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9권 인 라이브러리 -5- 도서관의 책

▒▒▒▒ 인 라이브러리 Ⅴ ▒▒▒▒

1 + 1 + 1 - 1 + 2 = 4. 이거, 뭐하는 숫자야?
정답. 사치코 님 수색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 유미와 토오코 쨩에서 시작해 미나코 님이 참가하고, 토오코 쨩이 빠진 후, 시마코 양과 노리코 쨩이 가세해 현재 4명.
「통로는 저희들이 찾을테니까, 유미 님은 책상 쪽을 찾아보세요.」
「으, 응」
노리코 쨩이 연하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척척 지시를 내리자 유미는 무심코 대답을 했다. 그렇다곤 해도 폐관 10분 전쯤 되면 느긋하게 책상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어쨌든 우선은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사치코 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착실히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막상 책상이 줄지어 있는 열람실 중앙부 코너로 향하려 발걸음을 돌리자, 눈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치코 님 행방불명이라며?」
먼저 선두에 있던 요시노 양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레이 님은 평소와 달리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4에 2가 늘어나 6이 되었나 하고 생각했더니 아직도 다음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리아상 앞에서 로사 페디다와 요시노 님을 만나서...... 그래서 그만.」
사정을 얘기하고 황장미 자매를 말려들게 한 토오코 쨩까지, 책임을 느꼈는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뭔가 사건 같은데.」
이런 일은 묘하게 냄새를 잘 맡는 신문부의 야마구치 마미 양과 사진부의 타케시마 츠타코 양이 당연하다는 듯이 거기에 있었다.
「저기, 여러분들」
합계 9명. 대수색대다.
「유미 양이 말하고자 하는 건 알아. 도와주는 사람이 이만큼이나 있을 필요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들어봐. 우리들─나와 언니지만─ 사치코 님이랑 만났다구.」
요시노 양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만났어? 어디서?」
「여기. 열람실 안에서. 책을 반납하러 온 사치코 님한테 우리가 말을 걸었어.」
「뭐?」
그건 현재 가장 새로운 목격정보임이 틀림없다.
「사치코가 유미 쨩을 두고와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그랬거든.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레이 님의 불안한 표정에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침묵에 잠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시노가 재촉해도 사치코를 기다렸다 같이 도서관을 나갈 걸 그랬어.」
「날 탓하는 거야? 목마르다고 했더니 '그럼 밀크홀에서 사과쥬스라도 마실까'라고 말한 건 레이 쨩이잖아.」
「요시노 탓이란 게 아냐. 난 그저.」
「스톱」
츠타코 양이 자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매싸움을 하시려거든 밖에서 해주시죠.」
주의를 받고 정신을 차린 황장미 자매는 겸연쩍은 듯 「미안」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사치코 님은 왜 요시노 양이랑 같이 도서관을 안 나가셨어? 책 반납은 이미 끝내셨지?」
유미는 궁금하게 여기던 걸 솔직히 물었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왜 열람실에 계속 머무셨던 걸까' 하고.
「그게」
요시노 양이 말했다. 아무래도 짐작가는 게 있나 보다.
「내가 전에....... 그 왜 한 권만 색깔이 다른 책 있잖아. 그걸 레이 쨩한테 보여주려 왔다고 그러니까 사치코 님도 흥미가 있으신 모양인지 온 김에 보러 간다며 안쪽으로──.」
「그 책이냐!」
짐작이 간 유미는 종종걸음으로 달렸다. 목표는 일본 고전문학코너. 거기엔 사연이 있음직한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학원제 연극에서 상연할 『토리카에바야 이야기』를 순서를 정해 빌려갔을 때, 유미와 요시노 양, 그리고 시마코 양이 그 책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같은 시리즈인데도 어째선지 그 한 권만이 색깔이 다르다는 걸.
「......없어.」
목표로 한 책장 앞에서 유미가 중얼거렸다. 1시간쯤 전에 요시노 양과 레이 님이 여기에 왔을 때에는 분명히 있었을 그 책은, 책장에서 한 권 만큼의 틈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치코 님이랑 같이──?」
『만요슈(万葉集)』도 『타케토리 이야기(竹取物語)』도 『호죠키(方丈記)』도 그 자리에 다 있는데.
『마쿠라노소시(枕草子)』만이 그곳에 없었다.

[*만요슈(万葉集, 만엽집) : 7~8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집 / *타케토리 이야기(竹取物語) : 빛나는 대나무를 베자 나타난 여자아이, 카구야히메의 이야기. 9~10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 *호죠키(方丈記, 방장기) : 일본 가마쿠라 시대 가모노 조메이라는 승려가 편찬한 수필집]

 

 

 

▒▒▒▒ 도서관의 책 ▒▒▒▒

 

그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먼저 온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채 발을 들여놓은, 교사 뒷편의 온실. 거기서 미키(みき)의 눈에 들어온 잠자는 요정. 물론 자신과 똑같은 교복 차림이니 살아있는 인간임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고, 반 아이들 다수가 동경하고 있는 3학년 언니라는 것도 금새 알았다. 원래 귀족의 자손이었던 아가씨라느니, 약혼자가 이웃 하나데라 학원에 다닌다느니. 2학년 쁘띠 쇠르가 있다느니. 이런저런 소문만큼은 미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을 전부 잊어버릴 만큼 그녀는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존재로 보였다. 정말로 한순간 요정으로 착각해 버릴 정도로.
어쩌면 그 옆에 피어 있는 빨간 장미탓일지도 모른다. 화분들이 늘어선 선반대의 구석을 치워 만든 빈 공간에 가로누워, 겹겹의 나무들 사이에서 고른 숨을 내쉬는 그녀.  검고 긴 스트레이트 머리가 마치 히나단[*3월 3일 여자아이의 날 때 인형을 진열하는 단]에 깔린 양탄자처럼 계단 모양의 선반을 따라 윤기있게 흘러내렸다.
아름다웠다. 미키는 온실에 들른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 그녀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7월 초순.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 온실 안은 따뜻해서, 그녀의 목덜미에 어렴풋이 땀이 맺혀 있었다.

그 날 4교시 미키네 반 체육 수업은 수영이었다.
「대쉬!」
체육이 끝나고 야스미(安美) 양과 둘이서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이 교사를 향해 질주했다. 수영하고 난 후의 적당한 피로감으로 몸이 가벼웠다. 달릴 때마다 바람에 흩날리는 무거운 머리카락도, 다리에 휘감기는 플리츠 스커트 주름도, 마치 꿈속에서 춤이라도 추는 것 같았다.
「앗」
갑자기 미키는 오른눈에 통증을 느끼고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미키 양?」
야스미 양이 이를 보고 되돌아왔다.
「벌레」
눈에 벌레가 날아든 것이다. 미키는 오른눈을 손수건으로 눌렀다.
「어디 봐.」
「아파서 눈을 못뜨겠어.」
「그럼 씻어내리는 편이 낫겠다. 분명히 저쪽에 수돗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야스미 양이 돌아본 곳에는 온실이 있었다. 하지만 미키는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테니까, 야스미 양은 먼저 가도록 해.」
「그치만」
「빨리 밀크홀에 가봐야 하잖아. 눈 씻고 바로 쫓아갈게.」
야스미 양은 그 날 빵당번이라 주문받은 반 아이들의 빵을 받으러 가야만 했다. 두 사람이 한발 앞서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을 뛰어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안. 그럼 먼저 간다.」
야스미 양은 온실 입구까지 미키를 데려다 주고서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학교 건물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던 반 친구들이 벌써 길 저편에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미키는 온실문을 열었다. 온실 안의 온도가 바깥보다 조금 높은 느낌이 들었다.
「수도는......」
온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미키의 키만한 나무에다 화분대하며 걸이화분 등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익숙치 않은 장소를 헤메고 있을 때 미키는 그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잠자는 요정.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수돗물로 눈을 씻을 필요도 없이 눈물에 섞여 조그만 날벌레가 흘러나올 만큼의 시간은 넉넉히 지나갔다.
그래도 미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줄곧 이렇게 있고 싶었다. 하지만 온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녀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결국 요정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 그녀는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몇 시?」
미키가 「12시 37분인데요」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그 사람은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아무래도 좀전의 질문은 미키를 향한 게 아닌 모양이다.
「아차, 5교시가!」
「저기....」
아직 1시도 안됐으니까 그리 서두를 필요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너무 잤어」라며 맹렬한 기세로 달려나갔다.
「저기요.」
어디를 어떻게 달려간건지 그 사람은 미키 앞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출구는...... 저쪽이었지 참.」
자다 일어난 바람에 자신의 현재 위치를 몰랐나 보다.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너도 서둘러야지. 벌써 1시 30분이 넘었잖니.」 라는 말을 남기고 이번에야말로 온실에서 나가 버렸다.
「아뇨. 그러니까요. 12시 37분이라구요......」
미키의 중얼거림은 이제 닿질 않았다.
좀전까지 그녀가 자고 있던 선반대 위에는 한 권의 책이 남겨져 있었다.
「아, 혹시?」
미키는 손목시계를 끌러 거꾸로 뒤집어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 시계 멎었어?」
미키의 책상 앞을 지나가던 야스미 양이 미키의 손바닥을 슬쩍 엿보며 다가왔다.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인데도 일부러 12시 30분에 맞춘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되돌리고 있으니까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있지, 야스미 양이 동경하는 그 분말인데...」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미키는 야스미 양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동경하는 그 분?」
「왜 있잖아. 3학년에 그 머리가 길고 찰랑찰랑한.」
「아아, 사─코 님(さ─こさま) 말야?」
「사, 사─코 님이야?」
미키는 다시 확인했다. 그야 리리안 여학원에서는 선배를 부를 때 이름에 「님」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으니까. 야스미 양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냥 멋대로 내 맘 속으로만 그렇게 부르는 거라구. 어차피 나야 흔해 빠진 팬에 불과하니 호칭 정도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해두고 싶거든. 괜찮아. 직접 이름을 부를 날은 아마 오지도 않을테니까.」
확실히 야스미 양 말대로 마음 속에서라면 뭐라고 부르건 자기 마음이겠다.
「그래서? 사─코 님이 어쨌는데?」
「아, 아냐. 그냥 몇 반이실까 해서」
「3학년 소나무반. 그 '아, 아냐'는 뭐니? 신경쓰인다구.」
「미안. 아까 온실에서 만났거든.」
「만났어!?」
야스미 양이 눈을 부라렸다.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미키는 허둥대며 부정했다.
「만났다고 하면 어폐가 있으려나. 그냥 봤다... 는 정도야.」
「말을 거시던?」
「몇 신지 물어보셨어.」
「그래서?」
「대답도 하기 전에 서둘러 달려나가시더라. 아마 시간을 착각하셨나봐.」
문자판에 숫자가 적혀있지 않은 시계라면 12시 37분을 얼핏 1시 30분 넘어서로 볼 수도 있지 싶다. 어쩌면 사─코 님의 시계는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의 길이도 엇비슷한 게 아닐까.
「그래서 미키 양은 어떻게 했는데?」
「눈을 씻고 교실로 돌아왔지.」
그리고 도시락 까먹고, 5교시 수업듣고. 지금 야스미 양 눈앞에.
「왜 안 쫓아갔어?」
「왜 쫒아가야해? 쫓아가서 무슨 말 하라고?」
「예를 들면...... 그러니까, 으음, 무슨 말하면 좋으려나?」
남몰래 「사─코 님」하며 사모하고 있는 야스미 양도 모르는데, 느닷없이 팬이 된 미키인들 별 수 있을라구. 아니, 행동은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놔둬도 됐겠지만 미키는 그 도서관 책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책은 일본 고전문학을 엮어놓은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마쿠라노소시[*枕草子: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 세이쇼우 나곤이 쓴 궁정 생활의 회상, 견문, 자연 등에 관한 수필집]」였다.『마쿠라노소시』를 배게(枕,마쿠라)삼아 식물(草)에 둘러쌓여 잠을 청하다니, 너무 근사하게 들어맞아서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 연장선 상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의 사─코 님은 요정이라기 보다 현대에 부활한 세이쇼우 나곤[*淸少納言: 마쿠라노소시의 작가]에 비유하는 편이 딱일지도 모르겠다.
연보라빛 고급스런 하드 커버 표지는 베개로 삼기엔 딱 안성맞춤의 두께였다. '빨리 돌려드려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5교시 수업이 시작하고 말았다. 변명을 대자면 그 분이 몇 반인지를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3학년 소나무반이란 걸 안다. 미키는 교실 시계를 쳐다봤다. 7분 후면 6교시 수업시작. 서두르면 3학년 교실까지 갔다 오는데 5분이면 된다.
「그래서 있지 지금 곧장...」
「미안 미키 양. 그 얘긴 화장실 다녀온 후에 계속하자.」
「아, 야스미 양」
불러세우려 했지만 야스미 양은 후다닥 복도를 뛰어가 버렸다.
「이 기회에 3학년 소나무반에 같이 가보자고 말할랬는데. ......나 몰라. 혼자 갈 거야.」
하급생에게 있어서 상급생이란,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다. 여럿이서 교실 앞을 지나갈 때조차 적지 않게 긴장되는데, 하물며 혼자서 생초면인 3학년을 만나러 가다니. 1학년으로서는 엄청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키는 3학년 소나무반 교실 앞에 서 있었다. 사─코 님이 가지고 계셔야 할 책이 자기 수중에 있다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 졌기 때문이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두근두근거리면서 출입문 옆에 있던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응?」
하지만 이쪽의 긴장따위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듯 「이름은?」하며 사무적으로 대응한다.
「1학년 복숭아반 호리베 양?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로 나온 사람은 틀림없이 좀전에 온실에서 만난 상급생이었다. 교복 어깨춤이 낮잠의 흔적으로 약간 하얗게 얼룩져 있었다. 
「미안해. 분명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었지. 그러니까... 호리베 양?」
「호리(祝),베(部)예요. 호리베 미키(祝部みき).」
「호리,베? 축하할 때 그 축(祝)자를 쓰니? 복받을 것 같아 좋은 이름이네. 조상님 중에 신사를 관리하시던 신관이 계셔?」
「네. 까마득히 먼 옛날이지만요.」
성씨를 듣고 한자를 맞춘 게 처음이라면, 조상님 직업을 맞춘 것도 처음. 사─코 님은 부자에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박식하신 모양이다.
「그럼 미키는 제주[*神酒(미키)-제사때 쓰는 술]의 미키니?」
「그냥 한자없이 히라가나(みき)로만 써요. 그래도 제주에서 따왔다나 보던데요.」
「멋지구나.」
온실에서도 잠깐 그랬지만 가까이서 얘기해보니 상냥하고 사교적인데다 싹싹한 느낌이었다. 멀찍이서 보고 있을 때는 훨씬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호리베 양. 미안하지만 급한 일이 아니면 방과 후에 다시 한번 들러주겠니? 지금 잠깐 가볼 데가 있어서 말야.」
화장실일까. 급한 용무는 아니었지만 책을 건네주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저기, 이거요.」
미키는 『마쿠라노소시』를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
사─코 님의 눈이 광채를 띄었다.
「이제 알았다. 온실에서 만난 애구나.」
「네」
「수고스럽게도 직접 전해주러 와서 고마워. 도서관에 갖다줬더라면 도서위원이 날 혼찌검냈을걸. 뭔가 답례를 하고 싶은데 혹시 바라는 게 있니?」
「당치도 않아요.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생각나는 것도 없구요.」
「그럼 생각나거든 언제든지 말해주렴.」
언제든지라니. 다음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미키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코 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온실에 가려던 참이었어. 하지만 네 덕분에 갈 필요가 없어졌구나.」
상냥한 미소와 함께 6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어쩐지 야스미 양에게는 그 일을 알리기가 껄끄러웠다. 야스미 양이 먼저 동경하던 사─코 님과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고는 해도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죄악감을 느꼈기에, 아무 내색없이 보고한다는 게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미키는 매일 방과 후면 도서관 열람실을 찾았다. 책을 반납하러 온 사─코 님과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기대를 안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선 맞닿뜨리고 싶지 않았다. 미키는 단지 일본 고전시리즈 가운데에서 『마쿠라노소시』가 빠져나간 빈 공간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마쿠라노소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미키는 이를 발견하자마자 그 책을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어째서일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빌려가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위원에게 대출절차를 밟은 뒤 자기 손가방에 넣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마쿠라노소시』를 읽고 싶었을 리는 물론 없었다. 미키는 『마쿠라노소시』에 서점의 종이커버를 씌워서 들고 다녔다. 그 책이 도서관책이건 『마쿠라노소시』이건 간에,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다.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고 내일부터는 당분간 학생들이 해방되는 시간, 시험 휴일. 담당구역 청소하러 나가 있던 야스미 양이 후다닥 교실로 돌아와서는 흥분해서 말했다.
「로사 페티다(황장미님)한테서 사인 받았다!」
「뭐어!?」
교실에 남아 있던 반 아이들이 야스미 양에게 몰려들었다. 도서관에 가려고 복도를 나섰던 미키도 허둥대며 되돌아왔다. 야스미 양의 새로 산 사인용 수첩 첫 페이지에 로사 페티다(황장미님)의 풀네임과 날짜, 좌우명 비슷한 말이 당당히 적혀 있었다.
「용기를 쥐어짜서 교실로 찾아가서는 사인해 주세요 했더니, 글쎄 좀 놀란 모양이지만 선뜻 사인해 주시는 거야.」
야스미 양 말로는 졸업을 앞둔 선배에게 기념사인을 부탁한들, 인기인일 경우 경쟁률이 높을테고 등교안하는 날도 많을테니 사인 못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운좋게 사인받을 기회가 왔다고 해도 대량으로 쇄도해오기 때문에 날아가는 글씨로 후딱 이름만 써줄 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라면 라이벌도 없겠다, 재미삼아 이것저것 적어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오늘 결행했다고 한다. 거절당한다 해도 내일부터는 시험 휴일. 로사 페티다(황장미님)도 그 1학년생의 얼굴은 잊을테니까.
「그래서 멋지게 Get!」
야스미 양은 신이 나서 V사인을 지었다.
「좋겠다. 나도 부탁드려볼까?」
반 아이들의 선망에 찬 눈길 속에서, 미키는 야스미 양의 팔을 붙잡아 교실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야스미 양, 저기, 사─코 님은...」
사인 받을 거면 우선 첫페이지는 마땅히 사─코 님이어야 했다.
「사─코 님? 아아, 사─코 님은 다가가기가 힘들어서. 예전부터 로사 페티다(황장미님)도 멋지다고 생각은 했지만, 오늘 일로 로사 페티다(황장미님)에 대한 호감도가 단숨에 업!」
「그래도 되는 거야?」
「되고 말고. 어차피 우리들은 발에 채이는 팬들중 한 명에 불과해. 팬의 강점은 말야, 언제든지 다른 스타로 갈아탈 수 있다는 점이라구. 자매라면 그렇게 못하잖아.」
「그랬구나....」
「어라, 뭐니? 실망스런 표정을 다하고.」
「실망이라니...」
「걱정말라니까. 미키 양과 난 친구잖아. 질렸다고 뻥차는 짓 같은 건 안 해.」
「응」
「어디 가? 집에 갈거면 같이 가자.」
「미안. 도서관에 들를 거니까 먼저 가.」
미키는 손가방만 들고 교실에서 나왔다.
「미키 양도 참. 기다려줄게.」
야스미 양이 불러세웠지만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왠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아무튼 도서관에 가서 원래 목적인 대출연장절차를 밟았다. 시험 휴일이 끼어 있어서 『마쿠라노소시』 반납일은 종업식 날이 되었지만 그 날 돌려줄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다 못읽었다든가 그 날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였다.
곧바로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정처없이 교사 주변을 돌아다녔다. 야스미 양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뭘 그리 화내고 있는 걸까.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를 식히지 않으면 무심코 야스미 양에게 아주 심한 말을 퍼부을 것만 같았다. 시간도 때울 겸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으려니까 맞은 편에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머」
그 사람도 이쪽을 눈치채고 멈춰섰다.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집에 가는 중이었나 보다.
「......사─코 님. 앗!」
미키는 「아차」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샌가 야스미 양 전용 호칭이 옮았나 보다.
「괜찮아. 학교에서는 안그러지만 가족이랑 친척들은 사아코니 삿쨩이니 그렇게 부르고 있거든. 음 그러니까... 호리베... 맞아, 미키 양이었지.」
「사─코 님. 지금 제 이름이 기억 안나니까 제주 술병을 떠올리신 거죠?」
「예리한데.」
사─코 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마침 마리아상 앞이어서 그런지 사─코 님의 아름다운 얼굴은 마리아님의 미소와 겹쳐보였다.
「생각났어?」
답례말야, 하고 사─코 님이 말했다.
「'동생으로 삼아주세요'라고 하면 무리겠죠.」
농담삼아 건넨 말이었지만 사─코 님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응. 미안해. 난 이미 동생이 있거든.」
「그럼 사인해 주세요.」
「사인?」
「이 책에요.」
「책.....?」
종이커버로 싸여 있어서 사─코 님은 무슨 책인지 모를 것이다.
「좋아.」
도서관 책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기를...... 그렇게 염원하며 미키는 「여기에요」하고 표지를 열어 책의 면지[*표지 뒤의 백지]부분을 가리켰다.
「내 이름을 쓰면 되니?」
사─코 님이 책을 받아 들었다.
「네」
대답하면서도 미키는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사─코 님이 커버를 벗겼다간, 아니 한 페이지라도 들춰봤다간 거기에 도서관 책임을 표시하는 고무도장이 찍혀 있을 테니까. 지나가는 1학년이 읽고 있는 책에 흥미가 없다 치더라도, 자신이 사인을 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정도는 신경쓰일지도 모른다. 사─코 님은 타이틀을 보려고 하실까.
보지 말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한구석엔, 들켜도 상관없어 될대로 되라는 기분도 있었다. 하지만 사─코 님은 면지 이외의 페이지를 들춰보지도 않았고 커버도 벗기지 않았다. 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내 예쁜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사인하고는 오른쪽 귀퉁이에다 「호리베 미키 양에게」를 덧붙여 미키에게 책을 돌려줬다.
「고맙습니다.」
미키는 책을 부둥켜안고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천만에.」
「안녕히 가세요, 사─코 님.」
미키는 「평안하세요」가 아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다. 사─코 님도 「잘 가」라고 화답했고. 그리고 두 사람은 마리아상 앞에서 좌우로 각자의 갈 길을 향했다.

교실에 돌아오니 야스미 양이 미키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기다린다고 했지.」
미키가 돌아온 기색을 눈치채고 고개를 든 야스미 양이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
「응. 돌아갈까?」
미키는 책상고리에 걸어둔 가방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어느샌가 야스미 양한테 일던 짜증이 사라졌다.
「무슨 일 있었어? 눈이 빨개.」
야스미 양이 얼굴을 살짝 들여다본다.
「아까 벌레가 날아들었거든. 그치만 떼냈으니까 괜찮아.」
「미키 양. 요전번에도 벌레가 눈에 들어갔었지 참. 벌레한테 사랑받는 타입인가 봐.」
「뭐어, 말이 심해.」
미키는 야스미 양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었다. 왠지 웃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미키의 마음은 일단 정리가 되었지만, 그대로 그 일을 끝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 미키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중대함에 몸서리를 쳤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학교 소유물인 도서관의 책을 훼손한 셈이었으니까. 아무리 예쁜 글씨라고 해도 미키와 사─코 님 이외의 사람에게는 단순한 낙서에 불과하다. 그래, 잉크를 엎질러 생긴 얼룩이랑 마찬가지다.
일 주일동안 고민하다 결국 서점에 가서 그 시리즈의 『마쿠라노소시』를 구입해 변상했다.
「좀 더럽혔다고 해서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돼. 얼마나 더럽혔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을 가져왔으면 보수할 것인지 새로 사서 교체할 것인지 이쪽에서 판단할 건데.」
도서위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들고 올 수 없으니까 미키는 대신 다른 책을 사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쿠라노소시』는 무사히 시리즈로서 부활하게 되었지만 새로 들어온 책은 개정판이라 표지색이 약간 달랐다.
연한 보라빛이 아닌 핑크색. 미키는 이 책장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콕 쑤셔왔다. 하지만 그 때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끔씩 확인하러 오곤 했다. 단 한 권만 색이 다른 책. 분명 이 아픔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설령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　　◇　　◆

「어라?」
일본문학 책장 앞에서 시마코 양이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장르의 책을 음미하고 있던 유미가 흥미가 동했는지 책을 든 채로 시마코 양에게 다가갔다. 애시당초 읽고 싶어 죽겠다는 책을 찾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학원제 연극에 쓸 소도구에 참고가 될만한 책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네'라는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친구들을 따라 도서관 열람실을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 몰랐어. 여기 좀 봐. 이 책만 색이 미묘하게 다르지 않니?」
「아아, 진짜다.」
요즘 시마코 양에겐 일본 고전문학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 계기는 바로 사치코 님이 유미에게, 그 후 노리코 쨩에게 넘어가서 시마코 양에게 당도한 한 권의 책으로, 현재 그 책은──.
「빌려 왔어」
오늘부터 요시노 양이 주인이 되었다.
「빌려왔다고 보고하는데 왜 그리 떨떠름한 표정이야?」
일단 물어는 봤지만 대강 짐작이 갔다. '교과서 말고 고전문학을 대하다니 내키지 않아' 라고 요시노양 얼굴에 써있었으니까. 이게 근세문학에 사무라이가 챙강챙강하는 책이었다면 신나게 읽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고전문학, 예복 차림의 공주님이 칼을 휘두를 기회는 없다.
「억지로 빌릴 것까진 없을텐데.」
좀전까지 주인이었던 시마코 양도 요시노 양에게 한 마디.
「그치만. 사치코 님이랑 유미 양 뿐만 아니라 노리코 쨩까지 빌려봤잖아? 화제에 뒤처지고 싶지 않는걸. 게다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토오코 쨩이나 카나코 쨩이 손을 뻗으면 어쩌라구.」
「......그러셨어요.」
요시노 양답긴 해. 지기 싫어하는데다 조금이라도 왕따 분위기를 느끼면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그래서, 뭐가 『진짜다』야?」
요시노 양은 시마코 양의 손에 들린 책을 슬쩍 보았다.
「색이 달라. 이 책 한 권만.」
「어라, 진짜다.」
「『마쿠라노소시』네. 이 책 한 권만 무슨 이유에선가 새로 구입한 건지도 몰라.」
파손, 훼손, 분실. 책에는 다양한 재난이 닥쳐온다. 하물며 학교 도서관 책이라면 많은 학생들의 손을 거쳐간 역사가 있다.
「『마쿠라노소시』... 어라?」
「왜, 유미 양?」
「뭐였더라. 뭔가 생각날 듯한데.」
「뭐가 생각나는데?」
시마코 양이 물었다.
「아, 맞다. 우리집에도 그 책 있어.」
「이 책?」
요시노양이 막 빌려온 따끈따끈한 책을 들었다.
「아니. 『마쿠라노소시』말야. 확실히 서랍장을 뒤졌을 때 본 기억이 나.」
「서랍장? 책장이 아니라?」
「응. 그 정도로 엄마는 고전문학이 질색이었나 보다고 생각해서, 그 때는 보고도 못본 척 했지만.」
「질색이라면 보관해두질 않잖니? 게다가 어떻게 어머님 책이란 걸 알았어?」
명탐정 요시노가 즉시 추리에 들어갔다.
「어라, 어떻게 알았지? 아아, 그렇지 참.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호리베 미키 양에게 라고. 아, 호리베는 우리 엄마 옛날 성이야.」
「유미 양 어머님은 미키라고 하시는구나. 그럼 혹시 아버님 성함은 유이치(祐一)? 아니면 유타로(祐太郞)?」
「......」
아깝다. 유이치로(祐一郞)였어.
「호리베 미키 양에게 라면 선물이 아닐까?」
「아, 그렇겠다. 틀림없이 그럴 거야. 점점 기억나기 시작했어. 이름이 하나 더 적혀 있었거든. 그러니까... 뭐였더라? 키쿠(菊) 무슨무슨 사야코(淸子)? 아, 보통은 키요코(淸子)로 읽지 참?」
오가사와라 사야코(小笠原淸子) 님을 알게 된 이후로 「淸」자를 보면 그만 「사야」로 읽고 마는 유미였다.
「유미 양 어머님 우리 학교 졸업생이시지? 의외로 집에 있던 책이 원래 도서관책이었다거나 그런 거 아냐?」
「설마」
그 자리에서는 웃어보였지만 '혹시 어쩌면' 하고 유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 때,
「세이쇼우 나곤(淸少納言)의 『淸』이라니 근사하다.」
시마코 양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한테서 『마쿠라노소시』를 선물 받았으니까,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