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우, 음력 5월 10일은 비 내리는 날

이 날 약간의 비가 내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척강(陟降)이 주신 것이다." 하였다. 매 년 이 날이면 문득 비가 내리니, 사람들이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기 때문에 임금이 언급한 것이다.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년) 5월 10일 신유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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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매 년 음력 5월 10일에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이 날 내리는 비를 '태종이 내려 준 비', 즉 '태종우'라고 불렀다. 태종우가 내리는 음력 5월 10일은 태종의 기일로 당연히 조선 왕실의 중요한 날이기도 했지만, 백성들도 기다리는 소중하고 중요한 날이었다. 특히 선대 왕인 태종이 농사에 꼭 필요한 비를 음력 5월 10일에 내려 주었을 때, 후대 왕들은 자신이 왕으로 재위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왕권을 강화할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관료와 백성에게 충성을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백성들에게도 가뭄을 해소해 주는 태종우는 1년 농사의 결과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비였다. 그런데 태종우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정말 음력 5월 10일이면 비가 내렸을까?

 

박동량(1569~1635)의 <기재잡기>를 보면 '1591년 5월 10일 200년 만에 처음으로 태종우가 내리지 않아 식자들이 걱정했다.' 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태종이 죽은 지 약 300년이 지난 영조 40년(1764년)에도 매년 이 날이면 비가 내린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큰 이변이 없는 한 음력 5월 10일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음을 짐작하게 한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굳이 영조가 태종우를 언급할 리 없었을 것이다.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에도 태종우가 거론된다.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5월 10일은 태종의 기일이다. 태종이 승하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 날이 몹시 가물었다. 나라 전체가 기우제를 지내느라 부산을 떨었다. 이 때 태종이 근심하여 이르기를 "이렇게 가뭄이 드니 백성들이 어찌 살라는 것인가. 내가 하늘에 올라가 천제에게 즉시 비를 내려 달라고 고하겠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태종이 승하했고, 그 날 경기도 일원에 내려 풍년이 들었다. 그 이후로 해마다 음력 5월 10일이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태종우'라 불렀다.' 라며 태종우의 어원을 설명했다.

 

태종우의 주인공 태종은 조선 건국과 왕위 쟁탈전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태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일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자신이 혈육을 죽이고 불효를 저지르는 등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하며 왕위에 오른 이유가 오로지 백성의 평온한 삶을 지키고자 벌인 일이었음을 강조해야 했다. 실제로도 태종은 재위 시절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편 인물이기도 하다. 왕권을 위협하는 자에게는 냉철하고 무자비한 모습을 보였지만, 백성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태종 때 가뭄이 잦았다는 사실이었다. 조선이 건국된 시점은 아직 농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다. 고려 말 시비법의 발달로 연작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수리 시설이 확충되지 않아 농사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논과 밭에 뿌린 씨앗의 뿌리가 땅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흉년이 들 때마다 태종의 걱정과 근심은 날로 커졌다. 흉년으로 생활고를 겪는 백성의 불만은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국가인 조선과 태종 자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고려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선을 인정하찌 않는 사람들에게 가뭄은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하늘이 태종의 행위를 벌 주는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였다. 꼭 태종에 반기를 들지 않더라도 가뭄은 정국을 운영하는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태종은 가뭄을 두려워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태종실록에 보면 농사에 영향을 주는 기상 관련된 내용이 2,531번 등장한다. 이 중 가뭄 관련 기사 87건, 기우제 82건, 가뭄으로 인한 재해 23건 등 총 192건이 가뭄과 연관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서도 태종이 농사와 관련된 기상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태종은 재위 18년 동안 기우제를 82번이나 올렸다. 이는 1년 평균 4.5번 기우제를 올린 것으로 굉장히 높은 수치다. 태종은 종묘와 사직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북교(北郊)나 소격전 등에서도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노력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사를 올리는 데 필요한 제단인 우사단(雩祀壇)을 마련하고, 지방 관리에게 명산과 대천에서 기우제를 지내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태종은 가뭄이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까 늘 불안했다. 태종 7년(1407년) 가뭄이 극에 달하자 태종은 신하들에게 "지금은 바야흐로 한여름인데 가뭄 기운이 너무 심하다. 과인이 덕을 잃은 것인가? 아니면 종친이 도를 잃었기 때문인가? 대신이 하늘의 섭리에 잘못을 범하는가?" 라며 하소연했다. 이를 통해서도 태종이 가뭄을 단순한 자연 재해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태종의 질문에 정초(?~1434)는 "하늘과 사람은 같은 이치이므로,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감(感)하게 되면 하늘의 변화가 위에서 응하게 되니, 이는 진실로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감히 어떠한 일 때문에 어떠한 재앙이 왔다고 가리켜 말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새로운 법이 자못 많아서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태종의 신하들도 가뭄을 단순한 자연 재해로 보지 않고, 국가가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정책으로 혼란스러워진 백성들의 원망이 커진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왕과 관료 모두의 잘못이라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 해 6월 28일, 태종은 원단을 짓고 기우제를 지내는 놀라운 일을 벌인다. 원단은 환구단의 다른 말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말한다. 중국 명나라를 떠받들어야 하는 조선의 왕에게는 오로지 산천에 제사를 지낼 자격만 부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원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명나라 황제가 천자라는 것을 부정하며, 태종 스스로 천자가 되겠다는 의지로 비춰질 위험이 컸다. 더욱이 태종이 그 동안 보인 행동을 본다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원단에서 기우제를 벌이면 자칫 명과의 전쟁을 불러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종에게는 명나라의 오해나 원단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것에 반발하는 관료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고통 받는 백성이었다. 태종은 백성을 위해 하늘에 제문(祭文)을 바치며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다고 태종이 무턱대고 원단에서 기우제를 올리지는 않았다. 매사에 치밀했던 태종은 명나라의 오해를 피하고자 권근에게 제문을 짓게 하고, 원단에서 성석린이 제문을 읽게 했다. 왕이 직접 원단에서 제문을 읽지 않음으로써 명의 사대 질서를 어길 생각이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그만 의심으로도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는 명나라를 상대로 태종은 다소 위험하고 과감한 행보를 벌인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원단에서 읽은 제문의 내용이었다. 제문에서 태종은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가뭄이 시작되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우선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재앙은 임금과 재상이 도리에 어긋나서 정사를 그르친 것에 대하여 하늘이 내리는 벌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에는 자신의 죄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왕으로 즉위한 이후로 매 년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는 것은 태종 자신이 덕의(德義)를 그르친 결과라며 하늘에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서 첫 번째 죄로, 어떤 누구도 언급하기 어려웠던 제1차 왕자의 난을 거론했다. 자신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된 것은 태조 이성계가 몸이 편치 못한 것을 이용하여 일부 권력을 가진 신하들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왕자들을 죽이려 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자신이 저지른 행위는 죽기 두려워한 행동일 뿐 절대 다른 마음은 없었다고 변명하면서도 태조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두 번째 죄는, 제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형 이방간을 귀양 보낸 일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정종을 추대하여 왕실과 나라가 평안해졌는데, 간신 박포가 이방간을 협박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공의(公義)에 따라 의로운 군사의 도움을 받아 난을 평정했으나, 형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이방간이 귀양을 가게 되었음을 자책했다. 또한 이 일로 태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늘에 고했다.

세 번째 죄는 정종이 아들이 없어서, 자신이 개국과 정사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세자가 되었다는 데에서 찾았다. 정종이 늙은 것도 아니고 병 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왕위를 내려놓으니, 그 진심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불편했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종이 왕위를 물려 준 까닭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 죄라고 하였다.

네 번째 죄는 부자(父子)·형제(兄弟)·군신(君臣)·훈구(勳舊) 사이에서 모두 그 도(道)를 잃어 잘 처리하지 못한 것이라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부덕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이라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죄로 백성이 굶주리고 새와 물고기 그리고 풀과 나무가 가뭄으로 마르고 야위는 것은 부당하다며, 제발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늘에 호소했다. 자신의 수명과 나라의 통치 기간이 길고 짧음은 상관 없으니, 오로지 비를 내려 백성과 모든 만물이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거듭 하늘에 빌었다.

 

성석린이 읽은 제문을 듣고 누군가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과정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 보면 백성을 위하는 태종의 마음만은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이 왕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굳이 들춰서 좋을 것 하나 없는 과거의 치부를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를 죽이고 귀양 보낸 대가로 아버지 태조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은 왕을 떠나 한 개인이어도 어려운 일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상식 수준에서 판단해도 태종의 제문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대의에 뜻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관료 정초가 가뭄의 원인이 왕과 문무 관료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태종은 아무런 벌을 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설령 사실일지라도 먼저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책임을 자신에게 묻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태종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을 관료들에게 떠넘길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모든 잘못을 자신이 떠안았다. 태종의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하늘은 비로 태종의 마음에 답을 내려 주었다. 원단에서 기우제를 올린 다음 날인 6월 29일 비가 조금 내렸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7월 초 비로소 비가 충분히 내리자 태종은 의정부에 술을 상으로 내려, 그 동안 고생했던 관료들을 위로해 주었다.

 

태종이 가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것은 비단 이 때만은 아니다. 이후로도 태종은 가뭄이 들 때마다 백성을 걱정했고, 늘 자신의 잘못을 되짚으며 하늘에 용서를 빌었다. 한 예로 태종 17년(1417년)에도 "한재(旱災)가 너무 심한 것은 실로 나의 죄이다. 내가 부덕(不德)한 몸으로 나라를 다스린 지도 17년이 되었다. 세자(世子)에게 정사를 대신하게 하고자 하나 세자가 어리고 광망하여 어찌 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 민간(民間)의 원망과 탄식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공부(貢賦)의 상수(常數)를 살핀다면 혹 원망과 탄식이 없어질는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다. 다시 풀이하면 우선 덕이 없는 자신이 오랫동안 왕위에 있는 것이 잘못이라고 밝히면서, 왕위를 양녕대군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세자의 자질이 부족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오히려 커질까 두렵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조세(세금)가 백성을 힘들게 하는지 제대로 살피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았을 때 백성의 원망이 줄어든다고 보았다. 그러면 하늘도 노력을 가상히 여겨 비를 내려 줄 것이라 믿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태종은 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정몽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조선을 건국했던 일, 형제를 죽였던 왕자의 난, 개경에서 한성으로 수도를 옮기는 큰 역사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백성의 원망이 가뭄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하며 늘 하늘과 백성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관찰사에게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해결해 줄 것을 명령하는 등 국정 운영의 전반을 재검토하여 발견된 문제는 반드시 시정하게 하였다.

 

태종은 죽는 날까지도 가뭄으로 힘들어 할 백성을 위해서 저승에 가서도 천제에게 비를 내려 달라는 부탁을 하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이런 태종의 마음은 백성에게도 전해졌다. 태종의 유언은 민간에서 더욱 부풀려 전해졌다. 백성은 태종 스스로 제물이 되어 기우제를 올리기로 마음 먹고 장작 더미에 올라가 불을 붙이자 하늘에서 비를 내렸다고 믿었다. 이런 소문은 왕실에 대한 백성의 충심을 이끌어 냈다.

 

태종은 일평생 수많은 정적을 죽이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였다. 아버지 태조와의 불화, 이복 형제의 죽음, 처남 민씨 형제 멸문, 세종의 장인 심온의 죽음 등 하나 하나가 잔인하고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백성에게만큼은 늘 따뜻하고 자애로운 왕이었다. 이복 형제를 죽인 광해군이나 자식을 죽인 인조와는 달리 태종은 사후에도 큰 비난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 500년 동안 음력 5월 10일에 태종우가 내리지 않으면, 백성들은 "우리 태종 대왕이 어찌 우리를 돌보지 않는가" 라며 태종을 그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