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퐁텐 우화 :: 사자 왕비의 장례식

어느 날, 동물 왕국의 사자 왕비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사자 왕은 즉시 모든 동물들을 불렀습니다.

사자 왕이 동물들을 부른 이유는 물론 사자 왕비의 장례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여러 동물들의 감정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동물들은 싫은 기색을 숨기고, 한 마리씩 사자 왕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제일 먼저 달려온 동물은 원숭이였습니다. 원숭이는 죽은 왕비를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기에 감동한 사자 왕이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확인하고는, 위로의 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너무 슬퍼서 도저히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원숭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온 동물은 여우였습니다. 약아빠진 여우는 원숭이와 같은 군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슬픈 표정을 짓고, 꼬리를 힘없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슬퍼서 말도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나와서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동물들은 저마다 마음에도 없는 문상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째서 모두들 즉시 돌아가 버리는 것이냐?"

동물들이 문상을 하고는 즉시 돌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 사자 왕이 버럭 소리쳤습니다.

"왜 마지막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지 않느냐? 지금부터 돌아가는 놈이 있으면 처벌을 할 테니 그리 알아라!"

사자 왕의 말에 남은 동물들은 사자 왕 앞에서 형식적으로 우는 시늉을 하며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동물들의 문상이 모두 끝나 갈 무렵, 마지막으로 사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슴은 문상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줄의 가장 마지막에 서 있다가, 떠밀리듯이 사자 왕 앞에 섰습니다.

"……."

사슴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했습니다.

"빨리 무슨 말이든 해!"

다른 동물들이 사슴이 걱정되어 나지막한 소리로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사슴은 온 몸을 떨며 입을 꼭 다문 채 서 있었습니다.

"너는 왕비의 죽음이 슬프지 않느냐?"

결국 화가 난 왕이 무섭게 소리쳤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다른 동물들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입에 발린 말을 했으면 좋으련만, 사슴은 계속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사자 왕의 표정이 사나워졌을 때, 사슴은 가늘지만 아주 늠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내가 이 자리에서 슬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내 자식들을 모두 잡아먹었는데, 어떻게 내가 그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원한의 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마 이 곳에 모인 모두가 다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사슴의 말에 모든 동물들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조용히 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자식들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또 아내를 죽이고, 어버이를 죽였다. 아무리 약육강식이라고는 하지만, 약한 자에게도 감정이 있고 슬픔이 있다. 우리는 결코 당신의 밥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동물 왕국의 평화를 지키고 있는 왕이다!"

화가 난 사자 왕이 소리쳤지만, 사슴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동물 왕국의 평화를 지킨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평화를 깨고 있는 자가 당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이 넓은 대초원 어디에 당신보다 위험한 동물이 있는가?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당신의 부름에 달려오지 않을 것이다."

"뭐, 뭐라고?"

"이제부터 내 생명은 내가 지킨다. 당신의 부름에 오든 안 오든, 당신은 언제나 나를 습격하고 나는 그 때마다 도망가야 하는 관계임은 바뀌지 않으니까."

말을 마친 사슴은 그대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슴의 말을 들은 다른 동물들도, 망연자실한 사자 왕을 홀로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