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어머니의 기도 (Stella Dallas) -7- 야간 열차

섬에서 돌아온 로렐 일행이 잔교에서 호텔을 향해 막 걸음을 옮길 때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어머, 저기 이상한 여자가 온다!"

 

모두 앞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한 여자? 어디?"

"저기 봐, 저기야."

"어머, 정말! 이상한 여자다!"

"저런 이상한 옷을 입다니……. 꼭 도깨비 같다."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호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흰색과 검은색의 거친 세로줄무늬의 아주 이상한 옷을 입은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요?

로렐은

'앗!'

하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 여자는 로렐의 어머니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웃는 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점점 호숫가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로렐을 보면 기뻐하며 달려와서 큰 소리로 말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었습니다.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로렐은 당황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로렐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큰일났어! 나 잃어버린 게 있어!"

 

로렐이 말하자, 모두 뒤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지?"

"손목시계를 어디선가 잃은 것 같아. 보트 속에 있을지도 몰라. 나 잠깐 보고 올게."

 

로렐이 달려가자,

"그럼 모두 가서 찾아 주자."

하고 케티 일행이 뒤따랐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리처드도 끼어 있었습니다.

리처드는 따라온 사람들에게,

 

"됐어요. 늦어질테니 너희들은 먼저 가요. 내가 로렐하고 함께 찾아볼 테니까."

 

하여 모두 돌려보내고, 로렐을 앞질러 보트에 뛰어올랐습니다.

깔개를 털어 보기도 하고, 널빤지와 널빤지 사이를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샅샅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손목시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발견될 리가 없었습니다. 로렐이 손목시계를 차고 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찾고 있는 리처드에게, 로렐은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벌써 잔교 근처까지 와서, 거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앞을 케티 일행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케티 일행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어머니가 '내가 로렐의 어머니예요.' 하고 일행에게 밝히지 않을까 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로렐은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곧 새로운 걱정이 로렐의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어머니는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로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리처드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그 전에,

"저 도깨비 같은 여자가 실은 제 어머니예요."

하고 리처드에게 말해 버리는 쪽이 얼마나 마음 편할까요.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리처드가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보트 안에는 없는 것 같아요. 혹시 섬에 떨어뜨린 게 아닐까요?"

 

리처드가 이렇게 말하자, 로렐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지금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럼 다시 한 번 섬으로 가 봅시다. 노를 열심히 저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어요."

 

리처드는 재빨리 노를 저었습니다. 섬에 갔으나, 물론 시계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보트 안에서나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서나,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리처드는, 로렐이 잃어버린 시계만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로렐은 좀더 다른 슬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리처드 씨."

 

호텔 현관 앞에 이르렀을 때, 로렐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제 시계를 열심히 찾아 주신 일을 전 결코, 결코 잊지 않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별 말을 다 하는군요. 시계를 찾지도 못했는데요. 그런데도 인사를 하다니, 기분이 이상해요."

"아뇨. 시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전 당신의 친절이 고마웠어요. 당신의 다정한 마음,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어요."

 

울고 있지 않은가 생각될 만큼 작고 슬픈 목소리로, 로렐은 되풀이해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다니, 그럼 우리는 이제 만나지 못하게 된단 말인가요? 로렐,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요."

 

리처드는 로렐의 마음을 바꾸려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케티랑 어떻게 되었을까? 늦었지만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합시다."

"미안하지만, 전 오늘밤엔 제 방에서 먹겠어요."

"그럼 내일 아침……."

"……네."

 

로렐은 억지로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믿지 못하겠군요. 내일 아침에 식당에서 기다리겠어요. 당신이 식당에 올 때까지 식사하지 않고 기다리겠어요. 알겠죠?"

"……."

 

로렐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뭘 잃어버리고 왔었다고? 그래도 너무 늦었잖니?"

 

로렐이 호텔 방으로 가자,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그러브노어 부인이 보이를 보내 알려주어서, 네가 잃은 것을 찾으러 간 줄 알았지. 그때까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대체 뭘 잃었기에……?"

"손목시계요."

"손목시계?"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손목시계라면 잃어버릴 리가 없지. 너, 오늘 아침에 나가면서, 잃을지도 모르니까 차고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잊었니?"

"그랬었나요?"

"그랬었나요가 뭐야? 세면대 선반을 봐라."

"……그래요? 내가 왜 이럴까? 갑자기 잘 잊으니……."

 

로렐은 힘없이 웃고 세면대로 가서 시계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재미있었니?"

"네, 재미있었어요."

"다 얘기해 봐요. 엄마는 너한테서 오늘 얘기를 듣는 걸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모르니까."

"네, 이야기할게요. 그보다도, 엄마는 어땠어요?"

"나? 난 기분이 아주 좋았지. 의사 선생님이, 이제 이 부근을 걸어도 된다고 해서, 너를 한 번 놀라게 해주려고 잠시 베란다에 앉아 호수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너희들 보트가 돌아오더구나. 그래서 잔교 쪽으로 걸어갔었지. 네가 알아보지 못했다니 이상하지. 난 벌써 너희들을 알아보았는데……."

"그리고 어떻게 하셨어요, 엄마?"

 

로렐은 모른 체하고 물었습니다.

 

"네가 남자 아이하고 다시 보트를 타고 가더구나. 어딜 가는지 걱정되었지만, 어차피 곧 돌아오겠지 생각했어. 그리고 한 시간 남짓 벤치에 앉아 기다렸지 뭐니. 너하고 같이 간 남자와 인사나 해 두려고 생각해서……"

"그래서 저녁은? 식당에서 드셨어요?"

"아니다. 식당엔 가지 않았다. 이 방에서 먹었어."

"그럼 엄만 아무도 만나지 않았군요."

"그래, 아무도……."

 

로렐은

'잘 됐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저 잠깐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오고 싶은데 괜찮아요? 곧 돌아올게요."

"그래, 좋아. 좋고말고. 곧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천천히 놀다 오너라. 하지만 옷을 갈아입는 게 어떠냐? 머리도 좀 빗고……"

"괜찮아요. 그럼 잠깐……"

 

로렐은 나는 듯이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 사무실로 갔습니다. 사무실에 사무 보는 아저씨가 혼자 있었습니다.

 

"저, 미안하지만……, 저희들 내일 여길 떠나려고 하는데……, 계산해 주세요."

 

갑자기 로렐이 이렇게 말하자, 아저씨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네? 내일 떠나신다고요? 어머니는 아직 병을 앓고 계신데……."

"이제 다 나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집에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요? 바쁘겠군요. 그럼 계산을 합시다. 내일 몇 시 기차로 떠나세요?"

"아침에 제일 먼저 떠나는 기차를 예약해 주세요."

"제일 먼저 떠나는 기차요? 아가씨, 그건 소용 없어요. 그렇게 일찍 떠나셔도, 저 쪽에 가서 갈아탈 기차는 저녁때밖에 없으니까요. 점심 때 떠나시는 것이 좋을 텐데요."

 

사무실 아저씨가 친절히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로렐은, 내일 아침 일찍,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게 호텔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습니다. 갈아탈 기차를 저녁때까지 기다리는 것 정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역시 첫 차로 떠나겠어요. 예약을 부탁해요."

 

로렐은 어이없어하는 아저씨를 남겨두고 급히 사무실에서 나와버렸습니다.

 

"어머, 벌써 오니? 왜 더 놀다가 가지 않고……."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듯이 로렐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놀고 있을 곳이 못 돼요. 전 지금부터 짐을 꾸리겠어요."

"짐을 꾸리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내일 아침 첫 차로 여길 떠나요. 그러니까……."

"난 네 말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니?"

"미안해요, 엄마. 부탁이니, 어쨌든 제 말대로 해 주세요. 전 지금 아래층에 가서 사무실 아저씨한테, 내일 아침 일찍 떠날 테니까 계산해 달라고 말하고 왔어요."

"로렐, 너 정신이 이상해진 거 아니냐?"

 

어머니가 당황해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뇨, 이상 없어요. 정신은 멀쩡해요, 엄마."

"그럼 왜 여길 떠나야 하니?"

"전 여기에 있기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더 참을 수가 없어요."

"알았다."

 

어머니는 눈을 반짝 빛내고 말했습니다.

 

"너, 그 그러브노어 아주머니 아들하고 싸웠구나? 그래서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거지?"

 

어머니는 틀림없이 그런 일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웃었습니다.

 

"친해질수록 싸움을 하는 법이지. 그런 싸움 정도는 하룻밤 지내고 나면 깨끗이 잊게 돼요. 로렐, 신경질 부리지 말고 쉬어라."

 

어머니는 숫제, 로렐이 리처드와 싸운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로렐은 생각했습니다.

 

"전 어쨌든 짐을 꾸리겠어요."

 

로렐은 고집스럽게 말하고, 트렁크를 덜거덕거리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험악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아, 내가 버릇을 잘못 들여 놨지. 이런 벽창호로 기를 생각은 없었는데……."

"이제 그만해 두세요, 엄마. 먼저 쉬세요."

"아니다,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로렐, 잘 들어라. 이 호텔에 와 있는 사람은 모두 집안이 좋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다. 너도 이제 슬슬 어른 쪽에 끼여야 하니까, 집안 좋은 그 사람들과 사귀어 친해지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넌……, 넌……."

 

어머니는 울면서 쉬지 않고 한 맺힌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내가 앓아 누워 있는 동안, 넌 실컷 재미있게 지내지 않았니? 그런데 난 뭐니? 넌, 내가 겨우 바깥 출입을 하게 되니까 시시한 싸움이나 하여 이 호텔을 떠나겠다고……."

 

그런데도 로렐은,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해도, 귀라도 먹은 듯이 부지런히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밤 아홉 시쯤, 로렐과 어머니는 침대차 속에 있었습니다.

계획대로 로렐은 아침 첫 기차로 호텔을 떠나 오전 열 시에 기차를 갈아 타는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밤 여덟 시, 기차가 올 때까지 열 시간이나 그 역 대합실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분이 몹시 나빠진 어머니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로렐은 물을 떠 오기도 하고, 빵이나 과자를 사 오기도 하면서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침대차를 탔습니다.

어머니는 로렐을 등지고 누워 잠자코 있었습니다. 가끔 한숨을 쉬는 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로렐도 물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엄마."

 

조용히 부르고, 로렐은 뒤에서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저 때문에 아직도 화가 안 풀리세요? 미안해요, 엄마."

 

그러자 어머니는 로렐의 손을 잡아당겨 꼭 쥐고,

 

"바보 같은 소리. 그야, 처음엔 화가 났었지. 그렇지만 이제 아무 생각도 없다. 한 가지 일에 오래 매달리는 것, 난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머, 좋아라. 전 줄곧 그 일만 걱정했어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자거라, 피곤할 테니."

"네, 엄마도 주무세요."

"그래."

 

이윽고 어머니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로렐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리처드 씨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침에 식당에서, 로렐이 올 때까지 식사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한 리처드…….

그 사람에게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살짝 호텔을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미안해요, 리처드 씨.'

 

마음 속으로 사과하면서 로렐도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한 시간쯤 잤을까?

'덜컹' 하고 기차가 한 번 크게 흔들리더니 멎었습니다. 그 순간, 로렐은 잠에서 깼습니다.

두터운 커튼 너머 쪽에, 로렐 모녀의 침대와 마주하여 역시 침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낮게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로렐은 무심히 그 이야기 소리를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얘, 그 눈이 예쁜 귀여운 아가씨 있었지? 이름이 뭐랬더라? 로렐이라고 했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높더라."

 

자기 이름이 소곤거리는 이야기 가운데서 튀어나왔습니다. 자기 소문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로렐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정말일까? 어느 모로 보나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아가씨였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호텔 보이한테서 들었으니까……."

"그 굉장한 모습의 여자 말이지? 그 여자가……."

"그래, 그 여자가 그 귀여운 아가씨의 어머니래."

"어쩜, 가엾은 아가씨로구나."

"그 아가씨하고 함께 놀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을 거야. 그 어머니는 호텔에 오자마자 병이 나 버렸어. 그 모녀가 이삼 일만 더 호텔에 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걸 보지 못해서 유감이야."

"그 어머닌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일까?"

"글쎄, 모르겠어. 보스턴에서 살고, 이름이 스텔라 댈러스라는 것 외에는……."

"어쨌든, 그 아가씨가 불쌍해. 발이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어딜 가나 그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하니 말야."

"그래. 아무리 예쁜 아가씨라 해도, 그 어머닐 한 번 보기만 하면 사람들은 아마 모두 아가씨를 싫어할 거야. 그래, 리처드 그러브노어라든가, 날씬한 청년이 그 호텔에 묵고 있었지. 그 청년이 그 아가씨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인데, 그 어머니가 따라다닌대서야 원……."

"정말……불쌍해……."

"망신살이 뻗쳤지."

 

이 때, '덜컹' 하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의 이야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듣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어머니가 혹시 지금 그 이야기를 듣지나 않으셨을까?'

 

로렐이 먼저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로렐은 살며시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됐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어.'

 

로렐은 안심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결코 잠들지 않았었습니다. 자는 체하면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로렐은 잠들었을까? 지금 그 이야기를 듣지나 않았을까?'

하고, 살며시 로렐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습니다.

로렐이 조용히 잠든 것 같아, 어머니는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어머니의 가슴을 메웠습니다. 로렐이 곁에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소리내어 울었을 것입니다. 로렐이 왜 그토록 미친 듯이 호텔을 떠나려고 했는지, 그 까닭을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난 얼마나 바보스런 어머니일까? 내가 하는 일이 다 로렐에게는 방해만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통 모르고 있었다니……. 난 로렐의 어머니로서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이고 싶어, 될 수 있는 대로 몸차림에 신경을 쓰고 화장도 정성들여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로렐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 로렐마저도 나를 창피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서둘러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는 슬퍼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용서해 다오, 로렐. 넌 나를 위해, 그렇게 창피하게 생각하면서도, 한 마디도 나한테 말하지 않았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불쌍한 것……, 가엾게도…….'

 

어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로렐이 잠에서 깬 것은, 창문의 커튼 틈으로 아침 햇빛이 침대 위에 비쳐 들 무렵이었습니다.

 

"안녕, 로렐. 잘 잤니?"

 

어머니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푹 잤어요. 엄마는?"

"엄마도 잘 잤다. 오늘 아침엔 기분이 무척 좋구나."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밝은 얼굴을 보고 속으로 같은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다행이다. 역시, 엄마는 어젯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구나.'

'다행이다. 로렐은 그 이야기를 못 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