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3권 가시나무 숲 -4- 이브에 만나면

이브에 만나면(イブに 會えた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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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가시장미 숲에, 지금도 나는 잠들어 있다.
열여섯 살 그대로 변하지 않는, 하얀 카호리의 몸과 함께, 나는 자신의 마음을 그곳에 남겨두고 온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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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월 24일.
이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과 동시에,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의 2학기 종업식이기도 하다.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밤에 가족과 케이크 먹는 정도 말고는 그다지 이렇다할 예정이 없으니까 기분 상으로는 그다지 들뜨지도 않았고. 내일부터 겨울방학이라곤 해도 어제까지 시험 방학이었으니까 그다지 방학의 고마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 종업식 때는 성적표가 돌아온다. 성적 같은 거 어찌되건 상관없을 정도의 머리 좋은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외 일반에 포함될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큰 일인 것이니. 우리 집은 아니지만, 성적으로 세뱃돈이나 용돈 액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집도 있는 모양이니까, 인생이 걸려 있다.
"아-아"
"유미양, 오늘 아침 몇 번째의 한숨일까"
찰칵.
츠타코양이 지금 셔터를 누른 카메라를 '어때, 뉴-라구' 하듯 앞으로 내밀며, 유미의 책상 앞에 등장했다. 마치 인롱(印籠)을 내민 코우몬(黃門)님. 어이, 스케씨(助さん)랑 카쿠씨(格さん)가 없으면 모양새가 안 나잖아.(우리나라 식으로 하자면 '마패를 내민 암행어사' 정도가 되겠습니다. 스케씨와 카쿠씨는 방자와 산도? - 역자 주)
"훗훗후. 츠타코양은 알고 있지. 그 커다란 한숨의 이유라는 녀석을"
마침 좋은 시간 때우기 거리를 찾아냈다는 듯, 츠타코양은 즐겁게 말했다. 평소보다 꽤 일찍 학교에 도착해버린 아침. 오늘은 간단한 HR, 그리고 성당에서 이브의 미사라고 스케줄이 짜여 있다.
"유미양의 고민거리, 그 첫 번째. 성적표"
"그렇지 뭐"
채점이 끝난 문제지는 아직 받지 않았지만, 짐작이라는 걸로 대강 예상은 되는 거고. 시험은 평소의 이해도를 알기 위한 참고에 지나지 않아, 같은 선생님들의 말, 전면적으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으니까.
"그 두 번째. 아직 보내지 않은 연하장"
"앗!"
무심결에 큰 소리가 나왔다. 보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 일로, 이런저런 일을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나면 연하장, 이라고 엄마한테 엽서 30장 받아서 책상 서랍에 넣어 놓은 채. 잘도 오늘까지 잊어먹고 있었다. 연하장은 미리미리, 라는 TV 광고를 멍하게라도 봤을 텐데.
"유미양, 드디어 치매인가"
곤란한데, 하면서 또 다시 카메라를 찰칵. 어이어이, 할머니 찍으면 재밌어?
"하지만, 한숨의 가장 큰 이유는 로사 키넨시스 안 뷔통이지"
"---"
그런 것이다.
약 1주일 만에 만날 수 있는 거다 보니, 오늘 아침은 흥분해서 일찍 일어나 버렸다.
하지만 교문 앞에서 사치코님을 기다린다는 뻔뻔하고도 대담한 행동은 아무래도 할 수가 없어서, 어물어물 하면서 결국 교실까지 와 버렸다.
바보 같긴-, 적어도 복도에 있으면 마주칠 찬스도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아직 안 늦었어' 하고 행동을 일으킬 만큼 강하게 나갈 수 있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고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이 종업식이라는 건, 내일부터 또 한동안 만날 수 없다는 것. 한번 만나 버리면, 이번엔 바이바이할 때의 일 만을 생각해 버릴 것 같았다.
시험 방학 전 사치코님의 태도로 상상할 때, 이번엔 해가 넘어가서 내년 시업식까지 못 만날 가능성이 높다. 높을 뿐이랴, 거의 확정 아닐까. 쓸쓸해라, 하고 생각한다. 요시노양네처럼 걸어서 몇 발자국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데다. 로사 기간티아와 시마코양처럼 담백하지도 않으니까,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없고.
학교가 방학이라 쓸쓸하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일 지도 모른다. 사치코님은 전혀 이런 마음이 되지 않는 걸까. 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2학기 성적은 생각보다 나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마음 속의 찜찜한 것이 개이지 않는다는 건, 역시 원인의 대부분은 사치코님이라는 것이겠지.
이브는 학생들을 위해 점심때 미사가 열린다. 기본적으로 자유참가지만 많은 학생들이 출석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일일 신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날, 가톨릭계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소홀히 해선 안 되지. 남성과 사귀고 있어서 오늘 이제부터 데이트라는 사람도 일단 미사에는 나온다. 출석하지 않는 사람의 이유는 대개가 가족과 함께 다른 교회의 미사에 나간다거나, 자원봉사 활동으로 복지시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한다거나. 결국 리리안의 학생이란,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어-이, 여기 여기"
성당의 꽤 앞쪽 의사에서 로사 기간티아가 손을 흔들고 있다.
같은 반이고 해서 함께 온 시마코양과 유미는 서둘러 '여기' 라는 그 곳으로 향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사람의 출입이 많다곤 해도, 신성한 성당에서의 오버 액션. 당장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이쪽이 부끄럽다.
"자리 있으니까, 앉아 앉아. 자자, 유미쨩은 여기"
로사 기간티아가 가리킨 장소를 보고 덜컹 했다. 딱 한명분의 빈자리 바로 옆에는, 사치코님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어, 언닛..."
"뭘 놀라고 있니. 예의 없게"
놀라기도 하고 말구요.
그도 그럴 것이 만나는 건 미사가 끝난 후 장미의 관에서라고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으니까, 좀 기습당한 것 같은 느낌. 설마 로사 기간티아가 멤버 전원의 자리를 잡아 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이나 뒤쪽같은 자리에 앉아서 몰래 사치코님의 뒷모습을 찾아야지 같은 예수님께 죄송스럽지만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인사가 아직이었네요. 아,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조용히 하고, 앉도록 해"
사치코님은 쌀쌀맞게 말했다.
"...예"
집에 돌아온 주인에게, 너무 기뻐서 달려들었다 야단맞은 강아지의 심정. 아아, 하지만 야단맞아도 곁에 있는 편이 좋으니까 행복해. 다소곳하게 유미가 앉자, 이미 시마코양은 로사 기간티아의 옆자리에 지극히 자연스레 들어가 있었다. 팔과 팔이 닿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소프트하게. 당연한 듯이, 거기가 시마코양의 제 위치라는 느낌이었다.
미나코님이 이름붙인 '백장미 사건' 말이지만, 시험방학이 끝난 오늘, 생각보다 훨씬 소동은 가라앉아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가 1학년들에게 확실히 부정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코스모스 편집부의 대응에 납득한 건지. 어쩌면 그냥 단순히 질려버린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반에서도 이미 로사 기간티아의 화제는 돌아다니지 않고 있었다. 1주일 전 이야기에 뒤처져버린 클래스메이트들이 이제 와서 '가시장미 숲'을 읽고 있었던 정도다. 신문부도 기사로 쓰지 못했던 모양이고.
"쉬는 동안, 잘 있었어?"
앞을 바라본 채, 사치코님이 물었다.
"아, 예"
"어쩌고 있을지 걱정됐는데. 쓸데없는 짓, 하진 않았겠지"
뭐든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걸까나. 그 말대로니까, 뭐라고 대답할 수도 없지만.
"믿고 있지 않은 게 아냐"
얼굴도 보지 않았는데, 오늘의 사치코님은 유미의 마음을 읽어버리는 것 같다. 작게 웃고, 말을 더했다.
"믿고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동생에 대해서 걱정해버리는 거야. 특히나, 이번엔 아버지 일 관계로 일본에 없었으니까"
"에?"
"프랑스에 가 있었어"
신주쿠에라도 가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버리니까. '아아, 그렇군요.' 같이 얼빠진 대답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가, 사치코님은 일본에 안 계셨구나.
그럼, 시험방학 내내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게 당연한 거다. 혼자 쓸쓸해했다거나 삐져 있었던 게 바보 같아.
성가대가 입장해 와서 이제 곧 미사가 시작될 테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지만. 나중에, 쉬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치코님이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그럼 빨리 이야기하고 금방 끝내면 되니까. 어쨌든, 이쪽에서부터라도 행동을 해야지. 이런 부분만 닮은 자매라서, 둘 다 항상 꼭 한마디씩 모자라는 것 같으니까.

 

 

    3

 

"이거, 대체 뭐예요?"
장미의 관에 한발 들어선 순간, 유미는 안의 풍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냐니. 크리스마스 파티잖아?"
로사 페티다가 '뭘 이제 와서.'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크리스마스, 파-티-?"
"유미쨩은 아직 어려서 그런 쪽 사정을 알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예수님 생일 전날, 일본에서는 파티를 여는 풍습이 신화시대부터 있었단다. 이유라니 그런 촌스러운 질문은 하면 안돼요. 그렇게 정해진 거니까"
라고, 나중에 들어온 로사 기간티아가 유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튼, 완전히 놀림 받고있다.
누가 크리스마스 파티의 의미를 물은 것도 아니고, 그 설명부터가 엉망진창이다. 엉망진창이라고 하면, 이 방이야말로. 파티니까 장식하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유치원 장기자랑에서도 안 쓸 듯한 굉장한 소도구들로 방 안이 온통 장식되어 있다.
'크리스마스라기보다, 오히려 칠석 같아.'
색종이를 잘라 만든 오징어링 같은 사슬이라거나, 종이 테이프를 말아서 만든 쿠키 같은 별이라거나. 로사 키넨시스는 아예 즐거운 듯이 도화지에 호일을 붙여 만든 왕관을 쓰고 티슈로 꽃 같은 걸 만들고 있다.
'한바퀴 돌아서, 처음으로 돌아와버린걸까나-'
너무나도 앞서 나가버리면, 이런 게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신기한 사람들이니까 가능한 놀라지 않도록 하곤 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놀라고 있는 것 같다.
"유미쨩, 파티 이야기 하고 있었을 때는 멍하니 있었으니까 말이지"
레이님은 롤 카스텔라에다 코코아로 색을 낸 휘핑크림을 찰팍찰팍 발라서 즉석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포크로 나뭇결 모양을 그려서, 작은 가지 모양의 초콜릿을 장식하면-.
"부쉬 드 노엘(이브에 먹는 통나무 모양의 롤케이크 - 역자 주)이다!"
"파는 재료로 만든 것치곤, 호화스럽지?"
레이님은 자랑스레 웃고서, 크림이 묻은 포크 끝을 유미 입에 살짝 넣어 주었다. 달콤하고, 약간 쌉쌀한 맛이 혀 위에서 나긋나긋 녹아간다.
"뭔가 도울 일 있을까요?"
싱크대는 요시노양과 시마코양이 점령하고 있어서 들어갈 곳이 없고, 유치원 애들 같은 얼굴로 장식을 붙이고 있는 로사 키넨시스의 즐거움을 뺏으면 죄송한데다, 케이크 만들기 어시스턴트같은 건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렇다고 섣불리 테이블 세팅에 손 같은 거 댔다간 로사 페티다께 야단맞을 것 같고. 사치코님은 미사가 끝나고 나서 교실에 잊은 물건을 가지러 가신 뒤 아직 장미의 관에 오지않았다.
"일하고 싶어?"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아직 등 뒤에 달라붙어 있던 로사 기간티아가, 유미의 목에 팔을 감으며 물었다.
"그럼, 딱 좋은 일이 있지라. 어이, 가보실꺼나"
"..."
대체 어디 사람을 하고 싶으신 거야.
"저기, 구체적으로 뭘-"
"괜찮아 괜찮아. 얌전히 언니랑 좋은데 가자~"
"좋은데!?"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로사 기간티아는 유미에게 풀넬슨 락을 건 채 질질 끌고 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멤버들은 누구 하나 도와주기는커녕 '다녀와, 늦으면 안돼.' 하면서 손이나 흔들고 있다. 이러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하고 싶은 만큼 멋대로 하는 거야.
'시마코야-앙. 자기 언니에겐 확실히 목걸이 채워두라구-'
하지만 시마코양에게는 유미의 혼의 외침이 들리지 않고, 무슨 이야기꽃이 피었는지 요시노양과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며 대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미의 관을 나오자, 로사 기간티아는 겨우 기술을 풀었다.
"일단은 신발장부터"
"에?"
"자네의 사명은, 신속히 카메라쨩을 찾는 것이다"
'카, ...카메라쨩!?'
허리가 무너졌다. 우유 마시고 있던 중이라면, 틀림없이 코 쪽으로 갔을 거다.
"...카메라쨩이라면, 혹시나 다케시마 츠타코양 말씀이신가요"
조심조심 질문을 해 보자, 그렇다고 한다.
"그 애 경우엔, 츠타코쨩이라는 것보다 카메라쨩 쪽이 잘 통하지 않아?"
"하아-"
하지만 유미에겐, 실수로라도 츠타코양을 카메라쨩이라고 부를 용기는 없다.
"츠타코양 찾아서, 어쩌시려고요?"
"카메라쨩 찾는데 이유는 한 가지"
"...파티의 카메라맨으로 삼을 셈이시군요"
"듣기 안 좋군. 파티에 초대하는 것뿐이잖아? 카메라 지참 가능, 으로. 본인은 눈물 흘리며 좋아할 거야"
빨리빨리 찾지 않으면 가 버리잖아, 하고 닦달하니까, 뭐어 츠타코양의 취미에도 공헌할 수 있는 일이고 하니, 일단은 로사 기간티아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신발용 작은 라커 안에는 아직 츠타코양의 신발이 남아 있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여고생 사진을 찍어 모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리아님 앞일까나"
로사 기간티아가 말했다.
"여름방학이건 겨울방학이건, 방학 직전에는 자매의 의식이 한창일 때니까"
게다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로사리오를 주고받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절호의 시추에이션. 츠타코양의 경우 본인이 의식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을 숨어서 찍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거지만.
"어떻게 할까요?"
마리아님 앞까지 찾으러 가도 괜찮지만, 엇갈릴 가능성이 있고. 혹시라도 아직 성당 근처에 있을지 모르니까.
"잠깐 밖으로 나가 볼까"
실내화를 신은 채 밖으로 나가자, 로사 기간티아는 둘째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위로 세웠다. 바람 방향 같은 걸로 츠타코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리 없는데.
"와왓, 저쪽에서 누가 와"
귀가 좋은 로사 기간티아 말대로, 도서관 귀퉁이를 돌아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쉽게도 츠타코양은 아니었지만, 유미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할머니!?"
달려가자, 아이보리색 코트에 짙은 갈색 모자를 쓴 그 사람은 그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어머, 누군가 했더니. ...후쿠자와 유미양이었던가요?"
"예. 요전번엔 신세가 많았습니다"
"유미쨩, 아는 분?"
천천히 쫓아온 로사 기간티아는 예의바르게 상급생 모드로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카스가씨는 아마 몇십 년이나 전에는 매일 친구 분들과 나누고 있었을 말로, 그에 답했다.
"에-그러니까. 이쪽은 카스가 씨라고 하셔서, 리리안 졸업생으로-"
어디까지 이야기하면 좋을지 망설였지만, 로사 기간티아는 그다지 추궁하지 않고 '후배가 신세를 진 것 같아서 감사드립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감사하며 머리를 숙였다.
"사토 세이라고 합니다"
로사 기간티아의 자기 소개를 듣고, 카스가 씨는 잠깐 놀란 듯 했지만 곧바로 미소지으며 '그래, 당신이' 라고만 작게 말했다.
"아아 맞아.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장미의 관에 오시지 않으시겠어요? 친구들끼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거라서요"
로사 기간티아는, 굉장히 친근한 태도로 처음 보는 할머니께 권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할 텐데.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부터 누굴 만날 참이라"
카스가 씨는 그렇게 말하며 사양했지만, 학교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해 주지않겠냐고 로사 기간티아에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희들로 괜찮으시다면. 그렇지, 유미쨩"
"아, 예"
어쩌면 카스가 씨는 좀더 로사 기간티아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미는 손님용 현관까지는 함께 갔지만, 그 다음부터는 로사 기간티아에게 맡기고 혼자 츠타코양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어디까지 안내할까요"
"학원장실까지 부탁해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는 알 수 없지만 유미는 굉장히 흥분했다. 카스가 씨와 로사 기간티아가, 지금 나란히 리리안 여학원 안을 걷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타임머신이, 여기 있다.
하지만, 신기해. 혹시라도 로사 기간티아가 스가 세이라는 소문이 없었다면, 사오리 씨는 '가시장미 숲'을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 '가시장미 숲'을 읽지 않았다면 당연히 궁정사에 전화해서 문의 같은 걸 하지도 않았을테고, 카스가 씨들은 상대가 살아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평생을 보내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거니까.
'어라...?'
건물로 돌아가서 복도를 걸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발을 멈췄다.
'학원장실?'
카스가 씨는, 학원장실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가신 걸까.
학원장실이라는 건, 말 그대로 학원장님이 있는 방이니까 당연히 학원장님을 만나러 간 거겠지, 하고 예상은 되지만.
'잠깐 잠깐, 카스가 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분명히 사오리 씨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잖아...게다가 학원장님 이름은, 분명히-'
시스터 우에무라(上村). 우에무라 사오리(上村 佐織).
유미는 돌아서서, 손님용 현관에서 이어지는 복도 저편을 보았다. 카스가씨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 없다.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유미는 그 자리에서 망연히 못 박혀 버렸다.
"유미?"
누군가 어깨를 건드려 돌아서자, 거기는 사치코님이 서 있었다.
"앗!? 에, 언닛!"
"장미의 관에 가는 참인데 마침 잘 됐어. 같이 가자"
"에 그러니까, 하지만 지금..."
사정을 이야기하자, 사치코님은 걱정없다고 가르쳐 주셨다.
"다케시마 츠타코양이라면, 지금 막 춤이라도 출 듯이 사뿐사뿐 뛰면서 장미의 관으로 갔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츠타코양. 얕볼 수가 없다. 과연 카메라쨩.
"아아, 맞아. 잊어버리기 전에"
걸으면서 '이거' 하고 사치코님이 내민 것은, 납작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였다.
"너에게 줄께"
"...프랑스 선물인가요"
뚱딴지같은 유미의 질문을, 사치코님은 쓴 웃음 지으며 고쳐 주셨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잖아"
"엣!?"
있는 힘껏 리셋 버튼이 눌려진 것처럼,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이때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한다거나 하는 거,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이 16년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건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거라고 정해 두다시피 했었다.
"열어 보렴"
주저하면서도 포장을 풀자, 상자 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나타났다. 가장자리에는 고급스러운 레이스가 둘러싸 있고, 한쪽 구석에 S자가 하얀 실로 수놓아져 있다.
"언니가 항상 쓰시는 거랑 같은 거...?"
아마도 사치코님이 한꺼번에 주문하신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써 주겠지?"
"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
"괜찮아. 내가 일방적으로 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래"
사치코님은 유미의 볼 근처에 살짝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검은 리본을 풀었다.
"네가 신경 쓰인다면, 대신 이걸 받아도 될까?"
사치코님은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유미의 리본으로 묶었다. 그 몸짓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아름다워서. 유미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라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사치코님은 유미의 손을 살짝 잡고 속삭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이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손을 마주잡고 걸으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눈이 내리면 좋을 텐데, 하고 유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 3권 완결 -

 

 

*1. "안된다고 해도, 말씀하시고 않으시죠? ......그 대신, 셋 다 절대로 이건 못 들은 걸로 하기야"를 ‘말씀하시고 싶으시죠?’로 수정했습니다만, 맞는지 확인을 부탁 드립니다.
*2. "그럼, 딱 좋은 일이 있지라. 어이, 가보실꺼나" 부분은 일부러 사투리로 쓰신 거지요? 그냥 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