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3권 한여름의 1페이지 -4-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와 같이(おじいさんと一線)

 

 (ネタはほうきとちり取りで)
- 기사거리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

 

 

1.

 

양갈래길에 있는 마리아상 앞,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기다리고 있었어. 니죠 노리코양"
노리코는 마주댔던 손을 내리면서 뒤돌아봤다.
"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입학초기에는 다른 사람들 눈이 신경쓰여 손을 마주댔었지만, 지금은 여기를 지날 때 손을 마주대지 않으면 찝찝해지고 마는 것이다. 경건한 크리스챤인 언니의 영향도 조금은 있다.
"평안하길. 덥구나"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사람은, 한 명의 상급생.
"......"
리리안여학원의 교복에 새까만 선글래스, 머리카락은 머리 뒤 꽤 높은 위치에서 경단처럼 묶고, 손에는 흰색과 짙은 감색의 줄무늬가방을 들고, 발에는 발등에 커다란 꽃장식이 들어간 검은 뮬을 신고 있었다. 그 패션은 얼핏 미스매치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밸런스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단지 그걸 인정하려면 먼저 교복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할 테지만.
"요즘 산백합회 사람들은 학원제 준비로 매일처럼 모이고 있지? 감탄밖에 안나와"
그 사람은 당연한 것처럼 노리코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저기 ... "
뭔가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호락호락 끼어들 틈을 주지않는다.
숙제는 끝났어, 라던가. 이번 여름은 쉴 틈이 없었지, 라던가. 그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니, 노리코는 "네" 라던가 "그저 그래요" 라던가 짧게 맞장구를 치면서 교사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 목적이 뭘까.
아까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설마 같이 걷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더위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이 멈춰섰다. 동행하는 것도 아닌데말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노리코는 내친 걸음상,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췄다.
그 여자는 가방 속에 손을 넣고는 뭔가를 끄집어냈다.
"자"
내민 것은 종이팩 우롱차였다.
"전 됐어요"
노리코가 정중히 거절하자 그 사람이 말했다.
"뇌물아닌데"
"아뇨. 그런 의미가 ... "
"그래? 그럼 실례할게"
그녀는 가볍게 웃고선 두 개 중 하나는 가방에 다시 넣고, 자기 것만 빨대를 꽂아, 길 한가운데서 쭈욱 마시기 시작했다. 자신이 불지옥 속에서 선배가 우롱차 마시는 데 반드시 같이 어울려야만 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찾아내지 못한 노리코는 가볍게 인사한 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잠깐만 기다려줘" 라며 종이팩을 손에 든채로 뒤쫓아 달려왔다.
"그러고보니 요전번에 하나데라 학원고교 학생회 임원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며? 어떤 분위기였을까. 흥미 동하는데"
" ... 엣"
그러보고니, 라며 아무렇지 않게 운을 떼는 것이 어색할만큼 꽤나 자세한 내용이었다. 
"저쪽 멤버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쇼크를 받은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가 기절했다는 게 정말이야?"
아까 그 우롱차를 안받길 잘했어, 라고 노리코는 생각했다. 그게 뇌물이 아니라니, 대단한 거짓말쟁이다.
"그런 얘기라면 실례하겠어요"
짜증나서 걸음을 재촉해 갔다. 더위도 한몫해서, 다소 말투가 심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말말고, 기다려봐"
그런데도 또다시 뒤쫓아오는 선글래스.
"전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뿌리치고 뿌리쳐도, 뱀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결국에는 노리코를 추월해서 앞을 가로막고 섰다. 이건 마치 초등학생 괴롭히기같은 행동으로 나오는 꼴이다. 이런 일까지 당하면, 화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질려버린다.
"대체 왜 이러시는거죠?"
노리코가 한숨섞어 질문하자, 그 사람은 싱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이야. 놀려서 미안. 실은, 노리코양에게 간곡히 부탁할 게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부탁 ...?"
지금부터 부탁 좀 하겠다면서 상대를 놀려 어쩌자는거야, 하고 노리코는 마음 속으로 쏘아붙였다. 상하관계가 엄격한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긴 하지만, 선배라고 해서 무슨 일이든지 용납될 리도 없는 것이다.
"여름방학 자유연구로 불상에 관해 조사하고 있는데말야. 알다시피 우리 학교는 카톨릭이잖아? 도서관에는 괜찮은 자료가 별로 없더라구"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도서관 벽을 휙 가리켰다.
하지만 그 카톨릭학교의 숙제에 굳이 불상에 관한 레포트를 제출하겠다고 하는 의욕치고는, 스타트가 늦지 않은가.
(어째서 이 사람은 아직도 자료수집같은 걸 하고 있지? 여름방학은 이제 곧 끝나는데)
노리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곤 꿈에도 생각못하고 있는 "이 사람"은 지극히 우호적인 미소를 띄우며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조사하려고 생각했거든. 어때? 노리코양의 친구가 모이는 사이트가 있으면 소개시켜주지 않을래?"
" ... 키워드 입력해서 검색해보시면 어떨까요?"
노리코가 그렇게 대답할 걸 예상했는지 그녀는 우선 "물론 알고 있어"라는 표정을 띄우고, 거기다 "하지만 말야" 하고 말을 이어붙였다.
"처음 보는 곳을 갑자기 가는 것도 좀 무섭지 않니? 어느샌가 방대한 돈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어? 그 점에서 아는 사람이 자주 가는 곳이라면 안심이 되니까. 어떻게 안될까?"
마치 술취한 손님에게 고액의 돈을 뜯는 단란주점 얘기같다고 생각하며 노리코는 듣고 있었다. 그런 악질적인 곳만 있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얘기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니라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몸으로서, 노리코 역시 신규사이트 개척은 거의 하지 않고, 안전대책의 의미에서 즐겨찾는 사이트만 들여다보러 가니까.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다소 꺼림칙하긴 하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끼리니 넓은 의미에서는 아는 사람이라고 못할 것도 없는 셈인가.
" ... 괜찮긴 하지만요, 단순히 애호가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별로 참고가 안될거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대형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데요 ..."
"응. 그것도 동시에 진행할게"
"알았어요. 잠시만 있어보세요"
홈페이지 주소를 가르쳐주는 것 정도라면 별문제 없겠지. 라고 노리코는 생각했다. 자신이 안가르쳐줘도, 검색해보면 간단히 찾아갈 수 있는 페이지니까.
"그러니까, 확실히 여기에 … "
마침 오늘 홈페이지를 프린트한 종이를 가지고 왔다. 확실히 오른쪽 윗부분에 주소가 찍혀있었을텐데.
"아, 이게 아니다. 이건가?"
착각해서 꺼내든 타쿠야군한테서 온 메일을 서둘러 집어넣는다. 전부 어젯밤 프린트한 거라서 겹쳐져 있었던 것이다. 
"http://..."
다시 꺼내어준 종이에 적힌 홈페이지주소를 학생수첩에 베껴쓰면서 그 사람은 말했다.
"www, .... 저기, 타쿠야군은 남자친구?"
"하?"
"아까 메일 발신인"
" ... "
얕볼 수 없다. 선글래스 착용이라는 악조건에다 슬쩍밖에 볼 수 없었을텐데도, 이 사람은 발신란에 적힌 이름을 확실히 체크한 것같다.
"친구인데요"
별로 수상한 관계도 아니니까 노리코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지?"
"남자, 라고 해야 하나. 성인 남자죠"
"남자에 친구라면 남자친구아냐?"
"그야, 뭐..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말하고 있을 여유가 있으면 주소나 빨리 베껴요, 라고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발끈해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가는 더더욱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라 판단해서 조용히 참았다.
"어머 미안해라. 흥미가 생겨서 그만 캐묻고 말았네"
짜증난 상태란게 겉으로 드러났는지, 그 사람은 스피드업해서 베낀 후, 학생수첩을 덮고, 좀전의 그 우롱차를 가방에서 꺼내어 노리코 손에 쥐어주었다.
"자,잠깐 ... "
"됐으니까 그냥 받아. 주소를 가르쳐준 보답이야"
길가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가 슈퍼에서 막 사온 과자봉투를 그자리에서 열고, "먹을래?", "안먹을래?" 라는 말도 없이 멋대로 쥐어쥐고 종종걸음으로 가버리는 듯한, 뭐라고 말하기 힘든 끈적함을 남긴채 그 사람은 도망쳐 버렸다.
"뭘하자는건지 ..."
마치 여우한테 홀린 기분이었다. 눈가심으로 언니의 얼굴이라도 보지 않는다면 기분나빠서 안되겠다. 노리코는 서둘러 장미의 저택을 향했다. 현재 오후 12시 45분. 떠넘겨받은 우롱차는 눅눅하다. 저 사람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 였던 걸까.

 

 

2.

 

어제 물에 담아둔 보리차를 유리잔에 따르면서, 노리코는 단숨에 일의 경과를 털어놨다. 
"홈페이지 주소라는 건 구실이고, 혹시 그저께의 일을 탐색하려던게 아닐까 생각해요"
억지로 떠넘긴 종이팩 우롱차는, 보리차가 들었던 유리용기에다 옮겨담아 냉장고에 넣어뒀다. 장미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사람 체온만큼 미지근해져 있어서, 그대로는 도저히 마실 기분이 안났다.
"그저께 일 말이구나"
노리코의 언니인 토도 시마코양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나한테 물어도 되지 않았을까? 난 노리코가 오기 10분전쯤에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우롱차가 미지근해질 만큼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분은 내가 거길 지나치는 것도 봤을거야"
"확실히 그렇네요"
정문에서 고등부 교사까지 오는데에는 은행나무길을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필연적으로 마리아상 앞을 지나게 된다. 왜냐면 마리아상은 양갈래길이 시작하는 곳에 있으니까.
"굳이 노리코에게 말을 건 이유라... 불상에 관해 묻고 싶었다면, 확실히 노리코가 좋겠지만"
장미의 저택 2층 방에는 아직 두사람밖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두 사람의 샘플밖에 모으지 못하는 처지라, 노리코 한 사람이 타겟이 된건지, 달리 뽑힌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차차 멤버가 모일테니까 그 때 한 사람씩 물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분은 어떻게 그저깨의 일을 알고 있었던걸까?"
"그 분, 그 분 하시는데... 저기, 틀림없이 츠키야마 미나코님였는걸요"
변장할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척보고 알 수 있었다. 선글래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보일 거면, 연예인도 사진주간지의 몰래카메라에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테니까. 폭로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그런 것도 눈치못챌 줄이야.
"요즘 얌전하길래 방심하고 있었지만, 그 분 아직도 신문부에 소속중이시니"
곤란하네, 하며 한숨을 쉰다. 다른 사람의 일을 비판하지 않는 언니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츠키야마 미나코님이란 사람도 어지간한 "문제아" 인가 보다.
"하지만. 노리코는 미나코님 얼굴을 용케도 알아봤구나"
"그야 ... "
노리코는 고개를 움츠렸다.
"막 입학했을 당시에 토오코가 부탁도 안했는데 이것저것 가르쳐줘서요"
하지만, 요즘 얌전하길래, 라고 언니도 말했듯이, 미나코님은 노리코가 리리안 여학원고등부에 입학한 4월 이후부터는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않았을텐데. 왜 지금에 와서 뭔가를 조사하려는 듯한 이해못할 행동을 보이는걸까.
"그저께의 일은"
"물론 아무한테도 말안할게요"
노리코는 오른손을 들어 선언했다.
첫대면하는 몇명의 남학생이, 건드리거나 노출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인사만 했을 뿐인데 하마트면 실신할 뻔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장미님 체면을 짓뭉게는 일이다. 하나데라 사람들은 다시 뒷날을 기약하기로 말을 맞추고 매듭을 지었으니 문제는 없지만, 이 일이 공표된다면 일부 학생들밖에 모르는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의 남성혐오증이라는 중요기밀도 널리 퍼지게 된다.
"아무쪼록 조심해줘. 그냥만해도 사치코님은 풀이 죽어계신데. '리리안신보'를 통해 많은 학생이 알게됐다가는 얼마나 낙담하실지 ... "
"정말로요"
두 사람은 상상해 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화를 내든 실망하든, 마이너스 감정에 관해서는 에너지소비량의 높은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이다.
산백합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이 가능한한 마음 평온히지내길 바라는 것이다.

"아, 그렇지"
노리코는 분위기를 바꿀 겸, 화제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전에 얘기한 타쿠야군의 홈페이지, 프린트해왔어요"
"어디?"
프린트한 종이를 테이블에 펼쳐서 보여줬다.
"아아. 정말이네. 우리 아미타여래야. 예쁘게 찍혔구나"
금빛으로 빛나는 아미타 삼존불상이 "타쿠야 추천 불상들"이란 코너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언니의 집인 쇼쿠지(小寓寺, 소우사)의 본당에 있는 불상들이다.
"타쿠야군, 홈페이지에서 본존공개를 허락받아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보세요 여기에 주지스님의 후의 덕택에, 라고 써있죠?"
"아버지도 분명 시무라씨니까 허락해주신거야. 불상에 관해서는 본직이신 아버지 이상으로 조예가 깊으신데다 신뢰할 수 있는 분이니까. 유력한 시주들과도 교류가 있으니까사전교섭 같은 것도 했나봐"
변함없이 타쿠야군은 빈틈없구나, 하고 노리코는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시무라씨라는 건 타쿠야군의 성이다.
"아, 맞아맞아. 원하신대로 절의 이름과 주소는 숨겨놨으니까 문의가 쇄도한다던가 그런혼란은 없겠지만,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연락해달라고 하던데요. 일단 주지스님께는그런 뜻을 전달한 것 같지만, 언니도 뭔가 발견한 게 있다면요"
프린트한 메일을 보면서 노리코는 타쿠야군의 말을 전했다.
"알았어. 당분간은 신경써서 보도록 할게"
언니는 조그맣게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함없이 행동 하나하나가 기품있고 아름답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느꼈던, 마치 마리아님같은 고귀함이 있다.
"그런데 노리코도 힘들겠어"
"하?"
뭐가 힘든 일인지 짐작가는 곳이 없는 노리코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곧 정신차리고 되물었다.
"아니. 시무라씨와 나 사이를 전서구처럼 중계해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타쿠야군과는 매일같이 메일을 주고받고 있으니까 전혀 귀찮거나 하지 않아요"
"후후, 사이좋구나. 부러울 정도야"
언니는 아마 대화흐름상 듣기좋으라고 한 말일테지만, 그걸 알고서도 노리코는 기쁜 마음에 마냥 신이 나서 이런 제안을 해버렸다.
"그럼 다음에 언니도 함께 가시겠어요?"
"에?"
"갑작스럽지만, 내일 시간되시면 모미술관 불상전에 같이 안가시겠어요? 거기서 타쿠야군하고 만날 예정이거든요. 그러니 꼭요"
"내일?"
시마코님은 눈을 깜박였다. 느닷없는 얘기에 분명히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말해버렸으니 이제와서 취소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방해되지 않을까?"
"그럴 리가요. 타쿠야군도 내가 '언니' '언니' 하고 언제나 메일에 쓰니까 리리안의 쇠르(자매)제도에 관심이 있나봐요. 전에도 '시마코씨와 느긋하게 차라도 마시며 얘기하고 싶다' 라고 뻔뻔스러운 말을 적을 정도라니까요"
노리코가 과장된 손짓을 하며 타쿠야군에 대해 설명하자, 언니는 쿡하고 웃었다.
"좋아. 그럼 함께 어울려보기로 할게"
"정말로요? 와, 신난다! 그렇지, 소문으로는 이번에 마리아관음이 아닐까 하고 전해지는 관음불상도 공개될 것 같다고 하니까, 분명히 언니도 내용에 흥미를 가지실 거예요"
신이 난 도중에, 갑자기 비스켓문이 열렸다.
"무슨 일인데? 뭐가 그리 신난다는거야?"
얼굴을 내민 건 로사 페티다(황장미님)이신 하세쿠라 레이님이다.
"뭐라뇨. 그냥 내일 토요일 불상전에 가기로 얘기를"
흥분한 노리코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방 바깥까지 울렸나보다.
"어머나, 사이좋네. 부러워"
레이님과 함께 방에 들어온 시마즈 요시노님이 놀려댄다.
" ... 괜찮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일단 권해본다.
"아니 됐어"
"방해안해"
황장미자매는 동시에 거절했다. - 아무래도 두사람다 불상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다.
노리코가 보리차를 두사람분 유리잔에 따르고 있으려니까 언니가 "그러고 보니"하며 레이님을 향해 물었다.
"교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누군가 말걸지 않았나요?"
"그거, 내가 말을 걸었단 의미야, 아니면 나한테 말을 걸었단 의미?"
주어,목적어가 분명치 않으니 두 가지 의미 다 될 수 있다. 일본어는 참 어렵다. (*)
"후자예요"
"그렇다면 말걸어오던데?"
"역시"
노리코와 언니는 서로 마주봤다. 어디서 누구한테, 동시에 확인의 질문을 던지자, 레이님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장미의 저택 앞에서 유미짱한테. 집합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지만 걱정말라구 그러던데. 
뭐라더라, 사치코가 슬리퍼를 깜빡해서, 손님출입용 현관까지 가서 빌려오겠다고 그랬나"
"유미님, 말인가요"
노리코는 유리용기를 냉장고에 넣고, 그대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밖을 봤다. 교사와 장미의 저택 사이쯤에 슬쩍 보이는 사람그림자는, 확실히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홍장미 봉오리), 후쿠자와 유미님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왜 유미양은 밖에서 기다리는걸까? 더우니까 저택에 들어오거나, 사치코님과 함께 가거나 하면 될텐데"
시마코양의 의문에 요시노님이 보리차를 단숨에 비우고는 대답했다.
"사치코님은 유미양의 슬리퍼를 빌려서 교사안에 들어가셨대 흙묻은 발로는 장미의 저택에도 교사에도 못들어오겠지?"
"아아, 그렇게 된거구나"
꼼꼼한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가 슬리퍼를 깜빡 잊고 오다니. 역시 아직 그저께 일의 영향이 남아있나 보다.
"그럼 말을 건 사람은 미나코님이 아니군요"
노리코는 조금 답답했다. 미나코님이 접촉한 인물이 자기 이외에도 있다면 그녀의 의도를 캐낼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미나코양이라면 봤어"
로사 페티다(황장미님)가 말했다.
"에?"
"교문 앞에서 지나쳤어. 우리들을 전혀 눈치못채고 있던 것 같지만. 버스에 타려고 달려
갔으니까. 그렇지 요시노?"
"응. ... 그렇다곤 해도 굉장한 모습하고 있었다니까"
그렇다는 건, 틀림없이 미나코님인가 보다.
츠키야마 미나코님. 역시 당신의 변장은 다 들통난다구요.
노리코가 탈력중이자, 비스켓문을 열고 홍장미자매가 들어왔다.
"평안하기를. 다들 건강해?"
묘하게 밝게 행동하는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가 도리어 마음아팠다.
─ 손님용 파란 비닐 슬리퍼도 역시.

 

=======================================================================
* 원문은 
「校門からここまでの間に、どなたかに?をかけられましたか？」
  (교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누가 말을 걸지 않았나요?) 또는
  (교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말을 거시지 않았나요?)
「それ、私が?をかけたってこと？　それとも私がかけられたって意味？」
  (그거 내가 말을 걸었다는 의미야? 아니면 나한테 말을 걸었단 의미?)
　助動詞の「られる」は、尊敬と受け身とどちらの意味にもとれる。日本語って難しい。
   (조동사 "られる"는 존경과 수동, 어떤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일본어란 참 어렵다)
  입니다만, 일본어를 모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위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3.

 

"갑자기 불러내다니, 대체 무슨 일이시죠?"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신문부의 실질적인 부장이, 지금은 이름뿐인 부장에게 말하면서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참나. 되게 꾸물거리네"
─ 그게 츠키야마 미나코님 입에서 나온 제일 첫마디였다.
"이래뵈도 날아온거라구요. 전화받고 나서 30분도 안지났을걸요"
야마구치 마미는 손목에서 훌렁 돌아가는 손목시계를 붙잡아 누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땀으로 꽉 조이는게 싫어서 가죽밴드의 구멍을 하나만큼 풀러놓았던 것이다.
─ 오후 4시였다
"그게 아냐. 내가 말하는 건, '리리안신보' 신학기 특대호 진도 상황이야"
"무슨 얘긴지는 알겠는데요, 언니가 왜 지금 그 말을 꺼내고 있는지 이해가 안돼요"
마미는 빨대로 커피우유를 홀짝 마셨다. 사실은 커피우유가 아니라 좀더 세련된 이름이 붙어있긴 했지만, 주문을 마치고 5초후에 완전히 까먹었다.
언니는 커피색 얼음조각이 녹은 듯한 걸 마시고 있다. 일부러 말은 안했지만, 마미는 그게 꼭 '흙투성이 얼음덩어리에 내린 눈' 같아 보였다.
K역 옆의 커피숍 체인점이었다.
가게 안은 젊은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당장 나와, 라는 전화에 취재수첩과 지갑만 달랑 들고 날아왔지만. 설교늘어놓을 거란 걸 진작 알았다면 옷정도는 갈아입고 올걸 그랬다. 모처럼 거리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구깃구깃한 티셔츠에 데님스커트라는, 근처 편의점에나 다녀올법한 복장이었다.
"의미를 모르겠다고? 난 지금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리리안신보'를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까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귀여운 동생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이렇게 자상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려는 거잖아"
미나코님은 눈을 감고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름 드레스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실내인데도 챙넓은 모자를 쓰고서. 마치 영화스타라도 된 모양이다.
"자상하게 말이죠"
마미는 테이블에 한쪽 무릎을 대고, "이런이런" 하며 한숨을 쉬었다.
"보나마나 수험공부에 질리니까 기자혼이 꿈틀꿈틀 머리를 쳐든거겠죠"
흔히들 이런 걸 두고 현실도피라고 한다.
" ... 하지만, 모처럼 여름방학인데 하기강습이다, 모의시험이다, 참고서다, 단어장이다 ... 이제 신물이 나"
미나코님은 아주 싱겁게 인정했다.
"그게 수험생이란거죠.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진로를 바꿔요. 리리안 여자대학 우선입학, 분명 아직 늦지 않았을걸요"
"그게 된다면야 처음부터 그렇게 했지"
빙그르르르르
녹아서 걸죽해진 얼음조각을 스푼으로 쓸데없이 뒤섞고 있다. 아마 이 맛도 질린 거겠지 하고 마미는 추리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자신까지 이 사람의 수험공부 기분전환에 끌어들이는 건 결단코 사양이다.
"정말 죄송한데요, 언니도움을 받지 않아도 저 혼자 기사정도는 쓸 수 있어요"
아직 다 안마신 커피우유가 든 플라스틱컵을 들고 "이만 가볼게요"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지난달 교회와 불상 순회를 하던 백장미자매의 미행도 싱겁게 물러섰다지"
등을 돌린 마미에게 빈정대는 말이 던져졌다.
"물러선게 아니라 놓쳤을 뿐예요"
뒤돌아보며 말했다. 도발이란 걸 알고 있지만, 반론하지 않고선 못참겠다.
"별장지에서 우연히 황장미, 백장미 두 자매의 모습을 목격했으면서도, 제대로 취재조차 못한 것 역시 도중에 놓친 탓인가봐?"
"....."
그 말대로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려니 왠지 공연히 분했다. 
"그거, 환상이었던거 아냐?"
미나코님이 피식 웃었다. 상대안하면 될 것을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마미는 테이블앞까지 되돌아오고 말았다.
"타케시마 츠타코양이 찍은 사진"
증거품을 취재수첩 사이에서 빼내 들이댔다. 언니는 그걸 들어 눈높이까지 집어올리더니,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렇게 쬐그만데다, 그것도 뒷모습이네. 하다못해 인터뷰라도 따놨다면 쓸 수 있겠지만,당사자들이 인정안하면 그만인 사진이야"
자신이 편집에 손을 못대면 이렇게 나온다니까, 하고 마미는 생각했다. 그 즉시 기준점을 높여버리는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에 기사거리를 부지런히 모아서 새학기가 시작하면 특별호를 팍팍 내놓지않으면 안돼. 그게 우리들 신문부가 '리리안신보' 독자들의 평소 관심어린 애정에 보답하는 최대한의, 유일한 서비스 아니겠어?"
서비스 아니겠어, 라니.
"하지만 언니. 지금 여름방학이라 기사거리는 그다지 ─ "
"물러터졌어"
미나코님은 테이블 아래에서 발을 다시 꼬았다.
"적이 약점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려선 안돼.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준비해서 작은 먼지부터쓸고 다녀야지"
"신문부는 청소업자인가요?"
"비슷한 거야. ... 계속 서있지만 말고 앉지그래?"
어느새 이렇게 또 다시 이야기에 질질 끌려다니고 말았다. 마미는 한숨을 쉬며 방금 막 일어섰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몇번인가 선물을 들고 장미의 저택에 찾아가봤지만, 전혀 틈이 없다고 할까, 아니 틈은 커녕 아무 건덕지도 없어요. 그저 묵묵히 계산만 한다던가, 서류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던가, 타임테이블 짠다던가, 뭔가의 초안을 정서하고 있다던가 그게 다여서, 잡담도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끄적끄적 일에만 몰두하고 있던데요. 시마코양이 장미의 저택에서 나가갈래 쫓아가봤더니 사무소 앞에서 양판점에 전화걸어서 뭔가 가격같은 걸 확인하고 있었고. 유미양같은 경우는 따라가봤더니 그냥 화장실 갔었을 뿐이었다,라는 한심한 결과만 나오는걸요"
"아직 멀었구나 마미. 그래서야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든채로 마냥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야. 기사거리는 이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돼. 그물을 쳐놔야지"
"이쪽에서 먼저... 그물..."
확실히 과거에 그런 강제적인 취재방법과 어림짐작으로 쓴 기사가 문제가 되어,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 꽤나 따끔한 맛을 봤을텐데. 괴로운 일도 지나가면 그뿐인걸까. 아니면 후배를 부추길만큼 부추겨두고 자신은 불똥이 튀지않는 안전한 거리에서 보고 있으려는 속셈인가.
"산백합회 관련기사같은건, 지천에 널려있어"
미나코님은 자신에 가득찬 눈빛으로 "예를 들면" 하고 말했다.
"하나데라 학생회의와의 미팅"
"그게 무슨 말이죠?"
마미는 몸을 내밀었다. 언니가 웃으며 내던진 낚시미끼에 완전히 걸려들고 만 것이다.
"그저께 저녁에 유미양 중재로 하나데라 학원고교와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학생회임원의 미팅이 계획되어 있었어"
"─ 처음 듣는 얘기예요"
"당연히 그런 일급비밀을 외부에 흘릴 리가 없지"
그럼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라고 마미는 묻고 싶었지만,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지만 말야. 만나기로 한 교문앞에서 어째선지 사치코양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나봐. 그래서 날을 새로 잡기로 했다던가 말았다던가..."
"...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가?"
거품을 물고, 라니. 이 시점에서 이야기의 신빙성에 의문이 가지만. ─ 일단,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모르니.
"그래서, 원인은요?"
"글쎄"
"글쎄라니.."
거기가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마미는 깊이 실망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산백합회 간부도 아무 것도 아닌 미나코님이 뭐든지 알고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열사병인지 뭔지, 몸 상태가 나빴다고는 생각하지만. 하지만 나로서는 하나데라 학생들의 외모에 압도당해 쇼크받았다는 설도 버리기 힘들어"
"하나데라 학생회는 올해 그렇게 굉장한 사람이 모여있나요?"
작년 학생회장은 왕자님처럼 상큼한 사람이었지 하고 마미는 떠올렸다. 확실히 이름이 카시와기 스구루. 지금도 그의 팬이라 할만한 학생이 많다.
"뭐 굉장하다고 하면 굉장하지. 거한에 하프에 양키 등등"
미나코님은 손을 꼽아가며 예를 들었다.
".... 자세히 아시네요. 마치 보고 온 것처럼"
"처럼,이 아니라 보고 왔어"
"에?"
"그저께 저녁. 여기서"
"하앗?"
그러니까 미나코님의 얘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그저께 저녁, 예비교 하기강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미나코님은 어머님께 부탁받은 
물건을 사러 K역에 들렀다. 더운 날이었다. 그래서 조금 시원한 곳에서 쉬어갈까하고 훌쩍 이 가게에 들었다고 한다.
"우연히 옆좌석에 있었던 게 하나데라 고교 학생회 임원들이었다, 그런말인가요?"
세상 살다보면 굉장한 우연이 굴러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미나코님이란 사람이 행운을 끌어당기는 데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소유자든지.
"이쪽은 한사람. 저쪽은 다수.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저쪽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 않겠어?"
"그래서 계속 몰래 훔쳐듣고 있었다... 라는 거군요"
"어쩔수 없잖아. 하나데라니 리리안이니, 신경쓰이는 키워드가 펑펑 튀어나오는데"
그래서 띄엄띄엄 계속 들려오는 얘기를 종합해서 미나코님은 그 날 있었던 사건의 개요를 파악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굉장한 기사거리잖아요?"
이미 당사자의 한 축인 하나데라 학원고교의 학생회 임원으로부터 바로 이야기를 들은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기사로 하려면 산백합회에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백지상태에서 기사거리 찾는 걸 생각해보면, 그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보통수단으로는 안될거야, 시험삼아 노리코양을 슬쩍 떠봤지만, 입이 단단했거든. 아마 다들 이런 식일테지. 결코 입밖에 내선 안된다고 모두 합의하고 있는거야"
"과연 그렇군요"
확실히 그 패들, 아니 그 분들은 결속이 강하니까 틈을 찾기 어렵다.
"그렇게 경계받는 기사거리는 만만치않으니까 너무 깊이 파고들어선 안돼. 노마크인 곳에서부터 공격해 가는거야"
"노마크?"
그럼 여태까지 끌어온 얘기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정말로 기사화하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만큼, 마미의 전신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 '독점 스쿠프! 그가 바로 로사 기간티아 앙 부통(백장미 봉오리)의 애인이다!' "
"이번엔 뭔가요?"
이야기의 반, 아니 1/4정도만 받아들이기로 하자고 마미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체력이 못버틸 것 같다.
"말 그대로야. 니죠 노리코양의 데이트장면을 덮쳐서 리리안신보에 짠하고 싣는거지"
방긋. 미나코님은 마치 나쁜 계략이라도 꾸미는 듯 웃었다.
"그래서요? 상대는 어떤 사람이죠?"
"몰라. 그건 이제부터 네가 취재해야지"
역시나. 그런 말이었군.
"말도 안돼요. 언니의 망상... 아니 억측만으로 취재하라고 말씀하셔도 말이죠"
"억측? 아냐"
마니코님은 가방 안에서 여러번 접은 A4 용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시무라 타쿠야. 모국립대학 4학년.... 적어도 21세는 넘었을거야. 도쿄에 살고 있고 가족은 4명. 취미는 불상감상이라니까 공통의 취미가 두사람을 묶고 있는 셈이지"
그건 꽤나 구체적인 데이터였다. 망상이나 억측이 아닌, 생생한 청년의 모습이 서서히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인터넷"
"인터넷?"
"노리코양에게 불상에 관해 조사하고 싶다고 해서 자주 가는 사이트 주소를 받았어. 그때 우연이지만 프린트된 메일이 보여서말야"
"네네, 그래서요?"
마미는 흥분해서 맞장구를 쳤다.
"거기에 타쿠야군의 데이트 신청이 적혀 있었어"
"저런!"
"개인적으로 밖에서 만난다는 건 친하다는 증거. 슬쩍 유인하니까 노리코양도 남자친구라고 인정했고"
"굉장해요. 언니 수훈감이에요!"
평소에는 폭주하는 언니의 고삐를 쥐고 "워워"하고 정지시키는 마미였지만, 한껏 흥분해서 그런지 사태파악이 흐릿해졌다. 냉정했더라면, "몰래 훔쳐 보다니 어이없네요" 하고 한마디 쏘아붙일 법도 했건만 말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뭔가 힌트가 있다고 생각해서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알려준 그 홈페이지에 들러봤지. 그랬더니 놀랍게도 거기는 타쿠야군의 사이트였다니까. 거기에 적힌 프로필이랑 과거 일기를 닥치는대로 읽고 이 정도까지 정보를 입수한거야. 어때?"
"과연 그렇군요"
역시 이 사람은 행운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쥐고 태어났나보다.
"거기서 네 임무는 말이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잠복해서 타쿠야군이 나타나길 오로지 기다리는 거야. 알았지?"
"에? 언니는요?"
"아쉽지만 내일은 예비교 모의고사가 있어서"
그럴 줄 알았다. 지금까지 줄곧 상승무드였던 마미의 흥분은 단숨에 급강하했다.
"그 사람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 일단 성공이야. 게다가 노리코양도 함께 찍을 수 있으면 대대대성공이고. 그렇지 참. 내일은 사진을 찍을 뿐이고, 직접 취재는 금지야. 타쿠야군에게 필름 뺏겼다간 죽도 밥도 안되니까. 그 사람 합기도 하고 있대"
"... 알았어요"
체력에는 자신없는 마미였다. 무도를 하는 젊은 남자와 카메라갖고 실랑이 했다가는 100% 질 게 뻔하다. 말안해도 내일은 타쿠야군의 얼굴을 보기만 하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 장소는요?"
"맡겨줘. 주소를 받아적는 척 하면서 학생수첩에 확실히 메모해뒀으니까"
"... 과연"
이 에너지를 어째서 수험공부에 쏟지 못하는걸까. 마미는 눈앞에 있는 언니가 점차 가엾어지기 시작했다.
"알았지? 마미. 네 집에서 인터넷되지? 얼른 돌아가서 타쿠야군의 홈페이지에 가봐. 내일을 대비해 예습하는거야"
"하아"
언니도 내일 모의시험 준비를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려다 관뒀다.
꽤나 들떠있는 미나코님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해봤자 아마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4.

 

주소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치자 즉시 첫페이지가 나타났다.
"흠흠, '타쿠야의 불전'이라.. 과연, 확실히 불상애호가다운 이름이야"
타이틀배경은 CG로 그린 절의 본당처럼 오래된 일본가옥으로, 가지각색의 불상들이 불단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 그림. ─ 상당히 초현실적이다. 마미는 우선 "자기소개" 라고 써있는 제목을 클릭했다.

[시무라 타쿠야 (본명동일) .. 도쿄 거주. 독신. 모국립대학 4학년. 취미는 물론 불상감상, 그 외에 스키 ※ 합기도 등]

이건 이미 언니한테서 들어서 알고있는 정보다. 새로운 정보는 없을까.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려고 <돌아가기>를 클릭하기 위해 마우스에 손가락을 댔을 때, 취미에 들어있는 스키의 뒤에 있는 ※표시를 눈치챘다. 거기에 마우스를 가지고 가자, <새해 들어서자마자, 스키타다 다리뼈를 골절당했습니다. 덕분에 20년에 한 번 있는 옥충관음의 개장에도 입회못했다는 상태. 나중에 또 불상감상에 지장을 줄만한 일이 생긴다면 취미에서 제외하는 것도 검토중입니다>라는 코멘트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타쿠야군은 불상을 위해서라면 스키도 그만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불상을 보는게 좋은걸까. 그쪽 방면에는 전혀 흥미가 끌리지 않는 마미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키쪽이 여자한테는 인기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 하지만 불상애호가 중에서는 니죠 노리코짱같은 별난 여자도 있으니까 상관없으려나"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마미는 저녁식사후, 미나코님에게 명령받은대로 인터넷에서 타쿠야군의 페이지에 액세스해본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돌아다니는 페이지 그 어디든지 질릴만큼 불상투성이였다. 그라비아미녀에 지지 않을만큼 여러가지 각도로 찍힌 불상사진.

불상의 역사
불상의 단편지식
불상의 구분법
불상 Q&A
불상감상레포트
추천 불상들 
─ 등등.

게시판마저도 '만다라BBS'란 이름을 내걸고 있다. 시험삼아 들여다봤지만,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초보자는 무슨 얘기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쪽은 나라(奈良)의 대불상과 카마쿠라(鎌倉) 대불상, 그리고 아수라불상 정도밖에 모르는 풋내기니까.
기운이 쭉 빠져서 타쿠야군의 불전에서는 나가려고 했을 때, 페이지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사각형 버턴을 발견했다.
" .... "
사각버턴은 자세히 보니 다다미같은 모습이었다. 그 위에 써진 문자는 "코우노신의 단칸방(*)"
"코우노신이라니 누구지?"
이 홈페이지는 타쿠야군 것이고 거의 불상일색이다. 처음에는 "코우노신" 이라는 이름의 불상이라도 있는걸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뒤에 달린 "육첩간"이 신경쓰여서 마미는 다다미 버튼을 클릭했다.
새로운 페이지는 불상과는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우선은 가장 궁금한 정보부터 찾아봤다.

[시무라 코우노신, 타쿠야의 2촌 친척. 3년전부터 동거를 시작해, 옆방에 살고 있음. 얼핏 3세대동거의 행복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세대가 다른 타쿠야와 코우노신은 오늘도 물밑에서 배틀을 펼치고 있다]

"음, 그러니까. 부모님이 1촌이니까, 2촌이면 할아버지와 손자란 말이네. 타쿠야군은 독신이니 아이도 없을테고, 아이가 없으면 손자도 없을테니까. 결국 코우노신씨는 타쿠야군의 할아버지가 되는 셈인가. 하지만 할아버지를 이름으로 막 부르다니 ... 대단한 손자네"
4인가족이란 건 타쿠야군은 형제가 없다는 얘기고, 자연히 할아버지를 지극히 따르는 아이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할머니와 친구느낌으로 지내고 있다는 반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코우노신의 단칸방' 은 코우노신이라고 하는 이름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역시 타쿠야군이 운영하고 있는 페이지였다. 내용은 거의가 라이벌 코우노신씨에 관한 관찰일기다.

<오늘도 코우노신이 내 옷장에서 마음대로 셔츠를 꺼내 입고 나갔다. 빨강, 노랑, 초록의 신호등컬러에 깃을 헤쳐놓은 스타일의 셔츠는 녀석한테 전혀 안어울린다. 조금쯤은 자기 나이도 생각하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항상 느끼고 있지만 혹시 나를 동경하고 있는건가?>

<코우노신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시끄러워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흘러나오는 소리가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거라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고전만담이라니 대체 뭔가. 일본어가 머리속에 직접 흘러들어온다. 정말이지 어떻게 좀 해줄 수 없나. 불평을 했더니, 오래된 걸 좋아하는 상대의 취미를 서로 존중하자고 말씀하셨다. ─ 어이, 만담과 불상을 같은 레벨로 놓지마!>

<머리가 길어서 단골미용실에 갔더니 거기서 코우노신과 조우. 녀석은 옛날부터 이발소에 다녔을텐데. 대체 언제부터 생활패턴을 바꾼거야. 내가 가게에 들어온것도 모르고 실 웃으며 머리에 염색쳐바르고 있었다. 멋이나 부리고, 여자라도 생긴건가? ... 무리다 무리. 꽃단장해봤자 나이가 나이다>

불상의 지식보다도 이 코우노신씨의 정보가 마미에게는 훨씬 더 재밌었다. 타쿠야군도 불상에 관해서는 아주 냉철한 문장을 쓰고 있으면서 어째서 코우노신씨에 관해 쓸 때면 이다지도 감정적이 되는걸까.
"결국 타쿠야군 역시 코우노신씨를 과잉의식하고 있는 셈이잖아"
한번 죽 읽기를 마친 후, 전화회선을 끊었을 때 마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코우노신씨 덕분에 타쿠야군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무라 타쿠야.
어느샌가 마미는 그에 대해서 "니죠 노리코가 사귀고 있는 남성" 이라는 호기심과는 전혀 다른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내일, 아주 높은 확률로 타쿠야군과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흥분으로 몸이 떨려왔다.
대체 어떤 남자일까.
"시무라 타쿠야.. 인가"
내일의 이벤트가 점점 기대되기 시작했다.

 

========================================================================
* <코우노신의 단칸방>의 원문은 <甲之進の六?間 (코우노신의 6첩간)>입니다. 
   육첩간은 다다미 6장 크기의 방이라 여기서는 단칸방으로 했습니다.
   (다다미2장이 약 1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