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임종기 번역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 허버트 조지 웰스(H.G.Wells)

 

 

겨울 밤, 한 부부가 운영하는 여관에 코트와 모자, 붕대로 온 몸을 가린 기이한 손님이 찾아온다.
부부는 처음에는 돈을 후하게 지불하며 비밀이 있어 보이는 손님을 상전 대하듯이 하지만, 슬슬 손님의 돈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을에 갑자기 강도 사건이 발생하자 손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투명인간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대학 동창인 켐프 박사의 집에 들이닥친다.

 

 

"나는 투명인간이다. 속임수도 마술도 아냐. 정말 나는 투명인간이야. 그런데 네 도움이 필요해. 너를 해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미친 촌닭처럼 행동한다면 어쩔 수 없어. 켐프, 나를 기억 못 하겠는가? 대학을 함께 다녔던 그리핀 말이야."
"일어나야겠어." 켐프가 말했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테니 잠시만이라도 앉게 해 줘."
"나는 너와 대학을 함께 다녔던 그리핀이야.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어. 하지만 나는 보통 인간과 다름없어. 그저 네가 알던 한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된 거라고."
"그리핀?" 켐프가 말했다.
"그래, 그리핀이야. 저학년이었고, 색소 결핍증 환자와 다름없었던, 키 180센티미터에 어깨가 넓던 그 그리핀 말이다. 얼굴이 분홍빛에 하얗고 눈동자가 새빨갛던 그 그리핀 말이다. 화학상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지."

 

 

켐프 박사는 투명인간 그리핀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며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여정을 모두 듣게 된다.

 

 

"비밀을 감추며 분노로 3년을 보낸 후에 나는 이 연구를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
"어째서?" 켐프가 물었다.
"돈 때문이었어." 투명인간이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노인네 돈을 훔쳤어. 아버지 돈 말이야. 그런데 그 돈은 아버지 소유가 아니었어. 결국 아버지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어."

(중략)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조금도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았어. 아마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감상주의의 희생자가 되었을 거야. 이러쿵저러쿵 떠도는 말 때문에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알 바가 아니었어."

 

 

그리핀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아버지의 돈을 훔쳐내 그 결과 아버지가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점에서부터 확실히 드러난다. 그의 비인간적인 행적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단 말이야?"
"그랬지. 하지만 그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어.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었지. 발톱과 색소 기관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뭔지 알겠나? 고양이의 눈동자 안쪽에 있는 거 말이야."
"타페텀(눈의 망막 뒤쪽에 있는 반사층으로, 이 기관은 동공으로 들어온 후 망막을 통과한 빛을 망막으로 다시 반사시킴으로써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게 해 주며, 이 반사 과정 때문에 고양이의 눈은 밤에 광채를 띤다)."
"그래, 타페텀이지. 바로 그 기관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난 녀석의 혈액을 표백하려고 녀석에게 약품을 주사하고, 특정한 처치를 한 후에 마취약을 주사해 잠들게 했어. 그러곤 베개 위에서 자던 녀석을 실험 장치 위에 베개와 함꼐 그대로 놓았어. 그랬더니 결국엔 나머지 모두는 희미해지다가 자취를 감추었지만, 두 작은 눈동자 유령만은 그대로 남아 있더군."

(중략)

"바로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아래층에 사는 노파였는데 내가 고양이를 생체 해부라도 하지 않을까 의심했던 거야. 세상에서 흰 고양이 한 마리 밖에는 위안 삼을 것이 없는 술독에 빠진 늙은이였지. 나는 클로로포름을 홱 끄집어내어 고양이를 마취시키고 나서 문 앞에서 노파에게 대답했어. '고양이 소리가 난 것 같은데? 혹시 내 고양이인가?' 그녀가 그렇게 묻더군. '여기엔 없어요.' 나는 매우 점잖게 대답했지."
"고양이 녀석이 사라지는 데 얼마나 걸렸나?" 켐프가 물었다.
"서너 시간. 그 고양이 녀석, 뼈와 근육과 지방질이 맨 마지막에 사라지더군. 빛깔이 있는 털끝도 그렇고. 그리고 이미 말했듯 눈동자 안쪽에 있는 기관, 강렬한 무지개 빛깔처럼 여러 색으로 변하는 부위만큼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어."

 

 

이처럼 엄연히 주인이 있는 고양이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해 놓고 도덕적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네가 그 집에 불을 질렀다고?" 켐프가 외쳤다.
"그래, 그 집에 불을 질렀어. 내 행적을 감추려면 그 길밖에 없었어. 그것이 확실한 방법이었지. 그러고 나서 나는 조용히 현관문 빗장을 풀고 거리로 나왔어. 나는 보이지 않았고, 그 순간 내 몸의 투명성이 내게 준 비상한 이점을 깨달았어. 내 머릿속은 이미 이제부터 법망을 피해 무난히 실행할 수 있는 수많은 광적인 계획과 놀라운 일들로 가득 차 있었어."

 

 

오로지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는 자신이 하숙하던 주인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하며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고 뒤돌아보니, 소다수 병들이 담긴 바구니를 나르던 한 남자가 놀란 눈초리로 자신의 짐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그 자의 바구니와 부딪힌 나는 몹시 아팠지만, 깜짝 놀라는 남자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큰 소리로 웃고 말았지. '바구니 속의 악령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별안간 그 남자의 손에서 바구니를 비틀어 떼어냈어. 그는 손을 놓고 멍하니 보고만 있더군. 나는 아예 그 바구니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흔들어 댔어."

 

 

그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며,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면서 무고한 시민에게 유치한 장난을 하는 등 정신적인 미성숙함을 보였다.

그러나 점점 자신의 몸의 기능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오직 몸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연구에만 온 관심을 쏟느라 다른 외적인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너도 이제 내 처지가 얼마나 불리한가를 좀 알겠지." 투명인간이 말했다.
"내겐 몸을 피할 은신처도 몸을 가릴 옷도 없었어. 옷을 입으면 나만이 가진 장점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이상하고 소름끼치는 괴물이 되어 버리지. 그리고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어. 내 몸과 동화되지 않는 물질을 배 속에 채우는 짓이 다시 나를 괴상하게 보이게 만들거든."
"난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어." 켐프가 말했다.
"사실 나도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 그리고 눈은 내게 또 다른 위험을 경고해 주었어. 나는 밖에 눈이 내릴 땐 나갈 수 없었어. 눈이 몸에 쌓이면 내 정체가 드러날 테니까. 또한 비는 물로 나의 윤곽을 만들어 낼 거야. 비에 젖으면, 몸의 표면이 반짝여 윤곽이 보일 거야. 거품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안개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야. 빗줄기보다는 희미하겠지만 안개 속에서도 거품처럼 보일 거야. 몸의 표면이 희미하게 반짝이며 인체의 윤곽이 보이게 될 거야. 그 밖에도 런던 시내를 나돌아다니다간 발목에 먼지가 잡히거나, 공기 중에 떠도는 검정 얼룩과 먼지가 피부에 달라붙기도 하지. 그 때문에 언제 남의 눈에 띄게 될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임은 분명했지."

 

 

그는 가발과 마스크, 옷 등을 훔쳐내서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의상실에 숨어들어가서는 의상실 주인을 폭행하기에 이르는데, 이 이야기를 켐프 박사에게 털어놓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한 태도를 일관한다.

 

 

"머리를 후려쳤다고!" 켐프가 소리쳤다.
"그래. 그 자를 기절시켰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그를 계단참에 있던 의자로 뒤에서 후려졌지. 낡은 장화 자루처럼 아래층으로 굴러 떨어지더군."
"하지만 이봐! 어찌 같은 인간으로서…."
"그런 인간성 따위, 보통 사람들에게야 아주 좋은 말이지. 하지만 켐프, 내게 당장 중요한 것은 변장을 하고 그 자의 눈을 피해 그 집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었어. 그 외에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었어. 그래서 나는 루이 14세 시대풍 때 조끼로 그 자의 입을 틀어막고 아딧줄(바람의 방향을 맞추기 위하여 돛을 매어 쓰는 줄)로 그 자를 묶어 놓았지."
"아딧줄로 그를 묶었다는 거야!"
"자루처럼 묶어 놨어. 그 멍청이에게 겁 먹이고 입 다물게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어. 녀석이 빠져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 도저히 묶인 줄에서 머리를 빼낼 수 없었거든. 이봐, 내 친구 켐프. 내가 마치 살인자라도 되는 양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 마. 나로선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녀석은 권총을 가지고 있었어. 녀석이 변장을 한 내 차림새를 보기라도 했다면, 녀석은 날 신고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렇지 이 시대의 영국에서 그런 일을 하다니…. 게다가 그 사람은 자기 집에 있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너는 강도질을 한 셈이라고." 켐프가 말했다.
"강도질이라니! 망할 자식! 다음엔 나를 도둑놈이라 부르겠군! 켐프, 넌 정말 어리석게도 낡은 끈에 이끌려 춤을 추는 꼭두각시인 건가. 내 처지를 이해할 순 없는 거야?"
"그 사람 처지는 어떻고." 켐프가 말했다.
투명인간은 벌떡 일어섰다. "뭣이 어째?"
켐프의 얼굴이 다소 굳어졌다. 그는 말을 꺼내려다가 머뭇거렸다.
"아마 결국엔"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말을 꺼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지. 너는 곤경에 처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물론 난 곤경에 빠졌지. 정말 엄청난 곤경에 빠져 있었어. 게다가 그 녀석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어. 나를 잡으려고 집을 뒤지는가 하면, 권총을 들고 바보처럼 설쳐대며 문을 잠갔다 열었다 하는 거야. 녀석이 정말 화나게 했다고. 이래도 나를 욕할 셈이야? 나를 비난할 셈이냐고?"
"나는 누구도 비난할 생각은 없어." 켐프가 말했다. "누굴 비난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지. 다음엔 뭘 했나?"

 

 

켐프 박사는 그의 악행에 경악하면서도 그를 살살 달래며 그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투명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켐프, 정말 너는 분노가 어떤 것인지 모를 거야! 몇 년 동안을 연구하고 계획하고 구상한 끝에 얻어 낸 네 성과를 우둔하고 어설픈 백치 놈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해 봐! 하필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놈이 나타나 내 앞길을 가로막았던 거야. 그것에 그치지 않고 또 다시 나를 방해하는 놈들이 있다면, 난 미치고 말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방해하는 놈들을 가만 두지 않겠어. 사실, 놈들은 내 일을 천 배나 어렵게 만들어 버렸어."
"정말 화가 나겠군." 켐프가 건조하게 말했다.

(중략)

"켐프,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 일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려 했던 건 아주 큰 실수였어. 그 바람에 나는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과 기회를 잃고 말았어. 한 인간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정말 보잘것 없어! 도둑질 좀 하고 몇 사람 다치게 하는 게 전부야. 켐프,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일종의 골키퍼, 조력자와 숨을 만한 곳이야. 안심하고 남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며 자고, 먹고,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해. 나는 함께 할 동료가 절실해. 그런 동료와 음식과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천 가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나는 막연한 계획에 따라 연구를 해 왔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의 장단점을 검토해 봐야 해. 투명해도 남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엿듣는다든가 하는 점에서는 별 이로움이 없어. 주거 침입 따위에도 별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된다고 해 봐야 조금 될 뿐이지. 네가 나를 잡기라도 한다면, 어렵지 않게 감옥에 처넣을 수 있을 거야. 반면에 나는 쉽게 잡히지 않아. 사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어. 도망치고 접근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지. 그 점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데 특히 유리하지. 적수가 무기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어. 위치를 선정해 마음대로 가격할 수 있거든. 물론 마음대로 피할 수도 있지. 원하면 도망칠 수도 있고 말이야."

(중략)

"켐프, 우리는 불가피하게 살인을 할 수밖에 없어."
"살인을 할 수밖에 없다고?" 켐프가 말을 반복했다.
"네 계획은 잘 들었어, 그리핀. 하지만 나는 찬성할 수 없어. 그럴 수 없다고. 왜 사람을 죽여야 하지?"
"그렇다고 해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려는 건 아냐. 정당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지. 요점을 말하면, 우리처럼 세상 사람들도 이제는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캠프, 이제부터 투명인간은 공포 정치를 펼쳐야 할 거야. 그래, 말할 것도 없이 무시무시한 일이지. 그렇지만 나는 공포 정치를 실행해야겠어. 공포 정치. 투명인간이 네가 사는 버독 같은 도시를 거머쥐고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어 지배하는 거야. 투명인간은 칙령을 공표해야만 할 거야. 그는 몇천 가지 방법으로 칙령을 공표할 수 있어. 문 밑에 칙령이 기록된 종이 조각 하나를 밀어넣는 것만으로 충분할 거야. 칙령에 불복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겠지. 또한 그런 자들을 보호하는 자들도 죽여야 하고."
"그리핀, 내 생각엔 말이야." 켐프는 자신의 주의력이 분산된 것을 감추려고 입을 열었다.
"네 동료가 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일 듯해."
"아무도 네가 내 동료인지 모를 거야." 투명인간이 열띤 소리로 말하다가 별안간 "쉿!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지?" 하고 물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켐프가 말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핀, 나로서는 네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 나를 이해해 줘. 난 정말 찬성할 수 없어. 왜 동족을 상대로 싸우려 하는 거야? 그런 짓을 하면서 어떻게 행복하기를 바랄 수 있어? 고독한 늑대가 되지 말라고. 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게 어때. 세상에 네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적어도 우리 국민에게만큼은 네 비밀을 털어놔. 네가 몇백 만 협력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라고…."

 

 

이윽고 켐프 박사가 몰래 불러낸 경관들에 의해 투명인간은 거의 잡힐 뻔했지만, 가까스로 탈출하게 된다.

 

 

"배신자!" 목소리가 외쳤다. 갑자기 투명인간이 실내 가운을 풀어헤치더니, 앉아서 옷을 벗었다. 켐프는 재빨리 문 앞으로 세 걸음 다가섰다. 그 순간 투명인간의 두 다리가 사라졌다. 켐프는 민첩한 동작으로 투명인간을 뒤로 밀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 문을 세차게 닫았다.

(중략)

"이럴 수가!" 켐프가 소리쳤다.
"모두 수포로 돌아갔어! 놈이 사라져 버렸어!"

(중간)

"그 자는 미쳤어요." 켐프가 말했다.
"인간이 아닙니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어요.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생각할 뿐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 내내 그 자에게서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인 얘기만 들었어요! 그 자는 사람들을 해쳤어요. 우리가 막지 않으면, 그 자는 살인 행각을 벌일 겁니다. 그 자는 가공할 공포를 불러 올 겁니다.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어요. 지금 그 자가 달아나요. 분노의 화신이 되어!"
"꼭 그 자를 잡아야 해요." 애다이가 말했다. "반드시 잡아야죠."
"하지만 어떻게 잡죠?" 켐프가 소리쳤다. 바로 그 때 별안간 그의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서둘러야 해요. 서장님, 가능한 한 모든 인원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 자가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지역을 벗어나는 날에는, 그 자는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해치면서 지방 곳곳을 활보할지도 모릅니다. 그 자는 공포 정치라는 걸 꿈꿔요! 공포 정치 말입니다. 서장님, 열차와 도로와 선박에 보초를 세워야 해요. 군 수비대도 협조해야 해요. 서장님, 전보로 협조를 구하세요. 그 자가 이곳에 있으려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귀중한 기록 노트들을 다시 찾으려는 생각 때문에요! 그 얘기를 들려 드리지요."

 

 

켐프 박사는 투명인간이 자신을 동료로 삼을 요량으로 털어놓은 모든 정보들을 동원해 그를 잡기 위한 계책을 낸다. 그리고 투명인간은 자신이 제공한 정보로 인해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또 다시 분노한다.

 

 

"자네들 중 한 사람이 내려가서 마차를 불러 오게. 서둘러야 해. 자, 켐프 박사님. 그 밖에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요?"
"개들을, 개들을 구하세요. 그 자를 볼 순 없겠지만, 냄새를 맡을 순 있어요. 그러니 개를 구하세요." 켐프가 말했다.
"좋아요." 애다이가 말했다. "별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할스테드에서 근무하는 간수들이면 블러드하운드(영국 원산지인 경찰견)를 기르는 사람을 알 겁니다. 개는 그렇고, 그 밖에 다른 할 일은요?"
"명심할 일이 있어요." 켐프가 말했다. "그 자가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이 눈에 보입니다. 식사 후에 소화가 될 때까지는 음식이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그 자는 음식을 먹은 후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예요. 그 자가 숨어 있을 만한 덤불이나 한적하고 구석진 곳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수색해야 해요. 그리고 무기, 무기가 될 만한 연장은 전부 치워버려야 해요. 그 자가 그런 무기를 오랫동안 지니고 다닐 순 없을 겁니다. 그 자가 잡아채 공격하는 데 쓸 만한 물건은 전부 숨겨 놓으세요."
"좋아요." 애다이가 말했다. "조만간 그 자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길에." 켐프는 말을 꺼낸 후에 잠시 머뭇거렸다.
"네?" 애다이가 말했다.
"유리 조각을." 켐프가 말했다. "잔인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 자가 할 짓을 생각하면!"
애다이는 잇새로 공기를 세차게 들이마셨다.
"그건 너무 지나친 처사 같은데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유리 조각을 준비하도록 하죠. 그 자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자는 이미 인간이 아니에요." 켐프가 말했다.
"저는 도주하면서 느끼는 불안감만 사라지면, 그 자는 공포 정치 따위를 실행에 옮길 거라고 확신해요.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우리의 유일한 기회는 선수를 치는 데 있어요. 그 자는 사람들에게서 고립을 자초했어요. 그 자의 머릿속에는 살육의 피가 들끓어요."

(중략)

밤이 되자, 들판 여기저기에는 서너 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의 어두운 형체가 요란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이 인간 사냥꾼들은 범인을 발견했을 겨웅에 서로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특별한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투명인간은 그들을 모두 피했다. 이제 투명인간이 분노하는 이유를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그런 처지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제공한 정보 때문이었다. 그 정보가 그와 대결하는 데 무자비하게 이용되었다. 그는 적어도 그 날 하루 동안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윅스티드를 때려눕히던 때를 제외하고는 24시간 동안 쫓기는 사냥감 신세였다. 밤에는 음식을 먹고 잠을 청했음이 틀림 없다. 이튿날 아침에 그는 세상을 상대로 최후의 위대한 투쟁을 각오했는지, 다시 원기와 활력이 넘치고 분노와 악의에 달아오른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켐프는 분노한 투명인간으로부터 협박 편지이자 곧 자신에 대한 살인 예고 편지를 받았으나,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대항했고 사람들은 힘을 모아 투명인간을 붙잡는다.

 

 

켐프는 기름때 묻은 종이 한 장에 연필로 씌어진 이상한 편지를 읽었다.
"네놈은 놀랍도록 정력적이고 교활하구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에 대한 대가를 각오하는지는 모르지만, 네 놈은 나를 배반했어. 네놈은 온종이 내 뒤만 쫓았어. 네 놈은 나의 밤 휴식을 빼앗으려 했어. 하지만 네 놈이 그렇게 분투했는데도 난 음식을 구해 먹었고 잠을 잘 수 있었어. 게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이제 공포 정치를 시작할 수밖에 없어. 이 편지를 공포 정치의 첫날에 대한 예고로 알기를. 포트 버독은 이미 여왕 치하가 아니야. 이 뜻을 경찰서장과 그 일당에게 전해라. 이제 포트 버독은 내 지배 하에 있어. 공포 정치! 오늘은 투명인간의 새로운 시대, 신기원, 첫 회의 첫날이야. 나는 투명인간 1세다. 통치는 우선 쉬운 것부터 처리할 것이다. 첫날은 본보기로 한 명만 처형할 거야. 그 놈은 켐프라는 녀석이 될 거다. 사신(死神)이 오늘 그 놈에게로 갈 거다. 그 놈은 문을 잠그고 몸을 숨기고 신변에 보초를 세우고 원한다면 갑옷을 입겠지. 사신, 보이지 않는 사신이 다가오고 있어. 놈은 경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것이 내 백성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겠지. 정오가 될 때쯤 우체통에서 사신이 출발할 거야. 편지는 집배원의 손을 거쳐 그 놈에게 전해질 거야. 그것으로 끝이야! 게임을 시작한다. 사신이 출발한다. 내 백성들이여, 너희 또한 사신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그 놈을 돕지 마라. 오늘 켐프는 죽게 될 것이다."
켐프는 이 편지를 두 번이나 읽고는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야." 하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놈의 목소리야! 놈은 이대로 실행하려 할 거야."
켐프는 접힌 종이를 뒤집어 주소가 적힌 면을 보았다. 그 면에는 힌턴딘 소인이 찍혔고 "우편 요금, 2페니"라는 글자가 건조하게 적혀 있었다.

(중략)

도끼가 복도로 물러나더니, 바닥에서 60센티미터 가량 되는 지점으로 떨어졌다. 모두 투명인간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희 두 놈은 비켜." 투명인간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놈은 켐프야."
"우리는 네 놈을 원해." 한 경관이 날렵하게 한 걸음 다가서면서, 부지깽이로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휘두르면서 말했다.

(중략)

"모르겠어. 내가 놈을 후려쳤거든. 놈은 홀 어딘가에 있을 거야. 자네 곁을 지나 달아나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런데 켐프 박사님은…. 박사님."
조용했다. "켐프 박사님." 경관이 다시 외쳤다.
"켐프 박사님." 말을 꺼내려던 그는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켐프 박사님은 영웅이야." 동료 경관이 어깨 너머로 돌아다 보며 말했다.
식당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가정부도 켐프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범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범인을 죽음에까지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투명인간을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제압했고, 그 결과 투명인간은 최후를 맞게 된다.

 

 

켐프는 귀 밑을 거세게 얻어맞고 비틀거리면서 보이지 않는 적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켐프는 자신의 얼굴로 땀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별안간 목을 조르던 두 손의 힘이 풀렸다. 순간 켐프는 죽을 힘을 다해서 힘 빠진 적의 어깨를 잡아 놈을 쓰러뜨리고 그 투명인간에게서 빠져나왔다. 그러곤 땅바닥 가까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팔꿈치를 꽉 잡았다.
"놈을 잡았어!" 켐프가 소리쳤다. "도와줘요! 놈을 잡는 걸 도와줘요! 놈이 쓰러져 있어요! 놈의 발을 잡아요!"
순간 사람들이 동시에 투명인간에게 덤벼들어 한바탕 싸움에 가세했다. 갑자기 그 도로에 들어선 낯선 이라면, 그 광경을 보고는 굉장히 난폭한 럭비 게임이라도 벌이는 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켐프의 외침이 있은 후 더는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단지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가는 소리, 무거운 숨소리만이 들렸다. 여러 사람이 뒤엉킨 채 엎치락뒤치락 몸부림치며 뒹굴었다. 거세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곧바로 죽기라도 할 듯 "살려줘요! 살려줘요!" 하고 외치는 목이 메인 거친 절규가 터져나왔다.
"물러 서, 멍청이들아!" 켐프가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건장한 몸집들을 거세게 떼밀었다.
"녀석이 크게 다쳤다니까. 어서 물러서!"

(중략)

켐프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가, 투명인간의 바로 옆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점점 새로운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뛰쳐나왔다. 켐프가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뭔가를 감지해보는 듯 했다.
"숨이 끊어진 것 같아요. 옆구리가… 아아!"
바로 그 때 덩치 큰 인부의 팔 밑을 들여다보던 한 노파가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것 봐!" 주름살 투성이의 손가락을 내밀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듯 희미하고 투명하며 축 늘어진 핏기 없는 손의 윤곽이 보였다. 너무 투명한 나머지 정맥과 동맥과 뼈와 신경마저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이 쳐다보려니 그 빛깔이 점차 뿌옇게 변하더니, 어느 새 불투명해졌다.
"저것 봐요!" 경관이 소리쳤다. "다리가 보이기 시작해요!"
그렇게 천천히, 손과 발을 시작으로 사지에서 몸통으로 신기한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맨 먼저 작고 하얀 신경이 드러나면서 연한 잿빛을 띤 사지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곤 유리와도 같은 뼈와 복잡하게 얽힌 동맥이 드러났고, 곧이어 살과 피부가 처음에 희미한 안개처럼 나타나더니, 점차 빠르게 그 빛깔이 짙어지면서 불투명해졌다. 곧 사람들은 뭉개진 가슴과 어깨, 그리고 상처 투성이에 반죽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켐프가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마침내 땅바닥에 쓰러진 벌거숭이의 처참한 몸뚱이가 드러났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골절상을 입은 몸뚱이는 서른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젊은이였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얀색이었다. 나이 탓에 센 것이 아니라 색소 결핍증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마치 석류석처럼 보였다. 양손을 꽉 쥔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표정에는 분노와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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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에 대하여, 역자 후기


1)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

1897에 발표된 <투명인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투명인간,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한 과학소설이다. 투명인간에 대한 생각은 플라톤의 <국가>에 언급된 기게스의 반지와 그리스 신화(일리아드)에서 등장하는 하데스의 모자(그리스어로 '보이지 않는 자'라는 뜻을 지닌 하데스는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인데, 그의 모자를 쓰면 몸이 보이지 않게 된다)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마법과 신화에 속하는 것이었다. 웰스에 와서야 비로소 현실성을 갖춘 보이지 않는 인간, 투명인간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웰스가 (과학적 엄밀성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더라도) 나름의 논리성을 갖춘 과학적인 설명(체내 색소를 제거하고 공기의 굴절률과 같도록 인체의 굴절률을 조작)을 통해 투명인간의 가능성을 예시한 것이다.
하지만 투명인간의 과학적인 가능성을 예시하는 것에만 그쳤다면, <투명인간>은 오늘날 영원한 SF의 고전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과학적인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체의 모든 부분이 투명해지면 빛은 망막에 상이 맺히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버리기 때문에 투명인간 스스로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과학적 논리의 허점에도 <투명인간>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기게스의 반지'의 현대판 우화로서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을 그리는 데다, 우리는 여전히 '기게스의 반지'의 위력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리디아(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까지 소아시아 서부 지방에서 번성했던 왕국)의 양치기 기게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심한 뇌우와 지진이 있은 뒤에 생긴 갈라진 틈 속에서 청동 말을 발견한다. 그 말에 있는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손가락에 금반지를 낀 송장이 하나 있다. 그는 송장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낸다. 그러곤 그 반지를 끼고 참석한 목동들의 모임에서 투명인간으로 변신하고 만다. 마법의 반지의 위력을 깨달은 그는 결국엔 왕비와 간통하고 그녀와 공모해 왕을 살해한 후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목동에게 왕의 자리를 안겨 준 '기게스의 반지'는 처벌을 받는 일 없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를 상징한다. 그런 반지를 얻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기게스는 그 반지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순박한 양치기의 모습을 잃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예전의 양치기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마법의 반지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찌 할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던져 준다.
사실, 우리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하고 가정했을 때, 흔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은 내가 남몰래 취할 수 있는 나쁜 짓들이다. <투명인간>의 그리핀도 마법 반지를 얻게 된 기게스처럼 사악하고 은밀한 욕망에 눈을 뜬다. 하지만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다. 다시는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되면 될수록 투명인간은 타인에게서 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마저 멀어지고 망각되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잃고 만다. 결국 그는 기게스가 다시 양치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죽지 않는 한 보이는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2) 보이지 않는 인간

<투명인간>은 단순히 '기게스의 반지'의 교훈적인 우화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되었지만, 결코 기게스가 얻은 것과 같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지 못한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투명인간은 자유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벌거벗은 몸 때문에 추위와 싸워야 하고, 몸을 노출시킬 수도 있는 먼지나 비를 피해야 하고, 사람들이나 마차 같은 것에 부딪힐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 언제나 주변을 경계해야 하고, 몸에 들어간 음식물은 소화되기 전까지는 보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데도 남의 눈길을 피해야만 한다. 그리고 몸을 드러낼 때는 사람들에게 괴물 같은 존재로 비춰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괴물이 되어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그리핀은 쉽게 규정하기 힘든 복잡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고독한 인물인 그를 단순히 미친 과학자, 공포의 대상이나 욕망에 사로잡힌 악인만으로는 볼 수 없다. 어쩌면 투명인간이 되기 전의 그리핀과 투명인간이 된 후의 그리핀은 별 차이가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웰스가 탁월하게 그려내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 그리고 그리핀의 '보이는 존재(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 미묘한 적대감'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그리핀에 대한 반감과, 그리핀이 놓인 처지 및 그의 심리를 그가 선천적인 색소 결핍증 환자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암시적으로 알게 된다. 그는 애초에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보인다는 것 자체 떄문에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아예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Invisible Man)>(1952)의 주인공이 사회적인 처지(그는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그저 흑인으로,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와도 같은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투명인간은 단순히 사람들에 대한 가해자다 기게스의 반지를 손에 넣은 양치기가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와 타자의 위치에 머무는 존재가 된다. 때문에 그리핀이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비극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을 괴물처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지만, 이젠 아예 사람들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인 진짜 괴물이 되고 만 것이다.

보이는 존재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존재(투명인간)에 대한 폄오감과 두려움은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동일자가 타자에 대해 가지는 통념을 반영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그리핀이 보이는 존재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타자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 결국 웰스는 사람들과 투명인간의 대조를 통해, 투명인간의 악한 짓에 앞서 사람들이 그에게 보이는 반응('보이지 않는 것',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 즉 '타자'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과 사람들의 통념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핀이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배제된 타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죽은 시체로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모습을 (독자가) 보면서 묘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웰스는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켐프 박사, 경찰관, 호기심 많은 사람들, 인부들, 어린 아이들)과 빚어내는 떠들썩한 소동, 그리고 그것과 대조적인 느낌을 주는 투명인간의 최후 장면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대조적인 관계를 미묘한 뉘앙스로 그려낸다. 결국 투명인간의 시신은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보이는 '졸리 크리킷터스(유쾌한 크리켓 선수들)'이라는 술집 안으로 운반된다.

어쩌면 투명인간의 죽음이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은, 1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그것과 같은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 몸 때문에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스스로 괴물이 된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한 치의 죄의식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이미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 소설은 사람이 제약 없는 자유를 얻으면 괴물이 된다는 교훈보다는, 그리고 보이지 않게 되어 일반인들과 다른 조건을 가지게 되면 괴물 취급을 받는다는 교훈보다는, 애초에 내면에 괴물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 제약 없는 자유를 얻으면 얼마나 잔인하고 무시무시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공포 정치'를 주장하는 투명인간의 가치관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만화 <데스노트>에서 점점 스스로가 신이라는 착각에 빠져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야가미 라이토가 타락한 모습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자신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는 애초에 '보이는 존재'인 나 자신에 만족하기 때문에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 투명인간이 되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게 될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명인간이 되어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나 목적조차도 없다.

기게스의 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일차원적으로는 재벌에게 비싼 값에 팔아 넘길까 하는 짧은 생각도 하겠지만 혹시라도 악인의 손에 넘어갔을 때가 걱정되어 결국 아무에게도 팔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두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당장 나의 신변이 위험할 때 유용하게 쓸 수는 있겠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기 위해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발상이다. 그리핀과 똑같은 조건을 가졌지만 끝까지 그리핀에 대항하면서도 그리핀의 위험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사람들을 저지시킨 켐프 박사처럼. 그리핀은 켐프 박사보다 훨씬 명석한 두뇌를 가진 유능한 과학자였는지는 몰라도, 결국 세상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키는 것은 그런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천재가 아닌, 다소 평범하고 선량한 인재인 것이다.

하지만 역자 후기를 보면, 모든 윤리적인 문제를 배제하고는 단순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립적인 부분에만 주목한 채 굉장히 좁은 시야만으로 이 소설을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