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4

　처음 만났을 때는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코 유키코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본 쇼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던 세토 유타카도, 얼마 지나자 진정이 된 것 같았다. 미무라 신지는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숲 속에서, 다시 귀를 기울였다.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은 없다. 다만,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며, 울고 있었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를 죽인 그 누군가는 유타카과 신지를 알아채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주의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행동하면 돼. 그러나 필요할 때는 신경을 써라.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을 잘못하지 말라는 거다.」 

 

　그 말은, 신지가 존경하는 숙부가, 농구를 비롯해 신지에게 모든 걸 가르쳐 준, 즉 오늘의 "더 서드 맨"이라 불리는 신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숙부가 해준 말이었다. 숙부는 신지에게 컴퓨터의 기초까지도 가르쳐 주었는데, 특히 위법인 해외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때 같은 경우에도, 조심해서 나쁜 것 없다, 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말대로 지금은 신경을 바짝 쓱 있어야 할 때다. 그건 틀림없다. 

 

　「저어, 신지.」하는 유타카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지는 다시 유타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타카는 나무 등치에 등을 기대고, 끌어안은 무릎 사이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나, 그 분교 앞에서 너를 기다릴걸 그랬어. 생각해 보니, 그렇게 했다면 처음부터 함께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고개를 들어 신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무서워서….」 

　신지는 왼손에 베레타를 쥔 채로 팔짱을 끼었다. 

　「글쎄, 그건 위험했을지도 몰라.」 

 

　그렇다. 그걸 설명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유타카는 모를 테지만, 분교 앞에 덴도 마유미와 아카마츠 요시오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거기까지 생각했는데, 신지는 유타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면서, 양족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먼지가 앉은 얼굴에 가느다란 흰 줄이 생겼다. 

　「왜 그래?」 

　신지가 부드럽게 물었다. 

　「나….」 

　유타카는 신지가 상처를 치료해 준 손을 들어, 감겨 있는 수건의 끄트머리로 눈을 닦았다. 

　「너무, 한심해서. 나는 덜렁거리기만 하고, 겁만 많고….」 

　일단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가슴에 담아 놓았던 것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그 애를 구해 주지 못했어.」 

　신지는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리며, 엎드려 있는 유타카를 보았다. 그건 신지가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집했던 말이었다. 신지는 천천히 말했다.

　「가나이 말이야?」 

　유타카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는, 언제였던가, 유타카의 집, 그의 방에서 유타카가 약간 자랑스럽게, 그리고 약간 부끄러운 듯이 이야기하던 걸 기억해냈다. 

　「나, 가나이 이즈미가 좋아.」 

　그러나 그 가나이 이즈미는 이미 죽었다. 오전 6시 방송을 통해 그 죽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섬 어디선가 죽은 것은 틀림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신지가 말했다. 

　「가나이가 너보다 먼저 출발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유타카는 여전히 엎드린 채로 말을 했다. 

　「가나이를 찾아나서지도 못하고─무서워서─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녀는 괜찮을 거다, 라고만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려고 했었어. 그런데, 6시에 벌써….」 

　신지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숲 속에서 또 작은 새가 짹짹거리며 울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더 있는지, 새 울음소리가 겹쳐져 들렸다. 유타카는 불쑥 고개를 들고 신지를 보았다. 

 

　「나 결심했어.」 

　「뭘?」 

　유타카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신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 복수할 거야. 그 사카모치라는 놈이건, 정부 놈들이건 모두 죽여 버릴 거야.」 

 

　신지는 약간 놀라며,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자기도 이 게임에, 그리고 그걸 조작하고 있는 정부에도 완전히 열을 받았다. 나나하라 슈야의 친구, 구니노부 요시토키는 신지 자신이 직접 어울리거나 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너무 느긋한 것 같아서 신지 눈에게는 뭔가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주 좋은 녀석이었다. 그 요시토키를 정부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죽여 버렸다. 그리고 후지요시 후미요, 지금 유타카가 이야기하는 가나이 이즈미와 조금 전에 자기가 보고 있는 가운데 죽어간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 그리고 다른 친구들, 그러나…. 

 

　「그렇지만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야.」 

　「상관없어, 죽어도. 내가 가나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니까.」 

　유타카는 말을 멈추고, 신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니? 나처럼 배짱 없는 녀석이 이런 이야기하니까?」 

　「아니….」 신지는 말끝을 끌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신지는 유타카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나뭇가지로 덮인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까불까불하는 유타카가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해서 깜짝 놀란 것은 아니었다. 유타카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런서 내내 친구로 지냈다. 죽어도 좋다. 가나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런 식으로 한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신지는 빛이 표면에 닿아서 선명한 황록색으로 보이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자기는 지금까지 여러 명의 여자애들과 사귀어 왔고, 또 실제로 세 명의 여자애와 자기도 했지만(중학교 3학년 치고는 대단한 스코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 여자애를 좋아해 본 적은 없다.

　부모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과 뭔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밖에 여자를 만들었고(회사에서는 우수한 관리직이었던 것 같지만, 그리고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독립하지도 못한 자식으로서는 주제넘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꽤 속된 남자였다. 그래서 일종의 선명한 빛을 지니고 있던 숙부와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질책하지 않고, 창작 꽂꽂이다, 여성 서클이다 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자기 세계에 파묻혀 지냈다. 그들은 무의미한 대화만 나누었다. 필요한 것은 서로 해 준다. 그렇지만 서로 믿지도 않고, 도울 일도 없고, 그저 조용히 증오를 쌓으면서 천천히 늙어가고 있다. 하긴 세상 부부라는 게 대부분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농구부 천재 가드 미무라 신지는 농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기가 아주 좋았다ㅡ여자애들과 쉽게 사귀었다. 키스도 쉽게 했다. 어느 정도 지나면 자는 것도 간단했다. 그러나ㅡ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 적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일에 대해서나 정확한 답을 갖고 있는 숙부와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숙부는 이미 2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지가 왼쪽 귀에 하고 있는 피어싱. 이건 숙부가 "내가 좋아했던 여자의 것이야.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만" 이라고 하며,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이다. 신지는 숙부가 돌아가신 뒤, 그것을 자기 멋대로 유품으로 물려받았다. 분명히 숙부라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건 너 자신이 삐뚤어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신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고, 그 애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얼른 정말 좋아하는 애를 찾아라." 

 

　그렇지만, 역시 아직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세살 아래인 조숙한 여동생 가오미가, 「오빠는 연애결혼하고 싶어? 아니면 중매결혼도 괜찮다고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신지는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지도 몰라, 라고. 

　가오미, 신지는 그제야 여동생을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너는 행복한 연애를 하고, 행복한 결혼을 해라. 오빠는 아물도 제대로 된 연애도 못 해본 채로, 이 세상과 작별할지도 모르겠구나. 신지는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좀 물어봐도 괜찮겠니, 유타카? 실례가 되는 이야기라면 미안하지만.」 

　유타카가 어리둥절해 하면서, 「뭔데?」 라고 물었다. 

　「가나이, 어디가 좋았어?」 

　유타카가 신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눈물에 젖은 얼굴로 살짝 웃었다. 고인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역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나이는 아주 예뻤어.」 

　「예뻐?」 

　신지가 되묻다가, 당황해서, 덧붙였다. 

　「아니, 예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나이는 그다지 못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미인이라고 하면 반에는 치쿠사 다카코라거나(아, 그건 내 취향인가?), 오가와 사쿠라라거나(하긴 그녀에게는 야마토모 가즈히코가 있었지만), 그리고 소마 미츠코가(뭐, 이 애는 이야기하지 말자. 아무리 예쁘더라도) 있었다. 유타카는 또 살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조는 듯이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있을 때 예뻤어.」 

　그리고, 계속 해서 말을 했다. 

　「교실의 베란다에 있는 꽃에 물을 주면서 기쁜 듯이 이파리를 만질 때도, 예뻤어.」 

　「운동회 때, 릴레이에서 바통을 떨어뜨리고, 나중에 울 때도 예뻤고.」 

　「쉬는 시간에 나카가와의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을 때도 아주 예뻤어.」 

 

　ㅡ아아. 

　유타카가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서, 신지는 왠지 그냥 이해가 되었다. 유타카의 말은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부, 저도 조금은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유타카가 말을 마치고, 신지를 바라보았다. 

　신지는 부드러운 눈으로 유타카를 바라보면서, 약간 고개를 숙이며 웃어 보였다. 

 

　「너, 나중에 커서 코미디언인지 뭔지가 되겠다고 했는데, 시인이 되겠다.」 

　유타카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신지가 말했다. 

　「저어.」 

　「뭐?」 

　「나,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가나이는 행복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좋아해 주는 녀석이 있다는 걸 알고, 분명히 지금쯤 천국에서 울고 있을 거야.」 

　아주 시적이었던 유타카의 말에 비하면 자신의 그런 이야기는 진부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유타카의 눈에서 또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뺨에 하얀 선이 두 줄, 세 줄이 되어 줄무늬를 만들었다. 

　「정말 그럴까?」 

　신지는 목이 메어 이야기하는 유타카의 어깨에 오른손을 얹고 살짝 흔들었다. 

　「그래.」 

 

　신지는 숨을 한 번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복수하겠다면 내가 도와줄게.」 

　유타카가 눈물이 가득한 눈을 크게 뜨고 신지를 보았다. 

　「정말?」 

　「그래.」 

 

　그랬다, 전부터 계속 생각하던 게 있었다. 아, 여자애 문제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결국 이 거지 같은 대동아공화국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전에, 유타카하고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유타카는 분명히. "나는 그런거 상상도 하지 못해" 라고 했었던가? 그리고 "뭐, 코미디언 정도 되지 않겠어?" 라고 했었다. 그 농담 섞인 대답에 신지는 웃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좀 심각했다. 아니, 유타카도 속으로는 무척 심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타카는 그걸 감히 입 밖에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 자기가 나나하라 슈야에게 "이건 성공한 파시즘이란 거야.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어?"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맞다. 이 나라는 미쳐 있다. 이 엿 같은 게임뿐만이 아니다. 중부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행동을 하면 끝장이다.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린다. 또는 면죄를 받더라도, 정부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정부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정부 방침에는 절대 복종하며 그저 하루하루의 사소한 행복만을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부당하게 빼앗기더라도 그저 비굴하게 참을 뿐이다. 

 

　그러나 신지는, 이런 것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걸 정면으로 문제 삼지는 않고 있다. 나나하라 슈야도 불법인 수입록 음악을 들으며 울분을 달래는 정도는 하지만ㅡ그러나, 그것뿐이다. 그렇지만 자기는ㅡ적어도 자기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게 아닌가? 세상일에 대해 알아갈 수록, 그런 생각은 강해져 갔다. 그리고 2년 전에 사고가 있었다. 숙부의 죽음. 표면상 그것은 사고로 처리되었다. 근무하는 기계공장에서 혼자 야근을 하다가 감전사했다고 하는 설명과 함께, 경찰로부터 시체 인수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숙부는 그 이전부터 약간 이상했다. 보기 드물게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신지가 평소처럼 숙부의 PC를 만지면서,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자, 숙부는, 「아니, 그냥, 옛날 친구가….」 라고 말하다가, 「아아, 아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옛날 친구. 

 

　숙부는 거의 옛날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항상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신지는 숙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다. 또 숙부의 형인 아버지에게 물으면, 그런 건 네가 몰라도 돼, 라고 했다. 다만 숙부의 그 합법, 비합법의 범위를 가리지 않는 지식의 넓이, 세계나 사회를 설명할 때에 항상 그 바닥에 깔리는 이 나라에 대한 혐오, 혹은 증오. 그리고 일종의 그림자 같은 것을 언뜻 내비쳤다. 한 번은, 신지가. 「숙부는 정말 대단해. 멋져.」 라고 말했을 때였던 것 같다. 숙부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신지. 나는 멋지지 않아. 멋지게 살려면 이 나라에서는 살 수가 없어. 나는 이미 죽은 거야.」 

 

　이런저런 일들을 바탕으로 신지가 미루어 생각한 것은 결국, 숙부는 뭔가 정부에 반대하는 일에 한때 관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발을 빼고 있다ㅡ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때, 옛날 친구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숙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분명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아마ㅡ신지는 그 때 생각했다.

　숙부는 옛날 친구ㅡ한동안 연락을 끊고 있던 옛날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망설이기는 했을 테지만 무슨 일인가를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이 나라의 경찰은 재판 없이도 국민을 처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보통 직장이건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그렇지만 특히 그 신분이 나름대로 지위가 있는 경우에는, 은밀하게 "사고사" 라고 하는 형식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이따금 있었다. 역겹게도 신지의 아버지는 잘 나가는 회사의 잘 나가는 중역이며(즉, 공화국의 일반 국민 직계 등급으로는 실로 일등 노동자. 정부의 고급 관료를 제외하면 최고 지위다), 그리고 더 역겹게도,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 한심한 아버지는 숙부를 그런 형식으로 "처리한다"는 데에 대해서 아마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정부에 동의를 표시한 셈이 된다. 어쨌든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대체 그 숙부가 감전사라니, 그렇게 얼빠지게 죽을 수도 있는가? 지금 신지가 하고 있는 피어싱의 원래 주인도 아마 그런 숙부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지는 숙부는 살해당했다는 분노에 떨면서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이 나라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물론 숙부의 그 이야기, "정말 멋지게 살려면 이 나라에서는 살 수가 없어"는 경고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 경고대로 숙부는 죽었다. 그러나 신지는 숙부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에 생각했다. 나는ㅡ당신이 옛날에 포기했던 일을 할 수 없을까, 하고. 나는ㅡ아름답게 살고 싶다, 당신이 그걸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라고. 

　물론 그런 생각은 막연한 것이었고, 지금까지 뭔가 연실적인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반정부 조직 같은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은 자기도 그런 조직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애당초 숙부가 이야기했었다. "조직이나 운동 같은 건 별로 믿지 않는 게 좋아.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야"라고. 또 자기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렇지만 이제, 만약에 운이 좋아 이 엿 같은 게임에서 빠져나가게 되더라도, 자기는 수배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컷 해도 괜찮지 않은가? 어느 조직을 이용하건, 자기 혼자 하건 상관없다, 어쟀든.... 이 나라를 적으로 삼아, 나는 실컷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을 거야, 그런 생각이 거의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유타카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은 마무리 정리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세한 사정 이야기는 그만 두고, 지금은 단지 또 하나의 솔직한 마음만을 유타카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난 네가 부러워. 그토록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게 말이야. 그래서 네가 한다면 같이 하겠다는 거야.」 

　유타카의 입술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 정말 그러겠다는 거야?」 

　「그래, 정말이야.」 

　신지는 다시 유타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말이야, 지금은 일단 도망치는 걸 생각하자, 사카모치 같은 녀석 한 놈 죽여봤자 정부는 까딱도 하지 않을 테니까. 한다면 더 큰 표적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유타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후, 유타카가 눈을 닦자, 신지가 입을 열었다. 

　「유타카, 혹시 너 누구 보지 않았어? 유미코와 유키코 말고.」 

　유타카는 자꾸 문질러서 빨개진 눈으로 신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그 분교에서 바로 도망쳤어. 그 뒤로는 내내ㅡ 너는? 봤어?」 

　신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내가 출발할 때, 너는 모를 테지만, 덴도 마유미와 아카마츠 요시오가 분교 바로 앞에 죽어 있었어.」 

　유타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래, 덴도는 출발 직후에 당한 것 같아, 아마.」 

　「아카마츠는?」 

　신지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아카마츠가, 덴도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자 유타카는 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그래, 그렇지 않으면 제일 먼저 나간 아카마츠가 거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아카마츠가 돌아와서, 아마도 어디선가 활을 쏘아ㅡ화살이 꽂혀 있었어, 덴도와 아카마츠의 시체에는. 같은 화살이ㅡ덴도를 죽였을 거야. 그리고 다음에 나온 녀석도 죽이려고 하다가, 거꾸로 그 무기를ㅡ화살을 보면 아마 보우 건이겠지ㅡ빼앗기고 당했다는 시나리오를 생각 할 수가 있겠지.」 

　「다음이라면….」 

 

　「나나하라 슈야잖아.」

　유타카는 또 눈을 크게 떴다. 

　「슈야가? 슈야가 죽였어? 아카마츠를?」 

　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라. 그렇지만 적어도 슈야는 아카마츠에게 당하지 않았어. 그 다음 녀석도 당하지 않았고. 슈야는 원래 아카마츠를 기절시키기만 했을지도 몰라. 걔는 좀 마음이 여린 구석이 있잖아. 그리고 아카마츠는 그 다음에 나온 누군가에게 당했겠지.」 

 

　신지는 약간 생각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나하라 슈야는 나카가와 노리코를 데리고 도망치느라 아카마츠를 마무리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르지.」 

　「노리코를? 노리코는 총을 맞았잖아. 그래서 신지가 그때….」 

　「그래.」 

　신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게임을 연기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그렇게 해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해 본 거겠지. 어쨌든 노리코는 슈야 다음이잖아. 슈야는 나가기 전에 분명히 노리코에게 신호를 보냈어. 나는 자리가 가까워서 알 수 있었어.」 

　유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노리코가 총에 맞았으니까, 슈야는….」 

　「그래, 요시토키 생각도 했겠지.」 

　유타카는 이해가 됐다는 듯이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그런가? 요시토키가 노리코를 좋아했었지. 그래서 슈야는 노리코를 데리고 간 거구나.」 

　「그래. 뭐 그게 아니더라도, 슈야라면 아마 자기 뒤에 나오는 녀석들 전부를 모으려고 했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아카마츠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야. 노리코는 부상당했고. 그래서 아마 노리코만 데리고 도망쳤겠지.」 

　유타카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떨구었다. 

　「슈야는, 어디 있는 걸까? …슈야하고 네가 모이면 최강이 될 텐데.」 

 

　신지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학급 대항 때, 신지가 나나하라 슈야와 함께 보여준 절묘한 콤비네이션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건 신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나하라 슈야가 함께 있다면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운동 능력만이 아니라 나나하라 슈야에겐 어지간해선 끄덕도 않는 일종의 배짱이 있었고, 신지와 통하는 순간적인 판단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이다. 그 순진한 (그리고 신지 입장에서 보면 약간 경솔하다는 생각도 든다) 녀석이 자기가 살아 남기 위해 클래스 메이트를 죽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지는 또 오른손을 뻗어, 유타카의 어깨에 얹었다. 유타카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난 고마워.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자 유타카가 또 울상을 지었다. 신지는 힘 있게 웃어 보였다. 유타카도 울지 않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신지가 말을 이었다. 

　「일단 시체 이야기는 그만두고, 나는 생각한 게 있어. 그 분교 운동장 앞에 숲이 있잖아.」 

　「응, 있었지.」 

　「거기 누군가 있었어. 그것도 여러 명이.」 

　「그래?」 

　「그래.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잇었을 거라고 생각해. 하긴 내 뒤면 모토부치 교이치, 야마토모 가즈히코, 마츠이 치사토, 미나미 가오리, 야하기 요시미인가? 다섯 명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내게 말을 붙이려는것 같지는 않았어. 여러 명이니가 아마 당장 적이 될 녀석들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나도 내가 먼저 끼워달라고 할 이유는 없지. 너는 아까 나를 기다리는 게 좋았을 거라고 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건 무리야. 사실 아카마츠가 돌아와서 덴도를 죽였잔항. 그 숲 속의 녀석들도 누군가가 돌아와서 보았다면 여지없이 당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긴 그 녀석들도 충분한 무기를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거길 금방 떠났어.」 

 

　신지는 잠시 멈추고, 혀 끝으로 입술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두 사람을 더 보았어.」 

　유타카가 또 눈이 둥그레지며 반문했다. 

　「그래?」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뭘 좀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녔지. 그런데 한 명은 여자였어. 그쎄, 머리를 치켜세운 게ㅡ아마 시미즈 히로노였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이 산 기슭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수풀 건너편에서 이동하는 게 보였어.」 

　「말, 걸지 않았어?」 

　신지는 어깨를 움츠렸다. 

　「약간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소미 미츠코 패거리들은 무서워.」 

　유타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사람, 가와다 쇼고를 봤어.」 

　유타카가 아아-라고 말하듯이 입을 약간 벌렸다. 

　「가와다를?」 

　유타카는 다른 클래스메이트 몇 명과 마찬가지로 한 살 위인 가와다의 성을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좀 무섭지, 그래서?」 

　「아아, 나는 한 패가 되기는 싫었어, 그렇지만….」 

　신지는 약간 시선을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가, 바로 다시 유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쪽에서도 나를 본 것 같았어. 나는 물건을 찾기 위해서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는데, 마침 그 녀석이 그 집 앞에 있었어. 바로 밭둑에 엎드리더라. 쇼트 건 같은 걸 들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열린 문 뒤에 숨어 있었는데 녀석은 잠시 내 쪽을 보더니, 바로 자취를 감추더라고. 공격해 오지는 않았어.」 

　유타카가 말했다. 

　「흐음, 그러면 적어도 적은 아니라는 거로구나, 가와다는.」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몰라. 나도 총을 갖고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서 공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그 녀석을 뒤쫓지는 않았어.」 

　「그래?」 

　유타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저, 나는 아무도 보지는 못했지만, 유미코와 유키코가 당하기 전에 다른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났지.」 

　「그거, 그 머신 건과는 다른 소리였어. 그것도 개네들을 노리코 쏜 걸까?」 

　「아니.」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아마 그 애들을 말릴 생각이었을 거야, 그 총을 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하면 위험하다는 건 뻔한 거니까. 총소리에 놀라서 그 애들이 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유타카는 약간 흥분한 듯이 몸을 디밀었다. 

　「그럼ㅡ그럼, 그 녀석은 적이 아니라는 거네, 적어도.」 

　「그렇지. 그렇지만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어느 쪽에서 쐈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렇지만 이미 그 녀석도 이동했을 거야. 그 머신 건을 가지고 있는 녀석에게 위치가 드러난 셈이니까.」 

　유타카가 약간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지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그렇다. 유타카가 누군가 믿을 만한 녀석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 녀석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녀석과 합류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자기가 믿을 수 있을 만한 녀석이라고 하면, 유타카도 믿을 수 있을 테니까, 만났다면 합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타카는 혼자 있었던 것이다. 별로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믿을 수 있는 녀석이 누구일까? 나나하라 슈야와 스기무라 히로키 정도인가? 그 다음엔 오히려 여자일까?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라거나 그 주변 아이들이라면─. 그러나 나는 우리 반 여자애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자꾸 여자애를 바꾸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거 참, 숙부. 역시 마음에 드는 여자애를 잡아 놨어야 하는 거였어요. 

　아니다. 유타카를 만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유타카라면 분명히 믿을 수 있다. 유타카가 물었다. 

 

　「저어, 신지. 뭘 찾으러 다녔다고 했지?」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 

　「근데 뭔데? 뭘 찾았어? 무기가 될 만한 거라거나, 그런 거? 나는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했지만.」 

　그러자 신지는 손목시계로 시선을 떨구었다. 이제 거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머신이 패스워드를 해석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신지는 일어서더니, 총을 바지 옆에 끼우고, 말했다. 

　「유타카, 잠깐 거기에서 좀 비켜 봐.」 

 

　유타카가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 뒤쪽에 키 낮은 나무가 땅을 기듯이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신지는 거기까지 걸어가더니, 그 수풀 안 쪽에 손을 디밀었다. 부속품 한 세트와 접속 코드를 신중하게 끄집어 냈다. 

　유타카는 눈이 동그래졌다. 신지가 꺼낸 것은 자동차 배터리(이건 전원이다), 반쯤 분해한 휴대전화, 그리고 한 대의 노트북 컴퓨터였다. 그 각각의 것들아 빨간 코드와 하얀 코드로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다. 액정 모니터 부분이 세워진 노트북은, 그 화면 표시가 정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ㅡ. 

 

　신지는 입술을 내밀고, 휘익, 하고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더니,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절전을 위해 슬립 모드에 들어갔던 노트북이, 하드 디스크의 회전 소리와 함꼐 가동되며, 흑백 모니터에 화면 표시가 나타났다. 화면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윈도 안에 마지막 행을 따라, 신지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뭐야. 모음을 바꿔 넣는 건가? 너무 단순해서 생각도 못했네.」 

　「신지, 이거.」

　유타카가 거의 감탄에 가까운 표정으로 말하자, 신지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기 위한 준비 운등으로,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유타카 쪽을 보고 히죽 웃었다. 

　「매킨토시 파워 북 150이란 거야. 이런 작은 섬에 이렇게 좋은 기계가 있을 줄은 몰랐어.」 

 

 

 

 

　야하기 요시미(여자 21번)는 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키는 걸 기다렸다가, 숨어 있던 민가의 뒷문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부락 남쪽 외곽이라, 에토 메구미가 죽은 집과는 꽤 떨어져 있지만, 애당초 요시미는 메구미가 거기서 죽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아침 방송에서 그 이름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 방송에서 고지한 금지 구역 이야기가 요시미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였다. 오전 11시가 되면 이 부락이 포함되어 있는 H=8구역 안에 있는 선수의 목걸이는 모두 폭발한다. 상대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뒷문은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나 있었다. 정면에 있는 집 벽까지는 1미터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요시미는 투박한 자동권총(콜드 거버먼트 모델 45구경이었다)을 고쳐 잡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 엄지로 스프링이 뻑뻑한 격철을 세웠다.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지만, 골목 좌우에는 인기척이 없다. 

　소마 미츠코 그룹의 불량소녀 치고는 다소 어린 느낌이 드는 요시미의 동그란 얼굴에 식은땀이 솟아나고 있었다. 

 

　겨우 한두 시간 전, 북쪽 산기슭 꼭대기에서 소리치던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의 모습은 숨어 있던 집 2층에서도 보였다. 그리고 그 따르르륵 하던 총소리. 틀림없다. 서로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고, 누구나가 요시미처럼 그냥 숨어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클래스메이트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발을 내딛어, 숨어 있던 집의 벽을 따라 살금살금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모퉁이까지 와서, 남쪽 방향으로 고개를 내미니, 완만한 경사를 따라 밭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가 줄을 지어 늘어서, 남쪽 산을 향하여 완만한 슬로프 모양을 이루고 있다. 주택도 요시미가 지금 있는 곳만큼 밀집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몇 개가 보인다. 어쨌든 남쪽 산 속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요시미는 데이 팩을 어깨에 다시 걸머지고,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고, 단숨에 발 끄트머리의 수풀을 향해 달려갔다. 

　몇 초만에 수풀에 이르러, 얼른 그 안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총을 두 손으로 잡고 좌우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다. 그렇게 잠깐 움직였는데도 요시미는 벌써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직, 아직 H=8구역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아니, 빠져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땅바닥에 흰 선으로 표시해 놓은 것도 아니라, 어느 정도 여유 있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 기분이 찜찜할 것이다. 지도 위에는 민가를 표시하는 푸른 점도 찍혀 있었는데, 부락 주위에는 그 점이 여기저기 모여 있어 잘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여기저기 찍혀있는 점들의 가장자리 쪽으로 구역 부분을 표시하는 라인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요시미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기기 소마 미츠코 그룹에 들어 있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누군가 아주 평범한, 믿을 수 있는 여자 아이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함께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소마 미츠코, 시미즈 히로노와 함께 꽤 나쁜 짓을 계속해 왔다. 도둑질이라거나, 협박 비슷한 짓을… 분명히, 내게는 싸울 생각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바로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사실 요시미는 지난밤에 집 안에 숨기 전에 여자애 한 명을 보았다. 자기가 부락 쪽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반대로, 그 애는 부락에서 나갔던 것이다. 그 애는 고토히키 가요코(여자 8번)였을까? 어쩌면 일단 마을에 숨었다가, 생각을 바꾸어 이동한 건지도 모른다. 그건 옳은 판단이 되는 셈이다. 부락은 맨 먼저 금지 구역 지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 애를 불러 세울 수도 있는 타이밍이고, 거리였다. 그러나 요시미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소마 미츠코와 시미즈 히로노는 어떨까? 나쁜 친구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친구였다. 그 애들을 혹시 만나게 된다고 하면 그 애들은 자기를 믿어 줄까? 그리고 나는 그 애들을 믿을 수가 있을까? 아니 그것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거의 절망감에 휩싸인 요시미는 또 그 남자애의 얼굴을 떠올렸다. 게임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가지, 내내 떠오르던 얼굴이다. 자기가 소마 미츠코와 어울리고 있다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좋아해, 라고 말해 준 남자애. 침대 위에서 부드럽게 키스하며 「너무 나쁜 짓 하지마.」 라고 타일러 준 남자 애. 나도 어쩌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준 남자애. 그 분교를 나올 때, 혹시 그가 밖에서 기다려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발 아래는 덴도 아유미와 아카마츠 요시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우물쭈물하다가는 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두사람을 죽인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이 섬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이미….

 

　요시미는 가슴이 아파 왔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일러복 소매로 눈을 쓱 문지르고, 수풀 속을 헤쳐 끄트머리까지 갔다. 조금만 더 이동해야만 한다. 다시 권총을 고쳐 쥐고, 다음에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키가 큰 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었다. 나무 밑에는 풀이 수북하게 나 있었다. 발 가운데를 다시 한 번 힘껏 달렸다. 작은 나뭇가지에 얼굴을 스치면서 수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살짝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파리가 겹쳐진 수풀 속을 제대로 다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인기척은 없는 듯했다. 요시미는 몸을 낮춘 채로 다시 살금살금 수풀 속을 나아갔다. 괜찮아. 괜찮아. 여긴 아무도 없어. 또 수풀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다시 남쪽 산의 숲이 눈 앞에 보인다. 크고 작은 나무들, 혹은 바로 앞에는 대나무 숲 같은 것이 무성해서, 그 뒤쪽으로는 숨을 곳이 얼마든지 많을 것 처럼 보였다. 좋아, 한번만 더, 저기까지. 문득 등 뒤에서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려, 요시미의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요시미는 얼른 자세를 낮추며 콜드 가버먼트를 두 손으로 잡고,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목덜미의 솜털이 거꾸로 일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 10미터 정도 앞의 나무 사이로 언뜻 검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따. 요시미의 눈이 겁에 질려 동그레졌다. 누가 있다, 누가! 

 

　요시미는 이를 악물고 그 공포감을 들이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이 수풀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요시미의 뒤를 이어 이 수풀로 들어온 것이다. 어째서지? 나를 보고 쫓아온 걸까? 요시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아니,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그저 나처럼 이동 중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들켰다면, 바로 이쪽으로 올 것이다. 나는 들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지나치게 하면 되는 것이다. 움직이면 안 된다. 지금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또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나고, 그 누군가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낮춘 요시미의 눈에, 나무 밑에 무성하게 난 풀잎 사이로 그림자가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옆모습을 보이면서, 요시미의 위치에서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아아, 다행이다, 이리 오고 있는게 아니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요시미는, 그러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미 그 그림자는 나무들 사이로 숨어 보이지 않았다. 단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지금, 어지러운 머릿속이 망상을 만들어낸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요시미는 불쑥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세를 낮추고 이동했다. 몇 미터 정도 가서, 다시 한 번 무성한 수풀 속에서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했다. 좁은 시야 속에 교복 차림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요시미는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 갖다 댔다. 권총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을 게 틀림없다. 아니, 요시미는 그 때 틀림없이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이 우연이 신의 장난이라면, 그 신에게.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었지만, 지금은 어떤 신이라도 좋았다. 감사의 기도, 아아, 신이시여, 정말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어선 요시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요지!」 

　그 소리에 구라모토 요지(남자 8번)는 순간 깜짝 놀라 몸을 떠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윽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딘가 라틴계처럼 보이는 얼굴, 속눈썹 짙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 요지가 완전히 무표정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물론 틀림없이 요시미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 얼굴에 바로 미소가 번졌다. 요시미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는 남자 애의, 평소의 웃는 얼굴이었다. 

 

　「요시미!」 

　「요지!」 

 

　요시미는 데이 팩을 짊어지고, 바거먼트를 오른손에 쥔 채로 요지에게 달려갔다. 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수풀 속의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요지가 요시미를 끌어안았다. 부드럽게, 그러나 힘 있게. 

　요지는 아무 말 없이 요시미의 입술에 살며시 자기 입술을 겹쳤다. 다음에는 요시미의 눈꺼풀 위에도 키스를 했다. 그리고 요시미의 콧방울에도 키스를 했다. 요지의 키스는 항상 그랬다.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요시미는 행복감으로 몸이 가득차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입술을 떼고 요시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요지가 말했다.

　「무사했구나. 걱정했어.」 

　아직 서로 껴안은 채로, 요시미도 대답했다. 

　「나도. 나도」 

　눈가에 눈물이 넘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요지가 먼저 출발하면서 힐끔 요시미를 돌아보았고, 요시미는 울상을 지으며 배웅했다. 그리고 자기도 출발해, 하룻밤을 지낸 지금까지 얼마나 불안했던가. 그런데 다시는 살아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우연이야.」

　요지가 새삼스럽게 놀란 듯이 말했다. 

　「응, 정말. 정말 그래. 이제 다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어. 이런 상황에서는.」 

　요지는 울먹이는 요시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자.」 

　요지의 말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요시미는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게임의 룰에 따르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뿐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가 있다. 시간 제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그 때까지 내내 함께 있을 것이다. 이제 누가 공격해 오면 요지가 지켜 줄 것이다. 

　아아, 신이시여, 정말 이건 꿈이 아니죠? 그렇죠? 

 

　요시미는 2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면서 요지를 만난 뒤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렸다. 특히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2학년 가을의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둘이 영화를 보러 갔었던 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찻집에서 하나만 시켜 나누어 먹던 딸기 쇼트케이크, 그 날 밤의 키스, 설날, 후리소데를 제대로 차려 입고 뽑으러 간 하츠모데(오미쿠지를 뽑으니 자기가 '小吉(약간 길하다)', 요지는 '大吉(크게 길하다)'이었는데, 요지는 그걸 바꿔 주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1월 18일 토요일, 요지네 집에서 첫날 밤을 지냈던 일.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요시미가 묻자, 요지는 부락 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집 안에 있었어. 그렇지만, 이 목걸이, 이거 11시가 넘어서도 저기 있으면 폭발하잖아. 그래서….」 

　당연히 요지는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요시미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게임 시작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디 있을까 생각했던 요지가, 바로 코 앞에 있었다니. 

 

　「왜 그래?」 

　「나도, 나도 집 안에 숨어 있었어. 분명히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거야, 우리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살짝 웃었다. 요지의 그 웃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요시미는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다는 행복을 곱씹었다. 그것은 사소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결코 그렇지 않다. 그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을 되찾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요지가 천천히 요시미에게서 몸을 떼었다. 요지의 시선이 갑자기 알아차린 듯이 요시미의 오른손으로 내려가자, 요시미는 자기가 아직 권총을 쥐고 있다는 것을 꺠닫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 참, 나도.」

　요지도 마주보며 웃었다. 

　「좋은 무기잖아? 나는 겨우 이런 건데.」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든 것을 보여주었다. 요시미는 요지가 그것을 들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자세히 보니 왠지 골동품 가게에서나 팔만한 단도였다. 손잡이에 감겨 있는 실은 낡았고, 손잡이와 칼날 사이의 작은 칼날 받침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요지가 칼을 살짝 뽑아 보였다. 칼날에도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요지는 칼을 다시 칼집에 넣고, 바지 밸트에 꽂았다. 

 

　「그거, 좀 보여 줘.」 

　요지가 말하자, 요시미는 권총 총구를 옆으로 향하게 하면서 요지 쪽으로 들어올렸다. 

　「요지가 가지고 있어. 난 어떻게 쓰는지도 잘 모르니까.」 

　요지는 끄덕이며 콜트 가버먼트를 받아 들었다. 손잡이를 쥐고, 안전 장치를 확인했다. 슬라이드를 당기자, 약실에 들어 있는 첫 번째 총알이 보였다. 격철은 일으켜 세워져 있었다. 

　「총알이 있니, 이거?」 

　물론 총의 탄창에도 이미 가득 탄알이 들어 있었지만, 요시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 팩을 뒤져 총알이 들어 있는 종이 상자를 요지에게 내밀었다. 요지는 한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더니 엄지로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하고 나서 자기 교복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순간, 요시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무슨 마술을 보기라도 하듯이 요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지가 자기를 향해 그 콜트 가버먼트를 불쑥 겨누었던 것이다. 

　「…요지?」 

　여전히 멍하지 서 있는 요시미로부터, 요지가 두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요지?」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른 요시미는, 그제야 요지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다. 속눈썹이 긴 눈, 매부리코에 가까운 큼직한 코, 폭이 넓은 입술. 각 부분은 평소와 다름이 없지만, 일그러진 입가에 이가 드러나 보이는 그 얼굴은, 요시미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말이 흘러나왔다. 

　「가. 얼른 어디로 사라져.」 

　요시미는 순간, 요지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지가 초조한 듯이 다시 말했다. 

　「빨리 가라고 하잖아!」 

　여전히 멍한 상태에서 요시미는 자기 입술이 말을 밀어내는 것을 들었다. 

　「…어째서?」 

　요지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초조함이 더 심해졌다. 

　「너 같은 계집애하고 함께 있기 싫다는 거야! 어서 꺼져버려, 제길!」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점차 속도가 빨라지는 듯이, 요시미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요시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요지는 총을 요시미 쪽으로 향해 겨눈 채로,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웃기지 마. 네가 형편없는 계집애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는 것도. 게다가 아버지 같은 나이의 남자하고 잤다는 것도. 난 다 알고 있어! 너 같은 계집애를 내가 믿을 것 같아?」 

　요시미는 입을 떡 벌리고 요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소매치기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도 몇 번 있었고, 소마 미츠코와 함께 고등학생을 협박한 공갈 죄로도 한 번 체포된 적이 있다. 그리고 매춘. 이미 꽤 오래 전, 소마 미츠코가 소개해 준 아저씨들과 요시미는 두세 번 잔 적이 있었다. 좋은 아르바이트였음에 틀림없었고, 누구나 하는 짓이었다. 특히 그 무렵, 자기는 모든 게 싫어서 익숙하지도 않은 화장을 하고 어른 흉내를 내며, 꽤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와 함께 있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게 여겨졌었다. 그리고 요지도 분명히 자기의 이런저런 일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 그 가을 날, 요지와 사귀게 되면서부터 자기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물론 소마 미츠코나 시미즈 히로노와 계속 어울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다시는 매춘을 하지 않았고, 다른 나쁜 짓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조심해 왔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요지도 자기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내내 그렇게 생각했었다. 요시미의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나, 이제 그런 짓 하지 않아.」 

　조금 전과는 다른 눈물이 주륵주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요지에게, 요지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었어.」 

　그 말을 듣고, 아주 잠깐, 요지가 받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요시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거짓말 하지마! 우는 척 하지마!」 

　요시미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요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왜 나 같은 애하고 사귄 거야?」 

　요지가 바로 대답했다. 

　「너 같은 계집애는 바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당연하잖아! 어서 꺼져! 제기랄!」 

 

　뭔가에 얻어맞은 듯이, 요시미는 후다닥 요지 쪽으로 달려갔다. 더이상 요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요지가 자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 제발 그만둬!」 라고 울부짖으며 요지의 손에 들려 있는 총을 붙잡으려 했다. 요지는 슬쩍 몸을 피하면서 요시미를 밀쳐냈다. 데이 팩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 오른쪽으로 떨어지고, 요시미는 풀 위로 나가 떨어졌다. 요지가 바로 요시미의 몸 위에 올라탔다. 

　「뭐 하는 거야, 제길! 이게 날 죽일 작정이구나! 그렇다면 아예 죽여 주마. 제길!」 

　요지가 총을 요시미에게 겨누자, 요시미는 필사적으로 요지의 오른쪽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았다. 요지가 바로 총을 잡고 있는 자기 오른손에 왼손을 더해 잡았다. 요지가 끙끙거리며 요시미의 이마 쪽으로 손을 내리려 했다. 요시미는 마치 피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요시미는 두 손을 꽉 잡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요지! 제발! 그만둬, 요지!」 

　요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시미를 내려다보는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기계처럼 단조롭게 힘을 쓰며, 그 팔을 내리고 있다. 이제 5센티미터, 4센티미터, 3센티미터, 이제 그 총구 방향은 요시미의 머리카락을 스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2센티미터 정도 남았다….

 

　요시미의 슬픔과 공포로 찢어진 마음 틈새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됐다.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기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요지는 환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멋진 환상이었다. 요지와 함께 있게 되면서 자기는 어쩌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환상을 준 것은 요지였다. 요지가 없었다면 자기는 그런 꿈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아아, 그 시로이와에 있던 단 하나 뿐인 햄버거 스탠드에서 단둘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떄, 요시미는 아이스크림을 콧등에 묻히고 말았는데, 요지가 말했다. "너는 정말 예쁘구나".

　적어도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했었다. 요시미는 팔의 힘을 뺐다. 요지가 요시미의 이마를 총으로 똑바로 겨누었다. 저 손가락은 바로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요시미는 요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요지. 나 너하고 있어서 행복했어.」 

　요지의 눈이 뭔가 중요한 것을 깨달은 듯이 둥그레지면서 동작은 멈추었다. 

　「괜찮으니까, 쏴.」 

　요시미는 살짝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요지의 팔이 요시미에게 총을 겨눈 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요시미는 잠시 뜨거운 총알이 자기 머리를 꿰뚫기를 기다렸지만,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요시미─」 하고, 목이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시미는 천천히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시선이 요지와 마주쳤다. 흐릿한 눈물 너머로 요지의 눈이 평소의, 자기를 사랑하는 요지의 눈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이 후회와 자책의 빛을 어렴풋이 띠고 있었다. 

　아아! 이해해 줬구나! 요지, 정말? 

 

　퍽, 하는 시원스런, 그러나 왠지 습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젖은 마루에 발뒤꿈치를 내딛는 듯한 소리였다. 

　거의 동시에 요지의 오른손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의자가 아니라, 단순한 경련이었다. 탕, 하고 푹죽 터지는 듯한 폭발음에 요시미는 자기도 모르게 힉,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총구는 이미 요시미를 벗어나 있어, 탄환은 요시미의 머리 뒤, 풀이 돋아난 땅에 꽂히며 작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힘을 잃은 요지의 상반신이 천천히 요시미의 몸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요지는 꿈쩍도 하지 않앗다. 놀라서 요지의 몸 밑에서 빠져나오려던 요시미의 눈에, 요지의 검은 교복 어깨 너모로 웃는 얼굴이 보였다. 오래 사귄 나쁜 친구, 소마 미츠코가 거기 있었다. 

　요시미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미츠코의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 왠지 가슴 밑바닥부터 소름이 끼쳤다. 

 

 

　「괜찮아?」 

　미츠코가 요시미의 손을 잡아, 요지의 몸 아래서 끌어냈다. 

　무성한 수풀 속에서 요시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보았다. 요지의 뒤통수에 날카롭게 날이 선 낫(낫! 시로이와 읍에서도 비교적 번화한 곳에 살던 요시미는 낫을 보는게 처음이었다)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을. 

　미츠코는 일단 그 낫을 놓고, 요지의 오른손에 있는 콜트 가버먼트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근육이 수축되어 아주 굳게 쥐어진 그 손가락을 하나하나 잡아떼더니, 드디어 그것을 손에 넣고는 씨익 웃었다. 

 

　요시미는 지금은 혼이 들어 있지 않은 요지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덜덜 떨고만 있었다. 덜덜덜덜, 몸을 떨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완전히 잃은 것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어린 시절에(그랬다, 자신이 더 천진난만했을 때), 요시미가 소중하게 여기던 유리 공예품이 잠깐의 실수로 바닥에 떨어져 깨져 버렸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다만 그 크기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요시미는 의식이 하늘 꼭대기에서 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요시미는 보았다(물론 내내 보고 있었지만, 시각이 인식의 영역에까지 닿지 않았던 것이다), 미츠코가 요지의 뒤통수에 꽂혀 있는 낫을 뽑으려고 두 손으로 잡고 흔들고 있는 것을. 요지의 머리가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안돼!」 

　소리를 지르며, 요시미가 미츠코를 밀쳐냈다. 

 

　미츠코가 풀 위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으며, 늘씬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뻗어 나온 스커트 자락이 젖혀져, 허벅지 언저리 까지 드러났다. 요시미는 미츠코는 쳐다보지도 않고 요지의 몸 위에 엎어졌다. 머리에 낫이 꽂혀 있는 그 몸에, 요시미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낫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흔들어 봐야 되살아날 수 없어. 흔들지마. 낫이 꽂혀 있어서 아프잖아. 요시미의 가슴 깊은 곳에서 감정의 큰 파도가 밀려왔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요시미를 감쌌다. 그리고 요시미는 그 원인을 생각하고, 눈물이 쏟아지는 눈으로 옆에 있는 미츠코를 노려보았다. 마치 죽여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지금 자기가 어떤 게임에 참가하고 있고,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그런 것은 요시미의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 증오해야 할 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은 소마 미츠코였다. 

 

　「왜 죽인거야!」 

　그 말은 요시미의 가슴 속에서 너무나도 공허하게 울렸다. 이미 자신은 내용물없는, 인간의 모양을 한 텅 빈 통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말은 나왔다. 인간의 기능이란 이상한 것이다. 

　「왜야! 왜 죽었여! 너무해! 너무하잖아! 악마! 왜 죽였냔 말이야! 왜!」 

　미츠코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찡그렸다. 

　「너, 죽을 뻔했어. 그래서 구해 준 건데.」 

　「거짓말! 요지는 이해해 주었어! 나를! 역시 이해해 주었어! 넌 악마야! 죽여버릴 테야! 내가, 널 죽여버릴 테야! 요지는 날 이해해 주었어!」 

 

　미츠코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움츠러디너, 불쑥 가버먼트를 요시미에게 겨누엇다. 요시미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리고 요시미는 탕, 하는 메마른 소리를 한 번 더 들었다. 이마 위에 거기만 차에 치인 듯한 충격이 전해왔다. 그뿐이었다. 야하기 요시미는 사랑하는 구라모토 요지 쪽으로 털썩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45구경 총탄에 머리 뒤쪽의 반 가량이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입은 남아 있어, 뭐라고 외치려는 듯이 벌어져 있었다. 입가에서 피가 주륵주륵 흘러나와 요지의 교복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검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소마 미츠코는 아직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콜트 가버먼트의 총구를 내리더니, 다시 한 번 어깨를 움츠렸다. 요시미라면 적어도 총알막이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이해해 주었겠지.」 

　상반신을 굽혀 반쯤 없어진 요시미의 머리, 그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귓볼에는 회색 젤리 모양의 뇌수와 피가 기분 나쁜 핑크빛으로 불어 있었다. 

 

　「너를 죽이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죽인 거야.」 

 

　그리고 나서 요지의 머리에 박혀 있는 낫을 다시 뽑아내기 시작했다. 

 

【남은 인원 25명】

 

 

　희미한 그 소리는 바람을 타고 슈야의 귀에도 들렸다. 그리고 또 한 번, 잠시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들려오지 않았다. 수풀 속,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쏴아 하는 소리만 들려 왔다. 슈야는 옆에 앉아 있는 가와다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 저건 총소리인가?」 

　「그래, 총소리야.」 

　가와다가 딱 잘라 말했다. 

　「또 누군가가….」 

　노리코는 입을 열었다. 

　가와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지.」 

 

　세 사람 모두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지만, 두 발의 총소리가 말문을 열게 한 셈이었다. 가와다가 곧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너희 두 사람이 나를 믿는다면 그걸로 됐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들은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야만 해. 그래서 확인하고 싶은 건데.」 

　가와다가 슈야 쪽을 바라보았다. 

　「가차없이 해치울 각오가 되어 있니, 슈야?」 

　슈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를, 정부 녀석들 말이야?」 

　「그건 물론이고.」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클래스메이트를 해치울 수 있겠느냐는 거야. 상대가 공격적으로 올 때.」 

　슈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싸울 수밖에 없지.」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상대가 여자라도 죽일 수 있겠어?」 

　슈야는 입술을 오므리며, 가와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어쩔 수 없겠지.」 

　「오케이, 알았으면 됐어.」 

　가와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무릎 위에서 쇼트 건을 고쳐 잡았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누군가를 죽일때마다 일일이 마음 아파하면 다음 순간에 다른 녀석에게 당한단 말이야.」 

　슈야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어볼까 어쩔까 망설였다. 묻지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는데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 입밖으로 나왔다. 

 

　「너도 가차없이 죽였니? 1년 전에?」 

　가와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야? 남자 몇 명을 죽였는지? 여자 몇 명을 죽였는지? 우승할 때까지?」 

　노리코가 두팔을 가슴께에서 엇갈리게 잡고, 자기 두 팔을 꼭 껴안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니, 됐어.」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가 없지, 그런 걸 물어보는 건.」 

 

　또 침묵이 흘렀지만 잠시 후 이상하게 변명하는 듯한 말투로 가와다가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반쯤 미친 듯한 녀석도 있었고, 비교적 사이가 좋았던 녀석은 바로 죽어 버렸고, 동료를 만들 수도 없었어. 그래도 나는 죽여 주십시오, 할 수는 없었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해야 할 일이 있었어. 그래서 죽을 수 없었어.」 

　슈야가 고개를 들었다. 

　「뭘?」 

　「뻔하잖아.」 

　가와다는 약간 웃어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는 빛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이 개떡같은 나라를 박살내기 위해서야. 이런 엿 같은 게임에 우리를 던져 넣은 이 나라를 말이야.」 

 

　가와다의 그 분노의 일그러진 입가를 바라보면서, 슈야는 아, 마찬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이 게임을 작동시키는 녀석들에게 카운터를 먹이고 싶어하는 것과. 이 형편없는 의자 빼앗기 게임,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개 같은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동시키고 있는 녀석들을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 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과. 

　지금 가와다는 사이가 좋았던 친구가 죽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슈야에게 있어서 요시토키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친구였을지도 모른다고 슈야는 생각했다. 슈야는 그걸 물어볼까 하다가 역시 그만두기로 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가지를 공부했다고 했는데 그건 그 때문이니?」 

　가와다는 「그래」 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나는 뭔가 보여 줄 꺼야. 이 나라에게.」 

　「어떻게?」 

　슈야의 그 물음에 가와다는 「글쎄」 하며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일단 만들어진 시스템을 깨부순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뭔가, 뭔가를 해야겠지. 아니 지금이라도 할 작정이야. 그러기 위해서 나는 살아남을 거야, 이번에도.」 

 

　슈야는 일으켜 세운 무릎 사이로 힘없이 떨어뜨린 손에 든 리볼버로 눈길을 내렸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때문에 고개를 다시 들었다. 

　「저어, 혹시 알면 가르쳐 줄래?」 

　「뭘?」 

　「이 게임의 의미 말이야. 이런 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가와다는 약간 눈을 크게 떴지만 바로 고개를 숙이더니 낮은 소리로 웃었다. 상당히 우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있을 리가 없잖아. 의미라는 게. 」 

　「그렇지만!」 

　노리코가 말했다. 

　「방위 상의 필요가 있다고 하잖아.」 

　가와다는 아직 얼굴에 웃음을 남긴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 건 미친놈의 잠꼬대야. 원래 이 나라 전체가 이상하니까 오히려 그걸 정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 

　슈야는 다시 몸 안에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어째서 이런 게 계속되고 있는 거지?」 

　「간단하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계속되고 있는 거야.」 

　슈야와 노리코가 아무 말을 않는 것을 보고, 가와다가 보충설명을 하듯이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이 나라의 관리들은 멍청이들 뿐이야. 게다가 멍청이가 아니면 관리가 될 수가 없지. 아마 이 게임이 고안되었을 때─분명히 정신 나간 군사 이론가가 고안했을 테지만─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을 거야. 전문적인 일에 끼어들면 나중에 골치 아파지니까. 그리고 일단 시작된 것을 중지한다는 것은 이 나라에선 무지 어려운 일이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다가는 목이 날아가.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사상범으로 강제노동 수용소에 보내질지도 모르지. 실제로는 모두들 반대하지만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그래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거야. 이 나라에는 이상한 일이 너무 많지만, 구조는 전부 같아. 전형적인 파시즘이야. 게다가….」 

 

　가와다가 두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너희들도, 아니 나를 포함해서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을거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너희들도 자신의 생활이 더 중요하지?」 

　슈야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몸에 차오른 분노가 단숨에 식었다. 노리코가, 대신 대답했다. 

　「부끄러운 일이지.」 

　슈야는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노리코의 눈이 슬픈듯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맞는 이야기였다. 

 

　「남선공화국이란 나라가 있었어. 알지?」 

　가와다가 말했다. 

　슈야가 눈을 돌리니, 가와다는 얼굴을 똑바로 앞을 향하고, 바로 앞에 있는 나무,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한 송이 철쭉 같은 핑크빛 꽃을 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무슨 소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쨋든 슈야는 대답했다. 

　「알아. 지금의 한반민국 남쪽 지방이었잖아.」 

　그 정도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의 우호국이었지만 미제와 한반민국의 일부 제국주의자 층에 의한 책동으로 1968년 한반민국에 침략, 합병 당했다."

　또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로서는 조선반도 전 인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안에 한반민국의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그 영토를 합병하여, 대동아민족 공동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해야만 한다." 고 이어진다. 

 

　「그래.」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라는, 이 나라와 아주 비슷한 나라였어. 압정, 절대적인 복종, 사상 교육, 쇄국상태와 정보 통제, 그리고 밀고의 권장. 그렇지만 대동아공화국은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이지. 왜 그렇다고 생각해?」 

 

　슈야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교과서에는 남선공화국의 패배에 대하여 "모두 미제 및 기타 제국주의 세력의 교활한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중학생 대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왜 이 대동아공화국은 아직 건재한 것일까? 물론 남선공화국이 지리적으로는 한반민국과 접해 있었다고 하는 사정은 있을 테지만.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겠어.」 

 

　가와다는 슈야의 눈을 바라보며,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밸런스야.」 

　「밸런스?」 

　「그래. 남선공화국이 철저한 사회 통제를 실시한 것에 비하면 물론 이 나라도 강압과 통제가 기본이지. 그러나 아주 교묘한, 뭐랄까, 이제는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자유로운 부분을 다소나마 남겨 두었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당근을 주는 한 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 "물론 자유는 전 인민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그렇지만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라면 자유는 가끔 제한받을 수 있다" 라고 말이야. 어때, 그럴듯하게 들리지, 말로는?」 

　슈야와 노리코는 아무 말 없이 가와다의 말에 귀를 기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는 굴러가기 시작한 거야. 76년 전의 일이지.」 

　그러자 노리코가, 「76년 전?」 이라며 끼어들었다. 주름 스커트 위로 무릎을 껴안은 노리코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가와다가 말했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니?」 

　노리코가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슈야는 노리코에게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이고 나서, 가와다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얼핏 들은 적은 있어. 교과서의 실려 있는 역사는 순 거짓말이고. 지금의 총통은 325대째가 아니라 겨우 12대째라고 하던데.」 

 

　그것은 미무라 신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노리코가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른들도 대개는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아니, 어쩌면 모르는 어른도 있을지 모른다. 슈야는 신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80년도 채 안되는 총통의 등장 이전, 즉 일종의 거대한 혁명 이전에는 나라 이름도, 체제도 모두 다른,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고 하니까. (신지가 말했다. "그때까지는 봉건주의였던 것 같아. 다들 춈마케라고 하는 사이키델릭한 머리 모양을 했었나봐. 신분차별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하면 지금보다는 정상이지.") 

　노리코의 놀란 표정을 힐끔 볼 슈야는, 가와다가 이어서 「뭐, 그것도 실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무슨 뜻이지?」 

　가와다가 웃으면서 툭 내뱉었다. 

　「총통 같은 건 없어. 가공의 존재지. 그런 이야기가 있어.」 

　「뭐라고?」 

　「그럴 리가.」 

　노리코가 약간 쉰 목소리를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뉴스 같은 데 나오잖아. 설날에는 관저에서 보통 사람들 앞에….」 

　「그렇게 생각하겠지.」 

　가와다가 씨익 웃었다. 

 

　「그렇지만, 그 보통 사람들이란게 누구지? 거기 있던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있어? 그것도 배우라면 어쩔 거야? 총통이 배우인 것과 마찬가지로?」 

　슈야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분이 나빠졌다. 모든 것이 거짓 뿐이고, 진실은 어디에도 없는, 불안정한 느낌 때문에. 

　「정말이야, 그게?」 

　무서운 어조로 물었다. 

　「글쎄, 그건 내가 들은 이야기에 불과해, 그렇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는 해.」 

　「누구한테 들었어, 그런 이야기? 컴퓨터 네트워크 같은 데서 조사한 건가?」 

　슈야는 미무라 신지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물었지만, 가와다는 또 입으로만 웃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컴퓨터를 전혀 모르지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 마음먹고 조사를 하면 말이야. 아무래도 그럴 듯하다는 건 말이야, 그게 최고 권력자라는 걸 만들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야. 그러면 정부의 중추를 이루는 녀석들도 모두 평등해지는 거지. 평등한 자유. 그리고 평등한 의무. 불공평은 없어. 잔소리 할 것 없는 방법이지. 다만, 그 어딘가에 교묘한 속임수가 있을뿐이야. 하긴 일반 국민들에게 그런 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지. 그냥 구심력만 있으면 되니까.」 

 

　가와다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건 사소한 문제야. 이야기를 되돌리면, 이 나라는 그렇게 해서 첫단계부터 잘 굴러가기 시작했어. 데굴데굴, 잘 굴렀지. 다만 이 경우에 잘 굴렀다고 하는 건 근대 공업국으로서 성공했다는 의미야. 거의 쇄국 정책에 가까운 상태에 있으면서도 미국 측에나 이 나라에도 가담하지 않는 제３국을 점점 경제 안에 끌어들여 원료를 수입하고, 제품을 팔았지. 무리 없이 진행된 것은 이 나라제품은 대부분 품질이 좋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미국과 멋지게 대항하고 있는거야. 약간 늦은 것은 우주 기술과 컴퓨터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그 높은 품질은 집단에 대한 복종과, 정부의 강압적인 지도 아래 가능했던 것이지. 그렇다고 해도….」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말을 끊었다. 그리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성공하자, 민중들도 이 체제를 바꾼다고 하는 걸 두려워 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몰라. 충분히 성공했고, 풍요로운 삶이 가능한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걸 뒤집으려 한다는 것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닌가, 약간은 희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면서.」 

 

　가와다는 또 슈야를 바라보며, 슬며시 빈정거리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작은 문제, 사소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이 행운 게임인 셈이지. 물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수는 아니야. 가족도 대부분 포기하게 되지. 떠난 사람은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가와다의 이야기는 먼 길을 돌아, 다시 대동아공화국이 자랑하는 이 엿 같은 게임으로 되돌아왔는데, 슈야의 입이 심하게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는지, 가와다가 물었다.

　「왜 그래?」

　슈야가 대답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미무라 신지가 언젠가 "성공한 파시즘이라는 거야. 이렇게 형편없는 나라가 대체 어디 있어?"라고 한 의미를 드디어 분명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신지는 이런저런 것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흥, 그럼 또 하나 구역질이 날 이야기를 해 줄까?」 

　가와다는 마치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이었다. 

　「나는 어쩌면 남선공화국과 이 나라의 차이는 민족성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민족성?」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국 지금 이 나라가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어울리는게 아니냐 하는 거지. 그러니까 위에서 하는 이야기에 거스르지 않는 것. 부화뇌동. 타인의존성과 집단지향. 보수성과 무사안일주의. 전체를 위해서라고 하는 그럴 듯한 핑계만 생기면, 가령 밀고라고 하더라도 좋은 일을 했다고 자기를 합리화하려 하는 구제할 길 없는 우둔함. 이런저런것들. 말하자면 긍지도 없고, 윤리도 없는 셈이 되나?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거지. 장기적인 안목이 없어. 진짜 구역질나는 이야기지.」 

 

　그렇다. 그건 정말 구역질 나는 이야기였다. 슈야는 뱃속이 울렁거렸다. 그 때, 노리코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 

　슈야와 가와다는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노리코는 꽤 지쳤는지, 무릎을 안고 등을 구부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확실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런 이야기들은 지금 처음 들었어. 그렇지만 지금 가와다가 이야기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런 걸 제대로 알고 있다면 분명히 잠자코 있지는 않을 거야. 다들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지금처럼 되어 버린 거지. 우리가 원래 그렇게 한심한 인종이었다고는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우리들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생각할 수 있을거야.」 

 

　가와다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주 부드럽게, 웃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좋은 말씀이야, 노리코 씨.」 

 

　한편 슈야는 새삼스럽게 노리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리코는 반에서 특별하게 눈에 띄는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남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또렷하게 밝히는 일은 거의 없는 타입이라고 내내 생각해 왔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점점 나카가와 노리코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가 바보였다고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요시토키는 노리코의 그런 면을 정확하게 봤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것은 "구역질이 난다." 라고 하는 대답보다 훨씬 훌륭한 의견이었다. 그리고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어찌되었든, 이 나라는 우리 나라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다(얼마나 자랄지는 현재 상황으로는 의문이지만). 그야 미제라고 불리는 미국이 언젠가는 이 나라를 해방시켜 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일이다. 남에게 기대서는 안 되는 일이고, 최종적으로는 기댈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슈야는 가와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어, 가와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나라를?」 

　그러나 가와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슈야는 맥이 빠졌다."이 나라를 박살내겠어." 라고 한 가와다였기 때문에,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해줄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 약간 맥 빠진 말투가 되었다. 

　「그렇지만 네가 말했잖아, 이 나라를 박살내겠다고.」 

　가와다는 오래간만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팔짱을 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할까?」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는 팔장을 풀고, 담배를 입에서 떼더니 연기를 뿜었다. 

 

　「역사의 파도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 

 

　슈야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보려 하는데, 그 전에 가와다가 말을 이었다. 

　「어느 때, 어느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냥 놔둬도 이 나라는 변할 거야. 그게 전쟁일지, 혁명일지는 나도 몰라. 또 그게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 

　가와다는 또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토해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 지금은 무리야. 지금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이 나라는 미쳤지만 잘 짜여 있어. 아주 잘 짜여 있지.」

　가와다는 담배를 든 손으로 슬쩍 슈야와 노리코를 가리켰다. 

 

　「자, 여기 썩은 나라가 하나 있어. 만약에 그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은 이런 나라를 버리고 어디든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거지. 국외 탈출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오물 냄새를 맡지 않고도 살 수가 있어. 때론 향수병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매일 아주 쾌적할 거야.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아!」 

 

　슈야는 허벅지 부분에 손을 살작 문질렀다. 어느 정도 기대했던, 지금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그래도 여기는 우리 나라니까 역시 노력해 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해 주는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 밥 말리가 노래하지 않았는가? "겟 업, 스탠드 업, 모두가 언제까지나 속을 거라고 생각하면 잘못이야." 

　「왜?」 하고 물었다. 그렇지만 가와다의 대답은 뉘앙스가 약간 달랐다. 

 

　「자기만족이지. 나는 복수하고 싶어, 그게 자기만족의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에 한 방 먹여 주고 싶어. 그뿐이야.  그게 과연 이 나라의 변혁으로 연결될 것이냐 하는 것은 크게 의심스럽지만 말이야.」 

　슈야는 잠깐 숨을 들이켰다가 입을 열었다. 

　「절망적인 이야기로 들리네.」 

　「절망적인 이야기야.」 

 

【남은 인원 2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