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３부 - 종반전 #.4

　스기무라 히로키(남자 11번)는 숨을 삼켰다. 

 

　무서운 총성이 들린 것이 약 10분 전의 일이다. 히로키는 그 때 북쪽 산 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소리가 난 방향을 가늠하여, 서둘러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 다음에는 완전히 정적에 휩싸인 가운데 섬의 북동쪽 끝에 있는 등대에 도착했다.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렇게 눈에 띠는 곳에 고토히키 가요코가 혼자 숨어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조사하지 않았던 장소였다. 과연 총소리가 그 곳에서 난 것일까, 아닐까? 그야 어찌되었든, 그 등대를 둘러싼 절벽 위에서 어떤 여자애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절벽 끄트머리를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내려오다 보니, 옥상의 시체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등대 정면 입구로 갔다. 열려있는 현관 안쪽에는 의자와 책상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누군가가 바리게이트를 만들었다가, 그걸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체한 것 같았다. 그리고 각목이 박혀 있는 창문을 보면서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현관에서 똑바로 들어간 곳에 침대가 있는 방이 있고, 그 문은 어찌된 일인지 부서져 있었다.)그 탐지기에 반응이 나타났다. 여섯 개. 히로키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금, 피투성이가 된 방에 서 있는 것이었다. 

 

　부엌 시설이 되어 있는 그 방에, 다섯 명의 여자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중앙 테이블 옆에 천장을 보고 쓰러져 있는 것은 여자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 그 오른쪽에 목이 잘려 나간(!) 다니자와 하루카, 안쪽으로는 얼굴이 시커멓게 변색된 나카가와 유카. 오른쪽 사이드 보드 앞에는 마츠이 치사토가 엎어져, 이미 창백해진 얼굴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피범벅이 된 테이블 밑에도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얼굴이 보이는 유키에를 비롯한 네 명은 분명히 이미 죽어 있었다. 그렇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또 한 사람은─

 

　히로키는 방 안을 한 번 더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방 안쪽에 열려있는 또 하나의 문을 향해, 귀를 귀울였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왼손의 총을 바지 뒤쪽에 끼워 넣고, 우츠미 유키에와 다니자와 하루카의 시체 사이를 걸어, 나카가와 유카 옆을 지나, 테이블을 돌아갔다. 신발이 바닥에 뿌려진 피 때문에 질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거기 엎어져 있는 또 한 사람 옆에 앉더니, 오른쪽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놓고, 그 몸을 잡고 힘을 주었다. 소마 미츠코에게 당한 오른쪽 어깨의 상처가 매우 아팠다. 오다 도시노리에게 당한 허벅지는 스친 상처여서 출혈도, 통증도 별로 심하지는 않앗다. 히로키는 통증을 참으면서 그 여자애의 몸을 뒤집었다. 

　노다 사토미였다. 이마 왼쪽에 붉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고, 벗겨진 상태인데도 아직 얼굴에는 걸려 있는 안경의 왼쪽 렌즈가 쓰러질 때 그랬는지 깨져 있었다. 물론 죽은 상태였다. 히로키는 그 시체를 다시 눕혀 놓고, 방 안쪽의 열려 있는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등대 탑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기로 해서 등대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탐지기에 반응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은 물론 옥상에 쓰러져 있는 그 누군가였다. 그 여자애도 이미 틀림없는 시체일 테지만, 그게 누군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 애는 유난히 고토히키 가요코와 비슷해 보였으니까. 히로키는 다시 총을 들고 그 문을 빠져나갔다. 쇠로 된 계단이 있었다. 서둘러, 그러나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아직 누군가가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른손에는 몽둥이와 함께 탐지기를 잡고, 그것을 확인하면서 올라갔다. 

　결국 등대 꼭대기 부분에 도착할 때까지 새로운 반응은 없었다. 히로키는 탐지기를 주머니에 넣고, 총도 다시 바지 뒤쪽에 집어넣었다. 등에 있는 방을 둘러싼 베란다로 나왔다. 쇠로 만든 난간에 손을 대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세일러복을 입은 시체가 보였다. 고개가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었으며, 그 머리 아래는 피가 뿜어져 나와 있는 시체이기는 했지만, 고토히키 가요코는 아니었다. 사카키 유코였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멍하니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히로키는 생각했다. 여섯 명의 여자애들이 여기서 모두 죽었다. 방에는 총기가 보이지 않았지만, 상처로 봐서, 그리고 벽이나 바닥에 뚫려 있는 몇 개의 구멍으로 미루어 봐서, 아까 들렸던 총성은 역시 여기서 난 것이 틀림없다. 시나리오로는─그 애들은 어떻게 모여서, 여기 숨어 들었는데,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는 추측이 타당할 것이다. 우선 아래쪽에서 다섯 명이 죽고, 사카키 유코도 여기까지 도망쳤지만, 습격자가 손을 쓸 틈도 없이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그 습격자는 히로키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라졌다─

 

　그러나 현관의 바리게이트, 창문에 각목을 쳐놓아, 아마도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 놓았다가 왜 습격자가 나타났을 때 여자애들은 바리게이트를 푼 것일까? 습격자가 나가면서 푼 것일까? 그렇다면 습격자는 어떻게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설마 사실은 원래 여기 있던 사람이 "일곱 명"이고, 누군가 한 사람이 배신을 해서, 아니 정체를 드러내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야, 설마.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카가와 유카의 죽은 모습도 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목이 졸렸다거나 그런 것처럼 보였다. 테이블 위에 뿌려져 있던 피도 이해가 안 된다. 또 있다. 그 현관 바로 옆의 방문. 왜 부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히로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건물 옥상을 확인하고 등이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두컴컴한 등탑 안을 돌아 내려가는 쇠로 된 나선형 계단을 후다닥 내려오면서, 그 등대 안쪽 벽을 보다가 히로키는 자기가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이 자기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피로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이제 여섯 명이 줄었다. 정오 방송에서 남은 사람은 열 네 명이라고 사카모치가 말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여덟 명. 많아 봐야 여덟 명이 남았다. 고토히키 가요코는 아직 살아있을까? 정오부터 지금 시간까지 어딘가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이미 죽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히로키는, 아니다, 분명히 살아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었지만, 왠지 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남은 사람 여덟 명, 어쩌면 그 이하. 그러나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분명히 고토히키 가요코도 살아 있을 것이다. 시간은 상당히 지났다. 게임 시작 이후 하루 반나절이 지났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 고토히키 가요코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나하라 슈야 일행을 생각했다. 그들 일행은 방송에서 이름이 불려지지 않았다. 가와다 쇼고가 말했다. "마음이 내키면 우리 열차에 타라."

 

　진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까? 그리고 자신은 가요코와 함께 그 역까지 갈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가요코만은 어떻게 해서든 그 열차에 태우고 싶었다. 필요하다면 도와 드릴까요, 마드모아젤? 

　하, 이것은 마치 미무라 신지 같은 말투다. 그렇다─신지가 세토 유타카와 사이가 좋았던 것은 이해가 된다. 신지는 농담을 잘 했다. 물론 유타카가 하는 농담과는 좀 다른, 더 빈정거리는 듯한, 때로는 신랄한 농담이었지만, 그래도 신지는 "웃어 넘기는 게 중요해" 라는 이야기를 할 줄도 알았던 것이다. 신지는 언젠가, 그렇다, 분명히 2학년 설날 전의 종업식에서 정부의 지역 교육위원의 따분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히로키와 잡담을 나누며 말했다. 

　"우리 숙부님이 옛날에 말씀하셨지. 웃는다고 하는 것은 조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 의미를 알겠니, 히로키? 나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히로키도 그건 역시 알 듯도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자기가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미무라 신지나, 세토 유타카는 이미 죽었다. 이제 신지의 질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다.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샌가 다섯 명의 시체가 뒹굴고 있는 부엌에 도착했다. 히로키는 새삼스럽게 그 피로 물든 방을 둘러보았다. 

 

　지독한 피 냄새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는데, 가스 화로에 냄비가 걸려 있었고, 거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당연히 가스는 끊어졌을 테니, 고체 연료나 다른 뭔가로 취사를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들여다보니 냄비 아래 이미 불은 없었지만, 냄비 안에는 스튜 같은 것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게임 개시 이후 지급받은 빵 밖에 먹지 않아(물은 모자라서 민가의 우물에서 길었지만), 배는 고팠지만 히로키는 고개를 저었다. 냄비에서 눈을 뗐다. 이런 방에서는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빨리 고토히키 가요코를 찾아야만 한다. 어서 여기서 나가자. 휘청거리면서 복도로 나왔다. 꽤 오래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발걸음에 힘이 없는 느낌이었다. 긴 복도 끝, 현관에 누가 서 있었다. 복도가 어두컴컴하고, 그 사람은 빛이 들어오는 현관 입구를 배경으로 서 있어, 실루엣으로 보였다. 

 

　히로키는 눈을 크게 뜨기보다 먼저 옆으로 튀며, 부엌 안으로 다시 날아 들어갔다. 동시에 실루엣의 손 언저리가 무섭게 불꽃을 뿜어냈다. 아직 복도에 남아 있던 히로키의 발 바로 옆을 총알이 지나갔다. 히로키는 긴장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일어서서, 그 문을 쾅 하고 닫고 자세를 낮추고 문고리를 움켜잡고, 자물쇠를 걸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 총소리였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죽었을 때도 같은 총소리가 들렸었다. 그 때 말고도 몇 차례 들어본 적이 있는 총소리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 "누군가" 였다. 아마 히로키와 마찬가지로, 총소리를 듣고 여기를 조사하러 온 것일 것이다. 혹시 우츠미 유키에 일행을 죽인 습격자를 노리러 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혹은 그 습격자 본인이 되돌아온 것일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히로키는 왼손을 뒤로 돌려 다시 총의 손잡이를 잡았다. 미츠코가 남기고 간 데이 팩에서 총알을 찾아내, 지금도 완전 장전되어 있었지만, 예비 클립만은 미츠코가 주머니에 넣어 놓기라도 했는지 없었다. 콜드 가버먼트, 싱글 액션 오토매틱. 장탄할 수 있는 총알은 겨우 7플러스 1발이다. 총알을 새로 끼워 넣을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상대는 머신 건을, 아니면 그 이외의 총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다. 

　문 옆에 딱 달라붙어 히로키는 여자애들의 시체가 구르고 있는 부엌을 둘러보았다. 골치 아프게도, 창에는 안쪽에서 각목을 못으로 박아 놓았다. 저걸 뜯어내고 밖으로 뛰어나가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등탑으로 통하는 문 쪽도 보았다. 아니, 그쪽도 무리다. 등대 위는 뛰어내리기 너무 높다. 그렇게 했다가는 사카키 유코와 나란히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는 신세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지금, 그 "누군가"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발소리를 죽이고 이 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천천히 히로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다, 상대방에게도 그럴 여유는 없을 것이다. 빨리 결판을 내지 않으면 자기도 또한 지금 난 총소리를 듣고 쫓아온 누군가로부터 등 뒤에서 공격을 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

 

　예상이 맞았다. 손잡이 주위를 중심으로 문짝이 튀어 올랐다(문을 뚫고 들어온 총알 몇 발인가가 거의 정면에 있던 마츠이 치사토의 시체에 맞아, 어깨와 옆구리의 살이 튀어 올랐다). 쾅, 하고 문이 열렸다. 다음 순간에, 검은 덩어리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 바퀴를 굴러 일어섰을 때는, 그것이 교복을 입은 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 안의 다른 시체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사각이었던 문 옆쪽으로 머신 건을 총구를 겨누고 바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대여섯 발의 총탄이 벽에 구멍을 뚫고 총소리가 멎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히로키는 몽둥이를 치켜들고, 기리야마를 위에서 덮쳤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문 옆에 붙어 있던 높은 선반 위로 기어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익숙지 않은 총은 별로 믿을 수가 없어, 생각을 고쳤던 것이다. 필요한 것은─즉 기리야마가 쏘는 총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기리야마가 그걸 눈치 채고 고개를 들어, 총구를 치켜 올렸지만, 그 전에 히로키의 손에 쥐어져 있던 몽둥이가 팍, 하고 기리야마의 손목을 때렸다. 잉그램 M10 9mm 모델이 바닥에 툭 떨어져, 테이블 건너편의 노다 사토미의 시체가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기리야마 바지 앞쪽에서 또 한 자루의 총을(커다란 자동권총이었다. 오다 도시노리가 갖고 있던 리볼버와는 다른 것이었다) 뽑아 들려고 했지만, 착지를 마친 히로키는 잽싸게 몽둥이를 앞으로 움직여, 그것을 쳐서 떨어뜨렸다. 연타다! 단숨에 다운시켜 버리자! 

 

　그러나 기리야마는 다시 휘두른 몽둥이를 피해, 상반신을 뒤로 쓰러뜨리면서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다. 마치 쿵푸 영화를 보는 듯, 우아하게 우츠미 유키에의 시체를 뛰어 넘어, 한 바퀴 돌더니 방 안 가운데 있는 테이블 앞에 섰다. 그 때는 이미 오른손에 리볼버 권총을 뽑아들고 있었다. 오다 도시노리가 갖고 있던 그 권총이었다. 

　그러나 히로키의 동작은 그런 기리야마가 보기에도 상당히 놀라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히로키는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와, 기리야마 눈 앞 8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 들어왔다. 

　「야압!」 

　히로키가 몽둥이를 휘둘러, 기리야마의 손에서 총이 세 번째로 떨어졌다. 그것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몽둥이가 다시 기리야마의 얼굴을 공격해 들어왔다. 기리야마의 뒤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이제 후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몽둥이는 기리야마의 안면 몇 센티미터 앞에서 멈추었다. 다음 순간에는, 몽둥이 앞쪽의 3분의 1정도가 기리야마의 머리를 스치며 허공을 나는 것이 보였다. 뿌직, 하고 몽둥이가 부러지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히로키의 귀에는 늦게 들렸다. 기리야마의 얼굴 앞에 들러올린 왼쪽 손바닥으로 막자, 몽둥이가 부러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에는 기리야마의 오른손이 찌르듯이, 똑바로 히로키의 얼굴을 공격해왔다. 히로키의 눈을 노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서운 일격이었다. 

 

　그러나 히로키는 어쨌든 그 공격을 피했다. 피했을 때는 몽둥이를 놓은 두 손으로 기리야마의 손을 움켜잡았다. 움켜잡은 다음 순간에는 관절 꺾기로 들어갔다.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기리야마의 배를 향해 힘껏 차올렸다. 완전히 무표정한 기리야마의 입에서 짧은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히로키의 왼손은 기리야마의 팔을 잡은 채로, 또 오른손은 권총을 뽑아들고, 그 격철을 일으켰다. 총구를 기리야마의 명치 부근에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한 발씩 쏠 때마다 기리야마의 몸이 약간씩 흔들렸다. 마지막 총탄이 나가자 탄피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먼저 떨어져 있던 탄피에 부딪혀 챙 하는 소리가 났다. 기리야마의 오른팔을 쥔 히로키의 왼손에 기리야마의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전해왔다. 올백 머리─기리야마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히로키가 손을 놓으면, 그 몸은 테이블 모퉁이를 타고 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손을 놓지 않고, 기묘한 춤을 추듯이 그 기리야마와 마주선 채로 히로키는 헉헉 어깨로 숨을 쉬고 있었다. 

 

　이겼다. 

　이긴 것이다. 기리야마 가즈오에게. 어쩌면 미무라 신지보다도, 그리고 나나하라 슈야보다도 더 두렵고, 뛰어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소문으로 듣기에는 격투에서 진 적이 없다고 하는 그 기리야마 가즈오에게─

　순간 히로키의 오른쪽 옆구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후비고 들어왔다. 히로키는 윽, 하고 숨을 토하며─눈을 부릅떴다. 기리야마 가즈오가 히로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왼손─나이프를 쥔 왼손이 히로키의 옆구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히로키는 천천히 그 손에서 다시 기리야마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기리야마 가즈오는 여전히 잘 생기고, 게다가 차가운 눈으로 히로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물론 그것은 기리야마 가즈오가 오다 도시노리의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히로키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기리야마가 나이프를 비틀자, 히로키가 신음소리를 냈다. 기리야마의 오른쪽 손목을 잡은 왼손에 힘이 빠졌다. 

　아─ 이런. 이건 정말. 

　그러나 히로키는 힘을 짜내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었다. 총알이 없는 총을 잡은 채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직각으로 굽은 왼쪽 팔꿈치가 기리야마의 아래턱을 쳤다. 기리야마가 떨어져 나가며, 피가 튀어 있는 하얀 테이블 위로 미끄러졌다. 대동아공화국의 국기 같던 그 핏자국이 이번에는 미국 합중국 국기의 띠 모양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히로키의 배에 꽂혀 있던 나이프가 히로키의 살을 30그램 정도 베어내, 피를 뿜어냈다. 히로키의 폐 깊숙한 곳에서 숨이 새어나왔다. 

 

　다음 순간, 히로키는 몸을 돌려, 복도로 통하는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나설 때 총소리가 들리며, 문틀이 퍽, 하고 터졌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집어들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기리야마는 네 번째 총을(아마 바지 안쪽 발목 어딘가에 숨겨)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히로키는 총소리를 무시하고 달렸다. 현관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의자와 책상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이번에는 귀에 익은 머신 건의 총소리가 들려왔지만, 몸을 숙였기 때문에 맞지는 않았다. 밖은 하늘이 흐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의외로 밝게 느껴졌다. 

　라이트 밴이 놓여 있는 문 너머의 수풀까지, 히로키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가 달려간 하얀 흙 위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또 머신 건 소리가 들렸지만, 히로키는 이미 수풀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물론 거기서 한숨 돌리고 갈 수는 없었지만. 

 

 

 

 

　가느다란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섬을 뒤덮은 나무가 비에 씻겨, 짙은 구름과 물방울 사이로 떨어지는 희미한 햇빛 속에서 어둡고 선명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슈야는 그 숲 속을 뚫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오른쪽은 시야가 트여, 바다가 보였다. 빗방울의 하얀 커튼 뒤로 보이는 바다는 짙은 회색에 가까운 빛을 띠고 있었다. 유키에 일행이 있던 방에서 자신의 셔츠와 교복, 스니커를 찾아 입고 신었다. 나무를 타고 떨어지는 빗줄기가 그 교복을 적시고 있었다. 어깨에는 우지 머신 건을 메고, 오른손으로는 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바지 앞에는 Cz75를 꽂아 넣었다. 브로우닝은 등에 멘 데이 팩에 긁어 모은 탄약과 함께 넣어 두었다. 

 

　슈야는 바로 그 등대를 떠났지만, 예상대로였다고나 해야 할까, 15분 정도 지나서 섬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절벽 위에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긁어모을 무렵, 그 등대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실내였다고는 해도 여러 차례 난 총소리를 듣고,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슈야는 망설임 끝에 다시 등대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었다. 그 총소리는 귀에 익은, 기리야마 가즈오의 머신 건 소리인 것 같았다. 노리코와 가와다가 일부러 총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상태였다. 한쪽이 기리야마라고 한다면, 다른 한쪽은 스기무라 히로키일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한쪽이 소마 미츠코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나 그 총소리도 바로 멈추었다. 슈야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등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돌아가 봐야 이제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유키에 일행의 시체 말고 다른 시체가 기다리고 있을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슈야가 절벽의 바위 위에서 두 개의 모닥불 준비를 끝냈을 무렵이었다. 라이터는 등대에서 가지고 왔지만, 그 빗방울 때문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빗줄기가 약간 거세지면서, 슈야는 불 피우기를 포기하고 그곳을 떠났다. 아마 노리코와 가와다는 그리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C=3구역은 금지 구역이 되었지만, 인접한 D=3,C=4 주변은 아직 무사했다. 아마 그 근방에 있을 것이다. 모닥불은 그 근처에 가서 피워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걷기 시작한 슈야의 귀에 멀리서 희미하게 짹짹, 짹짹, 하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린 것은 섬의 북쪽 해안이 서쪽으로 구부러지고 있을 때, 시간으로 두시 반쯤이었다. 슈야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귀울이다가 후다닥 손목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7초 동안 움직이자, 그 희미한 새 소리는 멎었다. 15초, 라고 가와다가 말했다. 시계를 보기 전까지의 시간을 합치면, 그것은 분명히 그 정도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빗속에서 우는 새는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게임 시작 이후, 낮에 이따금 들렸던 작은 새 소리들 이외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슈야는 그대로 섬의 북서쪽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다가 다시 같은 새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아까 들었을 때로부터 정확하게 15분이 지났고, 15초 만에 딱 멈추었다. 가와다다. 모닥불의 연기를 피워 올릴 것도 없이 가와다는 버드 콜을 불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세 번째로 새소리가 들린 것이 겨우 3분 전이다. 그 소리는 훨씬 가까웠다. 구역으로 이야기하면 슈야는 B=6에서 B=5로 가고 있었다. 슈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왼쪽 손목 아래로 우지 총신을 찔러 넣고 왼팔을 들어올렸다. 억지로 근육을 사용하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게 더 편했다. 문자판, 유리에 묻은 빗방울 때문에 일그러져 보이는 시계바늘은 오후 3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소리는 바닷가보다 약간 산 쪽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슈야는 거기서 다시 한 번 바다를 힐끔 보고, 완만한 경사면 위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눈앞의 북쪽 산 모양이 약간 다르게 보였다. 슈야는 자신이 그 산기슭을 돌아, 섬의 서쪽 해안으로 상당히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기껏해야 1.5킬로미터 정도도 안 되지만, 출혈이 많았던 영향이 큰지, 몸이 후들거렸다. 온몸의 통증은 거의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원래는 가만히 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그러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수풀 속으로 들어가니 풀을 헤쳐야하기 때문에 피로가 더 심해졌다. 물론 지금이라도 수풀 속에서 누군가가 습격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만약의 경우에는 손에 든 우지 서브 머신 건의 방아쇠를 당길 뿐이다. 겹겹이 자란 낮은 나무의 가지가 무성해지면서, 수풀은 일단 끝났다. 슈야는 멈칫했다. 총을 든 누군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좁은 땅에 이상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것은 슈야의 눈에는 두 개의 뻣뻣한 회색 덩어리로 보였다. 회색의 뻣뻣한 덩어리 안에서 휙, 하고 작은 붉은 색이 솟아오르며 "까아" 하고 울었다. 그제야 슈야는 그것이 머리가 붉게 물든 해오라기 크기 정도의 새라는 것을 알았다. 새가 시체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슈야는 반사적으로 우지를 그 쪽으로 들어올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가 그만두었다.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시체에서 날아 올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슈야는 그 두 시체 옆에 우두커니 서서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우지를 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구역질이 났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두 시체 모두 얼굴을 새에게 쪼여, 붉은 살이 피부 여기저기 튀어나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슈야는 구역질을 참고, 시체를 관찰한 다음, 그 시체가 어쩌면 하타가미 다다카츠와 다키구치 유이치로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특히 심하게 망가진 다다카츠의 얼굴은 어쩌면 새 때문이 아니라, 골격 자체가 무참하게 부서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가 쪼지 않아 무사히 남아 있는 코 부분도 주저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슈야는 바로 옆 수풀 속에 배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배트의 끝은 비에 젖었는데도, 옅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다다카츠의 얼굴은 그 배트에 박살이 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야구를 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저 배트에. 유이치로는 그에 비하면 아직 깨끗한 얼굴이다. 물론 그 얼굴에는 이미 입술과 눈이 없는 것 같았지만. 

 

　푸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새 한 마리가 슈야의 발 아래, 그 다다카츠의 얼굴 위에 다시 내려와 앉았다. 이어서 두 마리, 세 마리가 연달아 날아와 내려 앉았다. 슈야가 가만히 있자,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안전하다고? 웃기고 있네! 

　슈야는 다시 우지의 방아쇠에 걸고 있느 손가락에 힘을 주려다 그만두었다. 지금은 가와다와 노리코에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새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섬 안에 있는 다른 시체들도 이런 식으로 새에게 먹히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가 해안 가까운 쪽이라서? 두 사람의 시체에서 눈길을 거둔 슈야는 비틀거리며 그곳을 우회하여 정면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까아─하고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걸어가면서, 슈야는 구역질이 났다. 이제 사람이 죽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새에게 먹히다니─나는 이제 바닷가에 가서 새가 춤추는 것을 편안한 기분으로 지켜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도 다시는 바닷가의 새 이야기는 노래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새 고기도 먹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라니─정말 끔찍하다. 

　그러나 그 때 또 칫칫칫, 하고 그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슈야는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아─새라니, 정말 형편없지만─작은 새라면 괜찮을까? 또 정확하게 15초 만에 멈추었다. 이번에는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 온 것 같았다. 슈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수풀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 근처인 것 같다. 이제 가까운 곳에 가와다와 노리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지? 

 

　생각하기 전에 목 깊은 곳에서 참고 있던 구역질이 다시 솟구쳤다. 얼굴이 엉망이 된 두 사람의 시체. 그리고 그 부드러운 살은 새들의 오후 식사가 된다. 맛있게 드셔. 

　토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체력이 더 떨어진다. 그러나─슈야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위액 밖에 나오지 않았다. 콧구멍에서 신 냄새가 올라왔다. 

　슈야는 계속 토했다. 노란 액체에 물감을 떨어뜨린 듯이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어쩌면 위도 다친 건지 모른다. 

 

　「슈야!」 

 

　슈야는 고개를 홱 쳐들었다. 반사적으로 우지를 그쪽으로 겨누었다. 그렇지만 그 총구는 천천히 다시 땅바닥을 향했다. 수풀 사이로 수상한 사냥꾼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가와다였다. 왼쪽에 나무를 잘라 만든 활 같은 것을 들고, 오른손으로 잡은 화살은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아아, 그렇구나, 가와다가 쳐놓은 그 실을 건드린 거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가와다가 「술이 덜 깼나?」 라고 말했다. 농담 치고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와다의 어깨 너머로 노리코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아래, 슈야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가와다를 거의 밀쳐내듯이, 노리코가 다리를 절룩이면서 달려왔다. 슈야는 입가를 쓱 문지르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우지에서 손을 떼고, 오른손만 뻗어 노리코를 껴안았다. 노리코의 몸이 부딪혀, 옆구리에 통증이 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토해 놓은 것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런 것도 상관 없었다. 차가운 빗속이었지만, 매달리는 노리코의 몸은 따스했다. 노리코가 슈야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슈야─ 슈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노리코는 울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려,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뒤섞였다. 슈야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자기도 울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많이 죽었다─이 게임에서는 이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 그렇지만 다행이었다. 두 사람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가와다가 다가오더니 쑥 오른손을 내밀었다. 슈야는 순간 그게 무얼 의미하는 건지 몰랐다. 그러나 곧 이해하고 노리코의 몸 너머로 오른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역시 크고 두툼했다. 

 

　「잘 돌아왔어. 환영한다.」 

　조용한 목소리로, 가와다가 말했다. 

 

【남은 인원 8명】

 

 

　바닷가로 약간 내려선 곳, 나무들 사이로 바위가 튀어나와, 바다에 맞닿은 낮은 벽을 이루고 있었다. 가와다가 나이프를 써서 열심히 작업했는지, 그 암벽에 커다란 나뭇가지를 두 개 걸쳐놓고, 그위에 이파리가 무성한 나뭇가지를 여러 개 겹쳐 놓아 비를 막을 수 있는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나뭇가지 끝에서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가와다가 보건소에서 가져온 강력한 진통제를 일단 먹은 다음, 슈야는 등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가와다가 빈 깡통과 탄으로 또 물을 끓이고 있어,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였다. 가와다가 다 듣고 나더니, 「그래?」 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발 사이에 우지 서브 머신 건을 놓아 두었다. 우지 서브 머신 건은 가와다가 쓰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는 슈야가 Cz75를, 노리코가 브로우닝을 각각 갖고 있었다. 가와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슈야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끔찍했어.」 

　가와다가 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입에서 뗐다. 

　「우츠미가 여러 명을 모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됐구나.」 

　슈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거, 어려운 일이야.」 

　「그렇지.」 

　가와다도 시선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이지, 무지하게.」 

　가와다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네가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슈야는 우츠미 유키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는 살아 있다. 우츠미 유키에 일행 덕분에 살아 있다. 그러나 그 유키에는 이미 이 게임에서 퇴장해 버렸다. 

　슈야는 자기 왼쪽에 있는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노리코는 사이가 좋았던 우츠미 유키에와 다니자와 하루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괴로워했지만, 물이 끓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것도 가와다가 구해온 것일테지만, 고체 수프를 꺼내 두 개를 빈 깡통 속에 집어넣었다. 콘소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슈야, 먹을 수 있어?」 

　노리코가 물었다. 

　슈야는 노리코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먹어야만 한다는 것은 알지만, 금방 위 안에 있던 것을 다 토해낸 상태라, 그리고 그 원인이 된 하타가미 다다가츠와 다키구치 유이치로를 뒤덮고 있던 그 끔찍한 회색 덩어리의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그 이야기는 두 사람에게 하지 않았다. 그 "끔찍한" 현장은 겨우 100미터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그냥 다친 곳이 너무 아파 토했다고 말해 두었다) 도저히 식욕이 나지 않았다. 

　「먹어 둬! 나하고 노리코는 점심 이미 먹었어.」 

　담배를 문 가와다가 말했다. 슈야는 그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이 더 짙어진 가와다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가와다가 반다나로 테두리를 잡고 빈 깡통을 들어올려, 플라스틱 컵에 수프를 따라 슈야에게 내밀었다. 

　슈야는 그것을 받아 들고 천천히 입에 댔다. 입 안에 콘소메 냄새가 퍼지면서, 따뜻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위까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잘 넘어갔다. 노리코가 빵을 내밀어, 슈야는 그것을 받아들고 씹었다. 빵도 의외로 잘 넘어갔다. 결국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정신적으로야 어쨌든 몸은 매우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더 줘?」 

　노리코가 묻자, 슈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프를 좀 더 줘.」 하며 빈 컵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노리코가 따라 주었다. 컵을 받아 들면서 슈야는 「노리코!」 하고 불렀다. 노리코가 고개를 들어 슈야를 보았다. 

　「왜?」 

　「몸 상태는 괜찮으니?」 

　「응.」 

　노리코가 웃었다. 

　「감기약을 계속 먹고 있어. 괜찮아.」 

　슈야는 가와다의 얼굴을 보았다. 가와다가 담배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가 항생물질 주사약을 보건소에서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슈야는 노리코 쪽을 다시 돌아보고, 웃어 보였다. 

　「다행이야.」 

　노리코는 다시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슈야는 다친 데 괜찮아?」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실제로는 괜찮지 않았지만,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교복 소매 아래 드러나 보이는 왼손의 빛깔은 오른손과 좀 달랐다. 어깨의 상처 때문인지, 팔꿈치의 상처 때문인지, 잘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히 팔꿈치 부근에 꼭 감아 놓은 붕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왼팔이 점점 굳어지는 것 같았다. 

 

　수프를 또 한 모금 마시고, 슈야는 그 그릇을 발 아래 놓았다. 그리고 「가와다.」 하고 불렀다. 우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강와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슈야를 바라보았다. 

　「왜?」 

　「기리야마 말이야.」 

　어제부터 일어났던 일을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가와다, 노리코와 헤어지게 되기 직전에 머리에 가득 찼던 의문이 다시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아까 등대를 나오면서 들었던 그 총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자기가 그 때 외쳤던 "뭐야, 저 녀석은!" 즉 도대체 기리야마 가즈오는 어떤 인간일까? 

　물론 추측하기로, 기리야마 가즈오가 이 게임에 "적극적으로 나선" 유일한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슈야와 싸운 그 오오키 다츠미치나, 혹은 아카마츠 요시오, 스기무라 히로키의 말을 믿는다면 소마 미츠코도 그 쪽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기리야마의 그 잔혹함, 주저 없는 행동, 냉혹함과 냉정함은. 슈야가 기리야마를 볼 때마다 항상 느끼고 있던 그 기묘한 위화감은 이 게임 중에 풀 사이즈로 확대되어 자기들에게 직접 다가왔다. 슈야는 새삼 머신 건 총구에서 튀어나오던 불꽃, 그 너머로 보이던 싸늘한 눈을 떠올리니, 소름이 끼쳤다. 가와다가 아무 말도 없자, 슈야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된 녀석일까? 나는 그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가와다는 눈을 내리깔고, 풀 오토/세미오토 설정 스위치를 겸한 우지의 안전장치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가와다는 이미 훨씬 전에 알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슈야는 가와다가 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가와다의 대답은 달랐다. 

　「그렇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녀석과 비슷한 놈을 본 적이 있어.」 

　「지난 번 프로그램에서?」 

　「아니, 그렇지 않아.」 

　가와다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에서야. 완전히 다른 곳에서. 슬럼가에서 의사 자식 노릇을 하다보면, 별의별 놈들을 다 보게 되지.」 

 

　가와다는 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고, 다시 말했다. 

　「아주 공허한 타입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허?」 

　노리코가 물었다. 

　「그래.」 

　가와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라거나 애정 같은 것에 대해, 아니 어떠한 가치관에 대해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부분이 마음 속에 없는 거지. 그런 타입이야. 게다가 그러는 데는 아마 특별한 이유가 없을 거야.」 

　이유가 없다. 슈야는 생각했다. 그럼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는 의미인가? 그것은─

　가와다가 또 담배를 빨았다가, 연기를 뿜었다. 

　「스기무라 히로키가 소마 미츠코 이야기를 했잖아.」 

　슈야와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진짜 다른 애들을 죽일 작정인지 어떤지는 우리가 직접 확인한 적이 없으니까 몰라. 그렇지만 학교에서 모습만으로도 미츠코와 기리야마는 닮았어. 다만 미츠코의 경우에는 윤리와 애정을 억지로 뿌리치고 있을 뿐이야. 그 애에게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렇지만 기리야마에겐 이유가 없어. 그 차이는 크지. 기리야마에겐 이유가 없어.」 

　슈야는 가와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무섭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래, 무섭지.」 가와다가 동의했다. 

　「생각해봐. 그건 아마 그 녀석 때문이 아니야. 아니, 누구 때문도 아니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녀석은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라고 하는 것을 지닐 수가 없었던지도 모르지. 사람으로 태어나, 그렇게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겠어?」 

　그러더니 가와다는 「하긴.」 하며 말을 이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이따금 모든 게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있어. 왜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있는가? 그런 거 먹어 봐야 어차피 똥이 될 뿐이지 않은가? 왜 나는 학교에 가서 공부 같은 걸 하는 걸까? 그리고 만약에 커서 성공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는 법.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돈을 번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완전히 무의미하다. 하긴 말도 안되는 나라에는 그런 무의미함이 잘 어울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러나 말이야. 우리들에겐 즐겁다거나, 기쁘다거나, 그런 감정도 또 있을 거야. 하찮기는 해도 틀림이 없지. 그렇지만 우리들의 허무를 메워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거 아니겠어? 적어도 나는 그 이외의 답은 몰라. 아마 기리야마에겐 그런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걸 거야. 그래서 그 녀석에겐 가치기준이라는 것이 없을 테고. 따라서 선택할 뿐이야.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 확고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그때그때 선택할 뿐이야. 어쩌면 이번에도 녀석은 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어.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선택한 거야. 이게 내 가설이지.」 

 

　거기까지 단숨에 쏟아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무서워. 그런 인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그런 녀석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도 말이야.」 

 

　침묵이 흘렀다. 가와다가 짧아진 담배를 한 번 더 빨더니, 땅바닥에 눌러 껐다. 슈야는 또 수프 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슈야는 가와다가 만든 나뭇가지 지붕 밖으로 흐린 하늘을 보았다. 

　「히로키는 괜찮을까?」 

　등대를 나온 뒤에 들은 총소리는 가와다와 노리코에게 이야기했지만, 역시 약간은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괜찮을 거야.」 

　노리코가 말했다. 

　슈야는 가와다를 바라보았다. 

　「연기를 피우면 보일까?」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여기라면 섬 어디서 연기를 피우건 다 보여. 자주 체크할 거야.」 

　그러자 슈야는 그 버드 콜을 떠올렸다. 그것이 자기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었다. 그런데 가와다는 어째서 이런 이상한 것을 갖고 있었을까? 그것을 물으려 했는데, 그전에 노리코가 입을 열었다. 

　「히로키는 가요코를 만났을까?」 

　「만났으면 연기를 피우겠지.」 

　가와다가 대답했다. 노리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얼거렸다. 

　「히로키가 가요코에게 볼 일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일까?」 

 

　그건 보건소를 나오기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슈야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글쎄.」 라고 대답했다. 

　「특별히 친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러나 그때 노리코가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뭔가 생각난 것처럼. 슈야가 고개를 들었다. 

　「왜?」 

　「몰라.」 

　노리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말꼬리를 늘였다. 슈야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쩌면?」 

　「그 녀석은 좀.」 하며 가와다가 끼어들어, 슈야는 시선을 돌렸다. 가와다는 새 담뱃갑을 뜯으며, 시선을 떨군 채로 말을 이었다. 

　「너무 센티멘털해. 이런 지옥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노리코가 말을 이었다. 

　「히로키니까, 아마─」 

　슈야는 영문을 몰라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은 인원 8명】

 

 

　고토히키 가요코(여자 8번)는 수풀 속에서 무릎을 안고 있었다. 구역으로 이야기하면 북쪽 산 중턱, 남쪽 사면인 E=7이다. 

　저녁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수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그냥, 어둡다. 점심때가 지나면서 짙은 구름이 뒤덮이더니, 두 시간 전부터 비를 퍼붓고 있었다. 

　가요코는 머리 위에 손수건을 얹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나뭇가지 덕분에 직접 빗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일러복 어깨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추웠다. 그리고 물론 그 이상으로 무서웠다. 

 

　가요코가 처음 숨어 있던 곳은 북쪽 산꼭대기의 바로 동쪽 옆-C=8구역이었다. 당연히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죽는 것도, 거의 바로 앞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가요코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두 사람을 죽인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움직이면 위험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숨을 죽인 채, 누구에게도 습격당하지 않도록 꼼짝하지 않고, 낮 시간을 보내고 밤을 보냈다. 그 뒤, 금지 구역 발표에 따라 두 번 이동을 했다. 두 번째로 움직인 것은 오늘 정오가 지나서 바로였다. 산꼭대기 남쪽의 D=7도 오후 1시부터 금지 구역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쪽 산꼭대기 부근은 세개의 금지 구역이 설정되어 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확실히 좁아진 것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멀리서, 그리고 어느 때는 상당히 가깝다고 여겨지는 거리에서 몇 차례나 총소리를, 그리고 뭔가가 터지는 폭발음을 들었지만, 가요코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여섯 시간마다 나오는 방송은 클래스메이트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오늘 점심 기준으로 이제 열네 명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총소리가 났으니, 지금은 이제 열두 명이나, 열 명 정도가 살아 남아 있을까? 

 

　가요코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무거운 권총을(스미스 앤드 웨슨 M59 오토였는데, 설명서가 딸려 있었지만 가요코는 총의 이름 같은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발 아래 내려놓고,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을 뒤로 젖혔다. 내내 권총을 잡고 있었더니, 손가락 근육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손바닥을 뒤집어 보니, 권총 손잡이 모양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몸도 너무 피로했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가 있을지도 모를 어떤 집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웠기 때문에, 식사를 지급받은 빵과 물만으로 때우고 있어, 배도 고팠고, 갈증도 심했다. 지급받은 물을 절약하려고 게임 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물을 1리터 약간 넘게만 마시고 버텼다. 비가 내리면서 가져다준 행운, 아까부터 빈 물병 하나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나뭇가지 끝에 놓고 물을 받고 있었지만, 물병은 아직 3분의 1도 차지 않았다. 이따금 머리 위에 얹은 손수건으로 입술을 적시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온몸의 갈증을 풀 수가 없었다. 

　가요코는 힘없는 한숨을 토해내며, 어깨까지 내려온 쇼트 헤어를 무의식적으로 귀 위로 쓸어 올리고는, 다시 M59를 잡았다. 머릿속이 멍했다. 가요코의 멍한 머릿속에 다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이 게임이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 떠올랐던 장면이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자꾸만 떠올랐던 부모와 언니의 얼굴만큼 친근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것은 가요코에게는 중요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가요코가 다니던 다도 교실의 유파 이벤트, 가요코가 막 시작했던 중학교 1학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 이벤트는 개최 장소인 현 정부 지정 공원의 의뢰를 받아, 가을 축제일인 그 날, 관광객들에게 차를 끓여 주는 야외 행사였다. 실제로 앞에 나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른들뿐이어서, 가요코 정도의 또래들은 야외에 자리를 설치한다거나 과자를 준비하는 등 잡일을 맡고 있었지만, 그 다석의 정주 가운데 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벤트가 시작되고 나서 상당히 늦은 시간인 점심 때 쯤에 나타났다. 핸섬하지만 아직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대학생 정도로 보였다. 가요코는 아아, 저 사람도 심부름할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지만, 그 사람은 「아, 늦었습니다.」 하며, 정주의 자리에 있던 가요코의 선생님(42세의 아줌마다)에게 말을 걸더니,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멋진 솜씨였다. 다건을 잡는 법, 찻잔을 다루는 날렵한 손놀림, 아주 단정한 자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장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자기가 할 일도 잊고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쳤다. 뒤돌아보니 가요코를 다도 교실에 끌어들인 시로이와 중학교의 선배가 「어때, 멋지지, 저 사람?」 하고 말했다. 

　「다도 유파 당주의 손자야.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첩이 낳은 손자지만. 나도 팬이야. 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도 교실을 계속 다니고 있는 셈이지.」 

　선배는 그 사람이 열아홉 살이며, 고등학교 졸업 후, 이미 "대리 사범" 같은 입장에서 몇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가요코는 아아, 다른 세계의 사람이구나,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지만….

 

　가요코는 유파의 이벤트 때마다, 또는 이따금 가요코가 다니는 다도 교실에 그 사람이 게스트로 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화장을 할 수 없었지만, 화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머리를 빗고, 좋아하는 다크블루 헤어 클립을, 잘 어울리게 꽂고─시원하게 생긴 눈매, 그리 크지 않지만 또렷한 눈, 오똑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예쁜 코, 꼭 다문 폭 넓은 입, 음, 대체로 평범하지만, 그래도 나도 꽤 어른스러워 보이는걸─ 또래의 소녀들에서부터 아줌마들까지, 팬이 무지하게 많은 그 사람에게 가요코도 열을 올리게 된 데에는 이렇다 할 이유는 필요 없었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사람은 얼굴도 잘 생겼고, 머리도 좋고, 쾌활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 거의 믿기 어려운 이상적인 남성이었으니까. 게다가 어찌된 까닭인지, 사귀는 여자가 없는 것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가요코에게는 딱 두 번, 그 사람과 관계된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그래봤자,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대단한 것도 없는 일일 테지만). 

　한번은 가요코가 2학년으로 올라갔던 봄, 유파의 정례 다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로이와 읍에서도 아주 가까운 시도읍에 있는 유파의 본가에서 다회가 열렸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중앙 정부의 지역 문화위원이 갑자기 자리 배치 운영에 시비를 걸기 사작했던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기는 했다. "청렴결백하게 국가에 봉사하고" 어쩌고 하는 슬로건을 내거는 정부의 관리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 특권을 휘둘러 이권을 취하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공화국 전통 문화 보조금의 배당을 크게 잡아 줄 테니까 마진을 달라고 하는 비열한 거래를 유파의 당주가 정중하게 거절하자, 심사가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당주가 입원 중이어서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주인을 대신한 당주의 적자 아들, 그 또한 적자라고 해도 벌벌 떨 뿐이어서, 대응에 따라서는 유파의 활동 정지 같은 것이 내려질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수습한 것이 그 때 열아홉 살이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문제의 관리를 별실로 안내하더니, 한참 있다가 혼자 돌아왔다. 

 

　「정부에서 오신 분은 돌아갔습니다. 기분을 푸신 것 같으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그 이상 아무 말이 없었고, 즐비한 유파의 높은 사람들도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지도 않고, 그 다음에는 그저 평화로운 다회만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가요코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오늘 이 자리는 제 책임 하에 진행되니까.」 라느니 하면서 자기 혼자 문제를 짊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면 그 관리는 그걸 핑계로 내세워 보복성 보고서를 올려, 그 사람을 반정부 정신 오염 용의(이른바 "재교육 캠프 입소"라고 하는 것이다)로 체포하도록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회가 끝나자마자, 다회의 뒷정리가 진행되는 중에, 솔선해서 방석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옮기고 있는 그 사람이 복도에서 혼자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뒤에서 마음을 굳게 먹고 「저어─」 하고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방석을 안은 채로, 걸음을 멈추고 가요코를 바라보았다. 그의 서늘한 눈매에 가요코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 

　「저어, 괜찮으세요?」 

　그 사람은 가요코가 한 질문의 뜻을 알아차린 듯이,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고마워요, 걱정해 줘서. 그렇지만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걱정 같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요코는 오히려 그 사람과 제대로 처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그 정부에서 나온 사람, 마음씨가 곱지 않을 것 같아서, 혹시─」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런 가요코의 말을 막으며, 약간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그 정부에서 온 분도 좋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물론 세상 어디나 다 비슷하겠지만─특히 이 나라 시스템은…, 일그러지게 만들죠. 나는 원래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원래 다도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일 테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러기가 아주 어렵지요.」 라고. 뒷부분에 가서는 거의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가요코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하는 것은 무력한 거예요. 그렇다고 그리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도 없어요. 뭐 가능하면 학생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겨요.」 라고. 씨익 웃으며 발길을 돌려 다시 터벅터벅 걸었다. 

　가요코는 한동안 멍하니 거기에 서 있었다. 거리낌 없는 그 사람의 말투에 안심했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왠지 그저 아아, 진짜 어른이구나, 이 사람은, 하고 감탄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 일로 해서 가요코는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인상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그 뒤로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은 항상 싱긋 웃어 주었다. 

 

　그리고 2학년 겨울, 가요코에게는 이게 결정적이었다. 가요코는 고풍스러운 절 마당에서 열린 다회 회장에서 동백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사실은 그 때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예쁘구나.」 하는 귀에 익은, 투명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믿기지 않게 그 사람이 있었다. 가요코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도 지도를 할 때나 사무 관련 이야기를 빼고, 먼저 말을 걸어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약간 대화를 나누었다. 

　「어때요? 다도, 재미있어요?」 

　「아, 예. 정말 재미있어요. 그렇지만 잘 하지는 못해요.」 

　「그래요? 그렇지만 학생은 자세가 좋아 감탄했어요. 아니 단순하게 자세가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기품이 있다고나 할까?」 

　「예에? 그럴 리가, 아니에요. 저 같은 게─」 

　그 사람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로 조용히 웃으면서, 동백꽃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진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마치 저 꽃 같은 느낌이에요. 어딘가 곧바른─그런데 아주 아름답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물론 아직 자신은 아직 어리고, 그 사람은 자기 유파의 다도를 좋아하는 한 사람에게 칭찬을 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가요코가 성공이야! 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손가락을 딱 퉁기며 기뻐한 것은 나중에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였다).

　가요코는 점점 더 공상에 빠져들었다. 좋아, 물론 나는 아직 어리지만, 내가 열 여덟 살이 되면 그 사람은 스물네 살이야. 충분히 잘 어울리잖아─ 그것은 그런 기억이었다. 

 

　가요코는 주름 스커트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빗방울과는 다른, 뜨거운 액체가 스커트 무릎을 적셔, 가요코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총을 쥔 손이 떨렸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자꾸만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물론 자신은 아직 어린애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자기는 진짜로 그 사람을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진지하게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나서 고백을 하고 싶었다. 가령 다도를 할 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아름답다"고 표현해준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는 아직 어려요.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는 마음을 아직 잘 모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아마, 분명히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너무 좋아합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부스럭, 하고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서, 가요코는 고개를 들었다. 왼손으로 눈물을 쓱 훔치고, 살며시 일어났다. 저절로 발이 움직여, 소리가 난 쪽의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수풀 사이로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스기무라 히로키(남자 11번)의 얼굴과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교복과 셔츠의 소매가 없어, 오른팔이 드러나 있었다. 어깻죽지에 두른 하얀 반다나 위로 붉은 피가 스며 나와, 비 때문인지 그 빛깔이 핑크색으로 번져 있다. 그리고 그 손에 권총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히로키의 입이 약간 벌어졌지만, 그보다도 가요코의 눈은 흙먼지로 얼룩진 그 얼굴의 두 눈에 머물렀다.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공포감이 가요코를 휩쌌다. 어째서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어째서….

 

　「고토히키!」 

　고토히키 가요코는 힉, 하고 소리 지르며, 방향을 휙 돌렸다.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에 긁히는 것도, 그리고 거기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온몸을 적시는 것도 싱관하지 않았다. 그저 도망치기만 했다.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촤악, 하고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폭 2미터 정도의 산길이 완만하게 구부러지면서 이어지고 있다. 가요코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 길을 달려 내려가는 쪽을 선택했다. 올라가면 틀림없이 따라잡힐 것이다. 그렇지만 내려가면─ 등 뒤에서 촤악, 하는 소리가 났다. 

　「고토히키!」 

　히로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쫓아오고 있다! 

　카요코는 지친 몸이었지만 힘을 내 죽어라 달렸다. 이게 뭐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다도 같은 것 말고, 조깅을 해 두는 건데. 

　「고토히키! 기다려! 고토히키!」 

 

　그건 더 냉정하게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들었다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팝콘을 먹으면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바라보는 상태였다면, 애원하는 말투로 들렸을 게 틀림럾다. 그렇지만 지금의 가요코에게는 물론 이렇게 들렸다. 

　「고토히키! 기다려! 죽여 버린다!」 

　물론 기다려 줄 수는 없었다. 앞쪽에서 산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왼쪽을 선택했다. 

　왼쪽 시야가 트였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뚫고 내려오는 빛 속에, 밀감밭이 층층히 이어지고 있다. 그 너머로 또 키 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간 잡목 숲이 보였다. 저기까지만 도망치면…. 

　무리다, 라고 생각했다. 그 숲까지는 충분히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절망적인 거리였다. 불규칙하게 늘어선 밀감 나무를 피해 자기가 비틀비틀 달리는 동안에 스기무라 히로키는 자기를 따라잡아, 그 손에 든 권총으로 자기 등을 쏠 것이다. 가요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자기를 죽이려 하고 있다. 오른쪽 발에 힘을 주어, 가요코는 스피드를 죽였다. 왼쪽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돌았을 때는 이미 총을 두 손으로 겨누고 있었다. 안전장치라는 것은 설명서를 본 뒤로 내내 풀어 놓았었다. 격철은 세우지 않아도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고 설명서에 쓰여 있었다. 남은 문제는 자기가 진짜 이런 걸 다룰 수 있겠는가 하는 것뿐. 비스듬히 경사진 길. 거의 7,8미터 앞에 스기무라 히로키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멈춰서 있었다. 

　이미 늦었어, 내가 쏘지 못할 줄 알았어? 

 

　가요코는 손을 쭉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작은 불꽃이 일고, 팔이 그 반동으로 튕겨 올랐다. 그 총구 앞에서, 히로키의 큰 덩치가 빙글 돌더니, 하늘을 보고 쓰러졌다. 

　가요코는 총을 쥔 채로, 히로키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마무리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마무리를!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가요코는 히로키로부터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히로키는 교복 왼쪽 가슴에(배를 쏘려고 했었는데)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주위가 거무스름하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바닥에 내던져진 오른쪽 팔 끝에는 아직도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아직 그 총을 들어올릴 가능성은 있다. 머리다, 머리를 쏴야 한다. 히로키가 고개를 빙글 돌려, 가요코를 보았다. 가요코는 총을 아래로 향해 잡고, 방아쇠를….

 

　멈칫, 하고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히로키가 총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그만한 힘이 있었으면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찌된 일이지? 권총은 빙글 한 바퀴를 돌더니, 철퍼덕 하고 떨어졌다. 

　─어? 

　비가 쇼트커트 머리를 적시는 가운데, 가요코는 총을 잡은 채로 서 있었다. 

 

　「됐니?」 

　히로키가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된 길에 누운 채로 고통스러운 듯이, 그러나 가요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생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모닥불을! 두 개. 내 주머니에 라이터가 들어 있어. 그러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릴 거야.」

　히로키의 말은 가요코의 귀에 들리기는 했지만, 가요코는 히로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로키가 계속 말을 했다. 

　「그 새가 우는 쪽으로 가. 나나하라 슈야와 나카가와 노리코, 가와다 쇼고가 있어. 너를 구해 줄 거야. 알았니?」 

　「뭐… 뭐?」 

　히로키가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히로키가 반복했다. 

　「모닥불을 두 개. 그리고 새 우는 쪽으로.」 

　히로키가 오른팔을 힘겹게 움직여, 교복 주머니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가요코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힘겨운 듯이 눈을 감았다. 

　「알았으면 빨리 도망가.」 

　「응─?」 

　히로키가 눈을 번쩍 뜨고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 누가 총소리를 들었을 지도 몰라, 도망쳐!」 

 

　그러자 쓸데없는 조각이 많은 퍼즐이 서로 맞물려 그림이 되듯, 드디어 가요코의 머릿속에 상황이 인식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아─ 아.」 

　가요코는 권총을 내던졌다. 털썩, 히로키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팍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히로키! 히로키! 아! 내가 무슨 짓을─!」 

 

　자기도 모르게 가요코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분명히 스기무라 히로키는 약간 무섭게 느껴지는 남자애였다. 권법 도장 같은 데 다니고 있어서, 난폭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별로 말없고, 말을 할 때는 무뚝뚝했다. 남자애─그렇다, 미무라 신지나 나나하라 슈야 같은 애들과 이야기할 때는 약간 웃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거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치구사 다카코와 사귄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가요코는 다카코의 취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예쁜데 왜 무서운 남자애를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이미지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클래스메이트가 계속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는 정말 스기무라 히로키가 무서웠다. 그런데─ 그런데. 

 

　「괜찮아.」 

　또 눈을 감고, 히로키가 말했다. 웃고 있었다. 아주 행복하다는 듯이. 

　「어차피 곧 죽을 거였어.」 

　가요코는 그제야 자기가 지금 쏜 상처 말고도 히로키의 교복 오른쪽 옆구리에서 아랫쪽이 비와 다른 액채로 흠뻑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어서 도망쳐 줘. 제발.」 

　가요코는 흑흑 흐느껴 울며, 히로키의 머리 옆에 살짝 손을 댔다. 

　「같이, 같이 도망가자. 응? 일어서.」 

　히로키가 눈을 뜨고, 가요코를 보았다. 웃은 것 같았다. 

　「난 이제 괜찮아.」 라고 말했다. 

　「너를 만났으니, 이제 만족이야.」

　「─뭐?」 

　가요코의 눈물에 젖은 눈이 커졌다. 지금 뭐야? 뭐라는 거야? 

　「그게─ 그게 무슨─」 

　가요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히로키가 통증을 참는 듯이, 마치 긴 한숨처럼, 후우 하고 숨을 토해 냈다. 

　「그 이유를 들으면 도망가 줄래?」 

　「뭐야? 대체 뭐야? 대답해, 어서!」 

　히로키가 말했다. 의외로 시원스럽게. 

 

　「나는 너를 좋아했어. 오래 전부터 아주 좋아했어.」 

 

　가요코는 이번에도 히로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은? 

　히로키가 말을 이었다. 시선은 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만은 하고 싶었어. 어서 도망가.」 

　진짜 무의식적으로, 가요코의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너는─ 그래도─ 다카코하고─」 

　다시 한 번 히로키가 가요코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를 좋아해.」 

　그제야 히로키의 말이 이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뭔가가 쿵, 하고 가요코의 머리를 때렸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낡은 건물을 부수는, 크레인 끝에 매달린 그 거대한 쇠구슬로 맞으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좋아해, 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혹시 그러면 나를 찾고 있었던 건가? 그게 진짜야?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거친 숨이 몇 번인가 가요코의 목을 넘어왔다. 목소리가 몇 번인가 목에 걸렸다 그리고 간신히 말했다. 

 

　「히로키!」 

　「어서!」 

　말하면서 쿨럭, 하고 히로키가 기침을 해, 피가 튀었다. 안개처럼 뿜어나온 그 피가 가요코의 얼굴에 쫙 퍼졌다. 히로키가 다시 눈을 떴다. 

　「히로키! 나, 나, 나….」 

　물을 너무 마시지 않아, 몸에 물이 부족한데도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괜찮다니까.」 

　히로키가 부드럽게 말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요코에게….」 

　가요코의 성이 아니라 이름을 무슨 소중한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마 히로키가 가요코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가요코에게…. 죽으면 괜찮으니까. 그러니 부탁이야. 어서 도망가. 그렇지 않으면.」 

　가요코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히로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지 않으면? 

　히로키가 아무 말도 없어, 가요코는 천천히 히로키의 교복에 손을 뻗었다.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드라마라면 누군가가 죽을 때 말이 도중에 끊어진다. 「그렇지 않…」 하고. 

　그렇지만 히로키는 「그렇지 않으면.」 이라고, 고통스러운 듯이, 그렇지만 확실히 말했던 것이다. 다음 말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히로키! 히로키!」 

　가요코는 한 번 더 히로키의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히로키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그걸 안 순간, 가요코의 억누르고 있던 감정의 댐이 무너졌다. 목 깊숙한 곳에서 「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알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가요코는 땅바닥을 무릎을 꿇은 채로, 히로키의 몸 위에 엎드려 울었다. 

　가요코를 좋아했었어─ 히로키는 그 마음만을 따라 자기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는 위험 속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누구가와 마주치면 그 상대가 자기를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히로키의 이 옆구리에 난 상처는─ 어깨의 상처는─ 바로 그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오직 가요코를 찾기 위해. 

 

　문득 가요코의 머릿속에 그 장면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청소 시간에, 가요코가 칠판을 젖은 걸레로 닦고 있는데, 위쪽까지 손이 닿지 않았을 때, 빗자루를 지팡이처럼 짚고, 팔짱을 낀 손 위에 턱을 괴고 있던 히로키가 "꼬마로구나, 고토히키." 라고 했다. 그리고 불쑥 걸레를 가요코에게서 빼앗더니, 가요코의 손에 닿지 않은 곳을 닦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째서 나는 이 사람의 부드러운 면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도 자기를 사랑해 준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을 텐데, 히로키가 자기를 죽일 작정이었다면 갖고 있던 총으로 왜 바로 쏘지 않았던 걸까? 그렇지만 자기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여자인가, 나는. 

 

　또 다른 장면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반 친구들에게 "그 사람" 이야기를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히로키가 창 밖을 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들떠 있으면 바보처럼 보여.」 자기는 그 말에 화가 났었지만, 그 말 그대로 자기는 바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여자애에게 히로키는 말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아주, 좋아했어.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아직 따스한 히로키의 뺨의 체온을 자기 뺨으로 느끼면서 가요코는 계속 울었다. 히로키는 도망가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울 거야, 나를 사랑해 준 남자애의 성실함(아아,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과 나 자신의 어리석음(아아, 나는 정말 어린애였다. "그 사람"이 자기를 선택할 까닭이 없었다) 때문에 계속 울 거야. 가령 이러는 것이 이 게임 속에서는 자살행위라 하더라도. 

 

　죽을 작정이야?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래, 그래. 나는 죽을 거야. 히로키가 나를 좋아해 준 그 마음과, 그리고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함께 자살할 거야. 

　「그럼 하지 그래?」 

　누군가가 말했다. 

　흠칫 몸을 떨며, 가요코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길고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을 비에 적신 소마 미츠코(여자 11번)가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고, 그 손에는 총이 들려 있는 것을. 

 

　탕, 탕, 건조한 소리가 두 번 울리고, 가요코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두 개의 구멍이 났다. 가요코의 몸이 스기무라 히로키의 몸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자 가요코의 관자놀이 구멍에서 천천히 피가 흘러 나왔다. 씻어내려고 하는 비에 저항하듯이, 계속해서 흘러나와 얼굴에 퍼졌다. 미츠코는 하타가미 다다카츠에게서 빼앗은 스미스 앤드 웨슨 M19357 매그넘을 내리며 말했다. 

　「너 정말 바보로구나, 가요코. 어째서 그걸 눈치 채지 못한 거니?」 

　시선을 옮겨, 히로키의 얼굴을 보았다. 

　「히로키! 오래간만이야. 만족해? 좋아하는 애와 함께 죽어서?」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가요코가 떨어뜨린 스미스 앤드 웨슨 M59와 히로키가 내던진(이건 전에 미츠코가 갖고 있던 것이다) 콜드 가버먼트를 집으려고 움직였다. 겹쳐진 두 사람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입술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 

　「모닥불이라고 했던가?」 

　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M59 위에 반쯤 걸쳐 있던 가요코의 스커트를 발로 치우고, 그 파란 총에 손을 뻗다가 미츠코는 따르르르륵, 하는 낡은 타이프라이터 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등에 몇 군데 충격이 느껴졌다. 세일러복 가슴께가 크게 찢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발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끼며 바로 몸 안에 숯불을 넣은 것 같은 뜨거운 감각이 솟구쳤다. 그러나 머릿속을 메운 것은 그 통증에 의한 쇼크보다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ㅡ 하는 기분이었다. 땅바닥이 질척거리는데, 뒤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다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많은 총탄을 맞았지만, 그러나 미츠코는 뒤돌아보았다.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서 있었다. 

　목덜미의 머리털 난 부분이 기다란, 유난스러운 올백 머리, 단정한 얼굴, 다만 그 눈동자만은 아주 차가운 남자 아이─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가. 

 

　미츠코는 M19를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자기 근육이 완전히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남은 힘을 다 짜내, 총을 들어올렸다. 그 때─사느냐 죽느냐 하는 전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츠코의 의식은 갑자기 완전히 다른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자기 발밑에 쓰러져 있는 남자애─스기무라 히로키에게 이야기한 것…. 

 

　"나는 빼앗는 쪽에 서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자신은 그렇게 말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살아온 것일까? 히로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아홉 살 때 남자에게 강간 당하고 나서? 그 변두리의 너저분한 동네에 있던 낡은 아파트 방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든 남자들에게 강간 당한 날부터? 어처구니없게도 그 방에 자기를 데려간 자신의 주정뱅이 어머니(애당초 아버지는 없었다)가 미츠코가 "그 짓"을 당하기 전에 남자들로부터 두툼한 봉투를(그래봤자 그리 두껍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받아 들고 방을 나갔을 때부터? 그 때부터?

　아니면 그 일로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거의 감정이 없어졌을 때, 오직 한 사람 믿을 수 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결국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때, 그 선생님 눈빛이 바뀌고, 그 선생님마저 자기를 강간했을 때부터? 그 방과 후의 어둡고 좁은 자료실에서? 그렇지 않으면─제일 친했던 친구가 그걸(적어도 그 일부를) 보고는, 자기를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문을 내버렸을 때부터(덕분에 그 선생님은 어디론가 떠나갔지만)? 

 

　아니면 그 3개월 뒤, 다시 한 번 "그 곳"에 데려가려는 어머니에게 저항하다가 우연히 어머니를 죽인 날부터? 완전히 증거를 없애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보이게 잘 조작하고, 공원에서 혼자 그네를 타고 있던 때부터? 그렇지 않으면 그 때 보내진 먼 친척 집에서 끊임없이 그 집 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그 애가 낡은 건물 옥상에서 잘못하여 떨어졌을 때, 함께 있던 자기가 죽였다고, 그 애의 엄마가 퍼붓던 날부터? 그러나 어쨌든 그 애 아버지가 잘 해결해 주는거 같더니, 얼마 지나자 자기에게 계속 장난을 쳐온 그 때부터?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조금씩, 아니 잔뜩, 미츠코로부터 빼앗아갔다. 누구도 미츠코에게 주지 않았다. 그리고 미츠코는 빈 껍질이 되어 버렸다. 아니,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옳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 

 

　미츠코의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총이 들어올려졌다. 세일러복 소매, 손목이 바이올린 현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방아쇠를….

 

　기리야마 가즈오의 손에 들린 잉그램 M10이 따르르륵, 하고 다시 한 번 불을 뿜어, 미츠코의 가슴에서 얼굴 한가운데까지 세로로 네 개의 구멍이 났다. 윗입술이 반쯤 떨어져 나간 미츠코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상반신이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미츠코는 씨익 웃었다. 자세를 가다듬고 방아쇠를 당겼다. 계속해서. 

 

　탄창에 남아있던 네 발의 총알은 어긋나지 않고, 기리야마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러나 기리야마는 약간 흔들렸을 뿐,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미츠코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기리야마의 잉그램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미츠코는 아름다운 얼굴이 터져, 마치 딸기 파이를 얼굴에 뒤집어 쓴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번에는 미츠코의 등이 약간 떠올랐다가─다음 순간 축축한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떨어졌을 때는 끝이 나 있었다. 아니, 벌써 죽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는 몇 초 전에, 정신적으로는 훨씬 오래 전에. 

 

　기리야마 가즈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주 냉정하게 미츠코의 손에서 총을 빼냈다. 스기무라 히로키의 손앞에 떨어져 있던 콜드 가버먼트와 가요코가 내던진 M59도 집어 들었다. 비에 젖은 세 사람의 시체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남은 인원 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