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때려 죽인 여인

처음에 삼청 사노(三陟私奴) 후일(厚一)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그의 처(妻) 응옥(應玉)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그 시신(屍身)을 빼앗았다. 감사(監司)가 의열(義烈)*로서 조정에 계문하니 예조(禮曹)에서 정려(旌閭)*하기를 청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삼척 부사(三陟府使)가 도신(道臣)*에게 보고하기를, "응옥(應玉)은 연전에 개가(改嫁)하여 이거(移居)*하였으니, 이미 두 지아비로 고쳤다면 정려의 은전을 경솔하게 시행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감사(監司)가 이를 예조에 보고하니, 예조에서 계청(啓請)*하기를, "전에 내렸던 명(命)을 환수(還收)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1711년) 1월 10일 기해 1번째 기사

 

*의열 : 굳세고 열렬함

*정려 : 충신, 효자, 열녀가 배출된 고장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

*도신 : 각 도의 경찰권, 사법권, 징세권을 가진 종2품의 관찰사

*이거 :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

*계청 : 임금에게 아뢰어 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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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37년(1711년), 삼척에 사는 노비 출신의 여인이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 죽이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 왔다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인간이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 죽였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여성이 호랑이를 때려 죽였다는 이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까?

사실 여성이라고 해서 호랑이를 때려 잡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의 폐해를 줄이고자 정부가 용맹하고 날랜 장정으로 구성한 착호갑사도 몇 명이 조를 이루어 호랑이를 사냥할 정도였는데, 여인 혼자의 힘으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번의 고증과 검증을 거쳐 객관적인 사실만 적는 <조선왕조실록>의 특성을 생각하면 믿지 않기도 어렵다. (중략)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는 다른 지역의 호랑이보다 크고 힘이 세다.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백두산 호랑이를 오늘날 아무르 호랑이 또는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부른다. 백두산 호랑이 수컷은 몸 길이 2.7~3.3m에 이르고, 몸무게는 180~370kg 정도 나간다. 암컷도 몸 길이 2.4~2.7m에 몸무게 100~200kg 정도 되어 호랑이 류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덩치를 자랑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작은 종인 인도네시아 호랑이 수컷의 몸 길이가 2.1~2.5m, 몸무게 75~140kg인 것과 비교하면 백두산 호랑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중략)

 

첫 번째 인물은 세종대왕 때 활약했던 이징옥(?~1453)이다. 김종서를 따라 여진족을 토벌하고 4군 6진 개척에 큰 공을 세웠던 이징옥은 어려서부터 힘이 남달랐다. 이징옥이 14살 때, 어머니가 형제를 불러 놓고 살아 있는 멧돼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형 이징석은 밖으로 나가 멧돼지 1마리를 활로 잡아 왔다. 반면 이징옥은 멧돼지를 잡으러 나간 지 2일 만에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형 이징석보다 더 힘이 좋았던 이징옥이 빈 손으로 온 것에 놀란 어머니가 어찌 된 사정인지 물어 보았다. 이에 이징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 밖으로 나갔다. 집 밖 담벼락 옆으로 큰 멧돼지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다. 놀란 어머니가 어찌 된 연유인지를 묻자, 살아 있는 멧돼지를 보고 싶어 하시기에 멧돼지과 이틀 동안 힘을 겨루어 길들였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이징옥이 김해 부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에게 남편을 잃고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여인의 안타까운 소식에 화가 난 이징옥은 곧바로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아 끌고 나온 뒤, 배를 갈라 남편의 시신을 꺼내 여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김덕령(1567~1596)도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은 장사로 유명하다. 광주 출신의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은 의병장인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가히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김덕령이 칼을 휘두르면 소나무가 거센 바람에 쓰러지듯 우수수 넘어졌다고 한다.

하루는 사람을 해친 호랑이가 대나무 숲에서 나오지 않자, 김덕령이 활을 쏘아 호랑이를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화가 난 호랑이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무엇이든 찢어 발길 기세로 뛰어나오자, 김덕령은 가볍게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처럼 힘이 장사였던 김덕령이 늘 100근의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니며,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는다는 소식이 일본군에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일본군은 김덕령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만 봐도 두려워하며 도망갔다. (중략)

 

정조 13년(1789년)에는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은 사례가 2번이나 나온다.

<일성록> 1789년 윤 5월 22일 기록을 보면 원주에 사는 양인 윤장금이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았다는 내용이 있다. 어느 날 밤에 윤장금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비명을 지르자, 놀란 윤장금이 급히 달려가 호랑이를 내리쳤다. 호랑이는 물고 있던 윤장금의 아버지를 내려 놓고는 자신을 공격하는 윤장금의 허리와 옆구리를 물고 마구 흔들었다. 부자가 호랑이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윤장금의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와 호랑이의 머리를 내리누르고 입으로 호랑이의 귀를 물어 뜯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이번에는 윤장금 대신 어머니를 물었다. 호랑이에게서 풀려난 윤장금은 부모 모두가 위급한 상황에 놓인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맨 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그 후 죽은 호랑이의 간을 쪼개고 피를 마심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뒤, 다친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8월 6일에도 예조에서 안변에 사는 이종현의 며느리 현씨가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아 시아버지의 목숨을 보호했으니 동네에 정문을 세우는 정려를 시행하자고 건의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중략)

 

극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람은 평소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의 10%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인 남성의 넓적다리 근육은 1T의 힘을 낼 수 있지만, 가진 힘을 모두 사용하면 근육이 완전히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 몸의 신경은 평상시에 근육이 모든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있다. 즉, 우리가 정신을 놓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정신을 놓게 되는 경우는 꼭 위급한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어느 가치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에 한 욕심 많은 노인이 있었다. 평생을 아끼고 아껴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어느 날 집에 큰 불이 났다. 가족 모두가 불길에 놀라 집 밖으로 도망치는 가운데, 노인은 집에 있는 재물이 너무 아까워 연신 뒤를 돌아 봤다. 그러던 중 몇십 년 발효시킨 장을 보관한 커다란 항아리가 보였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장 항아리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노인은 자신의 키보다 큰 항아리를 혼자 힘으로 번쩍 들고 나왔다. 불이 다 꺼진 후 노인은 항아리를 제 자리로 옮기려 용을 썼으나, 조금도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장정 4명이 달라 붙은 뒤에야 간신히 항아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는 가정을 따르면, 삼척의 응옥이라는 여인이 호랑이를 맨 손으로 잡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죽어 가는 남편의 모습에 정신을 놓은 응옥이 자신도 모르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호랑이를 때려 죽였다는 설명이, 남들보다 근골이 크고 힘이 세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설명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또는 남편이 죽고 난 후 고난할 삶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조선 시대는 국가에서 재혼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들에겐 불이익을 주었다. 성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에서 재가하거나 절개를 지키지 못한 여인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서얼 자손은 문과·생원·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하는 재가 금지법을 만들었다. 이후 수백 년을 이어져 온 재가 금지법은 재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낳았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양반들과는 달리 재가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적었던 평민과 천민들조차도 재혼녀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졌다. 그래서 양반이 아닌 평민과 천민의 여인이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야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정작 큰 문제는 여인 혼자, 또는 홀몸으로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농사를 짓는 데 남성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가정 내에서 남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남편을 잃은 대부분의 평민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재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민들은 비공식적으로 재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3번의 혼인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은 재혼녀인 응옥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생활의 자유가 제한된 최하층 신분인 노비 출신의 응옥이 칠거지악의 죄를 저질러 첫 번째 남편에게 쫓겨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첫 번째 남편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두 번째 남편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면 사람들은 분명 응옥에게 '남편 잡아먹는 팔자'라는 낙인을 찍을 것이 뻔했다. 그러면 응옥은 다시는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을 힘들게 살아갈 것이 자명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응옥에게 있어 두 번째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앞으로 자신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오히려 온갖 추측과 비난으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갈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남편의 시신을 구해 온 응옥에게 조선 정부는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세워 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아주 오랫동안 동네 입구에 정문을 세워 열녀나 효자 등을 기렸다. <삼국사기>에 자신을 종으로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했다는 효녀 지은을 위해 진성여왕(?~897)이 조 500석과 역을 면제해 주고, 마을에 효양방(孝養坊)이라 쓴 푯말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800년대부터 정문을 세우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은 유교의 나라를 표방하면서 삼강오륜을 모든 백성이 실천할 수 있도록 <경국대전>에 정문과 관련된 규정을 실어 놓았다. <경국대전>에 따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지방관은 신분에 상관 없이 효자와 충신, 그리고 의부나 열녀 등 모범이 될 만한 자들을 선정하여 매 년 말에 보고한다. 예조가 지방관의 보고를 정기적으로 기록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 왕은 예조의 보고서를 토대로 타인의 모범이 되는 자를 선정해 정문을 세워 주었다. 또한 대상자의 요역을 면제해 주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벼슬을 상으로 내리거나 상품을 하사하기도 했다.

응옥도 정문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잃은 슬픔을 딛고 삶에 희망을 품었다. 복호(復戶)하여 노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런데 응옥이 재혼녀라는 이유로 조선 정부는 정문과 복호 모든 것을 취소하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남편 잃은 과부라는 신세 뿐이었다. 아니 상황은 예전보다 더욱 나빠졌다. 모든 사람은 호랑이를 잡은 열녀라는 호칭 대신 호랑이를 죽일 정도로 억센 여자라고 수군댔다. 몹시 드센 여자라고 뒤에서 욕하며, 남편 잡아먹는 여자를 누가 데려가겠냐며 험담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정문이 취소되고 응옥이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보다 덜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남편이 죽은 뒤 여인이 재가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이를 따져 보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에 여성에게 강요하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삼종지도란 어려서은 아버지를,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평생 1명의 남자하고만 살아야 한다는 당시의 가치관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려와 비교해도 조선 시대에 살았던 여성의 삶은 너무도 열악하고 가혹했다. 고려 시대 여성은 한 집안의 주인인 호주가 될 수 있었고, 재산도 아들과 똑같이 물려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조선 시대 여성은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 살아가기를 강요당할 뿐 자신의 이름조차 없이 살아가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재가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이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였다. 동학농민군은 폐정개혁안의 일부로 청춘과부의 재가를 허락해 줄 것을 정부에 제시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립된 동학은 재가하지 못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웠다는 자부심과 자신들은 평민과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 양반과 지식인은 동학농민군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해 갑오개혁으로 여성의 재가가 법적으로 허용되었음에도 이후 100년 동안 이혼한 여성은 좋지 않은 평판을 들어야 했다. "서방 잡아먹은 것", "저러니 이혼 당하지!" 등 온갖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재혼하더라도 과거로 인해 누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오늘날에는 이혼녀와 재혼녀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어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이제는 그들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보듬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재혼녀라고 나라에서 내린 포상도 다시 빼앗던 조선 시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