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잠자리

"스승님들은 아무래도 뭐가 달라도 다르시겠지?"

"글쎄, 그런 것이야 사람 본능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있겠나?"

"그래도 우리 스승님들 같은 유명하신 도학자들께서는 보통 사람과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시는 것이 다르지 않나."

퇴계의 제자와 율곡의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끝에, 어느 새 스승의 잠자리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호기심 많은 제자가 퇴계와 율곡 선생은 도학자이니 잠자리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먼저 말을 건넨 것이다.

"그럼 우리 이러면 어떻겠나? 직접 확인해 보는 걸세."

"확인을 한다고? 어떻게 말인가?"

"사람 참, 척 하면 모르겠나. 밤에 몰래 훔쳐보면 되지 않은가."

장난기 심한 한 제자가 이렇게 제안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박수까지 치며 찬성했다. 그들은 몇 사람씩 정해서 각자의 스승이 부인과 방사하는 말 밤 몰래 안방을 엿본 후 다시 이야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율곡의 제자들은 며칠 동안 스승의 거동을 살피다가 어느 날 밤, 율곡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재빨리 행동을 개시했다. 밤도 제법 깊어 주위에 인기척이라곤 제자들의 숨죽인 발걸음 소리 뿐이었다. 제자들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후, 얼른 안방 창가에 매달려 침 묻힌 손가락을 창호지에 살짝 찔러 구멍을 뚫었다.

과연 율곡은 도학자답게 잠자리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점잖게 부인을 상대하며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그 광경을 훔쳐보던 제자들은 율곡이 일을 끝내고 자기 자리에 돌아와 눕자 그제서야 자신들의 거처로 되돌아왔다.

"역시 도학자는 다르시구먼."

제자들은 하나같이 스승의 행동에 탄복했다.

한편 퇴계의 제자들 역시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어느 날 밤 스승의 안방을 엿보게 되었는데, 제자들은 모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 그처럼 근엄하고 학자다운 풍모를 잃지 않던 스승이 잠자리에서는 너무나 과감하고 일면 난잡하기까지 했다. 지금 방에 있는 사람이 도학자 퇴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퇴계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그 광경을 보기 민망하여 얼굴만 붉힌 채 그 곳을 떠났다.

다음 날 퇴계와 율곡의 제자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서로가 본 것을 이야기했다.

"두 분 모두 이 나라를 대표하는 도학자로서 명망이 높으시거늘, 어째서 잠자리에서만은 그리도 다르단 말인가?"

한 제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나이는 더 적으시나 우리 율곡 선생님이 진정한 도학자이신 것 같으이. 안 그런가?"

"맞는 말일세. 언제 어디서나 언행이 일치하시는 분은 오로지 율곡 선생님 뿐인 것 같네."

율곡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을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러나 퇴계의 제자들은 할 말이 없었다.

"거 참, 퇴계 선생님께서는 밤과 낮이 어찌 그리도 다르단 말인가?"

"나도 어이가 없네 그려."

"아무래도 난 그냥 있을 수가 없네. 선생님께 가서 직접 여쭤 봐야겠네."

퇴계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자네 제 정신인가? 이 일을 어찌 묻는단 말인가?"

"아닐세. 내가 모른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네. 도학자로서 두 분이 추구하시는 학문은 같은데 밤에는 왜 그리도 행동이 다른지 내 꼭 알아야겠네."

제자들은 의견이 분분했으나 그것도 지식의 한 부분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 하고 모두 퇴계를 찾아갔다.

"스승님, 말씀 드리기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퇴계에게 직접 물어 보겠노라고 먼저 나섰던 제자가 공손히 말했다.

"그래, 무엇을 알고 싶으냐?"

"참으로 불경한 말씀인 줄은 아오나 스승님과 율곡 선생께서는 같은 도학자이신데도 남녀의 성교에 있어서는 두 분의 행동이 어찌 그리 다른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다르다고? 그래 어떻게 다르단 말이냐?"

퇴계는 뜻밖의 질문에 조금 당황하며 자세히 물어 보았다. 제자들은 먼저 용서를 구한 뒤 그 간 있었던 일을 전부 고했다.

"아니, 그런 것까지 엿보았단 말이냐? 허허허!"

퇴계 선생은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송구하옵니다. 하지만 두 분의 행동이 다른 이유가 궁금하여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율곡은 뒤가 적적하기 이를 데 없겠군."

퇴계는 웃음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적적하다니 그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남자와 여자가 교합하는 것은 음양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자네는 구름도 바람도 없는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먹구름이 몰려 오고 천둥과 번개 그리고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비가 생기느니라. 자네들은 조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제자들은 퇴계의 말에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내가 부부 간의 잠자리에 있어 난잡하다고 할지 모르나 음양이 교합하는 데 어찌 조용할 수 있겠느냐. 오히려 율곡이 그리 점잖게 교합을 한다는 것이야말로 음양 상생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모든 만물은 음양이 합하여 생성되거늘 혹여 율곡에게 후사가 없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퇴계는 음양 상생의 이치를 들어 남녀의 성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잠시나마 스승을 불경스럽게 여긴 잘못을 뉘우쳤다.

퇴계 선생의 이러한 이론이 옳은지 틀린지는 알 수 없으나, 퇴계의 말대로 그에게는 자식이 있었으나 율곡은 평생 자식이 생겨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