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3

　단발의 총성이 두 차례 이어진 뒤, 슈야와 노리코는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고 있던 솔개가 소리 내어 울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가와다가 발길을 돌리며, 「이제 끝났어. 돌아가자.」 라며 두 사람을 재촉했다. 슈야는 노리코의 팔을 부축하면서 약간 위에 있는 가와다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입술이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렸다. 

　「끝났다고? 꼭 그런 표현밖에 못 쓰냐?」 

 

　가와다는 목 주변의 어깨만 살짝 움츠려 보였다. 

　「내 말버릇 나쁜 건 용서해. 어휘가 빈약해서 그래. 어땠든 이제 확실히 알겠지? 싸울 마음이 있는 녀석이 있다는 거야. 말해 두지만, 지금 이 일은 사카모치가 우리를 싸우게 만든 건 아니야. 놈들도 목숨이 아까워서 그 분교에서 나오지 않을 거야.」 

 

　슈야는 뭔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간신히 억누르며 노리코의 팔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노리코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해, 너무해! 어떻게 이런 일이….」 

　원래 있던 장소에 돌아오자, 가와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왜 그래?」 

　슈야가 묻자, 가와다가 대답했다. 

　「준비해. 만약을 위해서야. 100미터만 이동하자.」 

　「움직이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가와다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봤잖아, 지금.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 녀석은 가차 없어. 게다가 머신 건을 가지고 있고. 분명히 우리가 있는 장소를 알아차릴 거야. 위치가 발각되지 않으려면 움직이는 게 낫지.」 

　하면서 재촉했다. 

 

　「조금만 움직이자. 조금만.」 

 

 

 

 

　세토 유타카(남자 12번)는 필사적으로 언덕을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키 낮은 나무에 몸을 숨기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기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마른 흙먼지 때문에 작은 몸을 감싼 스몰 사이즈의 교복이 거의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직 어려 보이는 동그란 눈, 평소 B반의 분위기 메이커인 그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세토 유타카가 분교를 출발한 뒤, 조금 전까지 숨어 있던 곳은 북쪽 산의 꼭대기에 가까운, 말하자면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핸드 마이크로 소리치던 그 전망대에서 겨우 50미터 정도 아래 있는 수풀 속이었다. 약간 경사가 진 방향이긴 했지만, 유타카에겐 두 사람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결국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나가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멀리서 총성이 울렸다. 두 사람이 그쪽을- 유타카가 있는 쪽과는 반대쪽이었다 -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타카가 잠시 상황을 살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겨우 10초에서 20초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듯한 총소리가 나더니 핸드 마이크로 증폭된 비명과 함꼐 구사카 유미코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기타노 유키코도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틀림없이 아직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타카는 도저히 두사람을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다. 하기야 자기는 원래 천성적으로 분위기 메이커로 태어난 몸. 싸움은 정말 싫었고, 게다가 자기가 지급받은 무기는 포크 하나. 스파게티를 먹을 때 쓸 수 있을 정도의, 아무 특징도 없는 포크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유타카가 누군가가 유미코와 유키코를 확인 사살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짐을 쓸어 모아, 언덕을 기듯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가 다음에 노릴 것은 자기임이 분명했다. 그건 뻔한 일이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게 나니까! 

 

　유타카는 문득, 자기가 지독한 흙머지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돼! 안 돼! 이건 곤란해! 이건 슬리퍼를 넣고 끓인 수프보다 더 곤란해. 제길. 너 농담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잖아! 제길, 간사이(가가와 현이 있는 일본의 지역) 지방 사투리로 우스개 소리나 할 때가 아니잖아! 

 

　유타카는 최대한 몸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 바닥과 손바닥으로 (원래 오른손에는 포크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ク"자 모양이었지만) 땅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동작으로 바꾸었다. 손바닥의 피부가 벗겨져나가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제기랄, 옆에서 보면 지금 내가 움직이는 건 무지 우스울 게 틀림없어. 인간 수금쟁이 같을 거야. 그런 상태로, 2,3분 정도 너 내려와서야, 유타카는 겨우 동작을 멈추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죽은 산꼭대기가 꽤 멀리 보였다.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제대로 도망친 건가, 내가? 나는 산 건가? 그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려는데, 누군가가 팔을 잡았다. 유타카는 머릿속이 공포감 때문에 혼란스러워, 잎으로 「힉」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멍청이!」 하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팔에 가해진 힘이 사라지더니, 대신 유타카의 입을 따스한 손이 막았다. 그러자 머릿속이 어지러운 유타카의 귀에 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습격자에게 쫓기고 있다고만 생각해, 두려움 속에 오른손에 쥔 포크를 휘둘렀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포크가 멈추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그대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 유타카는 머뭇머뭇 눈을 떴다. 

 

　눈 앞에 있는 그림자는 교복을 입었는데, 몸을 틀어, 얼굴 앞에 치켜든 자동권총(베레타 M29F였다)으로 포크를 막아 냈다. 그는 권총을 왼손으로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의 위치 관계와 남자가 유타카의 입에 오른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남자가 왼손잡이가 아니었다면 유타카의 포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은 왼손잡이였다. 그리고 B반에서 왼손잡이 남자라고 하면 한 사람밖에 없다. 

 

　「위험하잖아, 유타카.」 

 

　촉촉한 느낌에, 스타일링 워터 같은 것을 써서 치켜 올린 앞 머리카락 아래, 약간 위로 치켜올라가듯이 직선으로 뻗은 눈썹, 그 아래 맑은 느낌을 주는, 그러나 유머가 느껴지는 눈이 유타카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귀의 피어싱. "제 3의 사나이" 미무라 신지(남자 19)가 유타카에게는 B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이 히죽 웃으며, 유타카의 입에서 손을 살며시 뗐다. 유타카는 그제야 안심한 듯이, 천천히 포크를 내렸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신지! 신지잖아!」 

　「바보!」 

 

　미무라 신지가 다시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안도감에 그만 큰소리를 지른 유타카의 입을 다시 한 번 막았다. 신지가 손을 떼고, 「이쪽이야, 조용히 따라와.」 라며 앞장서서 키 낮은 수풀 사이로 걸어갔다. 

 

　멍청히 그 뒤를 따라가다가, 수풀 사이로, 조감도처럼 보이던 섬의 풍경이 상당히 평평하게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몇 분 만에 상당한 높이를 달려 내려온 것이다. 유타카는 바로 또 시선을 돌려 앞장서서 가고 있는 미무라 신지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때 문득 무서운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를 죽인 것은 신지가 아닐까? 그리고 자기를 쫓아온 게 아닐까? 아니야, 그렇다면 왜 나를 죽이지 않은 걸까? 그야 나는 신직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 신지도 알고 있으니까, 나를 끌어들이면, 신지는 예를 들어 잘 때 나를 보초 세운다거나 하는 쪽으로 써먹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살아남을 확률이 올라가고, 마지막에 둘이 남게 되면 신지는 날 죽인다. 으아아, 그거 무지 좋은 방법이로구나! 이게 컴퓨터 게임 같은 거라면 나는 꼭 그렇게 할거야. 바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유타카는 그 상상을 지워 버렸다. 신지는 머신 건 같은 걸─그 소리는 머신 건이었다. 틀림없이─갖고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신지는 신지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다. 여자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다니,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왜 그래, 유타카?」 

　신지가 뒤를 돌아보며, 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빨리 와.」 

 

　유타카는 아직 머리가 멍한 상태에서 신지의 뒤를 따라갔다. 신지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전진하여, 50미터 쯤 간 곳에서 멈춰 서더니, 총을 든 왼손으로 발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를 타고 넘어.」 

　유타카가 자세히 보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색의 가느다란 실이 수평으로 팽팽하게 걸려 있었다. 

　「이건….」 

　「함정 같은 건 아니야.」 

　신지가 그 실 건너편에서 말했다. 

　「건드리면 저쪽에 연결되어 있는 빈 깡통이 떨어져 소리가 나지.」 

 

　유타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신지는 이 안 쪽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일종의 보호 장치 같은 것이다. 역시 신지였다. " 제３의 사나이, 더 서드 맨"은 단순한 농구 천재만이 아니다. 유타카는 그것을 타고 넘었다. 그리고 20미터 정도 더 가서, 약간 깊은 수풀 속으로 들어가자, 신지가 멈추어 섰다. 

　「앉자.」 

 

　유타카는 신지와 마주 앉았다. 아직 포크를 쥐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걸 땅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동시에 왼쪽 손바닥과 오른쪽 주먹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손의 피부가 벗겨져, 특히 오른손의 손가락이 시작되는 부분은 뻘건 살이 드러나 있었다. 신지가 그걸 보고 총을 내려놓더니, 근처 수풀 속에서 자기 것으로 보이는 데이 팩을 꺼냈따. 수건과 물병을 꺼내, 수건 끝을 살짝 적시더니, 말했다. 

　「손, 내밀어, 유타카!」 

　유타카가 손을 내밀자, 신지는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상처를 닦아내고, 다음에는 수건의 젖지 않은 부분을 가늘게 찢어 붕대 대신 감아 주었다. 유타카는 「고마워.」 라고 말한 다음, 「여기 숨어 있었니?」 하고 물었다. 

 

　「그래.」 

　신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언뜻 보였어. 수풀 사이로 네가 움직이는 게. 상당히 거리가 먼 편이었지만, 너를 못 알아 볼 리는 없잖아. 좀 위험하기는 했지만, 네가 달려오는 길로 쫓아 나간 거야.」 

 

　유타카는 가슴이 메었다. 신지는 자기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너,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하잖아.」 

　「응.」 

　유타카는 자기가 거의 울기 직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마워, 신지.」 

　「다행이야.」 

　신지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 죽는다고 하더라도 너만은 만나고 싶었으니까.」 

 

　이번에는 유타카의 눈에 실제로 눈물이 고였다. 유타카는 눈물을 참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까, 나, 유미코하고 유키코 바로 근처에 있었어.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을 도와 주지 못했어.」 

　「그래.」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어. 그래서 너를 발견한 거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도 그 애들에게 갈 수가 없었어.」 

　유타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쓰러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되살아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결국 약간 남서쪽으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가와다가 수풀 속에 다시 그 실을 장치하는 작업을 끝냈을 무렵에는 오전 9시가 지나 있었다. 해가 높이 솟아, 5월 나무 내음이 공기를 타고 전해왔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줄줄이 이어지는 세토나이의 섬들. 만약에 이게 하이킹이라면 정말 기막힌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렇지 않다. 오가는 배들은 모두 섬을 멀리 우회하기 때문에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가까이에 보이는 배라고는 선체를 회색으로 칠한, 서쪽 담당 감시선 뿐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뱃머리 쪽에 놓여 있는 기관총은 확인할 수 있었다. 

　실을 다 장치한 가와다가 휴우, 하고 숨을 내쉬며 슈야와 노리코 앞에 앉았다. 쇼트 건을 또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왜 그래? 아무 말이 없네.」 

　슈야와 노리코가 아무 말도 없자, 가와다가 그렇게 물었다. 슈야는 가와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깐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그 녀석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가와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 말이니?」 

　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적어도 예상할 수는 있었잖아? 이 게임의 룰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죽이는 거야.」 

 

　가와다는 담배를 빼더니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말을 이었다. 

　「그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었던 것 같아.」 

　「아마 무슨 종교 단체에 다닌다고 들은 것 같은데, 두 사람 다.」 

　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아주 평범한 여학생이었지만, 노리코와 우츠미 유키에 등으로 이루어지는 중간파 여자 그룹과 두 사람 사이에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고 하면 바로 그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된다. 

 

　「광륜교라고 했던가? 신도(神道) 계통의 단체였을 거야. 시로이와 읍에서 국도를 따라 요도가와 강둑을 남쪽으로 타고 들어가면 교회가 있어.」 

　「이런 이유도 있었던 게 아닐까?」 

　가와다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렇지는 않을 거야.」 라고 노리고가 말했다. 

　「두 사람 다, 특이 유미코가 자주 이야기했는데, 그 두 사람은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고, 종교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냥 따라다닌 거라고 했었어.」 

　가와다는 「그래?」 하고 중얼거리며,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착한 사람이 반드시 구원 받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 요령 좋은 녀석이 더 잘 구원을 받지.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해도, 실패해도, 자기 양심 똑바로 지킨다는 건 훌륭한 일이야.」 

 

　그러면서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을 보았다. 

 

　「그 녀석들, 우리 클래스 메이트를 믿고 있었던 거야. 분명히 전원 다 모을 수 있다면, 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야. 그걸 칭찬해 줘야지. 우리들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슈야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렇지.」 하며 동의했다. 잠시 뒤, 슈야는 다시 가와다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역시 너는 적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널 믿고 싶어.」 

　노리코도 말했다. 

　「나도야.」 

　「나는 가와다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 

 

　가와다는 고개를 저으며 슬쩍 웃었다. 

　「적어도 여자를 속이는 타입은 아니야, 내가 생각해도.」 

 

　슈야가 잠깐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가르쳐 주지 않을래? 아니, 탈출 방법은 이야기할 수 없다면 그건 됐어. 그렇지만 그건 왜지? 다른 애들을 만났을 때 우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나? 다른 애들을 믿을 수 없어서 인가? 적어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질문을 여러 개 하지마. 나 별로 머리가 좋지 않아.」 

　「거짓말.」 

 

　가와다가 담배를 물고,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어, 자기 턱을 괴더니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네 말 그대로야. 다른 애들이 그 방법을 알게 되는 걸 바라지 않고, 가령 너희들 입이 아무리 무겁다고 하더라도, 너희들이 그걸 알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다른 애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어. 그래서 이야기할 수 없어.」 

 

 

　슈야는 잠시 생각한 뒤에, 노리코를 바라본 다음 가와다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알았어. 우리, 너를 믿을 거야. 그렇지만….」 

　가와다가 물었다. 

　「뭐가 마음에 걸리니?」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이상해?」 

 

　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는 휴우ㅡ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땅에 비벼 끄고는, 짧은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 올렸다. 

　「어디나 구멍은 있어. 아니, 적어도 대부분의 것에는.」 

　「구멍?」 

　「약점 말이야, 나는 그 약점을 노릴 거야.」 

 

　슈야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가와다가 계속 설명했다. 

　「나는 이 게임을 너희들보다 잘 알고 있어.」 

　「어떻게?」 

　노리코가 물었다.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지 마, 누님. 나 부끄러워져.」 

　노리코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살짝 웃었다. 「어째서야?」 라며 한 번 더 물었다. 가와다는 또 머리를 쓸어 올렸다. 슈야와 노리코는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가와다가 입을 열었다. 

 

　「이 게임에서 살아남은 녀석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슈야는 노리코와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 "프로그램" 에서는 단 한 사람의 생존자가 나온다. 클래스메이트와 서로 죽이는 터무니 없는 게임을 거친 뒤, 우승자의 모습을 내보내는 뉴스를 위해 전수방위군 병사의 총부리에 밀려, 비디오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웃어 방긋 웃어.」).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이 그 뒤 어떻게 되는지, 그건 몰랐다. 

 

　가와다는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디든 다른 현으로 강제로 전학을 가게 돼. 게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살아가라고 하지. 그것 뿐이야.」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져, 슈야는 얼굴이 굳어졌다. 가와다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노리코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와다가 말했다. 

 

　「나는 효고 현 고베시 시립2중 3학년 C반이었어.」 

　가와다의 말은 계속되었다. 

 

　「작년 효고 현에서 있었던 "프로그램"의 생존자야.」 

 

　가와다가 표정을 약간 누그러뜨리고 말을 이었다. 

　「총통 사인이 든 표창장도 받았지. 황송하게도. 유치원생 같은 글씨였어. 태울 수 있는 쓰레기를 버리는 날, 내다버려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와다의 밝은 목소리와는 반대로, 슈야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랬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면 누구에게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두 번이나 계속해서 그 학급에 들어가게 되다니….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을까? 물론 유급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정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어쨌든 복권에 당첨될 정도의 확률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앞뒤가 맞았다. 가와다가 이 게임에 상당히 익숙한 모습을 보인 것이나, 그 때 버스 안에서 최면 가스를 눈치 챈 일이나, 그리고 그 온 몸에 난 상처도…. 그렇지만,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터무니 없는 일이 있을 수가! 슈야가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 수가!」 

 

　가와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지. 게임이 있었던 건 7월이었는데, 나는 큰 부상을 당해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어. 뭐 그 동안 이 나라에 대해 많은 걸 공부했지만. 침대 위에서 말이야. 간호사들이 무척 친절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었지. 병원은 내겐 학교였다고 할 수 있었어. 그런데, 그 덕분에 나는 중학교 3학년을 한 번 더 다니게 되었어. 그렇지만….」 

 

　가와다는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나도 상상도 못했지. 설마 또 다시 이 개 같은 게임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그랬다. 슈야는 조금 전 아니, 벌써 세 시간 정도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토부치 교이치 이전에 누굴 죽였니?」 라고 물었을 때 가와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쨌든, 이번엔, 처음이야.」 라고. 잠시 후, 노리코가 물었다. 

 

　「한 번 당첨된 사람은….」 

　말을 하다가 마치 무슨 복권 당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표현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고쳤다. 

　「한 번 참가했던 사람은 제외한다거나 하는 그런 규칙은 없니?」 

　가와다가 씨익 웃었다. 

 

　「없으니까 여기 오게 됐겠지. 프로그램 대상 학급은 컴퓨터가 자동으로 고른다고 하잖아? 사실 경험자인 내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도 들지만, 역시 특혜 같은 건 없다는 거지. 이것도 일종의 좋지 않은 평등이라고나 할까?」 

 

　가와다는 손으로 라이터를 가리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알겠지? 내가 왜 가스 냄새를 눈치 챘는지, 그리고….」 

　자기 왼쪽 눈썹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상처도.」 

　「너무해.」 

　노리코가 거의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렇게 말하지 마, 노리코.」 

　가와다가 웃었다. 

 

　「덕분에 난 너희들을 구해낼 수 있을 거야.」 

 

　슈야는 가와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야, 이건? 나 손금 볼 줄 몰라.」 

　슈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듯한 이야기 한 거, 미안해. 악수야. 마지막까지 함께 가자.」 

　가와다가 알겠다는 식으로 「오케이!」 라고 하면서 슈야의 손을 잡고 위 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노리코가 안심했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남은 인원 27명】

 

 

 

　사카모치 긴바츠(담임)는 분교의 교무실 책상에 안장, 이리저리 흩어진 서류를 뒤적였다. 총구멍이 난 철판이 붙은 창가에, 남쪽과 북쪽 방향으로 전수방위 육군 병사가 총을 겨누고 한 명씩 서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명을 계속 밝혀 놓고 있었다. 그리고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사카모치의 맞은편 책상에 앉아,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데스크 톱 PC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또 다른 세 사람은 컴퓨터와는 다른 기계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고 있다. 조명과 컴퓨터, 여러 가지 기계를 움직이는 대형 발전기가 서쪽 벽에 놓여 있어. 방음 장치에 흡수되지 않은 낮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다른 병사들은 이미 학생들이 출발한 교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구사카 유미코가 죽은 게 오전 8시 42분이고, 기타노 유키코, 이 친구도 42분이라.」 

 

　긴 머리를 귀 위로 쓸어 올렸다. 

　「아, 바쁘다!」 

 

　책상 위의 낡은 검은색 전화가 따르릉 하고 울리자, 사카모치는 펜을 손에 든 채로 후다닥 수화기를 들었다. 

　「예, 여기는 오키섬 분교. 시로이와 중학교 3학년 B반 프로그램 실시 본부.」 

　얼버무리는 듯한 말투로 대답한 사카모치는, 다음 순간 등을 곧바로 세우며 수화기를 두 손으로 잡았다. 

 

　「옛. 사카모치입니다. 교육장님, 지난번에는 폐가 많았습니다. 아뇨, 아뇨, 예. 둘째 아이는 이제 두 살입니다. 지금 셋째가 집사람 뱃속에 있으니까요. 예.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사카모치는 잠시 듣고 있다가, 알겠다는 투로 하하, 웃었다. 

 

　「아니 이런. 교육장님, 가와다 쇼고 군에게 거셨습니까? 저는 기리야마 가즈오 군에게 걸었는데요. 아뇨. 하긴 가와다도 뭐 라이벌이고, 아무래도 그 친구는 경험자니까요. 거의 드문 일 아닙니까, 경험자가 참가하는 경우는? 물론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아, 그거 대단하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예? 상황을? 그쪽에서 모니터 되지 않습니까? 정부의 대외비 홈페이지에서. 예. PC를 잘 못 다루신다, 아, 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게 음,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어이, 가토. 가와다는 아직 그 두 사람과 같이 있나?」

　가토라고 불린 병사가 아무 말 없이 키보드를 조작하더니, 「그렇습니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모니터에는 학생들에게 채운 목걸이에서 오는 전파를 기초로, 학생들의 위치가 지도상에 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토의 무뚝뚝한 대답에 사카모치는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하긴 그런 일은 예전에, 사카모치가 아직 중학교 교사였을 시절에, 가토를 비롯해 문제아가 엄청 많은 반을 맡은 이후, 항상 있었던 일이었다. 사카모치는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가와다는 지금 다른 두 명의 학생과 함께 행동하고 있습니다. 예, 나나하라 슈야와 나카가와 노리코. 음, 글쎄요. 그게 말이죠, 세 사람이 도망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청 기록, 들어보시겠습니까? 아뇨, 예, 음. 진짜인지 아닌지 말입니까? 음, 그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거짓말이겠죠. 아마, 도망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아아, 예, 그렇군요.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자료, 자료라. 가와다 쇼고 말이죠? 지난번 학교에서도 특별하게 거동이 수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정부적인 언동이라거나 행동 같은 것도, 예. 아아, 지난번 프로그램 때에 아버지가 죽었군요. 술에 취해서 뭔가 정부에게 저항하는 소리를 한 것 같군요. 그렇지만 가와다 자신은, "시원하네. 한심한 양반이었어."그랬다고 합니다. 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아버지가 자기에게 보상금 같은 걸 달라고 했을지도 모르고요. 예, 그렇다면 혼자보다 세 사람이 있는 게 유리하니까요. 슈야는 운동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겁니다. 노리코는 부상을 당한 상태인데요. 우리 다하라가 쐈습니다. 예, 그야, 이미. 두 사람은 가와다를 완전히 믿고 있습니다. 부상당한 여자 애를 구해준다는 건, 좋은 수법이니까요. 그 밖에도 그럴 듯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예.」 

 

　비굴한 웃음을 지으면서 거기까지 이야기한 사카모치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몇 번 눈썹을 치켜 올리며, 비어 있는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오른쪽 귀 위로 쓸어 올렸다. 사카모치가 「예?」 라고 말했다. 

 

　「그런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건 3월에 있었던 이야기 아닙니까? 연락 문서, 받기는 했습니다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지금쯤. …예, 중앙 부서에 있는 녀석들은 허풍쟁이니까요. 그리고 중학생입니다. 도대체 그렇다면 도청당하고 있다는 거도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지금 현재 그런 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예. 그러니까, 예예. 예예. 그럼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거야,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예, 예. 그럼, 예. 예.」 

 

　사카모치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수화기를 올려놓더니, 다시 펜을 집어 올렸다. 

　「아, 바쁘다!」 라고 하면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서류에 달라붙어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