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어머니의 기도 (Stella Dallas) -6- 피크닉

스텔라가 밀햄프턴의 아파트를 비워 주고 로렐과 함께 이사한 곳은 보스턴의 한 동네였습니다. 이사하는 까닭은 로렐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명랑하게 행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로렐은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했습니다.

그것을 물으면 틀림없이 어머니를 슬프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로렐은 어머니처럼, 자기도 될 수 있는 대로 명랑하게 행동했습니다. 친구가 없는 보스턴의 학교에도 정말 기쁜 듯이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사이에 로렐은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 로렐과 어머니는 보스턴에서 멀리 떨어진 아름다운 호수 가의 호텔로 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한 날 밤, 어머니가 열이 심하게 올랐습니다. 의사가 진찰한 뒤 편도선염이라고 했습니다.

로렐이 잠도 자지 않고 간호한 보람이 있어, 어머니는 열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방 안에서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의사가 당부했습니다.

 

"오랜만에 경치 좋은 곳에 왔는데,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니, 정말 운이 나쁘구나."

 

어머니는 실망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

 

"하지만 로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는 어서 밖으로 나가 즐겁게 지내도록 해라."

하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즐겁게 지내려 해도, 로렐에게는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식당에 가도 혼자서 쓸쓸히 식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로렐이 혼자서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저, 실례하겠어요."

하고 말을 걸어 온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늘 혼자군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요? 보이한테서 들었어요. 걱정되죠?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말해요. 난 애덤스라고 해요."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식당 출입문 앞에 서 있는 두 소녀를 손짓해 불렀습니다.

 

"이 애는 내 딸 캐티, 그리고 이 키다리 아가씨는 케티의 친구 미첼이고……."

 

두 소녀를 소개하고 나서 로렐을 보았습니다.

 

"그래, 아가씨의 이름을 묻지 않았군."

"전 로렐이라고 해요. 로렐 댈러스예요."

"로렐 양, 괜찮다면 이 두 애들하고 놀아요."

"고맙습니다."

 

케티와 미첼은 로렐과 같은 또래였습니다.

세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되어, 테니스도 하고 수영도 했습니다. 물론,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케티가 로렐에게 말했습니다.

 

"로렐, 오늘 밤에 우리 방에 놀러 오지 않겠어? 우리 모여서 카드놀이하자. 다른 친구들도 많이 모이기로 했어."

"고마워. 어머니의 병환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갈게."

 

로렐은 들뜬 기분으로 이렇게 대답하고,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로렐, 재미있었던 모양이구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침대에 누운 채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네, 케티가 카드놀이하러 오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좋지. 좋다마다. 다녀오너라."

"엄마, 제가 없어도 괜찮아요? 그래요, 제가 가끔 엄마 보러 올게요. 그러면 되죠?"

"엄마는 걱정하지 말래도 그러는구나. 천천히 놀다 오너라."

 

로렐과 어머니 사이에 이토록 즐거운 말이 오간 적은 그 때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로렐은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더더욱 행복했습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하고 로렐이 나간 뒤, 어머니는 무심히 중얼거렸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렇게 행복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잘 했다! 여기에 오길 정말 잘 했다!"

 

 

 

이튿날 아침, 보이가 멋진 꽃다발을 스텔라에게 가져왔습니다.

 

"애덤스 부인께서 로렐의 어머니를 위문한다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삼 일 뒤에는,

 

"그러브노어 부인께서 보내셨습니다. 심심하실 텐데 읽으시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보이가 책을 들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로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브노어 부인이 누구지?"

"애덤스 아주머니 친구세요. 그분의 아들은 우리의 놀이 친구고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은 어머니로서는, 책 선물 같은 것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애덤스 부인이 보낸 꽃다발이든, 이번에 보내 온 책이든, 보내 준 사람의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애덤스 부인이나 그러브노어 부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 좋은 신분의 부인들임에 틀림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부인들로부터 병문안을 받고, 게다가 로렐이 그 부인의 아이들과 날마다 친하게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여느 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어머니로서는, 하늘에라도 오른 듯이 기뻤습니다.

애덤스 부인과 그러브노어 부인 덕택에 어머니는, 그 때까지 천대받고 따돌림당하여 쌓인 슬픔과 분함이 가슴에서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로렐은 친구들인 소년, 소녀들과 호수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피크닉을 가게 되었습니다. 애덤스 부인과 그러브노어 부인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보트가 많이 매달려 있는 잔교 위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러브노어 부인이 로렐에게 말했습니다.

 

"그 스웨터가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그래, 어머니 병환은 어떠시니?"

"감사합니다. 많이 나으셨어요. 이제 곧 밖에 나갈 수 있다고 즐거워하셨어요. 요전에 책을 보내 주셔서 고마웠어요."

"그 책, 재미없어하진 않으셨는지……."

"아뇨, 무척 기뻐하시면서 읽으셨어요."

 

사실은, 어머니가 책을 들춰 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그러브노어 부인의 아들 리처드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로렐 양, 나와 함께 보트 타지 않겠어요?"

"저하고……?"

 

이렇게 되묻고, 로렐은 곁에 있는 케티와 미첼과 다른 친구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너무도 뜻밖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처드는 대학생인데, 인상이 좋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로렐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트는 두 사람이 타게 되어 있었습니다.

 

"좋아요."

 

로렐이 승낙했습니다.

로렐은, 인기 있는 리처드를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케티와 미첼,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친구들도 전혀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로렐, 왜 주저하고 있어? 빨리 태워 달라고 하지."

 

하고 저마다 말했습니다.

리처드를 비롯해서 남자들은 보트에, 과자와 과일이 가득 든 바구니를 싣고, 자리를 고치기도 하면서 여자를 태울 준비를 했습니다.

몇몇 보트가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잔교를 떠났습니다. 곧바로 가면, 섬까지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처드는 호숫가를 따라 배를 저었습니다.

로렐은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큰 눈으로 조용히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로렐 양, 무얼 보세요?"

 

리처드가 말했습니다.

 

"숲을 보고 있어요.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로렐은 호숫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전 숲을 무척 좋아해요. 숲 속을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배에서 바라보는 것도 참 좋아해요."

"당신은, 내가 아는 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데가 있어요."

"어머, 어디가 다르죠?"

 

로렐은 비로소 리처드 쪽으로 눈을 돌리고 말했습니다.

 

"……전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리처드는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고 말을 계속했습니다.

 

"그런 일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가 말한 것은, 당신은 다른 여자가 갖고 있지 않은 훌륭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뇨, 전 그런……."

 

로렐은 부끄러워서 볼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로렐은 아직 남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섬에 도착했을 때, 리처드가

"돌아갈 때도 우리는 이 보트를 탑시다."

하고, 살짝 로렐에게 속삭였습니다.

 

 

 

모두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남자들은 호숫가 쪽으로 놀러 가고, 여자들은 둥글게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무척 즐겁게 놀았습니다.

케티가 로렐에게 말했습니다.

 

"인제 곧, 우리는 연극을 할 거야. 로렐도 함께 해."

"그런데 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문제 없어. 로렐이라면 무엇이나 할 수 있어."

"그래, 로렐이라면 걱정 없어. 스타가 될 수도 있어."

 

다른 아이들도 케티를 편들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참으로 친절했습니다. 사귄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로렐은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이런 장면을 잠시라도 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돌아가는 보트 안에서 리처드가 말했습니다.

 

"로렐 양한테 부탁이 아주 많이 있어요."

"어머, 무언데요?"

"내일 낮에, 나랑 우리 어머니랑 셋이서, 어딘가로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가는 것이 그 하나이고……."

 

리처드가 말하는 게 재미있어서, 로렐도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토요일 테니스 시합 때 나하고 짝이 되어 달라는 것."

"그리고……?"

"11월에 열리는 우리 대학 운동회에 로렐이 꼭 와 달라는 것."

"그리고……?"

"그리고……, 난 앞으로 나흘 뒤엔 마을로 돌아가야 하니까……, 로렐 양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데……."

"욕심쟁이 리처드 씨!"

"안 되나요?"

 

리처드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로렐은 생긋 웃었습니다.

 

"아뇨, 그런데 전 걱정이에요. 당신이 저 같은 여자와 친해지는 것을 당신의 어머니가 싫어하지나 않으실까 해서……."

"당치도 않아요. 우리 어머닌 로렐 양을 무척 좋아하세요. 착한 아가씨라고 누구에게나 칭찬하고 있어요."

"어머, 쑥스러워. 전 조금도 착한 아가씨가 못 되는데……."

 

이렇게 말했지만, 로렐은 솟아오르는 행복감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로렐과 리처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다른 보트에서는 애덤스 부인과 그러브노어 부인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브노어 부인, 리처드가 로렐을 좋아하는가 보군요."

"네, 그런가 봐요. 저 앤 무척 까다로워서, 이제까지 여자애들과 가까워져도 친해진 적은 없었어요."

"잘 됐어요. 로렐이라면 나무랄 데 없는 아가씨니까요."

"로렐은 모리슨 부인을 아주 잘 알고 있대요."

"모리슨 부인을?"

"리처드는 모리슨 부인의 큰아들하고 같은 학급이에요. 그 아들 이야기를 리처드가 문득 로렐한테 했대요. 그랬더니 로렐이 '아, 콘 말이죠? 저도 잘 알아요.'라고 하더래요. 리처드가 더 물어봤더니, 로렐은 모리슨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했대요."

"그렇다면 더욱 좋겠군요. 모리슨 부인 같은 훌륭한 분과 가까운 사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로렐의 사람됨을 알 수 있어요."

 

두 부인은 로렐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