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이 전한 아내 사랑

조선 시대 유교적 부부 관계에 국한해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규정하는 측면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부부 간의 윤리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서열을 강조하며 여성의 희생을 강요했을까?

조선 시대의 부부 관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조선 중·후기의 부부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 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고려 시대에 비해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진 것은 물론 남성과 동등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성을 위한 교육 기관이 없었다. 오로지 집에서 부모가 여성의 도리를 말해 주는 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부모가 가르친 주된 내용은 남녀가 서로 얼굴도 마주 보지 않는다는 '남녀칠세부동석'과 '내외법'이었다. 이 외에도 여자가 10살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소학>의 '여자십년불출(女子十年不出)'처럼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제약하는 배경에는 공자의 영향이 컸다. 지금의 초등학교 교재에 해당하는 조선 시대 여성 교훈서였던 <소학> 명륜편에 공자가 정의한 여성의 역할이 나와 있다.

 

"여인에게는 따라야만 하는 3가지 도리가 있는데,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름으로써 감히 제멋대로 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중략) 따라서 여자는 종일 거처하는 규문(閨門) 안에 있어야 하고, 100리 길의 초상에 나가지 않는다. 또한 일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행동은 혼자 하지 않고 참여하여 알게 된 다음에야 행동하며, 증명할 수 있는 다음에야 말한다. (중략) 부인에게는 7가지의 내쫓길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식이 없으며, 음란하면 안 된다. 질투하고, 질병이 있으며, 말이 많고, 도둑질하면 내쫓길 수 있다."

 

공자도 자신이 거론한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참 떨어진 조선 여성들의 삶을 평생 옭아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교 자체가 불공평과 차별을 인정하고 자신의 본분과 현실에 맞추어 충실히 살아갈 것을 강조하는 학문인 만큼,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남자와 비교하여 여성을 차별하는 행위를 당연한 일로 받아뜰였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교가 무턱대고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후대 성리학자뜰이 공자의 말을 처음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여 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여성을 무시하는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중략) 유교에서 추구하는 남녀 관계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오륜의 하나인 부부유별(夫婦有別)만 봐도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준다. 옛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남자와 여자가 엄연히 서로 다르다는 부부유별을 내세웠다. 감히 여자가 주제 넘게 남자의 일을 넘보거나 기웃거리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여성을 억압하였다. 그러나 부부유별이란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남자가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일 수 없으며, 세심하게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여자보다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근력이 필요한 일을 남자보다 잘 하지 못하는 만큼 생계 유지를 위한 사냥이나 농사처럼 대외적 경제 활동보다는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을 세심하게 돌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즉, 유교에서 부부유별이란 남녀가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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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성리학을 한층 더 발전시킨 퇴계 이황(1501~1570)의 아내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누구보다 공자의 가르침을 잘 알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했던 퇴계 이황의 아내 사랑은 부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된다. 퇴계 이황은 2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부인 허씨는 아들 둘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죽고 말았다. 2명의 자녀를 위해 이황은 다시 장가를 갔는데, 두 번째 부인인 안동 권씨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이황은 아내가 지적장애라는 사실보다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데 더 의미를 두고 중요하게 여겼다.

 

아내 권씨를 향한 이황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여럿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일화는 권씨가 이황이 입는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가 태워 버린 일이다. 권씨는 두루마기의 구멍을 비슷한 색으로 막지 않고,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붉은 천으로 구멍을 기웠다. 보통의 남자라면 체면을 생각해 아내에게 화를 내며 호통 칠 만도 한데, 이황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내가 이상하게 기워 준 두루마기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색깔이 맞지 않는 두루마기를 본 사람들이 모두 이황에게 한 마디씩 하자, "붉은 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것이라네. 우리 부인이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라고 일부러 붉은 색으로 기워 준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라며 부인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을 넘어 현명한 부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 한 번은 제사상에 있던 배를 몰래 훔친 아내를 이황이 두둔하는 일도 있었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효다. 그리고 제사는 효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의례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되지 않는 중요한 제사 준비 과정에서 권씨는 떨어진 배 하나를 치마에 숨겼다. 이를 본 큰 동서가 제사에 쓰일 음식이 상에서 떨어진 것은 우리가 정성스럽게 제사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치마에 배를 감추면 되겠냐고 꾸짖었다. 마침 이 광경을 보게 된 이황은 "형수님, 조상님께서도 손자며느리의 잘못을 귀엽게 보고 웃어 넘겨 주실 겁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잘 타이르겠습니다." 라며 사과한 뒤, 아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아내가 먹고 싶어 한 배를 손수 깎아 주었다.

이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을 감추기보다는 떳떳하게 보여 주었던 이황은 권씨가 죽자 전처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아들에게 시묘살이를 시켰다. 자신도 권씨의 무덤 옆에 양진암을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며 아내를 그리워하였다.

 

이황은 손자 안도에게 부부로서 서로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편지로 남겨 주었다. 편지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란다. 지극히 친근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또한 지극히 바르고 조심해야 하지. 그래서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거란다. 허나 세상 사람들은 부부 간에 서로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하는 것을 싹 잊어버리고,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마침내는 서로 깔보고 업신여기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 이 모두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거란다. 집안을 바르게 하려면 마땅히 시작부터 조심해야 하는 것이니 거듭 경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