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20권 시시비비 오디션 -1- 쇠르 콘테스트

「평안하세요 (ごきげんよう)」
「평안하세요 (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인사가, 청명한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여드는 소녀들은 오늘도 천사처럼 티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높다란 문을 빠져나간다. 더러움이 스치지 않은 몸과 마음을 감싸는 짙은 색 교복. 스커트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가 펄럭이지 않도록, 천천히 걷는 것이 이 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지각 빠듯한 시간에 뛰어가는 경박한 학생이 있을 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私立リリアン女學園).
메이지(明治) 34년[1901년]에 창립한 이 학원은, 원래 귀족의 영애들을 위해 설립된 전통있는 카톨릭계 아가씨 학교이다. 도쿄도 내. 무사시노의 옛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녹음이 우거진 이 지역에서, 신의 가호를 받으며 유치부에서 대학까지 일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는 변해, 원호가 메이지에서 3번이나 바뀌어 헤이세이(平成)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18년의 세월을 온실 속에서 자란 순종배양 아가씨가 포장돼 출하되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그야말로 귀중한 학교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담. --- 유미는 멍하니 생각한다.
어제까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갑자기 자기 주위에 들이닥친 불가사의에 대해.
예를 들면.
멍하니 있다가 스타트를 알리는 피스톨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니 주위엔 이미 아무도 없고. 전방에 보이는 건 점점 작아져 가는 친구의 등. 그 스피드에 이르러서는. 눈이 핑핑 돌만치 정신없음. 어리둥절 멀뚱멀뚱 보고 섰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자신도 전력으로 뜀박질하고 있더라는. 그런 느낌.
하긴 살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말려들기도 한다지만. 마땅한 공식이 없는 만큼 어떤 의미에선 연립 방정식보다 어려운 문제다. 무슨 얘기냐고. 굳이 따져보자면, 인생이란 거 아니겠어?

 

 

 

▒▒▒▒ 시시비비? 오디션 ▒▒▒▒

 

일의 발단은 요시노 양의 한 마디였다.
「이렇게 된 이상 오디션이든 뭐든 하는 길밖에 없어.」
가슴팍 앞으로 주먹을 불끈 치켜들며 역설하긴 했는데, 그런 것치곤 참 갑작스럽다. 그래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요시노 양의 머릿속에선 오래전부터 「이것도 아냐」「저것도 아냐」하며 심각하게 고민해온 문제인가 보다.
「오?」
「오디션」
유미가 다시 무슨 오디션이냐며 묻기도 전에 요시노 양은 「쁘띠 쇠르(여동생)지. 뻔한 거 아냐」라며 보충설명해 주었다.
「하아. 쁘띠 쇠르란 말이지. ...... 뭐? 여동생!?」
무심코 테이블 닦던 손이 멈출 만도 하다. 당연하지. 오디션이라고 하면 연예 기획사가 신인 탤런트를 발굴할 목적으로 개최한다거나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원하는 역을 얻기 위해 치르는 그런 게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니, 연예계와 아무런 관계없는 자신에게는 평생 인연이 없는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지. 졸업한 모 씨도 예전에 그 단어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확실히 학생회 임원 선거를 산백합회 간부 오디션이랬나 뭐랬나.
「생각해 봐. 이 상태로 있다간 우리들 3학년이 되어서도 동생이 안 생길 거라구」
창문을 열면서 요시노 양이 말했다. 11월 들어서 첫 월요일. 방과 후 장미관.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은 학급청소를 마치고 모인 부통(봉오리) 3명. 평소에 냉정침착한 노리코 쨩마저 요시노 양의 「오디션 발언」에는 간이 철렁했는지 포트 앞에서 컵을 든 채 굳어 있었다. 아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건가.
「우리들이면, ...... 나도 포함이란 말이네?」
유미가 묻자 요시노 양은 「그럼」하며 창가에서 돌아왔다.
「우리들 비슷한 입장이니까. 둘 다 언니가 쁘띠 쇠르 만들라고 강요한 적 없잖아?」
「아, 그야...」
유미는 말끝을 흐렸다. 실은 바로 얼마 전, 언니인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이 「동생을 만들렴」이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지 않았는가 하면, 유미 자신도 쇼크를 먹어 아직 냉정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석해 봤는데, 사치코 님은 작년에 동생 문제로 굉장한 프레셔를 받으셨으니까 그 고통을 동생, 즉 유미 양에게는 맛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아닐까. 다시 말해 배려해 주시는 거지.」
요시노 양 이론을 들으며 유미는 「그럼 왜 이제 와서 동생을 만들라는 거야」 라고 마음 속으로 따졌다.
「레이 짱의 경우는 그 반대. 1학기 시작하자마자 날 동생으로 삼았으니까 주위에서의 프레셔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었지. 그러니까 나한테도 마찬가지. 재촉하는 것조차 깜박했을지도 몰라」
「깜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전 날만 해도 「얼른 좋은 소식을 듣고 싶다」 라느니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랬구나. 요시노 양의 언니, 하세쿠라 레이 님은 아직 그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진 않으신가 보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프레셔를 받고 있는 요시노 양은 엉덩이에 불이 붙은 상태이니 한시라도 빨리 쁘띠 쇠르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장미관은 1학년 부족이야. 알고 있어? 작년 이맘때는 시마코 양이랑 나랑 유미 양, 이렇게 세 명이 떡하니 있었다구. 그런데 지금은 어때?」 
노리코 쨩, 달랑 혼잡니다.
「신부감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이랑 똑같아. 이대로 가다간 학생회는 점점 과소화(過疎化) 되겠지. 노리코 쨩, 넌 그래도 좋아?」
이야기 바톤을 넘겨받은 노리코 쨩은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곤란합니다」
하긴 「좋아요」 라고는 안할 테지. 현 2학년이 내년에 순조롭게 장미님이 된다고 해도, 부통(봉오리)을 노리코 쨩 혼자서 한다는 건 상당히 고될 테니까.. 아무리 야무진 애라고 해도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에겐 만남이 없었어」
요시노 양은 의자에 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완전히 대화 모드에 들어가 버렸으니 유미도 걸레를 빨고난 뒤 옆자리에 앉았다. 장미관 청소 끝.
「만남이라니. 요시노 양, 검도부는?」
물어보자 요시노 양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내가 제일 막내뻘인데? 그래도 실력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외삼촌이 검도 도장을 하실 뿐이지 난 완벽한 초보라구. 무슨 낯짝으로 급이나 단을 딴 후배들한테 쁘띠 쇠르가 되어 달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자기보다 검도를 잘하는 동생은 사양하겠다?」
「그야 당연하지」
요시노 양은 자존심 세니까 조금이라도 자매관계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보다.
「게다가 말야, 클럽에서 잘 맞을 것 같은 애들은 1학기 꽤 이른 시기에 벌써 다 제 짝 찾아갔고.」
「그렇구나. 요시노 양이 입부한 건 장마철이었으니까」
한 때 검도부에 들어가느니 마느니 해서 레이 님과 아주 험악한 관계까지 갔던 모양이다. 당시 유미는 자기 일로 벅찼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까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멀리서 요시노 님을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1학년 부원이 있을지도 모르죠」
홍차를 따른 컵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노리코 쨩이 말했다.
「유연 체조로 헥헥거리는 2학년한테 동경의 시선을 보낼 1학년이 어딨겠어?」
「아니, 반드시 없다고는─」
 유미의 말을 가로막듯이 요시노 양이 단언한다.
「못말리는 별종 아니면 레이 쨩 목적이야」
「레이 님......」
「내 쇠르가 되면 레이 쨩의 손녀뻘이 되는 셈이니까」
「그렇구나. 귀여움 받겠다」
과연. 끄덕끄덕. 그런 꿍꿍이속을 가진 1학년이 한 명도 없다고 단정짓긴 어렵지. 게다가, 본인조차 깨닫지 못한 패턴 또한 있을 수 있다. 가령 시작은 레이 님을 향한 동경이었지만 그 마음이 점점 발전해 요시노 양도 좋아하게 되었다 같은.
「아아, 황장미 혁명 이전의 영광은 어디로 간 것인지. 이래봬도 나, 작년에 여동생으로 삼고 싶은 1학년 넘버 원까지 했었는데.」
요시노 양이 노리코 쨩을 휙 돌아다 보며 말했다. 변모 이후의 요시노 양밖에 모르는 노리코 쨩은 뻔히「말도 안돼」란 표정을 지었지만, 요시노 양이 한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유미 양은 좋겠네. 1학년들한테 인기가 있어서」
「인기? 그런 거 아냐. 단순히 대하기 쉬운 거겠지」
예를 들면, 온실 재배한 값비싼 장미꽃다발 속에 한 송이 진달래가 섞여 있는 듯한. 쥬얼리 케이스 안의 보석들 틈에 무명 싸게단추 하나가 들어 있는 듯한. 아마도 그런 느낌. 
「아무리 없다고 해봤자 나랑 다르게 토오코 쨩이랑 카나코 쨩이 있잖아. 아아~, 한 명 나눠 주지 않을래?」
「나누다니, 두 사람 다 내 소유물도 아니고.」
「그냥 말해본 것 뿐이야. 아무도 유미 양이 흘린 걸 진짜로 주워 먹을 생각 없네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는 거지.」
「그게」
「오디션이야, 오디션. 쇠르 오디션!」
요시노 양이 또다시 주먹을 치켜든 바로 그 때, 문이 덜컹 열렸다.
「응? 동생을 오디션으로 뽑겠다고?」
괜찮은 생각인데. 그렇게 말하며 들어온 사람은 사치코 님. 변함없이 아름다운 몸동작으로 의자에 앉아 노리코 쨩이 탄 홍차를 우아하게 한 모금 마시고는 「그래서?」라며 유미를 바라보았다.
「오해하시면 안돼요 언니. 오디션 하는 건 요시노 양이에요」
이런 일은 똑바로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터무니없는 일이 되고 만다. 유미는 분명하게 말했다.
「어머, 넌?」
「네?」
「넌 왜 참가 안하니? 동생이 없다는 점에서 유미도 같은 처지면서.」
「그,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참가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유미로선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지만, 사치코 님이 일말의 주저없이 자신에 가득찬 시선으로 압박을 가해 오니까 「혹시 그게 맞나?」 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하는 거니 너도 그 계획에 참가하렴」
「자, 잠깐만요 언니」
분명히 똑바로 말씀드렸는데도 왜 그렇게 되는 거람.
「만남이 없으니 오디션. 좋잖니. 왜 지금까지 그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는 사치코 님 옆에서 요시노 양의 「스톱」이 걸렸다.
「사치코 님. 그건 곤란해요. 유미 양이랑 같이 하면 응모자 수가 차이가 나버려요.」
이유야 어쨌건 이 상황에선 반대표를 하나라도 더 많이 모아야 하므로 유미는 남몰래 요시노 양을 응원했다. 잘한다! 밀어 붙여! GO! GO! ─ 이런 식으로.
하지만.
「어머, 요시노 쨩답지 않은데. 수가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잖니. 중요한 건 그 중에서 자기와 잘 맞는 상대를 만날 수 있을지야. 100명이 있단들 못찾아낼 수도 있고, 단 한 명인데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쇠르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야 그렇지만요. 그래도...... 」
감정만이 앞선 인간은 정론으로 공격당하면 잠시도 지탱못한다. 요시노 양은 반론도 못하고 말꼬리를 서서히 페이드 아웃 시키고 있다. 별 수 없지. 이 자리에선 홀로 싸울 수 밖에.
「저기... 언니, 제 의견은요?」
「의견?」
사치코 님은 유미를 힐끗 보았다.
「그 말은 오디션 따위 필요없고 이미 동생으로 삼고 싶은 1학년이 있다, 그런 의미니?」
「아뇨, 저기」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얼른 데리고 오렴. 단, 데리고 올 수 없으면 요시노 쨩이 계획한 오디션에서 유미의 동생도 동시에 모집할 테니까. 더이상 기다리기 지쳤어.」
「우웃.... 」
이럴 때는 뭐였더라. 분명 이 상황에 아주 딱 들어맞는 말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맞아, 생각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마디.
「회, 횡포예요. 언니는 심술쟁이!」
조용. 결정... 났나? 아니 전혀 안먹혔나 보다. 요시노 양은 「아차차」란 느낌으로 머릴 감싸쥐고 있고, 사치코 님은 웃고 계신다.
「횡포라고? 듣기 거북하네. 난 귀여운 동생을 위해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마음을 독하게?」
실례지만 그렇겐 안보인다.
「분하면 이 방을 나가서 찾아 오지 그래. 의외로 쇠르 후보가 문 밖에 서 있을지도 모르잖니.」
「그리고, 저도 지푸라기 부자가 되란 말씀이세요?」 
「무슨 뜻이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사치코 님. 본인에게 「지푸라기 부자」로서의 자각, 완전 제로.
「알았어요. 찾아 올게요. 찾아오면 될 거 아녜요」
욱하는 심정으로 일어섰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 방에 남아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은 생각 뿐이다. 1년 하고 조금 더 전에, 전 장미님들에게 아픈 곳을 찔린 사치코 님은 분노에 휩싸여 이 방을 나섰다. 그 때 우연히 유미가 장미관을 방문했고, 시마코 양의 안내로 2층에 올라갔다가 방에서 뛰어나오는 사치코 님하고 쾅 부딪혔던 것이다. 인생, 무엇이 계기가 되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갈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점지해 놓으신 쇠르와 맺어진다면, 혹시 이 문 밖에 아직 본 적 없는 동생이 서 있을지도 몰라. 문을 열려고 한 순간, 손잡이가 유미의 손에서 벗어났다. 맞은 편에서 열었다는 걸 알아챔과 동시에 시마코 양의 얼굴이 보였다. 힘차게 뛰어나오는 유미를 보고 시마코 양은 순간 몸을 틀었다.
뭐지, 이 데쟈뷰? 1년 전의 상황과 너무 똑같잖아. 단지 이번은 반대 입장이지만.
── 이 짧막한 시간에도 뇌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렇다는 건, 시마코 양 건너편에 있는 인물이야말로 운명의 여동생? 아아, 정말로 저기에 사람이 있다, 고 생각한 순간「부딪혀!」이미 늦었다. 각오하고 눈을 감은 순간──.
푹.
(푹?)
부드러운 물체에 온몸으로 부딪혔는데도 바닥에 쓰러지는 충격이 좀처럼 찾아오질 않자 이상해서 조심조심 눈을 떴더니.
「유미 쨩, 이제 그만 봐줄래?」
레이 님의 난처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어이없어 하는 얼굴이 그곳에.
「나였니까 받쳐줄 수 있었지, 보통 여자애였다면 대참사가──」
설교에 뒤섞여 등 뒤에서 사치코 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헷갈리는 애네」 라고.

 

2

「그래서, 개최일은 언제로 할 거니?」
턱을 괴며 사치코 님이 질문하신다.
「다음 주 토요일 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요시노가 대답했다.
결국 레이 쨩의 인간 장벽에 저지당해 방으로 U턴하는 꼴이 된 유미 양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얌전히 사치코 님 옆에 앉아 있다. 하고픈 말은 산더미 같지만 무언가 말했다간 언니의 반론으로 더더욱 곤경에 처할 것을 깨달았는지 시종일관 인내하는 자세. 이 자리는 철저히 관망하고, 나중에 천천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러니?」
사치코 님은 시기가 적절한지 어떤지 판단내리기 애매한 뉘앙스로 「다음 주 토요일이라」하고 중얼거렸다.
「네. 다다음 주엔 검도 교류시합이 있으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실은 이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방과 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토요일. 하지만 다다음 주 토요일은 교류시합이 있으니까 못한다. 그러니 그 전 주에 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라면 교류시합이 끝나고 나서 천천히 해도 상관없는 것이 되는데, 요시노의 예정표 상으론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왜냐하면 시합일에 맞추어 동생을 만드는 것이 이 오디션의 최대 목적이었으니까.
「무슨 얘기야?」
아무튼 전원 자리에 앉자마자 사치코 님이 이야기를 재개하시는 바람에 그 전까지의 대화 내용을 전혀 모르는 레이 쨩이 물었다.
레이 쨩과 같이 막 도착한 시마코 양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나, 동생 만들려고」
요시노는 「토요일 쯤」 이라고 말한 것과 거의 같은 어조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동생!?」
놀란 건 레이 쨩이다. 예상 이상으로 당황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주위 사람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후 한동안 황장미 자매의 대화가 이어진다.
「누누누누누구야 그 동생이?」
「잘 모르겠는데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면 어떻게 알아?」
「그래서 오디션 한다니까.」
「그런 말 들은 적 없어.」
「그렇겠지. 방금 처음 말했으니까.」
「요시노오~」
벌떡 일어서서, 불쑥 몸을 내밀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가, 테이블을 쾅쾅 두들기더니. 결국 레이 쨩은 한심한 목소리와 함께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머리를 쿵하고 박았다. 반대로 요시노는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아니 냉정하게 언니를 바라보고 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유미 양이 (레이 쨩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요시노 양은 정말 레이 님한테도 말 안했구나」라고 새삼 확인한 탓일 거다.
「요시노....... 왜 그리 갑자기」
「갑자기가 아냐.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구. 뭐야, 반대야?」
「그건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가」
「뭘 이제 와서 마음의 준비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얼른 좋은 소식을 듣고 싶었던 거 아냐? 바라던 대로 졸업 전에 손녀의 얼굴을 볼 수 있잖아.」
「그야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오들오들, 안절부절.
딸 시집보내는 아버지. 레이 쨩을 옆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보이겠지.
「도대체가 오디션 같은 걸로 마음에 드는 쇠르를 찾아낼 수 있을 리 없잖아.」
「레이 쨩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근거따위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레이 쨩 자신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지 않고선 가만 못있는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요시노 양. 오디션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오기로라도 고를 테니까.」
단호한 대답에 잠시 주위가 술렁거렸다. 있을 수 없어? 오기로라도 골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부자연스럽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거짓말. 왠지 서두르면서.」
과연 레이 쨩, 이라고 칭찬 한 마디 해줄까. 얼핏 놀라서 당황해하는 것처럼 보여도, 요시노를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이다.
「서두르다니──」
요시노는 시선을 피했다. 이래서야 「거짓말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고집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 있자, 레이 쨩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오디션은 인정할게. 하지만 그건 다음 달에 해. 난 지금 교류시합이 있으니 연습에 집중하고 싶어. 시합이 끝나면 둘이 같이 면밀히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거고. 물론 협력도 해줄 테니까.」 
「그럼 늦단 말야.」
여기서 요시노는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더 이상 뻗대봤자 일이 현 상황보다 유리하게 돌아가기는 이미 글렀다. 게다가 이쪽은 타임 리미트가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질 것이 뻔하고. 그렇다면 이쯤에서 레이 쨩을 확 끌어당겨 아군으로 삼는 것이 상책이다.
「무슨 뜻이야?」
레이 쨩의 질문에 맞추어 요시노는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요전번에, 라곤 해도 꽤 오래 됐지만, 에리코 님을 만났어.」
「언제?」
「체육제 때.」
「에리코 님이 오셨어?」
「응.」
레이 쨩은 알고 있었냐고 묻듯 사치코 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사치코 님은 「처음 듣는 얘기」 라고 말하듯 고개를 저었고, 시마코 양도 마찬가지로 몰랐음을 전했다. 노리코 쨩은 물론 에리코 님의 얼굴도 모르니 묻지 않았고, 거기서 그럭저럭 질문의 흐름이 멈춰 유미 양 차례까지는 가지 않았다. 만약 유미 양에게 물었다면 대답하기 곤란했겠지. 요시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에리코 님은 정말로 체육제 때 요시노 혼자만 만나고 돌아가셨나 보다. 요시노는 말을 이었다.
「만났을 때 에리코 님이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여서. 기운을 북돋워 드리려고 동생이 생기면 제일 먼저 소개해 드리겠다고 했어.」
「그래서?」
레이 쨩이 재촉한다.
「교류시합은 보러 오신다고 그러셨으니까. 그래서... 난」
맥락은 그대로지만 여기저기 세세한 뉘앙스를 손봐줬더니, 어머 신기해, 어째 미담이 되어 버렸네. 사실을 각색없이 파악하고 있는 유미 양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상관없어. 요시노는 눈을 내리깔았다. 「이 일은 내 가슴 속에 묻어두려고 그랬는데, 결국 말하고 말았네」 라는 느낌.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기분도 서서히 달아올라 정말로 에리코 님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고 마니 재밌다.
「그러고 보니 과자 선물을 들고 오셨을 때도 왠지 수척한 얼굴이셨지. 맞아, 그래서 『요시노 쨩한테 모쪼록 안부 전해줘.』 같은 말을 남기셨던 거야. 에리코 님을 힘내게 해드리려는 요시노가 고마웠을 테니까. 그런데도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냐. 그건 절대 아니라구. 요시노는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에리코 님은 단순히 프레셔를 주러 왔을 뿐이다. 그리고 순수(단순)한 레이 쨩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버렸다.
「사정이 그렇다면 서둘러야지. 알았어, 다음 주 토요일. 산백합회 활동으로 학교측에 허가를 받아놓을게.」
한 건 해결. 아아, 이 얼마나 구워삶기 쉬운 인간인가.
그리고 시종일관 지켜보던 사치코 님은 황장미 자매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판단하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시노 쨩, 유미. 학원제 포스터용으로 준비한 도화지가 몇 장 남았으니까 그걸 써도 돼.」
결국, 유미 양은 의견도 말해보지 못하고 깨끗이 참가자에 포함되고 말았다.

 

3

「얘기 들었어. 오디션 한다며?」
2교시와 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 화장실인지 어딘지 갔다온 야마구치 마미 양이 교실에 돌아오자마자 유미의 자리에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속닥속닥 말했다.
「대체 그걸 어디서?」
요시노 양의 오디션 발언이 있었던 게 어제 방과 후였다. 아직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보 전달의 스피디함은 대체.
정보원은 요시노 양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 자리를 보니 영어사전 펴놓고 필사적으로 독해문 단어를 찾느라 이쪽엔 전혀 신경 못쓰고 있다.
「요시노 양은 아냐.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한테 들었어. 『리리안 학보』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해 달라시면서. 그 대신 오디션 기사를 허락 맡았고.」
「......」
사치코 님 참 굉장한 행동력. 동생이 오디션을 피하기 위한 그럴 듯한 구실을 찾아내기 전에 기정사실로 만들 속셈이신가 보다.
「하지만 한시름 놨어. 올해는 미스 콘테스트 앙케이트를 안했으니까 학원제 끝나고 좀처럼 분위기를 살리질 못했거든. 이걸로 단숨에 만회할 수 있겠어.」
「왜 미스 콘테스트 안했어?」
「작년과 완전히 똑같을 거면 안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서. 작년과 거의 비슷한 얼굴들이 모이면 시시하니까」
다시 말해 독자 투표로 미스 ○○를 정하는 건데 다들 알기 쉬운 기호라도 쓰듯 장미 패밀리에 표를 던진 모양이다. 확실히 앙케이트 할 것까지도 없이 올해도 미스터 리리안은 레이 님이 차지하실 거란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오디션이라니 멋진 아이디언데. 아무튼 굴러들어온 호박, 신문부는 전면적으로 협력할게. 오늘 방과 후 장미관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으니까. ...어머?」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떠들어 대던 마미 양. 그제서야 겨우 유미의 상태를 깨달은 모양이다.
「할 맘 없어 보인다?」
「할 맘 있는 건 요시노 양.」
「흐응~」
마미 양은 요시노 양을 한 번 쳐다보고는 유미에게 말했다.
「그럼 유미 양의 그 할 맘 없는 이유를 들어볼까?」
「이유?」
유미는 책상 위에 풀썩 엎드려서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잘 설명을 못하겠어. 애초에 이론을 세워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이미 예전에 언니를 설득했을걸.」
그러자 마미 양은 책상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잘 설명 못하면 뭐 어때? 난 사치코 님이 아니니까.」
「그런가. 하긴 그렇네.」
하하하, 둘이서 같이 웃은 후 마미 양이 선뜻 말을 꺼냈다.
「오디션이란 형식에 반대야? 아니면 자기 동생을 오디션으로 뽑고 싶지 않은 거야?」
「모르겠어.」
단지 언니의 명령에 따라 오디션에 돌입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진장 거부감이 드는 건 확실해.
「차분히 분석하는 편이 좋아. 안 그러면 대책을 못세우니까.」
「무슨 대책? 오디션 피하기?」
「그걸 포함해서 앞으로의 처신이겠지. 신문부로선 부통(봉오리) 두 사람이 동시에 오디션을 개최해 주는 편이 분위기가 더 달아오를 테니 고맙지만, 친구로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키고 싶진 않거든.」
3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마미 양은 「어쨌든 신문부도 한 몫 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분석」
그런 거 질색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리포트 용지를 한 장 찢어 자신의 기분을 적어보려던 차에 영어독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오셨다. 요시노 양은 아슬아슬하게 단어 조사를 마친 듯 사전을 덮고 조그맣게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질문 ‥ 오디션에 찬성합니까? (예·아니오·모르겠음)
답 ‥ 「모르겠음」에 동그라미.

3교시와 4교시, 반쯤 수업을 흘려들으며 남은 반쯤의 뇌를 사용해 생각해보려 했지만, 잘 정리되지가 않는다. 도시락을 들고 장미관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줄창 한숨만 쉬었다. 오늘 점심시간의 화제는 쇠르 오디션이 될 거란 건 알고 있다. 특별히 소집이 걸린 것도 아니고, 학생회 일이 밀려 있지도 않다. 오늘은 패스하고 교실에서 먹을까. 도중에 그런 생각도 진지하게 해봤지만 결국 유미는 U턴 하는 일 없이 장미관 앞까지 오고 말았다. 어차피 자기가 없어도 얘기는 진행될 테고, 자기가 없을 때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남자와 손잡고 댄스를 강요당해야 했던 사치코 님의 전례도 있으니.
에잇, 기합 한 번 넣고 장미관 입구 문을 열자 눈 앞에 계단을 조용조용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고 쫓아갔다.
「시마코 양.」
「와, 깜짝이야. 유미 양이었어?」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삐걱삐걱 흔들리니 놀란 것이다. 시마코 양은 손잡이를 잡은 채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봤다.
「시마코 양은 어떻게 생각해?」
물론 시마코 양은 초능력자가 아니므로 반도 다른 유미가 수업중에 생각하고 있던 일 같은 걸 알 리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뭘 말야?」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오디션. 어제 찬성도 반대도 안했었지?」
「아아──.」
시마코 양은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난 찬성이나 반대를 말할 입장이 못 돼.」
'동생을 선택하는 건 언니가 될 요시노 양과 유미'라는 게 시마코 양의 자세란다. 유미는 시마코 양을 뒤쫓았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동생은 시마코 양에게 있어서도 동료가 되는걸. 그 동료를 오디션으로 뽑는다는 데에 거부감 없어?」
「글쎄.」
마지막 한 계단을 마저 오르고 나서, 시마코 양은 미소를 지었다.
「전혀 거부감이 없다면은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제대로 된 오디션이라고 한다면 해 볼 가치는 있으리라 생각해.」
「해 볼 가치?」
유미가 묻자 시마코 양은 「어디까지나 내가 그 입장일 경우의 얘기야.」라고 전제를 단 뒤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아직 동생이 없다고 해볼까. 그렇다면 요시노 양처럼 동생을 모집했을지도 몰라.」
물론 시마코 양에게는 이미 노리코 쨩이라는 귀엽고 우수한 동생이 있으니까 「만약」 같은 if 이야기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유미는 듣고 싶었다. 샘플로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싶었으니까.
「어째서?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러자 시마코 양은 비스킷문 손잡이를 당기며 말했다.
「그 후보자 중에 노리코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열린 문의 맞은 편에 서 있던 한 명의 1학년생이 두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가을임에도 봄바람 같은 미소를 지었다.
「평안하세요.」
── 노리코 쨩이다.
아아, 그렇구나. 유미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시마코 양은 만약 봄에 노리코 쨩과 만나지 못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노리코 쨩을 쇠르로 삼으리라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남이 어떠한 형태였든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스타트 지점은 아무래도 좋다 그거야?」
「내 입장에선 그래.」
시마코 양의 입장에선 노리코 쨩이 곁에 있어주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한다는 거겠지. 의자에 앉자 노리코 쨩이 「홍차 드세요」라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유미의 눈 앞에 놓었다.
「노리코 쨩은」
「네?」
「오디션으로 시마코 양의 동생이 된다면 어때?」
「어때, 라고 물어 보셔도」
현명한 노리코 쨩은 난처해 하면서도, 유미가 무언가 모색하고 있음을 헤아린 듯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유미 님은 쁘띠 쇠르를 삼는 것 자체는 싫지 않으시죠?」
「아마도.」
사치코 님의 동생이 되고 나서 언젠가 자신도 분명 동생이 생기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2학년 2학기까지 동생이 없었던 건 완강하게 거부한 결과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시기를 놓쳐 오늘날에 이르렀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럼 오디션이라는 형식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건가요?」
「그런 면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반면에 그것도 하나의 선택지라고 생각해.」
「그럼 요시노 님이 오디션으로 동생을 뽑는 것에 대해선.」
「요시노 양은 요시노 양이니까 반대 안 해.」
부탁하면 거들어 줄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거죠?」
「그렇게 되네. 어째서일까?」
흐음. 두 사람이 생각에 잠기자 가만히 듣고 있던 시마코 양이 「아마 유미 양이」 라며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려 하는 건, 심사한다는 점이지?」
「그거야!」
유미는 소리는 안나지만 손가락을 우드득거리는 포즈를 했다.
「내 동생이 되고 싶다는 기특한 1학년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을 뽑는다는 건 해도 너무해. 뭘 기준으로 선발해? 뽑힌 사람과 뽑히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대체 뭔데? 동생을 뽑는데 왠지 토너먼트전처럼 돼버려서 이상하다구. 거기서 내 입장은? 심사원? 그런 대단한 위치에 있을 만큼 잘났나 싶은 생각이 드는걸.」
그렇게 말했을 때.
「잘나서 미안하게 됐네.」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곳에 요시노 양이 서 있었다.

 

 

4

 

「가르쳐줘야겠군.」
요시노는 쿵쿵 실내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잘났지. 우리들은 미래의 『언니』야. 대단한 위치? 당연하잖아. 뭐가 나쁘다는 거야?」
그렇다. 그런 식으로 마음 독하게 먹지 않고서 어떻게 쁘띠 쇠르를 만들겠단 말인가. 오디션에 응모하는 사람 역시「뽑힐 것인가」,「뽑히지 않을 것인가」 둘 중 하나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뽑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응모할 자격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따지고 보면 응모한 시점에서 그 애들은 자신의 의지로 언니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 아냐. 피차일반이란 말이다.
「뭐니, 같은 반이니까 기다려주면 좀 어때서 그래?」
도시락 꾸러미를 테이블 위에 쾅 놓고는, 요시노는 유미 양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4교시 끝난 후 화장실 다녀오니 교실에 친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 보니 이미 도시락 들고 장미관으로 향했다고 한다.
「어라? 오늘 점심에 검도부 미팅이 있다든가 그러지 않았어?」
유미 양은 머리 주변에 물음표를 동동 띄우며 말했다.
「미팅은 선수만. 그래서 레이 쨩은 점심시간에 장미관에 못 와. 난 그렇게 말했다구.」
「아, 그랬구나.」
「정신 좀 차려.」
아쉽지만 교류시합은 검도부 전원 다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출전할 수 있는 건 오직 5명뿐, 부원 대부분은 당일 회장에 가도 그저 뒤치닥거리 신세다. 고등부 2학년이라지만 초보자. 게다가 제일 막내뻘인 요시노는 당연히 선수 후보로조차 거명되지 않았다. 유전자와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시작만 하면 당장이라도 레귤러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뭐니? 역시 유미 양은 오디션이 싫어?」
「싫다고 할까.」
「뭐야 그 얼굴은? 어디가 어떻게 맘에 안드는지 말해 보라구. 참고할 테니까 꼭 들려주길 바래.」
자, 얼른. 요시노는 미적지근한 친구를 다그쳤다. 유미 양이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옆에서 구조선이 나타났다.
「유미 양이 염려하는 건 잘 알겠어. 나도 그런 식으로 컨테스트 같은 형식이라면 반대할걸.」
그렇게 말한 건 시마코 양.
「그 말은?」
요시노는 팔짱을 끼며 눈을 찡그렸다.
「같은 학생들끼린데 주최측이 응모자를 선별한다는 행위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야.」
「그러고보니 시마코 양, 아까 제대로 된 오디션이라면, 이라고 그랬지. 조건부 찬성이란 말이었어?」
유미 양이 확인해 오자 시마코 양은 「그래」 라며 끄덕인다. 요시노가 오기 전에 대화가 오고갔나 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럼 시마코 양에게 묻겠는데, 학생회 임원 선거는 뭐라고 할래? 학생이 학생을 뽑는다는 점에서 그게 그거 아니니?」
「선거는 달라. 전교생의 대표를 학생 스스로 뽑는 거니까.」
이럻게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정연하게 말하는 시마코 양의 자세는 가끔씩 얄밉게 보인다.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간단히 해내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 질투와 부러움은 동전의 양면같은 거니까.
「알았어. 그럼 전교생이 투표해서 표를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이 쇠르가 되는 형식이라면 시마코 양은 찬성한다는 거네?」
「쇠르를, 학생 전원이, 뽑아?」
시마코 양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요시노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터무니없는 이론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논쟁에서 지는 게 참을 수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시노 님.」
이번엔 노리코 쨩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다수결로 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쇠르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야 NO지.」
자, 얘가 니 동생이야. 이러면서 건네줘도 곤란하다. 기성품 인형을 선물받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 안을 고려하는 건 괜한 헛수고예요.」
「흐음.」
요시노는 신음소리를 내며 도시락 꾸러미를 펼쳤다. 어쩐지 노리코 쨩한테 어물쩡 넘어간 듯도 하지만 지금은 일단 물러선다.
그리고서 남은 세 사람도 각자 자기 도시락을 열었다. 정신없이 의논하는 바람에 점심먹는 걸 깜박했나 보다.
「사치코 님, 안 오시네.」
시마코 양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며 유미 양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언니한테서 아무런 말도 못 들은 모양이다. 검도부 시합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치코 님. 아직 오지 않은 이유가 레이 쨩과는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물론 소집이 없으면 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학원제 전에는 바빠서 점심시간에도 여기에 와서 깔짝깔짝 일을 했었고 그러다 보니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뭐 물어봐도 돼?」
요시노는 문득 신경이 쓰여 젓가락질을 멈추고 말했다.
「세 사람은 오디션이란 시스템이 학교에서 열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
그렇다고 한다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 유미 양이 대답했다.
「예를 들어 학원제 연극 때 주연을 정한다거나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하는데?」
힐끔 보자 시마코 양과 노리코 쨩도 유미 양의 의견에 찬성인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시노는 재차 질문했다.
「그 말은 개인적인 일을 공적으로 해선 안된다는 거야?」
「에 저기 그러니까」
유미 양은 난처한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수학 시간에 지적받아 칠판 앞으로 나갈 때의 표정이랑 닮았다. 그래도 성실한 유미 양은 지적받은 이상 어떻게 해서든 대답을 쥐어짜낸다.
「어쩌면 말야, 사람의 감정이란 건 각 기준에 따라 딱 부러지게 판단하도록 되어 있을지 몰라. 예를 들어 여기까진 OK, 여기서부터는 NO, 이러는 것처럼. 하지만 보통은 그런 거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막연히 『어쩐지 싫다』거나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아 보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잖아?」
「응」
「그러니까 공적으로 어떻다든가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오호라. 유미 양은 인간으로서의 감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럼 말야, 만약 내가 개인적으로 내 집에서 다과회를 연다고 할게. 내 쇠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다과회에 오세요, 이러는 건? 유미 양의 감으론 OK? NO?」
「OK 아닐까? 하지만 학교에서 전단 뿌리거나 학교 신문에 광고 내거나 하는 건 안되지 싶은데.」
그렇게 보자면 유미 양의 생각은 「개인적인 일을 공적으로 하지 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말로 전하는 거면 OK란 말이지. 대충 알겠어.」
「요시노 양, 설마──.」
「안 한다구. 집에서 오디션 같은 건.」
요시노는 깔깔 웃었다. 단지 여기에 있는 동료들의 감각을 파악하고 싶어서 물어봤을 뿐이다. 의외로 요시노는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랑 친척들 사이에서 독불장군으로 군림해온 탓인지, 자신의 감각이 조금 삐딱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물론 개인차가 있으니 유미 양이나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고를 한다고만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을 본보기로서 앞에 두는 건 좋은 일이다. 물론 창피스러우니까 입 밖엔 안 내지만.
이렇게 해서 요시노는 최초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난 컨테스트 형식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거기에 맞춰주지 못할 것도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토너먼트전을 하고 싶다고 집착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자 유미 양, 시마코 양, 노리코 쨩, 세 사람은 동시에 뭔가에 홀린 듯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뭐야?」
가볍게 째려보자 대표로 유미 양이 말했다.
「그치만 방에 들어왔을 때의 기세로는, 요시노 양 절대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을 것 같았거든.」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 있을 땐 맞설 거야. 하지만 뭘 하든 상관없을 것 같으면 귀담아 듣는다구.」
그러자.
「좋았어, 알았다구. 그럼 나도 한 몫 거들게」
뭐에 감화되었는지 유미 양이 일어섰다. 일어서기만 한 게 아니라 주먹으로 가슴을 탁 쳤다.
「지금 당장 동생을 데려오든가 오디션을 하든가 둘 중 하나 밖에 길이 없다면. 하자구, 오디션. 그 대신 이왕 하기로 했으니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형태로 제안할래.」
뭐야. 유미 양도 참. 보고 있는 쪽이 박수라도 안 쳐주면 미안할 만큼 결연한 의지 표명이잖아. 시마코 양이 방긋 웃는다.
「오늘 방과 후에 구체적으로 의논하기로 했지? 그 때까지 대강이라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나 조건 등을 정리해두는 편이 좋아.」
「도와줄 거야?」
유미 양이 기쁜 듯이 시마코 양의 얼굴을 봤다.
「물론이야. 그렇지 노리코?」
언니에게 동의를 요구받은 노리코 쨩은 잠깐 마음이 딴 데 가있었는지 1초 정도 있다가「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저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유미 님, 저기,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에? 뭐땜에? 노리코 쨩이 도와준다면 천군만마라구.」
 유미 양의 만면의 미소에 노리코 쨩은 그저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어쩌면 말하고 싶었던 건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시노는 막연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그대로 내버려뒀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노리코 쨩이 그냥 지나가는데 그걸 일부러 다시 건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여긴 것이다.
그 날 점심 시간, 사치코 님은 끝내 장미관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5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을까. 노리코는 생각했다. 유미 님께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말했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아아」
이런 컨디션으론 오후 수업은 내내 한숨이겠군.
알고는 있다. 불필요한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말을 꺼냈으면 끝까지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어중간한 간섭을 해버린 탓에 불완전연소랄까, 뒷끝이 개운치 않다고 할까, 요컨데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저질러 버린 건 어쩔 도리가 없음을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고 노리코는 빗자루를 쥐며 생각했다. 다행이 유미 님은 도와주는 일로만 생각해서 의심조차 않는 기색이었다. 다만, 아마도 시마코 씨랑 요시노 님은 눈치챘겠지. 구체적으로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가 무얼 가리키는지는 몰라도, 노리코가 뭔가 말하려다 그만 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마.
「왜 그래, 노리코 양?」
「우왓」
멍하니 있다가, 키스할 만큼 가까이 접근한 토오코의 얼굴에 놀라 무심코 뒤로 펄쩍 뛰었다.
「어머, 실례네. 아까부터 같은 곳만 쓸고 있길래 그냥 주의를 주러 온 건데.」
「...... 미안. 딴 생각 좀 하느라.」
「그래?」
토오코는 무슨 생각이냐며 추궁하는 일 없이 청소도구함에서 쓰레받기를 꺼내와서는 노리코가 뒤섞어 놓은 먼지뭉치와 쓰레기를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대로 쓰레기통을 들고 쓰레기장에 가려는 뒷모습을 노리코는 불러 세웠다.
「토오코」
「왜?」
두 개의 세로롤이 스프링처럼 흔들린다.
「유미 님을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토오코는 잠시 있다가 대답했다.
「덤벙대고, 얼굴 표정이 풍부한 데다, 사람 좋은, 촐랑이.」
[*원작에선 모두 お(오)로 시작하나 여기선 단어 의미로만 해석했음.]
참 멋지게 「お(오)」로 시작하는 단어로만 나열하는군 하고 감탄하려는데, 마지막만은 달랐다.
「그리고, 1학년들 사이에 인기가 있나 보던데.」
「그런가 봐.」
노리코는 조용히 웃었다. 유미 님과 달리 토오코는 질문의 의미를 일부러 착각해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사실은 노리코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고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얼버무리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노리코는 앞서 교훈을 통해 도중에 질문을 흐지부지 만드길 거부했다.
「유미 님의 동생이 되고 싶어?」
그 질문을 던지자 토오코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얼굴을 했다.
「그걸 들어서 어쩌려고?」
노리코는 주춤했다. 토오코에게서 공포를 느낀 것은 아니다. 단지 열어선 안될 상자의 뚜껑을 열어버린 듯한 기분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마주보는 두 사람의 주위를 급우들이 지나쳐간다. 집에 돌아가는 사람, 클럽에 가는 사람. 그 중에 유달리 눈에 띄는 키 큰 소녀가 섞여 있었다. 인사도 대충하고 시계를 보고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복도를 뛰어갔다.
「난 토오코를 돕고 싶어.」
노리코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유미 님에게「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물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카나코 양도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토오코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노리코가 「정말로 괜찮아?」라고 묻고 싶었던 건 유미 님이 아니라 토오코였을지도 모른다. 오디션으로 동생을 정한다는 걸 토오코에게 알려준 뒤, 「이대로 괜찮아?」라고 말이다.
「노리코 양의 도움을 받을 일은 아무 것도 없어.」
휙 교실에서 나가는 토오코의 뒷모습을 보며 노리코는 어쩐지 알고 말았다.
「...... 토오코」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 대답을.

 

 

6

 

「그래서?」
사치코 님이 말씀하셨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라고.
「그러니까요, 오디션이란 이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유미는 분명히 말했다. 방과 후 장미관에는 삼색 장미 패밀리 각 2명씩 총 6명, 더하기 신문부를 대표해서 야마구치 마미 양이 모였다. 매일 연습에 여념이 없는 레이 님도 오늘은 부활동을 잠깐 빠져나와 임시 회의에 참석했다. 귀여운 요시노 양의 동생 문제인 만큼, 「알아서들 해. 그럼」 이라고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겠지.
「오디션이 안된다면 뭐라고 부를 생각이니?」
「다과회[*茶菓會:차와 과자 따위를 차린 간단한 모임. afternoontea], 아니면 간담회[*懇談會. 어떤 일정한 주제를 놓고 서로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정도요.」
끄적끄적 샤프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미 양이 메모하는 소리다.
「바꾸는 건 이름뿐이니?」
그 질문에 이번엔 요시노 양이 대답했다.
「목적을 우리들 동생 선발로 한정하지 않고 폭넓게 쇠르(자매)를 구하는 학생들을 모집해 만남의 장을 제공하려고 해요.」
그것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은 후 네 명이서 미니 회의를 열어 결정한 큰 줄기였다. 위에서 「이렇게 해」하고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기 보다, 우리 나름대로 의견을 정리해 「이런 식으로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한 결과다.
「다시 말해」
레이 님이 말씀하셨다.
「집단 맞선, 이란 거야?」
「구식이네. 단체 미팅이라고 하지 않아?」
사치코 님이 정정하셨지만
「뭐어 쉽게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어느 쪽이건 다 똑같아 보이는 유미였다.
「그래서? 그 다과회 참가자는 어떤 식으로 결정할 거니?」
「리리안 학보를 통해 모집하려구요」
유미가 그렇게 말하자 마미 양은 끄적끄적을 잠깐 멈추고 「OK」 라고 사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1학년, 2학년 각각 같은 인원수로 모집을 하고, 응모자가 그보다 많을 경우는 추첨으로 결정할 예정이에요. 모집정원에 대해선 앞으로 계속 검토해 적당한 인원수를 결정할 계획인데, 현 단계에선 각각 2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구요.」
유미의 진술이 끝나자 시마코 양이 말을 이어나갔다.
「조건으로는 1학년은 과거 쇠르의 언약을 맺은 적이 없는 학생. 2학년의 경우, 언니가 있는 건 문제없습니다만 동생을 가진 적이 없는 학생입니다.」
「이건 이번 기획에 참가하기 위해 쇠르를 파기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리코 쨩이 보충했다.
「그렇군. 그래서, 참가자는 차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그 다음은?」
사치코 님이 유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그것뿐이에요.」
「그것뿐?」
오디션인데? 사치코 님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이번 다과회는 어디까지나 만남의 장. 나머진 각자 개인의 몫이죠.」
「동생이 되어 주세요 라든가 사양하겠어요 라든가 그런 건 없니?」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 사치코 님은 커플맺기 이벤트에서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언급하신다.
「네. 없어요.」
「넌 그렇게 해서 쁘띠 쇠르를 정할 수 있겠어?」
「그 자리에서 정할 수 있다면 물론 신청하려고 해요. 정할 짝이 없거나 혹 망설일 경우엔 몇 명인가 말을 걸어보고 장미관에 도우미로 와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고요.」
「테스트 기간이라는 말이지?」
사치코 님은 백장미 자매를 슬쩍 쳐다봤다.
「하긴 그것도 한 방법이네.」
시마코 양도 노리코 쨩도 「테스트 기간」을 거쳐 장미관 주민이 된 경력이 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동료가 선택한 쇠르(동생)를 설마 구박하리란 생각은 안 들지만, 상성이란 게 있으니까 망설여질 땐 장미관에 가장 익숙한 애를 동생으로 삼는 것도 하나의 선택방법일 것이다.
「대강 알겠어.」
사치코 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면 너희들끼리 하도록 해.」
「네?」
그게 단순히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이 논의장에서 빠질 셈이라는 건, 가방이랑 학교 코트 같은 짐을 챙기려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 잠시만요, 언니.」
유미가 허둥대며 뒤를 쫓았다.
「단순한 다과회, 집단맞선이라면 심사위원 같은 건 필요없을 테니 내가 할 일은 없지 않니?」
「하지만 다과회에 참석해 주시는 것 정도는──.」
그러자 사치코 님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바보네. 3학년인데다 동생이 있는 난 다과회 참가 조건에 맞지 않아. 내 자리를 준비할 거면 차라리 1학년 초대객을 한 명 더 늘리렴.」
참으로 타당한 정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맞아요」 라거나 「그렇게 할게요」 라는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동생 선발이라는 중요한 이벤트인데도 정작 옆에 언니가 안 계신다니. 함께 머리를 맞대 의논하던 점심 시간에는 1밀리그램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사치코」
유미의 뒤를 이어 쫓아온 레이 님을 보고 사치코 님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레이의 행동까지 제재할 생각은 없어. 네가 관여하건 말건 네 맘이니까.」
「......」
레이 님은 사치코 님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조그맣게 끄덕였다.
「알았어. 나도 손을 떼지. 시합도 가까우니.」
요시노 양이 아무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레이 님은 흘끔 시선을 향했을 뿐 특별한 말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은 돕도록 할게요. 물론 서포트 역으로요」
나가는 사치코 님과 레이 님을 배웅하며 시마코 양이 말했다. 2학년이지만 동생이 있는 시마코 양, 그리고 이미 언니가 있는 1학년 노리코 쨩도 사치코 님이랑 레이 님과 마찬가지로 다과회 참가 조건에 맞지 않는 존재이다.
「고마워. 그렇게 해준다면 무척 도움이 될 거야.」
「마미 양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런 말을 남기고 문 밖으로 사라져간 3학년 두 사람.
「대체 왜 저래?」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요시노 양이 분개한 듯 말했다. 「삐진 거야?」 라고. 노리코 쨩도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로사 키넨시스(홍장미님)는 우리들이 멋대로 진행시키는 바람에 화나신 걸까요?」
「그렇지 않아, 노리코.」
시마코 양이 정정하고 유미도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화 같은 거 안나셨어.」
겉으로는 감정을 억누르고 계셨지만. 언니는, 마음 속으로 확실히 웃고 계셨다. 거기까지는 알겠지만. 도대체 진심은 어떤 생각이신 걸까. 좀처럼 언니의 말과 행동을 파악하지 못하는 유미였다. 장미관 2층은 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온도가 내려간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