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20권 시시비비 오디션 -3- 다과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다과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1

 

전기포트가 슝슝 김을 뿜어낸다.
「컵 OK, 스푼 OK, 홍차캔 내용물 확인 OK」
토요일. 오후 1시 45분. 유미가 장미관에서 손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다과회 준비를 확인하고 있는데, 접수 상황을 보러 아래층에 내려갔던 요시노 양이 커다란 휴대용 바구니 같은 것 두 개를 안고 돌아왔다.
「과자 동호회에서 스콘이 도착했어.」
「와앗」
갓 구운 따끈따끈. 아직 김이 모락모락한 스콘이 바구니에서 살짝 삐져나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맛있어요 맛있어요 하고.
「마미 양한테 주면 알 거라 그러면서 돌아갔는데──.」
요시노 양이 그렇게 전하자. 명찰에 이름 쓰기가 막 끝난 마미 양이 「알았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웬 스콘?」
달콤하고 좋은 향기를 맡으며 유미가 물었다.
「다과회하면 애프터눈 티. 애프터눈 티 하면 홍차와 스콘이잖아.」
하나, 둘, 셋, ...... 하고 숫자를 세는 마미 양. 「인원수보다 여유있는걸」하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게 아니라, 이거 순순히 받아도 되는 거야?」
스콘을 제공받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한 마디도 들은 적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협찬 같은 걸로 해둘 테니까.」
「협찬? 그런 건 사전에 말해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요시노 양이 가슴 앞에 팔짱을 꼬며 말했다.
「과자 동호회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잘 되면 가져가라고. 그다지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에 비해서 잘 구워졌는데, 라며 마미 양은 바구니에서 하나 꺼내 손으로 3등분 나눠 「시식」이라 칭하고는 유미와 요시노 양 입에 하나씩 물렸다. (방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맛있다.」
너무 달지 않은 고급스러운 맛. 홍차에 잘 어울리겠다.
「그래서 조건은? 설마 공짜로 제공해 준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
유미가 맛보는데 정신팔려 있는 틈에 요시노 양은 마미 양에게 이 스콘에 관한 설명을 요구했다. 이미 한 개 손을 대버렸으니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산백합회엔 피해 안 가. 『리리안 학보』에 스콘 사진과 부원 모집 광고를 실어주기로 약속했을 뿐이야.」
「장사 잘하네.」
「가는 정 오는 정이지.」
마미 양은 사극에서 뇌물을 받는 탐관오리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콘을 담을 쟁반같은 건 준비 못했어.」
오늘은 손님이 많으니까 컵 같은 건 아무래도 장미관에 있는 분량만으론 부족해서 가정과실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제와서 또 빌리러 가기엔 시간없다.
「쟁반이 뭐 필요해. 이 바구니 채로 놔두면 되지.」
「그렇네.」
그래서 스콘 바구니는 테이블 가운데쯤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이걸로 스탠바이 OK. 이제 손님을 맞기만 하면 된다. 책상과 의자도 학교 지하창고에서 빌려 옮겨와서 평소보다 대단히, 아니 그럭저럭 좁아터지긴 했지만, 뭐어 OK다. 아무튼 전원 자리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처음만은 갑갑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유 시간이 되면 1층에 있는 방으로 가도 되고, 다행이 날씨도 좋으니 중정으로 나가는 것도 좋을 거고, 그렇다.
「그러고 보니 아랫층에 츠타코 양 있든? 지금 스콘 사진을 찍고 싶은데.」
마미 양이 물어보자 요시노 양이 탁 손바닥을 쳤다.
「아아, 맞아. 츠타코 양이야, 츠타코 양. 츠타코 양 말야, 방금 다과회 촬영 사양하겠다는 말을 전하러 왔는데, 물론 그런 말 들은 적 없지?」
과자 동호회에서 받은 스콘에 정신이 팔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애초에 요시노 양이 2층에 올라온 건 츠타코 양의 말을 위에 있는 두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나. 2층에 갈 거면 가는 김에 스콘을 들고 가줘. 이렇게 됐나 보다.
「왜 안한대?」
다과회 기획이 발표되고 곧장 츠타코 양에게 카메라맨 역을 의뢰했을 때에는 즉시 OK해줬다. 오늘도 오전 내내 같은 교실에서 수업 마칠 때까지 같이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세 명중 누구 한 사람도 「사양」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일부러 장미관까지 거절하러 오다니. 츠타코 양에게 뭔가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참가자가 들어가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은 망원으로 찍고, 다과회 종료 후에 예정된 참가자 전원 단체사진도 제대로 찍을 거라 그랬어.」
「그럼 몸이 안좋다든가 용무가 있다든가 그런 건 아니구나.」
그렇다면 단순히 「마음이 바뀌었다」는 건가.
「츠타코 양 말로는, 참가하지도 않는 카메라맨이 얼쩡거리면 참가자들이 괜히 의식해서 긴장할 거라고. 그 왜 있잖아. 궁중만찬회도 식사 장면은 TV에 안비추는 거. 그거랑 마찬가지라나 봐.」
「으음. 아주 타당한 이유로군.」
그러니까 뭔가 맘에 걸린다는 게 이상하지만 어째선지 유미는 순순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걸까.
「다과회 동안은 클럽 하우스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부르러 오라고. 그렇게 말하고 가버렸어. 그래도 돼?」
「되고 안되고.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알았어, 스콘은 내가 찍을게. 다과회 동안에도 요청이 있으면 미력하나마 내가 카메라맨을 맡도록 하지.」
마미 양은 소형 카메라를 주머니에서 꺼내 스콘을 찍었다. 좌에서 우에서 각도를 바꿔서. 실패할까 두려워 한 장 더. 꽤나 셔터를 눌러댔다. 과자 동호회와 마찬가지로, 실력에 자신이 없나 보다.
「마미 님. 저기, 이제 접수를 시작하고 싶은데요──」
1층에서 대기중이던 신문부 루키 양이 2층 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 참, 그렇지. 명찰, 명찰.」
마미 양은 아까 다 쓴 명찰 무더기에서 두 개만 남기고 상자 안에 넣어 루키 양에게 넘겼다.
유미와 요시노 양은 남은 두 개의 명찰 중에서 자기 것을 선택에 가슴에 달았다.
『2학년 소나무반 후쿠자와 유미』, 『2학년 소나무반 시마즈 요시노』.
두 사람은 주최측이긴 하지만, 참석자로서 초대객과 같은 명찰을 다는 것이다.
「그럼」
신문부 루키 양이 개수를 확인하고 방을 나가려 하자, 마미 양이 「잠깐 기다려 봐」 라며 불러 세웠다. 후배를 불러세워 놓고선 어째선지 유미를 본다. 
「컵은 여유있게 빌려왔지?」
「응」
「컵은 됐고. ...... 그리고 스콘도 OK. 아직 안 쓴 명찰도 있으니.」
「뭐하게?」
질문하는 동안 마미 양은 매직펜을 끼익끼익 갈겨서 새 명찰 두 개를 만들었다.
「츠타코 양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취재라곤 하지만 산백합회 간부도 아닌 우리가 장미관에서 왔다갔다해서야 참석자들이 산만해지겠지. 그러니까!」
「『2학년 소나무반 야마구치 마미』?」
유미는 명찰 한 개를 손에 들고 써있는 문자를 읽었다.
「그래. 우리들은 참가자격이 있으니까.」
「......들?」
루키 양은 나머지 하나의 명찰을 눈 앞에 들이대자 얼굴이 확 굳어졌다. 왜냐면 거기엔 자기 이름이 써있었으니까.
루키 양의 이름은 『타카치 히데미(高知日出實)』. 유미는 오늘 처음 그 이름을 알았다.

 

 

2

 

장미관 현관 앞에는 이미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미관에 들어와 곧장 플로어에서 접수 준비를 하고 있던 노리코 역시 문 유리창에 비친 사람 그림자를 통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앞으로 5분 정도 있으면 오후 2시. 초대장에 적힌 시작 시간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 곧이네.」
시마코 씨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지. 조금 긴장되는데.」
「노리코가 긴장하면 어떡하니.」
알고야 있지만 두근거림이 진정되질 않는다.
「하지만 저 중에 미래의 동료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도 그렇네. 하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유미 양과 요시노 양을 거들어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어.」
끼익끼익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돌리자 좀전까지 여기에 있다 윗층 상황을 보러 갔던 히데미 양이 돌아오고 있었다.
「명찰 가지고 왔어요.」
과자 빈 박스에 수북이 들어 있는 명찰을 하나씩 꺼내, 접수대 위에 놓는다. 학년순으로 묵묵히 나열하고 있는 히데미 양은 기분탓인지 아까보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2층에서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그런 걱정이 들던 바로 그 때, 노리코의 눈에 「그것」이 반짝 비쳤다. 
「히, 히데미 양. 그 명찰은, 설마......!」
노리코가 히데미 양의 가슴 언저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찬찬히 비교해볼 것까지도 없이 거기에 달려있는 투명 플라스틱 사각형 명찰은, 이제부터 초대객에게 나눠줄 예정인 명찰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이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아내자면, 명찰 안에 끼워진 하얀 판지에 적힌 문자. 거기엔 까만 매직으로 또렷하게 『1학년 복숭아반 타카치 히데미』라고 적혀 있었다.
「맞아.」
어깨가 축 처지는 히데미 양.
「본의는 아니지만 마미 님과 함께 다과회에 참석하기로 되었어. 이것도 잠입취재라고 생각하면...... 그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못해 먹는다구.」
마지막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어머, 히데미 양은 언니를 만들지 않는 주의니?」
시마코 씨가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히데미 양이 너무나도 「싫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겠지.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런 주의가 있든 없든, 시작하기 10분 전에 다과회 참석자가 되어 버린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게 뻔하다. 하다못해 어제 결정이 났더라면 조금은 마음가짐도 달랐을지 모르지만.
「참 큰일이구나.」
시마코 씨가 진심으로 동정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지금 2층에 뛰어올라가 히데미 양을 제외하도록 손쓰는 건 무리다. 게다가 「본의는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서도 히데미 양 자신이 이미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노리코도 격려할 셈으로 말을 걸었다. 이게 계기가 되어 멋진 언니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좋은 만남 같은 건.」
한숨 섞어 중얼거리더니 히데미 양은 시마코 씨를 쳐다봤다.
「사정이 이렇게 돼서 다과회 동안은 장미관에서 그다지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과회에선 신문부의 마미 님과 히데미 양 두 사람이 도우미로 왔지만, 다과회에 참석하기로 되었으니 그다지 도움을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나랑 노리코가 처리할 테니까. 사무나 잡일 같은 건 신경쓰지 말고 손님 접대 야무지게 부탁해.」
시마코 씨의 말에 히데미 양이 힘없는 목소리로 「네에」라고만 대답했다.
「그럼 2시가 되었으니 접수를 시작해 주세요. 전 유미 님, 요시노 님과 함께 2층에서 맞이할게요.」
「알았어.」
「초대장과 학생수첩을 제시하도록 해서 본인임이 확인되면 명찰을 주도록 하래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휘청휘청 계단을 올라간다. 저런 상태로 「잠입취재」 성공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튼 2시가 된고로 노리코는 현관 문을 열어 손님을 안으로 맞이했다.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노리코의 인사에 손님들은 「평안하세요」 로 응한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쪽에 한 줄로 서서 접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마코 씨가 대기중인 책상 앞에서 안내하며 노리코는 1, 2, 3, ...... 하고 숫자를 세었다. 전부 해서 25명이 장미관에 들어오자 일단 문을 닫는다. 지각, 결석 없음. 대단한데.
수요일 방과 후 응모 마감 시점에서 마지막 응모인원은 1학년 15명, 2학년 10명, 이렇게 총 25명이었다. 당초 예정했던 각 20명에 도달하지 않아서 전원 초대장을 보내기로 했다. 학년에 따라 인원수가 차이나는 건 역시 부통 두 사람을 목적으로 한 1학년이 많은 탓이려나. 그게 아니면 학원생활의 남은 일수와 관계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1학년과 2학년으로 나눠 포크댄스 출 것도 아니니 수가 맞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실제로 실내를 준비하다 안 거지만 책상을 들여놓으니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이 정도 인원수로 그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원래 예정된 인원이었다면 서서 먹는, 아니 서서 마시는 파티가 될 뻔했으니. 단지 추첨이 열리지 않았던 것에 생각이 미치자, 토오코가 응모했더라면 참가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느끼고 마는 노리코였다.
「접수가 끝나신 분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초대장과 학생수첩으로 본인임을 확인하고 명찰을 준다. 간단한 절차지만 오히려 천천히 시간을 쏟는다. 실수가 없도록 신중히,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노후화된 계단에 사람이 집중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앞서 접수를 끝낸 2학년이 2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1학년 순번이 되었지만, 고등부부터 리리안을 다니기 시작한 노리코에게는 반이 다르면 대부분 모르는 학생이었다.
「평안하세요. 장미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평안하세요, 노리코 양. 수고 많으세요.」
자신은 모르는데 상대방은 자신을 분명히 알고 있다. 시마코 씨의 동생이 된 이후 이런 일이 가끔씩 생기곤 한다. 
「고맙습니다. 멋진 만남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예전엔 귀찮게 여기던 노리코였지만, 최근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기고 있다. 이렇게 말을 거는 이유가 자신이 로사 기간티아의 동생이기 때문이지만, 시마코 씨가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거기에 연결고리가 생겨났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다시 말해 시마코 씨가 가져다 준 만남인 셈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 접수자는 부드러운 웨이브의 세미롱 소녀였다.
「1학년 국화반, 나이토 쇼코입니다.」
이 애가 바로─── 라는 생각보다 「아, 귀여워」란 느낌이 먼저 들었다. 요시노 님이 이러쿵저러쿵 하시길래 얼마나 강렬한 인간이 등장할까 했더니. 평범하게 귀엽고, 나름대로 기품있는 태도에, 표정도 부드러운, 굳이 말하자면 친근감있는 타입이었다. 쇼코 양은 장미관이 처음인 듯,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하는 동안 마지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명찰 받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아무튼 교복 가슴 언저리에 명찰을 달고 나서 쇼코 양은 말했다.
「다과회 참석자와는 별도로 누군가 오셨나요?」
「네?」
회수한 초대장을 모아서 정리하던 노리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 이 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저기 그러니까, 『리리안 학보』취재 같은 게 들어올까 해서.」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시마코 씨가 대답했다.
「참석자 이외에 같이 자리를 하는 사람은 저와 노리코예요. 신문부 취재는 있지만 기자 두 명 또한 다과회 참석자이기도 하니까 그리 신경 안쓰셔도 될 거예요.」
「신문부...... 그 외에는──.」
「그 외? 로사 키넨시스나 로사 페티다라면 오늘 안 오시는데요.」
노리코가 앞질러 대답했다. 그밖에 「그 외」는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이토 쇼코 양이 가리키는 「그 외」는 어쩐지 장미님이 아닌 듯하다.
「아뇨, 저기.」
쇼코 양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이더니 결국 「그런가요」하고는 자신의 질문을 끝맺었다.
「쇼코 양?」
아직 뭔가 할 말이 남은 게 아닌가 했지만, 쇼코 양은 고개를 들고 방긋 웃었다.
「괜한 수고를 끼쳐 죄송합니다. 얼른 2층에 가봐야겠네요. 다들 기다리실 테니까요.」
이미 인적이 끊긴 계단을 혼자서 경쾌하게 올라가고 있는 천연 파마의 소녀. 그 뒷모습을 노리코가 아무 말없이 배웅해 주고 있는데, 시마코 씨가 어깨를 툭 쳤다.
「정말로 뭔가 필요하다면 나중에 분명히 말하겠지.」
「그럴까.」
「그럼. 자, 우리도 2층에 가자.」
걱정 말라는 그 미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리코도 계단을 올라갔다.
다과회가, 시작된다.

 

 

3

 

금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임은 『리리안 학보』 및 초대장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자매를 원하면서도 좀처럼 인연이 없음을 하소연하는 분들께 만남의 장을 제공코자 하는 취지에서 열렸습니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평소에 교류의 기회가 없었던 분들께 부디 친목을 깊이 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인사말을 하며 요시노는 「이 초대객 중에 몇 명이나 이런 딱딱한 인사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보다 점수 매기느라 정신없지 않을까? 저봐. 저기 2학년. 완전히 눈을 쟁반처럼 뜨고 1학년 얼굴과 이름을 체크하고 있어.
아무튼 손님들에겐 들어온 순서대로 자리에 앉게 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자기소개를 한 후, 자유 시간 때 자유롭게 자리를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그 때, 찜해놓은 학생 곁에 얼마나 신속하게 이동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다들 필사적이다.
13 대 16. 숫자상으로는 1학년이 앞서고 있으니, 있는 그대로 보자면 2학년에게 유리한 시장인 셈이 된다. 하지만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 1학년 중 몇 명은 뻔히 단 한 명의 2학년을 노리고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3 대 16이라고 해도, 대충 1:1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봐. 거기 1학년. 노골적으로 유미 양만 보지 말라구. 적어도 인사말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유미 양을 5초 보고, 이쪽을 2초 보는 정도의 마음 씀씀이는 있어야잖겠어.
「── 이상. 이 다과회가 좋은 선례가 되기를.」
손님들이 산만해지기 시작하자, 요시노는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긴 연설은 미움받는 법이다. 드문드문 박수 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요시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사말을 하는 동안 시마코 양과 노리코 쨩이 준비해준 차를 유미 양과 같이 나르기 위해서다.
「저기, 저도 도울게요.」
아까 유미 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1학년이 일어서서 다가오려는 걸 손으로 제지한다.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다들 앉아주세요.」
한 사람이 튀어나오자 다들 「저도」, 「저도」 하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비좁은 회장에 간신히 자리에 앉힌 인간들이 일어서서 한 곳에 몰려들었다간 어찌될 것인가 하는 것쯤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실제로 요시노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홍차가 든 컵이 다섯 개 있다. 이크, 물소의 대이동이 시작됐나, 하고 착각할 만한 그 기세에 무심코 손이 미끄러질 뻔 했다.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세요.」
정류소 접어들 때 나오는 버스 안내 방송이냐. 속으로 딴지를 걸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선의의 폭동을 미수로 진정시키자, 거의 대부분 일어선 1학년 중에 단 한 명 침착하게 앉아 있는 소녀가 눈에 띄었다. 부드러운 웨이브 헤어. 요시노를 알아채고는 싱긋 웃는다.
(헤에......)
쓸데없이 알랑거리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사교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요시노의 경우, 사고방식이 다소 삐딱하니까 일손이 충분한데도 「돕겠습니다」라고 나서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 벌려고?」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당초 계획에선 시종 우아한 다과회가 될 예정이었는데도 어째 정신사나운 스타트가 되고 말았다. 좀처럼 예상대로 안풀리는 법이다. 차가 다 돌아가자 끝에서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손님에게 갑자기 선두타자를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니, 주최측부터 우선, 해서 유미 양이 일어섰다.
「2학년 소나무반 후쿠자와 유미입니다. 약한 과목, 잘하는 과목은 특별히 없습니다. 평균점이 장점이죠. 언니는 오가사와라 사치코. 에 그리고...... 끝.」
어이 뭐냐고. 요시노는 언제나처럼 자기소개가 서툰 친구를「에구구」하고 쳐다봤다. 평균점이 장점이라니, 전혀 자기 어필이 안되잖아. 게다가 언니 이름은 뭐하러. 그런 건 여기 있는 사람 죄다 알고 있다구.
「2학년 소나무반 시마즈 요시노. 검도부 소속. 1학년 중에선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작년 이맘때쯤 심장 수술을 받고 병약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이케나미 쇼타로, 취미는 스포츠 관람. 하루라도 빨리 동생을 갖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자기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자유 시간 때라도 꼭 입후보를.」
여기선 되려 레이 쨩의「레」자도 담지 않는다. 레이 쨩 목적이면 문전박대할 기합으로 요시노는 임했던 것이다.
「2학년 소나무반 야마구치 마미입니다. 『리리안 학보』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늘 애독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알고 계신 것처럼 이번 다과회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신문부가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과회가 성공하고, 덤으로 귀여운 동생까지 생긴다면 럭키, 라는 기분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학년 복숭아반 타카치 히데미입니다. 이 기획이 잡힐 때까지 언니에 대해선 그다지 생각해보질 않았습니다. 지금은 신문 만드는 일이 참을 수 없이 재밌거든요. 혹시 좋은 만남이 저에게 생긴다면 그건 제가 신문부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깊이 이해하시고 응원해 주실 언니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합니다.」
아무래도「억지로 끌려왔습니다」라고는 말 못하므로, 신중하게 말을 골라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래서야 전혀 자기 어필이 되질 않는다. 히데미 양은 은근히 「내 언니가 되면 고생할걸요.」 라고 견제구를 던지는 것과 같으니. 계속해서 일반 참가 손님들의 자기소개가 진행된다. 익숙지 않은 장미관에서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엉뚱한 말을 해 자폭하는 걸 두려워해서인지, 누구나 무난한 자기소개의 반복이라, 요시노의 망에 걸릴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학년 국화반 나이토 쇼코입니다.」
헤에, 이 애가. 요시노는 약간 관심을 나타냈다.
「중등부 재학 시절부터 산백합회 여러분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뵙는 것만으로 기쁩니다.」
(중등부 재학 시절부터, 친언니가 전 산백합회의 토리이 에리코 님에게 고배를 마셔왔습니다. 이제부터 서서히 복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쁩니다.)
반쯤 재미 삼아 마음 속으로 그런 말을 맞춰본 게 허무할 만큼 나이토 쇼코는 싫은 부분을 찾기 힘든, 느낌이 좋은 여자애였다. 어쩌면 나이토 카츠미 님의 의지같은 건 처음부터 작용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저기 있지」
옆에 앉은 유미 양의 팔을 건드리자, 유미 양은 요시노 양과는 또 다른 표정으로 나이토 쇼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찾았다......」
웃음을 간신히 참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유미 양.
「에?」
요시노는 솔직히 애가 탔다.
찾았다니, 뭘? 혹시, 동생이란 의미야?

 

 

4

 

「유미 님은 어떤 동생을 바라시나요? 자신처럼 친근감 넘치는 귀여운 타입? 아니면 로사 키넨시스처럼 도도하고 아름다운 타입?」
자유 시간이다. 자유 시간이란, 자유롭게 자리를 떠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봐요, 이러는 시간이다. 하지만.
「에 그러니까, 저기, 그런 식으로 타입을 나눠 생각해 본 적이 없달까.」
유미는 아까부터 자유롭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 명의 1학년생에게 둘러싸여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따먹기 장기[*はさみ將棋. 일본 장기를 이용한 놀이로, 상대방의 말을 양 옆에 끼워 따먹는다]에서 구석에 몰려 꼼짝달싹 못하게 된 장기말 같다. 구석 자리에 앉았던 게 화근이었다. 사실은 나이토 쇼코 양과 얘길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여기에 있는 세 사람을 내팽개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데다, 아무래도 그건 역시 기쁜 법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질문 하나하나에 대답을 해주고 있다. 설마 「여기서 나가고 싶으니까 거기 비켜」라고는 말 못하니까.
「자매는요, 처음 만났을 때 역시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는 걸까요?」
그렇게 묻는 아이코 쨩(藍子ちゃん)은 차 준비할 때 제일 먼저 일어섰던 애다.
「글쎄. 각자 나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마코 양의 경우, 언니 때도 동생 때도 벚나무 아래에서 각각 인상적인 만남이 있었다나 보지만, 요시노 양 같은 경우엔 태어났을 때부터 사귀었으니까 두근거림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유미 님의 경우는요? 로사 키넨시스와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치구사 쨩(千草ちゃん)이 눈을 반짝이며 질문한다.
「난 줄곧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두근두근했어. 하지만 언니의 경우엔 그런 감정하곤 담 쌓으셨던 모양이야.」
「설마요.」
노조미 쨩이 조그맣게 외쳤다.
「정말이야. 얼마 동안은 나랑 만났다는 걸 잊고 계셨을 정도라니까.」
유미의 말에 세 사람이 폭발하는 느낌으로 동시에 웃었다. 웃길 작정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복잡한 기분. 자리가 화기애애해진 건 기뻐할 일이지만.
「어머, 유미 양. 하렘 상태네.」
지나가던 요시노 양이 놀리듯이 말했다.
「부러운데 그래. 나도 끼워 줄래?」
1학년들은 물론 「아, 그러세요」 라며 앞자릴 터준다. 유미는 그냥 요시노 양이 자리를 같이 한다고만 생각했다. 1학년 세 명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런데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난 치구사 쨩에게 요시노 양은 「됐어」라고 말하며 유미의 손을 쳤다.
「그럼, 터치. 선수 교대.」
「헤?」
혼란스러워 하는 유미를 억지로 일으켜서는 요시노 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를 바꾸는 순간 귓속말로 속삭였다.
「유미 양, 저 애랑 얘기하고 싶었지?」
저 애라고 해서 돌아보니 나이토 쇼코 쨩.
「굉장해.」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놀라자 「친구를 얕보지 마. 그쯤은 척 보면 안다구」란다. 마지막엔 「잘 되면 좋겠다」라며 보내줬다.
「응」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 무리에서 빠져나온 후, 유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요시노 양이 유미가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 알고 있지? 요시노 양은 역시 초능력자가 아닐까. 단지, 「잘 되면 좋겠다」 의 목소리 톤이 낮았다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돌아보니 요시노 양은 유미를 쫓아가려는 1학년들을 잘 달래 주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두손 모아 감사를 표하고는, 유미는 쇼코 쨩에게 말을 걸었다.
「평안하렴. 즐기고 있니?」
「네.」
쇼코 쨩의 옆에 있던 마미 양이 그걸 계기로 자리를 떠났다. 유미는 그 빈 자리에 앉았다.
「나이토 쇼코 양. 나이토 카츠미 님의 친동생이란 정보가 들어왔는데......」
정말? 이라고 물으니 시원스레 「네」하고 대답했다.
「숨기고 있던 건 아니지만요. 언니는 졸업했고. 게다가 말한다 한들, 불리해진다면 모를까 유리해지지는 않겠죠?」
「왜?」
「아마 산백합회 분들은 언니에게 좋은 인상은 없을 테니까요.」
「그럴까나.」
유미는 직접적으로 카츠미 님은 모른다. 다소 잘 아는 편인 요시노 양은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고등부에 들어와서 재학 시절 언니의 이야기를 여러 모로 들어서요. 대개는 안닮았네, 그렇게들 시작하다가, 공부벌레에 이벤트를 무시한다든가 그런 식으로 말예요. 토리이 에리코 님을 라이벌로 보고 있었던 듯 하고요.」
나왔습니다. 에리코 님!
「하지만 사이좋은 자매잖아?」
「그렇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서로 반발했으니까.」
「헤에......」
그에 비해선───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그럼 카츠미 님에 대한 반발로 산백합회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조금 달라요. 작년...... 아니, 올해 발렌타인 데이 때, 보물찾기 이벤트가 있었죠? 그 때.」
「발렌타인 데이 보물찾기?」
그건 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얘기가 튄다.
「그 때 전 중등부 학생이었지만 재미있어 보여서 고등부까지 갔었어요.」
「반칙」
유미의 말에 쇼코 쨩은 웃으며 「반칙이죠」 하고 인정했다.
「그 때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유미 님을 봤어요.」
「어, 어라......」
그건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상이다. 보물찾기라기 보다 차라리 술래잡기. 스커트는 펄럭펄럭, 말로 표현 못할 형상을 하고 뛰어다녔을 테니.
「아주 생기넘치고 즐거워 보여서. 아아, 부럽다, 라고 생각했죠. 그게 『리리안 학보』를 의지해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산백합회 분들을 실제 인간으로 의식한 최초 경험이었어요.」
생기넘친다. 말은 하기 나름이군. 쇼코 쨩은 계속했다.
「고등부에 입학하고 나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주목하고 있었죠. 놀람과 감동으로 휩싸인 신입생 환영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체육제에선 장미님이나 봉오리 같은 건 관계없는 일반 학생임에도 산백합회 간부 분들은 어째선진 늘 모든 이의 눈길을 끌고 계셨고요.」
「......」
어떻게 맞장구를 쳐줘야 좋을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한들 둑 터지듯 속마음을 털어놓는 쇼코 쨩의 기세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학원제. 연극도 훌륭했어요. 하지만 가장 부러웠던 건 사진부 전시장에 걸린 패널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분들이었어요.」
「사진부 패널?」
「전 진심으로 저 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 줄곧 생각했죠. 그 때 이번 다과회 기획을 듣고.」
아아, 그렇구나. 겨우 알았다.
「그러니까 나든 요시노 양이든 상관없다는 거였구나.」
쇼코 짱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그걸 이루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건 누구의 힘인지를. 어쩌면 그 사람 역시───. 짧은 시간동안 유미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앞질러갔다.
「죄송합니다. 바보같이 너무 정직하게 써버려서. 기분 상하셨죠?」
「그렇지 않아. 단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쇼코 쨩이 착각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뿐이야.」
「착각?」
쇼코 쨩은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뭘 어떻게 착각하고 있는지 자신은 도무지 모르는 것이다.
「산백합회의 중심에 있지 않다고 해서 생기넘치지 말란 법은 없다구. 중심에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생기넘친다는 보장도 없고 말야.」
유미는 말했다.
「학생회 일만이 재미있을 거란 법도 없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빛나는 사람은 잔뜩 있으니까. 그러니까 쇼코 쨩이 단지 사진 속에서 빛나길 바란다면 굳이 봉오리의 동생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쇼코 쨩은 가만히 유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똑똑해 보이는 애니까 이 정도만 해도 알아들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차였다는 거군요.」
응, 하고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현이야 어쨌건 쇼코 쨩을 동생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만은 유미의 마음 속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난 내 동생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을 동생으로 삼고 싶어. 쇼코 쨩도 둘도 없는 소중한 언니를 찾길 바래.」
「그럼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요시노 님 역시 힘들겠네요.」
쇼코 쨩은 고개를 돌려 요시노 양을 보았다. 요시노 양은 세 명의 1학년 곁을 떠나 다른 1학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신경쓰지 마. 단지 내 혼잣말이니까.」
「혼잣말 치고는 제 가슴을 푹 찌르셨다구요.」
「미안. 기분 상했니?」
「제 무례한 어필 코멘트랑 쌤쌤이해주세요.」
「OK」
유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쇼코 쨩도 그에 응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할 말을 다해서 후련해졌어요.」
꼬옥. 단단히 악수를 나눈다. 무슨 악수인지 물으면 잘 설명은 못하겠다. 하지만 그 때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한 게 기뻐서 그걸 상대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부통을 목표로 했습니다만 변경하기로 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쇼코 쨩은 유미의 곁에서 떨어져 갔다. 언니를 찾을 셈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2학년에도 1학년에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 다과회를 즐기려는 모양이었다. 지금 여기에 츠타코 양이 있었더라면. 학원제에서 전시된 패널 사진에 지지 않을 만큼 멋진 표정을 남길 수 있을 텐데───. 유미는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다.

 

 

5

 

「쇼코 쨩. 잠깐 괜찮아?」
다과회가 시작한지 슬슬 1시간이 될 무렵,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인 유미 님이 부르셨다. 보니 과자같은 문 옆에서 손짓하고 계시길래, 일단 쇼코는 「네」하고 다가갔다.
「일 좀 도와줘도 괜찮을까?」
목소리를 죽여서 말한다. 지나가던 니죠 노리코 양이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면」하고 말을 걸었지만, 유미 님은 노리코 양에게 「그럼 홍차 한 잔 더 줄래?」라고 부탁하고는 다시 쇼코를 바라봤다.
「실은 심부름 좀 부탁하려고. 장미관 밖인데 말야.」
「심부름? 괜찮아요. 어딘데요?」
유미 님은 주최측의 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경솔하게 장미관을 떠날 수 없겠지. 쇼코는 그리 판단하고 요청을 받아들였다. 자기라도 괜찮다면 도와드릴게요, 라고.
「살았다. 장소는 클럽 하우스야. 사진부 부실에 가서 가지고 와줬음 하는 게 있어서.」
「사진부?」
그 단어에 쇼코의 심장이 튀어오를 뻔 했다.
「클럽 하우스 위치는 알고 있지?」
「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차」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전 클럽 관계자가 아니라서.」
현명하게 거절할 구실을 찾았지만 짧은 시간에 그럴 싸한 변명을 만들어내긴 힘든 법이다.
「괜찮아. 클럽 하우스 건물에 들어가서 2층에 올라가. 사진부 부실을 발견하면 문에 노크. 아마 안에 누군가 있을 거니까 그 사람한테 내가 부탁했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거야. 어때, 간단하지?」
「하, 하아.」
한번 간다고 그런 이상 싫다고 할 순 없다. 게다가 싫다고 하면 그 이유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쩔 수 없다. 쇼코는 각오를 다졌다. 싫은 게 아니다. 단지 혹시 거기에 그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도망치고 싶어져서 그런 것뿐. 장미관에 들어오기 전에 어쩌면 여기서 재회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한번은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텐데도.
「알았습니다. 뭘 가지고 오면 되죠?」
「사진틀. 수학여행 가서 사온 거야. 마블[*대리석 모양] 무늬니까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사진부에 사진틀. 그곳에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왜 그런 걸 지금 가지러 가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그렇지. 3시 30분까지 가지고 오면 돼.」
유미 님은 손목시계를 보고 말했다.
「3시 30분? 아직 30분 이상 남았는데요?」
쇼코는 점점 불안해졌다.
「정말로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건가요?」
의심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면 상당히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쩔 수없이 드는 것이다.
「시간이 돼도 못찾겠으면 그냥 와도 돼.」
그럼 다녀와, 라며 어깨를 떠밀려, 쇼코는 계단을 내려갔다.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계단이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클럽 하우스 안은 어슴푸레했다.
토요일 방과 후이기도 해서 활동하는 클럽이 거의 없는지 복도엔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입구에 그려져 있는 배치도로 장소를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신문부 옆에 사진부 부실이 있다. 문은 열려 있다. 안에 사람이 있다. 단 한 사람. 앉아있는 뒷모습이 있다. 그 사람을 쇼코는 알고 있다.
역시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쇼코가 노크를 하기 전에 그 사람은 뒤돌아 보았다.
「아아」
그녀는 미소지었다. 전혀 놀라지 않고. 마치 오늘 여기서 쇼코와 만날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러웠다.
「오랜만이네. 1학년 국화반 나이토 쇼코 쨩.」
타케시마 츠타코 님은 약 8개월 전에는 밝히지 않았던 쇼코의 이름도, 현재의 반도, 틀림없이 알아맞추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죠?」
「꽤 됐어. 4월 초쯤이려나. 보물찾기 때는 중등부 학생이었군. 그러니 당연히 못 찾을 수밖에.」
「그 때는 실례 많았습니다. 왠지 죄송해서 좀처럼 츠타코 님 앞에 나서기 힘들었어요.」
「아니 뭘. 오늘까지 말을 안걸고 있었던 건 이쪽도 마찬가지니까. 피차일반이지.」
서로 고개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한 후, 츠타코 님은 「앉으렴」 하고 의자를 끌고와 쇼코를 앉게 했다. 사진부 부실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대략 2평 남짓 되는 크기에 책상이나 책장 등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상당히 갑갑하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잘도 활동하는구나 싶어 감탄하며 두리번 거리다가 벽에 있는 문을 발견했다. 쇼코가 들어온 곳과는 다른 문이다. 아마 저기가 암실이겠지. 여기까지 약품 냄새가 살짝 풍겼다.
「그 뒤로 어때? 사진 찍는 데는 좀 익숙해졌어?」
「그리 간단히 익숙해지지 않아요.」
「뿌리 깊으니까 말이지.」
「그럼요.」
자기 이야기를 하며 쇼코는 다른 데 흥미가 쏠렸다. 츠타코 님은 쇼코가 올 때까지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뭔가 작업을 하고 있던 것치고는 책상 위가 그리 어질러지지 않았다. 사진관에서 프린트를 맡기면 같이 딸려 올만한 판지와 비닐로 된 간이 포토 앨범이 한 권, 크래프트지[*크래프트 펄프를 원료로 하여 종이 질이 질긴 포장지로 쇼핑백 등으로 많이 쓰임.]로 포장된 교과서 크기 정도의 꾸러미가 하나. 그리고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카메라 2대.
「절 찾으셨나요?」
아까 츠타코 님은 쇼코를 「못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반응해 물었다.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 발렌타인 데이 직후에 말야. 하지만 못 찾았지. 그러고 있는데 새 학기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눈에 띄잖아.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니까.」
츠타코 님이 웃었다.
「귀신에 홀렸다고 하니까 아까 일도 그래.」
「아까 일?」
「중정에서 장미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쇼코 쨩을 봤지.」
「아......」
츠타코 님은 그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더라도 주변 상황을 살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그 때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쇼코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과회에 응모한 걸 알고 츠타코 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그래서 말야.」
츠타코 님은 맗했다.
「사실은 다과회 장면도 찍기로 약속했는데 취소했어.」
「혹시 저 때문인가요?」
「그냥 계기가 됐을 뿐이야. 처음엔 말야, 내가 없는 편이 쇼코 쨩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 하지만 쇼코 쨩 뿐만 아니라 다른 초대객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
츠타코 님은 턱을 괴었다.
「그래서? 어때, 즐거웠어?」
「네.」
「그거 잘됐네. 어라, 그러고 보니 다과회는? 끝났니?」
「아뇨. 유미 님이 저에게 일을 부탁하셔서......」
쇼코는 그제서야 생각해 냈다. 나참, 이래서야 심부름을 깜박한 개미다. [*어린이 동요 "개미 심부름"의 내용. 개미들이 줄지어 서둘러 심부름하다 서로 부딪히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다 심부름을 까먹는다는 내용] 
「유미 양이? 뭘?」
「사진틀을 가져왔으면 한다고요.」
「사진틀?」
뻔히 「난 몰라」라는 표정으로 츠타코 님이 되물었다. 짐작가는 것이 없나.
「네. 마블 무늬가 들어간, 이탈리아에서 사온 건가 봐요.」
쇼코는 유미 님이 언급한 특징을 떠올리며 부실을 빙 둘러봤다.
「하지만 없네요. 가보면 바로 알 거라 그러셨는데.」
자, 난처하다. 이러다간 정말로 빈 손으로 돌아가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책장이랑 상자 안을 멋대로 슬쩍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중얼중얼 염불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사진부에 유미 양 물건이 있단 말이지? 아니, 없어. 실제로 유미 양 물건 같은 건. 어떻게 된 일이야?」
놀랍게도 그건 츠타코 님의 혼잣말이었다.
「저기, 츠타코 님?」
여보세요. 쇼코가 말을 걸었다. 골몰히 생각중인데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약간 신경쓰이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기 때문에.
「애초에 유미 양은 그 가게에서 사진틀 같은 걸 샀던가? ─── 어라, 에, 왜? 쇼코 쨩?」
「유미 님은 가지고 왔으면 하는 물건이라곤 하셨지만, 자기 물건이라곤 안 그러셨던 같아서요.」
그러자 츠타코 님은 「뭐?」하는 입모양새인 채로 굳어 버렸다. 뭔가 해선 안될 말을 한 걸까. 쇼코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을 때, 츠타코 님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고개를 숙이더니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했다.」
「네?」
「유미 양은 내가 있는 걸 알고서 널 보낸 거야.」
「예? 누가 있을 거라고 그러셨지만 누구라고까지는.」
「알고 있었어. 내가 부실에서 대기하고 있겠다는 말을 남겼으니까.」
「저기」
그렇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거람? 유미 님은 츠타코 님이 부실에 계시단 걸 아셨다. 유미 님은 쇼코를 부실로 보냈다. 고로, 유미 님은 츠타코 님과 쇼코를 만나게 하려고 그랬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하지만 만약 그 가설이 맞다고 해도, 유미 님이 왜 그런 일을 꾸며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좀전에 유미 님과 사진 이야기를 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때 츠타코 님의 이름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무슨 사정으로 유미 양이 여기 왔을 때 이걸 봤더랬지. ...... 그래서.」
츠타코 님은 크래프트지로 포장된 꾸러미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전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데요.」
이거라고 해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아아, 미안. 나도 머릿속이 잘 정리가 안되서 말야.」
그리고 츠타코 님은 「이것」을 쇼코에게 내밀었다.
「네?」
「열어 봐. 이게 쇼코 쨩을 이곳에 오게 한 원인.」
「이게?」
열어 보랬으니 사양않고 포장지를 고정한 테이프를 벗겨낸다.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아까 쇼코 쨩을 보고 나중에 주려고 생각해서 급하게 포장하느라 이런 포장지 밖에 없었어.」
츠타코 님이 「미안」하는 말과 동시에 포장이 벗겨졌다.
나타난 건, 이럴 수가, 마블 무늬의 사진틀이었다. 그것도 유미 님이 가지고 와달라고 했던 특징 그대로. 안에는 이미 사진이 들어 있었다. 세피아 빛깔의 예쁜 사진이다. 두 명의 소녀. 서로 마주보며, 상자에 든 과자 같은 것을 먹고 있는. 보고 있으면 어째선지 가슴이 죄어오는 듯한. 이걸 찍은 사람이 츠타코 님이라면, 츠타코 님은 역시 훌륭한 사진가다.
「선물」
「네?」
「약속했잖아.」
그제서야 겨우 쇼코는 깨달았다. 소녀 중 한 사람은 카츠미 언니라는 걸.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거짓말. 전 이렇게 예쁘지 않아요. 언니도 이렇게 자상한 표정 안하구요.」
「하지만 쇼코 쨩 맞지?」
「......예」
「틀림없이, 언니지?」
「예」
쇼코는 사진틀를 꼭 안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고는 웃었다. 이런 일로 울었다가는 츠타코 님이 분명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실 테니까. 그런 건 싫다. 모처럼 이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고맙습니다. 이 사진, 평생 가보로 삼겠어요.」
이걸로 평생분의 사진운을 다 써버린 것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앞으로 찍을 모든 사진이 끔직한 얼굴로 나온다 해도, 이 한 장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요란스럽네.」
츠타코 님은 웃었지만, 쇼코는 진심이었다. 그만큼 사진발에 관해 심각한 고민을 안고 살아왔으니까.
「사진틀은 어쩌죠?」
「바보같이 정직하게 유미 양한테 들고가지 말아줘. 그건 쇼코 쨩에게 준 거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 사진틀은 유미 님과 관계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유미 님 물건이 아니라고 들었던 것도 같다.
「선물이라고 그랬지? 사진을 건네주는 게 늦어진 사과 겸 해서. 괜찮다면 사진틀이랑 같이 받아줘.」
「괜찮나요?」
「물론이지. 쇼코 쨩에게 줄 선물로 내가 사온 거니까.」
「기뻐요......!」
근사한 사진틀이라 기쁘다. 하지만 더욱 기쁜 건 츠타코 님이 저 먼 이탈리아 땅을 여행하고 계셨을 때 잠시나마 자신을 떠올려 주었다는 점.
「─── 자아, 뇌물도 넘겼겠다, 얼른 교섭에 들어갈깝쇼.」
「네? 교섭요?」
츠타코 님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실은 쇼코 쨩의 사진 더 있거든. 난 있지, 학원제나 전시회, 가끔 『리리안 학보』지면도 그렇지만, 발표하는 경우 피사체인 본인의 허가를 받는 게 원칙이야. 그리고 이거.」
츠타코 님이 내민 건 사진관에서 준 듯한 그 포토 앨범. 표지를 넘기니 나온다 나와. 클로즈 업에서 전신 사진까지. 거기 있는 전부가 쇼코의 스냅사진이었다.
벚꽃잎의 융단 위를 걷는 쇼코. 우산을 쓰는 순간의 쇼코. 스포츠 타올을 터번처럼 머리에 감고 반 아이들과 장난치는, 풀장에서 돌아오는 쇼코. 체육제에서 봉을 끄는 쇼코. 포크댄스를 추는 쇼코. 학원제에서 손님을 끌고 있는 쇼코. 『토리카에바야 이야기』를 다본 후 약간 방심 상태인 쇼코. 어느새 이렇게나 많이───.
「발표해도 좋다는 허가 주라.」
츠타코 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도 정작 쇼코는, 대답이 없는 건 둘째치고, 눈물을 글썽이더니 끝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 불가? 그럼 맘에 드는 거랑 안드는 걸 나눠서 표시같은 걸 해주면......」
쇼코가 계속 아무 말없이 있으니까 츠타코 님이 조금 마음이 약해졌는지 양보안을 제안했다.
「......할게요.」
「에?」
「전부, 허가할게요. 그대신」
쇼코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도 뽑아 주세요. 이거 전부 다요.」
츠타코 님은 쇼코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나 보다. 하지만 자상하시니까 「그런 건 못봤어요」하는 얼굴로 아까의 활짝에 지지 않을만큼 쾌활한 웃음과 함께 앨범을 주었다.
「이렇게 간단히 OK 받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 교섭할 걸 그랬어. 그럼 학원제에 맞출 수 있었는데.」
「그러게요.」
쇼코는 재빨리 눈물을 닦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까지 이름도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을 짐짓 모른 체 해온 이유를 쇼코는 묻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학원제에서 이 사진을 보았더라면, 유미 님이 말씀하신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었는데.
「쇼코 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어서 찍는 게 순수하게 즐거웠어. 알면 경계할 거 아냐.」
「그야.」
일이 있을 때마다 「츠타코 님의 카메라」가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며 두리번두리번 두근두근하겠지.
「그·래·서」
하루라도 더 오래 숨어서 찍고 싶었단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고생이니까 용서해 주지만, 관계없는 남성이었다면 즉시 스토커 딱지를 떼야 할 판이다.
「그럼」
슬슬 가볼 시간이라며 츠타코 님이 일어섰다. 시계를 보니 3시 20분. 다과회 종료 시간이 다됐다.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거야.」
「네?」
쇼코가 긴장한다.
「괜찮다니까.」
츠타코 님은 웃으며 카메라를 쥐더니 부실을 나갔다. 그 뒤를 쫓아가며 쇼코가 애원했다.
「제가 의식하지 못할 때 셔터 눌러 주세요.」
「그건 무리. 단체사진이니까, 『자, 치즈』정도 안하면 다른 사람들이 화낸다구.」
「우왓, 최악이야.」
찍습니다 찍어요, 이러는 게 가장 질색인데.
「가끔은 못난 사진도 좋잖아.」
츠타코 님도 참. 부실 문 잠그면서 무책임한 말씀 하신다니까.
「못나면 발표 허가 안낼 거예요.」
이거야말로 굿 아이디어라고 쇼코는 생각했지만, 곧바로「그것도 무리」라며 거부당했다.
「다과회 응모요령 읽었지? 『리리안 학보』에 기사와 사진을 싣는데 동의한 사람만 응모할 수 있어.」
확실히 그런 말이 적혀 있었던 것도 같다. 절체절명. 이렇게 되면 마지막 수단.
「튀는 건 용서가 안되지.」
클럽 하우스에서 나오자마자 대쉬로 도망치려던 생각은 츠타코 님께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어째서 들켜버린 걸까.
「튀었다간 사진을 가공해서 풍선 안에다 쇼코 쨩 얼굴사진 집어넣을 테야.」
「에엑」
싫어 싫어 하고 떼를 쓰자 츠타코 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몇 장 찍어서 가장 좋은 걸 고르게 해줄게.」
「정말요?」
「정말이야. 그대신 비밀이다.」
「비밀!」
쇼코는 츠타코 님의 팔에 매달리며 웃었다.
츠타코 님의 사진이 좋아. 츠타코 님이 좋아.
장미관에서 학생회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어. 가슴에 품은 앨범 속에 있는 수많은 자신. 츠타코 님이 찍어주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신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까.

 

결국, 쇼코는 3시 30분에 사진틀을 들고 장미관에 돌아왔으므로, 유미 님의 심부름을 수행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유미 님은 쇼코에게 사진틀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츠타코 님과 함께 돌아왔던 것에 대해서도 별 얘기 없었다. 츠타코 님은 유미 님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한낱 유미 양에게 참견을 다 받고, 나도 늙었군.」
「어머,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웃으며 건너편으로 가버리는 유미 님.
「참나.」
참견은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결과야 어쨋건 「참견 안하고는 못배기는」 친구의 마음이란 아주 기쁜 것인가 보다.
───츠타코 님의 얼굴을 보며 쇼코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