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3권 한여름의 1페이지 -5- 약속장소까지

약속장소까지

 

 

1.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복도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시마코는 뒤돌아보았다.
"아, 아버님. 다녀올게요"
키모노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선향의 향기. 매일 아침 체발(머리를 바짝 깎음)하고 있는 정결한 머리. 시마코는 이른바 '스님'이라 불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러냐. 외출하려고?"
"네"
"학교가는 건 아닌듯 싶다만..."
아버지가 언제나 "까마귀같다"고 표현하는 리리안 여학원 교복은 오늘은 휴식. 그 대신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하얀 바탕에 감색 꽃무늬 모양이 그려진 시원스런 원피스였다.
"노리코와 불상전을 보러가기로 약속했거든요"
"흐음. 니죠 노리코짱하고 말이지"
아버지는 팔짱을 끼며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너한테 불상의 참멋을 가르쳐주다니 좋은 후배로구나. 리리안 여학원에서는 보기 드문 학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오늘은 마리아관음을 보러가는 거예요"
시마코가 보고하자
"... 그러냐"
아버지는 김빠진듯 중얼거렸다.
"저기 ─ "
뭔가 대답을 잘못한 게 아닌가 해서 자기 말을 되짚고 있으려니까 아버지가 다시 기운을 차린 듯 밝게 말했다.
"그렇지. 혹시 시무라씨도 만날 예정이냐?"
"타쿠야군요? 아 네"
시마코는 끄덕였다. 미술관 옆의 역앞광장에서 만나 셋이서 불상전을 보러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 타쿠야군 이라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연상인데"
아버지가 나무랐다. 도리에 맞는 지적이어서 시마코는 순순히 반성했다.
"그렇네요. 노리코가 늘 그렇게 부르다보니까 그만 옮았나봐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너말이다, 농담 좀 한건데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거라.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야 난 상관말고 '타쿠야군'으로 부르면 되지"
"아뇨 별로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도 아니라서요"
".... 그러냐"
아버지는 맥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러니까 ─ "
역시 자기가 또 분위기 안맞는 말을 하고 만걸까, 하고 시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을 아버지께서 바라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마코는 신발장 위에 놓아둔 모자를 쓰고 아버지를 올려다 봤다.
"시무라씨를 만날텐데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만나거든, 미안하지만 편지를 전해주겠니?"
아버지는 키모노 소매 안을 뒤지면서 말했다.
"편지요?"
"어제 그 사람 홈페이지를 인쇄한 종이가 우편으로 와서 말이지. 그 감상을 적어본 거다.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는데 네가 만날거면 직접 전해줘라. 못만나면 돌아오는 길에 아무 우체통에다 넣어주면 되고"
내민 봉투에는 이미 우표가 붙어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상대한테 전해주는 편이 좋을거라고 아버지는 생각하셨을테다.
"알았어요"
시마코는 편지를 받아 가방 안에 넣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네"
다시 인사를 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아마 자신은 아버지 표현을 빌자면 "재미없는 인간" 일테지. 시마코는 걸으면 생각했다. 아버지는 한 인간으로서 재밌다. 승려로서도 재밌고 알기 쉽게 설법으로 평판이 자자하다. 시주와 내기를 하며 놀기도 하는 얼핏 성직자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을 법한 행동도 그 인덕으로 인해 용납되곤 했다.

격자문을 열며 문득 생각했다. 아버지와 자신은 정말 피가 이어져 있는걸까. 
(.... 물론 이어져 있을테지만)
문밖으로 나와 눈을 내리깐채 뒤돌아서 격자문을 닫는다. 그 때.
"어이"
갑자기 문이 불러세웠다.
"우왓"
시마코는 자신도 놀랠만큼 짧고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뭘 그리 놀래냐. 나다 나"
다시 자세히 보니 격자문 맞은 편에 아버지가 서계셨다. 
"멍하게 있으니까 눈치도 못챈거지"
"아, 예..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약간 기쁜듯이 "좀 재밌었나" 하고 말했다.
"저기... 아버님, 무슨 일로?"
시마코는 방금 막 닫은 격자문을 열고 물었다. 설마 아버지가 딸을 놀래키려고 뒤를 쫓아왔을 리는 없겠지.
"시마코. 정신차려서 듣거라"
"아, 네"
무슨 말씀하시려는걸까. 시마코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알렸다.
"JR 상행선이 지금 운행중지라는구나"
" .... "

─ 그건 확실히 심각한 소식이었다.

 

 

2.

 

어떤 옷을 입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거울 앞에서 맞춰보던 흰색과 물빛테두리의 여름스웨터와 엷은 핑크 블라우스, 둘다 안아들고서 전화를 받았다.
"노리코?"
"아, 언니. 안녕하세요"
시마코언니가 다짜고짜 "노리코?" 라고 걸어온 것에 다소 의문을 느끼며 인사를 했다. 긴급한 연락일까. 평소같으면 "니죠씨댁인가요?" 하고 우선 확인하실 분인데.
"노리코, JR로 올거지? 운행중지됐다는 거 알고 있어?"
"엣, 중지요?"
그건 확실히 긴급을 요하는 전화였다. 집주인인 스미레코 큰숙모가 전화내용을 즉시 알아채고 거실의 TV를 켰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금 어느 채널에서도 전차운행중지에 관한 자막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인명사고가 있었대. 언제 다시 운행할지 모르나봐. 난 민영철도를 이용하면 되지만 넌 괜찮겠니?"
"아 그러니까... "
괜찮은지 물어봤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벼운 패닉을 일으킨 노리코의 머리속은 새하얗게 되어 버렸으니까. 스미레코 큰숙모의 맨션에 신세진 지 이제 겨우 5개월. JR이 운행중지된 경우의 이동수단이라니,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노리코가 이용하는 역의 앞에도 민영철도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거야"
"아, 네"
스미레코 큰숙모도 광고지 뒷면에다 수성펜으로 선로와 역의 약도를 그리고 거기에 민영철도로 가는 버스이름을 몇갠가 적어주셨다. 북쪽입구와 남쪽입구에서 각각 철도회사역으로 가는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의외로 도심방면으로 빠져나가는 수단은 여러 패턴이나 있나보다. 겨우 안심이 되나 싶더니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거다. 토요일이고> 라는 실망스러운 코멘트가 추가되었다.
"금방 탈 수 있는 민영철도면 되니까 아무튼 그걸 타고 동쪽을 향해 오도록 해. 야마노테선 아무 역이라도 도착하기만 하면 거기서 갈아탈 수 있어"
"알았어요"
"침착하도록 해. 타본 적이 없는 버스는 언제 도착할 지 몰라 짜증이 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건 없으니까"
"네"
뭐든지 다 알고 계신다. 게다가 동생의 마음속까지 제대로 짚어내기까지 한다. 언니란 존재는 정말 굉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안해도 괜찮아. 난 약속시간에는 제때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노리코가 늦을지도 모른다고 시무라씨한테 전해둘게"
"죄송해요"
"그럼 나중에 봐"
전화가 끊긴 뒤, 노리코는 물빛테두리 여름스웨터와 흰색 스커트로 갈아입고 서둘러 출발했다. 아까부터 계속 노리코가 고민하며 옷고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미레코 큰숙모가 웃으며 말했다.
거봐 하면 되잖아.

 

 

3.

 

실수다. 
JR이 운행중지라니, 역에 도착할 때까지 몰랐다.
"언제쯤이면 운행재개하죠?"
마미가 필사적인 모습으로 젊은 역무원에게 다가가자,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 금방 될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이지, 하고 생각했더니 정말로 역 플랫홈에 전차가 들어왔다. 틀림없이 상행선전차다.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뒤늦게나마 전차가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홈으로 흘러나왔다.겨우 도착한 전차는 앞의 역, 그 앞의 역에서부터 기다려온 승객으로 오전 10시라는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통근러쉬때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운행스케쥴이 엉켜버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열차를 타려고 했던 마미에게 아까 그 역무원이 말했다.
"그런가요?"
하지만 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전차가 있고, 그 앞에 선로가 뻗어 있으니. 굼벵이 운행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지금부터 버스로 민영철도역까지 가느니 이 편이 빠를 거라고 계산했다.
" .... "
하지만 전차는 생각보다 훨씬 굼떴다. 아무래도 전차가 잔뜩 밀려있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역에 내려서 버스를 탈까 하고 생각하면, 약간 움직인다. 그래서 기대감에 안내리고 있으면 또 좀처럼 안움직이는 상황이다. 왠지 선택이 계속 예상을 빗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 여보세요, 켄지? 지금 전차 안이야. 나참 꼼짝달싹도 안한다니까. 초- 열받아"
같은 차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젊은 여자가 휴대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초-늦을 것 같지만 돌아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아아.. 대체 뭐람)
용건끝났으면 얼른 끊으라구. 마미는 보이지 않는 여자를 향해 스페시움 광선을 발사했지만 괴수 둔치다-는 조금도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나비인지 내장인지를(*) 끊임없이 입으로 내뱉으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높여 웃고 있다.
(*나비, 내장 둘다 발음이 초-)
문에 가까운 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참나" 하고 조그만 소리로 투덜거리며 짜증스럽게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옆에 앉은 예쁜 언니의 발을 건드려 언니는 아저씨한테서 고개를 돌리고는 혀를 찼다. 언니의 앞에 서있던 아줌마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연쇄반응으로 차안의 짜증지수가 팍 올라갔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본다면 자기도 짜증이 전신에 드러나 보일거라고 마미는 생각했다.
(아, 타쿠야? 나, 마미. 지금 전차 안이야. 늦을 것 같은데 기다려 주지 않을래? 나, 당신 얼굴이 보고 싶은걸)
외부의 짜증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타쿠야군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너무나 바보같은 짓이지만 약간 재미를 느껴서 그런지 어느새 기분이 풀렸다.
(여보세요, 타쿠야? 혹시 당신도 전차 안에서 짜증내고 있지 않아?)
시무라씨댁이 어딘지 마미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혹시 이 전차, 이 차량에 타쿠야군이 같이 타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이나마 따분함을 벗어나게 해줬다.

 

 

4.

 

하지만 아쉽게도 시무라 타쿠야는 그 차량에 같이 타고 있지 않았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그 노선 자체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약속시간보다 상당히 일찍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역건물에서 윈도우쇼핑을 즐기는 여유조차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전차안에서 짜증내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오히려 산뜻한 기분이었다.
10시 20분.
역앞 광장 분수대 주위를 한바퀴 돈 뒤 그 자리를 떠났다. 노리짱이 안왔다는 것만 일단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덧붙여서 적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 역시"
걷기 시작한 타쿠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한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코우노신.
여자와 만나기로 한 걸 알고, 상대의 모습을 보러온 것이다. 모처럼 토요일인데 가족의 뒤나 밟고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은 안드나. 취미를 만들라고 취미를.(단, 고전만담은 제외하고)
코우노신은 이 쪽이 미행을 눈치챘다는 것도 모르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그렇게까지 해서 노리짱을 보고싶다는 건가. 그럼 원치는 않았지만 정식으로 소개시켜주고 얼른 돌아가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다.
"잠깐. 혹시 코우노신이 엄마한테서 아르바이트비를 받고 나를 미행하고 있는 거라면 ─"
원치 않았던 소개같은 걸 했다간 일이 커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상대가 15살이란 걸 알았다가는 뭐라고 보고를 할지 짐작조차 안간다.
(우왓, 시무라 너 로리콘?)
전에 노리짱에 대해 얼떨결에 말해버렸을 때 대학 같은 과 여자애들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지 않았던가.
(생각하기 싫은 일을 떠올리고 말았군)
그 애들은 그나마 낫다. 어차피 타인이니까. 하지만 가족이 그런 눈으로 본다면, 꽤나 피곤해진다.
역시 코우노신이 노리짱을 보게 해선 안돼.
─ 이런 사정으로 타쿠야는 역 건물 안을 빙빙 돌며, 코우노신을 떨어트리는 작전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