되었을 경우를 생각하여, 여러 개의 콜라병에 특제 초산 암모니아와 가솔린을 채워, 뚜껑을 꼭 닫아 데이 팩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폭장치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그냥 '불 잘 붙는 화염병'에 불과하다. 만약에 발각되었을 때는 기선을 제압하고, 수중에서라도 배에 접근해 배에 기어 올라가 싸우는 것이 최선책이다. 잘 하면 거꾸로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고, 배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해 도망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격이 거의 필수 조건이어야 하리라. 

　약간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 베레타를 들고 섬을 돌아다녔지만, 생각해 보니 아직 한 발을 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숙부도 총까지는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격 방법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그러나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더 서드 맨", 미무라 신지. 괜찮아. 처음 무거운 농구공을 손에 들고 프리 드로우를 쏘았을 때도 공은 멋지게 링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었던가? 

 

　「신지.」 

　유타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신지는 고개를 들었다. 

　「준비 됐어?」 

　「아니.」 

　유타카는 힘없이 말하더니, 그러고 나서 수첩을 꺼내 뭔가 급히 쓰기 시작했다. 

　신지는 창가의 달빛으로 그것을 읽었다. "도르래가 없어." 라고 적혀 있었다.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얼굴로 보였는지, 유타카가 몸을 뒤로 뺐다. 

 

　로프의 반과 도르래는 애당초 우물에서 입수했을 때부터 내내 유타카 담당으로, 여기 가져와서 어디에 두었을 것이다. 신지는 로프와 데이 팩을 다시 내려놓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일단 그 부근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유타카도 따라서 했다.

　둘이서 트랙터 뒤쪽과 작업용 책상 아래를 더듬었지만 찾지 못했다. 신지가 일어나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바늘이 0시 10분에서 15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신지는 데이 팩에서 정부가 지급한 플래시를 끄집어냈다. 램프 부분을 손으로 둘러싸고 스위치를 켰다. 빛이 쓸데없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고는 있었지만, 창고 같은 농협 안에 누르스름한 빛이 퍼졌다. 유타카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보다 신지는 그의 어깨 너머쪽에서 금방 도르래를 발견했다. 책상 너머, 벽 쪽 바닥 위, 그것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닿지 않는 그늘이 떨어져 있었다. 유타카의 데이 팩이 놓여 있는 곳에서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신지는 유타카에게 눈짓을 하고, 얼른 플래시의 스위치를 껐다. 유타카가 서둘러 도르래를 집어 들었다. 

　「미안해, 신지.」 

　유타카가 미안한 듯이 말하자, 신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 부탁해, 유타카.」 

　그리고 데이 팩과 로프를 다시 짊어졌다. 등유통을 집어 들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신지지만, 이 두 개의 짐은 약간 무거웠다. 로프는 중간까지만 들고 가면 되지만, 20킬로그램이나 되는 등유 통은 산 위까지 옮겨야 한다. 게다가 서둘러야 한다. 

 

　유타카도 로프를 짊어지고(적은 양이 아니어서, 마치 등껍질을 진 거북이처럼 보였다. 하긴 그거야 신지도 마찬가지지만), 둘이서 건물 동쪽에 미닫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미닫이문은 10센티미터 정도 열려 있어, 그리로 창백한 달빛이 한 줄기 가느다란 띠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안해, 신지.」 

　유타카가 또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이제부턴 확실하게 하자.」 

　신지는 등유 통을 왼손으로 바꿔 들고, 무거운 철제 미닫이문에 오른손을 대고 열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확 퍼졌다. 

 

　건물 밖은 포장되지 않은 넓은 주차장이었다. 이 농협은 좁은 도로 접해 있는데, 오른쪽이 입구이고, 그 입구 근처에 웨곤 차가 한 대 서 있다.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는 그 건너편, 약간 더 남쪽으로 가야 나올 것이다. 미닫이문의 정면, 주차장의 동쪽에 바로 밭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는 민가가 흩어져 있다. 더 안쪽은 부락으로, 밤이기는 하지만 주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자, 농협 부지 제일 안쪽에 작은 헛간이 한 채 서 있고, 그 앞 약간 높은 위치에는 언덕에 둘러싸인 듯한 분교가 보였다. 바로 앞, 한 채의 2층짜리 가옥 옆에 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그 가운데 유난히 키가 큰 한 나무가 로프를 묶기로 점찍어 둔 녀석이다. 신지와 유타카는 그 왼쪽, 밭의 수로 옆에 산에서 끌고 내려온 연실 끝을 고정시키고 왔다. 결국 그 실은 그 분교 옆을 지나, 일직선으로 산허리께의 바위가 있는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 300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리다. 다행히 정말 잘 설치되었다. 그런데 저 연실은 과연 끊어지지 않고 산 위까지 로프를 끌어올려 줄까? 

 

　신지는 숨을 내쉬고, 잠시 생각한 뒤에 입을 열었다. 도청당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타카.」 

　왼쪽의 유타카가 신지 쪽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왜?」 

　「우리, 죽을지도 몰라. 각오, 됐어?」 

　유타카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대답했다. 

　「응, 각오 되어 있어.」 

　「오케이.」 

　신지는 등유 통 손잡이를 고쳐 잡고, 웃었다. 

 

　웃음이 멎은 것은 시야 끄트머리에서 무언가가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주차장의 동쪽, 약간 낮은 밭 안에서 사람의 머리가 살짝 보였다. 

　「유타카!」 

　신지는 유타카를 부르며 팔을 잡아 금방 나온 슬레이트 벽으로 된 농협 건물, 미닫이 문 안쪽으로 달려갔다. 유타카는 무거운 로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잠깐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따라왔다. 미닫이 문 뒤에서 몸을 숙였을 때는, 신지는 이미 그 그림자를 향해 총을 뽑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외쳤다. 

　「쏘, 쏘지 마! 쏘지 말아줘! 나야! 이이지마야!」 

 

　그 목소리를 듣고, 신지는 그 그림자가 이이지마 게이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이지마 게이타는 반에서는 비교적 신지나 유타카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하긴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으니까) 지금 신지가 느끼고 있는 것은 동료가 늘어난다고 하는 안도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귀찮다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신지는 지금 상태에서 다른 녀석이 일행이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길, 하필이면 이런 때! 

　「이이지마야, 신지. 이이지마.」 

　뒤에 있는 유타카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이 들려, 신지는 잠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들었다. 

　이이지마 게이타가 슬금슬금 몸을 일으켜, 농협 쪽으로 올라왔다. 왼손에 데이 팩을 들고, 그리고 오른손에는 부엌칼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빛이 보여서.」 라고 말했다. 신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것은 도르래를 찾기 위해 딱 한 번 켠 그 플래시 불빛이었을 것이다. 신지는 평소의 자기답지 않게 급한 마음에 플래시를 사용한 것을 후회했다. 게이타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이리 왔는데, 너희들이란 걸 알고. 뭐 하고 있었니? 지금 짊어진 게 뭐야? 로프니? 나도, 나도 끼워 줘.」 

 

　도청당하고 있어서, 유타카가 눈썹을 찡그리며 신지를 보았다. 그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신지가 총구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지, 왜 그래?」 

　신지는 비어 있는 오른손을 움직여, 유타카가 앞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유타카, 움직이지 마.」 

　「어이.」 이이지마가 말했다. 떨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왜 내게 그런 걸 겨누는 거야, 신지?」 

　신지는 숨을 들이쉬고, 게이타를 향해「움직이지 마.」라고 말했다. 옆에서 유타카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이지마 게이타는 넋이 나간 표정을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내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왜 그러냐니까? 내 얼굴을 잊었어? 나도 끼워 줘.」 

　신지가 철컥, 하고 격철을 세웠다. 이이지마 게이타가 걸음을 멈추었다. 거리가 아직 7,8미터는 된다. 

　「오지 마.」 신지는 천천히, 한 번 더 말했다. 

　「너는 끼워줄 수가 없어.」 

　유타카가 옆에서 비통한 소리로 말했다. 

　「뭐야, 신지. 이이지마라면 믿을 수 있잖아?」 

　신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아, 그렇다. 너는 몰랐구나, 유타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한 일이었다. 

 

　2학년 3학기도 거의 끝나가던 3월의 일이다. 

　신지는 이이지마 게이타와 영화를 보러 다카마츠 시에 갔다(시로이와 읍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원래는 유타카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감기로 앓아 누웠었다. 험악하게 생긴 고등학생 세 명이 나란히 신지에게 다가온 것은 아케이드가 있는 긴 메인 스트리트에서 꺾어진 뒷골목이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서점과 레코드 숍도 돌아보고(신지는 고서점에서 컴퓨터 관련 수입 도서를 샀다. 뜻하지 않게 찾아낸 귀한 것이었다. 기술 서적이라고는 하지만, 서양 도서는 정부의 검열이 엄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구할 수가 없다) 역으로 가려던 때였다. 게이타는 만화책 한 권 사는 것을 잊었다고 하며 다시 책방으로 혼자 되돌아간 상태였다. 

 

　「어이, 돈 있냐?」 

　하고 고등학생 가운데 한 명이 물었다. 172센티미터로 농구부원치고는 키가 작은 편인 신지보다 키가 10센티미터는 더 컸다. 신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2.570엔이 있을 거야.」 

　신지에게 질문한 녀석이 나머지 두 명을 바라보며. "뻣뻣하게 나오는군."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신지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댔다. 신지는 불쾌했다. 신나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약을 했는지, 잇몸에 살이 빠져, 치아 사이가 벌어진 고등학생의 입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입 좀 닦아, 형씨. 그 녀석이 말했다. 

 

　「전부 내 놔. 임마, 뭐해. 빨리 내 놔.」 

　신지는 과장해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니, 너희들 거지야?」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0엔 정도는 줄 수 있어. 주지 않을 수가 없지, 땅바닥에 엎드려 애원하면.」 

　"이빨 틈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두 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히죽히죽 웃었다. 

　「너 중학생이지? 형님들을 대하는 말투가 싸가지 없군.」 

　그렇게 말하면서 신지의 어깨를 잡고 무릎으로 배를 쳤다. 신지는 배에 힘을 주며, 참았다. 실제로 참아내야 할 쇼크도 아니었다. 겁을 주기 위한 무릎차기였다. 이 녀석들은 아마 같은 또래의 고등학생들하고는 제대로 맞짱도 뜨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신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등학생의 몸을 밀쳐내고 말했다. 

　「뭐야, 지금. 러시아 식 포옹인가?」 

 

　그 녀석들은 아마 '포옹'이란 단어조차 모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신지의 말투 그 자체에 반응했는지, "이빨 틈새"는 삐쩍 마른 얼굴을 찡그렸다. 

　「웃기지 마, 짜식아.」 

　신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이것도 전혀 별 볼일 없는 위력이었지만, 그래도 신지의 입 안이 약간 터졌다. 신지는 입에 손가락을 넣고, 그 상처를 확인했다. 따끔, 아팠다. 

　「야, 빨리 내 놔. 지갑 째로.」 

　고개를 숙인 채로 신지는 씨익 웃었다.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빨 틈새"가 잠깐 찔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지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먼저 손을 댄 건 너야.」 

　말하면서, 손에 든 하드커버의 책으로 쇼트 훅을 먹이듯이 "틈새"의 그 냄새나는 입에 일격을 가했다. 이가 부러지는 감촉이 느껴지고, "틈새"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나머지는 겨우 10초 안에 정리가 되었다. 신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준 숙부의 강의 항목에는 싸우는 방법이 들어 있었다. 이런 정도의 상대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웅크리고 앉은 고등학생들과, 삥 둘러서서 보고 있는 행인들을 곁눈질하면서 서점까지 가서 두리번거리니, 게이타는 만화 매장에 있었다. 사려던 책은 이미 가게 봉투에 넣어 손에 들고 있었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기에 신지가 부르자, 「미안, 미안. 구경하다 보니 다른 책도 사고 싶어져서.」 라고 말했다. 그리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왜 그래, 그 입은?」 이라고 물었다. 신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자.」 라고 했지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신지가 세 명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골목 모퉁이에 게이타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가 바로 사라졌던 것이다. 경찰이라도 부르러 갔나 생각했지만(뭐 어쨌든 범죄자 단속보다는 선량한 일반인 단속에 더 열심인 경찰이니, 믿을 만한 구석도 없었지만), 역시 갖고 싶은 책이 또 있었던 건가? 그런 건가? 

　그 때문에 시로이와 읍까지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신지의 마음은 별로 편치가 않았다. 

 

　분명히 게이타는 신지라면 세 명의 고등학생 정도는 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리라, 그건 맞는 이야기다. 게이타는 싸움에 휩쓸려 다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맞다. 아마 경찰을 부르는 것도 고등학생들에게 얼굴을 찍히기 싫어서 안 했겠지. 그래. 그리고 자기가 한 짓을 신지에게 사과할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하긴, 이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숙부가 늘 이야기하던 것처럼, 배짱이 없는 것도, 비겁한 짓을 하는 것도 본인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일도 그 사람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신지가 산 전문서적은 표지 커버가 찢어져 버렸다. 게다가 끄트머리에 "틈새"의 이빨 자국과 침 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신지에겐 그것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펼칠 때마다 그 불쾌한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신경질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신지는 책이 찢어지거나 더럽혀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읽을 때도 반드시 때가 타지 않게 커버를 벗겨내고 읽었다. 숙부가 말했다. 다만, 무슨 결과가 생겨 그것이 우리들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우리들은 원인이 된 것에게 벌을 줘야 하는 거야, 신지. 분풀이를 위해서는 말이야.

 

　그래서 신지는 그 일이 있은 뒤로 이이지마 게이타를 일정한 거리를 둔 친구로만 사귀겠다고 하는 벌을 마음 속으로 내렸다. 뭐, 대단한 페널티는 아니다. "이이지마, 절교야." 라고 하는 이야기도 어른스럽지 않고, 뭐 이 정도 벌이면 괜찮지 않은가? 서로를 위해서. 이렇게 하찮은 이야기다. 유타카에게도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찮은 이야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이 게임에서는 죽는 것이 아닌가? 이건 화풀이가 아니에요, 숙부님. 이것은 당신께서도 자주 말씀하셨듯이 리얼리티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이 녀석과 절교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 

　유타카의 말을 받으며, 이이지마 게이타가 두 팔을 펼쳤다. 오른손의 부엌칼이 달빛을 받아 번쩍 빛났다. 

　「우리 친구 아니야?」 

　신지는 그래도 총을 내리지 않았다. 

　게이타가 신지의 그런 보습을 보고 거의 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부엌 칼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자, 나는 적의가 없어. 이제 됐어?」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빨리 꺼져.」 

　게이타의 얼굴에 이번에는 분노의 기색이 비쳤다. 

　「어째서? 왜 나를 믿지 않는 거지?」 

　「신지!」 

　「닥치고 있어, 유타카.」 

 

　그 때 게이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잠시 아무 말 없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 때 일 때문이니? 그런 거야? 내가 도망간 것 때문이야? 그래서 나를 믿지 않는 거니?」 

　신지는 총을 겨눈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신지.」 

　게이타의 목소리가 다시 애원조로 변했다. 거의 우는 소리였다. 

　「사과할게. 미무라. 용서해 줘, 미무라.」 

 

　신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게이타의 말이 진심인지, 연기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떨쳐 버렸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유타카를 위헌에 빠뜨릴 수는 없다. 어느 나라의 국방 총성의 원칙─상대의 의지보다 능력을 갖춰라. 그리고 오전 한 시의 시간 제한은 계속 다가오고 있다. 

　「신지, 도대체….」 

　신지는 오른손으로 유타카를 제지했다. 게이타가 앞으로 다가섰다. 

　「제발. 혼자 있으면 무서워. 나도 끼워 줘.」 

　「오지마!」

　신지가 외쳤다. 

 

　이이지마 게이타는 우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또 다가섰다. 조금씩 신지와 유타카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신지는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그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메마른 총소리와 함께 베레타에서 튀어나온 탄피가 달빛에 창백한 궤적을 그리며, 게이타의 발 아래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게이타는 그것을 마치 희한한 화학 실험이라도 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다가섰다. 

　「멈춰! 어쨌든 멈추란 말이야!」 

　「나도 끼워 줘, 부탁이야.」 

　게이타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진 뻣뻣한 태엽 인형처럼, 또 발을 내딛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신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게이타가 부엌칼 이외에 무언가를 빼든다면 오른손이다. 겨냥할까?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지? 정확하게 틀림없이? 물론. 

　이제 망설일 수 없다. 신지는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 끝이 쓱 움직였다. 탕, 하는 소리가 나기 바로 전에, 신지는 느꼈다. 땀이다. 긴장해서 땀이 난 것이다, 나는. 

　맥이 빠졌다. 이이지마 게이타가 오른쪽 상반신을 맞은 듯이 몸이 기울어졌다. 투척 직전의 투포환 선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다음 순간 털썩 무릎을 꿇고, 모로 쓰러졌다. 오른쪽 가슴의 구멍에서 작은 분수가 솟아오르는 것이 밤인데도 확실히 보였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신지, 뭐하는 거야!」 

　유타카가 외치며 게이타에게 달려갔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입을 멍하니 벌린 게이타의 몸에 손을 대고, 그리고 약간 머뭇거리더니 그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유타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죽었어.」 

　신지는 총을 잡은 채로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하는 목소리가 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만, 목욕탕에서 혼잣말을 할 때처럼 메아리가 퍼졌다. 설마. 마음 먹은 슛은 벗어나지 않아. 그게 "제 3의 사나이" 미무라 신지 아니야? 시로이와 중학교의 천재 가드, 미무라 신지 아니야? 

 

　신지는 일어서서, 그리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자기가 갑자기 사이보그가 된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미무라 신지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터미네이터가 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천천히 이이지마 게이타에게 다가갔다. 그런 신지를 유타카가 올려다 보았다. 

　「뭐야, 신지! 왜 죽였어!」 

　신지는 우두커니 선 채로 대답했다. 

　「이이지마가 부엌칼 말고 다른 무기를 갖고 있으면 골치 아프다고 생각했어. 팔을 겨냥했어. 죽일 생각은 없었어.」 

　유타카는 그 말을 듣고, 얼른 이이지마 게이타의 몸을 뒤졌다. 거의 신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듯이 데이 팩 속도 뒤졌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 너무해, 신지! 왜 믿지 않은 거야?」 

　신지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었다. 숙부님, 저는 잘못한 게 아니죠? 네? 

 

　신지는 아무 말도 없이,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타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렇지만─그렇다─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실수 하나에 얽매어 있을 때가 아니다. 유타카의 얼굴에 뭔가가 스쳐 지나간 것은 신지가 그 말을 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유타카의 입이 부들부들 떨렸다. 

　「설마 신지, 설마….」 

　신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뭐?」 라고 물었다. 

　유타카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신지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 유타카의 떨리는 입술에서 또 말이 새어나왔다. 

　「신지, 설마 일부러, 사실은….」 

 

　신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왼손에 든 베레타를 꽉 쥐었다. 

　「내가, 내가 시간이 아까워서 이이지마를 일부러 쏘았다고 하는 거야? 지금?」 

　그렇지만 유타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제는 뒷걸음질치면서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사실은, 사실은….」 

　신지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타카, 뭐야? 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사실은, 사실은 도망친다는 건, 사실은….」 

　유타카의 말은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지만, 물론 머릿속의 CPU속도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신지이기 때문에 이미 유타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설마. 

　그렇지만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말하자면 유타카는 신지가 이 게임에 대해서, "싸울 마음"이 되어 있는 게 아니냐, 애당초 도망 갈 생각 같은 건 없는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이지마를 쏜 것이다. 신지의 얼굴이 놀라움에 일그러졌다. 입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로 외쳤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렇다면 너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유타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유타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신지는 그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잘 때 보초를 세운다거나 하는 식으로, 신지가 살아 남기 위해 유타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만 잠깐만. 사카모치에게 저항하기 위해 나는 PC를 사용하기도 하고, 그게 실패한 뒤에도 이만큼 준비를 해 오지 않았어? 머리가 좋은 나니까. PC도 그리고 휴대전화도 적당히 만져 유타카를 믿게 했고, 가솔린이나 비료를 입수한 것도 그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 게임에서 우승하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손에 든 무기가 권총 한 자루인 이상, 특제 화약은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쓸 만한 무기가 될 거라고? 분교 폭파 계획 실행 직전에 내가 "역시 그만두자." 라고 할 작정이었다고? 해킹 건이 "안 되겠어." 라고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잠깐 기다려. 그럼 대체 분교에 옆에 쳐 놓은 그 연실은 무엇이었지? 현재 전화회선이 끊어진 이 섬에서 내가 실을 이용한 전화 회사라도 설립하여 도박이라도 하려고 했다고 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건 기막히게 교묘한 눈속임이라고? 아니, 너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용법이라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려는 거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가나이 이즈미의 복수를 하겠다고 네가 말했어. 나는 돕겠다고 말하고, 너는 울지 않았니? 그것도 내 트릭 때문이었다는 거야? 그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유타카? 그런 식이면 뭐든 의심할 수밖에 없어. 지나친 생각이야. 너무 심해. 그런 생각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웃겨. 네 농담보다 약간 더 재미있어. 너 지쳐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야?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면 유타카도 그런 의심이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타카는 이런저런 것을 두루 감안해서 신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피로해서, 유타카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인 이이지마 게이타가 눈 앞에서 죽은 충격 때문에,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던 한 가지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 분명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신지 자신은 유타카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데. 

 

 

 

 

　신지를 휩싸고 있던 무력감이 갑자기 무게를 더했다. 수평 대항 12기통, 터보 엔진 부착. 이런 정도의 무력감이라고 하면 엄청난 파워입니다. 사기만해도 이익입니다, 손님. 

　신지는 베레타의 격철을 풀고, 유타카에게 던졌다. 유타카가 머뭇거리면서도 그 총을 받아 들었다. 신지가 말했다. 힘이 쭉 빠져, 무릎에 손을 댔다. 

　「나를 믿을 수 없다면 지금 나를 쏴, 유타카. 상관없으니까 쏴.」 

　유타카가 눈을 크게 뜨고 신지를 바라보았다. 신지는 몸을 숙인 채로 말했다.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이지마를 쏜 거야. 제길.」 

 

　유타카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아ㅡ 아!」 하고 거의 우는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미안해! 미안해, 신지! 나는 이이지마가 죽어서 너무 놀랐어. 그래서….」 

　유타카는 신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엉엉 울었다. 신지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짚은 채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음 어딘가,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자신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어이. 어이. 지금 이러고 있을 때야? 적에게 둘러싸여 있는 걸 잊었어? 시계를 봐. 이제 시간이 없어. 그것은 숙부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어지간히 지친 신경, 피로, 유타카에게 의심 받았다고 하는 쇼크의 방해를 받아 의식의 영역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저 울고만 있었다. 유타카. 나는 너를 지켜 주려 했는데. 의심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너를 믿었는데. 아아, 어쩌면 이이지마 게이타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믿고 있는 상대가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을 때의 심정이란 것은. 내가 너무 심한 짓을 한 거야. 그 슬픔과 무력감, 후회 같은 것이 한 덩어리가 된 감정 속에서 신지는 따르르르르륵, 하는 왠지 낡은 타이프라이터 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몸 여기저기에 부젓가락이 꽂힌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이미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였지만, 그 통증이야말로 신지에게 정신이 들게 했다. 신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던 유타카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너머, 농협 주차장 제일 안쪽에 교복 그림자가 보였다. 손에 총을ㅡ권총보다 큰ㅡ마치 카스텔라 상자 같은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몸에 꽂힌 무언가ㅡ당연히 총알이다, 제길ㅡ는, 유타카의 몸을 관통해서 자기에게 맞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 안이 뜨겁고, 욱신거렸지만(총알이 몸 안에 들어왔으니, 당연하잖아?) 신지는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쓰러뜨리며 유타카가 떨어뜨린 베레타를 집어 들었다.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서자, 그림자 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를 향해 겨누었다. 연속해서 발사했다. 배를 향해. 

　기리야마 가즈오는 그 전에 오른쪽으로 몸을 휙 움직였다. 또 따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리야마의 손 쪽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러자 조금 전의 통증보다 훨씬 더한 쇼크가 오른쪽 옆구리, 왼쪽 어깨죽지, 왼쪽 가슴에 느껴졌다. 신지의 손에서 베레타가 떨어졌다. 그렇지만 신지는 그 때 이미 농협 건물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깐 비틀거렸지만, 그러나 몸을 숙이고 달렸다. 바로 미닫이 문 안으로 머리부터 뛰어 들어 갔다. 총탄 튀는 불꽃이 신지를 쫓아왔다. 

 

　그 순간 신지의 오른쪽 발 끝, 농구화의 발톱 부분을 날려버렸다. 이번에는 진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신지는 멈출 수가 없었다. 미닫이 문 뒤에 놓아둔 등유 통을 잡고는 트랙터와 콤바인이 놓여있는 어둠 속을 거의 왼팔과 오른 발만으로 기어서 후퇴했다. 오른손으로 등유 통을 끌었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마 몸에 열 발 이상의 총알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축 늘어진 오른쪽 발 끝, 가장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이미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농구화 끝을 힐끔 보았다. 이제 나는 농구를 할 수 없다. 진짜 무리다. 혹시 농구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천재 가드의 전설은 이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렇지만 신지는 그보다도 유타카를 생각했다. 유타카는 아직 숨이 붙어 있을까?

 

 

 

 

　기리야마!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 신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훌륭하군. 너는 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하기로 한 거로구나. 그렇다면 나를 따라와. 유타카는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움직일 수 있어. 유타카를 확인사살하는 건 나중에 해도 돼. 나를 따라 와. 제발 나를, 따라 와. 그런 신지의 뜻에 따르기라도 하듯이, 트랙터 아래의 틈새로 보이는 미닫이 문. 그리로 밀려들어오는 푸른 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다음 순간, 또 따르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플래시를 터뜨리는 듯한 빛이 연속되면서, 건물 안에 총알이 뿌려졌다. 어디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농기구의 일부가 박살이 나고, 반대편 창문이 박살이 났다. 총소리가 멈추었다. 총알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기리야마는 바로 매거진을 바꿔 끼울 것이다. 

　신지는 가까이에 있던 드라이버 같은 것을 집어 왼쪽으로 던졌다. 뭔가에 맞아 탕, 히는 소리가 나더니, 다음에는 콘크리트 바닥에 툭 떨어졌다. 기리야마가 그쪽을 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쪽을 중심으로 부채꼴을 그리듯이 총알을 퍼부었다. 신지는 엎드린 채로 총알을 맞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총소리가 멈추었다. 신지는 고개를 들었다. 기리야마는 이미 건물 안에 들어온 듯, 기척이 들렸다. 

　그래. 신지는 피로 물든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나는 이쪽이야. 이리 와. 

 

　신지는 오른손으로 등유 통을 들어올려, 자기 배 위에 얹었다. 그리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시 왼쪽 팔과 왼쪽 다리만 써서 후퇴했다. 등에 뭔가 딱딱한 상자 같은 것이 닿아, 그것을 피해가면서 물러났다. 물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기리야마는 자신이 이쪽 어둠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계속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발각될 수밖에 없다. 기리야마는 몸을 낮추고 농기계나 수리중인 경트럭 들의 아래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대쪽으로 2층의 윤곽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리고 입구 쪽에서 그리로 올라가는 철계단도. 몸이 괜찮은 상태였다면 거기 숨어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기리야마를 덮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럴 수가 없다. 

　동쪽 벽 쪽에 짐수레가 있었다. 짐을 운반하기 위한, 작은 바퀴가 네 개 달린 손수레였다. 그리고 그 너머 쪽은 건물 구석의 칸막이를 한 사무실이었다. 바로 옆에 밖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미닫이 문 쪽은 다 열어 놓으면 차도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지만, 이쪽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문이었다. 그 문은 닫혀 있었다. 

　저 문은 분명히 내가, 자물쇠를 채웠다. 다른 모든 창문과 함께. 저 자물쇠를 여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신지는 손수레 쪽으로 몸을 끌며 그 옆까지 가서, 등유 통을 그 위에 살짝 얹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다. 비닐 끈으로 매달아 놓았던,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고무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전지와 통전 장치를 등유 통 위에 놓았지만, 이미 단단하게 고정시킬 여유가 없었다. 탈곡기 오른쪽으로 기리야마의 발이 보였다. 

　이것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렇지만 유타카나 나나 이제는 산 위로 올라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특별 프레젠트야, 기리야마. 

　신지는 수레를 뒤에서 왼발로 힘껏 찼다. 그것이 이런저런 잡동사니 틈새를 뚫고 기리야마 쪽으로 굴러가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출입구의 손잡이 쪽으로 달려갔다. 

　자물쇠는 0.2초 만에 열렸다. 신지는 이미 발톱이 날아간 오른발까지 동원하여 바닥을 차고, 거의 문에 몸 밖으로 던지듯이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 순간 신지의 등 뒤에서 농협의 슬레이트 벽이 후욱 부풀어 오르고, 그리고 섬 전체를 뒤덮은 밤의 공기를 엄청난 굉음이 뒤흔들었다. 기리야마가 슈야에게 던진 수류탄 소리보다도 몇 배나 더 컸다. 신지는 아, 내 고막이 완전히 찢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엎드린 몸이 폭발에 뒤이은 폭풍 때문에 땅바닥에 밀리면서 이마의 피부가 벗겨지고, 주위에 무슨 파편과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날아왔다.

　그러나 신지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순간, 원래 건물의 벽이 있던 언저리에, 그 수리 중이던 경트럭이 완전히 뒤집혀서 허공에 떠 있었다. 아마 작키로 들어올려 놓았기 때문에 폭풍이 강한 압력으로 아래 쪽에 작용하여 날아오른 것일 것이다. 유리와 슬레이트, 콘크리트 등 여러가지 작은 조각(이미 몸에 몇 개인가가 꽂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똑바로 날아온 것이 아니라, 일단 공중에 날아올랐다 떨어진 것들이다.)이 가득 찬 가운데, 그것은 천천히 회전면서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고, 주차장 한복판에 쿵, 하고 옆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90도 옆으로 굴러, 완전히 뒤집히더니 멈췄다. 뒷부분의 짐칸이 마치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어찌된 일인지 타이어가 붙어 있지 않은 차축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작은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그리고 다카마츠 북부 농협 오키 섬 출장소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속에서, 이제는 골조밖에 남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2층이 있는 북쪽 벽만이 겨우 남아 있었고, 그 2층은 연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지붕도 남쪽은 거의 다 날아가버려, 안에 있던 농기구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구르고 있었다. 밤인데도 그 모든 것이 검게 그을려 있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뭔가가 타고 있는지, 밝은 불꽃이 두세 군데 보였다. 

 

　신지가 뛰어나온 출입구는 벽의 잔해에 아래쪽 경첩만을 남긴 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듯이 신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칸막이가 되어 있던 사무실도 형체가 없어졌다. 거기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된 까닭인지 사무용 책상만이 역시 폭풍에 밀린 콤바인에 부딪힌 듯이, 무너지지 않은 벽에 붙어 그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뭔가가 아주 높이 떠오른 것이 있다가 나중에 떨어졌는지 한참 있다가, 연기 속에서 쨍 하는 높은 금속음이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덮은 벽이나 다른 것들의 파편을 떨쳐내고, 신지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 건물의 잔해를 바라보며 "아"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다. 등유 통으로 만든 수제 수류탄은 잘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정도 파괴력이라면 틀림없이 그 분교를 날려 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다 지난 이야기다. 지금은 어쨌든 눈 앞의 적을 쓰러뜨렸다. 

 

　「유타카….」 

　중얼거리면서 신지는 겨우 몸을 일으켜 기와 조각 위에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입을 벌린 순간, 그 입에서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가슴에서 배에 걸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이제는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조차 이상했다. 그러나 양손을 딛고 오른쪽 발을 발뒤꿈치부터 내리고, 다음에 왼발을 뻗어 간신히 일어섰다. 유타카가 쓰러져 있는 주차장 안쪽으로 눈길을 돌려ㅡ

　그리고 신지는 보았다. 완전히 뒤집힌 경트럭 문이, 그것도 망가졌는지 끼익 하고 둔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을(그 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청각이 회복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리야마 가즈오가 불쑥 내려섰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스텔라 상자 같은 머신 건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아니─

　신지는 차라리 웃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피에 젖은 입술은 웃는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농담이겠지? 

 

　그 때는 이미 기리야마가 총을 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9mm 잉그램 총탄의 세레를 받고, 신지는 기와장이 뒤덮인 땅바닥을 뒤로 비틀거리며 밀려 내려갔다. 뭔가가 등에 부딪혔다. 이제는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그것은 주차되어 있던 웨곤의 앞부분인 것 같았다. 그 웨곤도 폭풍 때문에 뒷부분이 뒤에 있던 전신주에 부딪혔고, 나무로 된 전신주가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 앞 유리창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건물 안의 불꽃이 내비치는 밝은 빛을 배경으로 기리야마 가즈오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기와에 반쯤 묻힌 유타카가 엎드려 있었다. 바로 옆에는 드러누운 자세로 쓰러진 이이지마 게이타의 얼굴이 신지 쪽을 향하고 있었다. 

 

　생각했다. 기리야마! 제길, 나는 결국 네게 진 건가? 

　생각했다. 유타카, 내가 잠시 방심했어. 미안해. 

　생각했다. 숙부님, 죄송해요. 

　생각했다. 가오미. 너는 행복한 연애를 해라. 오빠는 이제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없어. 오빠는….

 

　기리야마의 잉그램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신지의 사고는 거기서 멎었다. 총탄이 신지의 언어 중추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머리 뒤에서 이미 금이 갔던 앞 유리창이 깨어져 대부분 차 안으로 쏟아졌지만, 아주 작은, 안개 같은 파편이 먼지에 뒤섞여 신지의 몸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신지는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기와 조각이 튀어 올랐다. 뇌의 다른 부분이 기능을 멈추기까지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왼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가 존경하던 숙부의 유품이며, 예전에 숙부가 사랑했던 여인의 피어싱을 적셨다. 건물 안의 불꽃에서 나온 빛을 받아 아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더 서드 맨"이라고 불리던 사나이, 미무라 신지는 이렇게 죽어갔다. 

 

【남은 인원 1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