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３부 - 종반전 #.3

 

 

　슈야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간, 몸의 여기저기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져, 다시 눕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가 깔끔한 시트를 걸친 폭신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키에가 또 슈야의 가슴을 살짝 건드리고, 포근한 모포를 슈야의 목까지 끌어올렸다. 

　「안 돼. 무리하지 마. 부상이 심하니까. 많이 좋아졌지만. 괜찮아?」 

 

　슈야는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여유가 없어, 그냥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좁은 방이었다. 자기가 누워 있는 침대의 바로 왼쪽에 싸구려 십자수가 걸린 벽이 있고, 오른쪽으로 유키에 등 뒤에는 또 하나의 침대가 있는데, 다른 가구는 거의 없었다. 모포 끄트머리, 발쪽으로 문이 있었지만, 그 문은 닫혀 있었다. 문의 나무 문틀이 상당히 낡았다. 머리 위쪽으로 창이 있는지, 흐릿한 빛이 들어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빛의 농도로 보아 밖은 날씨가 흐린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딘가? 

 

　「이상하네.」 

　슈야가 말했다. 어쨌든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반장하고 호텔에 체크인 한 기억이 없는데.」 

　슈야는 머릿속이 약간 흐리멍텅한 상태였지만, 유키에는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도톰한 입술을 치켜 올리며, 호호, 하고 웃었다. 

　「슈야답구나. 마음이 놓여.」 

　유키에는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덧붙였다. 

　「너 내내 잤어. 벌써…. 그렇구나.」 

　왼쪽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열세 시간 정도 됐네.」 

 

　열세 시간? 열세 시간. 열세 시간이라면, 나는 그 전에는─

　슈야는 눈을 크게 떴다. 기억과 현재가 맞물리면서, 이번에는 진짜 정신이 들었다. 먼저 물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노리코는? 나카가와 노리코는? 가와다 쇼고는?」 

　슈야는 거기까지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살아있는 건가? 

　유키에가 무척 이상하다는 듯이 슈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노리코도 가와다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해. 아까 12시 방송이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슈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노리코와 가와다는 도망친 것이다. 기리야마는 나를 쫓다가, 노리코와 가와다를 놓쳤구나. 기리야마는─ 슈야는 다시 유키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기리야마, 기리야마가 있어!」 

　말투에 초조감이 묻어났다. 

　「여기는 어디니? 반장, 혼자야?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해!」 

　유키에는 모포 밖으로 나온 슈야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다. 

　「진정해.」 

　그리고 물었다. 

　「네가 부상당한 것은 기리야마 때문이야?」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이야. 기리야마가 우리들을 공격해 왔어. 그 녀석은 우리를 모두 죽여버릴 작정이야.」 

　「그래─」 

　유키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괜찮아. 지금 여기엔 너 빼고도 여섯 명이 있어. 다른 애들이 망을 보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나하고 친한 애들이니까.」 

　슈야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여섯 명? 

　「누구?」 

　「나카가와 유카.」 

　유키에는 노리코와 성이 같은 활발한 여자애의 이름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애들의 이름을 말했다. 

　「노다 사토미하고 마츠이 치사토, 다니자와 하루카. 그리고 사카키 유코.」 

　슈야는 입술을 살짝 핥았다. 유키에가 슈야의 그런 표정을 보고 말했다. 

 

　「왜? 믿을 수 없어? 누구? 모두 다?」 

　「─아니.」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반장 친구들이라면 나는 믿어.」 

　그렇지만 여자애들 여섯 명, 그것도 사이좋은 친구들만 모여 있다니, 어떻게 모을 수가 있었을까? 유키에는 기쁜 듯이 웃으며 슈야의 손을 잡았다. 

　「기뻐.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그러자 슈야도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바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어봐야 할 것이 또 있었다. 자기는 0시, 6시, 그리고 또 0시, 세 번의 방송을 듣지 못했다. 입을 열었다. 

 

　「죽은 애들은? 내가 그러니까 오늘 0시와 6시, 정오? 세 번 방송이 있었지? 누가 또 죽었니?」 

　유키에는 입을 꾹 다물더니, 옆에서 작은 사이드 보드에 놓아 두었던 종이 쪽지를 손에 들었다. 지도와 명부였다. 접은 부분에 진흙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슈야 자신이 교복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유키에가 그 쪽지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시미즈 히로노, 그리고 이이지마 게이타, 오다 도시노리, 세토 유타카, 다키구치 유이치로, 하타가미 다다카츠, 그리고 미무라 신지!」 

　슈야는 입이 쩍 벌어졌다. 물론 게임은 진행되고 있고, 남은 인원은 이제 열 명 남짓한 상태라는 것도 그렇고, 리틀 리그에서 함께 뛰었던 하타가미 다다카츠의 죽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무라 신지가….」 

　그 "더 서드 맨" 미무라 신지가 죽은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신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유키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슈야는 이상하게 자기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다만, 신지의 그 씨익 웃는 표정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분교에서 자기에게 진정하라고 사인을 보내주던 그 진지한 표정도. 

　시로이와 중학교의 천재 가드, "제３의 사나이"의 그 플레이를 이제 볼 수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자, 슈야는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 왔다. 

 

　「신지는 몇 시에 이름이 나왔어?」 

　유키에가 「아침에.」 라고 대답했다. 

　「이이지마와 유타카도 아침이었어. 어쩌면 함께 있었는지도 모르지. 사이가 좋았으니까.」 

　「그래─」 

　적어도 자정에는 신지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키에의 말대로 신지는 유타카와 이이지마 게이타와 함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중에」 하고 유키에가 말을 덧붙였다. 

　「엄청난 폭발 소리가 났어. 그리고 총소리도 났고. 그 때 죽었는지도 모르지.」 

　「폭발 소리?」 

　슈야는 기리야마 가즈오가 자기들을 공격했던 수류탄을 떠올렸다. 

　「그건─ 기리야마가 수류탄을 사용한 거야. 맞지?」 

 

　유키에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그런가? 11시가 지났을 때 난 소리가 있었지. 그렇지만 그렇지는 않아. 너를 여기 데려온 뒤에 일어난 거니까. 자정이 지났을 때쯤. 11시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리였어. 망을 보고 있었는데, 섬 한가운데 쪽 하늘이 환해졌었어.」 

　슈야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여기가 어딘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걸 물어보려 하는데, 그 전에 유키에가 명단과 지도를 내밀었다. 

　「네 거야. 지도도 체크해 두었어.」 

　슈야는 금지 구역 문제도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받아 들었다. 지도를 펼쳤다. 

 

　"록 이야기를 한 장소야, 슈야." 

 

　그 장소─섬의 서쪽 해안, 바닷가 가까운 C=3 구역은 다른 몇 개의 구역과 마찬가지로 연필로 비스듬하게 그은 선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느다란 숫자, "23일, AM 11시." 물론 오늘 아침, 11시, 슈야가 자고 있는 사이에 그 지역은 이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슈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노리코와 가와다는 그곳에는 없다. 물론 사고 능력이 정상으로 돌아온, 정오 이후 지금까지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죽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꿈 속에서 요시토키와 신지의 시체와 함께 가와다와 노리코의 시체도 본 것이 떠올라, 슈야는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그렇지만 어쨌든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합류해야 할까? 

　슈야는 지도를 자기 가슴 위에 놓았다. 지금 상황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선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혼자가 아니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유키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저어, 반장. 여기는 대체 어디지? 나는 어째서 여기 누워 있는 거지?」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문을 올려다보고, 대답했다. 

　「여긴 등대가 딸린 건물이야.」 

　「등대?」 

　「그래. 섬의 북동쪽 끝이야. 지도에 표시가 있잖아? 우리는 이 게임이 시작된 뒤로 내내 여기 있었어.」 

　슈야는 다시 한 번 지도를 보았다. 등대는 유키에의 말대로 섬의 북동쪽, 약간 튀어나온 C=10 구역에 있었다. 주변에 금지 구역은 아직 없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이었어. 이 등대 앞은 절벽인데, 네가 거기서 떨어진 거야. 망을 보고 있던 애가 발견해서─ 그래서 데리고 들어왔어. 부상이 심했어. 피투성이에, 곧 죽을 것만 같았지.」 

　그러자 슈야는 자신의 발가벗은 상반신의 왼쪽 어깻죽지의 엄청나게 아픈 부분에 붕대가 감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느낌으로는 총알이 어깨뼈로 뚫고 들어가 그 안에 아직 그대로 들어있는 것 같다). 

　목의 오른쪽─그 목걸이 바로 아래로 마치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거기에도 붕대가 감겨져 있는 것 같았다(여기는 아마 총알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 위(여기는 부상이 심한 것 같았다. 아마 총알이 관통했는데 뼈나 근육이 망가졌는지, 거의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왼쪽 옆구리(이것은 옆구리 바같 부분을 총탄이 관통한 것 같다. 그러나 내장에는 문제가 없는 듯하다. 아마도) 슈야는 다치지 않은 오른 쪽 팔을 어색하게 움직여 모포를 약간 들어올려, 자기가 붕대 투성이가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모포를 다시 덮고 물었다. 

 

　「치료를 해 주었구나.」 

　「그래.」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응급처치용 장비는 여기 갖추어져 있었으니까. 상처를 약간 꿰맸어. 아마추어가 했으니 엉망이지. 실과 바늘도 재봉질할 때 쓰는 거였고. 어깨 상처엔 아마 총알이 남아있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어. 거의 수혈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였으니까. 출혈이 너무 심했어.」 

　「폐를 끼쳤네.」 

　「괜찮아.」 

　유키에는 방긋 웃었다. 

　「남자애 몸을 만지다니. 나 감동했어. 네 옷을 벗겼거든.」 

　그러자 슈야는 빙긋 웃었다. 머리 회전도 빠르고, 섬세한 마음 씀씀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호탕한 이야기 또한 반장인 유키에다운 모습이었다. 

　그랬다. 언젠가 비 오는 날, 초등학교 체육관, 리틀리그의 실내 연습 때문에 여자 배구 클럽과 공간 사용 문제를 의논하던 때부터 유키에는 그런 여자애였다. 그리고 자신은 요시토키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2반 유키에가 꽤 좋아. 나는 그렇게 화끈한 여자애가 좋아." 라고. 물론 사소한 감상에 빠져 있을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아, 참. 이거.」 하며 유키에가 물이 들어있는 컵을 내밀자, 슈야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목이 무척 말랐기 때문이다. 그 컵은 슈야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사이드 보드 위에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했다. 역시 반장이야. 너는 진짜 좋은 아내가 될 거야. 아니─ 멋진 여자가 될 거야. 아니, 이미 멋진 여자인지도 몰라. 실제로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어, 나는. 컵을 받고 머리를 들어올려, 마셨다. 물이 목을 넘어갈 때, 부상당한 곳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컵의 물을 다 비웠다. 

 

　「뱃속 편한 이야기 같아 미안하지만.」 

　컵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더 마시고 싶은데, 많이. 그리고 진통제 같은 게 있으면 좀 줄래? 뭐든 괜찮아. 그걸 먹으면 좀 편해질 거야.」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준비할게.」 

　슈야는 입술을 닦으면서 또 물었다. 

　「그러데 용케도 받아들여 주었네. 나를 여기 들여 놓는 문제. 적일지도 모르는데.」 

　유키에가 고개를 저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슈야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니까. 내가 일단 리더십을 장악한 덕분에 애들을 설득했어.」 

 

　그렇다면─ 반장도 또 초등학교 때 체육관 이후의 사이를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슈야는 또 한가지 추측을 물었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애도 있었다는 말이구나.」 

　「그건 그래. 상황이 상황이니까.」 

　유키에는 시선을 떨구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 다들 머릿속이 복잡해.」 

　「응.」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이해가 가지.」 

　「그렇지만 내가 납득시켰어.」 

　유키에가 고개를 들며 다시 웃었다. 

　「고맙게 생각해.」 

　슈야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는데, 그러나 금방 웃은 유키에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슈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키에가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했어. 네가 죽는 줄 알았어.」 

　슈야는 약간 놀라, 유키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키에가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죽으면 어떡하나 생각했어.」 

　목소리는 거의 우는 소리였다. 

　「─무슨 뜻인지 알아? 내가 왜 애써 너를 구했는지 알아?」 

　슈야는 눈물에 젖은 유키에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지? 내가 이렇게 인기가 있었나? 

　물론 이건 일종의 농성 심리일지도 모른다. 자기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상황에서(아니, 룰대로라면 틀림없이 죽는 것이다. 신의 은총이 내린 "프로그램"에서 우승자 이외의 누군가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살아남은 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에 초등학교 체육관 한쪽 구석에서 대화를 나눈 이후 "약간" 좋아했던 남자애는 "죽을 정도"로 좋은 남자애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역시 그렇지 않을까? 진짜로 자기를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면 동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구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슈야를 믿는 것 자체가 그랬을 것이다. 

 

　「알아. 고마워.」 

　「이야기해 줘. 아까 노리코와 가와다에 대해 물었잖아? 함께 있었니, 혹시?」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에가 눈썹을 찡그렸다. 

　「노리코는 몰라도, 진짜 그 가와다와 함께 있었던 거야?」 

　슈야는 유키에가 왜 그렇게 묻는지 알아챘다. 

　「가와다는 나쁜 애가 아니야. 그 애가 나를 구해 주었어. 나하고 노리코는 그 녀석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야. 지금도 가와다가 노리코를 지켜주고 있을 거야, 분명히. ─아니, 그뿐만이 아니지.」 

　슈야가 더 힘주어 말을 이었다. 

　「깜빡했네. 가와다는 우리를 살려 낼 거야, 반장.」 

　「살려 낸다고?」 

　슈야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와다가 구해 줄 거야. 그 녀석이 탈출 방법을 알고 있어.」 

　유키에가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진짜로? 어떻게?」 

　거기서 슈야는 말이 막혔다. 가와다가 그것은 마지막까지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슈야는 가와다를 믿고 있지만, 가와다와 함께 있지 않았던 유키에는 그것을 설명해 봐야 믿어줄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가와다 자신이 슈야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한 것처럼, 가와다가 슈야와 노리코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야는 어쨌든 처음부터 설명하기로 했다. 

　설명했다. 출발점에서 아카마츠 요시오에게 공격당한 일, 그 뒤 노리코와 내내 함께 있었다는 것, 오오키 다츠미치와 싸우게 되었고, 그 뒤 모토부치 쿄이치에게 총을 맞게 되어 있었는데 가와다가 구해준 것, 그리고 내내 셋이서 함께 있었다는 것, 탈출 이야기, 가와다가 작년 프로그램의 생존자라고 하는 사실, 노리코가 열이 나서 보건소까지 이동한 일, 그리고 스기무라 히로키를 만난 일. 그리고 이동 중에 기리야마의 습격을 받았던 일. 

 

　「오오키는….」 

　대충 듣고 나서 왠지 유키에는 제일 먼저 오오키 다츠미치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사고였구나.」 

　「그래.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대답하면서, 슈야는 눈썹을 찡그리며 유키에를 보았다. 

　「그런데 왜?」 

　유키에는 「아니야.」 라고 고개를 젓더니 바로 화제를 바꾸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기 미안하지만, 갑작스럽게 가와다를 믿기는 어려워. 탈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슈야는 왜 유키에가 오오키 다츠미치 이야기를 물었는지 이상했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지금 유키에가 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 나는 가와다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녀석은 나쁜 녀석이 아니야.」 

　안타깝다는 듯이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을 내저었다. 

　「함께 있어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유키에는 오른손의 손가락을 입에 살짝 대고 말했다. 

　「알았어. 이야기를 들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슈야는 잠시 유키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유키에는 어깨를 으쓱했다. 

 

　「거의 절망하고 있었지. 다들 이야기했지만, 운을 하늘에 맡기고 도망치는 게 좋을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는 게 나을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야.」 

　그러자 슈야는 한 가지 묻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 모인 거지? 여섯 명이?」 

　「아아.」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일단 그 출발 지점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애들을 불러 모았지.」 

　슈야는 놀랐다. 

　「언제?」 

　「거의 너하고 노리코가 도망간 다음일 거야. 아니, 니이다 가즈시가 도망가는 걸 봤어. 나는 사실 너를 만나고 싶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죽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분교 출구에.」 

　슈야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카마츠 요시오는 기절해 있었던 거지?」 

　유키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 같았어, 그 때는. 목에 화살이 꽂혀 있었으니까.」 

　「그럼 니이다가─」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 되는 거지.」 

　「무섭지 않았어? 아카마츠 같은 녀석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니?」 

　「그야, 그런 생각은 했지만─ 그렇지만 어쨌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 어떻게든 그룹을 만들어야 했지. 그 정면 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들킬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들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슈야는 진짜,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기는 물론 부상당한 노리코를 데리고 있었다고는 해도, 다른 애들은 생각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그 스기무라 히로키도, 치구사 다카코를 기다렸다고 했지만, 히로키는 남자였고, 그리고 권법도 익힌 상태다. 

　「대단하구나. 역시 반장이야.」 

　유키에가 웃었다. 

　「노리코는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반장이라고 불러?」 

　슈야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응. 저어─」 

　「됐어. 무리하지 마.」 

　유키에가 또 방긋 웃었다.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카가와 유카가 나와서 불렀어, 유카를.」 

　「금방 받아들였니, 유카는? 아, 물론 반장은 신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 그건 말이야.」 

　유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돌아갔던 게 아니야. 나는 처음에는 머릿속이 어지러웠어. 그렇지만 아무래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분교로 돌아가는 도중에 정말 우연히 다니자와 하루카를 만난 거야. 나하고 하루카는 사이가 제일 좋잖아?」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자와 하루카는 분명히 유키에와 함께 배구부원이다. 

　「그래서 하루카와 이야기하고, 내가 돌아가자고 했더니, 하루카는 싫다고 했었지. 그렇지만 무기도─내 데이 팩 안에 권총이─있었어. 그래서 둘이서 부르니까 유카도 믿어 준 걸 거야.」 

 

　슈야는 잠깐 생각한 뒤에, 그 "법칙"을 꺼냈다. 

　「그렇지만─그러나 둘이 있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이 게임에서는.」 

　유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어.」 

　「무슨 이야기지?」 

　「어쨌든 남자애들은 제외하고─미안해, 의논했는데 남자애들은 좀 곤란하다는 결론이 났어. 어쨌든 남자애를 제외하고, 다음에는 노다 사토미였어. 그리고 후미요는─」 

　유키에가 말을 멈추었다. 후지요시 후미요(여자 18번)는 출발 전에 죽었던 것이다. 

　「건너뛰고, 마츠이 치사토잖아. 그렇게 해서 다섯 명을 확보했지. 그리고 미나미 가오리도 소리쳐 불렀는데─」 

　슈야는 말을 가로챘다. 

　「도망쳤어?」 

　「응, 도망갔어.」 

　슈야는 미나미 가오리가 자기 눈 앞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유키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가오리를 죽인 시미즈 히로노도 이미 죽었으니 별 의미가 없다. 이제는…. 그리고 슈야에겐 좋은 기억도 아니다. 또 이렇게 표현하기는 미안하지만, 죽은 사람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야하기 요시미나 미나미 가오리도 마찬가지였어?」 

　슈야는 그렇게 해서 여자 출석번호의 맨 마지막인 야하기 요시미의 이름과 미나미 가오리의 이름을 함께 입에 올리다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죽은 사람의 이름. 두 사람 다. 두 사람 다 죽었다. 지저스.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오랜만에 슈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어, 슈야 군! 자네 아직도 살아있었나? 끈질기군. 

　「아아!」 

　유키에는 눈길을 돌리며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아니야.」 

　「뭐가?」 

　유키에는 숨을 내쉬었다. 

　「나는 소리쳐 부르려고 했어. 그런데 몇 사람이 반대했어. 야하기는 소마 미츠코 그룹이잖아. 그래서 믿을 수 없다면서.」 

　슈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키에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로 말했다. 

　「그 애는 이미 죽었어. 죽는 걸 보고만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들이.」 

　슈야는 「그렇지 않아.」 라고 말했다. 유키에가 다시 슈야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는 거야.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거의 논리적이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했다. 유키에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숨을 내쉬었다. 

　「넌 정말 착하구나, 슈야.」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슈야가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입을 열었다. 

　「미무라 신지를 끌어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 출석번호의 맨 뒤쪽이라면 적어도 미무라 신지를(이미 죽었지만) 유키에 일행이 소리쳐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애라면 믿음직했을 텐데.」 

　유키에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자애들에게 별로 인상이 좋지않아서…. 부르지 않았어. 신지는 플레이 보이 같은 면이 있었잖아. 그리고 너무 수완이 좋아서 두렵다고나 할까? 아, 누군가가 그랬어. 노리코가 부상당했을 때 신지가 한 행동도 다 계산된 게 아니었겠느냐고.」 

　그건 신지를 잘 모르는 가와다가 슈야에게 한 설명과 완전히 똑같았다.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신지의 모습은 사라졌지.」 

　유키에는 어깨를 한 번 흔들었다. 

　「어쨌든 남자는 빼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이 나서 야마모토 가즈히코도 불러 세우지 않았어.」 

 

　그렇다. 오히려 오가와 사쿠라와 사귀며, 미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스하고 꾸밈이 없는 야마모토 가즈히코야말로 여자에게는 인기가 좋았을 것이다. 유키에 일행은 그러나 그를 불러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원칙대로 한다면, 슈야를 여기 들여 오는 데에는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슈야는 지금 유키에의 이야기대로라면 다섯 명으로 그룹 편성이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카키 유코(여자 9번)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었다. 

　「사카키는? 사카키 이름은 나오지 않았네.」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슈야를 바라보았다. 

　「유코도 우연히 만났어. 우리들은 어제 아침에 이미 여기 들어와 있었는데, 요새로는 괜찮은 곳이야, 그렇지? 어젯밤에, 그러니까 여덟 시 쯤이었나? 마침 유코가 여기를 지나가고 있었어.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지.」 

　유키에는 거기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슈야는 그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보다 먼저 유키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유코를 다들 좋게 생각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 

　그리고 유키에는 입을 다물었다. 슈야는 사카키 유코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젯밤까지 혼자서 있었다면, 유코는 뭔가 무서운 일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고 도망치던 중이었거나, 어쩌면 누군가가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투에서 죽은 참혹한 시체라도 보았거나. 

　슈야는 몇 번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았어.」 

　「질문이 하나 더 있어.」 

　유키에가 말했다. 

　슈야가 고개를 들자, 유키에는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라고 하며 말을 이었다. 

 

　「히로키는 가요코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너희 일행하고도 합류하지 않았다면서?」 

　히로키 이야기는 아까 유키에에게는 잠깐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히로키는 살아있다. 그리고 고토히키 가요코도 살아있다. 고토히키 가요코를 만났을까? 

　「볼 일이라고 했지? 무슨 볼 일이었을까?」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묻지 않았어. 그 녀석이 워낙 서둘러서, 우리도 그건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야기하면서 슈야는 뭔가 머리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기무라 히로키는 이미 고토히키 가요코를 만났을까? 만났다고 하면─

　가와다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이것의 소리가 티켓이야. 마음이 내키면 우리 열차를 타." 

 

　슈야는 눈을 크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버드콜이야.」 

　「뭐?」 

　슈야는 유키에를 쳐다보았다. 

　「노리코와 가와다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래?」 

　슈야는 턱을 번쩍 들고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간신히 움직였다. 설명은 나중에 해도 된다. 

　「어쨌든 가와다와 노리코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어. 나는 가야만 해.」 

　「기다려.」 

　유키에가 말했다. 

　「좀 쉬는 게 좋아.」 

　「그럴 순 없어. 내가 꾸물거리고 있는 사이에 혹시─」 

　「기다리라니까. 네게 반한 여자애 말에도 귀를 좀 귀울여.」 

　유키에가 약간 뺨을 붉히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는 일단 정신이 든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을 거라고 해서 여기 데려다 놓은 거야. 너를 무서워하는 애가 있어. 네가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슈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그렇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유키에가 혼자서 여기 있는 것을 다른 여자애들이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유키에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여기 좀 있어. 내가 다른 애들에게 지금 네가 한 이야기를 해 주고 올게. 너는 믿을 수 있다고 다시 설득하고 올게. 그리고 가와다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노리코와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너 혼자는 갈 수 없어. 위험해서. 그것도 의논을 할게. 그러니까 기다려.」 

　그리고 덧붙였다. 

　「밥 좀 먹을 수 있겠어?」 

　「그래.」 

　배가 무척 고팠다. 노리코와 가와다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일단 뭐든 먹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총에 맞은 상처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 

　「좀 나눠주면 고맙겠네. 체력이 바닥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역시.」 

　유키에가 웃었다. 

 

　「지금 마침 점심 준비를 하는 중이야. 가져올게. 스튜인지 뭔지를 만든다고 하던데, 괜찮아?」 

　「스튜?」 슈야가 되물었다. 

　「그래. 아, 여기 식료품이 많았어. 저장용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식품 뿐이지만. 그래도 물과 고체연료가 있어서 요리를 할 수가 있어.」 

　슈야는 「대단하구나.」 라고 말했다. 

　「고마워.」 

　유키에가 침대 끄트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뗐다.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미안하지만 자물쇠를 채워 놓을게.」 라고 말했다. 

　「뭐?」 

　「미안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하지 않는 애가 있어서. 미안하지만 좀 기다려.」 

　유키에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방긋 웃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두 갈래로 땋아 늘인 머리카락이 왠지 슈야가 모르는 이상한 동물의 꼬리처럼 흔들렸고, 세일러복 아래, 스커트의 등 쪽에 권총이 꽂혀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닫힌 문 밖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자물쇠─빗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일부러 슈야 때문에 만든 것일까? 

 

　슈야는 무리해서 오른쪽 팔꿈치를 짚고 상반신을 일으켜, 머리 위의 창문을 보았다. 창에는 각목을 몇 개 못으로 박아 두었고, 그 틈새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일단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의미일 테지만 지금 슈야에게 이 방은 말하자면 잘 어울리는 감옥인 셈이었다. 슈야의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왼손 손가락 끝이 모포 밑에서 무의식적으로 코드 진행을 짚고 있었다. 물론 슈야에게 기타를 준 그 아저씨의 우상인 가수가 부른 히트 곡, 댄스 투 더 재일 하우스 록, 록, 록. 

　슈야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정도 움직였는데도 옆구리의 상처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은 인원 14명】

 

 

　오키 섬 등대는 낡았지만 튼튼하게 지어진 등대였다. 북쪽으로 높이 17미터의 등대 탑을 세우고, 그것을 남쪽에서 감싸듯이, 벽돌로 만든 단층으로 된 주거 건물이 딸려 있었다. 등대 탑 바로 남쪽에 부엌 겸 거실, 그 남쪽에 창고와 욕조, 그리고 그 남쪽, 정면 현관 가까운 곳에 큰 침실과 작은 침실이 하나씩 있었으며, 서쪽으로 난 복도가 그것들을 연결하고 있었다(슈야는 현관에 가까운 쪽의 작은 침실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학교 교실 크기는 충분히 될 넓이의 부엌 겸 거실 안, 그 한쪽 구석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테이블이 있고, 사카키 유코(여자 9번)는 그 둘레에 놓여 있는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잠자듯이 테이블의 흰색 바닥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른 다섯 명보다 오랫동안 헤맷기 때문인지, 피로감은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풀리지 않았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그녀는 까닭이 있어,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우츠미 유키에 일행은 이 방을 침실을 겸한 거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탑 위에 보초를 세울 필요는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은 다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유키에가 판단한 것이다. 유코 바로 뒤에는 다니자와 하루카(여자 12번)와 마츠이 치사토(여자 19번)가 끓어진 가스 대신 타오르는 고체 연료 위에 올려놓은 화로 앞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배구부의 공격수로, 센터인 유키에와 명콤비를 이루고 있는 하루카는 키가 172센티미터 정도로, 머리는 쇼트 커트였다. 작은 덩치의 머리가 긴 치사토와 나란히 서 있으니 마치 남녀 커플처럼 보인다. 메뉴는 통조림 야채를 몇 개를 넣은 레토르트 스튜였다. 그 너머로 흐린 하늘에서 흐릿한 햇빛이 들어오는 간유리가 끼어 있는 창문에는 창고에 있던 목재가 아무렇게나 박혀 있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유키에 일행은 여기 들어오자마자, 이 시설의 출입구를 모두 안쪽에서 봉쇄한 것이다(유일한 출입구는 현관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리로 유코를 데리고 들어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관에도 책상과 사물함 같은 것들로 바리게이트를 쌓아 두고 있었다). 

 

　한편 유코가 앉은 자리에서 똑바로 건네다 보이는 방의 반대쪽 구석에는 팩스용 전화기와 PC 등이 있는 책상이 있다. 그 왼쪽, 원래 있던 응접세트 가운데 테이블은 현관의 바리게이트에 동원되고, 벽 쪽으로 붙여 치워 놓은 소파에 노다 사토미(여자 17번)가 앉아 있었다. 사토미는 유키에와 함께 우등생으로, 늘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지금은 역시 꽤 피곤해서인지 보스턴 타입 안경을 치켜 올리고, 졸린 듯이 눈을 부비고 있었다. 그 소파 왼쪽, 부엌 끄트머리에 있는 문은 현관으로 이어지는 복도 쪽으로 나 있었다. 또 한편 유코 쪽에서 보면 오른쪽 방 안쪽 문은 등대탑 바로 아래쪽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어, 등대 꼭대기로 올라가는 사다리의 맨 아래쪽 발판 몇 개가 엿보였다. 지금 그 등대 위에는 나카가와 유카(여자 16번)가 올라가, 바같 상태를 망보고 있을 것이다. 유코 자신은 아직 보초를 서지 않았지만, 등대 시설의 뒤쪽은 바로 바다, 앞쪽은 부두 쪽에서 이어지는 좁은 도로가 한 가닥 들어와 있을 뿐, 나머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망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우츠미 유키에가 말했다. 그 유키에는 지금 나나하라 슈야를 넣어 놓은 현관 바로 옆방에 있다. 

 

　나나하라 슈야. 

　유코의 마음 속에서 또 다시 공포감이 고개를 들었다. 동사에 이제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장면이 유코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쩍 갈라진 머리. 거기서 꽂혀 있던 피에 젖은 손도끼. 그리고 그 손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그것은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나나하라 슈야는 지금, 이 등대의 한 지붕 아래 있는 것이다. 

 

　아니, 괜찮아, 괜찮아─

　유코는 자칫하면 자신을 완전히 흔들어 버릴 듯 후들거리는 것을 어떻게든 참으려고 테이블 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그는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다시 깨어날 수는 없을 것 같은 부상, 그리고 엄청난 출혈량이 있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유코는 고개를 들었다. 다니자와 하루카가 옆 의자에 걸터앉으면서, 유코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눈 좀 붙였니?」 

 

　요리를 하다가 잠시 쉬는 듯하다. 유코는 고개를 들었다. 마츠이 치사토는 요리법을 확인하고 있는지, 식료품 패키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치사토가 지금은 저러고 있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방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오전 6시 방송에 미무라 신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다니자와 하루카가 속삭였다. 치사토가 미무라 신지를 좋아한 것을 유코는 처음 알았다. 지금도 치사토의 눈은 여전히 빨갛다). 유코가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응, 잠깐.」하고 대답했다. 괜찮았다. 잘 아는 여자애들 여섯 명이 있는 한 괜찮다. 여기서는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기한이 있는 편안함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만─

　「저어, 어제 네가 한 이야기 말이야.」 

　하루카가 말을 꺼냈다. 

　「그래.」 

　유코가 웃었다. 

　「그 이야기라면 이제 됐어.」 

　그렇다. 이제 괜찮다. 사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나나하라 슈야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괜찮다. 이젠. 하루카가 약간 착찹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괜찮지만.」 

 

　유코는 어제 정신을 잃은 나나하라 슈야가 이 등대 앞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를 안으로 들이는 것을 아주 거세게 반대를 했었다. 자기가 본 것을 설명하면서(설명이라기보다는 울부짖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오오키 다츠미치의 쩍 벌어진 머리에서, 나나하라 슈야가 손도끼를 뽑는 장면을. 나나하라 슈야는 위험하다고 하는 것을. 살려두면 모두 다 죽일 거라고 하는 것을. 그리고 유코와 우츠미 유키에는 자칫하면 크게 다툴 뻔했지만, 결국 하루카와 다른 애들이 어쨌든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놔 둘 수는 없다 해서, 나나하라 슈야를 들여놓게 되었다. 유코는 다른 아이들이 들어 나르는 피투성이가 된 슈야를 약간 떨어진 곳에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에 꿈에서 정체 모를 괴물을, 집 안에 들여놓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유코도 자신을 스스로 설득했다. 그래, 나나하라 슈야는 진짜로 죽어가고 있어, 부상이 저렇게 심한 걸. 정신을 차릴 리가 없어, 라고. 물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마저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유코는 겨우 참았다. 다만 조건으로, 슈야의 방에 자물쇠를 채운다는 것만은 양보하지 않았지만. 

 

　하루카가 말을 이었다. 어제 몇 번이나 반복한 질문이었다. 

　「슈야가 오오키를 죽이는 걸 봤다고 했는데, 정당방위였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니?」 

　그렇다. 몸을 숨기고 있던 수풀에서 겨우 몇 미터 앞, 퍽 하는 둔탁한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내민 유코가 본 것은 나나하라 슈야가 오오키 다츠미치의 머리에서 손도끼를 뽑아내던 그 장면이었다. 자신은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결국 하루카의 말대로(그것은 유코 자신이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인 듯하다) 유코가 본 것은 마지막 장면뿐이었다. 정당방위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카나 유키에에게 몇 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어도, 유코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 자기는 보았다. 그 쩍 벌어진 머리를. 손도끼를 손에 든 나나하라 슈야의 모습을. 그 손도끼를 적신 피. 뚝뚝 떨어지던 피.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새겨져, 적어도 나나하라 슈야 문제라면 유코는 이미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홍수라거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코가 슈야에 대해 무슨 생각만 하려고 하기만 하면 그 장면이, 그 공포감이 생각을 틀어막아 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남는 것은 슈야는 위험하다고 하는, 일종의 본능에 가까운 원칙 같은 것일 뿐이었다. 

 

　그러는 데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코는 폭력이 싫었다. 견딜 수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에 B반 교실에서도 유코는 친구들이 스플래터 영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그 친구는 나카가와 유카였던가? 물론 웃고 있었지만, 아니─대단한 거 없었어. 내장이라거나 하는 게 좀 더 튀어나와야 멋지지 않았을까, 하하하), 기분이 좋지 않아 양호실까지 간 적까지 있다. 

　그것은 아마 아버지의 관한 기억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새아버지도 아닌, 친아버지였는데도 유코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자주 폭력을 휘둘렀다. 유코의 어머니에게, 유코의 오빠와 유코에게도. 그때는 자신이 너무 어려서 유코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애당초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다만, 그 아버지가 도박과 관계된 무슨 문제 때문에 폭력배들에게 찔려 죽었을 때 유코는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랬다. 슬프기보다 오히려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유코의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수도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진 가정에는 진짜 편안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따금 꿈을 꾸는 일이 있다. 골프 클럽(가난했는데도 그것만은 아주 고급이었다)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 재털이에 낮아 자칫하면 실명할 뻔했던 오빠의 모습. 그리고 담뱃불을 지져지며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던 겁먹은 자신의 모습(그걸 말리던 어머니는 또 얻어맞았다). 

　그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코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나하라 슈야는 위험하다고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다짐을 하듯이 하루카가 말하는 것이 들려왔지만, 그것은 유코의 인식 영역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몸 속에 오한과 함께 영상이 엄습했다. 자기도 포함하여, 지금 여기 여섯 명이 쓰러져 있는, 다들 머리가 쩍 갈라진, 그리고 나나하라 슈야가 손도끼를 손에 들고 씨익 웃고 있는…. 아니, 아니. 이제는 괜찮아. 나나하라 슈야는 이제 깨어날 수 없을 거야. 

　「으응.」 

　고개를 들고, 유코가 끄덕였다. 하루카가 하고 있는 말은 실제로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나하라 슈야가 다시 깨어날 수 없다면 팀의 분위기를 일부러 해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뭔가 하루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찾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 그래. 내가 좀 이상했었나 봐, 너무 피곤해서.」 

　그러자 하루카는 약간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슈야는 괜찮은 애야. 나는 그만큼 괜찮은 남자애 별로 없다고 생각해.」 

　유코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미라를 보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루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 유코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나하라 슈야는 약간 이상한 구석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호감이 가는 남자애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꽤 멋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 유코의 머릿속에는 자기가 전에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 같은 건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그 기억은 쩍 벌어진 머리 장면 너머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뭐? 뭐라고 하는 거니, 하루카? 괜찮은 남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루카는 그런 유코의 눈을 들여다보고, 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슈야가 정신이 들더라도 싸우지 마.」 

　유코는 소름이 끼쳤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러나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사고 회로를 이용하여, 유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아.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래. 안심했어.」 

　하루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앉은 채로 치사토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냄새가 좋은걸.」 

　화로 위의 하얀 냄비에서 하얀 김과 함께 스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치사토가 고개를 돌리며, 평소처럼 얀전한, 약간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어제 만든 수프보다는 나을지도 몰라.」 

　미무라 신지 때문에 꽤 오래 울고 있던 치사토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유코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 그때, 복도 쪽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우츠미 유키에가 들어왔다. 유키에답게 등을 곱게 펴고, 힘찬 걸음걸이였다. 유코가 여기 들어오고 나서도 유키에는 다른 애들을 잘 통솔하고 있었지만,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나하라 슈야가 여기 들어오고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은 슈야를 만난 기쁨과, 그러나 그 슈야가 거의 죽을 정도로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유코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힘찬 유키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이 환해져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그런 모습을 보고, 보는 사람도 힘이 날 것이다. 유코는 지네가 등줄기를 기어가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유키에는 걸음을 딱 멈추고, 허리에 두 손을 대고 다른 애들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약간 장난스럽게 입에 두 손을 대고 메가폰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슈야가 깨어났어.」 

 

　하루카와 치사토가 와와, 하고 소리를 지르고, 사토미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옆에 있던 유코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말? 이야기는 할 수 있어?」 

　하루카가 물었다. 

　「응. 밥도 먹고 싶대.」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코 쪽을 보고 이야기했다. 

　「괜찮아. 방 자물쇠를 채워 두었어. 네가 걱정하면 안 되니까.」 

　빈정거리는 말투는 아니었다. 리더로서 필요한 일을 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런 건 상관 없이, 유코는 순간 생각을 했다. 아니, 밤중에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이다. 나나하라 슈야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한편, 혹시 정신이 들면, 하는 것을, 그 대처 방법을. 유코는 코에 스며드는 냄새를 확인했다. 마침 다행이야. 식사 때야, 지금은. 그리고 죽어가던 애가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겠지? 유코는 웃어 보이며(그야말로 꾸민 웃음이었다. 가능한 한 완벽하게)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 말을 이었다. 

　「미안해. 어제는 내가 좀 이상했어. 더 이상 슈야를 의심하지 않아.」 

　그 말을 듣고, 유키에가 안심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렇다면 자물쇠를 채울 것까진 없었잖아.」 

　유코에게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오오키 일은 역시 사고였대. 그렇게 이야기했어, 슈야가….」 

　오오키 다츠미치의 이름이 나오자, 유코의 뇌리에 그 장면이 되살아나, 등줄기가 얼어붙었지만, 유코는 웃는 표정을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그야, 오오키 다츠미치에게는 그야말로 지독한 사고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키에는 하루카에게 말했다. 

 

　「저어, 하루카. 유카를 불러와 줄래? 식사를 하면서 의논할 일이 있어.」 

　하루카가 물었다. 

　「망을 보지 않아도 괜찮겠어?」 

　「응.」 

　유키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은 봉쇄되어 있으니까 괜찮아. 잠깐이면 되니까.」 

　하루카가 고개를 끄덕이고, 등대 탑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는 방 쪽으로 갔다. 탕탕탕탕, 하고 쇠사다리를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토미와 치사토가, 「어떤 상태야?」 「음식은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거면 될까?」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키에에게 묻는 중에 유코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쪽으로 움직였다. 

　김이 오르는 스튜 냄비 옆에 약간 속이 깊은 도자기 접시 몇 장이 쌓여 있었다. 치사토와 하루카가 식기 선반에서 꺼내 놓은 것이다. 유코는 오른손을 스커트 주머니에 넣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잡았다. 유코 자신이 데이 팩 안에서 발견한 무기는 신축식 특수 방범 방망이였지만, 그것과 함께 "특별 부록" 이라고 하는 딱지가 붙어 있던 그것을. 이 게임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이 곳에 들어온 뒤에도, 처음에는 특히 다른 애들에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그리고 나나하라 슈야가 나타나고부터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그것을. 

 

　예전에 자기 집에서 아버지의 폭력은 문득 아주 우연하게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식구들은 안식을 되찾았다. 지금 유코가 있는 이곳에, 또 다른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코 자신이 그것을 막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다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이젠 겁내지 않아도 된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유코는 아주 묘하게 냉정해졌다. 

　유코는 한손만 써서, 작은, 아주 작은 병의 코르크 마개를 주머니 안에서 살짝 벗겼다. 

　「저어.」 

　유코가 유키에를 불렀다. 사토미, 치사토 두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던 유키에가 고개를 돌렸다. 유코가 말을 이었다. 

　「먼저 슈야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게 좋지 않겠어?」 

　유키에가 활짝 웃었다. 

　「그렇구나. 그럴까?」 

　유키에가 계속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럼, 스튜 다 된 것 같으니까, 준비할까?」 

　접시를 잡았다. 그 접시를. 

　「응─ 그래.」 

　유키에는 뭔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 책상 서랍에 약 상자 들어있지? 진통제 있을 테니까 꺼내줄래? 슈야에게 식사와 함께 갖다 줘야 해.」 

　「그래.」 

　유코는 접시를 놓았다. 싱크대에 부딪히는 소리가 달그락, 하고 났다. 

　「알았어. 잠깐 기다려.」 

 

　싱크대와는 반대쪽 방의 구석, PC와 전화가 놓여 있는 책상이었다. 유코는 테이블을 돌아 그쪽으로 걸어갔다. 탕탕탕탕, 하고 쇠사다리를 밟는 소리가 나고, 하루카와 나카가와 유카가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카가와 유카는 자동권총을 크게 만들어, 뒷부분을 잡아 늘인 것 같은 짧은 총신의 총을(우지 9mm서브 머신 건이었다. 원래는 노다 사토미에게 지급된 무기였지만 제일 위력이 뛰어날 것 같아서 보초를 서는 사람이 그것을 갖고 있기로 했던 것이다) 어깨에 매고 있었다. 

　「슈야가 정신이 들었다면서?」 

　우지를 케이블 위에 놓으며, 유카가 평소와 같은 밝은 말투로 물었다. 약간 통통한, 테니스부의 옥외 훈련 덕분에 피부가 잘 그을린 유카는 이런 상황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응.」 

　유키에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야, 반장.」 

　유카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유키에는 얼굴을 붉혔다. 

　「무슨 소리야.」 

　「또, 또. 좋으면서.」 

　유키에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약간 저었다. 그러자 유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치사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물었다. 좋아하는 남자애를─미무라 신지를 잃은 치사토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유코는 그 대화를 거의 흘러들으면서 책상 서랍 안을 뒤져, 상당히 큰 목제 약상자를 끄집어냈다.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열었다. 잡다한 약품류와 가제, 습포제 등이 뻑뻑하게 들어 있다. 다만 붕대만은 거의 다 나나하라 슈야에게 감아주었기 때문에 없었다. 진통제, 진통제가 어떤 거지? 물론 의미는 없지만. 

 

　「아, 냄새가 좋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유카가 말하는 것이 유코에게도 들렸다. 그 말도 거의 흘려들었다. 진통제? 아, 여기 있군. 이거야. 약효는 두통, 생리통, 치통. 아아 나도 지금 배가 좀 아픈데. 나중에 먹자. 이런저런 일이 끝난 다음에, 그래, 이런저런 일들이 다 끝난 다음에. 

　「그런데 할 이야기가 뭐야?」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 이번에는 사토미가 유키에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 이야기를 해야지.」 

　하루카가 말했다. 

　「아, 그건 말이야, 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유키에의 목소리. 유코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 것은, 「어디, 맛 좀 볼까?」 하는 유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유코는 보았다. 싱크대 앞, 유카가 스튜 접시를 한 손에 들고, 거기 입을 대는 것을. 맛을 보려면 국자에 있는 것을 먹어 보아도 될 텐데, 일부러 "그" 접시에 입을 대는 것을. 그 반투명 가루가 뿌려진 그 접시에. 

 

　유코의 얼굴에게 핏기가 싹 가셨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유카가 접시를 떨어뜨려, 쨍그랑, 하고 그것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스튜가 튀었다. 모두들 유카를 바라보았다. 유카는 목을 누르며, '우욱' 하고 금방 먹은 스튜를 토해내고 있었다. 더 심하게 구역질을 하자, 그것이 하얀 테이블 위에 튀었다. 그것은 새빨간 색이었다. 하얀 테이블 위에 둥그런 덩어리에서 방사선 모양으로 튄 붉은 색은 마치 대동아 공화국의 국기 같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카는 스튜가 쏟아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유카!」 

　전원이─할 말을 잃은 유코 이외의 모두가─소리를 지르며 유카에게 달려갔다. 

　몸을 구부리고 옆으로 쓰러진 유카는 한 번 더 피를 토해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입가에서 붉은 거품이 쏟아져 나왔다. 

　「유카! 유카! 왜 그래?」 

　유키에가 유카의 몸을 흔들었지만, 유카는 이미 입가로 붉은 거품만 토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은 거의 최대 한계까지 열려, 튀어 나올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부분도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충혈되어, 모세혈관이 터졌기 때문인지, 창백한 얼굴 속에도 검붉은 반점이 몇 군데 생겼다. 유카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그로테스크한 괴물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유카는 이미 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유키에가 떨리는 손으로 유카의 목에 손을 대고 말했다. 

 

　「죽었어─」 

 

　유카의 바로 옆에 주저앉은 유키에와 하루카 약간 뒤에 유코는 멍하니서 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온몸이 떨렸다(하긴 다른 네 사람도 똑같이 떨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실수야, 실수야, 이건! 한 입 밖에 먹지 않았는데─ 이렇게 독하다니! 이건, 이건 실수야. 죽였어, 죽였어! 실수로! 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내가 노린 건….

　「이거─ 식중독. 아니야.」 

　유키에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말을 받아, 치사토가 「나도 아까 맛을 봤어. 이건, 이건, 이건.」 

　하루카가 말을 가로챘다. 「혹시 독약 ㅡ ?」 

 

　그게 도화선이 되었다. 모두들(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유코를 제외한 전원이지만, 다른 네 명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후다닥, 하는 소리가 났다. 노다 사토미가 테이블 위에 있던 우지 서브 머신 건을 손에 들고 다른 애들을 향해 겨누었다. 유코를 포함한 네 사람이 반사적으로 유카의 시체에서 옆과 뒤로 물러섰다. 

　사토미가 외쳤다. 안경 안의 눈이 휘둥그레져, 겁에 질려 있었다. 

　「누구야! 누구 짓이야! 누가 독을 넣었어? 우리를 죽이려고 한 게 누구냐고?」 

　「그만 둬!」 

　유키에가 외쳤다. 그 손이 순간 스커트 뒤쪽에 꽂아 두었던 권총(브로우닝 하이파워 9mm. 이건 유키에가 지급받은 무기로, 일단 팀 리더여서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쪽으로 움직이다가,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을 유코는 보았다. 

 

　「총을 내려 놔.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잘못이 아니야.」 

　사토미가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는 냉정한 느낌을 주는 사토미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아까 방송에서 남은 사람이 열네 명이라고 했잖아. 이제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한 편인 척하던 사람이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을 만한 때야.」 

　그리고 하루카를 보며 말했다. 

　「네가 요리했어.」 

　하루카가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한 게 아니야. 치사토도….」 

　「너무해.」 치사토가 말했다. 

　「나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 그리고─」 

　약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토미도, 유코도 독을 넣을 시간은 있었잖아.」 

 

　「─그래.」 

　하루카가 사토미를 바라보았다. 우울한 말투였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하루카!」 

　유키에가 말렸지만, 늦었다. 사토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고?」 

　「그래.」 

　하루카가 계속 말했다. 

　「너는 내내 잠을 자지 않았잖아? 나는 알고 있어. 내가 밤중에 눈을 떴을 때, 너는 깨어 있었어. 다른 애들을 믿을 수 없었겠지. 그렇지? 그만한 증거가 어디 있어?」 

　「하루카! 그만두라니까!」 

　유키에가 다시 한 번 외쳤다. 

　「사토미! 총을 내려놓아!」 

　「뭐야?」 

　사토미가 우지 서브 머신 건을 유키에에게 겨누었다. 

　「리더 행세 집어치워! 다른 애들에게 독을 먹이려다 실패한 걸 그렇게 얼버무리려는 거야? 그런 거야?」 

　「사토미─」 

　유키에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유코는 입에 손을 대고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상황의 전개에 온몸이 마비됐다. 이야기해야 해. 사실대로 설명해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어쩌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그 때, 치사토가 움직였다. 싱크대 방향의 왼쪽 벽 부근, 사이드 보드로. 거기에는 여섯 명에게 지급된 무기 가운데 또 한 자루의 총기─체코제 Cz M75(원래는 유카에게 지급된 것이었지만)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타타타타, 하는 총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치사토의 등에 세 개의 구멍이 뚫렸다. 치사토는 사이드 보드에 그대로 엎어져, 사이드 보드 끄트머리를 껴안듯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바닥에 엎어졌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숨이 끊어졌다. 

　「사토미! 무슨 짓이야!」 

　유키에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져 있었다. 

　「뭐야?」 

　사토미가 아직도 연기를 토하고 있는 우지를 겨눈 채로 유키에를 노려보았다. 

　「총을 잡으려고 한 거야. 범인이니까.」 

　「너도 총을 들었어!」 

　하루카가 외쳤다. 

　「유키에! 쏴! 사토미를 쏴!」 

　휙, 하고 사토미가 우지를 하루카에게 겨누었다. 사토미의 얼굴이 이미 검게 변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하루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다. 유코의 눈에 비치는 유키에의 얼굴이 뭔가 고통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그 손이 스커트 뒤의 브로우닝을 잡고 있었다. 분명히, 유키에는 망설인 끝에 사토미의 팔이나 어디를 겨냥하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휙, 하고 사토미가 우지의 총구 방향을 바꾸었다. 유키에를 향하고 있었다. 타타타타, 하는 총소리와 함께, 유키에는 뒤로 날아갔다. 세일러복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천장을 보고 쓰러졌다. 

 

　하루카가 순간 멈칫 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유키에가 떨어뜨린 브로우닝을 향해 달려갔다. 사토미의 우지가 하루카의 움직임에 따라, 타타타타 하는 총소리를 뿜어냈다. 하루카의 몸이 주르륵 바닥을 미끄러졌다. 그리고 사토미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있던 유코에게 총을 겨누었다. 

 

　「너는 ㅡ ? 너는 아니지?」 

 

　유코는 그저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떨면서 사토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사토미의 이마 왼쪽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렸다. 사토미는 입을 벌리고 왼쪽을 보았다. 이마의 구멍에서 피가 주룩 흘러나와, 안경 렌즈 안쪽, 눈꼬리 부분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그 아래 쪽으로 흘러내렸다. 유코도 기계 장치처럼 뻑뻑해진 고개를 움직여, 사토미의 시선을 따라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루카가 쓰러진 자세로, 고통스러운 듯이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손에는 브로우닝이 들려 있었다.

　사토미의 우지가 타타타타타타, 하는 소리를 뿜었다. 의식하고 쏜 것인지, 경련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총탄은 바닥에 쓰러진 하루카의 몸을 멋지게 관통했다. 하루카의 몸이 반 바퀴 돌며 튀어 올랐다. 피가 솟아오르고, 하루카의 목이 목걸이 바로 윗부분에서 반 쯤 잘려나갔다. 그리고 사토미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나카가와 유카의 시체에 반쯤 걸치듯이 엎어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방에 혼자 남은 유코는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눈이 뭔가 이상한 박물관에 끌려 들어온 아이처럼 다섯 명의 클래스 메이트가 쓰러진 바닥을 둘러보고 있었다. 

 

【남은 인원 9명】

 

 

　뭔가가 쨍그랑,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을 때, 슈야는 저런, 조심성 없는 애가 점심 준비를 하다가 접시라도 떨어뜨린 모양이구나, 하고 한가로운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왼쪽 옆구리와 어깻죽지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슈야는 약간 신음 소리를 냈지만, 오른쪽 팔을 써서 간신히 몸을 침대에서 빼고,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지금은 교복 바지밖에 몸에 걸치지 않았다. 뭐라고 말다툼하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유키에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슈야는 문까지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를 빙글 돌려, 그대로 밀자, 덜컹, 하고 뭔가가 걸렸다. 1센티미터 정도 열린 문틈으로 비스듬하게 걸쳐 놓은 각복 같은 것이 보였다. 유키에가 말한대로 자물쇠를─ 빗장을 질러 놓은 것이었다. 

　슈야는 문고리를 오른손으로 잡고, 몇 번이나 덜컹덜컹 흔들었지만, 문은 그 이상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어떻게 고정시켜 놓은 건지 각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포기하려던 슈야의 귀에 그 문틈으로 타타타타, 하는 이제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명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슈야의 얼굴에세 핏기가 가셨다. 습격인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 분명했다. 슈야는 부상당한 몸으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오른발을 들어올려, 전에 스기무라 히로키에게 배운 앞차기 요령으로, 맨 발바닥으로 문을 걷어찼다. 그러나 문은 그 발차기를 튕겨 내, 슈야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옆구리 상처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변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또 타타타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타타타타, 하는 소리. 

 

　슈야는 고개를 자기가 누워 있던 침대 쪽으로 휙 돌리고 일어서, 오른손으로 그 쇠 파이프로 된 침대 끄트머리를 집어 들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는 옆으로 무너지고, 모포와 시트가 떨어져 내렸다. 슈야는 그 침대를 끌어다 한쪽 끝에 문을 대고, 뒤로 돌아와 힘을 잔뜩 주고, 문을 향해 밀었다.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기울어졌다. 한 번 더. 침대가 나무문에 박히면서 뿌직, 하는 소리가 나고, 중간이 반쯤 휘어져, 문이 복도 쪽으로 열렸다. 슈야는 오른손으로 침대를 거칠게 잡아당기다 문 앞쪽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타타타타타타타, 하는 타이프라이터 소리 같은 총성이 이번에는 열린 문을 통해 확실히 들려왔다. 

　슈야는 복도로 나왔다. 창문에 박혀 있는 각목 너머는 그늘이 져 있었고, 물론 조명도 없어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왼쪽이 현관, 오른쪽으로 복도가 길게 이어져, 문이 세 개가 늘어서 있다. 제일 안쪽 문만 약간 열려 있고, 거기서 새어나온 빛이 복도에 반사되어, 차가운 느낌의 빛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슈야는 문 앞에서, 부러진 각목 가운데 1미터 정도는 되는 것을 집어 들고는, 움직이기 힘든 몸을 이끌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슈야는 조심스럽게 그 문으로 다가가 그 틈새를 눈을 대고 보았다. 부엌 시설이 되어 있는 방 가운데, 중앙의 테이블 옆에 우츠미 유키에와 다니자와 하루카가, 그 건너편에 나카가와 유카(얼굴이 왜 저래!)가, 오른편 벽 쪽으로 마츠이 치사토가, 그리고 테이블 밑에도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그 누군가는 결국 노다 사토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슈야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비교적 야윈 몸,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슈야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사카키 유코였으니까. 쓰러져 있는 유키에와 다른 애들 사이에 몇 자루의 총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 여기저기에 튄 피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슈야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그 한 순간 모든 것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은 분교 앞에서 덴도 마유미의 시체를 보았을 때와 똑같은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키에가─"너한테 반한 여자애 말도 좀 들어" 라고 슈야에게 이야기한 그 우츠미 유키에가, 쓰러져 있다. 죽었나? 죽은 걸까? 

 

　슈야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유코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냥 거기에, 마치 명왕성으로 쫓겨난 금성인 마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슈야는 거의 넋이 나간 듯이 천천히 문고리를 잡고 열어, 방 안으로 발을 디디었다. 그러자 유코가 빙글, 뒤를 돌아보았다. 슈야를 충혈된 눈으로 잠깐 바라보는가 싶더니, 유키에와 하루카 사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권총을 향해 달려갔다. 

　동시에 슈야의 주문도 풀렸다. 쓸 수 있는 오른팔에 힘을 주어, 손에 든 각목을 던졌다. 왕년의 리틀 리그(이젠 그런 것이 지구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아득한, 까마득히 먼 안드로메다 성운 근처, 다섯 개의 손가락 가운데 세 개만을 써서 야구를 하는 나라 이야기다. 그리고 최종회만은 꼬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한다), 이따금 서던 마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직구를 던지던 때처럼, 덕분에 몸이 삐걱이며 통증이 와, 슈야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지만 각목은 유코 바로 앞에서 탕, 하고 바닥에 맞고 튀었다. 유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걸음을 멈추더니, 피가 뿌려져 있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슈야는 그 총 쪽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코가 총을 잡으면 이야기가 점점 더 꼬이게 될 것임은 틀림 없었다. 그러자 유코가 「힉.」 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나더니, 상반신을 일으켜, 몸을 돌려 방 안쪽으로 달려갔다. 테이블 옆을 지나, 그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열린 문으로 빠져나갔다. 탕탕탕탕, 하는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인가? 

　슈야는 유코의 모습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러나 일단 우츠미 유키에에게 달려갔다. 바로 옆에 무릎을 꿇었다. 유키에의 세일러복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몸 아래는 피가 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눈은 자고 있는 듯이 조용히 감겨 있었다. 입을 약간 벌리고.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 

　슈야는 그 평온한 얼굴로 자기 오른손을 뻗으며, 이 게임 개시 이후 처음으로 자기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몇 분전에 이야기를 나누어서? 그렇지 않으면…. 

　"슈야가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어.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알아?" 

　"노리코는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반장이라고 부르네." 

　그 눈물짓던, 그러나 안도감으로 가득 찬 얼굴. 그 어딘가 쓸쓸해 보이던 얼굴. 그리고 지금, 눈 앞의 이상할 정도로 평온한 얼굴. 

 

　슈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인할 것까지도 없었다. 나카가와 유카의 얼굴은 변색되어,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엎드려 있는 노다 사토미의 머리 아래는 피가 흘러넘치고 있다. 마츠이 치사토는 등에 구멍이 나 있었고, 다니자와 하루카는 목이 거의 잘려 나가다시피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ㅡ ? 슈야는 다시 유키에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거의 감각이 마비된 왼손을 오른손으로 간신히 보조하면서 우츠미 유키에의 상반신을 안아 들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야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유키에의 몸을 들어올리자, 가슴에서 등 쪽으로 관통한 구멍에서 피가 후드득,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유키에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땋아 늘인 머리카락이 슈야의 팔이 닿았다. 

　"응, 무슨 뜻인지 알아?" 

　슈야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유키에의 세일러복 위에 떨어졌다. 

　「크흑─」 

　슈야는 입을 다물고 유키에의 몸을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조금 전에 유코가 집으려 하던 브로우닝을 집어 들었다. 유코가 사라진 방 안쪽 문으로 걸어갔다. 실제로는 몸에 상처가 난 것 이상으로 몸이 무거웠다. 브로우닝을 들고, 옷도 걸치지 않은 오른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문 바깥쪽에는 콘크리트를 파낸 듯한, 원통한 공간이었다. 

 

　등대다. 여기가 등대다. 가운데 굵은 쇠기둥이 있고, 그 둘레를 나선형 계단이 감아 올라가고 있다. 창문이 없어 어두컴컴했지만, 위에서 빛이 약간 들어오고 있었다. 

　「유코!」 

　슈야는 소리치면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코!」 

　계단 위쪽에 유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악!」하는 사카키 유코의 목소리가 원통형 공간에 메아리쳤다. 슈야는 눈썹을 찡그리며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옆구리의 상처가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했다. 다시 피가 나기 시작했는지, 붕대가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카키 유코는 숨도 쉬지 않고 등대 꼭대기로 달려 올라갔다.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 같은 렌즈를 중심으로 주위를 걸을 수 있을 정도만의 공간이 있고, 그 등실을 둘러싼 방풍 유리 너머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왼쪽에 좁은 베란다로 통하는 높이가 낮은 문이 있어, 유코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약간 높은 곳이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짙은 바다 냄새가 전해왔다. 

　정면에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흐린 하늘 때문에 흐린 남색이었다. 하얀 파도가 그 위에서 마치 무슨 옷감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유코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북쪽 산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고, 등대 시설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약간 왼쪽에서 그 산기슭을 끼고 돌듯이 비포장도로가 뻗어 있고, 그 바로 앞에 모양만 갖추어져 있는 문 옆에 흰색 라이트 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유코는 베란다를 둘러싼 철제 난간을 잡았다. 눈 아래로 조금 전까지 자기가 있던 방이 있는, 등탑에 딸린 단층 건물이 옥상이 보였다. 난간을 따라 등실 주위를 돌았지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쇠사다리는 없었다. 유코는 아직 등대 위에서 망을 본 적이 없어, 등대 밖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었던 것이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자신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그런 사실은 순간 유코를 공황 상태에 빠지게 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사다리가 없다면 뛰어 내릴 수밖에 없다.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결국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와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았다. 직접 지상까지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짧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다. 아니, 사실은 그럴 수 있을 정도의 높이가 아니었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유코의 머릿속에서는 또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자기 한 사람뿐. 쩍 벌어진 머리, 솟아오르는 피, 그 피에 얼굴을 적신 나나하라 슈야. 도망가야만 한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없다. 

 

　유코는 쭈그리고 앉아, 대충 만들어 놓은, 철제의 듬성듬성 세워 놓은 쇠기둥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몸이 빠져나갔다. 철책을 잡고, 신중하게, 그 바깥쪽에 있는 겨우 폭 10센티미터 남짓 되는 베란다 테두리에 섰다. 발 밑에 보이는 풍경은 유코로 하여금 현기증이 일게 만들었다. 높다. ─이건 뛰어내린다는 건 불가능해─높아, 이건 너무. 

　순간, 휘청하면서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흔들리고, 발이 미끄러졌다. 주름 스커트 아래, 정강이 옆이 베란다 테두리의 콘크리트에 스치며(피부가 주룩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유코의 몸은 허공에 춤추고 있었다. 「헉」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동시에 두 손이 허우적거리며 철책의 아래쪽, 그 가느다란 쇠기둥 하나를 껴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유코의 몸은 베란다 테두리에 매달렸다. 쇠기둥을 잡은 유코의 입에서 '헉헉' 하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너무 위험했다. 

　그러나 유코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어쨌든, 그렇다. 어쨌든 몸을 끌어올려 철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나나하라 슈야와 싸우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 수밖에─ 바람이 휘익 하고 세게 불어, 유코의 몸이 흔들렸다. 「까악」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쇠기둥을 꼭 잡은 야윈 손이 주룩 미끄러져, 이제는 두 손바닥으로 베란다 테두리에 간신히 매달린 꼴이 되었다. 이제는 쇠기둥으로 손을 뻗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공포와 낭패감 때문에, 유코는 정신이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럴 때 땀이 나는 거야? 손이 미끄러지잖아! 오른쪽 새끼 손가락이 콘크리트 테두리에서 주룩 미끄러졌다. 

 

　「안 돼─」 

　유코가 절규했다. 다음은 약지. 그러자 오른손 전체가 손잡이를 놓쳐(검지의 손톱이 걸렸다 싶었는데, '투툭' 하고 손톱이 벗겨지더니 그걸로 그만이었다) 왼손만 걸친 채로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남은 왼손마저도─

　「으아아아아아아!」 

　절규와 함께 몸이 떨어지는, 왠지 꿈을 꾸는 듯한 감각이 유코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턱' 하는 충격이 팔과 어깨 부근에 전해지더니, 겨우 몇 십센티미터 정도 덜어지는 걸로 그쳤다. 

　위로 뻗은 왼팔에만 의지해 시계추처럼 흔들리면서, 유코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고, 나나하라 슈야가 철책 너머에서 몸을 내밀고 오른손을 뻗어 유코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 유코는 슈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안돼!」 라고 외쳤다. 그렇다. 물론 손을 놓으면 죽는다. 그러나 그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나나하라 슈야다! 

 

　「싫어! 안 돼!」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면서 유코는 생각했다. 어째서? 어째서 나를 구하는 거지? 나를 왜, 나를 살아남기 위해 이용하려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아아, 그래? 나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은 거로구나! 

　「싫어! 놔 줘!」 

　유코는 소리쳤다. 이제 약간 남아 있던 논리적인 사고도 다 무너져 버렸다. 

　「싫어! 네 손에 죽는 것보다는 여기서 그냥 죽는 게 더 나아! 놔 줘! 놔!」 

　그 말을 듣고 무얼 생각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어쨌든 나나하라 슈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버둥거리지 마!」 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유코는 다시 멍하니 슈야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깨달았다. 슈야의 목 오른쪽 상처, 저 은빛 목걸이 바로 아래의 붕대에 피가 스며 나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어깻죽지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피가 주르륵, 슈야의 팔을 타고, 유코의 왼손까지 흘러내렸다. 

　「윽」 하고 슈야가 소리를 지르더니, 유코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슈야의 얼굴에는 진땀이 배어났다. 그래, 저 목뿐만이 아니야. 온몸에 저렇게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 오른손 하나로 자기 체중을 지탱하고, 게다가 끌어올리려 한다면 그 상처는 슈야에게 엄청난 통증을 줄 게 틀림없다. 유코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째서지? 어째서 저렇게 성치 않은 몸으로, 나를, 나를 구하려는 거지? 

 

　이상하게도 그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휙 바람이 불어온 듯이(그것은 때마침 유코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닷바람처럼.)유코의 머리를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싹 가셨다. 그 오오키 다츠미치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피에 젖은 손도끼를 들고 있던 슈야의 영상이 그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리고, 예전의(그래봐야 겨우 이틀 전까지 그랬지만) 3학년 B반 교실의 쾌활했던 슈야의 표정이 돌아온 것이다. 구니노부 요시토키나 미무라 신지 같은 애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는 표정, 음악실에서 어려운 기타 연주 대목을 반복할 때의 진지한 표정, 체육 시간 여자는 배구로 체육관 수업이지만─ 운동장을 문득 보았을 때 멋지게 안타를 삼루 선상으로 날리고 2루 베이스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해 보이던 웃는 얼굴, 그리고 수업 중, 유코가 생리통 때문에 창백해져 있을 때, 옆 자리에서, 「왜 그래, 유코? 안색이 안 좋아.」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서둘러 영어 담당 야마모토 선생님의 교과서 읽기를 중단시키고 보건위원인 후지요시 후미요를 불러준, 그때의 걱정스러워하던 얼굴. 

 

　아아. 유코는 이제야 눈 앞의 사태의 사태가 정확하게 파악되었다. 슈야야. 슈야가 나를 구해주려 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왜 슈야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슈야는 슈야인데. 내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정말 멋지구나, 정말로 멋지구나 하고 생각한 애인데? 그리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한 행동과 그것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서. 유코는 다시 창백해졌다. 내가 내 정신이 이상해졌었던 거야. 그리고 그 때문에 모두들…. 주르륵 유코는 눈물을 흘렸다. 그걸 보고 슈야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슈야!」 

　유코가 소리쳤다. 

　「나, 나는! 너를, 너를 죽이려고 했어!」 

　슈야는 자기 팔 아래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코의 얼굴을 약간 놀란 듯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유코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오오키를 죽인 걸 보고 무서웠어. 정말 무서웠어. 그래서 네가 먹을 음식에 독을 넣으려고 했어─ 그걸 유카가 먹어버린 거야─그래서 모두─ 모두 다.」 

 

　그러자 슈야는 모든 것이 다 이해되었다. 자기가 오오키 다츠미치와 싸우고, 다츠미치의 얼굴에서 손도끼를 뽑아내던 그 장면을 유코는 어디선가 가까운 수풀 속에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모토부치 교이치와 가와다가 나타난 것은 보지 못하고, 그 장면만 보았던 것이다. 물론 슈야의 정당방위라고 해석할 수도, 사고였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코는 겁먹은 마음은 슈야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슈야를 죽이려고 독을 넣고 나카가와 유카가 그걸 입에 대고 누가 독을 넣었는가를 가지고 다들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독을 넣은 본인, 유코만 남았다─

　「이제 됐어!」 

　슈야가 소리쳤다. 

　「이제 됐으니까 움직이지 마! 곧 끌어올릴 테니까!」 

　이 때 슈야는 거의 베란다에 엎드린 채로 철책 사이에 몸을 내밀고 있었는데, 왼팔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철책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몸을 꼬아, 간신히 오른쪽 무릎만을 몸통 아래까지 끌어당겨, 등 근육에 힘을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코의 손목을 꽉 잡은 채로 힘을 주었다. 옆구리, 왼쪽 어깨, 오른쪽 목덜미, 모든 상처의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에 젖은 유코의 얼굴이 좌우로 흔들렸다. 

　「안 돼. 안 돼. 나 때문에 모두─ 모두 다….」 

 

　순간 유코의 손이 슈야의 손을 뿌리치듯이 움직였다. 간신히 잡고 있던 손이 느슨해지려 하자, 슈야는 더욱 힘을 주었지만─ 주룩, 슈야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슈야의 손에서 유코의 손이 떨어졌다. 순간 슈야의 팔에 걸려 있던 중력이 사라졌다. 슈야를 올려다보던 유코의 얼굴이 멀어지더니,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 단층 건물 위에, 유코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엇다. 슈야는 유코가 자기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기 보다, 문득 슬로우 비디오로 거기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몸, 세일러복과 주름치마에 싸인 몸이 큰 대자로 뻗었고, 고개가 이상한 각도로 구부러졌다. 그 때문에 몸에서 이상하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머리 오른쪽 위에서 뭔가 길고 가늘게 데포르메한 단풍나무 잎사귀 같은 모양의 붉은 물보라가 뻗어가고 있었다. 

 

　「아….」 

　슈야는 베란다 아래로 오른손을 내민 채,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인원 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