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20권 시시비비 오디션 -2- 마리아님의 별

▒▒▒▒ 마리아님의 별 ▒▒▒▒

 

「『──따라서, 다과회(茶菓會)에 참가할 학생을 모집합니다. 응모 조건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이번 다과회는 만남의 장을 마련코자 하는 이른바 실험적인 시도입니다. 참석한다고 해서 반드시 누군가와 쇠르(자매)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아침부터 계속. 쉬는 시간 내내, 그 뉴스를 알리는 학교 신문, 즉 『리리안 학보』를 읽고서 소문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소리가 늘어가는 건 기분탓만은 아니겠지.
「『더우기, 로사 페티다 앙 부통(황장미 봉오리)과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홍장미 봉오리)도 참가할 예정』이래. 꺄악!」
오늘 몇 번째 「꺄악」이더라. 노리코는 문고본에 시선을 떨어트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독서에 집중할 수 없다. 이 학교에 입학하고 반 년, 여학교의 떠들썩함에 다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특히 굉장하다. 또 그 내용이 자신도 관련된 일인 만큼, 귀에 들어오면 뇌가 일일이 반응해 버리니 성가시다. 평소처럼 「아아, 새끼새들이 뭔가 지저귀고 있어.」 라며 듣고 흘려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저기 있지 노리코 양. 다과회 말인데.」
게다가 또, 더 상세한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며 노리코에게 다가와 묻는 급우들도 있으니, 이거 참.
「아아, 그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상대를 해주긴 하지만.
「거기에 적힌 것 외에는 나도 아는 게 없어. 하지만 흥미가 있고 조건도 맞다면 꼭 응모해줘.」
문고본에서 고개를 들고 싱긋 영업스마일. 이번 손님은 두 사람. 확실히 이 천사들은──.
「흥미는 있지만.」
「조건이 말야.」
아쉬운 듯 마주보는 이 두 사람은, 아 맞아, 아츠코 양과 미유키 양이었지. 성서낭독클럽이라는 기특한 부활동을 하고 있는.
둘 다 이미 클럽 선배한테 로사리오를 받았으니 다과회 참가자격은 없다. 그러므로 노리코는 더이상 얘기가 없을 거라 판단하고 다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두 손님은 책상 앞에서 떠나려 하질 않는다.
또 다른 용건이 있는지 물어보려던 차에, 아츠코 양이 말했다.
「그런데 노리코 양.」
「응?」
「토오코 양은 초대받았어?」
「토오코?」
다과회 관련으로 질문 공세를 받으리란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사전에 몇 가지 질문을 상정하고 그 대답도 준비해 두었지만, 그 중에 「토오코」란 키워드는 없었다. 왜 2학년 부통(봉오리) 두 사람 이외의 고유명사가 튀어나오는 거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도 노리코는 미유키 양이 손에 들고 있던 인쇄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리리안 학보』 읽었지? 응모자가 다수일 경우는 추첨이라고 거기에 써있을 텐데?」
「하지만, 그래도.」
「그보다 우선 토오코가 응모할지 어떨지 나도 몰라. 그런 건 본인한테 물어 보지?」
말하고 나서 노리코는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토오코는 이 두 사람하고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고. 입학 초기에는 「토오코예요」, 「아츠코예요」, 「미유키예요」 하며 아이돌 3인방이 자기소개하는 것처럼 늘 붙어 다녔는데.
「토오코 양이면 응모할 것도 없이...... 그렇지 않아?」
「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눈썹을 찡그리자 아츠코 양과 미유키 양은 노리코는 상관않고 둘이서 대화를 진행했다.
「아, 하지만 유미 님도 다과회에 참석하신다는 건, 역시 동생 선택은 아직 백지라는 건가.」
「그거 위장 아닐까?」
「그럼 카나코 양은?」
「그러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니까 카나코 양 유력설도 버리기 힘들지만, 현재 유미 님의 동생에 제일 근접한 게 토오코고, 이 다과회란 이름의 집단맞선에서 뭔가 우선 대우(다른 말로 특혜)를 조치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반 아이들 사이에서 그럴 듯하게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곤 해도 토오코 양 참 열심히 했어.」
「언젠가 장미님이 되고 싶다고 중등부 때부터 말하곤 했으니까」
그럼 마치. 말을 걸려다 그만뒀다. 자신이 감정적이 되어서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냉정하게 대처해야 해. 노리코는 한 호흡 쉬고서 말했다.
「그런 사실은 없는데──.」
「하지만 노리코 양이 모르고 있을 뿐일 수도 있지.」
「뭐?」
「여기에 적힌 것 말고는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만. 티없이 맑고 순진하며 솔직한 만큼, 천사는 성가신 존재라고 노리코는 생각했다.

 

 

2

 

「그래서? 지금까지 몇 명 모였어?」
초대장 초안을 쓰면서 요시노 양이 말했다.
「오늘 점심 시간까지 1학년 7명, 2학년 5명.」
대답한 건 요즘 들어 점심 시간, 방과 후 가릴 것 없이 장미관에 쿡 틀어박힌 마미 양. 라이프 워크인 『리리안 학보』 작업을 들고 출장중이다. 신문부 후배들도 도우러 오기 때문에 클럽 하우스를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일의 진척도는 낫다고 하지만. 어쩐지 「신문부 장미관 지부」가 생긴 기분이다.
그 대신이라 하긴 뭣하지만 3학년이 그다지 오지 않게 되었다.「너희들끼리 하도록 해」 라고 선언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특별히 장미관을 피하는 건 아니라서, 용무가 있으면 오고, 별로 아무 일 없어도 점심 시간에 훌쩍 나타나서 도시락만 먹고 가는 경우도 있다. 단지 옆에서 다과회 상담을 하고 있어도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어른스럽다」는 느낌이다.
「으음, 역시 생각보다 적구나.」
일단 『리리안 학보』에서 모집을 하는 것도 있어서 신문부의 마미 양이 응모용지 정리역을 맡아주고 있다. 
「12명인걸.」
유미도 초대장 레이아웃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적은 인원수다. 오디션, 새 이름 다과회의 모집 기사가 『리리안 학보 호외』에 실린 게 목요일. 응모는 그 날 방과 후부터 접수했으니까 다음주 월요일 방과 후인 현재 4일째가 되어간다. 학교가 쉬는 일요일을 빼면 딱 3일이 되고.
「응모방법이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마미 양이 응모요령이 게재된 『리리안 학보』를 꺼내들며 말했다.
「접수는 장미관 1층에서. 간결하네요. 이보다 글자 크기를 더 키우면 타이틀이랑 구분하기 힘들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우니 이대로가 좋은 것 같은데요.」
노리코 쨩이 말한다. 『리리안 학보』 이상무.
처음부터 조건이 까다로웠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까지 동생(언니)이 없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만남을 원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그 속에서 다과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기꺼이 협력해 주겠다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자 응모자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갔다.
「아니면 장미관 문턱이 높아서일까.」
새삼 기억이 떠오른 걸까. 시마코 양이 유미를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과거에 그런 사례도 있었지요. 그러나 미처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요시노 양이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장미관에 겁먹을 만한 1학년이면 우리들 쁘띠 쇠르는 될 수 없어.」
「요시노 양──.」
그건 틀렸어. 유미만이 아니라 마미 양, 시마코 양, 노리코 쨩, 다들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뭐야?」
「애초에 발단은 우리들 동생 찾기일지 몰라도, 지금은 봐.」
「맞다. 집단 맞선이었지. 일반 학생들 대상으로. 그럼 그 중에 심약한 애도 있을 수 있겠다.」
수긍하며 자리에 앉는 요시노 양. 지금은 스톱이 걸리긴 했지만 엔진 전개,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다.
「이래봬도 응모자들을 배려해주고 있는데 말야.」
느닷없이 2층으로 올라와! 이러는 건 난폭하니까 장미관 1층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응모용지와 볼펜, 그리고 사방 30cm 정도의 상자로 만든 응모함을 놓아두고 접수를 받았다. 응모함을 꺼내놓는 건 점심 시간과 방과 후 뿐이라 그 옆에는 항상 안내 인원을 배치. 지금 시간은 신문부 1학년 차례다.
「합계 12명이라. 응모함 크기가 허무하네.」
「그에 비해서 응모용지는 확실히 줄고 있지만요.」
노리코 쨩 말로는, 처음에 준비한 응모용지 매수 -(빼기) 오늘 점심 시간에 세어본 사용하지 않은 응모용지 매수가, 현재 응모자 수와 이퀄(=)까진 안되더라도 그리 차이가 나진 않을 텐데, 실제론 상당히 차이난다고 한다.
「잘못 써서 버린 것도 있을 테고, 일단 들고 가서 응모할까 어쩔까 고민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
「이렇게 몇 안되는 기입사항을 잘못 쓴 사람이나, 망설이는 사람이 총 40명 가까이나 있을 거라곤 생각되질 않는데요.」
빈틈없는 노리코 쨩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마미 양이 뭔가 생각났는지 종이 봉지를 뒤적이더니 서류봉투를 꺼냈다.
「회수한 것도 있어. 응모하고는 관계없어서 따로 챙겨뒀거든.」
「뭔데?」
일동 관심 집중.
「희망사항이나 응원? 그런 느낌의 편지.」
그러면서 마미 양은 한 장을 골라 읽어내렸다.
「『유미 님, 멋진 동생을 꼭 맞이하시길요. 파이팅! 』」
「어머머」
「『요시노 님 동생 희망, 유미 님 동생 희망, 이렇게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뭐라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다른 2학년생이 필요하나요? 그 수만큼 1학년들을 많이 초대하면 좋을 거 같은데요.』」
「......」
다들 흥미의 방향은 완전히 부통(봉오리)의 동생 선발에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이래서야 일부러 다과회를 여는 의미가 없어진다.
「더 있지만 뭐어 그게 그거니까 생략할게. 전부 20통. 참고가 될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훑어보도록 해.」
하지만 응모자 이외의 메세지가 응모서류보다 많다는 건 역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응모함을 2층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장난삼아 이러는 게 아니라 해도, 응모자가 아닌 사람이 구태여 계단을 오르면서까지 메세지 넣으러 오지는 않을 테니까.
「그치만 있지.」
유미는 말했다.
「당장 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응원해주는 셈이니까. 쓰레기가 들어있거나 그럴 때 다시 생각하지 않을래?」 
「아무도 쓰레기 같은 건 못 넣어. 당번이 보고 있는 걸.」
결국 안그래도 응모자 수가 적은데 차마 문턱을 더 높일 수 없으므로 변경은 안하기로 했다. 수요일 마감날까지 앞으로 이틀. 이제 와서 바꾸는 것도 좀 그렇단 얘기다.
「응모자 쪽은 다소 분위기 조성에 부족한 감이 있지만, 다과회는 나름대로 반응이 있어. 장미관 밖에서는 재미있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고.」
마미 양이 말했다.
「재미있는 현상?」
「이 어중간한 시기에 자매 언약을 맺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래?」
물론 그런 소문에 어두운 유미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요시노 양이나 시마코 양도 몰랐던 모양이다. 노리코 쨩은 리리안 1학년이니까 작년엔 어땠는지 모르는 것도 당연. 아마 츠타코 양이라면 사진 의뢰 같은 게 있으니까 자세히 알고 있을 텐데.
「우선 1학기. 5월 중반쯤이려나. 클럽에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됐을 무렵에 붐이 일지. 찜해놓는단 말야.」
마미 양의 강의가 이어진다.
「다음은 학원제. 크리스마스에 발렌타인 데이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눈맞기 쉬워. 그리고 학기에 상관없이 종업식. 설사 거절당하더라도 다음 날부터 방학에 들어가면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호오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동.
「그리고 이 시기. 보통은 쇠르(자매) 탄생에 대해선 휴한기야. 작년은 모 양의 영향으로 헤어졌다 결합했다 하며 불타올랐지만 예외적인 경우지.」
모 양이라면서 시선을 던지면 지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황장미 혁명 당시 화제의 인물이었던 요시노 양은 「이제 와서 뭘 새삼스레」 라는 표정으로 반격한다.
「그래서 마미 양의 분석은?」
「막차타기 현상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조금 신경쓰이는 1학년이 있다고 해봐. 아, 물론 그 애도 언니가 없고. 조금 신경쓰이지만 결정적인 사건도 없이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고 있지. 그런데 이번 다과회.」
「응?」
「어쩌면 그 애가 다과회에 응모할지도 몰라. 실제로 『응모할까 어쩔까 망설인다』는 상담을 받기도 해. 그제서야 깨닫는 거지. 『아, 다른 사람에게 주긴 아까워』.」
「우와─, 그럴 듯해.」
「『다과회에 간다고 하지 마, 내 동생이 되렴』 이런 말을 들으면 그 1학년생도 생각할 거야. 제로부터 쇠르 관계를 시작하기보다 나를 잘 아는 이 분이라면. 전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커플도 적지 않을걸.」
참가하지 않아도 다과회는 큐피트가 되어 쇠르를 짝짓는다. 직접은 아니더라도 이 기획이, 자매를 원하지만 인연이 없던 사람들끼리의 만남의 장이 된다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면 기뻐할 일이다.
「이 페이스라면 응모자 전원 초대할 가능성도 있겠다. 뭐어 접수 마감일까지는 다소 늘어나겠지. 이쪽도 막차타기니까.」
마미 양은 시원스레 웃으며 분석을 마쳤다.
「저기─, 4시 30분이어서 접수 마치고 왔습니다.」
신문부 1학년 두 명이 비스킷문 뒤에서 고개를 내민다.
「아─, 수고했어. 추웠지?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권하고 차를 내온다. 한 사람은 언제였던가 클럽 하우스에 있는 신문부 부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기대의 루키」 양이다.
「몇 명 왔니?」
「10명 정도요. 그 중에서 응모용지를 넣고 간 사람은 7명이고요. 근데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응모했을지는......」
응모함 뒤쪽을 열어 방과 후에 새로 접수받은 응모용지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 중 하나를 「어디」하고 골라서 요시노 양이 펼쳤다.
「아, 정말이네. 이름 없음, 반 없음, 어필 코멘트 없음. 그리고 뒤에 뭔가 써있어. 우왓, 특정인물 반대표다.『마츠다이라 토오코 양의 목적은 오가사와라 사치코 님』이래. 뭐야 이거, 겁나라...... 」
그러자 노리코 쨩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요.」
「응.」
노리코 쨩이 아니라도 남의 험담을 듣고 기분좋을 리 없다.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노리코 쨩이 「불길한 예감」이라고 말한 건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
「반 분위기도 그래요. 아니 토오코에 대한 반 아이들 시선에 뭔가 이상한 필터가 씌인 것 같달까요. 이번 다과회에 관해서도 참석할지 안할지 뒤에서 몰래 소문이나 내고 있고. 그런 건 본인에게 직접 물으면 될 것을.」
상당히 쌓였나 보다. 노리코 쨩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분노를 폭발, 말이 상당히 거칠어졌다.
「그래서 토오코 쨩은?」
유미가 묻자 노리코 쨩은 「아무 것도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무시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다 알고 있을 거예요.」
「하긴. 그 애 굉장히 섬세하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째선지 실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어라, 토오코 쨩은 섬세,는 동의를 얻을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유미가 그런 발언을 한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걸까. 으음. 골몰히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시마코 양이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왜 토오코 쨩이 반감을 산 걸까?」
「......글쎄요.」
노리코 쨩, 말은 안했지만 어쩌면 막연히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단지 확신이 설 때까지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된다거나 그걸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다거나 그런 이유로 말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마츠다이라 토오코 양도 그렇지만」
마미 양이 회수한 응모용지를 펼치며 말한다.
「호소카와 카나코 양도 아직 응모하러 오지 않았어.」
그러자 신문부 기대의 루키가 회의시간에 발언하는 것처럼 「저요」 하고 오른손을 들었다.
「카나코 양은 유미 님의 동생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요.」
「그건 들었어. 하지만, 거 왜 가을 여심(女心)이란 말도 있잖아. 학원제 도우미로 장미관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
그 대화를 들으며 유미는 「그럴까나」 하고 생각했다. 요전에 토오코 쨩도 말했지만 카나코 쨩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모난 곳이 깎이고 둥글어졌다. 한 마디로 다가가기 쉬워졌다는 말이지만, 그런데도 접근은 커녕 점점 더 멀어지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삐죽삐죽 만지면 아플 것 같던 카나코 쨩은 분명, 손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에 있었을 텐데도.
「헤에, 얘 좀 봐라.」
마미 양이 한 장의 응모용지를 두들기며 웃었다.
「어필 코멘트를 스트레이트로 적었어.」
어디어디, 하고 흥미를 표시하는 청중들을 앞에 두고, 가두연설처럼 일어서서 억양을 넣어가며 읽어내린다.
「『고등부에 들어오면 장미관의 주민이 되고 싶었습니다. 유미 님이든 요시노 님이든 누구라도 좋으니 동생으로 삼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상.」
누구라도 좋으니?
「그게 솔직한 심정이라도 보통은 상대방에게 줄 인상을 고려해 좀 더 돌려서 표현하는데 말야.」
「어지간히 자신이 있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애거나. 아니면 부통 두 사람에게 시비건다거나───.」
요시노 양이 의미없이 소매를 걷어붙인다.
「1학년 국화반, 나이토 쇼코(內藤笹子)...... 아는 애니?」
마미 양의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노리코 쨩. 신문부 1학년 두 명도 고개를 저었다. 중등부에서 올라왔으니 얼굴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지금까지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 듯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 애 혹시 나이토 카츠미(內藤克美) 님의 동생 아닐까?」
요시노 양이 말했다.
「토리이 에리코 님과 3년간 같은 반이 되는 바람에 항상 반 2등의 성적에 머물렀던 그 나이토 카츠미 님. 확실히 친동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 그렇구나, 친동생을 써서 황장미 패밀리에 보복할 셈이야.」
「그 추리, 무리가 아닐까?」
폭주하려는 요시노 양에게 살그머니 브레이크를 거는 시마코 양.
「카츠미 님의 동생이 요시노 양 동생이 되면 왜 보복이 돼?」
「그건, 쇠르가 되자마자 마구 날뛰어서 언니인 나를 곤란에 빠트릴 속셈인 거야.」
마구 날뛰고. 언니를 곤란에 빠트리고. 어째 꼭 모 양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말했다간 정말로 날뛸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혹시나 그런 계획을 세웠다 해도, 그럼 『요시노 님의 동생이 되고 싶다』고 써야 하지 않겠어? 유미 양이든 누구든 상관없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해.」
「그런가. 그럼 진짜 목적은 뭐지?」
시마코 양의 말에 일단 납득은 했지만, 맹탐정 요시노, 아직 만난 적도 없는 「나이토 쇼코」라는 1학년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간단히 없어질 것 같진 않다.
한편, 유미는.
(나이토 카츠미 님과 동생 쇼코 양... )
그 두 명사를 듣고 순간 뭔가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다과회 일이랑 토오코 쨩, 카나코 쨩, 언니 문제 등으로 머릿속에 생각할 일이 너무 꽉 들어찬 바람에, 새로이 싹을 틔울 사고를 위한 여분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 금새 잊어버렸다.
다시 생각해낸 건, 수일 후 본인을 만났을 때였다.

 

 

3

 

「토오코 쨩 말야, 유미 양하고 관계있지?」
돌아가는 도중, 가로수길에서 살그머니 일행에서 떨어져 두 사람끼리가 되자 시마코 씨가 멈추어 서서 말했다. 노리코가 놀라자 시마코 양이 미소지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거네.」
「굉장해...... 시마코 씨는 다 아는구나.」
「신기하게도 말야.」
앞서 걷고 있던 유미 님과 요시노 님, 그리고 신문부 세 사람의 모습은 완만한 커브 저 편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말하라고는 안해.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내 생각은 그래.」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시마코 씨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손이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동안에 노리코는 살짝 만졌다.
「으으응. 시마코 씨한테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냐. 솔직히 혼자서 품고 있기엔 힘들었고. 하지만 역시 전부 꿰뚫어 보는구나.」
시마코 씨는 시마코 씨라는 것만으로 굉장하다. 자신의 일이면 어쩔 줄 몰라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타인의 일은 아주 잘 보고 있다. 그래서 노리코는 시마코 씨라면 안심하고 상담할 수 있다. 어째서 이렇게 굉장한 사람이 자신의 언니일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토오코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이 많아. .... 아마 원인은 질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리코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그래.」
시마코 씨는 미소지은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가로수길을 걸었다. 앞서 가던 일행들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유미 님, 인기 있으니까.」
지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대표되는 장미 패밀리 가운데에서도 친근감있는 서민파 언니인 유미 님은 1학년들의 아이돌이었다. 노리코도 서민파로는 지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친근감이 따라주질 않는다. 관록을 따져봐도 유미 님에겐 전혀 당해내질 못하고.
「누가 퍼트리기 시작했는지 몰라도, 토오코는 유미 님 동생 후보 넘버 원이 되어 있어.」
「동생 후보 넘버 원?」
「전에 장미관에서 도우미를 했기 때문에 그럴 거야.」
모두의 아이돌이었던 사람이 단 한 사람의 언니가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고 막연하게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구체화되자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그런 식일 거라 짐작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미 언니가 있는 애들이 더 쫑알쫑알 시끄럽지? 자신들이 남에게 간섭받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하는 것쯤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것 뿐이야?」
잠깐 생각에 잠긴 시마코 씨.
「작년에 내가 장미관에 도우미로 왔을 때나 유미 양이 산백합회 연극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도 소란은 있었지만 그 정도의 반발은 없었던 것 같아. 노리코 때도 그랬지?」 
「응. 그건 그래.」
노리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토오코의 경우, 순순히 응원하기 힘든 과거사가, 있기는 있었으니까.」
「과거사?」
「장마철, 로사 키넨시스와 유미 님이 싸웠다고 할까, 조금 껄끄러웠던 시기가 있었잖아. 다들 그 원인 제공자가 토오코라고 그래.」
로사 키넨시스가 결석한 어느 날 점심 시간, 밀크홀에서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걸 많은 학생들이 보고 있었다. 그 후, 유미 님의 기지로 토오코를 도우미로서 장미관에 끌어들여 그 소문은 흐지부지 페이드 아웃 되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지.」
시마코 씨가 오래된 얘기인 듯 중얼거렸다. 장마가 끝날 무렵 초여름의 일이다.
「쓸데없는 참견이지만 말야. 스타인 유미 님의 동생 자리를, 적대시하던 토오코가 차지하는 게 다들 유쾌하지 않은 모양이야. 토오코로서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로사 키넨시스 목적으로 유미 님에게 접근한다고 주위에서 그래도 할 말 없을 테고.」
「그럼 노리코는 토오코 쨩이 사치코 님 목적으로 유미 양 동생이 된다는 생각은 안하는구나.」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오코는 로사 키넨시스를 동경하곤 있지만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아.
「그래서 토오코 쨩은 뭐라고 하든?」
시마코 씨 질문에 노리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을 안들어줘. 내가 토오코의 건드려선 안될 부분들 물었던 것 같아.」
「어머 어쩜.」
「아니,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 청소할 거니까 비켜줘.』라든가 『안쓸 거면 그 대나무 자 빌려줘』라든가 그런 말은 하니까.」
「대나무 자....... 피복으로 유카타 만들고 있니?」
「응」
「정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 하는구나.」
「아, 맞아. 안그런 대화도 딱 하나 있었어. 이번 『리리안 학보』를 들고 와서 '노리코 양은 이걸 두고 그랬던 거였어', 라며 웃더라구. 하지만 사실은 웃지 않았을지도 몰라.」
급우들도 기분 나쁘지만, 토오코도 상당히 위태롭다. 악의도 없이, 숨어서 이러쿵저러쿵 수군대는 사람들. 신경쓰이는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한 명의 친구. 그리고 어떻게든 해주고 싶지만, 헛발질만 하고 있는 자신.
전부 뭉뚱그려 꺼림칙한 느낌. 하지만 1학년 동백나무반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이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단지 자신의 감각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닐까. 노리코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모든 게 정상인데 자신의 눈에 이상이 있어서 세계가 일그러져 보인다고.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을지 모른다.
「유미 님은 토오코가 아니라도 괜찮을 거야.」
문득 노리코는 멈춰섰다. 시마코 씨도 발을 멈췄다.
「하지만 토오코는.」
거기까지 말하자, 뺨 위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어라, 왜 눈물이 나는 거지?」
 당황해서 손으로 닦으려 하자 시마코 씨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노리코의 눈썹 아래를 살며시 닦아주었다. 그리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소짓는다.
「노리코는 토오코 쨩을 좋아하는구나.」
「응. 아마.」
의외로 깨끗하게 시인했다.
「난 토오코를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눈물이 나는 거야.」
지금이 해질 무렵이고, 주위가 어슴푸레해서 다행이다. 다들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노리코는 생각했다. 토오코 문제를 유미 님이 알게 해선 안 돼. 노리코는 시마코 씨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눈물 자국을 들키지 않도록 버스 한 대는 그냥 보내기로 했다.

 

 

4

 

생각해보니, 나이토 쇼코를 쇠르로 삼았습니다 하고 소개할 경우, 에리코 님 상당히 충격받지 않을까. 자기 방 책상 위에 둔 프린트 위에 턱을 괴며 요시노는 멍하니 생각했다. 나이토 자매의 의도는 일단 제쳐두고, 임팩트만으로 승부한다면 현재 나이토 쇼코가 단독 선두다. 물론 서류 심사로 동생을 정할 것도 아니니 실제로 만나봐야 알겠지만, 자신의 동생이란 자리에 놓고 상상해본다고 해서 벌은 안받을 테니까.
하지만 벌은 안받을지 몰라도 서서히 자기 목을 조르는 위험한 놀이임에는 틀림없다. 실은 이 프린트, 수학 수업중에 미처 다 풀지 못한 문제집을 집에서 해오라는 숙제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아까부터 한 문제도 진도가 안나가는 것이다. 수학은 질색이라 도망치고 싶은 맘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인지, 딴 생각이 방해가 되어 수식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별 차이는 없지만 아무튼 프린트를 노려본다고 해서 답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니.
「에잇」
결국 여기까지군. 그렇게 판단하고 일어섰다. 시계를 보니 8시 조금 넘었다. 적당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요시노는 프린트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자 거실에 있던 엄마가 조그만 손잡이 달린 종이 봉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시간이 됐다 싶어서 준비해 뒀는데 딱 맞았네.」
「그 봉진 뭐하러?」
「옆집에 갈 거지? 오늘 백화점에서 산 과자. 많이 사서 남은 거라고 외숙모님께 전해 드려.」
「왜 엄마가 안갖다드리고?」
「오늘 요시노가 레이 쨩이랑 따로따로 왔으니까 반드시 만나러 갈 거라 예상했지. 방문 이유가 있는 편이 아무래도 그럴 듯 하잖니. 그러니까 이 일은 요시노한테 양보할게. 반대로 레이 쨩이 우리 집에 왔으면 선물로 쥐어보내면 되고.」
「나도 안가고 레이 쨩도 안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생과자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니. 유통기한은 이번 달 말일까지야.」
「이번 달 말일?」
싫은 일을 떠올려 버렸다.
「그래도 누가 되든 꼭 만나러 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 어머, 틀렸니?」
「안 틀렸어요.」
요시노는 종이 봉지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다 꿰뚫어 보는 게 조금 아니꼽지만, 엄마니까 못 이긴다며 포기했다.
「안녕하세요─」
옆집이라고 해도 같은 건물 부지내. 현관과 현관이 몇 걸음 안되는 이 편안함.
「어서 오렴. 슬슬 올 때가 됐다 싶어서 사과 깎던 참이었어. 친구가 한 상자 보내줬거든. 올해 아직 안먹어봤지? 봉지에 담아둘 테니까 갈 때 가지고 가렴.」
「아, 네. 고맙습니다.」
외숙모님도 아무래도 우리 엄마랑 생각이 똑같으셨나 보다. 과자 선물을 드리며 그리 말하자 크게 웃으셨다.
───만.
「레이 쨩.」
이 사람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는 듯 자기 침대에서 코스모스 프렌드 최신호 따위 읽으며 뒹굴고 있었다.
「어라, 요시노. 웬일이야?」
「과자 선물 전해주러.」
「헤에......」
「──라는 건 구실이고 실은 숙제 가르쳐 달라고 왔어.」
요시노는 외숙모님이 깎아주신 사과가 담긴 유리 쟁반과 집에서 가져온 숙제 프린트를 단이 낮은 중국 탁자식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어디?」
할 수 없다는 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레이 쨩. 머리카락이 자고 일어난 것처럼 조금 삐쳤다.
「이거 간단하잖아. 공식만 대입하면 끝나니까.」
「그건 나도 알아. 단지 어떤 공식을 대입하는지 몰라서 물어보러 온 것뿐야.」
이건 가르쳐 달라는 자의 태도가 아니군. 요시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 쓸 공식이야 헷갈릴 것도 없지. 교과서 펴봐. 어라, 왜 안가지고 왔어. 나참. 2학년 교과서 어디다 뒀더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준다. 요시노는 마음 속으로 언니이면서, 클럽 선배이면서, 이웃이기도 한 듬직한 사촌에게 두 손을 모았다.
「레이 쨩, 저기 있지. 오늘 장미관에서───.」
「...... 요시노, 잡담이라면 나중에.」
레이쨩은 바쁘다는 듯 책장 안을 뒤진다. 누웠다 일어나 삐친 머리카락에 눈처럼 먼지가 앉는다. 요시노는 상관않고 계속 말했다.
「있잖아, 다과회 응모용지 체크하는데 나이토 카츠미 님 동생이지 싶은 1학년생 이름이 있었어. 이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무슨 의미라니?」
레이 쨩이 돌아봤다. 나중에, 라고 한 주제에 착실히 얘기에 가세했다.
「왠지 냄새 나지 않아? 나이토 카츠미 님하면 에리코 님 라이벌이었던 사람이지?」
「그거랑 이건 별개의 문제 아냐? 에리코 님과 카츠미 님이 재학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두 분 다 다른 대학에 진학하셨으니까 경쟁할 이유가 없어. 게다가 아무리 카츠미 님이라 해도 친동생의 행동까지 간섭할 리 있겠니?」
작년에 쓰던 수학 교과서를 끄집어 내면서 레이 쨩이 말한다. 요시노는 레이 쨩의 교과서가 좋다. 한 마디로 말해 「깨끗」하니까. 사용하지 않아 깨끗한 게 아니라, 열심히 사용한 깨끗함. 여백에 요점을 정리해 써넣는다든지, 밑줄이 칼라풀하다든지. 참 「여자애」다운 느낌의 교과서다.
「자매라고 하니까.」
힌트만 일러주고 나머진 시험 감독관이 된 레이 쨩이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작년 나랑 대장전에서 만났던 오오나카(太仲) 여고의 타나카(田中) 양.」
「아아, 원래대로라면 내가 레이 쨩의 원수를 갚았어야 할 그 사람 말이네.」
아쉽지만 작년에 3학년이었으니 올해 시합에서 요시노와의 대전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이전에 아직 시합에 출전할 만한 실력이 안되지만.
「그 타나카 양은 졸업했지만 올해 여동생이 출전하나 봐. 역시 오오나카에서.」
「흐응, 근데 강해?」
「소문으로는. 타나카 양의 할아버님이 도장을 하셔서 타나카 4자매라고 하면 꽤 유명하대.」
「4자매? 이번에 출전하는 건 위에서 몇번째?」
「둘째랑 셋째. 2학년, 1학년 연년생이래. 잠깐 있어봐.」
레이 쨩은 또 책장에 손을 넣고 더듬어 찾더니, 안쪽에서 「검도③」이라고 적힌 두툼한 노트를 꺼냈다. 그건 레이 쨩이 잡지나 신문 기사를 정리한 스크랩북으로, 이외에도 「과자⑥」이나 「수예②」같은 게 있다.
「자 봐. 확실히 여기에.」
지방 신문 아니면 시청 홍보물을 복사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를 레이 쨩의 손가락이 가리킨다. 사진도 실려 있지만 복사를 몇 번이나 반복한 탓인지 화상이 거칠어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엔 『오오나카의 타나카 3자매』라고 써있어.」
「아냐, 확실히 4명으로 알고 있는데. 어렸을 때 지구 초등학생 대회에서 4명이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있거든.」
「그럼 4번째는 오오나카가 아닐지도.」
「그렇군, 중학생이니까 아직 오오나카에 입학 안한 거였어!」 
손바닥을 탁 치는 레이 쨩.
「있지, 레이 쨩. 자매가 꼭 다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라는 법은 없다구.」
「아」
나이토 자매도 타나카 자매의 3명도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까 어쩐지 그게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고 말았다.
「하긴 그렇다. 후후후」
「하하」
어쩐지 되게 웃겨서 두 사람은 배를 잡고 몸부림치며 웃었다. 3분 정도 실컷 웃고난 후, 요시노는 너무 웃느라 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레이 쨩. 나말야, 기대하고 있어. 동생 생기는 거.」
「에?」
레이 쨩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어떤 동생이든 레이 쨩하곤 전혀 다른 관계가 되겠지.」
「...... 요시노.」
레이 쨩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요시노는 당황하며 양손을 휘저었다.
「아, 우리 관계를 부정하려는 게 아냐. 그 점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랑 레이 쨩은 무지 진한 관계고, 아주 죽이 잘맞고, 근사한 자매라며 자랑할 수 있어. 하지만 꽤나 특수해. 주위를 둘러봐도 이런 쇠르는 없는걸.」
「응. 하긴.」
「레이 쨩 말야. 에리코 님 동생이 되어서 즐거웠지?」
마지못해, 하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 쨩.
「나 있지, 꽤 질투했어. 레이 쨩을 보면 바로 아는걸.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미지의 인물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건 뭐랄까 아주 신선한 느낌이야. 그렇다고 해서 레이 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아니니까. 신기하지만 동생이 생겨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 레이 쨩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애.」
팔에 안겨들자, 레이 쨩은 나직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요시노의 이마를 콩 때렸다.
「그럼 이번엔 내가 요시노를 사이에 두고 요시노 동생이랑 다투는 즐거움을 맛볼 차롄가.」
그것도 괜찮겠는데. 라며.

 

 

5

 

화요일.
점심 시간에 호소카와 카나코 쨩이 장미관을 방문했다. 그 때 마침 유미는 요시노 양과 같이 계단 앞에서 응모함 당번을 하고 있던 참이라, 순간 카나코 쨩이 다과회에 응모하러 온 줄 알았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유미 님과 잠깐 이야기 하고 싶어서 왔는데...... 무리 같네요.」
상황을 보려무나, 카나코 쨩. 실제로 이렇게 장미관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여기가 다과회 참가 희망자 창구가 되어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괜찮아. 응모함 당번쯤이야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일손이 필요하면 2층에 노리코 쨩이나 시마코 양을 부르면 되고.」
요시노 양이, 카나코 쨩이라기보다 어느 쪽이냐면 유미에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친절에 따르기로 할까.」
유미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카나코 쨩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까까지 1학년 몇 명이 놀러 왔지만 결국 누구 한 사람도 응모하지 않고 가버린 뒤로는 개점휴업 상태. 지금이라면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 같다.
장미관을 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청명한 가을의 점심 시간, 중정에선 학생들이 식후 산보를 하거나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지만, 교사 뒷편에 들어서자 인적이 딱 끊겼다.
「언제였던가, 방과 후에 1학년 동백나무반까지 찾아오셨다고요.」
「아아, 응」
그 땐 아쉽게도 카나코 쨩도 토오코 쨩도 교실에 없었다. 벌써 집에 돌아간 것 같지도 않았으니, 아마 운이 없었던 거겠지.
「죄송합니다. 한번 찾아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방과 후 매일같이 정신없다보니 좀처럼──.」
유미는 「뭘 그런 것 갖구」라고 손사래치며 말했다.
「학원제 때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리고 투샷 사진도 신경쓰였고.」
「사진,── 아아」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카나코 쨩이 중얼거렸다. 이제 사진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건가. 유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까 그게 얼굴이 나타났는지 「물론 안 잊었어요」 라고 덧붙였다.
「분명히 학원제에서 열심히 하면 함께 사진을 찍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죠.」
「아, 찍어 주신다 라니, 그리 대단한 게.」
단지 체육제가 끝났을 때의 카나코 쨩은 여전히 보고 있으면 위태로운 느낌이었으니까 구실을 만들어 동료로 끌어들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카나코 쨩은 한번은 환멸을 느꼈을 유미와의 투샷 사진을 원하는 특이한 애였다.
「사진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유미 님은 제가 학원제에서 열심히 했다고 평가해주신 거군요. 기뻐요.」
「물론이지.」
「그럼 다행이네요.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카나코 쨩이랑 이렇게 마주보는 건 참 오랜만인 듯한 기분이 든다. 실제로 만나지 못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고 마는 건 왜일까.
「학원제에선 제가 오히려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려야 할 입장이니까요.」
카나코 쨩이 미소지었다.
「에? 어째서?」
「아버지랑 유코 선배, 그리고 치카코 일요」
아아, 그 일말이구나. ─── 어라, 끄덕이던 고개를 당황하며 가로저었다.
「그치만 난 아무 것도 안했는걸.」
「아뇨. 분명히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또 상을 받았다간 큰일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카나코 쨩......」
정말로 카나코 쨩은 변했다고 유미는 생각했다. 단기간에 몰라 보게끔. 한 마디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것처럼 산뜻해졌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 말인데요.」
카나코 쨩은 용건을 들이댔다.
「할 얘기가 있다고?」
유미가 확인하자 「네」하고 끄덕인다.
「다과회 발표 이후 제 주변도 여러 모로 시끄럽고.」
「미안해. 피해를 줬나 보구나?」
제 주변도, 라는 건 아마 토오코 쨩과 마찬가지 일이 카나코 쨩 주위에도 일어나는 것이겠지.
「피해라뇨. 별로 우는 소리 하려고 온 건 아녜요. 전 원래부터 반에서도 붕 떠있는 존재니까 그런 일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아요. 그러니 기본적으로는 멋대로 말하게 내버려둡니다만, 유미 님께만큼은 제 마음을 분명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마음?」
그 말이 가진 무거운 뉘앙스에 유미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전 다과회에 참가할 의사는 없습니다.」 
「아아......」
그건 공개적으로 언니를 찾을 생각은 없음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유미의 동생이 될 마음도 없음을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미는 어쩐지 알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카나코 쨩은 자신의 쇠르가 되진 않을 거라고. 유미가 카나코 쨩을 동생으로 선택하지 않는 것도, 카나코 쨩이 유미를 거절하는 것도 아닌. 그저 막연히. 두 사람은 자매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카나코 쨩은 아마 유미보다 먼저 깨달았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단지 그 뿐인 것이다. 막연히 알고 있었다곤 하지만, 새삼 직접 들으니 그만큼 허전했다. 손에서 벗어난 풍선이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걸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침울하게 있으려니까, 카나코 쨩이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저, 클럽 활동 시작했어요.」
「에, 정말?」
아니 밤중에 홍두깨.
「혹시 농구부?」
짐작가는 클럽이라면 그것 밖에 없다. 그리 생각하고 물어보자 「맞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에 권유를 받았을 땐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어요.」
막내니까 제일 먼저 체육관에 와야만 하고, 볼 준비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다며 투덜대지만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아까 말했던 「방과 후 정신없었던」 이유는 그 때문인가 보다.
「클럽에서 언니가 생길 것 같니?」
「아뇨. 전 지금으로선 누구의 동생도 될 생각이 없어요. 내년이 되면 동생은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지만요.」
「그렇구나.」
말은 안했지만 카나코 쨩에게 있어서 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이 세상에서 유코 씨 뿐일지도 몰라. 
─── 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아실 거라 짐작합니다만, 전 하나데라 학원제 때까지 유미 님을 유코 선배와 동일시해서 보고 있었어요.」
「응」
카나코 쨩이 자기 안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걸 언제부턴가 유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리리안 학원제에서 유코 씨를 만나「이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유미 님을 만났을 때 전 중학교 시절의 유코 선배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해선 안된다고, 이 사람은 자신이 지키겠다고 잘난 척 폼잡았던 거죠.」
그런 일도 있었지. 유미도 이제는 먼 옛날 일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실망시켰지.」
카나코 쨩의 이상은 너무나도 높아서, 현실의 유미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나코 쨩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웃기 시작했다.
「왜?」
「유미 님, 이상한 예를 드신 적이 있죠? 쌍둥이 한 쪽이 화성에 갔다든가. 기억하고 계세요?」
「으─응」
한 것 같기도 하고, 안한 것 같기도 하고. 체육제 전이었나.
「저 그걸 듣고 얼마나 맥이 빠지던지. 그 때 동시에 어깨의 힘이 빠졌나 봐요. 무리해서 혼자 싸울 필요는 없다고 말예요.」
「카나코 쨩......」
「제가 동경하던 유미 님과는 더이상 만날 수 없어요. 만날 수 없는 건 슬프지만 그 분은 어엿하게 화성에서 살아 있잖아요. 얼굴은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란 걸 인정만 한다면 지구에 남은 쪽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분이 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재미가 있는 사람이어서. 어느샌가 이쪽에도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해서.」
그건 솔직히 기뻐해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미는 카나코 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유미 님은 제가 간직해온 유미 님의 이미지를 부정하지 않으셨어요. 만약 그 때 제가 보고 있던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아마 전 구원받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환상이었던 건 제 마음. 줄곧 간직해온 마음을 부정당한다면, ...... 마음을 부정당한다는 건, 그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 응」
그래. 괴롭겠지. 하지만 카나코 쨩은 지금 웃고 있다.
「유코 선배와 재회하고, 솔직히 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불안했어요. 하지만 만나고 보니 유미 님처럼 유코 선배도 쌍둥이의 한 쪽이란 걸 깨달았던 거죠. 그럼 어쩔 수 없나 싶더라구요. 아마 옛날 저랑 같이 농구볼을 쫓던 유코 선배는 지금 분명 화성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에게, 또 화성이야?」
유미가 되묻자, 카나코 쨩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미 님의 한 쪽과 함께요. 전 마리아 님의 별이라고 생각해요.」
「마...... 마리아 님의 별. 그건 또」
로맨틱할지도 모르지만 생각에 따라선 미스 매치일 수도───.
「싫다, 그런 얼굴 마세요. 유미 님이 만들어 주신 세계잖아요. 평생 소중히 간직할 거라구요.」
그곳엔 과거에 사랑했던 것이 있다. 저 먼 밤하늘에서 오늘도 반짝이고 있다. 분명히 이 세상에는 존재했음을 잊지 않기 위한. 이제부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호자로서.
「카나코 쨩」
유미는 카나코 쨩의 손을 잡았다. 왜일까, 가슴이 뿌듯하다.
「역시 투샷 찍자.」
「네?」
「그래. 지금 당장.」
좋은 일은 서둘러라. 대답도 듣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츠타코 양은 지금 어디에 있으려나. 교실? 아니면 클럽 하우스?
「유미 님, 하지만」
「카나코 쨩하고 한 약속이라 그러는 게 아냐. 내가 갖고 싶어. 카나코 쨩하고의 사진.」
카나코 쨩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 졌지만, 이내 웃으며 끄덕였다. 손을 마주잡고, 살짝 달린다. 마른 잎도 바스락바스락 웃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다. 카나코 쨩. ─── 유미는 하늘올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힘 내.
자매가 되진 못하지만, 우리들은 친구니까.

 

 

6

 

수요일 방과 후.
1학년 동백나무반에 로사 키넨시스가 찾아왔다.
「청소는 끝났니? 토오코 쨩을 불러 주렴.」
그 때 맞으러 나갔(다기 보다 무서워하는 급우들에게 등떠밀려 나온)던 노리코 쨩은 보기 드물게 가벼운 패닉을 일으키고 말아, 「대체 무슨 용무시죠?」같은 쓸데없는 걸 질문하고 말았다.
「오늘의 노리코 쨩은 마치 토오코 쨩의 기사 같은데.」
「죄송합니다.」
마치 그야말로 나쁜 장난을 치려다 엄마랑 딱 마주친 아이의 기분이다. 노리코는 스커트 플리츠를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 허벅지 근처에 있는 호주머니 입구를 가렸다. 기사라니, 터무니없다.
「들었어. 다과회 때문에 이래저래 큰일이라며. 그럴 때 내가 찾아오면 역시 경계할 테지.」
「아뇨 그럴 리가.」
그 때 청소일지를 제출하러 교무실에 갔던 토오코가 돌아왔다. 그런데, 교실 문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알아보긴 했지만, 자기와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그냥 인사만 하고는 옆으로 지나갔다.
「토오코」
노리코는 등을 꼿꼿이 세운 뒷모습을 불러세웠다.
「로사 키넨시스께서 널 만나러 오셨어.」
「나?」
천천히 뒤돌아보며 토오코는 말했다.
「대체 무슨 용무시죠?」
노리코가 아까 했던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대사가 우스웠는지 로사 키넨시스는 가볍게 웃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곧 끝날 거야.」
「그렇습니까.」
그럼 물어보시죠 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토오코는 아주 약간 누그러진 자세로 질문을 기다렸다. 손님 맞이역이 끝난 단계에서 자리를 비켜줘야 할 제 3자 노리코였지만, 차마 두고볼 수 없어서 그만 끼어들고 말았다.
「저기, 장소가 적당치 않으니 바꾸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청소가 막 끝난 교실 출입구는 통행인이 너무 많다.
「그렇군.」
로사 키넨시스는 동의했지만, 토오코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전 여기라도 상관없어요. 어서 말씀하시죠.」
듣고 있는 노리코가 더 애가 탔다. 그러자 로사 키넨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상관없어. 하지만 토오코 쨩. 이야기 내용을 듣기도 전에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아니면 내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상상이 간다는 거니?」
「토오코」
지금은 물러서. 노리코는 눈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신호했다. 로사 키넨시스의 말대로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경솔하게 판단했다가 정작 따끔한 맛을 보게 되는 건 토오코 자신인 것이다.
「토오코 쨩. 친구의 어드바이스는 새겨 들어야지.」
그 말에 토오코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못해서이긴 해도 알았다는 의사 표시인 것만은 명백했다.
「장미관이 아닌 쪽이 좋겠어.」
로사 키넨시스의 제안을 듣고 노리코는 「아마 유미 님과 관계있는 얘기겠는데」하고 생각했다.
걷기 시작한 로사 키넨시스는 멈춰서서는 뒤돌아봤다.
「노리코 쨩도 같이 오렴.」
「네?」
노리코는 물론 놀랐지만, 토오코도 「어째서?」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하긴. 로사 키넨시스가 볼 일이 있는 건 토오코 한 사람일 테니까.
「토오코 쨩의 기사 아니니?」
또 그걸 끌어들이실 줄이야. 하지만 그 말은 곧──.
「로사 키넨시스는 토오코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요?」
로사 키넨시스는 훗 하고 웃었다.
「말했을 텐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단지 그 뿐이야.」
그 웃음이 안심이 안된다. 기사역인지 어떤지는 둘째치고 노리코는 역시 따라가기로 했다.
「왜 다과회에 응모하지 않지?」
걷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로사 키넨시스는 토오코에게 물었다.
「왜라니요? 응모한다면 몰라도 응모하지 않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너에겐 있을 법한데.」
대화를 나눌 장소를 찾는 동안 끝나버릴 만큼 간단한 이야기라서일까. 아니면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일까. 아무튼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뒤를 걷는 노리코는 대화를 놓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오해가 없도록 말해두겠는데. 난 유미의 동생이 누가 되든 상관없어. 특별히 네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왜 저에게 다과회에 응모하도록 부추기시는 거죠?」
「응모하라고 말한 게 아냐. 응모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러 왔을 뿐이지.」
그런 말씀 하셔도 로사 키넨시스의 그 말투는 부추기는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왜 그게 궁금하신지 제가 묻고 싶네요. 들어서 어쩌시려구요?」
「아무 것도 안해. 난 요즘 널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 수긍할 수 있는 이유를 듣고 속이 후련해지고 싶을 뿐이야.」
이 얼마나 자기 멋대로인가. 이 얼마나 오만한가. 하지만 그게 어울린다는 것이 로사 키넨시스의 반칙, 혹은 이익보는 점인 것이다.
「물론 너에겐 수고를 끼치겠지만 말야. 단순한 자기만족에 어울려야 하니까.」
아, 자각은 분명히 하고 있구나. 
「토오코 쨩을 보고 있으면 예전의 날 보는 것 같아 괴로워. 자기 마음에 솔직한 삻이란 건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아.」
토오코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잠자코 있으니까 듣고 있는지 안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듣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것 뿐. 시간 뺏어서 미안해.」
아직 복도를 걷는 도중이었지만 로사 키넨시스는 손으로 이제 그만 됐다고 신호하고는 두 사람을 남기고 가버렸다.
「로사 키넨시스는 아마 룰에 어긋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씀해 주신 거야.」
노리코가 토오코에게 말했다. 로사 키넨시스를 변론한다기 보다 오히려 토오코를 위한 말이다.
「하지만 난 토오코 스스로가 이제 그만 됐다고 여길 때까지 비뚤어져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
누가 무슨 말 한다고 해서 토오코가 곧이 곧대로 행동할 리 없다. 마음을 정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곧장 돌진할 테니까.
「그래서 나도 쓸데없는 참견을 하려 했지만, 관둘래.」
노리코는 호주머니에서 「1학년 동백나무반 마츠다이라 토오코」라고 적힌 응모용지를 꺼내 갈기갈기 찢었다. 오늘 방과 후 다과회 응모접수 마감일까지 토오코가 장미관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일단 준비해 두었다. 실제로 제출할지 말지는 둘째치고, 보험 들어둘 셈으로 써둔 것이다.
「그거......」
토오코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이미 쓰레기 다 비웠으니까 집에 들고가서 버릴게.」
노리코는 찢겨진 종이 조각들을 둥글게 뭉쳐서 다시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노리코 양」
「자, 일단 교실에 돌아갈까.」
지금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사 키넨시스가 던진 조그만 돌맹이가 언젠가 토오코의 마음에 파문을 넗히며 스스로 움직일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노리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