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４부 - 게임 종료 #.3

　가와다 쇼고(남자 5번)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몸이 약간 흔들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파도가 약간 높은 상태에서 항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초계정 안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편안한 선실이었다. 천장은 낮았지만, 넓이는 다다미 네 장 반 정도라고나 될까? 방 한복판에 낮은 테이블이 있고, 그걸 사이에 두고 2인용 소파가 놓여 있는데, 가와다는 문에서 먼 쪽에 앉아 있었다. 방은 갑판 아래 있기 때문인지, 창이 없어, 밖을 내다볼 수가 없지만, 하긴 이미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천장의 약간 노란 빛이 도는 조명이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 재떨이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가와다에게는 이제 피울 담배가 없었다. 

 

　게임이 끝나자, 섬의 금지 구역이 모두 해제되고, 가와다는 사카모치의 방송에 따라 분교까지 걸어갔다. 분교 앞에는 아카마츠 요시오와 덴도 마유미의, 교실 안에는 구니노부 요시토키와 후지요시 후미요의 시체가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거기서 드디어 은빛 목걸이가 벗겨지고, 뉴스용 비디오 촬영을 한 다음, 병사들에 둘러싸여 부두로 이동했다. 부두에는 두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우승자 전용선─즉 이 배와, 분교를 차지하고 있던 병사들이 타고 돌아갈 병력 수송선이다. 우글거리던 병사들 대부분은 그 배를 타고, 사카모치가 룰을 설명할 때 교실에 있던 그 트리오만 사카모치와 함께 가와다가 탄 이 배에 탔다. 그리고 섬에 남겨진 학생들의 시체는 내일, 정부 지정 청소업자가 처리할 것이다. 섬 여기저기에 설치되었던 스피커와 분교의 컴퓨터도 2, 3일 안에 철거될 것이다. 물론 게임을 통괄하는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는 이미 컴퓨터에서 지워져 있을 것이다. 

　당연히 모두─ 가와다가 10개월 전, 고베 시립２중의 프로그램 종료 뒤에 겪은 것과 같은 순서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오키 섬 남쪽으로 나왔을 것이다. 이 배는 다카마츠 항으로 바로 돌아가지만, 병력 수송선은 기지를 향해, 서쪽으로 진로를 변경했을 것이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막대기 모양의 문고리가 움직였다. 문 앞에 지키고 있던 병사(그 "노무라"라고 하는 얼굴이 밋밋한 녀석이었다)가 들여다보더니, 바로 옆을 비집고 사카모치 긴바츠가 얼굴을 디밀었다. 사카모치는 찻잔 두 개를 얹은 쟁반을 들고, 「여어, 많이 기다렸지, 가와다?」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노무라가 그 등 뒤에서, 복도 쪽에서 문을 닫았다. 

　사카모치는 그 짧은 발을 움직이며 걸어, 테이블 위에 쟁반을 놓았다. 

　「자, 마실 게 차밖에 없지만, 한 잔 마셔.」 

　그러고 나서 왼쪽 겨드랑이 아래 끼어 놓은 A4용지 정도 크기의 사무용 서류 봉투를 손에 들고, 가와다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봉투를 테이블 끄트머리, 자기 앞에 던지더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올렸다. 가와다는 그 봉투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힐끔 쳐다본 뒤, 사카모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좀 놔뒀으면 좋겠는데. 지쳐서.」 

　「이봐─」 

　사카모치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어른에게는 그렇게 건방지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은 옛날에 가토라는 학생과 갈등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 녀석도 훌륭한 어른이 되었지.」 

　「네가 기르는 녀석과 나를 똑같이 보지 마.」 

　사카모치는 질렸다는 듯이 눈을 약간 크게 떠 보이며, 또 히죽 웃었다. 

　「아,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라, 가와다. 선생님은 너하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 거야.」 

　가와다는 그저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무엇부터 이야기할까?」 

　사카모치는 찻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마주 비볐다. 

　「그래, 그래.」 눈이 빛났다. 

　「프로그램을 하면 내기를 건다는 건 알고 있나, 가와다?」 

　가와다는 오물을 보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런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지. 너희들은 정말 형편없는 취미를 가진 놈들이니까.」 

　사카모치가 웃었다. 

　「그래서, 나는 기리야마에게 걸었었어. 2만 엔. 내 월급치고는 꽤 많이 건 거지. 네 덕분에 잃었어.」 

　「그거 딱하군.」 

　전혀 딱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가와다가 말했다. 사카모치는 또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 목걸이 때문에 나는 너희들이 있는 장소를 다 알고 있었어. 이건 전원에게 설명했지?」 

　그것은 뻔히 아는 이야기여서, 가와다도 특별히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사카모치가 가와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나나하라 슈야, 나카가와 노리코와 함께 계속 있었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을 배신했어. 그런 셈이지?」 

　「잘못됐나?」 

　가와다는 바로 대답했다. 

　「룰이 없을 텐데, 이 행운 게임은. 설마 네가 그걸 비난하지는 못하겠지. 그렇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야.」 

　그러자 사카모치가 또 씨익 웃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손을 마주하고 비볐다. 그리고 이번에는 약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저어, 가와다. 이건 진짜 가르쳐 주지 않은 거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그 목걸이에는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어. 그래서 게임 진행 중에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선생님들은 다 들을 수가 있지. 몰랐겠지만.」 

　노곤하다는 듯이 대답하던 가와다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약간 내밀고는 「알 수가 없잖아.」 라고 말했다. 

　「그럼 내가 그 녀석들을 어떻게 속였는지 전부 들었다는 건가?」 

　「응, 그래. 맞아.」 

　사카모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했어, 가와다. "만약에 그럴 수 있다 해도, 정부는 사카모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게 내버려 둘 거야, 아마." 라고 네가 말했지만, 이래뵈도 난 상당히 높은 사람이야. 프로그램 담당관이라는 건 말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나 가와다는 그 사카모치의 말을 무시하듯이,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하고 물었다. 

　「아니 뭐 별로.」 

　사카모치가 대답했다. 

　「그냥 뭐, 네 명연기에 감탄했을 뿐이야. 그래서 특별히 가르쳐 주려고.」 

　「웃기고 있네.」 

　가와다는 외면했지만, 사카모치가 「명연기였지만.」 하고 약간 말에 힘을 주자, 다시 사카모치를 쳐다보았다. 사카모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뭐가?」 

　「네가 말이야, 왜 기리야마를 쓰러뜨린 뒤에 바로 그 두 사람을 쏘지 않은 거지? 너도 총에 맞았잖아? 나는 그게 아무래도 이상해.」 

　「그건 내가 그 녀석들에게 이야기한 대로야.」 

　가와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자기들이 살던 곳을 잠깐 보여주려고 한 거지. 지옥에 보내는 선물로 말이야. 나는 이래뵈도 예의를 중요시하는 놈이야. 게다가 놈들 덕분에 내가 우승할 수 있었어.」 

　그러자 사카모치가 여전히 웃으면서 「으~음」 하고 묘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또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찻잔을 든 채로, 등을 등받이에 기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어, 가와다. 나는 작년에 네가 참가했던 고베 시립２중의 프로그램 기록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고, 또 잠시 가와다를 바라보았다. 가와다는 그저 사카모치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서 말이야, 아무래도 그 기록에 따르면, 오누키 게이코는 너하고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는 건 파악이 되지 않아.」 

　「오누키라고? 그래서 그건 내가 만들어 낸….」 

　가와다가 말을 가로막았지만, 사카모치는 그 말을 자르며 「네가」 하고 말을 이었다. 가와다가 입을 다물었다. 

 

　「─네가 나나하라와 나카가와에게 이야기한 대로, 너는 두 번 오누키를 만났더군─처음에는 잠깐이었고, 두 번째는 네가 우승하기 직전. 그것도 오누키는 죽어 있었어. 도청 기록을 보더라도─ 너는 말이야, 오누키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있어, 한 번도. 그건 기억 나나?」 

　「그걸 어떻게 기억해. 그건 그러니까─ 나하고 오누키는 아무 관계가 없어. 다 들었을 거 아니야?」 

　「그렇지만 말이야, 적어도 두 번째 만났을 때, 너는 거기서 두 시간이나 머물렀잖아, 가와다.」 

　「마침 거기가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었어. 아니, 오히려 그래서 나는 오누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거지. 비참하게 죽었어, 그 여자애는.」 

　사카모치 역시 입가에 웃음을 띤 채로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는 열여덟 시간 동안의 게임 중에 빨리 끝났군, 이거. 개최 장소가 좁았기 때문인가? 어쨌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있어. 아니, "그만 둬." 라거나 "나는 적이 아니야." 라거나 하는 말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도 방법이지.」 

　가와다가 끼어들었다. 

　「당연하잖아?」 

　사카모치는 웃으면서 가와다의 말을 흘려 들었다. 

　「그래서 네가 어떤 생각으로 게임에 임했는지 알 수가 없어. 여기저기 요란하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처음이었으니까. 잘 몰랐던 거야.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인지를.」 

　사카모치는 또 흐음흐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듯이,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다시 고개를 들고는, 「그런데 말이야.」 라고 말했다. 

 

　「그─ 사진 말이야. 괜찮으면 좀 보여 줘.」 

　「사진?」 

　「그래─ 나나하라와 나카가와에게 보여 주었잖아? 오누키의 사진이라면서. 사실은 시마자키 교카의 사진이라고 했던가?」 

　가와다는 입술을 구부렸다. 

　「왜 네게 그런 걸 보여 줘야 하지?」 

　「괜찮아. 보여 줘. 날 너무 따돌리지 마, 응? 응? 부탁할게, 이렇게.」 

　그러면서 사카모치는 테이블 끄트머리를 두 손으로 짚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가와다가 마지못해 손을 뒤로 돌려 교복 뒷주머니를 뒤졌다. 눈썹을 치켜올렸다. 손을 되돌렸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없네. 떨어뜨린 것 같아, 기리야마하고 싸울 때.」 

　「떨어뜨려?」 

　「그래. 정말이야. 케이스 째로 없어졌어. 하긴 뭐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순간 사카모치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면서, 「역시.」 라고 말했다. 배를 잡고, 무릎을 치면서 계속 웃었다. 

　가와다는 당황한 듯이 사카모치를 지켜보고 있었지만─그러나 그 때,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방,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군용선의 두꺼운 벽으로 차단되어 있었지만, 조그맣게, 그러나 분명히 무슨 폭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배의 엔진 소리하고는 달랐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그리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이번에는 작아졌다. 그리고는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와다는 입술을 약간 찡그렸다. 

 

　「신경 쓰이나, 가와다?」 

　사카모치가 말했다. 이제 웃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입가에 일그러진 웃음 같은 것이 스치고 있을 뿐이었다. 

　「헬리콥터야, 저건.」 

　다시 찻잔을 들어, 후룩후룩 남은 차를 마셨다. 다 마신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섬으로 가고 있어. 너희들이 싸우던 섬으로.」 

　가와다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거기에는 그때까지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카모치는 그런 가와다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떡하니 기대어 팔짱을 끼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가와다. 한 번 더 그 목걸이 이야기를 하자. 아, 그건 진짜 이름은 "과다카날 22호"라고 하는 거야. 뭐 이름이야 상관없지만. 그런데 너, 분명히 그게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슈야에게 이야기했지?」 

　가와다가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사카모치가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네 추측이 맞아. 그 목걸이 하나에는 세 개의 시스템이 들어 있지. 그러니까 한 시스템이 1퍼센트의 고장 가능성이 있어도, 시스템이 세 개면 백만 개 가운데 하나밖에 고장이 나지 않지. 실제로는 고장날 확률이 더 낮지만 말이야. 그래서 네가 말한 대로야. 누구도 거기서 도망칠 수는 없어. 벗기려고 하면 폭발하니까. 그 녀석은 죽게 되지. 뭐, 그런 짓을 하는 녀석은 전혀 없지만 말이야.」 

　가와다는 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사카모치가 몸을 앞으로 디밀었다. 

　「내가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야. 그걸 설계한 방위군 장비 연구소에 문의해 보았지, 이번에. 그랬더니─」 

　가와다의 눈을 보았다. 

 

　「약간 전기회로를 만질 줄 아는 놈이라면, 라디오 같은 데 들어있는 부품을 써서 간단하게 잠금 장치를 풀 수가 있다잖아? 물론 내부 구조를 알아야 하지만.」 

　가와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카모치의 눈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그럼─」 하고 맞받았다. 이상하리만치 표정이 없는 목소리로─

　「아무도 모르니까 문제가 없잖아?」 

　「그렇지.」 

　사카모치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그래서 말이야. 아주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 목걸이를 그런 식으로 풀어 버리면, 그 녀석은 죽은 걸로 신호가 보내진다는 거야. 결국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그걸 폭발시키지 않고 벗겨낸 학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녀석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거지. 게임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서, 보초들이 철수한 뒤, 천천히 도망치면 되는 거야. 그래, 네가 나나하라에게 이야기한 대로야. 오후에 게임이 끝났을 경우에는 규정대로 청소업자가 오는 게 다음 날이지. 시간은 충분히 있잖아? 뭐 이런 계절이면 특별히 헤엄치는 데 어려움도 없고.」 

 

　사카모치는 의미 있는 눈초리로 가와다의 눈을 바라보았지만, 가와다는 이번에는 바로 「그렇군.」 이라고 말하더니, 다시 소파에 상체를 뒤로 젖히고 앉았다. 

　「의미가 없는 이야기로군. 그 목걸이의 내부 구조라고 하는 건 기밀일 텐데 중학생이 그런 걸 알 턱이 없잖아?」 

　그러나 사카모치는 「아니.」 라고 말했다. 그러자 가와다는 다시 사카모치의 얼굴을 보았다. 

 

　「문제는 그거야.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아, 그래. 네 기록도 그렇고, 그 과다카날에 대해서도 그렇고. 평소라면 조사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 가와다라고 하는 영리한 녀석이 있구나, 하며 그걸로 끝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이번에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말이야, 총통 관방과 방위군에서 연락이 왔어. 직전이었지. 20일이었을 테니까.」 

　가와다가 가만히 사카모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카모치가 말을 이었다. 

 

　「3월경에 정부의 중앙 전산처리 센터가 해킹을 당했다는 거야.」 

　약간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원래 숨어 든 녀석은 들키지 않고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 녀석은 상당히 기술 수준이 높은 녀석이었어. 해킹 중에 관리자와 마주쳤는데, 서둘러 빠져나가면서도 액세스 로그를 다 지우고 나갔어. 그렇지만─」 

　사카모치는 또 뜸을 들였다. 가와다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부 시스템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지. 한 단계 더 전체의 동작을 기록하는 로그 기록이 있었던 거야. 하긴 그런 건 거의 조사하는 일이 없고, 관리자도 그 대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진 거야. 그렇지만 들통 났어. 들통 난 거야.」 

　가와다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사카모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 보일 듯 말 듯, 그의 목젖이 움직였다. 언뜻 봐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살짝. 

　「말해 두지만.」 하고 말했다. 

 

　「시체의 처리 이야기는 진짜 청소업자에게 들은 거야. 마침 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 함께 있게 되었는데, 불평불만이 화제가 되었을 뿐이야.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마감 시간에 걸리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 게임에서 너하고 마찬가지로 담당관이었던 사람이 한 이야기야. 뭐가 잘못되었다면 그 녀석에게 물어 봐.」 

　사카모치가 자기 오른쪽 주먹을 코 아래 대고, 가와다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나는 그런 걸 물을 작정이 아니었는데, 전혀.」 

　그러자 가와다의 목젖이 또 한 번 움직였다. 이번에는 상당히 또렷하게 보였다. 

　사카모치는 후후,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해킹 당한 정보 가운데 프로그램 정보도 있었어. 결국 그 목걸이, 과다카날의 기술 정보도 있었고. 어째서 그렇게 재미 없는 정보를 가져간 걸까? 의미가 없겠지? 그 녀석이 그걸 국민들에게 공개한다고 해도, 정부는 새 목걸이를 설계하면 되는 거야. 뭐 지금 그런 흔적은 없지만. 그렇지만 결국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침입한 녀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정보를 고집한 게 아닌가 하는. 틀렸나?」 

 

　가와다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사카모치는 휴우, 하고 한숨을 토해내고, 조금 전에 던져놓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한 손으로 거꾸로 들고 흔들어, 내용물을 꺼냈다. 테이블 위, 가와다 앞에 늘어놓았다. 두 장의 사진이었다. 흑백인데, 양쪽 다 B5판 정도 크기였다. 그 가운데 한 장은 거의 명암이 없어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지만, 또 한 장에는, 그 사진은 또렷해서 트럭 한 대와 그것을 에워싸듯이 흩어져 있는 세 개의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트럭이 위에서 본 모습인 걸로 미루어 보아, 당연히 그 검은 점은 사람의 머리였다. 

　「알겠지?」 

　사카모치가 말했다. 

 

　「조금 전 너희들의 모습을 찍은 거야. 기리야마를 해치운 직후지. 인공위성에서 찍었어. 이런 일은 거의 하지 않지만. 내가 네게 보여주고 싶은 건 또 한 장이야. 어때, 거의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지? 그렇지만 그것은 산의 일부분이야. 네가 그 두 사람을 쏘았을 때, 그 쏜 장소를 찍은 사진이야. 빛이 약간 부족해서 거의 나무 그늘에 묻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래, 좋아. 보이지 않아.」 

 

　침묵이 흘렀다. 배가 약간 흔들렸지만 가와다나 사카모치나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사카모치가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며 또 머리카락을 귀 위로 끌어 올렸다. 빙긋 웃더니, 이상하리만치 친근한 말투로 「자, 가와다.」 라고 말했다. 

 

　「나는 내내 이 게임을 기록하고 있었어.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네가 나나하라와 나카가와를─어쨌든 쏜 다음, 나나하라가 죽기까지 54초, 나카가와가 죽기까지는 1분 30초나 걸렸어. 보통이라면 즉사할 텐데. 한 발씩으로 처치했으니까. 이 시간 차이는 무엇일까?」 

　가와다는 아무 말 없었지만,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지 어떤지, 그의 뺨 주위가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또 입을 열었다. 

　「그런 경우도 있지 않아? 내겐 즉사한 걸로 보여서….」 

　「이젠 됐잖아, 가와다.」 

　그래서, 라고 말하려 하는 순간에, 사카모치가 가로막았다. 이번엔 상당히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자, 마무리를 짓자.」 라며 말을 이었다. 가와다의 눈을 들여다보며, 타이르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나나하라와 나카가와는 아직 이 섬에 있는 거야. 살아 있을 테지. 산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거야. 정부 컴퓨터에 들어간 것은 너고. 아니면 네 동료인가? 너는 그 목걸이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 우리가 도청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네가 두 사람을 쏜 것으로 꾸미는 라디오 드라마를 해 보인 거지. 그 다음에 두 사람의 목걸이를 벗겼어. 아닌가? 명연기였어, 그렇지 않아? 바로 지금까지도 명연기를 하고 있는 거야.」 

 

　가와다는 가만히 사카모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금니를 깨물고 있기 때문에, 그 입가가 확실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카모치는 여전히 빙글거리면서 말했다. 

 

　「너, 두 사람에게 연락 장소 메모인지 뭔지를 건네주었지?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서 만날 작정이었던 거지? 그렇지만 이젠 틀렸어. 아까 그 헬리콥터는 말이야, 섬에 독가스를 뿌리러 간 거니까. 최근에 개발한 중독성과 부패성이 혼합된 가스지. 대동아 공화국 2호라고 하는 거야. 감시선도 남아 있어. 나나하라와 나카가와는 살아날 수가 없어.」 

 

　사카모치를 바라보는 가와다의 두 손 손가락이 소파의 팔걸이 합성 피혁을 파고들고 있었다. 사카모치는 후우 하고 다시 숨을 쉬더니,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너는 우승한 게 아니야. 그렇지만 내가 신세를 지고 있는 교육위원회의 임원이 네게 상당히 큰 돈을 걸었어. 그래서 나는 비밀리에 처리하기로 했어. 그 사람에게 잘 보이면 좋거든. 그래서 기록으로는 너의 우승이라고 하기로 한 거지. 그 두 사람은 네가 죽인 게 되고. 만족하나, 응. 가와다?」 

 

　가와다의 온몸이 이제 극도로 긴장해 있어, 당장이라도 경련을 일으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카모치가 눈썹을 치켜 올려 보이자, 뭔가를 뿌리치듯이 고개를 움직여, 그 시선을 사카모치에게서 바닥 쪽으로 옮겼다. 

 

　「나는 그런 건 모른다!」 

　가와다는 소리치더니, 신경질적으로, 두 손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는 사카모치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약간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집어치워, 가스를 뿌리다니. 세금 낭비야.」 

　사카모치가 흐흐흐, 하고 웃었다. 

　「낭비인지 어떤지는 나중에 조사해 보면 알지.」 

　그러고 나서 「아, 그래.」 하며, 품 안에서 작은 자동권총을 꺼냈다. 가와다를 겨누었다. 가와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일도 비밀로 하기로 했어. 사상이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나는 너 같은 녀석을 살려 두면 이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썩은 밀감은 상자에서 꺼내야 하는 거야.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게임 중에 입은 부상 때문에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 어때? 아아, 걱정하지 마. 네게 동료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고 말 테니까. 네게 자세한 이야기 들을 필요는 없어.」 

　가와다가 그 총구에서 천천히 사카모치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너ㅡ」 하고 입을 열었다. 드디어 이빨이 드러났다. 그러자 사카모치가 씨익 웃었다. 

　「개 같은 놈!」 

　가와다가 외쳤다. 모든 분노와 절망과, 그리고 아마도, 이해하기 힘든 것에 대한 약간의 공포까지 담은, 그런 목소리로. 마음 같아선 멱살을 잡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총구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움켜쥐고 있었다. 

 

　「네겐 자식이 없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이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당연히 있지.」 

　사카모치는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 짓을 좋아하다 보니, 벌써 셋째까지 생겼어.」 

　가와다는 그 농담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소리쳤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있을 수가 있어? 네 자식도 이 엿 같은 게임에 참가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런가? 너희 같은 고급 관리들의 자식은 이걸 면제받는다는 건가?」 

　사카모치는 놀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터무니 없는 소리야. 무슨 소리 하는 거냐, 가와다. 프로그램 실시 요령을 읽었을 거 아니야? 예외 같은 건 없어. 물론 나도 약간 머리는 쓰지. 연줄을 동원해서 우리 애를 유명한 초등학교에 넣는다거나 말이야. 나도 사람이잖아. 그렇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룰이라는 게 있어. 아, 그런가? 그건 네가 빼 내지 못했나? 최고 기밀 조항에도 프로그램에 대해 쓰여 있었는데? 그럼 이야기해 주지. 프로그램은 이 나라에 필요한 거야. 아아, 실험 같은 건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생각해 봐. 어째서 로컬 뉴스에서 우승자의 모습을 내보낸다고 생각해? 그걸 보면 분명히 가엾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 녀석은 그런 게임은 사실 싫어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 녀석은 결국 다른 애들과 싸울 수밖에 없잖아? 마지막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거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면 힘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거나 하는 짓은 누구도 생각할 수가 없겠지? 대동아공화국과 그 이상은 영원히 존속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말이야. 그런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평등하게 죽어야만 해. 우리 애에겐 그걸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어. 위의 녀석이 말이야, 이번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여자애지만, 항상 이야기하지, 나는 공화국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가와다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는 미쳤어! 정신 이상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그 목소리가 거의 울부짖는 듯했다. 

 

　「시스템이란 것은 편의 상 있을 뿐이야. 우리는 시스템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이 나라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정신 이상이다!」 

 

　사카모치는 가만히 그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말했다. 

 

　「자, 가와다. 너는 아직 어린애야. 너희들도 잠깐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말이야, 한 번 더 생각해 봐. 이 나라는 훌륭한 나라야. 세상에 이 정도로 번영한 나라는 없어. 물론 해외 여행만은 꽤 제한이 있지만, 공업 수 출품의 우수함은 세계 최고야. 국민 1인당 총생산도 정부의 선전 문구의 거짓말이 아니라 세계 제일이야. 그렇지만 말이야, 잘 들어, 그렇게 번영할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정부와 그걸 중심으로 한 국민의 결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어느 정도의 통제라는 것은 항상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뿐이야. 그 미제처럼 말이야. 알고 있지? 그 나라는 마약이니 폭력이니 동성애니 하는 걸로 엉망진창이야. 지금은 과거의 유산 덕분에 이렇게 버티고 있어도, 곧 망할 게 뻔해.」 

 

　가와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마디만 하지.」 

　사카모치는 눈썹을 약간 치켜 올렸다. 

　「뭐야? 말해 봐.」 

　「너희들이 그걸 번영이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가와다는 말했다. 그것은 어딘지 지친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러나 그 바닥에는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건, 영원히, 가짜야. 네가 지금 나를 여기서 죽여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 너는 영원히 가짜야. 그걸 기억해 둬라.」 

　사카모치가 어깨를 움츠렸다. 

　「연설은 그걸로 끝인가, 응?」 

　그러면서 가와다의 미간에 똑바로 총을 겨누었다. 가와다는 입술을 꾹 다물고, 총구보다 그 뒤에 있는 사카모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배짱 한 번 좋군, 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가라, 가와다.」 

　사카모치는 살짝 한 번 가와다에게 눈인사를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따르르륵, 하는 가벼운, 타이프라이터 두드리는 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사카모치의 손가락이 잠깐 멎었다. 바로 그 순간, 시선과─ 그리고 주의가 허술해졌다. 

 

　그리고 사카모치가 눈을 돌렸을 때는 이미 바로 눈 앞에 가와다의 모습이 있었다.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는데도 10센티미터 앞, 거의 마술이나 그렇지 않으면 초능력자의 텔레포테이션 같은 그런 스피드였다. 따르르륵,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방 밖에서 계속되었다. 총을 쥔 사카모치의 오른손을 가와다의 왼손이 잡아챘다. 사카모치는 이상하게 굳은 듯이 서서, 키스할 때의 거리 정도까지 다가온 가와다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도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가와다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입을 벌리고 가와다의 얼굴을 보고 있다. 

　또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노무라 병사가 「적의 습격이─」 라고 말하려다 상황을 살펴보더니, 바로 라이플을 겨누었다. 가와다는 사카모치의 오른손 총을 왼손으로 잡은 채, 탱고를 추듯이 사카모치의 몸을 돌렸다. 돌았을 때는 사카모치의 검지 째로 방아쇠를 당겨, 쏘았다. 노무라는 심장에 세 발을 맞고, 윽 하고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이번에는 문이 열렸기 때문인지, 상당히 크게 들렸다. 

 

　그러고 나서 가와다는 또 사카모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밀착된 몸과 몸 사이, 사카모치의 턱 밑에 있던 가와다의 오른쪽 주먹이 약간 비트는 듯이 움직였다. 그러자 동그래진 눈을 가와다의 얼굴을 향한 채로 사카모치가 쿨럭, 하며 피를 토했다. 피는 입술에서 흘러나와 턱을 타고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말했잖아. 낭비라고.」 

　가와다 쇼고는 주먹을 더 비틀었다. 그에 따라 사카모치의 눈이 가와다의 얼굴을 떠났다.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가와다의 몸이 사카모치로부터 떨어지자, 사카모치는 털썩 소파 위에 쓰러졌다. 젖혀진 턱 아래, 목젖 부분에 뭔가 기묘한 장식물처럼 갈색 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꽁무니에 "HB"라고 하는 금박 인쇄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연필, 가와다나 슈야나 모두가 우리들은 "서로 죽인다"고 쓴 연필이었는데, 아마 사카모치 긴바츠는 그것이 연필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을 터였다. 

 

　가와다는 잠깐 사카모치에게 시선을 둔 다음, 손 안에 있던 권총을 빼앗아 바지 앞에 꽂았다. 천장을 보고 쓰러진 병사 노무라 쪽으로 달려가, 라이플을 집어 들었다. 벨트에서 예비 탄창도 빼낸 뒤 문을 열었다. 통로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문을 계속해서 열었다. 안에는 이층 침대가 있는 침실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또 따르르륵, 하는 소리가 이번에는 가까이서 들리고, 좁은 복도 맞은 편, 계단에서 병사 한 사람이 굴러 떨어졌다. 게임이 끝나고 안전한 배 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무장을 풀고 권총만을 움켜쥔 그 시체는 곤도라고 불리던 병사였다. 그리고 가와다는 그 곤도를 피해 계단으로 가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잉그램 M10을 손에 든 나나하라 슈야(남자 15번)와 나카가와 노리코(여자 15번)가 나란히 가와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 사람은 흠뻑 젖어 있었다. 

 

 

 

 

 

물론 연필로 사카모치가 죽은 것은,
맨 처음 교실에서 슈야가 개자식, 이 연필을 심장에 박아 넣어 줄 테다! ─라고 결심한 바로 그 결심(복선)을 실현시킨 것이다.
서로 죽인다는 글을 쓰라고 명령한 사카모치 본인이 그 연필로 인해 살해된 것은
가장 간단하고 아이러니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작가의 의도인 것이다.
이것은 곧 "대동아공화국"이, 그들이 만든 법칙으로 인해, 그 법칙을 준수해야만 했던 사람들로 인해,
그 법칙이 가르친 폭력성으로 인해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