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자전거 - 이금이 <아동문학>

이른 아침부터 영신이 아버지께서는 정성스레 자전거를 닦고 계셨습니다. 전부터 늘 보아 온 광경이었지만, 요즈음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영신이는 싫었습니다.

"고물 자전거를 닦는다고 새 자전거가 되나요, 뭐."

"그래도 깨끗이 닦아 쓰고 곱게 다루면 더 오래 쓸 수 있어."

영신이는 그 자전거를 고집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자전거 좀 새로 사요."

"새로 사긴… 아직도 5년은 더 탈 수 있을 거다. 군말 말고 방 안에 밥상 차려 놨으니까 들어가 밥이나 먹어. 아버지는 일하는 곳에서 저녁까지 먹고 올 테니까 저녁도 혼자 먹고…."

 

 

"다녀오마"

영신이 아버지께서는 연장 가방을 싣고 자전거 종을 두어 번 울리며 대문을 나가셨습니다. 영신이 아버지께서는 요즈음 목장에 일을 하러 다니십니다.

영신이는 멀리 사라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서며 투덜거렸습니다.

"치, 저 저 고물 자전거는 고장도 안 나네."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밥상보를 열던 영신이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빛 바랜 그릇에 몇 날 며칠 똑같은 반찬.

무말랭이 무침, 깻잎 장아찌, 시퍼런 배추김치. 영신이는 입을 삐쭉 내밀고 앉아 젓가락으로 김치를 뒤적거리다 밥을 먹었습니다.

 

 

저녁 늦게 집에 오신 아버지께서는 우물가에서 발을 씻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은 너 일어나기 전에 일하러 나갈 거야. 도시락 싸 놓을 테니까 가져가거라."

아까부터 댓돌 위에 어두커니 서 있던 영신이가 불쑬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자전거 새로 사요."

"아, 이 녀석이 왜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 타령을 하고 그래?"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옷 좀 사 입으세요."

"아버지가 좋은 옷이 뭐 필요있어? 신사복 입고 가서 시멘트를 바르랴, 구두를 신고 가서 사다리를 타랴?"

"하얗고 예쁜 도자기 접시도 사고, 맛있는 반찬도 사 먹고…."

"헌 그릇에 반찬 담아 먹으면 맛이 없어진다더냐, 색깔이 변한다더냐? 반찬도 그만하면 됐지. 진수성찬 바랄래? 반찬 타령을 하는 것도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야.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다가는 거지 되기 십상이지."

'치, 소금물 아버지, 바닷물 아버지'

영신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마룻바닥을 쿵쿵거리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일 장에 갈건데 뭐 필요한거 없니?"

"운동화요."

"운동화 가져와 봐."

영신이는 낡은 운동화를 가져다 아버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인 녀석아, 한 달은 더 신어도 되겠다. 운동화는 안 돼."

"그럼 체육복이나 사 주세요. 바지가 짧아졌어요."

"어디 체육복 입고 와 봐."

영신이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 아버지 앞으로 갔습니다.

"이 정도 짧은 건 괜찮아. 조금 더 입어도 돼. 새로 사면 낭비지."

"그래도 이렇게 짧은 것을 어떻게 입어요, 창피하게…."

"그렇다고 멀쩡한 걸 버려? 체육복도 더 입을 수 있으니가 다른 거 말해 보렴."

"필요한 거 없어요. 차라리 묻지나 마시지. 아버지는 참…."

영신이는 볼멘소리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소금물 아버지, 바닷물 아버지.'

 

 

이튿날 아침, 아버지께서 장에 가셨습니다. 자전거를 깨끗이 닦아 놓고 버스를 타고 가셨습니다. 영신이는 대문 밖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동네가 텅 빈 듯 조용하였습니다. 동네 꼬마들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물 장수 아저씨만이 소리를 지르며 손수레를 끌고 큰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뚫어진 양푼, 찌그러진 솥, 고장난 라디오, 다 가져갑니다. 빈 병이나 종이 상자도 가져갑니다."

고물 장수 아저씨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목소리도 멀어져 갔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영신이가 벌떡 일어나 큰 길로 달려 나갔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고물 있어요, 고물 있어요!"

 

 

저녁 무렵, 아버지께서 장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이상하다 왜 자전거가 보이질 않지?"

영신이 아버지께서는 들어오시자마자 자전거부터 찾으셨습니다.

"영신아 자전거 못 봤니?"

"못 봤는데요."

"이상하다. 분명 여기다 세워 놓고 나갔는데….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네."

아버지께서는 여기 저기 찾으시다가 창고 문을 여셨습니다. 잡동사니 물건들이 가득 쌓인 창고 구석에 하얀 빨랫비누가 여러 장 놓여 있었습니다.

"영신아 이 비누 어디에서 났어?"

영신이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너, 이 녀석, 고물 장수한테 자전거 주고 이 비누를 받았구나. 비누와 자전거를 바꿨어? 어떤 고물 장수야? 귀 밑에 구레나룻이 시커먼 사람이냐?"

영신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께서는 장에서 들고 온 봉지들을 내동댕이 치듯 마루 끝에 던져 놓고 뛰어 나가셨습니다. 검은색 봉지 하나에서 고등어 토막들이 주르륵 쏟아져 나왔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시는 영신이 아버지의 가슴은 텅 빈 것 같이 허전하였습니다.

'고얀 녀석, 제 엄마가 반지 팔아서 산 자전거인데, 그게 어떤 자전거라고. 그게 어떤 자전거라고….'

 

 

집으로 돌아오신 영신이 아버지께서는 마구 역정을 내셨습니다.

"나쁜 녀석, 누가 부모 물건을 함부로 없애 버려. 자전거가 뭐 어때서? 자전거가 고물이라서 너를 불편하게 했어?"

영신이가 울며 대들었습니다.

"낡은 자전거, 낡은 그릇, 우리 집엔 뭐든지 다 낡아빠진 것만 있어요. 새 것은 하나도 없고, 좋은 것도 없고, 헌 것 뿐이야"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러고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영신이는 아버지께서 들고 오신 봉지를 열어 보았습니다. 하얀 새 운동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더 신으라고 하셨으면서…."

체육복도 있었습니다.

'안 사준다고 하셨으면서….'

영신이의 손등에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