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3권 한여름의 1페이지 -1- 오퍼와 플롯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マリア樣が見てる)

   한여름의 1페이지(眞夏の一ペ-ジ)

 

작가: 콘노 오유키, (그림) 히비키 레이네

 

 

줄여서 OK 대작전(가) 略してOK大作戰(假)

 

"평안하세요 (ごきげんよう)"
"평안하세요 (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인사가, 청명한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여드는 소녀들은 오늘도 천사처럼 티없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높다란 문을 빠져나간다. 더러움이 닿지 않은 몸과 마음을 감싸는 짙은 색 교복. 스커트의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가 펄럭이지 않도록, 천천히 걷는 것이 이 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지각 빠듯한 시간에 뛰어가는 경박한 학생이 있을 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私立リリアン女?園).
메이지(明治) 34년에 창립한 이 학원은, 원래는 귀족의 영애를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 전통있는 카톨릭계의 아가씨 학교이다. 토쿄도 내. 무사시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녹지가 많은 이 지구에서, 신의 가호를 받으며 유치부에서 대학까지 일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는 변해, 원호가 메이지에서 3번이나 바뀌어 헤이세이(平成)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18년의 세월을 온실 속에서 자란 순종배양 아가씨가 포장돼 출시되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그야말로 귀중한 학교이다.

 

---- 라고는 했지만, 지금은 여름방학이니까.
스커트 주름도 하얀 세일러 칼라도 신경쓸 필요없이, 팔락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한다.
저런저런, 아가씨들. 언제 어디서건 하늘에서 마리아님이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마시기들.

 

 

- 오퍼(Offer)와 플롯(Plot) -

 

 

1.

 

"뭐? 고어사전?"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봤다.
"아, 응 ... 아니"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는 건, 짜증날만큼 자기랑 얼굴이 닮은 동생.
"대답이 왜그래?"
"응"과 "아니"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관계만큼 정반대인 단어일텐데. 아, 처음의 "응"을 "아니"로 고쳐 말한건가, 이렇게 납득한 유미는 책상 위 책꽂이에서 빼낸 고어사전을 다시 제자리에 넣으려고 했지만, 예상과 달리 유키는 그걸 받아들고 "고마워"하며 제대로 답례의 표시를 한 후 뒤로 돌앗, 한다. 그럼 좀전의  "아니"는 어디로 가버린거야, 이런 흐름이다.
"유키"
유미는 하얀 런닝셔츠 바람의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건다. 피서지에서 이제 막 돌아온 동생은 마치 바다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살이 갈색으로 타있었다. 학원제 회의라던가 뭐라던가 하더니만 꽤나 놀자판이었나보다.
"또 빌릴 거라도 있어?"
"아니"
어머나. 여기서도 또 "아니" 세요? 하지만 뭔가 분명치않은 태도다. 그래서 유미가 다음에 나올법한 말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유키는 잠깐 눈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에어콘 설정온도 낮춰줄래?"
"안돼"
물론 유미는 즉시 거절했다.
"이 방 덥다구"
"딱 좋다니까. 너무 춥게 해놓으면 몸에 안좋아"
일반적으로 남자쪽이 더위를 잘 탄다고 자주 듣곤 했지만, 그 통계, 후쿠자와 가족에게는 그야말로 딱 들어맞고 있다. 아빠도 유키와 마찬가지로 더위를 잘 타서 여름은 질색. 엄마랑 유미는 추위를 잘 타서 겨울이 괴롭다.
"그럼 너무 더운 건 몸에 좋단 말야?"
유키는 아직도 포기못한 채, 런닝셔츠의 가슴부근을 잡고선 일부러 보란 듯이 펄럭펄럭 부채질했다.
"그런 말은 아니지만. 온도를 낮추면 이번에는 내가 춥잖아"
"뭐라도 입지 그래?"
"여긴 내 방이야. 네가 벗지 그래?"
"이 이상 뭘 더 벗으란 거야"
"....."
지당한 말씀.
런닝셔츠에 짧은 반바지. 이미 벌써 처녀의 방에 실례를 무릅쓸 수 있는 한계치다. 저렇게 면적이 좁은 의류니까 벗는다고 해서 그만큼 시원해 지는 것도 아닐테지만.
"방으로 돌아가지?"
유미는 약간 짖궃게 말했다.
"안가. 내 방 진짜 위험하니까"
"작열지옥?"
"응. 15분이면 열사병 걸릴걸"
그러니 여기 있게 해주세요, 라고 순순히 머리를 숙여서, 유미는 "에구 착해라"하고 허락했다. 그리고 귀여운 동생을 위해 에어콘 설정온도를 1도 낮춰 줬다. 무사의 정이다.
삣.
실은 유키의 방은 현재 에어콘이 고장난 상황이다. 언제부터 상태가 나빠졌는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났다가 말았다가 하는 조짐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어제 저녁, 합숙에서 돌아와서 스위치를 눌렀더니, 착각이라 해도 "조짐" 따위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굉장한 
소리를 한 번 울리고서는 그대로 "우웅"도 "스응"도 하지 않고 멈춰버렸다는 얘기다.
유키 왈, "그건 아마 에어콘의 단말마였던거야" 라지만, 어이, 아직 죽었다고 정해진 게 아니잖아. 수리하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그 수리 말인데, 전파상에 전화했지만 왠지 바빠보여서 모레 이후가 아니면 못온다고 한다. 그래서 유키는 오늘 아침부터 유미의 방 한쪽 구석을 빌려 여름방학 숙제를 하고 있다는 사정. 보다 쾌적한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도서관이라도 가면 될텐데, 그렇게까지는 안한다. 이 더위 속에서 자전거타고 밖에 나가느니, 좀 주눅이 들더라도 누나 방에 신세를 지는 쪽이 나은가보다.

(에? 하지만)

에어콘 온도 낮춰 달라고 말꺼내기가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유미는 의자에 고쳐앉으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왠지 아까 그건.. 그래,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지만, 그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같은, 그런 "... 아니" 였던 게 아닐까.
빙그르르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면서 생각해봤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그래도 역시 신경쓰여서, 유리받침대를 깐, 조그만 로우테이블 앞에 앉아 사전을 계속 들춰보는 동생의 머리가마를 향해 말을 걸어봤다.
"....유키?"
--- 그러자, 그 말을 덮듯이 유키가 머리를 들고서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유미!"
"뭐, 뭔데?"
충혈, 까지는 안됐지만 눈에 꽤나 힘이 들어가 있다. 그, 마음을 굳혔어, 라고 할만한 표정에, 유미는 순간 경계자세를 취했다.
"저기 말야"
"으, 응"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당당히 받아내는 것이 연장자로서의 위엄이란 것이다. 나이차, 기껏해야 1년미만. 그렇다곤 해도, 명색이 누나인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하나데라 학원고교 학원제에 올해도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학생회 사람들이 도와주러 올테지?"
"...그럴 예정인데?"
이야기의 테마는 아무래도 학원제관련, 인 듯. 하지만 아직 핵심부분은 보이질 않아.
"2학기 되면 당장이라도 우리 학교에서 모임을 갖기로 얘기가 되어서 말야"
"아, 그래?"
그에 관련한 일이라면 레이님이 연락창구를 맡고 계셔서, 유미는 그다지 잘 파악하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 그 일로 상담하는건데, 그 전에 한 번 다같이 만날 수 없을까... 해서"
"엣?!"
예상못한 제안이었던지라, 유미는 무심코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유키는 당황해서 두손을 휘저으며 말을 뒤이었다.
"아니 뭐랄까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준비라든가 그런 관계로 조금이라도 빨리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고 할까"
웅얼웅얼.
"솔직히 기획이 마무리가 된 상태라, 리리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라는 마음도 있.. 는 것 같고"
"....."
가만히 듣고만 있자, 유키는 약간 눈을 위로 향하며 "역시 안돼나"하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흐음, 과연, 안될 걸 예상하고 해본 말이란 거네.
"그것뿐이야?"
유미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것뿐이라니?"
"거기에 불순한 의도는 들어있지 않겠지?"
"부,불순?! 불순이라니 무슨 말이야?"
이번에는 유키가 눈을 부릅떴다. 거기서 유미는 집게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예를 들면" 하고 말했다.
"진정한 공주님이신 사치코님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 라던가, 청순가련한 시마코양과 가까워지고 싶어, 라던가. 다카라즈카(*)의 톱스타역이신 레이님에게 죽도로 맞고 싶어, 라던가"
유미는 리리안 여학원의 아름다운 세 장미님을 한사람 한사람 황홀한 표정으로 떠올렸다. 그런데도 유키는 참, 슬며시 소리내지 않고 웃으며 누나의 말을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앞의 두 사람은 그렇다치고, 마지막은 글쎄"
"예를 들면 그렇다는 얘기야. 미리 말했잖아"
"예를 들면 그렇다는 얘기라면 뭐"
확인하고서는, 다시 유키는 진지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겠지. 리리안 여학원의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자식들한테는 미지의 세계니까 흥미없을 리가 없잖겠어. ..... 물론, 입이 찢어져도 그렇다고 순순히 털어놓을 리는 없겠지만"
자식들. 미지의 세계. 흥미. 어쩐지 듣고 있는 것만으로 어질어질하다. 남성혐오증의 사치코님 귀에는 절대로 들어가게 해선 안 될 종류의 말이다.
"충분히 거창한 얘기네 뭘"
"응. 그건 그래. 미안"
유키는 약간 풀이 죽었다. 불쌍하게도 학교 친구들과 누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말야, 혹시 선배들 심부름꾼 노릇하고 다니는거 아냐? 올해 하나데라 학생회장은 대체 어떤 사람이야?"
"싫어도 곧 알게 돼"
어떤 사람이던간에, 동생에게 추파를 던지던 전 학생회장, 카시와기씨보다는 낫겠지, 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유키를 가차없이 굴리려드는 난폭한 사람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지만.
"저기 있지, 유미. 이건 정식요청도 아니니까, 거절해도 상관없어"
유키는 이제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어 있다.
"으음"
유미는 끄덕이면서, 이 얘기를 독단으로 거절해버려도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정식 제안은 아니다. 자기 학교 학생회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지붕아래서 살고 있는 남매다보니까 귀에 들어온 이야기.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걸 지금 이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하려니까, 왠지 "잠깐 기다려"같은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다. 가만있어봐. 이건 골몰히 생각해볼 문제다, 라고.
"흐음"
"다시 생각해보니, 여름방학중에 학교를 거치지 않고 모인다는 건, 자유참가 형식밖에 안되는 셈이니까, 원래부터가 터무니없는 얘기였어"
"잠깐만 잠자코 있어봐, 유키"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동생에게 일갈. 누나는 지금 평소에는 쓰지 않을 것같은 뇌를 풀가동해서 생각중이란 말야. 방해하지 말아줘.
(저걸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테지. 그걸 잘 이용할 수 있다면, 혹시 ---)
멀뚱멀뚱 기색을 살피던 유키를 무시하고, 유미는 탁 손을 쳤다.
"좋아, 알았어!"
"저기.. 유미?"
"아무튼간에, 보류야"
"엑?"
"못들었어? 보류라구. 참가하는 방향으로 검토해볼테니까"
"에엑?"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잖아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유키는 몸을 뒤로 젖히더니만, 다시 매달리듯이 바짝 다가와서 말했다.
"유유유유, 유미. 너 진짜 언제부터 그런 권력이..?!"
"바보네. 그러니까 검토라고 했잖아. 아무튼 로사 페티다(황장미님)인 레이님에게 상담해보지 
않고서는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말야"
좋은 일은 서둘러라. 책상 서랍에서 학생수첩을 꺼내어 전화번호를 체크.
"레이님? 어라, 사치코씨가 아니라?"
전화 수화기를 넘겨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키에게 유미는 말했다.
"응. 왜냐면.. "
사치코님 일인데 본인에게 상담할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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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 일본의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극단

 

2.

 

" ─ 하기사"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쭈쭈욱 마신 후, 유미는 한숨을 쉬었다. 
"레이님에게 연락하면 틀림없이 요시노양이 따라올거란 것쯤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인데"
"뭐야, 그럼 마치 내가 금붕어똥(*)같잖아"
(*똥을 달고 헤엄치는 금붕어의 모습을 졸개나 방해꾼에 빗댄 말)
티플로트에 떠있는 바닐라아이스크림을 빨대로 쿡쿡 찌르며 요시노양은 혀를 쭉 내밀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스트로베리 쉐이크를 휘젓고 있던 레이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딱 잘라 말했다.
"뭐? 같잖아가 아니라 요시노는 금붕어똥 그 자체잖아. 내가 외출하는 걸 발견하고선 끈질기게 '어디가?' '누구랑 만나?'하고 캐묻더니, 상대가 유미짱이란 걸 알자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왔으니까"
"흥. 별로 레이짱과 외출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걸. 난 유미양 만나러 왔을 뿐이다 뭐"
퉁퉁, 볼이 부어오른 그 모습은 금붕어라기보다 복어다. 요시노양은 '좋아하는 레이짱'에게 급소를 지적당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아 그러셔. 그럼 그런 걸로 해두지 뭐"
"아-, 기분나쁜 말투"
토닥토닥, 레이님의 건장한 두 팔을 주먹으로 때리는 요시노양. 저기, 그런 사랑싸움은 가급적 집밖으로 가지고 나오지 말아줬으면 싶은데. 안그래도 이 시기는 일본전국이 뜨거우니까.
"요시노님이 금붕어똥이라고 하면, 전 대체 무슨 동물의 똥이 되는걸까요?"
잠자코 대화를 듣고있던 노리코짱이 뜬금없이 물었다. 그러자 우리의 저기압이신 요시노양이 약간 가시돋힌 말투로 대답했다
"일단은 송사리같은 게 아닐까?"
"엣, 그럼 내가 송사리란 얘기?"
시마코양이 곤혹스러운, 그러면서도 유쾌한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노리코짱이 송사리똥이면 시마코양은 송사리로 자동 확정이다.
"있잖아 있잖아, 송사리도 똥을 매달고 헤엄쳐?"
"엣?"
유미의 말에 순간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 핀트어긋난 발언을 해버린걸까. 잘 모르겠지만, 제정신을 차린 레이님이
"....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목에 걸린 쉐이크를 억지로 삼키며 제안하고 있다.

실은 레이님의 의견을 살짝 들어보고 싶었는데, 어째 일이 지나치게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유미였다. 6명중 5명이라고 하면 산백합회 멤버 거의 다, 아니 그보다 사치코님을 제외한 전원이 모인 셈이다. 상담할 게 있는데요, 라고 레이님에게 전화했던 것이 오늘 오전. 그랬더니 레이님은 눈치 빠르게도 시마코양까지 소집시킨 것이다. 그 때 우연히도 노리코짱이 시마코양 집..이랄까 절에 찾아와 있어서, 그대로 두 사람이 함께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

K역에서 조금 걷다보면 나오는 찻집은 평일이지만 여름방학이라 꽤 붐비었다. 3시면 마침 차 한잔 고픈 시간대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레이님과 요시노양이 한발 앞서 도착해 순서를 기다려준 덕분에, 약속시간에 딱 알맞게 자리가 비어 5명은 불지옥 속에서 말라비틀어지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 ─ 다시 말해서, 유미짱은 동생이 들고 온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싶다, 그 말이지? 사치코를 위해서"
대강이긴 해도 사전에 전화로 내용을 들었던 레이님이 확인한다. 
" '받아들이고 싶다' 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인건 아니고요.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하는 정도의 마음인데요"
다소 주춤거리는 태도로 유미는 대답했다. 산백합회 관계자이긴 하지만, 어차피 부통(봉오리). 이렇게 하죠, 저렇게 하죠 하고 휙휙 끌고다닐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음. 확실히 그래. 나도 슬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레이님의 말에 시마코양과 요시노양도 크게 끄덕거렸다. ─ 만, 단 한 명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저기, 죄송한데요. 초보자라서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리코짱이 손을 들었다. 올해 리리안 여학원 동료가 되었으니, 그녀가 사정을 파악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사치코님은 남성혐오증이야"
요시노양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께서...  아아, 그런가요"
"별로 안놀래네"
레이님이 묻는다. 노리코짱은, 고개를 작게 옆으로 저었다.
"아뇨. 놀라긴 했어요. 하지만 저기,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께서 어떻다기보다, 역시 여학교에는 남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구나 해서.  ... 아아, 그렇구나. 하나데라 학원은 남학교니까, 남성혐오증이면 학원제 도와주러 가는데 지장이 있다는 얘기군요"
바로 그거다.
"노리코짱, 머리회전이 빨라서 좋아"
"그런가요"
그렇고 말고. 연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침착함. 부러울 정도다.
노리코짱은 쿨하다. 쿨이란게 아무래도 나이와 더불어 몸에 붙는 건 아닌가보다. 그걸 깨달은 유미는 쇼크를 받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3학년이 되어도 지금 이대로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어라? 하지만 작년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 때도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께선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홍장미 봉오리)였었잖아요?"
노리코짱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작년도 재작년도 도망쳐서 결국 그 쪽 학원제에는 안갔어. 뭐 그땐 아직 부통(봉오리)이었으니까 용납되긴 했지만"
"하지만 올해는.."
"그래.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니까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래서 유미짱이 생각한거지"
레이님이 "자 말해봐"하고 바톤을 넘기자, 유미는 일어나서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천정을 가리키며, 척 포즈를 취했다.
"이름하여 '갑자기 남학교에 내던지면 쇼크가 크니까 서서히 익숙해지도록 해서 남성혐오증을 극복하자 대작전'!"
"작전명이, 너무 길지 않나요?"
"....그,그러네.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아아, 진짜 쿨하다. 노리코짱.
"여름방학 동안에 하나데라 학생회에 익숙해진다, 이런 말이야?"
시마코양이 물어본다.
"그거야"
유미는 자리에 앉으며 끄덕였다.
"사치코님말야, 어째선지 내 동생은 괜찮나봐. 그렇다는 건 아마 선입견과 익숙함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거지. 전에 선대 장미님들이 말했지만, 사치코님의 남성혐오증은 선천적인 게 아니래. 그렇다면 방법에 따라서 극복할 수 있잖겠어?"
"그래서 서서히, 란거네"
"내 동생이 옆에서 '이 사람들은 안전하다'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면, 사치코님도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2학기가 되어 하나데라에 가더라도 그렇게 패닉을 일으키지 않을테고"
"오호라. 그거 일리있다. 뜨거운 목욕탕에 갑자기 들어가지는 못해도, 미지근한 물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뜨겁게 해가면 의외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
끄덕끄덕, 이라니 요시노양. 알기쉬운 비유라고는 하지만, 사치코님의 남성혐오증과 목욕탕을 같은 레벨로 두는 건 역시 뭔가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드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만나는 게 가장 좋겠어? 유미짱 뭔가 생각해둔 게 있어?"
"바로 그 점인데요"
유미는 볼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긁었다.
"마땅한 장소가 좀처럼 생각이 안나네요"
여름방학 후반기, 산백합회는 학원제 준비로 자주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 허가도 없이 그곳에 하나데라 학생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키는 하나데라 교실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준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 어떤 마법을 써야 남성혐오증인 사치코님을 남학교까지 데리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보다 먼저, 사치코님이 그 모임에 참가하도록 만드는 건 가능해?"
"윽"
요시노양도 참, 아픈 곳을 찌른다. 확실히 사치코님을 위해서 계획한 그 모임에 당사자가 안온데서야 의미가 없었다.
"반드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반드시... ?"
레이님과 2학년 세 명은 동시에 사치코님을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았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반드시"라는 말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
"즉, 요코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란 말이죠?"
그리고 전원이 도달한 결론은.
"명령한다"
"─ 그렇겠네"
서투른 잔꾀는 안부린다. 단지 한 마디. "사치코, 참가해"  ─ 이거다.
"하지만 이 중에서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께 명령할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
노리코짱의 한 마디로 모두 서로 마주본다.
"명령 못 할 건 없지만. 내가 해봤자 사치코라면 자기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안 들을걸. 어떻게 생각해? 로사 기간티아(백장미님)"
레이님이 시마코양에게 말했다.
"물론 저 역시 무리죠. 같은 장미님을 칭하고 있다고는 하나, 후배인걸요. 명령은 아무래도.. "
시마코양도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연히 유미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잠깐만요. 동생인 내가 언니에게 명령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욧"
뭘 기대하고 있는거야 다들.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잖아.
"... 그렇겠네. 설사 사치코가 유미짱에게 홀딱 반해 있다고 해도, 요코님하고는 완전히 다른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걸"
누구 한 사람도 요코님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역시 다른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럼 세이님이랑 에리코님이면 어떻게 할까요?"
"... 함정에 빠뜨리지 않을까?"
"그거, 그럴 듯해"
물론 요코님도 가담해서. 애초에 작년 학원제에서 한 연극 <신데렐라>에서 사치코님에게 비밀로 하고 왕자역에 카시와기씨를 캐스팅한 건 그 사람들이다.
"잠깐만, 그건.. "
함정이란 얘길 듣고 시마코양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요시노양은 꺾이지 않는다.
"백장미양들은 잠자코 있어줘. 너희들도 결국은 특단의 조치가 먹혀들어서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있잖아"
그런 말 들으면 시마코양도 노리코짱도 반론못하지. 그녀들 또한 산백합회 동료들의 함정에 걸려 좋은 결과를 얻은 샘플이니까.
"우연을 가장해서 만나게 하는거야. 그래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거고"
레이님이 테이블 위에서 사치코님과 하나데라 학생의 표시로 세운 유리컵을 이동시키면서 확인해본다. 그러자 물 한잔 더달라는 요구로 착각한 웨이트리스가 다섯 명 모두의 컵에 차가운 물을 채워주고 갔다.
"하지만 어디서? 거리에서라면 도망칠거야. 게다가 그렇게 우연의 상황을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의성이 보이면 사치코님에게 들켜서 도리어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 같지 않아?"
요시노양이 턱을 괴며 "우웅"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찻집은 어때?"
깊은 의미없이 유미는 제안해봤다. 하지만.
"우리들 이제부터 학교에서 자주 만날텐데, 일부러 사치코님을 밖에 불러내는 건 이상하지 않아? 게다가 거기에 우연히 하나데라 학생이 있다,라고? 사치코님이 아니라도 납득못할거야"
곧바로 기각.
"그런가. 어느쪽이건 부자연스럽지 않은 장소가 아니면 안된다는 거구나. 하지만 그런 장소가 있으려나?"
그러자 "잠자코 있어줘"라는 말에 얌전히 따르고 있던 노리코짱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유미님 집은요?"
"우리집?"
"동생분의 친구가 동생분 집에 놀러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리들이 유미님 집에 집합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확실히 그렇다. 딸의 친구와 아들의 친구가, 우연히 같은 날에 집합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이상할 건 없지만 ─ .
"... 우리집, 괜찮긴 해도 좁아서말야"
유미는 재빨리 계산해봤다.
산백합회에서 6명, 아마 하나데라 학생회도 그 정도. 물론 열몇명정도라면 수용못할 것도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갑갑했다.
"그럼 우리 도장으로 할까? 연습쉬는 날이면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레이짱. 그래선 하나데라 학생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없어"
"아, 그렇지 참"
요시노양에게 지적받아 레이님은 그 안을 곧 거둬들였다. 장소선택은 단순한 것같으면서도 꽤나 어렵다.
"차라리 사치코님 집에 찾아가면?"
"하나데라 쪽은 어쩌고?"
"카시와기씨를 이용하는거야"
"아아, 그런가"
거기서 노리코짱이 다시 손.
"저기, 그 카시와기씨란 사람은?"
"아, 사치코의 사촌이자 약혼자. 하나데라 전 학생회장이고 미확인이지만 동성애자란 정보도 있는 인물"
레이님은 간결하게 설명해줬지만, 저렇게 듣고보니 사치코님도 꽤나 엄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카시와기씨가 후배를 위해 넓은 장소를 제공했다, 이런 형식은 어떨까? 카시와기씨한테도 오가사와라 가문은 어머님쪽 실가이자 할아버님이 계신 곳기도 하니까. 가끔씩 놀러가는 것 같지?"
"네"
유미가 끄덕였다.
"그런 느낌은 있었어요"
정월에 오가사와라댁에 있던 카시와기씨는 보고 있으면 분할 정도로 그 집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그 카시와기씨가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할까?"
학원제 이후 만난 적이 없는 요시노양에게는 아직도 카시와기씨는 은행냄새나는 비참한 왕자인가 보다. 하지만.
"말하면 도와줄거라고 생각하... 지만"
유미는 중얼거렸다.
"어째서?"
요시노양이 묻는다.
"아, 아니. 왠지 그냥. 하나데라 졸업생으로서 후배를 도와준다고나 할까. 저기, 사치코님을 위해서라도 그렇고"
위험해.
유미짱의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들어주겠다는 카시와기씨의 말을 생각해내고는 그만 입을 놀리고 말았다. 그다지 숨길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오해받는 것도 싫으니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 안그래도 카시와기씨한테는 "유미짱"은 "유키치의 누나"와 동의어니까. 착각을 하든 당하든 좋지 않다. 혼자서 멋대로 당황해 버렸지만, 요시노양은 그 이상 질문해오지 않았다. 누구도 카시와기씨에 관해서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군. 사치코가 유미짱의 동생과 만난 것도, 정월에 카시와기씨가 사치코 집에 데려가서였었지?"
"네. 뭐 그런 셈이죠"
"상황으로선 부자연스럽지 않단 말이네"
그럼 그 노선으로 가자, 하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직전에, 레이님이 유미에게 아주 골치아픈 숙제를 떠넘긴 것이다.
"유미짱. 그럼 카시와기씨한테 가서 양해를 구하고 오도록 해" 라고.

 

─ 그런 잔인한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