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3권 [번외] 황장미☆그림일기

■ 황장미☆그림일기

 

 

7월 ○일 (토)  맑음

 

새벽에 기상.
오두막에서 나와 후지산 정상을 향했다. 선잠을 취했을 때, 옆에 있던 아줌마의 코골기와 몸부림때문에 조금은 수면부족. 그에 반해 요시노는 충분한 수면을 취한 듯, 눈뜨자마자 팔팔. 어둠 속에서 발걸음도 가볍다.

─ (중략) ─

일출을 본 뒤 하산. 가이드 말로는 정상에 우체통이 있다나.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산백합회 동료들과 졸업하신 언니에게 엽서를 써붙였을텐데. 아쉽다.

산은 올라가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 말대로였다. 그렇게 쌩쌩하던 요시노도 말수가 줄고 눈에 띄게 페이스가 다운되고 있었다. 결국 돈을 내고 말에 태우기로 했다. 자기 발로 후지산을 정복한다던 처음의 의욕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발이 편해지자 그 즉시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하는 상태. 정말이지 속편한 녀석이다.

그런데도 말에 탄 일은 비밀이라며 단단히 입막음 당했다. 프라이드 문제인가, 지불한 금액이 문제인가. 알 수 없다.

─ (중략) ─

하산하자마자 기슭에 있는 온천에 몸을 담갔다. 요시노는 도중에 말에 탔으니 별 문제없었겠지만, 내 까진 발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고통의 양도 요시노와 비교할 게 못된다. 역시 말에 탄 요시노는 치사하다.

─ (중략) ─

사치코의 별장에서 산백합회 동료들에게 요시노가 말에 탔던 얘기를 했더니 폭력으로 보복당했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화내다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았으면, 말같은 거 타지 말았어야지.

 

        *

 

" ─ 이렇게 해서, 이 일기를 읽어보건데, 레이짱은 말에 타고 싶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요시노가 말했다.
"끈질기네 끈질겨 끈질기다구. 내가 말에 탄 걸 비난하고 있지만. 결국 부러웠단 말이잖아?"
"부러웠다고?"
흘려들을 수 없는 말에 레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아무도 레이짱이 말에 타는 걸 말린 적 없어. 그러니까 걸어서 하산한 건 레이짱이 자기 의지로 선택한 일이야. 그런데 사실은 타고 싶었다. 그런데도 타고 싶다는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나참, 배배 꼬였다니까"
"배배 꼬여?"
남의 일기를 맘대로 읽고 안읽고 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 같으면 틀림없이 말다툼할만한 일이지만 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째선지 전혀 논란이 되고 있지 않다. 요시노와 레이 정도의 사이면 내 것 네 것 따위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된다. 책상 서랍도 옷장도 맘대로 열어봐도 상관없으니 일기정도야 "보여줘도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나 분했지만 분한 마음을 부딪힐 곳이 없으니까, 일기에 써서 발산하려 했을테지. 틀려?"
"아 그게... "
위험하다 위험해. 요시노의 자신에 가득찬 말투로 듣고 보니, 점점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미묘하게, 아니,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안드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만약 요시노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말에 타고 싶었다고 치자고. 왜 둘이서 근처 공원같은 델 와야 하지?"
"당연하잖아. 진짜 말에 태워주고 싶지만 목장같은 데는 멀어서 못가고. 처음에는 회전목마로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사치코님도 말했듯이 여름 유원지는 상당히 혼잡스러울거라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해서 왜 내가 이런 걸 타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레이는 통나무로 만든 말기구에 걸터 앉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8월 △일 (일) 구름

 

오전중에 자전거로 K역에 코스모스문고 신간을 사러 갔다. 산백합회와 부활동으로 매일 학교에 나가는 바람에, 근처 서점에서는 이미 다 팔려 구할 수 없었다.

학교 앞에서 타누마 치사토짱과 우연히 마주쳤다. 뭐라 그랬지, 반친구네 집에서 같이 숙제한다던가. 5분정도 서서 이야기하고는 헤어졌다. 그 애는 검도부 활동도 열심이라 언제나 감탄하곤 한다.

K역 역건물에 있는 서점에서 미리 봐둔 책을 구입, 이어서 단골찻집에 엄마가 주문해둔 커피콩을 가지러 갔다. 모처럼 K역까지 온거다. 온 김에 요시노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나중에 같이 먹으려고, 갈 때와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공원앞을 지날 때 오랜만에 토리이 에리코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전의 그 하나데라 학원 수염투성이 교사(이름은 까먹었다)가 옆에 있어서 관뒀다. 왠지 재미없다.

이건 질투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몰았던 탓에 제과점에 들르는 걸 그만 깜박했다.

 

        *

 

"요시노. 왜 화내는거야?"
"몰라"
요시노는 아까부터 계속 등돌리고 있었다. 레이짱이 열심히 비위를 맞춰주고 있지만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체 이 날 일기의 어디가 요시노 마음에 안든다는거야?"
오, 일기가 원인이라는 걸 일단은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대목에서 실수했는지까지는 밝혀내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보시지"
화가 아직 안풀렸으니 좀더 두고볼 생각이다. 레이짱, 머리를 더 굴려보는게 어때.
"생각해봐도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생각해봐도 모르는구나. 흐응, 레이짱은 나에 대해서 그정도밖에 이해못하는구나"
"요시노~오"
어머나 세상에, 결국 울상을 짓는다.
요시노를 그토록 좋아하면서, 기분 하나 제대로 못헤아리는 불쌍한 레이짱. 조금 더 심술부린 다음에 가르쳐 줄게. 그 날 일기,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마음에 안들었다고.

 

 

8월 X일 (토) 맑음

 

오늘은 여름방학 마지막 토요일.
산백합회 일도 부활동도 없는 오랜만에 휴일다운 휴일이다. 문득 생각난 김에 요시노와 당일치기로 바다에 가기로 했다.

전차와 버스를 갈아탔다. 조금은 소풍가는 기분이다. 슬슬 자동차면허를 따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부활동과 산백합회 활동이 바빠서 지금은 강습받을 시간을 쪼개는 건 어림도 없었다. 역시 올 한해는 무리라 보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해안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점심을 지나고 있었다. 얼른 해변에 시트를 깔고 도시락을 
먹었다. 내가 만든 김주먹밥을 잔뜩 입안에 넣으면서 요시노가 "그냥 맨밥에 소금이라도 상관없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김이 없어도 바다내음이 대신해주니까라는 의미같았다. ─ 요렇게 깜찍한 말을 하다니!

수영복을 안가져와서 청바지와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맨발로 바다에 들어갔다. 파도치는 물가에서 요시노는 아이처럼 신나 했다. 즐거워 보이는 요시노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행복해진다. 어쩐지 꿈만 같다. 작년까지는 요시노의 심장이 걱정되어서, 어딜 외출해서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요시노가 가고 싶은 곳. 세밀한 계획없이도 이런 식으로 생각만 있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우선은 오늘이 그 첫 스타트인 셈인가. 요시노도 분명 여름방학 마지막 멋진 추억으로 여기고 있겠지.

 

        *

 

"저기 있지, 레이짱. 일기라면 집에 가서 쓰는게 어때?"
"엣?"
요시노가 말을 걸어오자 레이는 펜을 멈췄다. 어쩐지 글쓰는 일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위의 풍경은 이미 저녁 무렵이다.
"쇼크인건 잘 알겠지만 말야. 하지만 일기에 남듣기 좋은 얘기만 쓰는 건 허무하지 않아?"
"남듣기 좋은 얘기?"
"그래"
요시노는 레이의 손에서 노트를 뺏어들고 방금까지 쓰고 있던 페이지를 열어 "우선 여기말야" 하고 말했다.
"확실히 맨밥에 소금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해변가 냄새때문에 죽겠어. 우욱, 이란 의미로 말한거야. 레이짱도 내 목소리톤으로 눈치챘을텐데. 그 말이 불평이었다는 것 정도는"
".... 응, 그야"
"게다가 말야. 레이짱의 글에는 해안의 모습이 아예 없다고 해도 될만큼 묘사가 안되어 있어. 이래서야 아무도 없는 바다에 온 두 사람이 물놀이 하고 있는 것 같잖아"
"─ 그럼 안돼?"
"아, 역시 고의로 안적은거구나"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 그랬는걸"
"레이짱말야, 혹시 세상물정 너무 모르는거 아냐? 여름방학 마지막 주말, 도쿄에서 하루거리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해안이라구. 사람들로 북적댈 게 뻔할 거란 생각을 어째서 못하는거야?"
"... 그렇구나. 바다에 가자고 했을 때 요시노가 꺼려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난 레이짱이 그래도 상관없이 가고 싶은 줄로만 알았지"
다행히(아니 불행인가?) 날씨도 좋아서 바다도 백사장도 인산인해다.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같은 상황.
아무도 없는 해안이라니. 한겨울이 아니고서야 분명 있을 수 없는 얘기겠지. 하지만 한겨울의 물놀이는 꽤나 고달플 것 같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해안에는 인원이 제법 줄었다. 사람들이 떠나간 백사장에는 그때까지 거기에 있던 사람이 놓고간 여러가지 물건들이 허무하게 뒹굴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해야지"
요시노가 말하면서 슈퍼마켓 비닐봉투를 레이에게 던져줬다.
"여기서 멍하니 있어봤자 별 수 없잖아. 레이짱이 현실도피하고 있는 동안에 수건이랑 갈아입을 옷하고 속옷을 사왔으니까. 자, 저 휴게소 뒤로 가서 갈아입어. 가리고 있어 줄테니까"
"응"
레이는 힘없이 대답하고는 그 말에 따랐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는거야, 레이짱. 곧있으면 버스랑 전차도 끊기니까"
".... 응"
푹 젖은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벗어 비닐봉투에 넣었다. 다치지 않은 게 불행중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가격표가 달려 있는 옷을 입으면서 레이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내일은 요시노 희망대로 만화까페에 갈게"
비교적 사람이 적은 바위쪽까지 가서 까불다가 발을 헛디뎌 바다에 떨어졌다. 그것이 일기에 적혀 있지 않은 레이의 "현실"이었다.

 

 

                                                              < 13권  한여름의 1페이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