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5

　멀리서 두 발의 총소리가 났을 때. 유타카는 또 몸을 움츠렸다. 신지도 잠시 키보드 두드리는 손을 멈추었다. 

　「저건….」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총소리로구나.」 

　그러나 바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좀 나쁘게 이야기하면, 다른 애들은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유타카도 다시 신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붕대 대신 타월을 감은 손에 신지가 「망을 봐 줘.」 라고 하면서 건내준 베레타를 들고 있다. 

 

　「저어, 신지. 컴퓨터로 뭐 하는 거야? 이제 가르쳐 줘도 되잖아?」 

　애가 탄다는 듯이 물었다. 그랬다. 다시 통신 소프트웨어를 가동시키고, 휴대전화로 다이얼을 누른 다음, 신지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었다. 그러면서 「빙고, 빙고!」 라느니, 「에이, 제길. 아, 그런가?」 라느니, 「오케이!」 라느니 하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유타카에게는 아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기다려. 조금만 더하면 돼.」 

　신지는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흑백 화면 거의 중앙에 뜬 윈도 안에 "%" 라거나 "#" 같은 기호가 뒤섞인 영문이 흐르고, 신지는 그의 따라 키보드를 두드렸다. 

　「됐어.」 

　마지막으로 데이터의 다운로드를 지시하고, 신지는 손을 멈추었다. 

 

　기본 조작은 당연히 유닉스였지만, 사용하는 컴퓨터가 매킨토시다 보니 다운로드의 진행 상황을 나타내는 그래픽이 다른 윈도로 떴다. 신지는 팔을 위로 뻣어 기지개를 켰다. 이제는 다운로드 완료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끝나면 로그 데이터를 지워서 증거를 없애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데이터를 기초로 작전을 짜면 된다. 단순하게 데이터를 갈아 치워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짜서 보다 교묘하게 상대를 속일까. 후자의 경우에는 약간 손이 가지만, 그래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지. 설명해 줘.」 

　유타카가 다시 한번 조르자, 신지는 웃으면서 컴퓨터에서 떨어져 나무에 등을 기댔다. 나도 약간 흥분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진정하기 위해 숨을 크게 쉬었다. 무리도 아니다. 조금 전에 유타카에게 "파워 맥 150이란거야" 라고 했을 때만 해도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서 도망칠 생각을 했어.」 

　유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이야.」

　신지는 자기 목을 가리켰다. 신지 자신에겐 보이지 않지만, 유타카의 목에 감겨 있는 것과 같은 은빛 목걸이가 유타카에겐 보일 것이다. 

 

　「사실은 말이야, 이걸 어떻게든 벗어버리고 싶었어. 이것 때문에 우리들 위치가 그 사카모치란 녀석에게 알려지는 거잖아. 지금 너하고 내가 함께 있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이것 때문에 우리는 도망치려고 해도 간단하게 잡힐 테고, 혹은 안에 들어 있는 폭탄의 전파가 보내지면 한 방에 죽게 되지. 어떻게든 벗겨내야 해.」 

　신지는 그러면서 팔을 크게 벌리며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그렇지만 포기했어. 내부 구조를 모르는 이상, 만질 수가 없잖아. 분해하면 폭발한다고 사카모치가 이야기했는데, 아마 거짓말은 아닐 거야. 아마도 기폭용 코드가 안에 설치되어 있을 거야. 그걸 잘라내면 꽝, 하고 터진다 이거지. 그렇다면 위험한 다리는 건너지 말아야지. 목걸이 안쪽에 철판이라도 끼워 넣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마 끼워넣을 수 있을 정도의 철판으로는 폭발을 막아낼 수 없을 거야.」 

　유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그렇다면 좋다, 우리들 위치를 포착하고 있고, 폭파용 전파를 관리하고 있는 그 분교의 컴퓨터에 손을 쓰자, 라고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랬다. 컴퓨터를 다루는 법 또한 그 기본은 숙부가 가르쳐 주었지만, 숙부가 돌아가신 뒤에도 신지는 농구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열심히 숙부가 남긴 컴퓨터를 만지며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정부가 보통 접속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 회선에이따금 타고 들어가, 진짜 인터넷(그랬다. 그래서 이 정부가 "인타네토" 라고 흔히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은 "대동아 네트" 라고 하는 넋 빠진 이름의 폐쇄적인 네트워크에 불과하다)에서 훨씬 수준 높은 컴퓨터 지식을, 또한 동시에 다른 세계의 최신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는 기본적으로는 사형까지 가지는 않을지 몰라도, 신지 정도의 나이라면 사상 감별소에 2년 쯤은 처박힐 만한 위법 행위가 된다. 그래서 신지는 절대로 들키지 않을 정도의 기술을 익혔고, 동시에 자기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타카에게는 몇 군데의 홈페이지 화면을(주로 약간 야한 걸로. 아, 이해해 달라) 보여준 적이 있다. 특히 컴퓨터 해킹에 관해서는, 신지는 지금 상당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를 찾았어. 너도 알겠지만 휴대전화는 갖고 있잖아. 엿 같은 게임이지만, 개인용 물건을 갖고 있을 수가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뭐, 어쨌든 이걸 찾아 냈으니 다행이지. 문제는 전원인데, 그 배터리는 그 근처에 있던 차에서 떼어 낸 거야. 전압 조정은 해야 겠지만, 그 정도야 간단하지.」 

 

　신지가 계속 설명하고 있는 중에 유타카는 땅바닥에 놓여 있는 파워북과 휴대전화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되기 시작한 듯이 몇번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막고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야. 전화는 쓸 수 없다고 사카모치가 말했었잖아? 휴대전화는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니?」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돼. 내가 한 번 적당히 눌러 봤더니─일기예보 안내 번호였는데─ 사카모치가 나왔어. "시로이와 중학교 프로그램 실시본부는 맑은 날씨입니다." 라고 하더라. 바로 끊었는데, 속이 메슥거리더라구. 결국 놈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휴대전화 중개국을 막고 있는 거지. 아마 어느 전화 회사 직원이라도 전화를 쓸 수는 없을 거야.」 

　「그럼.」

　신지는 오른쪽 손가락을 하나 세워 유타카의 말을 막았다. 

 

　「생각해 봐. 놈들이 외부와 연락을 취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컴퓨터도 정부의 다른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을 테고. 보안을 위헤서라도 그러겠지. 그런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결국, 간단한 이야기지. 휴대 이동전화 회선 가운데 군용 번호만 선택적으로 통하고 있다는 거야.」 

　「그럼 역시….」

　유타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가로막고, 신지는 씨익 웃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나는 생각했지.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유사시에 대비해 전화 회사 사람에게는 열어 놓지 않았겠느냐고.」 

 

　신지는 땅바닥에 놓인 휴대전화로 슬쩍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 휴대전화는 좀 특별한 거야. 전화번호와 암호번호가 들어 있는 롬을 두 종류 가지고 있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여기 나사를 90도 회전시키면 전환할 수 있어.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원래 장난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서 장난 삼아 만든 거지만….」 

　전화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전화 회사의 기술직원이 사용하는 회선 테스트용 휴대전화번호야.」 

　「아니, 그렇다면!」 

　신지는 윙크를 해 보였다. 

 

　「그렇지, 빙고! 나머지는 별 게 아니야. 보통 전화용 모뎀과 휴대전화를 연결하는 게 애를 좀 먹였지만. 하긴 쓸만한 도구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난 해냈어. 그리고 어쨌든 전화 회선에 들어갔지. 그리고 일단 우리집 컴퓨터에 접속했고. 해킹이란 건 일반 컴퓨터 통신과는 달리 특수한 툴이─뭐 암호해독 소프트웨어라거나 하는 것들─있어. 그걸 일단 받아 냈어. 그리고 이번에는 현 정부의 사이트를 노렸지. 정부의 중앙 전산처리 센터라면 그래도 상당히 보안이 되어 있겄지만, 현 정부라면 보안 문제는 허술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정답이더라. 아무리 이게 나라에서 하는 직할 사업이라고 해도 개최 장소가 있는 현 정부와 약간의 연락은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도 정답. 통신 로그에 낯선 어드레스가 있었어. 메일을 읽어 보았더니, 교육장 앞으로 된, 게임 개시 통보였어. 그래서 이번에는 그 사이트를 뚫고 들어갔지. 결국 그게 분교에 설치한 서버야. 이쪽은 꽤 까다로웠지만,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를 조사해 보았더니 어이없게도 작업용 백업 파일을 남겨 두고 있는 거야. 그걸 받았지. 자세한 이야기는 줄이고, 그안에 의미가 있을 듯한 암호 문자가 하나 있었어. 그 해석이 아까 너를 만날 때까지 매킨토시에게 시켜 놓았던 거지. 답은 이거야.」 

 

　신지는 파워 북에 손을 뻗어, 통신 상태는 그대로 두고 다른 메모 파일을 열어 24포인트나 되는 큰 폰트로 유타카에게 보여 주었다. 유타카가 들여다보았다. 

 

　"sakamocho kinpati" 

 

　「사카모초...?」 

 

　「그래. 히스패닉 계통의 이름 같지? 한심하게 모음만 살짝 바꿔서 만들었지만, 어쨌든 이게 루트의 패스워드였다는 거야. 나머지는 하기 나름. 지금 하고 있던 작업은 분교의 컴퓨터 안에 있는 데이터를 통째로 받고 있는 거야. 나는 그걸 조작해서 한 번 더 그쪽 컴퓨터에 들어가, 우리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소용없게 만들 거야. 놈들은 그 분교 주위를 금지 구역으로 둘러쌌으니, 우리들이 접근할 수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있을 테지만, 우리는 거기를 습격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찬스는 충분해. 그리고 일단 그 분교를 제압하면 다른 애들을 구할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그렇게까지 하는 건 무리여도, 우리들이 죽은 걸로 만들어 놓고 둘이서 이 섬을 빠져나갈 수는 있을 거야.」 

 

　거기까지 단숨에 내뱉고 호흡을 가다듬은 신지는 다시 씨익 웃었다. 

　「어때?」 

　유타카는 이미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단해!」 

　신지는 유타카의 순진한 반응에 만족해 씨익 웃었다. 고마워, 유타카. 어쨌든 내 능력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고 하는 건 정말 기쁜 일이야. 

 

　「신지!」 

　아직 그 멍한 표정을 한 채로 유타카가 입을 열자, 신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지? 무슨 질문이 있어?」 

　「아니?」 

　유타카는 고개를 저었다. 

　「저, 저어.」 

　「뭐야?」 

　유타카는 시선을 떨구어, 손에 들고 있던 베레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 어떻게 나 같은 게 네 친구지?」 

 

　신지는 유타카의 그 말뜻을 알 수가 없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타카는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그건,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그래서 슈야 같은 녀석이 너하고 친구인 건 이해가 가. 슈야도 신지처럼 운동도 잘하고, 기타도 아주 잘 치잖아. 그렇지만, 난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래서 어떻게 나 같은 놈이 네 친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거야.」 

 

　신지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심한 소리 하지 마, 유타카.」

　신지의 그 조용한 목소리에 유타카가 고개를 들었다. 신지가 말을 이었다. 

 

　「나는 나야. 그리고 너는 너야. 아무리 내가 농구를 잘 하고, 컴퓨터를 좀 다룰 줄 알고, 여자애들에게 약간 인기가 있다고 해도 그런 건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기준이 아니야. 너는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능력이 있고,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잖아. 너는 진지할 때는 나보다 훨씬 진지해. 여자애를 좋아할 때도. 알겠어? 나는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다는,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네겐 네가 좋아하는 모습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야.」 

 

　어깨를 움츠리고 씨익 웃고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좋아. 나는 너하고 내내 함께 지내 왔잖아? 너는 내 소중한 친구야. 솔직히 이야기하면 넘버 원이야.」 

　그러자 유타카의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제길」 이라고 내뱉었다. 

　「고마워, 신지, 고마워.」 그러면서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닦으면서 「하하하」 웃었다. 

 

　「신지, 그렇지만 나 같은 울보하고 함께 있다가는 여기서 도망치기도 전에 익사하고 말 거야.」 

　그러자 신지도 웃음을 지어 보이려 하는데, 뎅~ 하는 소리가 났다. 신지의 눈초리가 매서워지더니, 후다닥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매킨토시의 표준 경고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지는 또 파워 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거기 나와 있는 메세지는 전화회선이 끊어져, 다운로드가 중단되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왜 이러지?」 

　신지의 입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신음에 가까웠다. 서둘러 키보드를 조작했다. 그러나 회복되지는 않았다. 일단 유닉스용 통신 소프트웨어를 종료시키고, 다른 통신 소프트웨어를 써서 모뎀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조작을 했다. 

　"회선이 다운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나왔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모뎀과 전화의 접속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꾸로 모뎀과 휴대전화의 접속을 끊고, 직접 휴대전화의 푸시 버튼을 눌러보았다. 일단 일기예보. 귀를 바짝 갖다 댔다. 휴대전화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배터리는 아직 충분할 텐데….

 

　이럴 수가. 신지는 휴대전화를 움켜쥔 채로 아직 멈추어 있는 파워 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킹이 들통난 것은 아니다. 원래 들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해킹이다. 그리고 신지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신지? 왜 그래, 신지?」 

　유타카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지만, 신지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남은 인원 25명】

 

 

　스기무라 히로키(남자 11번)는 소에 든 작은 기계의 액정 스크린 끄트머리에 불쑥 별 모양의 표시가 나타난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히로키가 그것을 손에 들었을 때부터 스크린 중앙에 있던 마크와 같은 것이었다. 

 

　섬의 동쪽 해안 부락 안이었다. "금지 구역"이 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 서둘러서,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집과 집 사이를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내내 주시하고 있던 그 스크린에 드디어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데이 팩 안에 들어있던 그 기계는 샐러리맨들이 자주 사용하는 휴대용 정보 단말기 같았다. 설명서를 뒤적이다가 드디어 오후 6시가 지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어쨌든 사카모치의 방송에서 "금지 구역"으로 예고된 곳을 피해 돌아다녔지만, 섬의 남쪽 해안에 있는 J=2 구역에서나 서쪽 해안의 F=1 에서나, 또 그리고 여기 H=8 구역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이 기계를 과연 무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상황에서는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총보다 훨씬 쓸모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올바른 사용 방법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히로키는 다른 한 손에 잡은 몽둥이를(이것은 마을에서 약간 북쪽에서 떨어진 오두막에서 발견한 대걸레의 자루를 빼낸 것이다. 손에 들기 쉬운 칼 같은 것도 금방 찻을 수 있었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권법 도장에 다녀, 봉술을 익힌 그에게는 이게 쓰기 쉽고,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쳐 잡고, 등을 붙이고 있던 민가의 담벼락에서 떨어졌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를 민첩하게 움직여, 비스듬히 맞은편에 있는 집의 벽에 달라붙었다. 스크린을 들여다 보니, 별 표시가 중앙에 있는 같은 표시를 접근해 오고 있었다. 스크린의 표시 방식에 대하여 한 번 더 설명서에 적혀 있던 내용을 되새기고, 고개를 돌렸다. 집이다. 이 안에 있다. 

 

　히로키는 주머니에 기계를 집어넣고, 집의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작은 마당에는 채소밭 같은 것이 있고, 허리 높이 정도까지 자란 토마토가 몇 그루, 그리고 고구마인지 뭔지 땅바닥을 기듯이 자란 식물, 파, 그리고 그 옆에는 팬지와 국화 같은 색색의 꽃이 피어 있었다. 화단 앞에 어린애의 삼륜차가 있었는데, 핸들의 도금한 부분이 한낮에 가까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비를 막는 덧문이 닫혀 있었다. 열면 꽤 큰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히로키는 오른쪽으로 더 돌아 들어갔다. 창문이 있었다. 유리가 깨져 있다. 틀림없다. 누군가가 이리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기계의 설명서대로라면, 그 누군가는 아직 여기 있다. 금지구역이 될 시간이 가까워진 이상, 살아 있다면 당연히 구역 밖으로 나가려 할 테니, 안에 있는 것은 시체일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확인해 봐야만 한다. 

 

　히로키는 깨진 창문 끄트머리로 살짝 고개를 디밀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마 다다미가 깔린 거실 같았다. 창문 섀시를 살짝 옆으로 당겼다. 다행히도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히로키는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창틀을 잡고 고양이 같은 동작으로 사뿐하게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쪽에는 마루가 있고, 중앙의 탁자가, 히로키가 있는 창가의 비스듬한 구석에는 대형 텔레비전 수상기가 놓여 있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방이었다. 히로키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며 그 방을 빠져나갔다. 복도로 나오자 무슨 냄새가 공기에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녹슨 쇠에 코를 갖다대면 나는 냄새였다. 히로키는 약간 서둘러 복도를 지났다. 냄새가 강해졌다. 

　부엌이었다. 히로키는 기둥 뒤에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테이블 넘어, 마루 위에 하얀 스니커와 양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다리가 허벅지 부근까지. 히로키는 눈을 크게 떴다. 테이블을 휙 돌아 들어갔다.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가 엎드려 있었다. 얼굴은 히로키와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작은 체구, 어깨까지 내려오는 쇼트커트, 그리고 그 얼굴 아래 부분을 중심으로 판자를 이어 붙인 마루에 흘러나와 연못을 이루룬 피. 아주 많은 양이었지만, 그 표면은 이미 굳어서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죽은 게 틀림없었다. 작은 체구, 쇼트 커트. 닮았다. 그가 찾고 있는 두 명의 여자애 가운데 한 명을.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그 가운데 한 명을 닮았다. 그녀가 이런 스니커를 신고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히로키는 몽둥이와 데이 팩을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시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손을 여자애의 어깨에 갖다댔다. 잠시 망설인 뒤, 이를 악물고 그 시체를 뒤집었다. 그러자 굳지 않은 새빨간 피가 몸 아래 들어나, 냄새가 더 강해졌다. 

　시체의 상태는 지독했다. 그 목걸이(그것이 히로키를 여기로 이끈 것이지만)위, 가느다란 목이 섬뜩하게 베어져 있었다. 이미 피는 다 흘러나왔는지, 상처는 그냥 뻥 뚫린 구멍처럼 벌어져 있었다. 마치 이가 아직 나지 않은 아기의 입처럼 보였다. 핏자국은 그 상처에서 아래로 흘러, 은빛 목걸이의 표면을 적시며 가슴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쓰러진 뒤에 일이겠지만, 입가와 콧등, 그리고 왼쪽 뺨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 보고 있는 눈 주위, 눈썹 끝에도 작은 핏방울이 묻었는데, 그 피는 이미 굳어 있었다. 

　에도 메구미(여자 3번)였다. 

 

　아니구나. 

　히로키는 시체의 처참함에 기가 질리기도 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휴하고 내쉬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 미안해, 메구미의 시체를 살짝 일으켜, 피웅덩이를 피해, 약간 떨어진 곳으로 옮겨 눕혀 주었다. 사후 경직이 시작되어 있어, 마치 인형을 다루는 듯한 느낌이다. 눕히고 나서 살며시 눈을 감겨 주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메구미의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 주려고 했지만, 메구미의 몸이 굳어 있어 잘 되지 않아 포기했다. 

　몽둥이와 데이 팩을 집어 들고 일어서, 다시 한 번 잠시 메구미의 시체를 내려다본 뒤, 히로키는 돌아서서 들어왔던 거실 쪽으로 서둘러 나갔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은 인원 25명】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슈야 곁에서는 가와다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계속 피우고 있었으며, 노리코도 잠자코 있다. 수풀 속에서 이따금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를 뒤덮은 나뭇가지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면, 그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그물 모양의 빛이 세 사람의 몸 위에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가만히 귀를 귀울이면 바다 쪽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숲 속의 공간이 마치 아주 평화로운 것으로 착각이 들 것 같았다. 물론 그건 가와다의 이야기로 일단 탈출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려야 한다. 경계만 게을리 하지 않으면, 지금 노리코가 부상을 당해 있다고는 해도, 자기들은 일단 세 사람이고 총도 두 자루나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슈야는 내내 한 시간쯤 전에 멀리서 들린 총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총소리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미무라 신지일지도 모르고, 스기무라 히로키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이 아니더라도, 아무도 해칠 생각을 갖지 않은 다른 클래스메이트일지도 모른다. 자기들은 가와다 덕분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애들은 지금도 공포에 떨고 있으며, 다음 순간에는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슈야는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가와다와 이야기를 했다. 가와다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리고 노리코가 부상을 당한 상태인 이상, 움직이면 좋은 표적이 될 것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자기들만 이렇게 편안히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는 전혀 탈출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른 애들을 믿으려고 했다. 그런데 자기들은 어쨌든 가와다의 말을 믿는다면 지금 탈출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험을 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이미 누군가를 죽인 녀석이─"의도적으로" 죽인 녀석이─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미코와 유키코가 죽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녀석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가 맞닥뜨린 아카마츠 요시오나 오오키 다츠미치도, 어쩌면 모토부치 교이치도 그런 녀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들이 자기들의 동료가 되고 싶어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동료가 되었다가 기회를 노려 자기들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애들만이라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대체 누가 제 정신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한 한 애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적"이 자기들 일행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고, 함께 있는 노리코와 가와다도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슈야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이 빙빙 제자리를 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결론은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운을 바란다고 하면 미무라 신지와 스기무라 히로키를 우연히 만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이 도대체 있기나 한 걸까? 

 

　「어이.」 

　또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가와다가 입을 열자, 슈야는 고개를 들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생각해봐야 방법이 없어. 지금은 너 자신과 노리코만 생각해.」 

　슈야는 눈썹을 치켜떴다.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니, 너는?」 

　「이따금은, 오늘처럼 맑은 날은 컨디션이 좋지.」 

　가와다가 대답하며 또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슈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 진짜니?」 

　「뭐가?」 

　「사카모치가 이야기한 거 말이야. 네게 사상적인 문제가 있다고 사카모치가 말했잖아.」 

　「아아!」 

　슈야는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무슨 일 있었어?」 

　가와다의 눈이 약간 장난끼를 띠고 있었다. 슈야는 그 눈을 마주 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렇다. 중학교에 올라왔을 때, 슈야는 원래 야구부와 음악부에 동시에 가입했는데, 승리 지상주의로 거의 군대 못지않은 규율을 지니고 있던 야구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야구는 공화국에서도 각광받는 스포츠이고, 국제 대회 중심의 국가 위신이 걸린 종목이다. 거북하게도 적국인 미제에서도 또한 야구가 성행했기 때문에, 올림픽 결승전에서 그 미제 팀에 패하기라도 하면 야구 연맹 간부는 거의 할복자살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특히 서투르더라도 진짜 야구를 하고 싶었더 애들에게 고문인 미나토라는 선생이 어찌나 심하게 구는지, 겨우 2주 만에 탈퇴서를 내던질 때, 열 받은 슈야는 미나토와 공화국 야구 연맹을 싸잡아 욕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로이와 중학교 야구부의 골든 루키였던 슈야는 록큰롤의 신성(자칭)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고, 내신서에는 큰 벌점이 남았다. 그렇지만 사카모치가 이야기한 것은 아마 그보다도 바로 그….

　「아니.」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였겠지, 아마. 음악부여서 미움을 산 걸 거야.」 

　「하하하.」 

　가와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진짜 기타 잘 치더라. 그래서 록을 듣기 시작한 거야?」 

　「아니, 록을 듣고 나서 기타를 시작했어. 내가 살던 시설에서….」 

 

　슈야는 "자혜관"에서 3년 전까지 잡일을 하던 마흔이 넘은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활달한 사람이었고,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목덜미 위에서 위로 거꾸로 빗어 올리듯이 하고 다녔다. (「다크 테일이란 거야.」) 

　지금은 남화태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있을 것이다. 슈야와 요시토키를 비롯한 자혜관의 아이들은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작별 인사를 할 때, 본인도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 그냥 「다시 돌아올게, 슈야. 요시토키. 곡괭이를 흔들면서 당분간 "감옥 록(jailhouse rock)"이라도 불러야지.」 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요시토키에게는 낡은 자동 손목 태엽시계를, 슈야에게는 깁슨 일렉트릭 기타를 주었다. 슈야가 처음 가져본 자기 기타였다. 그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는 지나친 노동과 영양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테이프를 줬어. 자기가 쓰던 기타도 줬고.」 

　「으음.」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있어? 딜런? 레논? 아니면 루 리드?」 

　그러자 슈야는 가와다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많이 아네?」 

　약간 놀랐다. 

 

　대동아 공화국에서는 록 음악 소스를 구하기는 쉽지가 않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음악은 파퓰러 음악 판정학회라는 조직이 엄격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종류의 록 종류는 세관에서 걸러진다. 마약 못지않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한 번 현 정부 사무소에서 포스터까지 본 적이 있는, 머리가 길고 지저분하게 그려진 로커의 사진에 주차 금지 표지판처럼 비스듬하게 그어진 선. "스톱 더 록". 대단해.) 공화국 정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은 민중들을 부추기는 듯한 비트도 그렇지만, 특히 가사 때문일 것이다. 밥 말리도 그렇지만, 레논의 노래─"꿈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언젠가 너도 손을 잡아 주지 않을까? 그때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이런 가사가 이 나라에는 곤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레코드 숍에 가면 앞에 늘어놓은 것은 대부분 진부한 국산 아이돌 팝이나 가요뿐이다. 슈야가 들은 가장 과격한 수입 음악은 프랭크 시나트라 정도였다.(분명히 "마이 웨이"는 이 나라에 어울리는 곡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슈야는 그 잡일을 하던 다크테일 아저씨가 수용소에 보내진 것도 그게 원인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어, 남겨준 테이프나 기타도 무서운 것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중학교에 올라와 음악부에 들자, 록을 좋아하는녀석도, 일렉트릭 기타를 갖고 있는 녀석도 꽤 있었다. 물론 그 니타니 가즈미도 대단한 록 팬이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시대는 변한다" 나 "스탠드!"의 복제 테이프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믿을 수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시로이와 중학교의 학생 가운데 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고 앙케이트를 돌려 본다면, 아마 거의 90퍼센트 이상의 애들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들어본 적이 있는 녀석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할 테니, 실제로는 전원이 노라고 대답하겠지만.) 물론 아까부터 실로 폭넓은 지식을 드러내고 있는 가와다여서, 록을 어느정도 들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딜런이나 레논 같은 경우는 아주 과격한 아티스트들이다.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 

　가와다가 말했다. 

　「나는 고베라는 대도시에서 자랐어. 가가와 같은 촌에서 자란 애들하고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되지. 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고 있어.」 

　슈야는 입술을 약간 비죽이며, 「얘기했잖아.」 라고 했다. 우울하던 마음이 약간 개는 느낌이었다. 슈야가 말을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스프링스틴이야. 밴 모리슨도 좋고.」 

　가와다가 바로, 「"내일 없는 폭주"는 좋지. 모리슨이라면 나는 "하느님이 빛날 때"가 좋아.」 라고 해, 슈야의 눈이 다시 한 번 커졌다.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빠삭하구나!」 

　가와다도 웃어 보였다. 

　「얘기했잖아. 난 대도시 출신이야.」 

 

　슈야는 노리코가 잠자코 있자, 이야기에 끼어들이려고 물었다. 

　「노리코는 록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노리코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 몰라. 어떤 음악이야?」 

　슈야가 씨익 웃었다. 

　「가사가 멋져.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기들 문제를 제대로 노래로 표현하는 음악이지. 물론 사랑이라거나 하는 것도 노래하지만, 때로는 정치 문제나 사회문제, 생활이라거나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도 노래해. 말이 있고, 그걸 잘 전달하기 위한 멜로디와 비트가 있어. 예를 들면 "내일 없는 폭주"에서 스프링스틴이 노래하지─.」 

　슈야는 그 곡의 끝 부분을 외었다. 

 

　"웬디, 둘이 함께 하면 슬픔을 안고서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너를, 네 영혼 속의 광기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진짜 바라는 곳에 이르겠지. 그리고 햇빛 속을 걸을 거야.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우리 같은 떠돌이들은 계속 달릴 수밖에 없어. 그렇게 태어난 거야, 우리들은." 

 

　그리고 「이런 식이야」 라고 약간 틈을 두었다가,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불렀다. Trsmps like us, baby we were born to run. 노리코를 보며 말했다. 

　「언제 같이 들어보자.」 

　노리코가 눈을 약간 크게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얼굴에 환하게 퍼져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리코는 왠지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슈야는 자기도 피곤했기 때문에 그걸 눈치 채지는 못했다. 

　슈야는 이어서 가와다에게 말했다. 

　「다들 록을 좀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이런 나라는 무너지고 말 거야.」 

 

　그렇다. 노리코가 아까 "모두 아무것도 모르니까" 라고 했지만, 슈야에게는 이런저런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록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록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와다가 짧아진 "와일드 세븐"을 천천히 땅바닥에 눌러 비벼 껐다. 또 새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슈야!」 

　「왜?」 

　가와다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록에 진짜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니? 정부가 두려워할 만한 힘이?」 

　슈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가와다는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결국 우리들의 불만을 흡수해서 김을 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 지금도 위법이니 뭐니 하지만, 어쨌든 들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록을 들을 수 있잖아. 그것도 김 빼기야. 그런게 바로 이 나라의 교활한 면이라고 하는 거지. 어쩌면 정부가 기꺼이 록을 권장할지도 몰라. 도구로서 말이야.」 

 

　슈야는 뺨이 터질 듯한 쇼크를 받았다. 록은 슈야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악보가 그의 성경이고, 스프링스틴이나 밴 모리슨은 그에게는 예수의 열두 제자와도 같았다. 물론 클래스 메이트들이 계속 죽어 쇼크에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큰 쇼크는 아니었지만. 슈야는 갑자기 시무룩해져, 천천히 말했다. 

　「그럴까?」 

　가와다는 몇 차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금지하느니 권장하느니 할, 그런 건 아니라는 거야. 듣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녀석이 듣는 거지. 안 그래?」 

　슈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덧붙였다. 

　「가와다, 대단하구나. 그렇게 정확하게 사물을 볼 줄 알다니.」 

　가와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슈야는 「그렇지만.」 이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가와다가 새 담뱃갑을 뜯으면서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난 록에는 역시 힘이 있다고 생각해. 플러스의 힘이야, 그건.」 

 

　그랬다. 노리코가 자기에 대해 말할 때 이야기한 대로. 

　가와다가 씨익 웃었다. 담배를 입가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말했다. 

　「실은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자 슈야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대로구나.」 

　가와다가 말하자, 슈야는 「뭐가?」 라고 물었다. 

　「지금은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 말이야.」 라고 가와다가 말했다. 

　「위 워 본 투 런.」 

 

【남은 인원 25명】

 

 

　미나미 가오리(여자 20번)는 어렴풋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몸을 일으켰다. 섬 중앙에서 약간 동쪽인 북쪽 산기슭에 해당하는 잡목숲 안이었다. 지도상의 구역으로는 F=8 에 해당한다. 권총을 다시 고쳐 잡았다. 권총은 시그 다우엘 p230 9mm로,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도 가오리의 손에는 꽉 차는 것 같았다. 

　가오리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여기 숨고 나서 몇 번이나 이런 소리가 났었다. 그때마다 결국 바람의 장난이거나 무슨 작은 동물(들고양이라도 있는 걸까?)이라는 걸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이로 깨물어서 핏방울까지 맺혔던 입술에 또 새 상처가 생겼다. 이번에야말로 적일지도 모른다. 

 

　적! 그렇다. 클래스 메이트가 자기를 공격해 올 것이다. 분교를 출발할 때 보았던 덴도 마유미나 아카마츠 요시오의 시체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 자기가 분교를 나왔을 때 정면에 있던 숲 속에서 자기를 부르던 목소리. 그건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였던 것 같다. 어두운 수풀 속에서 유키에 말고도 몇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었다. 어둠 속에서 유키에가 소리 죽인, 그러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오리! 함께 있자! 여자애들뿐이야! 괜찮아!" 

　그렇지만 그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믿을 수는 없다. 오히려 함께 있으면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 가오리는 유키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다. 

 

　이번에는 진짜 "적"인가? 지금 저 소리는? 

 

　권총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로 잠시 기다렸지만 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더 기다렸다. 역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오리는 휴, 하고 숨을 내쉬더니, 무릎을 세운 자세를 풀고 다시 수풀 속에 주저앉았다. 뺨 언저리에 타원형의 풀잎이 스쳐, 기분이 좋지 않아 앉은 위치를 약간 이동했다. 잎이 닿은 곳을 손바닥으로 몇번이고 문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여드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거기다 풀독 같은 것까지 옮아 곪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어차피 죽을 거라고 해도 그건 싫다. 그런 건. 

 

　그런 생각을 하자 싸늘한 기운이 가오리의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죽는 건가? 나는? 죽는 건가? 그런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거의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죽는 건가? 죽는 건가? 이명처럼, 혹은 잘못 만들어진 CD플레이어나, 흠집난 음반이 똑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할 때처럼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죽는 건가? 가오리는 거의 필사적으로 목에 걸려 있는, 놋쇠로 만든 로켓을 세일러복 가슴께에서 끄집어냈다. 그걸 여니 머리가 긴, 상큼한 미소를 지은 얼굴이 가오리에게 웃음을 보냈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가오리의 심장 박동은 속도가 상당히 낮아져, 마침내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것은 아이돌 그룹, "플립 사이드" 가운데서도 여자애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즈루기자키 쥰야의 사진이었다. 그 특제 로켓은 팬 클럽 회원에게만 나누어 준 것으로, 시로이와 중학교에서도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뿐인,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하긴 대부분의 요즘 여자 애들은 이런 걸 보면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로켓이라고 하는 것이 낡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가오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 쥰야. 나를 지켜줘. 

　즈루기자키 쥰야의 사진은 "걱정 마"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우리들 노래 『은하의 매그넘』 부를까?") 그러자 가오리는 호흡도 상당히 편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진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어, 쥰야. 나는 반장과 함께 있어야 했었을까? 그러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아니, 그런 건 아닐 거야. 

 

　느닷없이 가오리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도 보고 싶었다. 언니도,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보고 싶었다. 욕탕에 들어가서 여드름에 크림을 바르고, 거실의 편한 소파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면서 "플립 사이드"의 레귤러 프로그램 비디오를(이미 몇 번이나 봤지만.) 보고 싶었다. 

　「쥰야, 나를 지켜줘. 제발. 나, 미칠 것 같아.」 

　자기가 소리를 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들린 순간, 가오리는 정말로 자기가 미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점점 더 흘러나왔다.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나, 가오리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건 아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눈물에 젖은 눈으로 휙 돌아보았다. 수풀 사이로 교복 차림의 그림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스기무라 히로키(남자11번)였다. 뒤로 돌아와 있었구나!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공포에 질려, 가오리는 거의 아무 생각도 없이 두 손으로 권총을 들어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이 손목에 전해 왔다. 금빛 탄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라, 반짝 하고 빛났다. 히로키의 모습은 그 전에 재빨리 수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사삭 하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그 소리도 인해 사라졌다. 

 

　가오리는 한동안 총을 든 자세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낚아채듯이 짐을 집어들고, 히로키가 사라진 방향과는 반대쪽 수풀 속으로 달려나갔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스기무라 히로키는 자기를 죽이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말도 걸지 않고 몰래 접근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분명히 스기무라 히로키는 총을 갖고 잊지 않았다. 내가 총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서둘러 도망친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리고 서둘러 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스기무라 히로키의 나이프나 다른 뭔가에 가슴이 찔렸을 것이다. 나이프! 방심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가차 없이 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죽는다! 아아, 이런 건 정말 싫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 욕탕. 여드름 크림. 코코아! 비디오. 플립 사이드. 쥰야. 가차 없이. 쏜다. 쏜다! 코코아. 쥰야. 여드름! 크림! 가차 없이! 쥰야. 

 

　가오리의 몸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일러복 가슴에서 로켓의 뚜껑이 열린 채, 즈루기자키 쥰야의 상큼한 미소를 띤 얼굴이 상하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차 없이. 쥰야. 죽을 거야! 쏜다. 엄마. 언니! 아빠. 쏜다! 쏜다! 뉴 앨범! 가오리는 미쳐가고 있었다. 

 

【남은 인원 2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