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20권 시시비비 오디션 -5- 배틀 본편

▒▒▒▒ 배틀 본편 ▒▒▒▒

 

 

1

 

뭐어 그리 기대는 안했지만.
약속 장소에 제 시간에 나타난 건 홍장미 자매와 백장미 자매 네 사람뿐이었다.
「요시노 쨩은 먼저 갔니?」
사치코 님이 유미에게 물으셨다.
「네. 시합에는 못나가지만, 일단 검도부라서요. 레이 님 일행이랑 같이요. 청소도 면제였어요.」
지역 고등학교 교류시합이라곤 하지만, 학교 내에선 평범한 토요일이다. 유미 같은 일반 학생은 4교시까지 수업을 받고, HR을 하고, 청소를 끝내고 나서 승강구에 집합했다. 작년 교류시합 날이랑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멤버는 다르다. 사치코 님과 시마코 양, 유미. 게다가 올해는 노리코 쨩이 가세했고, 작년에 계셨던 요코 님과 세이 님은 이제 안 계시다. 그 후로 벌써 1년이나 지난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제 안 올 모양이네.」
「그런가 보네요.」
부통 동생 후보 5명에게 검도 교류시합이 있으니 같이 응원하러 가자고 권했지만. 아직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유미 동생 후보 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요시노 쨩 쪽의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하는데.」
입장상으로는 그렇겠지만, 한 쪽은 요시노 양에게 「모가지」라는 말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울며 돌아가 버렸으니. 아마 둘 다 안 오겠지.
「5분 기다렸어. 가자.」
그래서 사치코 님의 판단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요시노 양, 결국 에리코 님에게 동생 소개시켜 드리지 못했네.」
걸으면서 시마코 양이 말했다.
「응」
유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노 양은 아직 에리코 님을 만나지 않았을 거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소개시켜 드릴 가망이 없다」는 게 옳다. 하지만 후보자 두 사람이 회장에 가지 않는다고 하면, 「소개시켜 드리지 못했다」가 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사치코 님이 나직이 말씀하셨다.
「노리코 쨩의 경우 너무 우수하다고 할 정도야. 토오코 쨩이나 카나코 쨩도 돌이켜보면 요령이 좋은 애들이었고.」
아무래도 동생 후보 5명과 비교해서 그렇단 얘긴가 보다.
「죄송합니다.」
「유미가 사과할 건 없어. 그 애들은 아마 평균적인 여고생이겠지. 시작은 어떻든 네가 지도해서 제대로 키우면 될 일이야.」
지도하고 싶어도 따라와주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애들을 그렇게까지 이끌어주지 못하는 건 언니 후보로서 자질 부족이겠지. 한심스럽다고 유미는 생각했다.
「아마 환상이었던 게 아닐까요.」
노리코 쨩이 생각을 말했다.
「환상?」
「장미님이라든지 부통이라든지. 그저 동경하는 마음만이 앞서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길 그 애들은 바랬겠죠. 곁에 있으면 틀림없이 멋진 일로 가득할 거라는 그런 환상을 품고 말예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걸요.」
「실망했다는 말이야?」
쇼코 쨩이랑 약간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유미는 생각했다. 그 애도 부통의 동생이 되면 사진 속에서 빛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보다는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닐까요. 그 애들은 지금까지 장미관을 동경해도, 그 안에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생각조차 한 적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걸 현실세계라고 들이대니 당황할 수밖에요. 다과회의 손님인 채로 있는 편이 차라리 행복했을 거예요.」
제 상상에 불과하지만요, 라고 노리코 쨩이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들으면서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유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애들은 지금쯤 상처입었을지도 몰라. ───가엾게도.

 

시민체육관 주위를 빙 감싸고 있는 공원에선 주로 세 종류의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회장에 도착하자 작년 이상으로 자리가 들어차 있어서 역시 두 명씩 나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홍장미 자매와 백장미 자매는 시합 끝난 후 만날 장소를 정하고는 두 팀으로 나뉘었다. 오는 도중에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종이팩 커피우유를 각자 들고 빈 자리 두 개를 찾아 렛츠 고!
「봐요 언니. 저쪽요.」
유미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뛰기 시작했다.
「아, 유미?」
뒤에서 보는 한, 두 개 나란히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발견. 하지만 짐만 놔두고 자리를 비웠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우선은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
OK. 짐 없음.
「저기, 여기 자리 비었나요?」
일단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로는.
「앉고 싶으면 그 샌드위치 하나 놔두고 가라~」
「......」
놔두고 가라니. 『놔두고가라 연못』의 괴수냐.[*置いてけ堀(오이테케보리). 어디선지 모르게 置いてけ(놔두고 가라)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해지는 연못으로, 혼죠(本所) 지방 7개 불가사의 중 하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유미가 아는 한 한 명 밖에 없다.
「어째서 여기에 세이 님이 계신 거죠?」
「오늘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며? 에리코한테 들었지롱.」
「에, 에리코 님?」
이 경우, 유미가 말한 「에리코 님」은 단순히 세이 님 말을 복창했을 뿐이고, 결코 본인을 부른 게 아니다. 하지만 세이 님 건너편에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우왓, 본인이다. 손까지 들고. 기분 째지신다.
「펴, 평안하세요, 에리코 님.」
생각해보니, 에리코 님이라면 여기에 계신 것도 당연하다. 막상 본인이 눈 앞에 있자, 「아아, 요시노 양은 정말 무모한 약속을 했구나」하고 절실히 느껴진다. 덧붙여 말하자면, 에리코 님이 부른 사람은 세이 님만이 아니었다.
「뒷모습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뒤쫓아온 사치코 님이 에리코 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언니」라고 말을 걸었다. 그래. 요코 님까지. 학원제에선 뵐 수 없었던 전 장미님 3인 합동 행차[*]를 오늘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 [*원문은 三役そろい踏み로 스모에서 대회 맞지막 날 동서 양편의 장사 세 사람씩 번갈아 스모판에 올라와 한 발씩 땅을 구르는 준비운동을 하는 걸 가리킴]
(아아)
절친한 친구 두 사람을 데리고 오다니. 이건 에리코 님이 오늘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당연하다. 요시노 양이 동생을 소개하지 못하면, 「거봐. 내가 그랬지」라며 승리감에 도취할 테고, 소개한다면 그 동생을 평가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유미 쨩. 요시노 쨩 어땠어?」
유미가 자리에 앉자마자 에리코 님은 몸을 기울이며 물어왔다.
「뭐가요?」
여기선 신중하게 대답해야 해. 에리코 님은 달변이시니까 괜히 안해도 될 말까지 해버리고 만다. 사이에 껴있는 세이 님이랑 에리코 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요코 님은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그보다, 유미가 어떤 식으로 이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를 즐기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아냐고? 그야 두 사람 다 얼굴이 웃고 있으니까 그렇지.
「과자 상자 보고 분해하지 않든?」
아아, 그 일.
「죄송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로서 대답해 드릴 수 없네요.」
위험하게도 동생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섣불리 대답할 뻔했다.
「아쉽네. 꼭 보고 싶었는데.」
「전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말 안해도 알아. 유미 쨩 얼굴 보면 말야.」
요코 님과 세이 님이 참지 못하고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사치코 님이 조그만 목소리로 「바보네」라고 말씀하시고. 제 1라운드는 누가 봐도 유미의 패배. 유미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동안 참아주고 계셨던 에리코 님이지만, 마지막 한 개를 다 먹고 커피우유 종이팩이 쭈욱쭈욱 마지막 소리를 내자 다시 제 2라운드를 개시했다.
「그런데 요시노 쨩 동생은 어떤 애니?」
「글쎄요.」
덧붙여서 전 장미님 세 분은 회장에 오기 전에 근처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이 님의 「놔두고 가라」는 농담이었을 테지만, 아주 잠깐 방심한 틈을 타 역시나 한 개 뺏기고 말았다.
「유미 쨩, 시치미떼면 못써. 아까 자기 입으로 말했지? 요시노 쨩과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둘도 없는 친구가 모를 리 없잖니?」
역시나. 조심하고 있었건만, 빨리도 쓸데없는 걸 말해버린 것이다.
「그게 아직 저도 소개받지 못해서요.」
하지만 이쪽의 강점은 정말로 모른다는 것. 「어떤 애」라고 물어봤자 모르는 건 대답해 줄 수 없다.
「아마 레이 님도...... 제 생각은 그래요. 요시노 양은 에리코 님에게 제일 먼저 보고할 거라고 그랬으니까요.」
그걸 듣고 기분이 조금 좋아진 모양이다. 에리코 님은 제 2라운드를 미련없이 종료시켰다. 무승부, 쯤 되려나.
「둘러대는 게 능숙해졌는걸, 유미 쨩. 뭐 됐어.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즐거움은 늘어나니까. 아무리 미뤄봤자 오늘 중으로 정리될 테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데도 이상하게 무섭다. 에리코 님은 진심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이 회장에서 결판을 낼 셈인가 보다.
「그럼 있지. 요시노 쨩의 동생이 어떤 애인지 셋이서 맞춰보지 않을래? 오늘 이 회장에 와있을 테니까.」
시합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 때우기로 에리코 님은 무서운 놀이를 생각해 내셨다.
「그거 재밌겠네.」
무섭다고 느끼는 건 동생 후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현 홍장미 자매뿐. 그래서 세이 님도 요코 님도 「하자 하자」며 의욕 충만이다.
「저, 저기」
「힌트가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유미 짱이랑 사치코는 가만히 있어야 돼.」
힌트고 뭐고. 후보자 같은 건 없으니까 가르쳐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는지 사치코 님은 아무 말없이 문고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빨리도 몸을 빼신 것이다. 가능하면 유미도 빠지고 싶었지만 옆자리에 있는 세이 님한테 팔을 꽉 붙잡혀서 억지로 끼게 되었다. 아무래도 유미의 반응을 보면서 예상을 세울 셈인가 보다. 끈질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얼굴 살펴봤자 힌트 같은 건 못된다. 그럼 나부터. 가위바위보로 1등이 된 세이 님이 우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건너편 자리 앞에서 세번째 줄에 있는 저 아이.」
「앞머리를 핀으로 꽂은 저 애? 아냐 세이. 저 앤 2학년인걸. 본 적이 있어. 신문부에서.」
「아─. 츠키야마 미나코 동생이다. 그럼 그 옆에 있는 애 할래.」
그 옆은 신문부의 루키, 히데미 쨩이다. 가능성은 완전히 제로는 아니지만, 우선 요시노 양의 동생은 되지 않겠지. 힌트 주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물론 말 안할 거지만. 다음은 요코 님이 고를 차례다.
「시마코 옆에 있는 애는? 아마 산백합회 연극에도 나왔었지?」
「유감이군요. 저 앤 시마코 동생.」
세이 님이 대답했다.
「아아, 저 애가.」
요코 님과 에리코 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을 깨달은 시마코 양이 이쪽을 보고 인사하고, 뒤를 이어 노리코 쨩이 고개를 숙였다.
「마치 서양인형과 일본인형이네.」
전 장미님들이 그런 말을 하며 깔깔 웃고 있을 거라곤,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는 시마코 양은 꿈에도 생각 못하겠지.
「카메라 쨩 옆에 있는 애는? 동생?」
요코 님이 유미에게 물었다. 보니 츠타코 양이 쇼코 쨩을 데리고 회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얘기는 못들었어요. 확실히 1학년이긴 하지만.」
「그래? 그럼 저 애로 하지. 얼굴이 귀여우니까.」
「......에?」
어차피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첫인상으로 정하는 거니까 분위기나 얼굴 밖에 판단 재료가 없다. 없지만, 요코 님이 사람을 얼굴로 고르다니, 유미는 약간 쇼크였다. 의외로 얼굴 따지시는구나. 하지만 그건 사치코 님을 동생으로 삼은 걸로 증명된 셈이다.
요코 님이 결정 선언을 하자, 에리코 님이 신음소리를 냈다.
「저 카메라 쨩 옆에 있는 애,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생각이 안나.」
쇼코 쨩은 나이토 카츠미 님의 동생이니까 얼굴이 어딘가 닮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옛날 본인과 만났 적이 있든가. 에리코 님이 졸업하시고 그 뒤를 잇듯 입학했으니까 고등부에서의 접점은 없었겠지만. 에리코 님은 1분 정도 골몰히 생각하다가, 결국 쇼코 쨩을 기억해내는 걸 포기하고 요시노 양 동생 맞추기를 재개했다.
「내가 마지막이네. 저기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할까?」
그러자, 그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요코 님이 말했다.
「아아, 한 명은 유코 쨩 딸이야.」
그리고, 또 한 명은 토오코 쨩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렇다는 건 같이 왔다는 걸까. 어느새 저렇게 사이가 좋아진 거지. 예전엔 천적이었는데.
「요코는 어떻게 모친 이름까지 알고 있어?」
에리코 님이 묻자 세이 님이 웃었다.
「나도 알아. 저기 있는 유코 쨩의 딸은...... 분명히 카나코 쨩이던가.」
확인하듯 유미의 얼굴을 보길래 어쩔 수 없이 「딩동댕. 정답입니다」하고 같이 어울려 드렸다.
「나, 혹시 너희 둘보다 뒤떨어진 거야?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거 혹시 데쟈뷰?」
데쟈뷰는 아니지만 분명히 에리코 님은 부모님 몰래 끙끙 앓다가 입원했다가 하는 통에, 학교 안에서 벌어진 대사건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는 특수한 과거를 가진 분이다.
「그래서, 그 유코 쨩의 딸, 카나코 쨩은 1학년이니?」
「응. 하지만 카나코 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요시노 쨩의 동생은 안된다는 말. 카나코 쨩은 있지, 유코 쨩을 좋아하니까.」
「어머, 마더콤이야!?」
「뭐어 그런 느낌이지.」
사정을 모르는 에리코 님을 세이 님과 요코 님이 혼란스럽게 만들며 즐기고 있다.
「그 옆에는?」
「저 앤 전동드릴 쨩. 저 애도 요시노 쨩 동생 타입은 아니지.」
가리키는 학생마다 계속해서 부정당하니 에리코 님은 결국 「이제 이 안엔 없어」란다. 사실은 아직도 리리안 학생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신과 두 친구 사이의 정보량의 차이가 유쾌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자 세이 님이 말했다.
「그럼 교복이나 학년이나 관계없이 한 사람 골라도 돼.」
어이, 어이. 점점 취지가 변하기 시작했다구. ───유미는 마음 속으로 태클을 넣었다. 요시노 양의 동생 맞추기라면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1학년이라는 최저 조건만큼은 충족시켜야 하잖아.
「그럼 난 저 애로 할래.」
에리코 님은 기분을 바꿔 한 소녀를 가리켰다. 시합장을 끼고 맞은 편인지라 멀지만 정면에서 보인다. 원랭스 커트를 한 세미롱 헤어의 소녀다. [*원랭스 커트 : 모발의 커트선이 일정한 라인을 유지하게 일직선으로 자르는 기법. 패러렐(단발), 스파니엘, 이사도라, 머쉬룸 스타일이 있다]
「아아, 과연」
요코 님이 씨익 웃는다.
「뭐야?」
「사람은 자신과 닮은 타입을 좋아하는구나 해서.」
「닮았어?」
「얼굴이 닮았다기보다, 분위기가.」
그 말을 받아 세이 님이 말했다.
「헤어 밴드로 이마를 올리면 얼굴도 닮았을 것 같은데.」
「흐응. 그럼 요시노 쨩한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걸.」 
아주 마음에 없는 것도 아닌 듯, 에리코 님이 웃는다. 어딘가 자신과 닮은 소녀를 요시노 양이 「동생」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분명 유쾌한 일이겠지.
「아쉬운 건 사복이란 점이네.」
「게다가 적이고.」
그렇다. 에리코 님이 「정한」 요시노 양의 동생은 베이비 핑크색 트레이너복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라이벌 학교인 오오나카 여고 교복 무리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뜻대로 잘 안되는 법이지.」
에리코 님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설령 저 애가 리리안 교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요시노 양이랑 억지로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인데. 어쨋건 전 장미님 세 분은 시합 시작까지 남은 수 분을 충분히 즐기신 모양이다.
「즐거움은 이제부터야.」
시합장에 선수와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레이 님을 비롯한 선수들의 뒤쪽에 짐을 안고 있는 요시노 양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치코 님이 책갈피를 끼우고 문고본을 덮었다.
드디어 2시. 시합이 시작하려고 한다.

 

 

2

 

시합에 나가는 선수들의 뒤에서 대기하면서 요시노는 「휴우」하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선수 서포트라곤 해도 할 일은 거의 없다.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쯤 되면 전원이 유단자. 나름대로 시합 경험도 있으니 시합장에도 익숙하고, 하카마든 호구든 혼자서 척척 쓴다. 괜히 도와주려 했다간 오히려 「방해」란 말을 들을 지경이다. 준비나 시합전의 정신 통일 방법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페이스란 게 있어서,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 정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오늘은 짐 당번을 하면서 시합을 관전하는 것이 요시노의 주된 일인 것이다. 하지만 레이 쨩이 말했다. 요시노가 회장에 와서 바로 가까이서 시합을 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요시노가 곁에 있으면 그만큼 레이 쨩의 힘이 된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순순히 기뻐했더니, 「견학 연습」이란다. 다른 사람의 시합을 진지하게 보는 건 그만큼 연습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교류 시합은 평소 볼 수 없었던 타교 선수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반드시 눈에 익혀 배울 수 있는 건 모조리 배울 수 있도록 하라고. 그쯤은 말 안해도 안다구.
요시노의 취미는 스포츠 관람이다. 어떤 경기든 현장 바로 가까이서 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임을 알고 있다. 하물며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검도. 그런데도.
(...... 틀렸다.)
눈 앞에서 리리안 차봉이 죽도를 휘두르고 있는데도 전혀 집중할 수 없다. 옆에서 체육시간 자세로 앉아 있는 타누마 치사토 양 같은 경우는 거의 넙적 엎드리다시피 몸을 내밀어 응원하고 있는데도.
이게 끝나면 에리코 님과 만나야만 한다. 혹시 에리코 님은 약속을 까맣게 잊고 계시진 않을까. 혹시 시합날을 잘못 기억하고 게시진 않을까. 그러나 그런 희망적인 관측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회장 객석에서 뵙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
저 사람이 (저 사람에게 있어서) 이렇게 재미난 일을 잊을 리가 없지. 기억을 착각할 리도 없어. 에리코 님은 레이 쨩의 시합 관전이 끝나면 조용히 일어나 회장을 빠져나가서 대기할 것이다. 그리고 시합 회장에서 나온 리리안 여학원 검도부 부원들 중에서 우선 레이 쨩을 발견하고 말을 걸겠지. 요시노가 멈추지 않고 앞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그러고 보니」 하고 생각났다는 듯 요시노를 불러 세우는 것이다. 요시노 쨩 동생은 어디에 있니, 라고.
(아아)
구석구석까지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것이 현실로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시합보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싫어 싫어)
요시노에게 동생같은 건 없다는 걸 알았을 때의, 에리코 님의 그 기고만장한 얼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열받는다. 무모한 약속을 한 쪽이 잘못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왕년의 라이벌인 에리코 님한테만큼은 솔직히 「죄송합니다」고 용서를 청할 마음이 안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선봉끼리 시합은 누가 이겼지?」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치사토 양. 이 시합, 아직 예선이지?」
걱정이 되어 물어보자.
「그런데?」
뭘 새삼스레, 라는 눈길로 본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기억이 날아간 건 아닌 모양이라 안심했다. 진정하고 상대방의 명패에 적힌 학교 이름을 보니 써있는 문자는 「타쿠라자와(田倉澤)」. 분명 작년엔 리리안과 대전하지 않았던 학교다.
작년.
작년엔 교류시합에 올 수 없었다. 그 날 심장 수술을 했으니까. 수술을 하기 전엔 1년 후에 검도부 부원으로 이 장소에서 레이 쨩의 시합을 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에리코 님이 졸업하신 후에도 이렇게 끈덕지게 심술을 부리실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하지만, 뭐 어때. 게다가 이렇게 대항할 수 있는 것도, 몸이 건강하게 된 증거.)
대항?
거기에 생각에 미치자, 요시노는 절망적이 되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싸우면 좋으냐고. 이렇게 된 이상, 주위에 있는 리리안 학생을 잡아다가 「동생입니다」하고 내밀까. 아니면, 동생이 감기에 걸려 오늘 못나와요, 하고 꾀병을 이용한다거나.
「끝났어.」
「어?」
「선봉 승, 차봉 패, 중견 승, 부장 승, 대장 승. 그래서 예선돌파.」
타누마 치사토 양이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봐, 정신차리라구. 결정 기술은 둘째치고, 각각 승패 정돈 술술 말하지 못하면 레이 님이 실망하실 거야.」
「죄송합니다. 신세지네요.」
승패승승승. 좋았어, 외웠다.
레이 쨩이 얼굴 치기로 점수를 내는 장면은 본 것 같지만, 나머진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니까 중증이다. 결승전은 꼭 똑바로 봐야지. 정말 위험하다. 결승은 대개의 예상대로, 리리안 여학원과 오오나카 여자 고등학교가 이겨서 올라왔다.
(있다, 있어)
오오나카의 타나카 3자매 중 둘째와 셋째. 둘째는 대장인 듯 하니까, 레이 쨩과 맞부딪치게 된다.
(투지가 철철 넘치는데)
작년, 친언니가 마지막 판정에서 레이 쨩에게 패한 복수, 같은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중견의 셋째까지 이글이글 타오른다. 요시노도 이글이글 돌려줘 보지만, 타나카 자매는 선수도 아닌 한낱 뒤치닥거리 부원은 눈에 안들어오는 듯 완전히 무시당했다. 엄청 상처받았다. 시합이 끝나면 뒷정리를 전부 땡땡이치고 우선 이 자리에서 도망치자. 요시노는 결심했다.
도망친 후의 일은 도망치고 나서 생각하면 돼. 에리코 님이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든가, 도중에 리리안 1학년에게 사정사정해 동생인 척 해달라고 하든가. 그 때 그 때의 형편에 맡기기로 했다.
일단 결심하고 나자 어떻게든 시합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오나카 여자 고등학교와 리리안 여학원의 결승전이, 드디어 시작한다. 레이 쨩이 기분좋게 이기는 장면을 똑똑히 눈에 새겨 둬야지.

 

 

3

 

「────」
승리교 가운데 있는 패자와 패배교 가운데 있는 승자는 누가 더 가여울까. 설마 결승전이 이런 결과가 될 줄이야. 요시노는 선수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리리안이 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드라마든 소설이든 열혈 스포츠물의 주인공은 좌절하기도 하고 사고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최후에는 승리를 손에 넣는 법이다. 그러니까 리리안이 질 리가 없다. 마음 속 어디선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오나카 검도부원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은 자신들인 것이다. 예선에서 패한 타쿠라자와 고교나 츠키미가오카(月見ヶ丘) 고교 역시 마찬가지겠지. 세상의 중심이란 건 서있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레이 쨩은 이겼다. 하지만, 리리안은 졌다.
부장끼리의 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이미 선봉, 차봉, 부장전에 3승을 거둔 오오나카의 우승이 결정되었다.
「레이 쨩은 멋있었어.」
「응, 그렇지.」
레이 쨩은 의외로 후련해 보였고, 진 선수들을 위로하는 여유조차 보이고 있었다. 오늘의 패배를 밑거름으로 내일은 더욱 강해질 거라고. 눈물나게 하는구만. 눈물이라고 하니까 우승한 오오나카 대장, 타나카(둘째) 양. 새빨갛게 부은 얼굴로 펑펑 울고 있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기쁨의 눈물로는 보이질 않는다. 레이 쨩에게 진 것이 어지간히 분했나 보다. 고문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랑 부원들에게 둘러싸여 퇴장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일이 있던 가운데 요시노는 도망칠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시합이 끝나고 바로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는데. 황급히 좀전까지 에리코 님이 계시던 자리를 본다. 3인 궁녀[*三人官女: 히나마츠리 때 제단에 장식하는 세 궁녀 인형]처럼 나란히 앉아 있던 세이 님과 요코 님 사이의 자리가 뻥 뚫렸다.
(아뿔싸!)
어떡한담. 행동 개시 할까, 예정을 변경할까. 망설이면서 급히 객석 전체를 둘러보자, 저기 꼼짝달싹 못하는 에리코 님의 모습이. 시합이 끝난 직후라 인파 때문에 좀처럼 출구에 도달하기 힘든 것이다.
「미안, 먼저 갈게」
클럽의 짐을 타누마 치사토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요시노는 대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합장을 가로지르면, 에리코 님보다 먼저 출구를 돌파할 수 있다.
「얘, 기다려 요시노!」
퇴장 러쉬 가운데에서 들려오는 건 틀림없는 에리코 님의 화난 목소리. 요시노가 도망치려는 게 이미 저쪽에 들통났나 보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게 해주세요.」
요시노는 출구 근처의 인파를 헤치며 간신히 체육관 통로에 나왔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은 통로 끝에 계단. 왼쪽은 로비, 여길 지나면 건물 전체의 현관. 길은 굳이 말하자면 왼쪽이 혼잡하지만 그리 차이는 안난다.
「좋아, 정했다.」
요시노는 오른쪽을 선택했다. 계단은 올라가는 쪽은 로프로 막아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히 화장실이 있었다. 한 곳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면 아무리 에리코 님이라 해도 문을 깨부수기까지 하겠어.
「요시노 쨩!」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 때, 뒤에서 요시노를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볼 것까지도 없이 에리코 님의 목소리였다. 어떤 신기를 부려 저 러쉬 대열을 빠져나온 거야. 드디어 심판의 때가 온 건가. 아냐, 아직 포기해선 안돼. 도망친 건 사실이지만, 동생 문제는 아직 흐지부지인 채다.
「에리코 님」
요시노는 여유있게 뒤돌아봤다.
「평안하세요.」
「뭘 그리 서두르는 거니?」
도망치니,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에리코 님의 심술궂은 면이다.
「에 그러니까」
「아아, 화장실?」
「네에. 맞아요, 화장실에」
「그렇지? 설마하니 동생을 만들지 못한 바람에 나한테서 도망치는 짓을 요시노 쨩이 할 리가 없는 걸.」
에리코 님이 도발하면 거기에 덜컥 걸리고 마는 건 매번 있는 일.
「어머나, 에리코 님은 절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걸로 완전히 요시노의 퇴로는 막혔다. 「죄송해요」하고 앙증맞게 사과하고 용서받는 건, 이젠 무리다.
「그럼 동생이 생겼군.」
「무, 물론이죠.」
사실은 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미 그런 레벨이 아니다. 요시노는 점점 막다른 골목에 몰려 간다.
「그런데, 로사리오는 수학여행 때 사왔니?」
「네......? 아뇨.」
「그럼 동생한테는 레이한테서 받은 걸?」
「네에」
잘 생각해 보면, 로사리오는 수학여행 때 안사도 구할 곳은 많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요시노는 사고가 따라가질 못해 이탈리아에서 사오지 않았으니까 동생에게는 레이 쨩한테서 받은 걸 줬다는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네. 그거, 로사리오 아니니?」
에리코 님이 요시노의 옷깃에서 엿보이는 목걸이줄을 가리켰다. 대쉬하느니 인파를 헤치느니 하다가 로사리오가 흘러나올 뻔한 모양이다.
「네에. 로사리오예요.」
요시노는 여유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목에서 벗어 오른손에서 왼손, 다시 왼손에서 오른손, 손바닥 위를 왔다리갔다리 한다.
「실은 에리코 님 앞에서 의식을 하고 싶어서, 아직까지 안하고 있었거든요.」
어찌된 일인지 입에서 터무니없는 말이 술술 나온다.
「어머, 기쁘기 그지없는 말을 해주잖니. 그래서, 중요한 동생은?」
그렇다. 중요한 「동생」이 없다.
「동생은──」
요시노는 에리코 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벽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적힌 건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화살표와 「화장실」이란 문자.
「지금, 화장실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하다니 재미가 없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이용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
「그래서 제가 에리코 님에게 인사드리려고 서둘러 데리러 온 거예요. 그래요, 화장실에 볼 일이 있었던 건 제가 아니라 실은 동생이에요. 그렇다곤 해도 늦네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잠깐 보고 올게요.」
요시노는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그걸 가만이 보고 있을 에리코 님이 아니었다.
「기다려. 나도 갈게.」
「아뇨, 그럴 순 없어요.」
「사양말라구.」
「안된다니까요.」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오로지 내려간다. 다 내려가니, 복도 벽에 또 다시 화장실 마크와 이번엔 왼쪽 방향의 화살표가.
「왼쪽!」
저 모퉁이를 돌면 목적지인 화장실이 있다. 다행이 통로엔 인적이 끊겨 있었다. 단숨에 커브를 돌아 뿌리치는 거다. 그리고 요시노는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눈 앞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마주친 순간 벌어진 사고.[*出會い頭の事故 : 일본에서 교차로, 커브길 등에서의 교통사고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 그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 있던 사람은 아주 간단히 몸을 틀어, 급브레이크를 건 요시노만이 푹 고꾸라져 자빠졌다.
「아야야야......」
「괜찮으세요?」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들여다 보는 건 핑크 트레이너복을 입은 세미롱 헤어의 소녀였다.
「예쁜 로사리오」
어느새 주웠는지 그녀는 요시노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손을 짚는 순간 놓쳐버린 로사리오를 전등에 비추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야 예쁜 게 당연하지. 레이 쨩이 일부러 요시노를 위해 피부색에 잘 어울리는 로사리오를 골라줬으니까. 사슬 모양의 목걸이줄에 다크그린색 돌이 달린 것이다. 넋을 잃은 눈으로 로사리오를 손바닥에 굴리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요시노는 「이 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어디서였더라. 기억이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막연히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직접 만난 건 처음일지도 모르지만.
「아, 죄송합니다. 돌려 드릴게요.」
시선을 깨달은 소녀가 당황하며 로사리오를 내밀자, 요시노는 그 손바닥에서 집어들었다. 에리코 님이 모퉁이에서 모습을 나타낸 건 바로 두 사람의 손과 손이 맞닿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요시노 쨔──」
요시노를 쫓아온 에리코 님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어째선지 건전지가 떨어진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 안했다. 그래서 요시노도 그만 도망치는 걸 잊고 말았다.
「설마 그 애」
그 때, 겨우 요시노도 이해했다. 에리코 님은 우연히 이 자리에 같이 있던 그 애를 요시노의 동생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화장실에 간 동생을 데리러 온 요시노와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마주보는 소녀. 게다가 두 사람의 손은 하나의 로사리오를 포개고 있다.

「네. 뭐어」
요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며 시선이 내려간 그 때, 하늘은 자기 편임을 확신했다. 지금 요시노 옆에 있는 여자애의 핑크 트레이너복에만 눈이 갔었는데, 실은 안에 리리안 교복을 받쳐입고 있던 것이다. 요시노는 소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맞춰줘」라고 속삭인 뒤, 에리코 님에게 말했다.
「소개할게요. 이 애가 제가 동생으로 삼고 싶은 애예요.」
「그래.」
이름을 묻기 전에 소녀가 자기 소개를 해서, 솔직히 요시노는 안도했다.
「처음 뵙습니다. 아리마 나나(有馬菜菜)라고 합니다.」
아리마 나나.
들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리마 나나. 한자를 들어도 감이 안온다. 아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나.
「그래. 나나 쨩이네. 기억해 둘게.」
그럼 이만, 하고 아리마 나나를 데리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역시나 에리코 님이 허락해주질 않으셨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의식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니?」
「저기, 그건 언젠가. 오늘은 소개에 목적이.」
의식은 에리코 님이 보는 앞에서, 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오늘 한다고는 말한 적 없다. 설사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인 연극이라 해도, 요시노는 레이 쨩이 준 로사리오를 아무 관계없는 여자애의 목에 걸고 싶진 않았다.
「왜? 하는 김에 해버리지 그러니?」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놀리는 건가. 에리코 님은 참 어지간히도 끈질기다.
「그건...... 여러 가지로 사정이 있어서.」
「사정?」
에리코 님은 이번엔 요시노가 아니라 아리마 나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자 나나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사정으로 인해 지금 당장 로사리오를 받을 순 없습니다.」
「그 사정이 왠지 신경쓰이는데.」
「여러 가지라서요.」
「여러 가지, 란 말이지.」
에리코 님은 채점이라도 하듯 나나를 위아래로 쭉 훑어본 후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란 말이군. 납득하도록 하지.」
도중에 탄로나진 않을까 해서 요시노는 솔직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하지만 나나는 의외라고 할만큼 냉정하게 대답했고, 결국엔 에리코 님을 침묵시켰다.
「그러고 보니 요시노 쨩. 체육제에서 말한 신경쓰이는 1학년은 어떻게 됐지?」
「네?」
그러니까 그게 이 아리마 나나 아냐(거짓말이지만). 에리코 님은 무슨 착각을 하시는 거람.
「뭐 됐어. 이쪽이 오히려 더 재밌을 거 같으니까.」
뭘 혼자서 정리해버리는 건지. 에리코 님은 씨익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 난 이만 실례할까. 요코랑 세이가 지금쯤 로비에서 기다리다 지쳤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무사히 넘어갔다는 건가. 요시노는 무심코 만세 삼창을 할 뻔했지만 꾹 참았다.
「평안하렴, 요시노 쨩. 동생을 소개시켜준 상으로 당분간 가만 내버려 둘게.」
「그런 말씀 마시고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미소로 대답하며 요시노는 (앞으로 백억 년은 오지마)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뒷모습에 대고 메롱 한번 해주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에리코 님이 돌아봤다.
「아, 그렇지. 너...... 나나 쨩.」
「네.」
「옷차림은 늘 단정히 하렴. 트레이너복 안에도 다시 정리하고.」
그런 말을 남기고 에리코 님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통로 끝 계단으로 모습이 사라진 걸 보고 「이제 안심」 하며 요시노는 나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고마워. 정말 살았어.」
하지만 나나가 말하길.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저 분, 다 간파하셨어요.」
「뭘?」
「저에게 자격이 없다는 걸요.」
「자격이 없어?」
무슨 자격? 그야 이 경우 요시노의 동생이 될 자격 말고는 없겠지만. 그래도 방금 막 만났을 뿐이고, 잠깐 말을 나눴을 뿐인데 어떻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단 말야.
「리리안 교복은 눈에 띄어서 트레이너복을 덮어 입고 응원하러 갔지만요. 실수했어요. 어느새 리본이 풀린 걸 눈치채지 못했어요.」
보세요, 라며 트레이너 복을 뒤집어 보여주는 나나. 그 때 요시노 눈에 비친 건──.
「너, 너 설마」
자신이 입고 있는 교복과 거의 똑같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가슴 언저리.
「중등부 학생이었어!?」
요시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세일러 칼라의 라인에서 이어지는 검고 가느다란 리본은 중등부의 상징이었다.
「네. 3학년입니다.」
「아아」
정말로 동생으로 삼을 것도 아니니까 중등부든 고등부든 상관없을 테지만. 어째선지 알자마자 단숨에 힘이 빠졌다. 에리코 님이 다 간파하셨다는 사실도, 거기에 추가타를 날렸다.
「그럼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나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일행인 듯한 여고생에게 손을 들어 신호하고는 요시노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하세쿠라 레이 님의 동생 님」
헤어지는 순간, 나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의 동생은, 그 로사리오를 받을 수 있나요?」
「에?」
나나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버려서 다행이었지 만약 대답할 시간이 있었다면, 자신은 뭐라고 말했을까.
── 요시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 것도 안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수술 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나나의 일행이 오오나카 여고의 교복을 입고 있었어도 「어째서?」라고 의문을 품을 여유조차 없었다.

 

 

4

 

「요시노 양」
어깨를 두들기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자 거기엔 유미 양이 서있었다.
「여기엔 어떻게?」
「에리코 님이 화장실 앞에 있는 요시노 양을 데리고 오라고 그러셔서. 그보다 무슨 일이야? 멍하니 서있고. 정면으로 걸어왔는데도 날 전혀 못알아봤지?」
「......응」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쯤부터냐면 에리코 님과 술래자기를 하고 있을 때쯤일까. 하지만 에리코 님이 유미 양을 보내준 것을 보면 전부 현실인 셈이다. 술래잡기 한 것만으로 에리코 님이 요시노를 해방시켜 줄 리 없으니까. 그렇다고 하면 아리마 나나라는 여자애도 실존해야지 정상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유미 양이 흥분한 기색으로 묻는다.
「에리코 님, 사과하니까 용서해 주시든?」
사과는 무슨.
「제대로 소개시켜 드렸는걸.」
「뭣! 대체 누굴!?」
동생 후보 중 누가 회장에 왔냐고 묻길래 아무도 안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유미 양은 몹시 놀란 표정이다. 당연하지. 이번 일은 요시노가 가장 놀랐으니까.
「아리마 나나」
「에?」
「아리마 나나라는 애」
「어느새...... 나, 들은 적 없어.」
항의하는 유미 양. 에리코 님에게 소개하느니 안하느니는 둘째치고, 그런 1학년이 있다는 정보쯤은 사전에 가르쳐 줘도 벌 안받았잖아, 라고.  뭐어 그것도 친구로서는 당연한 주장이겠지. 하지만.
「가르쳐주고 싶어도, 아까 처음 만났으니까.」
「───」
그 말에 아무래도 할 말을 잃는다.
「어떤 앤지 이제부터 조사할 거야.」
「요시노 양......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불안한 표정을 짓는 유미 양에게 「그게, 잘 모르겠어.」라고만 대답했다.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건지도.
「단지 한 마디 하자면, 유미 양이 되도록 빨리 동생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그것 뿐이야.」
「에게, 그게 뭐야?」
「만일의 경우가 생긴다면 노리코 쨩이 딱하잖아?」
만일의 경우. 어쩌면 그런 선택지도 있을지 모른다. 요시노는 그 때 세이 님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