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어머니의 기도 (Stella Dallas) -5- 어머니의 마음

"아빠는 건강하시던?"

 

로렐을 마중 나갔다가 아파트로 돌아온 스텔라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습니다.

 

"네, 아주 건강하셨어요."

 

로렐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빠가 엄마에 관해서 뭔가 묻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또 물었습니다.

 

"아뇨, 별로……."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로렐은 놀랐습니다. 사실은, 로렐도 아버지가 어머니의 소식을 한 마디쯤 묻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한 번쯤,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어떤지 너한테 묻는다면 벌이라도 받는다던? 아빠는 이제 엄마 같은 건 죽어 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있겠지?"

"그, 그렇지 않아요, 엄마. 그보다……."

"아냐, 틀림없이 그래."

 

어머니는 로렐이 말을 바꾸려는 것을 가로막고 말을 계속했습니다.

 

"좋아. 너만은 엄마를 떠나지 말아 다오. 네가 없으면, 엄마는 이 세상 살 생각이 없어."

"아니, 엄마. 제가 엄마 곁을 떠나다뇨? 누가 그래요? 제가 몇 번이나 약속했잖아요. 로렐은 언제까지나 엄마 곁에서 살겠다고요."

"그래. 그렇지만 말이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면서 아직도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 어머니를 보고, 로렐은 급히 말을 바꾸려고,

 

"엄마, 저 뉴욕에 가서 아주 아름다운 분을 뵈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분이라고?"

"지난 해에 제가 말씀드렸죠? 모리슨 아주머니라고……."

"아, 다과회에 초청했다는 그 아주머니 말이냐? 어떤 옷을 입었던?"

"아주 엷은 색 옷이었어요. 그것도 노란색이나 파란색이었어요. 그래, 그래. 아주머니의 옷 가운데서 전 잠옷이 제일 멋졌어요. 엷은 노란색이었어요. 전 그 옷이 제일 좋았어요."

"뭐라고? 잠옷?"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 그럼, 그 분하고 한방에서 잤니?"

"그래요. 전 아주머니의 별장에 가서 며칠 동안 지냈어요. 아버지가 일 때문에 먼 곳에 가 계신 동안에요.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는 게 무척 걱정되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가 무척 다정하게 대해 주셨어요."

"다정하다니, 어떻게……?"

"모든 것이 다정했어요. 옷을 갈아 입는 것도 도와주시고, 머리도 빗어 주시고……."

 

로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머니는 점점 더 안정을 잃었습니다.

그 때까지 로렐은 다른 여자를 이렇게 칭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엔 눈을 반짝이면서, 수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리슨 아주머니를 칭찬했습니다.

로렐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은 모리슨이란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로렐을 빼앗긴 듯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초조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모리슨 아주머니라고 했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그래요. 숲 속에 피어 있는 하얀 꽃 같은 분이었어요. 키가 날씬하게 크고요. 그리고 화장을 조금도 하지 않아요. 그래도 아주 예쁘세요. 말도 타고, 수영도 잘 하고……. 아, 그래요. 말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머니의 기분도 모르고, 로렐은 더욱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아빠하고 아주머니는 센트럴 공원에서 처음 만나셨대요. 아빠도 말을 타고, 아주머니도 말을 타고 계셨대요. 아빠는, 아주머니를 앞질러 가기가 미안해서 길을 돌아 가려고 하다가, 길 모퉁이에서 또 만나고 말았대요.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콘이었어요."

"콘이라니?"

"아주머니의 큰아들이에요."

"그 부인, 아들이 있니? 그럼 남편은?"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 일을 하셔야 된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여러 가지로 의논 상대가 되어 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아주머니한테는 꼭 저만한 딸이 있었대요. 그런데 어렸을 때 죽었대요. 그래서 여자 아이가 가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시대요.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힐 수 있는 여자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그래서……."

"알았다고요? 무엇을 알았어요, 엄마?"

 

로렐은 이상해서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스텔라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꼭 다물고 로렐의 곁에서 떠났습니다. 로렐은 묻는 대로 본 일, 들은 일을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로렐의 이야기가 걱정과 울분의 원인이 될 뿐이었습니다.

 

'스티븐은 모리슨이라는 그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려 하고 있어. 그리고 둘이 로렐을 나한테서 빼앗을 작정이야.'

 

전날 읽은 스티븐의 편지의 뜻이 로렐의 이야기로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덤벼든다고 해서 로렐을 빼앗길 줄 알고? 지지 않겠어! 절대로 지지 않아!'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스티븐과 모리슨 부인에 대한 미움이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사야 할 물건이 있다고 로렐에게 말하고 스텔라가 보스턴에 간 것은 그 사흘 뒤였습니다. 물건을 사야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스티븐의 변호사와 만나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스텔라의 몸차림에는 그 유명한 변호사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얼룩말 같은 흰색과 검은색의 거친 세로줄무늬 양복, 별난 모양의 모자, 야한 색깔의 모조 보석 목걸이, 걸을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팔찌, ……모두 요란스러웠습니다.

 

'이러니 스티븐이 함께 살기가 어려웠겠다.'

 

스티븐의 옜 친구이기도 한 변호사는 방에 들어온 스텔라를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조금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친절하게 의자를 권했습니다.

 

"스티븐을 대신해서 왔습니다. 서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타협하고 싶습니다. 스티븐은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타협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조용히 타협하자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불평하지 말고 로렐을 내놓으라는 뜻인가요? 그런 말씀은 딱 질색이에요."

 

스텔라는 처음부터 과격한 말씨를 썼습니다.

 

"아니, 아니, 그렇게 흥분하지 마시고……."

 

변호사는 생떼 부리는 아이라도 달래듯이 느긋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스티븐은 딸을 자기가 맡는 편이 딸을 위해서도 좋고 당신을 위해서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에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 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 새삼스럽게 무슨 얼빠진 소리를 하느냐고 스티븐에게 전해 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로렐이에요. 로렐뿐이에요. 그 아이가 없어지면, 그야말로 난 살아갈 희망이 없어지고 말아요."

"그렇습니까? 난처하군요."

"난처한 건 그 쪽 사정이에요. 어쨌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로렐을 내놓지 않을 테니까. 스티븐은 모리슨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겠지요? 그럴 생각이니까 이번 여름에도 무리하게 로렐을 모리슨 부인에게 데려가서 친하게 해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딱하게도, 로렐은 역시 엄마 곁이 제일 좋다고 말했어요. 스티븐에게 전해 주세요. 내가 로렐을 내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로렐도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요."

 

스텔라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니, 변호사가 말하려는 것을 듣지도 않고 재빨리 방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스텔라가 생각했듯이, 스티븐은 모리슨 부인과 결혼하여 둘이 로렐을 스텔라에게서 데려가려고 계획했을까요?

스티븐은 일 년에 한 번씩 로렐을 만날 때마다, 로렐이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자기와 스텔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벨처 바닷가에서 스텔라에 관한 나쁜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사람을 시켜서 자세히 조사해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스텔라에게 로렐을 맡겨 둘 순 없다. 스텔라와 깨끗이 헤어지고 로렐을 데려오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여 스텔라에게 편지를 쓰고, 또 변호사를 보스턴에 보냈던 것입니다.

스티븐은, 모리슨 부인과 친하게 지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스텔라가 생각한 것처럼 모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스텔라와 헤어지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일과 이 일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모리슨 부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스티븐이 젊었을 때 결혼하기로 약속한 헬렌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헬렌이 바로 모리슨 부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한 뒤 스티븐이 먼 곳으로 일하러 가려 할 때, 헬렌은 울면서 말렸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헬렌의 행복을 기원하며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습니다. 헬렌은 오랫동안 스티븐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헬렌은 드디어 체념하고 모리슨이라는 부자와 결혼했습니다. 네 아이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모리슨이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리슨 부인은, 남편이 남긴 많은 재산을 혼자서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스티븐과 오랜만에 딱 마주쳤던 것입니다. 다행히 스티븐은 법률에 밝은 변호사였습니다.

스티븐은 여러 가지로 부인의 의논 상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모리슨 부인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다정하고 생각이 깊었습니다. 스티븐이

 

'로렐의 어머니도 이런 사람이라면, 로렐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렐을 조금이라도 모리슨 부인과 가까이 지내게 하여, 부인의 좋은 점을 배우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티븐이 모리슨 부인과 함께 로렐을 빼앗으려 한다는 스텔라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스티븐과 모리슨 부인은, 그런 흉계를 꾸밀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존경하고 도우며 깨끗이 사귀고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보스턴에 갔던 변호사가 돌아와서 한 이야기를 듣고, 스텔라가 자기와 모리슨 부인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모리슨 부인과 가까이 지내면 스텔라가 어떤 소리를 하게 될 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텔라 때문에 모리슨 부인이 세상에서 나쁜 평을 듣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습니다.

스티븐은 모리슨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말한 스텔라의 생각을 자세히 전하고,

 

"이제 만나지 않기로 합시다. 당신 같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더 만나다가는 당신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지 몰라서 작별하기로 했습니다."

 

하고 인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