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３부 - 종반전 #.5

　이나다 미즈호(여자 1번)는 수풀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비가 끊임없이 내려, 깔끔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 있었다. 수풀 너머에는 좁은 밭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비가 얇은 막을 통해 교복 차림의 등이 보였다. 그, 올백 머리도 또한 비에 젖고 있다. 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였다. 

 

　기리야마 가즈오는 무슨 나뭇가지 더미 같은 것을 두 개 만들고, 지금은 그 가운데 하나 앞에 앉아 나뭇가지 더미를 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미즈호는 숨을 가다듬었다. 춥고 지쳤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최대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때가 왔으니까. 

　우주의 전사로서. 

 

　각오는 되어 있나, 전사 프리디안 디키안 미즈호? 

　머릿속에서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세일러복 안에 그녀가 차고 있는 방추형 신비의 수정(통신판매에서 산 것으로, 사실은 유리 구슬이지만 미즈호는 수정이라고 믿고 있다)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미즈호는 대답했다. 나는 저 악마가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죽은 뒤, 현장에서 떠나는 것을 이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잃어버렸지만, 조금 전에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고토히키 가요코를 죽인 또 한 명의 악마, 소마 미츠코를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남자야말로 쓰러뜨려야 할 적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저 남자를 쫓아왔습니다. 

　좋다. 너는 너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구나. 물론입니다. 그 시내의 점집에서 저는 당신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지구를 위해 악과 싸우게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좋다. 두렵지는 않은가? 아뇨. 당신의 인도에 따라 저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좋다. 너는 성스러운 부족 데키안의 생존자, 선택받은 전사다. 승리의 빛이 너를 감싸리라. 응? 뭐? 아뇨. 아뇨. 그냥 아후라 마즈다 님. 저와 마찬가지로 전사였던 로레라 가오리는 죽었습니다(전에 B반 교실에서 미즈호와 친했던 미나미 가오리는 미즈호가 「너는 전사 로레라야.」 라고 할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숨기고 있었지만). 가오리는 마지막까지 잘 싸웠다, 미즈호. 아아, 그래요. 역시. 그렇지만 그녀는 악에게 졌어요. 맞아, 그녀는. 그러니까 그건 그녀가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이야. 너하고는 달라. 어쨌든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무엇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싸워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겨야 해, 미즈호. 알겠지? 예. 

 

　좋아. 빛이다. 우주의 빛을 믿는 거야. 너를 감싸는 빛을. 

　미즈호의 머릿속에 빛이 가득 찼다. 따스한, 모든 것을 감싸는 우주의 힘이. 

　미즈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예. 

　그리고는 양쪽 날이 있는 나이프를(그녀는 데이 팩에서 그걸 발견했을 때, 이거야말로 전사에게 어울리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칼집에서 뽑았다. 얼굴 앞쪽으로 두 손을 들어올려 칼을 잡았다. 그 푸른 날이 하얀 빛이 서렸다. 미즈호는 그 빛 너머로 기리야마를 보았다. 기리야마의 등이 보인다. 무방비 상태다.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적을 처치할 수 있다! 

　자! 

 

　미즈호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수풀을 헤치고 나가, 후다닥 기리야마 쪽으로 달려갔다. 겨우 15센티미터 정도의 날이 달린 나이프가 빛을 뿜으면서, 길이 1미터는 될 듯한 전설의 검으로 변했다. 빛의 검은 사악한 괴물을 일직선으로 꿰뚫을 것이다. 기리야마 가즈오는 왼손으로 나뭇가지를 정돈하면서, 오른손으로 슬쩍 베레타 M92F를 뽑아들더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팔만 뒤로 뻗어, 두 번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가 미즈호의 가슴에 맞아, 미즈호는 동작을 멈췄다. 두 번째는 정확하게 머리를 관통했다. 완만한 커브를 그린 붉은 선을 그 상처에서 허공으로 뿜어내면서 미즈호는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그 피를 빗물이 바로 씻어내기 시작했다. 전사 프리디안 디키안 미즈호의 혼은 빛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남은 인원 4명】

 

 

　비가 계속 내려, 슈야는 축축한 암벽에 등을 기댄 채로, 나뭇가지로 만든 지붕 끄트머리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20분 정도 전에 한바탕 총소리가 들려왔었다. 그리고 5분 정도 전에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단발의 총소리가 두 번 났다. 모두 다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인 것 같았다. 아마도 슈야 일행이 있는 곳과 같은 북쪽 산 어딘가일 것이다. 

　주르륵 하고 코다란 빗방울이 "지붕"의 잎사귀 한 장을 타고 떨어졌다. 슈야가 뻗은 오른발, 게스 스니커 바로 옆에 떨어져, 진흙이 섞인 물방울을 철퍽 하고 튀어 올랐다. 

 

　「히로키는 혹시 가요코를 좋아한 게 아닐까?」 

　노리코가 그렇게 말했다. 

　「나라면 그럴 거야.」 

　슈야를 힐끔 보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거야.」 

　그럴까? 히로키는 고토히키 가요코를 좋아했던 걸까? 어째서 치구사 다카코 같은 B반 최고의 미인과 친한데, 어째서 가요코처럼 아주 평범한 여자애를 좋아한 걸까? 

　그렇지만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빌리 조엘이 부른 "너무 평범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대가 좋아." 

 

　조금 전의 두 번째 총소리는 대체 누구와 누가 싸운 것일까(하긴 뒤에 난 총소리는 일방적으로 누가 누군가를 쏜 것 같았지만)?

　슈야가 등대를 나온 직후에 들은 총소리와 합치면, 이미 0시부터(우츠미 유키에 일행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 세 번 총소리를 들은 셈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은 최저 세 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다섯 명? 죽은 세 명은 누구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죽지 않고, 단순히 싸우던 사람들이 제각각 도망가, 아직도 슈야 일행을 포함해서 여덟 명이 남아 있는 걸까? 

 

　「피곤하지, 슈야?」 

　그들은 셋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가와다가 노리코 건너편에서 그렇게 말하자, 슈야는 두 사람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잠깐 눈 좀 붙이지?」 

　「아냐.」 

　슈야는 웃어 보였다. 

　「나는 점심 때까지 잤어. 너야말로 졸리지 않아?」 

　가와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괜찮아. 그렇지만 노리코가 너를 기다리느라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어.」 

　그 말을 들은 슈야는 노리코의 얼굴을 다시 보았지만, 노리코는 손바닥으로 슈야 쪽으로 향하게 하며 두 손을 얼굴 앞으로 올리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약간 졸기라도 했지. 가와다는 진짜 너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노리코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슈야에게서 가와다 쪽으로 돌렸다. 가와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나서 오른손을 가슴께로 올리더니 말했다. 

　「언제든 지켜 드리겠습니다, 공주님.」 

　그러자 노리코도 생긋 웃고는 가와다의 그 손에 자기 왼손을 겹치며, 「정말 고맙소이다, 가와다 군.」 하고 말했다. 슈야가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리며 그 대화를 지켜보았다. 뭐랄까, 노리코와 가와다는 아주 친해 보였다. 게임이 시작되고, 가와다를 만난 뒤로 노리코는 거의 슈야를 중간에 세워야만 가와다와 이야기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약간 달랐다. 두 사람만으로도 아주 괜찮은 팀으로 보였다. 하긴, 슈야가 없는 동안, 거의 반나절 이상을 둘이서만 있었으니 당연할 테지만. 

 

　가와다가 손가락으로 슈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어, 슈야가 질투하네. 나하고 노리코 사이가 좋은 것 같으니까.」 

　그러자 노리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로 웃음을 지으며 「거짓말─」 이라고 말했다. 슈야는 정색을 했다. 

　「질투라니. 그렇지 않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가와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얼버무리는 듯한 말투로 노리코에게 말했다. 

　「믿는다는 거야. 사랑하니까.」 

　「─」 

　슈야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리자, 가와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슈야는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냥 마주 보고 웃었다. 노리코도 웃었다. 

　그것은 아주 행복한 순간이었다. 마치 방과 후에 자주 가던 제과점에서 오래 사귄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와 표정이었다. 물론 서로 다 아는 친구의 장례식에서 재회한 뒤 따로 만난 것 같다고 하는 느낌은 씻을 수 없었지만. 

　가와다가 입가에 웃음을 남긴 채로 시계로 보고, 다시 스기무라 히로키로부터 신호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노리코가 생긋 웃으며 슈야를 바라보았다. 

 

　「가와다는 농담을 너무 좋아해.」 

　슈야도 웃었다. 

　「그렇지. 그렇지만….」 

　슈야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질투한 건지도 모른다. 

　슈야는 얼굴을 다시 노리코 쪽으로 돌렸다. 약간 농담처럼이라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질투한 건지도 몰라." 노리코는 아마 분명히 "거짓말"이라며 웃을 것이다. 가와다가 돌아왔다. 얼굴의 삐죽삐죽 솟은 수염이 빗방울에 젖어 있었다. 

　「연기야.」 라고 하며 바로 발길을 돌렸다. 

　슈야도 서둘러 일어섰다. 부상당하지 않은 오른팔로 노리코가 일어서는 것을 부축하고, 함께 가와다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약간 가늘어진 빗속에서 자세히 보니, 분명히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와다의 시선을 따라가자 북쪽 산의 거의 반대쪽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 기둥이 확실히 보였다. 두 줄기. 

　「예예!」 

　슈야가 자기도 모르게 록큰롤 식으로 살짝 소리쳤다. 노리코와 눈길이 마주치자, 슈야와 마찬가지로 활짝 웃으며 노리코가 「히로키가 무사했구나.」 라고 말했다. 

　가와다가 주머니에서 버드 콜을 꺼내 연기가 나는 쪽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불었다. 치칫, 치칫 하는 맑은 새소리가, 섬을 감싼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가와다가 시계를 보면서 정확하게 15초 동안 불고 입을 떼었다. 그러고 나서 가와다는 슈야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아마 상당히 가까이 오지 않으면 이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야. 시간이 걸려.」 

　세 사람은 다시 지붕 아래로 돌아왔다. 

 

　「가요코를 찾아낸 거야.」 

　노리코가 그렇게 말하자, 슈야도 고개를 끄덕이려다 가와다가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두었다. 그러자 노리코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셨다. 

　「가와다!」 

　슈야가 말하자, 가와다는 고개를 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야.」 

　「뭐? 그렇지만─」 

　슈야는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 펼치며 말했다. 

　「포기할 녀석이 아니야, 히로키는.」 

　가와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지.」 

　말을 끊고, 시선을 슈야에게서 뗐다. 

　「그렇지만 시체를 발견한 건지도 모르지, 가요코의….」 

　슈야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그렇다. 정오 시점까지는 가요코가 살아 있었을 테지만 총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조금 전에도 또 단발의 총성이 들렸다. 이틀 동안에 걸쳐 찾아 헤맨 히로키는 고토히키 가요코의 시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와다가 말을 이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어.」 

　노리코가 「─무슨 가능성?」 이라고 물었다. 

　「가요코가 히로키를 믿을 거라고만은 생각할 수 없잖아.」 

　슈야와 노리코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가와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히로키가 여기까지 올 수 있기를 빌어야 하지 않겠어? 가요코와 함께 올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슈야는 기도했다. 히로키가 고토히키 가요코와 함께 돌아오기를. 그러면 다섯 명이다. 다섯이서 도망칠 수 있다. 딱 다섯 명. 그제야 슈야는 이나다 미즈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적어도 정오까지는 살아 남아 있었을 것임을 생각해 냈다. 

 

　「가와다.」 

　가와다가 눈동자만 슈야 쪽으로 돌렸다. 

　「이나다가 아직 살아 있어. 그 애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을까?」 

　가와다는 슬쩍 어깨를 움츠렸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게 좋아, 이 게임에서는. 사실 나는 가요코도 믿을 수가 없어, 히로키에겐 미안하지만.」 

　슈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야 그렇지만＾.」 

　「뭐, 상황이 허락되면 이나다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 방법을 생각해 봐도 좋겠지. 그렇지만.」 

　연기를 내뿜었다. 

　「잊지 마. 우리도 그때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만은 할 수 없어.」 

　그렇다, 가와다가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이야. 다른 애들이 다 죽으면, 그 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 말은 언젠가 슈야 일행이 기리야마나 혹은 소마 미츠코와 대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츠코는 어떨지 모르지만─아마 기리야마와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테지만, 그 녀석이 그리 간단하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다면 ㅡ 슈야 일행도 전원 무사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가와다가 짧아진 담배를 한 번 더 빨면서 말했다. 

　「한 번 더 확인할게, 슈야.」 

　연기를 후욱, 내뿜으면서, 슈야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히로키와 다행히 합류할 수 있어도 우리들, 기리야마와 또 한 번, 어쩌면 미츠코와도 싸워야 할 거야. 가차 없이 해치울 수 있겠어?」 

　그렇다. 이나다 미즈호를 어떻게든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리야마나 미츠코를 쓰러뜨린 다음 이야기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클래스 메이트를 죽인다는 생각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자신이 싫었지만. 

　「알겠어.」 라고 대답하며,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가 버드 콜을 불었다. 세 번째였다. 비가 상당히 약해져,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간격도 길어졌다. 시간은 이미 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슈야 자신은 그 새 소리를 네 번 들은 뒤에 무사히 노리코, 가와다와 합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있을 위치를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실마리가 없는 스기무라 히로키에겐 시간이 좀 더 걸릴지도 모른다. 가와다가 지붕 아래로 돌아오더니, 또 "와일드 세븐"을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은 가와다가 문득, 「어디로 가고 싶니?」 라고 물었다. 

　슈야는 노리코 건너편에 있는 가와다를 보았다. 가와다가 고개를 돌렸다. 

　「설명하는 걸 잊었지만, 내게 약간 연줄이 있어. 여기서 나가면 일단 그리 도망치는 거야.」 

　「연줄?」 

　슈야가 묻자,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친구야.」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국외 탈출을 도와줄 거야. 물론, 이의는 없겠지? 국내에 있다가는 언젠가는 잡혀서 죽게 될 거야, 쥐새끼처럼.」 

　「국외 탈출이라고?」 

　노리코가 약간 놀란 듯이 물었다. 

　「진짜 그럴 수가 있어?」 

　슈야도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 그 아버지 친구는?」 

　그러자 가와다는 입에 문 담배를 왼손으로 잡고,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로 입에서 담배를 떼고, 「그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만약에 우리가 도망칠 때 사정이 생겨서 제각각 흩어지게 되어, 정부에 붙들렸을 경우에 입을 열면 곤란해. 아니, 너희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정부가 고문을 하면 거의 털어놓고 말 거야. 그러니 안내는 내가 할게.」 

　슈야는 약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렇군.」 

　가와다가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것은 아마 그 "우리는 서로 죽인다." 고 쓰던 종이 같았다. 가와다는 그것을 둘로 찢어, 연필로 각 장에 뭐라고 적어 넣었다. 양쪽 다 조심스럽게 작게 접어 슈야와 노리코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뭐지, 이게?」 

　슈야는 물으면서 종이를 펴 보려고 했다. 가와다가 「아.」 하며 말렸다. 

　「지금 볼 필요 없어. 그건 내가 너희들과 만약에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이용할 연락 방법이야.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어. 매일 그 장소, 그 시간에 그리 가 봐. 나도 그리 갈 테니까.」 

　「지금 보면 안 돼?」 

　노리코가 물었다. 

　「안 돼.」 

　가와다가 말했다. 

　「만약에 헤어지게 되면 봐. 그러니까 노리코에게 준 메모와 슈야의 메모는 내용이 달라. 너희들 두 사람도 서로 그걸 모르는 게 좋아. 어느 한 쪽이 잡혔을 때를 생각해서.」 

 

　그러자 슈야는 노리코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다시 가와다를 쳐다보았다. 

　「나는 절대로 노리코 곁에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 

　가와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기리야마에게 습격당했을 때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슈야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가와다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노리코를 보면서 그 메모를 주머니에 넣었다. 노리코도 그렇게 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여기서 탈출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자기와 노리코도 마찬가지로 만날 장소와 시간을 둘이 정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가와다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고? 만약에 가와다가 정부에 잡히면, 자기들은 거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가와다가 말했다. 

 

　「그래, 어디로 가고 싶어?」 

　그러자 슈야는 가와다가 국외 탈출 뒤의 행선지를 물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역시 미국이야.」 라고 말했다. 

　「록의 나라니까. 가보고 싶었어, 한 번은.」 

　도망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 

　가와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리코는?」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노리코는 그렇게 말하며, 슈야를 힐끔 쳐다보았다. 슈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이 가자. 괜찮지?」 

　「아─」 

　노리코의 눈이 둥그래지더니, 그리고 아주 얌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론. 네가 괜찮다면.」 

　가와다가 웃었다. 담배를 빨고 또 물었다. 

　「미국에 가서 어쩔 건데?」 

　슈야는 잠시 또 생각했다.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떠돌아다니며 기타 연주라도 하지 뭐. 일단 그걸로 돈을 벌 거야.」 

　가와다도 「후훗」 하고 웃었다. 그러고 나서 「록커가 되라. 슈야!」 라고 말했다. 

　「네겐 재능이 있어. 그 나라라면 이민자건 망명자건 큰 핸디캡은 아니야.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슈야는 한숨을 내쉬며, 씁쓸하게 웃었다. 

　「대단한 거 아니야, 내 재능이란 건. 프로가 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건 모르는 거야.」 

　가와다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노리코 쪽을 보았다. 

 

　「노리코는? 하고 싶은 일 없어?」 

　노리코는 입술을 오므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나는.」 이라고 말했다. 슈야는 노리코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 놀라면서 「그래?」 라고 말했다. 노리코가 슈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한심한 나라에서 선생님이?」 

　슈야가 말하자, 노리코는 씁쓸하게 웃었다. 

　「훌륭한 선생님도 있어. 나는─ 그래.」 

　시선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 

　「하야시다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해.」 

　그러자 슈야는 오래간만에 그 머리가 반쯤 부서진 하야시다 선생님의 시체를 떠올렸다. 

　자기들을 위해 죽은 것이다, 그 "잠자리"는. 

　「그렇지.」 

　슈야는 동의했다. 

　가와다가 「망명해서 선생님이 되기는 좀 어려울 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무슨 대학교 연구원 같은 건 될 수 있겠지. 어처구니없게도 이 나라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니까. 그러면 가르칠 수 없지는 않을 거야.」 

　가와다는 두 사람에게 옆모습을 보인 채로, 짧아진 꽁초를 발치의 물웅덩이에 던져 넣고는, 다시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해, 둘 다. 되고 싶은 사람이 돼라. 자기 뜻에 따라 열심히 해.」 

 

　슈야는 가와다의 말이 꽤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기 뜻에 따라, 열심히. 마치 그─이제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미무라 신지, 이따금 당연한 진실을 추측하는 듯한 말을 할 때 쓰던 말버릇이 생각났다.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바로─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뭔가가 빠져 있었다, 가와다의 말에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너는?」 

　목소리에 갑자기 초조감이 뒤섞였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이야기했잖아. 나는 이 나라에 빚이 있어. 아니, 그게 아니지. 여러 가지를 빌렸어. 갚아야지. 어떻게 해서든. 너희들하고 함께 갈 수 없어.」 

　「왜─」 

　노리코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슈야는 노리코와 달리 생각했다.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뭔가 하려면 나도 돕게 해 줘.」 

　가와다는 순간 슈야의 얼굴을 보더니, 그리고 시선을 떨구고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왜?」 

　슈야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돌려 받아야 할 게 있어. 이 엿 같은 나라에.」 

　「그래.」 라며 노리코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슈야에게는 약간 의외였지만. 노리코는 가와다를 보며 말했다. 

　「함께 하는 거야, 우리 모두….」 

　가와다는 그 노리코와 슈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었다. 

　「잘 들어!」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이 나라는 엿 같은 나라지만, 잘 되어 있어. 무너뜨리긴 쉽지 않아. 아니, 아마 지금은 무너뜨릴 수 없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지붕 위로 비가 약해지는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슈야와 노리코를 쳐다보았다. 

　「옛날 말로 하자면 한 칼 먹이겠다는 거야. 나는 복수를 할 거야. 그건 자기 만족이지만, 나쁘지는 않겠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건 나쁘지 않아.」 

　「그래서….」 

　슈야가 입을 열려고 하는 것을 가와다가 손을 들어 막았다. 

　「끝까지 들어.」 

　슈야가 입을 다물자,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을 거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나 같은 애하고 같이 다니면. 너는 금방 이야기했잖아, 노리코에게. 함께 가자고.」 

　노리코 쪽을 보더니, 다시 슈야를 바라보았다. 

　「네게는 아직 노리코가 있어. 노리코를 지켜줘, 슈야. 노리코가 다치게 될 것 같으면 그 때 싸워. 그 상대가 그 쪽의 강도건, 대동아 퍽킹 공화국이건, 우주인이건.」 

　그러고 나서 노리코를 보면서 말했다. 아주 부드럽게. 

　「노리코도 마찬가지야. 아직 슈야가 있잖아. 슈야를 지켜줘, 노리코. 개죽음 당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다시 슈야를 바라보았다. 

　「알겠어? 내겐 이미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만족에 불과하더라도 하겠다는 거야. 너희들과는 달라.」 

　마지막 말은 심각한 말투였다. 시계를 보더니, 담배를 다시 웅덩이에 던지고 일어서 지붕 밖으로 나갔다. 바로 치칫, 치칫 하는 버드 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야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대륙의 록커가 부른 어느 노래가 생각났다. "빈털터리 나는 아무것도 없네." 다음이 멋지다. "아무것도 없는 나를 사랑해 주겠다는 건가?" 

　그렇지만 가와다가 아무것도 없다고 한 것은…. 

 

　딱 15초 동안 불고, 가와다가 다시 지붕 아래로 돌아와 앉았다. 가와다에게 노리코가 조용히 물었다. 

　「가와다에겐 좋아하는 사람, 없어?」 

　그렇다, 슈야도 그렇게 묻고 싶었다. 

　가와다는 눈을 약간 크게 뜨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교복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패스 케이스를 끄집어냈다. 끄트머리가 접힌 사진 한 장을 빼냈다. 옆에 앉은 노리코가 받아들어, 슈야와 함께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가와다의 가슴 위쪽이 찍혀 있었다. 교복을 입고, 지금 슈야의 머리 정도 길이로 웃고 있었다. 지금의 가와다를 보아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가와다 왼쪽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선명하리만치 검은 머리카락을 묶고, 오른쪽 어깨 앞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약간 기가 셀 것 같은, 그래도 웃는 얼굴이 아주 매력적인 여자애였다. 배경은 어느 번화가처럼 보였다. 은행나무 같은 가로수, 위스키 선전 간판, 그리고 노란 차가 한 대 찍혀 있다. 

　「예쁘네─」 

　노리코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가와다가 콧등을 긁었다. 

　「그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별로 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겐 무척 예뻐 보이지만.」 

　노리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주 예쁜걸. 굉장히─어른스러워 보여. 가와다하고 같은 나이?」 

　가와다가 사진 속의 모습과 똑같은,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응, 그래. 고마워.」 

 

　슈야는 나란히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야, 너도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잖아? 그러나 슈야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애, 고베에 있니?」 

　슈야가 묻자, 가와다는 또 씁쓸하게 웃었다. 고개를 저었다. 

　말했다. 

　「잊었니, 슈야? 내가 이 지옥 같은 게임에 참가했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우승했다" 고 한 이야기를.」 

　그러자 슈야는 깨달았다. 노리코도 깨달았는지,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가와다가 말을 이었다. 

 

　「그 애는 나하고 같은 반이었어. 나는 구해주지 못했지, 케이코를.」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슈야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거의 이해가 되었다. 가와다의 분노를, 그 분노의 깊이를. 

　「알겠지?」 가와다가 말했다. 

　「내겐 이제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나는 이 나라에 빚이 많아. 케이코를 죽인 이 나라에.」 

　가와다가 또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가 흘렀다. 

　「이름이 케이코?」 

　슈야가 물었다. 

　「그래.」 

　가와다는 몇 차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의 아이.」 

　요시토키와 같은 한자가 들어 있다─슈야는 멍하니 생각했다. 

　「게이코는….」 

　노리코가 살짝 물었다. 

　「함께 있었어? 마지막까지?」 

　가와다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얼마 있다가, 

　「그런 걸 물으면 괴로워.」 라고 말했다. 

 

　말을 이었다. 

　「케이코의 성은 오누키야. 그때의 순서는 여자 17번이 제일 먼저였는데, 뭐, 그런 건 관계없어, 게이코는 나보다 출석 번호가 앞이었어. 나보다 세 번째로 먼저 출발했지.」 

　슈야와 노리코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딘가─출발점 가까운 곳에서 몸을 숨기고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렇지만 그녀는 없었어.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이번하고 마찬가지야. 출발 지점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위험한 짓이니까.」 

　담배를 빨고, 연기를 뿜었다. 

　「그렇지만 나는 간신히 그 애를 찾아냈어. 여기하고 마찬가지로 섬이었는데, 간신히 찾았지.」 

　담배를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말했다. 

　「도망쳤어, 그 애는.」 

　슈야는 깜짝 놀라, 가와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솟아나온 수염이 있는 가와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쫓아가려고 했지. 그 때 다른 녀석에게 습격 당했어. 그 녀석은 겨우 처치하긴 했지만, 나는 그 애를 잃었어.」 

　또 담배를 빨더니, 다시 연기를 내뿜었다. 

　「케이코는 나를 믿어 주지 않았던 거야.」 

　포커 페이스인 그 얼굴이, 그러나 눈가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나는 찾았어. 그렇지만 다시 찾아냈을 때는─시체가 되어 있었어, 케이코는.」 

 

　그제야 슈야는 완전히 이해했다. 슈야가 여기 돌아와, 우츠미 유키에 일행의 이야기를 하며, 「믿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라고 했을 때, 가와다가 「그래, 아주 어렵지.」 라고 대답하면서 꽤 복잡한 표정을 지었던 까닭을. 어쩌면 스기무라 히로키가 고토히키 가요코의 시체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고, 가요코가 히로키를 믿을 거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까닭도. 

　「네가 물었었지, 슈야.」 

　가와다가 그렇게 말하자, 슈야는 고개를 들었다. 

　「왜 우리를 믿느냐고? 처음 만났을 때?」 

　「그래.」 

　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었지.」 

　「내가 이야기했지. 너희들은 아주 멋진 커플로 보였다고.」 

　가와다는 거기까지 말하고, 지붕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되돌렸을 때는 얼굴의 떨림은 사라져 있었다. 

　「그건 사실이야. 그렇게 보였어. 그래서 나는 무조건 너희들을 구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음.」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뒤에, 노리코가 「아마─」 라고 말해, 슈야는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게이코는, 너무 무서워서 제 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야.」 

　가와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게이코를 아주 좋아했어. 그렇지만 분명히 내가 평소에 게이코를 대하는 방식이 나빴던 걸 거야.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을 거야.」 

　슈야는 약간 강한 말투로 말했다. 가와다가 세운 무릎 앞으로 팔짱을 낀 채로, 슈야를 보았다. 그 손에서 담배가 부드러운, 비단실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엇갈린 거야. 약간 어긋난 걸 거야, 분명히.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 게임이니까. 여러 조건이 나빴던 거야, 분명히. 그렇지 않아?」 

　가와다는 다시 씁쓸한 웃음 같은 것을 입가에 띄우며, 「몰라.」 라고만 대답했다. 

　「이젠 모르겠어.」 

 

　그러고 나서 가와다는 담배를 또 웅덩이에 던져 넣고, 주머니에서 버드 콜을 꺼냈다. 

　「이거 말이야.」 라고 말했다. 

　「케이코는, 도시 출신 여자애 치고는 보기 드물게 산에 가는 걸 좋아 했어. 이 엿 같은 게임이 있던 주 다음 일요일에 나를 새 관찰하는 데 데려가 준다고 했었지.」 

　그 빨간 버드 콜을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보석을 감정하듯이 눈앞에 들고 보았다. 

　「그래서 이걸 줬어, 내게.」 

　웃으며 슈야와 노리코를 보았다. 

　「이것만 남았어. 내 부적이지. 별로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가와다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기를 기다려, 노리코가 사진을 돌려주었다. 가와다가 그것을 패스 케이스에 꽂고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노리코가 「저어, 가와다.」 하고 불렀다. 가와다가 고개를 들어 노리코를 보았다. 

　「나는 케이코가 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입술을 혀 끝으로 살짝 적셨다. 

　「그렇지만 케이코는 케이코 방식으로 가와다를 아주 좋아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봐, 그 사진. 아주 행복해 보이잖아. 그렇지 않아?」 

　「그런가?」 

　「그래.」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케이코였다면, 가와다는 살아남기를 바랄 거야. 자기를 위해 죽기를 원치 않을 거야.」 

　가와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취향의 문제지.」 

　「그렇지만.」 

　노리코가 물고 늘어졌다. 

　「그것도 생각해 줘. 응, 부탁이야.」 

　가와다는 잠시 뭐라고 말하려, 입술을 살짝 움직이더니─그러고 나서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아주 쓸쓸하게. 그리고 시계를 보더니, 버드 콜을 불기 위해 지붕 밖으로 나갔다. 

 

　가와다가 여섯 번째 버드 콜을 불 때는 비가 완전히 그쳐 있었다. 6시 5분 전이 되었지만, 그 시간치고는 아주 밝은 느낌이 드는 빛이 섬을 감쌌다. 셋이서 나뭇가지 지붕을 암벽에서 벗겨냈다. 

　지금은 바로 위로 하늘이 보이는 그 암벽 아래 앉아서, 노리코가 「날씨가 좋아졌네.」 라고 말했다. 슈야와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었다. 가와다는 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가와다의 옆모습을 보면서, 슈야는 말을 해야 할지 어떨지 망설였다. 그러나 역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가와다.」 

　입가에 담배를 문 가와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는? 뭐, 되고 싶은 게 없었니?」 

　가와다가 연기를 뿜으면서 후후, 하고 웃었다. 「의사가 되려고 생각했었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래, 의사라면 이 개 같은 나라에서도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러자 슈야는 약간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됐잖아. 넌 소질이 있으니….」 

　가와다는 담뱃재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 이야기는 끝났다, 고 하는 투였다. 노리코가 「가와다!」 하고 불렀다. 가와다가 노리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할게. 만약에 내가 케이코였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할 거야.」 

　노리코는 오렌지 빛이 감돌기 시작한 하늘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제발 살아남아.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따금 음악을 듣기도 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림을 보기도 하면서 감동해. 자주 웃고, 이따금 눈물도 흘려. 만약에 멋진 여자애가 있으면 그 애를 사귀고, 사랑을 나눠.」 

　마치 시 같았다. 

　그리고 슈야는 아아, 하고 생각했다. 이건 노리코의 언어다. 그리고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음악과 똑같이 위대한 신의 힘이다. 

　가와다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노리코가 계속해서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만 내가 진짜 좋아했던 너라고 생각해.」 

　그러고 나서 가와다를 보고, 약간 계면쩍어 하는 듯했지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나라면.」 

 

　가와다가 손에 든 담뱃재가 길어져 있었다. 슈야가 입을 열었다. 

　「가와다. 살아남아도, 이 나라를 깨부술 방법은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돌아가는 길일지는 몰라도.」 

　슈야는 말을 이었다. 

　「우리 이렇게 친구가 되었잖아? 네가 없으면 쓸쓸할 거야. 함께 가자, 미국까지.」 

　가와다는 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간 것을 깨달았는지, 꽁초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슈야와 노리코 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뭐라고 말하려 했다. 슈야는 생각했다. 그랬다. 함께 가자, 가와다. 계속 함께야. 우리는 팀이니까. 

 

　『아, 아─』 

　이제는 완전히 귀에 익은 사카모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야가 후다닥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아 올려, 시계를 확인했다. 진흙이 묻은 문자판의 초침이 6시 정각, 5초를 지나고 있었다. 

 

　『들리나─ 여러분─ 이제 남은 사람이 얼마 안 되는군─ 그럼 죽은 사람을 발표하겠습니다. 남자는─』 

 

　슈야는 먼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남은 사람은 이제 슈야, 가와다, 그리고 히로키와 기리야마 네 명뿐이다. 물론 여자도 노리코와 고토히키 가요코, 소마 미츠코, 이나다 미즈호, 네 명 뿐이다. 기리야마가 그리 간단하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히로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남자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런데─

 

　『한 사람뿐입니다. 11번 스기무라 히로키.』 

 

　슈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남은 인원 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