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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이야기 조선야사40

송시열과 충청 부사 천둥 소리를 앞세우며 갑자기 쏟아진 폭우는 자욱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산천초목을 삽시간에 적셨다. 뿌옇게 먼지가 일던 황톳길은 금세 진흙탕으로 변해 버렸다.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근처 나무 그늘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갑자기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진담?"고갯마루 주막집 월선댁은 부엌에서 마당을 바라보며 버릇처럼 치맛자락을 두어 번 손으로 털었다."주모! 주모!"온 몸이 흠뻑 젖은 선비를 태운 말을 끌고 마부가 마당으로 들어서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예! 나갑니다."비가 와서 손님이 없을 줄 알았던 월선댁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마당으로 나갔다."비 한 번 굉장하게 오는군. 주모! 방 하나 있으면 주시구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 할 것 같소이다.""예! 나리, 마침 좋은 방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2023. 11. 24.

홍서봉의 어머니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의 어머니 유씨는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유씨는 당시 양갓집 규수들이 그러하듯 정식으로 글을 배우지는 못했으나 어려서부터 남동생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어깨 너머로 글을 깨우쳐 동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함은 물론 시문에도 능했다.혼기가 차자 당시 도승지로 있던 홍천민과 혼인을 한 유씨는 슬하에 아들 서봉을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홀몸으로 서봉을 키우고 가르쳤다.유씨가 시문에 얼마나 뛰어났던지 아는 이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자신이 지은 문장을 유씨에게 보이곤 했다. 하루는 먼 친척 되는 이가 자신이 지은 시문을 가지고 유씨를 직접 찾아왔다. 그런데 시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꽃이 지니 천지가 붉네 [花落天地紅] 이를 본 유씨는 눈을 .. 2023. 11. 24.

백사의 기문, 율곡의 현답 최씨 부인은 노기 띤 얼굴로 아들 이항복을 엄하게 꾸짖었다."도대체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철 없는 아이처럼 살아갈 것이냐? 자고로 사내로 태어났으면 학문을 열심히 닦아 장차 나라를 위해 큰 동량이 될 포부를 가슴 속에 품어야 하거늘, 아직도 학문은커녕 장난질이나 일삼으려고 하느냐!"최씨 부인은 그 동안 벼르도 벼르다 더는 참지 못하고 항복을 크게 호통쳤다."이항복이라면 공부는 뒷전이고 허구헌 날 기방이나 출입하는 천하에 난봉꾼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다. 네가 정녕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려는 게냐? 네 행실이 이러하니 내 죽어서 조상님의 얼굴을 뵐 면목이 없느니라."그 같은 꾸지람을 듣고 방을 물러 나온 이항복은 그 날부터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며 지난 자신의 행동을 돌아 보고 어머니의 질책을 되새기며 .. 2023. 11. 24.

퇴계의 잠자리 "스승님들은 아무래도 뭐가 달라도 다르시겠지?""글쎄, 그런 것이야 사람 본능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있겠나?""그래도 우리 스승님들 같은 유명하신 도학자들께서는 보통 사람과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시는 것이 다르지 않나."퇴계의 제자와 율곡의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끝에, 어느 새 스승의 잠자리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호기심 많은 제자가 퇴계와 율곡 선생은 도학자이니 잠자리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먼저 말을 건넨 것이다."그럼 우리 이러면 어떻겠나? 직접 확인해 보는 걸세.""확인을 한다고? 어떻게 말인가?""사람 참, 척 하면 모르겠나. 밤에 몰래 훔쳐보면 되지 않은가."장난기 심한 한 제자가 이렇게 제안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박.. 2023. 11. 24.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 지 오래지 않아 병석에 누우니, 나라의 대신들 사이에 대통을 이을 왕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다. 물론 예종에게도 아들은 있었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누가 왕위를 잇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형 의경세자가 일찍 죽고, 그의 아들인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의 나이가 어려 대신 왕위에 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예종이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 그의 아들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죽은 의경세자의 아들들이 왕위의 물망에 오르고 있었다."내가 이 나라의 국모가 될 수 있단 말인가?"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생인 자을산군보다는 형인 월산대군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박.. 2023. 11. 24.

손순효의 재치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은 훌륭한 인재를 고루 등용한 것은 물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한 왕이었다. 성종은 인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아끼고 소중히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손순효를 가장 가까이 하고 그 재주를 아꼈다. 손순효는 당대의 문장가로서 그 명성이 자자했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말도 없는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가슴 속에 품었던 광기가 되살아나는 듯 그야말로 말술을 마시며 사람이 돌변했다. 주사가 심한 손순효를 다른 신하들은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으나 성종은 언제나 변함 없이 자애롭게 대했다.한 번은 성종이 명나라에 급히 국서를 보낼 일이 있어 손순효를 찾았다. 왕명을 받은 신하는 다급하게 손순효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손순효는 집에 없었다. .. 2023. 11. 24.

세조와 원각사 세조는 온 몸에 든 피부병이 점점 심해지자 금강한 진주담으로 치료를 하러 가게 되었다. 진주담의 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가을, 겨울에는 따뜻하여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완치된다는 소문이 있었다.그 날도 세조는 진주담에 조용히 앉아 사색에 잠겨 있는데 한 소년이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진주담까지 올라온 소년은 명상에 잠겨 있는 세조 앞에 멈춰 섰다."웬 소년인고?"세조가 묻자 소년이 빙그레 웃었다."난 문수보살이오."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뒤로 둥근 후광이 무지개처럼 드리워 있었다. 세조는 깜짝 일어나 큰 절을 올렸다."내 그대가 참회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소. 그대가 죽인 억울한 원혼들을 위해 불경도 많이 외더군. 허나 이런 곳에서 목욕을 한다고 나을 병이 아니지. 쯧쯧."문수보살.. 2023. 11. 24.

매정한 정인지 밤이 늦도록 정인지의 방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끔 소쩍새 울음 소리가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려는 듯 산중에서 마을로 메아리칠 뿐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자욱한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오늘 밤에는 내 기어이 도련님을 만나 뵙고 애절한 내 마음을 전해야지….'처녀는 정인지의 집 쪽 담벼락에 붙어 서서 창호지에 뚜렷하게 어린 정인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혔다.그녀는 정인지가 옆집으로 이사 온 후 밤마다 남 몰래 정인지가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 왔다. 그러다 잠을 쫓으려 마당으로 나와 뜰을 거니는 정인지의 모습을 볼 때면 완전히 넋을 잃곤 했다. 그렇게 애를 끓인 지가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그러다 오늘 밤엔 기어이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고, 허락한다면 정인지와.. 2023. 11. 24.

푸줏간 청년 (중국야사) 옛날 중국의 한 젊은이가 푸줏간(식육점) 가게를 열었다.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 후 이 푸줏간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가게 주인 젊은이는 언제나 밝은 모습과 정직한 태도로 싱싱한 물건을 손님들에게 공급했고, 무엇보다도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는 그의 생활 태도가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상당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언제나 근면 성실하게 생활하였다. 이런 그의 믿음직한 생활 태도가 소문이 점차 퍼지면서 왕의 귀에도 들어왔다. 왕은 이 젊은이가 탐이 나서 관리 한명을 보내어 사랑하는 딸(공주)과 결혼해 줄 것을 제의했다. 왕의 명을 받은 관리는 "폐하가 너를 어여삐 보시어 공주를 너에게 시집 보내고자 한다. 이제 너만 승낙한다면 많은 혼수품은 물론, 높은 관직도 차지할 수 있다. 이는.. 2021. 2. 14.

동자삼과 외아들 이야기 옛날 효성이 지극한 한 부부가 외아들을 시탕(侍湯)하여 노모를 살려 낸 이야기가 대산면 서촌리 동촌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여 년 전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내외가 어린 아들과 함께 부러움 없이 지내고 있던 중, 노모가 갑자기 몸져눕게 되었다. 내외는 정성을 다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좋다는 약을 다 구하여 봉양하였으나 백약(百藥)이 무효였다. 화목하던 가정은 먹구름이 끼어 무거운 시름 속에 잠겨 있을 때 풍채 훤칠한 노승(老僧)이 시주 차 왔다가 수심 깊은 젊은 내외의 얼굴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내외가 자초지종을 아뢰었다. 사연을 들은 스님은 입맛을 몇 번 다시더니 할 수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당신의 외아들을 삶아 노모에게 먹이..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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