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어머니의 기도 (Stella Dallas) -4- 세 통의 편지

보스턴에서 로렐과 헤어진 어머니 스텔라 댈러스는, 로렐을 태운 기차가 뉴욕 쪽으로 사라져 버리자 플랫폼에 힘없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잠시 동안이나마 로렐과 헤어져 사는 것이 스텔라로서는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로렐, 귀여운 로렐!"

 

스텔라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훌쩍였습니다.

 

"여보세요, 왜 그러세요?"

 

지나가던 역 직원이 스텔라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습니다. 그텔라는 비로소 제정신이 들어, 당황해하며 일어나 세면소로 달려갔습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그냥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했습니다. 정성스럽게 한 화장이 눈물 때문에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 화장을 고치고 힘을 내야지."

 

스텔라는 이렇게 자신에게 말하고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또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스텔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화장을 다시 하고 큰길로 나갔습니다. 물건을 한두 가지 사고, 영화라도 보고 호텔로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텔라가 어느 커다란 가게에 들어서려고 할 때였습니다.

 

"어머, 스텔라 아냐?!"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큰 소리로 부르며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어머, 에피!"

 

스텔라도 큰 소리로 부르면서 그 여자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오랜만이야."

"정말 오래간만이야. 반가워."

 

두 사람은 호들갑스럽게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에피는 스텔라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로서, 카터렉트의 공장에서도 여공으로 함께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텔라는 스티븐과 결혼한 후에도 변함없이 에피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이 그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스텔라, 난 당신이 우리 아이의 훌륭한 어머니가 되길 원해. 저렇게 품위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과 사귀는 건 삼갔으면 좋겠어."

 

언젠가 스티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에피는 내가 어릴 때부터 사귀어 온 친구예요. 지금도 제일 마음이 맞는 친구라고요."

"비록 사이가 좋은 친구라 해도,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 로렐의 교육에 좋지 않아요."

"난 당신의 말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책을 읽어라, 몸차림을 수수하게 해라, ……. 난 에피가 좋아요. 만나면 재미있어요."

 

스티븐과 스텔라는 이런 말다툼을 몇 차례나 되풀이했습니다.

그 뒤, 에피는 어디로 갔는지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10년만에 보스턴에서 딱 마주친 것입니다. 스텔라는 반가워서, 물건을 사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에피와 차를 마시러 조그마한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10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야기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스텔라가 스티븐과 헤어져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에피가 말했습니다.

 

"저런! 왜 원만하게 살지 못했지? 스티븐이란 사람, 나쁜 사람 같지 않던데……."

"나쁜 사람은 아냐. 그런데 뭐랄까, 너무 고상한 체하는 거야. 역시 우리들의 결혼은 잘못되었어. 나하고 스티븐은 출신이 달라. 그 사람은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 공부를 했잖아. 난 가난뱅이에다 교육도 받지 못했으니 어울리질 않지."

"새삼스럽게 그런 말 하면 무슨 소용 있어? 로렐이 불쌍하잖아."

"그래.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로렐을 부모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진 않아. 아,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피, 가르쳐 줘. 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스텔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난처한 사람이군."

 

에피는 스텔라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스텔라, 너 차라리 내 하숙으로 오지 않겠니? 로렐이 없으니 혼자잖아. 호텔에서 혼자 아침부터 밤까지 훌쩍이면 몸에 좋지 않아요. 잠시나마 나하고 함께 지내. 그러는 동안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 누가 알아?"

 

스텔라는 에피의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스텔라는 로렐과 함께 묵던 호텔로 혼자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쑥덕공론을 참고 그 호텔에 있었던 것은, 로렐을 인류 호텔에서 지내게 하고 싶은 오직 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너한테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난 그 호텔에서 나올 거야."

 

스텔라가 힘을 되찾아 말했습니다.

 

"방해가 다 뭐니? 그럼 빨리 호텔에 가서 짐을 꾸려."

 

에피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에 자기 하숙집의 지도를 그려서 스텔라에게 주었습니다.

 

 

 

에피의 하숙이 있는 벨처의 바닷가는, 보스턴과 밀햄프턴의 중간에 있는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해수욕장이라고 해도, 스텔라가 묵던 호텔의 손님들이라면

"저런 너저분한 곳!"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가까이 가려 하지 않을 시끄러운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모여드는 사람들은 어부, 뱃사람, 그리고 가까운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과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싸구려 호텔이나 더러운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값싼 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선술집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피의 하숙으로 옮겨 간 스텔라는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놓였습니다.

마을이 더러우면 어떤가요? 에피의 말투가 거칠고, 옷이 싸구려고 번쩍이면 또 어떤가요? 그보다도 스텔라는 에피의 친절이 기뻤습니다.

 

고급 호텔에선 좀처럼 큰 소리로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피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명랑한 에피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큰 소리로 거침없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스텔라는 몇 년만에 느긋하게 바다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에피나 에피의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고마워, 에피. 덕분에 자유로운 옛날로 돌아온 것 같아."

 

스텔라는 밝은 얼굴로 에피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스텔라로서는 이렇게 즐거운 생활이, 밀햄프턴 마을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스텔라가 술에 취해서 벨처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밀햄프턴 마을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더구나 불행히도, 그 사람이 로렐이 다니는 학교의 임원인 호런드 부인이었던 것입니다.

 

호런드 부인은 그 날, 자동차로 벨처 바닷가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저분한 곳이라면 가까이 가는 것만도 불결하게 여겨서 여느 때는 지나가지 않았는데, 운전사가 길을 잘못 들어 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엉뚱한 곳에 왔구나!'

눈살을 찌푸리고 창 밖을 내다보는 부인의 눈에, 술에 취해 걸어가는 스텔라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호런드 부인은 이튿날, 친한 부인들 대여섯 명을 불러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들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머, 벨처 바닷가라면 상류 가정 사람들은 갈 곳이 못 되잖아요."

"댈러스 씨 부인이 그런 곳에 있었어요? 게다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요?"

 

호런드 부인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습니다.

 

"그래요. 글쎄 그랬다니까요. 그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서커스 광대 같은 옷차림이어서 금방 알 수 있었죠. 게다가, 천박한 남녀들과 꿱꿱 소리지르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다 부끄럽더라고요."

 

호런드 부인은 다른 부인들의 얼굴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우리의 소중한 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그처럼 단정치 못한 어머니를 둔 딸이 함께 공부하게 해도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다른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 마디씩 했습니다.

 

"정말, 학교의 불명예도 되겠어요."

"그런데 호런드 부인, 부인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호런드 부인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고 말했습니다.

 

"전 교장 선생님께, 급히 임원회를 열자고 할 생각이에요. 아직 여름 방학이 끝나지 않았지만, 여름 방학 중이라도 상관없어요.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버려 둘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분의 아이에게 학교를 바꾸라고 해야지요. 그런 어머니를 둔 아이와 우리 딸들을 함께 공부하게 할 순 없어요."

"찬성해요."

"저도 찬성해요."

 

부인들은 금방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호런드 부인으로서는 다행히고, 이 부인들은 모두 학교의 임원들이었습니다.

부인들은 곧 교장 선생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부모들로부터 많은 기부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임원이 될 정도의 부모들은 모두 학교를 위해 남보다 많은 돈을 냈습니다. 그래서 임원회의 의견은 대개 무리하게 통과되곤 했습니다.

교장 선생이 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어찌 되었든, 그 로렐 댈러스라는 학생은 정직하고 착한 학생인데요."

 

교장 선생이 로렐을 두둔하자, 호런드 부인이 분격해서 말했습니다.

 

"지금은 착해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어요. 그 어머니가 곁에서 함께 사니까요. 교장 선생님이 그 학생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신다면, 우리 아이들을 모두 그만두게 해도 상관 없으시겠지요?"

 

그렇게 되면, 학교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교장 선생은 당황하여,

"아, 아닙니다.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로렐 댈러스에게 다음 학기부터 다른 학교로 가라고 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처 바닷가에서 밀햄프턴의 아파트로 돌아온 스텔라는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이제 곧, 로렐이 뉴욕에서 돌아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내일부턴 그 애하고 함께 살 수 있다! 로렐, 나의 소중한 로렐!"

 

자기가 집에 없는 동안에 온 편지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집어 든 것은 로렐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거기에는, 다음날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정확히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 그래. 물론 마중 나가고말고. 넌 어떤 얼굴로 기차에서 내려올래? 두 주일이나 세 주일 동안 뉴욕에 다녀왔다고 해서 우쭐해하면 안 된다. 흐흐흐……."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말하듯이, 로렐의 편지를 읽으며 웃는 얼굴로 말한 뒤 스텔라는 또 한 통의 편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로렐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 선생이었습니다.

 

"허허, 드문 일인데, 뭘까?"

 

별다른 생각 없이 봉투를 뜯었습니다. 읽어 가면서 스텔라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편지를 든 손이 오들오들 떨렸습니다. 스텔라는 침착해지려고 애쓰면서 그 편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읽어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삼가 아룁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입니다만,

　댁의 따님 로렐 댈러스의 학급이 이번에 뜻밖에 인원이 넘쳐서,

　유감스럽게도 다음 학기부터는 따님을 더 맡아 가르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뜻밖의 통지였습니다.

로렐의 학급 인원이 갑자기 늘다니……?

그런 일이 있으면, 아무리 말수가 적은 로렐이라 해도 어머니에게 한 마디쯤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 늘어났을까요?

그런 일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 비록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전부터 계속 다니고 있는 로렐을 왜 그만두게 하는 것일까요?

 

'무슨 착오가 있어서겠지. 이런 일이 있으면 좋을 리 없어.'

 

처음에 스텔라는, 교장 선생이 보낸 편지를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그것은 결코 착오가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스텔라의 머릿속에, 학교에서 한껏 위세를 부리는 마을의 높은 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도 스텔라에게 친절한 말로 대해 준 적이 없는 부인들이었습니다. 스텔라가 말을 걸려고 해도 홱 외면해 버리고, 더러운 것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잽싸게 지나쳐 버리는 부인들이었습니다.

호런드 부인이 벨처 바닷가에서 스텔라를 보고 법석을 떨었다는 사실을 물론 스텔라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냉정한 통지를 받아, 스텔라는 아무래도 호런드 부인을 비롯해서 그 차가운 부인들의 얼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그 부인들이 한 짓이야. 어쩔 수 없지. 나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남편과는 원만하지 못해서 서로 헤어져 살고 있는걸.'

 

스텔라는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그런데 왜 로렐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 할까? 가엾은 로렐! 내일 돌아오면 이 일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하지?'

 

하고, 그 일이 걱정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스텔라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한 것은 교장 선생이 보낸 편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 뜻밖의 통지가 스텔라에게 왔습니다. 그것은 이 아파트의 주인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사시는 방을 되도록 빨리 비워 주십시오.

　당신이 내는 방 값의 두 배로 빌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빈 방이 없습니다. 당신의 방을 비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요? 마을 사람들이 온통 힘을 모아 스텔라 모녀에게 더할 수 없는 심술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아, 스티븐이 있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불안과 분함과 슬픔 때문에, 스텔라는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스텔라가 세 번째로 받은 편지에 비하면,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 세 번째 편지는 다름 아닌 스티븐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로렐을 만나 보니, 너무 커 버려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소.

　그건 그렇고, 걱정이 되는 것은 로렐의 앞날이오.

　우리가 이대로 있으면, 로렐은 결코 행복할 수 없소.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소. 우리 이 기회에 확실히 헤어지기로 합시다.

　로렐은 내가 맡아서 기르겠소.

　이렇게 된 것은 다 내가 나빴기 때문이오. 부디 용서하시오.

　나는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따를 작정이오.

　그러나 로렐만은 내가 맡기로 하겠소.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뉴욕에서 변호사를 보스턴에 보내겠소.

　그 변호사를 만나 잘 의논해 주시오.

 

스텔라는 갑자기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스티븐이 설마 이런 제의를 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스티븐의 생각이 바뀌어 로렐과 함께 셋이서 즐겁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은근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헤어지자는 데다가 로렐을 데려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웬일일까요?

로렐이 곧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헤어져 있는 동안 그토록 외로웠는데 그 로렐이 스티븐에게 아주 가 버리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안 돼! 싫어! 누가 뭐래도 로렐만은 내놓을 수 없어!"

 

스텔라는 미친 듯이 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