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어머니의 기도 (Stella Dallas) -2- 슬픈 추억

뉴욕 역에는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렐은, 사람들이 많아 아버지를 금방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눈이 근시여서 좀처럼 로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빠!"

 

마침내, 로렐이 아버지를 발견하고 소리치며 달려갔습니다. 그 때에야 아버지도 로렐을 보았습니다.

 

"여어, 우리 로렐! 많이 컸구나! 너무 커서 못 알아보겠다."

 

하고, 로렐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아버지는 로렐을 위해 호텔 방을 셋이나 빌려 주었습니다.

그 방들은 무척 화려했습니다. 벽은 엷은 크림색이었습니다. 소파나 팔걸이 의자는 장밋빛 비로드에 싸여 있었습니다. 창문의 커튼은 손으로 짠 레이스이고, 창가의 공부하는 책상 위에는 새 책이 나란히 꽂혀 있었는데, 그 옆에는 파란 갓을 씌운 전기 스탠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로렐이 그 날 아침까지 있었던 그 바닷가의 호텔 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머니와 들어 있던 호텔도 물론 일류 호텔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호텔에서 제일 싼 초라한 방을 빌렸습니다.

 

"방 같은 거야 제일 싼 것이면 어떻니? 부자나 높은 사람들과 사귈 수 있고, 또 싸게 치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니?"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욕의 호텔, 그 멋진 방에서 아버지와 마주보고 앉았을 때, 로렐은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쯤 엄마는 그 초라한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빠, 이 호텔에도 제일 싼 방이 있나요?"

 

로렐은 무심히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뭐라고……? 제일 싼 방……?"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왜 그런 걸 묻니? 이 방이 마음에 안 드니?"

"아녜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냥……"

"그냥 어쨌다는 거냐?"

 

이렇게 따져 묻자, 로렐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렐은, 어머니 이야기를 아버지 앞에선 하지 않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슬쩍 어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가 몹시 기분 나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전요……."

 

로렐은 당황해서 얼른 다른 말을 찾았습니다.

 

"그저, 이 방 외에 어떤 방이 있나 생각해 봤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겠지.'

 

아버지는 생각했습니다.

 

'로렐이 제일 싼 방 이야기를 한 데에는 틀림없이 까닭이 있어. 혹시, 이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늘 제일 싼 방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나는 달마다 생활비를 많이 보내 주고 있는데……. 그렇게 싼 방에서 묵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는, 될 수 있으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로렐에게서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해서 로렐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묻기를 단념했습니다. 그리고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자, 올해에는 어떻게 할까? 로렐은 어딜 가고 싶니?"

 

로렐이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어디든 아빠가 좋아하시는 곳으로 가요. 저는요, 아빠가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허, 그래? 그거 재미있구나. 이를테면 어떤 것?"

"책을 읽는 것, 숲에 가는 것, 캠프하는 것, 그리고……."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것, 오페라를 보는 것, 그리고 또 있어요. 모리슨 아주머니, 그분도 아주 좋아요."

 

"모리슨 아주머니?"

"네. 지난해에 차 마시는 데에 초대를 받았잖아요."

"그랬었구나. 아버지는 로렐이 모리슨 아주머니를 잊은 줄로 알았구나. 단 한 번, 그것도 30분 정도밖에 만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전 기억하고 있어요. 그 아주머니에 대해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도……."

"아버지가 뭐라고 했더라?"

"제가 크면, 그 아주머니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허, 그런 말을 했던가?"

 

아버지는 놀랐습니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로렐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랫동안 헤어져서 살고 있는 까닭을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알면,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점점 더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걱정을 감추기라도 하는 듯이,

 

"그런데 말이다, 로렐."

 

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모리슨 아주머니가 말이다, 네가 여기에 있는 동안에 일주일 쯤 별장으로 놀러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어머, 멋져요. 아빠도 함께 가시죠?"

"난 갈 수가 없단다."

"왜요?"

"일 때문이란다. 멀리 갈 일이 생겼다. 모리슨 아주머니가 너를 보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처럼 뉴욕에 온 너를 호텔에 외롭게 두는 것은 가엾다고…….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동안 너를 맡아 줄 생각이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로렐은, 멋지다고 외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래요?…… 저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신경을 써 주시다니 죄송해요. 전 혼자서도 여기에서 지낼 수 있어요. 아빠는 제가 모리슨 아주머니한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다. 난 네가 어떻게 해도 좋단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몹시 멋쩍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역시 로렐을 모리슨 아주머니에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을 읽은 로렐은

 

"전 가겠어요."

 

하고, 이번에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가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갈 건 없다."

"아뇨, 전 가고 싶어요."

 

로렐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렐은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되어, 아버지는 그날 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로렐은 나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다. 틀림없이, 저 아이는 엄마에 대해서도 그렇게 걱정하고 있겠지. 가엾은 것…….'

 

부모가 함께 사는 행복한 가정이라면, 로렐도 아무런 걱정 없이 더 명랑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로렐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스텔라와 결혼한 청년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스티븐 댈러스입니다. 스티븐이 태어난 댈러스 집안은 훌륭한 집안으로서, 재산도 아주 많았습니다. 외아들인 스티븐은 아무런 부자유스러움 없이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뉴욕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한 것입니다.

스티븐의 아버지는 변호사로서, 많은 은행의 중역도 맡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댈러스 집안만은 끄떡 없을 거야."

 

마을 사람들이 늘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던 재산이 완전히 거덜나고 말았습니다.

은행 몇 곳이 망하자, 책임감이 강한 스티븐의 아버지는 자기 재산을 몽땅 털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게 되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스티븐을 진심으로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심술궂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댈러스 씨는, 자기 재산 뿐 아니라 은행 돈도 많이 쓴 것 같다."

 

한 신문이 이렇게 떠들썩하게 다루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한 일로만 해도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없는데, 아버지가 은행 돈까지 썼다는 소문마저 나돌자, 스티븐은 숨통이 죄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스티븐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고, 도망치듯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무렵 스티븐에게는 학교를 졸업하면 결혼하기로 약속한 헬렌이라는 상냥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헬렌은, 멀리 떠나 버리려는 스티븐을 붙잡고 울면서 말렸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은

 

"나는 이미 당신과 결혼할 자격이 없어요. 제발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사세요."

 

하고, 헬렌을 뿌리치고 길을 떠났습니다.

매사추세츠 주 밀햄프턴 마을에서 가까운 카터렉트라는 시골의 방직 공장ㅡ. 이곳을 스티븐은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갔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자, 스티븐은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지난 일은 모두 잊자. 아무리 괴로워도 여기서 열심히 일하자.'

 

스티븐을 이렇게 결심하고, 사무원으로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공장의 상사가 스티븐의 성실한 태도를 보고, 자꾸 높은 자리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그 무렵, 스티븐은 스텔라 맥밀레이라는 여자 직공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스텔라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근처에선 제일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스텔라의 소원은, 신분 높은 훌륭한 신사의 부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고상하고, 젊은데도 공장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티븐과 가까워지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스텔라는 어떻게든 스티븐의 마음에 들려고 애썼습니다. 스티븐이 병이 나서 쉴 때에는 정성을 다해서 간호하기도 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오로지 혼자 쓸쓸하게 살던 스티븐은 스텔라의 그런 친절에 깊이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스티븐은 스텔라와 결혼했습니다.

모습도 예쁘고 상냥한 스텔라와 이 조용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일생을 보내자고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동네에 작은 집을 빌려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처음에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반 년이 지나기도 전에, 스티븐은 스텔라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해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은 스티븐과는 반대로, 스텔라는 굉장히 나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책읽기도 싫어하고, 음악 감상도 싫어했습니다. 야하고 천한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과 시시한 수다를 떠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스티븐은, 회사 상사의 권유로 변호사 시험을 보아 합격했습니다. 그리하여 밀햄프턴 마을의 본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텔라는

 

"이제 나는 밀햄프턴의 스타야! 댈러스 부인이라고!"

 

하고 기뻐 날뛰었습니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날마다 파티다, 댄스다 하고 싸다녔습니다.

스티븐이

 

"그 옷, 너무 화려하잖아. 좀 더 수수한 게 고상해 보여."

 

하고 주의라도 주면, 새빨갛게 입술 연지를 칠한 입술을 내밀고,

 

"어머, 여자의 옷 같은 것에 너무 일일이 간섭하지 마세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스티븐은, 마을의 부인들이

 

"댈러스 씨 부인은 마치 서커스 패거리 같아."

 

하고 수군거리는 것을 문득 들었기 때문에, 넌지시 주의를 주었던 것입니다.

 

'내 아내가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다니…….'

 

스티븐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다정하게, 어떤 때는 엄하게 스텔라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텔라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차림이 더 요란해졌습니다.

말도 아주 조심성 없게 해서, 창피당할 것 같아 주의를 주면,

 

"당신은 참 귀찮은 사람이군요. 그렇게 내가 하는 것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왜 나하고 결혼했어요?"

 

하고 되받아 윽박질렀습니다.

 

'아, 이제 안 되겠다. 차라리 따로 살기로 할까?'

 

마침내 스티븐은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로렐이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생기자, 스티븐은 스텔라와 헤어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가엾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븐은 로렐을 위해 참기로 했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되었으니, 이제 스텔라도 좀 달라지겠지.'

 

이런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스티븐과 스텔라는, 이번엔 아이 양육 방법을 놓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스텔라는 로렐의 머리모양이나 입는 것, 신는 것 따위, 겉치레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스티븐은, 사람은 겉모습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겨서 조금은 나아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두 사람의 마음이 더 멀어질 뿐이다.'

 

스티븐은 실망했습니다.

 

로렐이 네 살 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뉴욕의 어느 커다란 볍률 사무소에서 스티븐에게 제의해 왔습니다.

 

"우리 사무실에 와서 변호사로 일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무소에는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 몇 명쯤 일하고 있어서, 스티븐은 기꺼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스티븐은, 뉴욕에서 집을 얻는 대로 스텔라와 로렐을 데려가 함께 살 작정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일하게 된 뒤, 어느 토요일의 일이었습니다. 스티븐은 오랜만에 밀햄프턴의 집으로 가다가, 도중에 보스턴 마을에 들렀습니다. 일 때문에 보스턴까지 가는 친구가 있어서였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호텔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식당 안에서는, 천한 모습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히 요란하게 몸차림을 한 여자를 보고, 스티븐은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서 버렸습니다.

 

그 여자는 스텔라였습니다.

스티븐은 식당에서 도망쳐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는 스텔라를 알지 못해, 스티븐은 스텔라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리가 나왔지만, 스티븐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어머, 스티븐. 그런 곳에 있지 말고 이 쪽으로 오세요."

 

하고, 스텔라가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스티븐은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못 들은 체했습니다. 그러나 스텔라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스티븐에게 와서,

 

"어머, 스티븐. 내가 불렀는데 왜 대답도 하지 않죠?"

 

하고, 옆에 스티븐의 친구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스티븐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스티븐은 두 번 다시 밀햄프턴의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스티븐은 그 동안, 자기가 로렐을 맡아서 기르고 싶다고 얼마나 사정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텔라도 그야말로 로렐을 목숨을 걸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렐은, 따로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로렐을 언제까지나 이렇게 기를 수는 없다. 어떻게든 해야지…….'

 

1년 사이에 몰라보게 자란 로렐을 보고,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