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3권 가시나무 숲 -1- 기말고사와 문고본

가시장미 숲(いばらの森)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인사가 맑게 갠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인 소녀들이 오늘도 천사같이 천진한 웃음을 띠고 높은 문을 지나간다.
더러움을 모르는 몸과 마음을 짙은색의 교복으로 감싸고. 스커트의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가 펄럭이지 않도록, 차분히 걷는 것이 이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등교시간 아슬아슬하게 뛰어가는 등의 품위 없는 학생 따위 존재할 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메이지 34년(1902년)에 건립된 이 학교는 원래 귀족의 영애를 위해 세워졌다는, 전통 있는 가톨릭 계열 귀족학교이다.
도쿄도내, 무사시노의 옛 모습이 남아 나무가 많은 이 지역에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일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는 변하고 연호가 메이지에서 세 번 바뀌어 헤이세이가 된 오늘날에도 18년간 다니면 온실에서 순수 배양된 아가씨들이 박스에 포장되어 출하된다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귀중한 학교인 것이다.

계절은 겨울.
거리는 크리스마스 무드 일색.
그런데도.
중고생에게는 즐겁고도 즐거운 이벤트의 직전에, 마치 들뜬 기분을 나무라는 듯한, 약속된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라는 건 예수님의 생일 아니었어?
최소한 크리스트교 관련의 학교만이라도 2학기 기말고사를 폐지하면 좋을 텐데. 그럼 틀림없이 다들 즐겁게 축하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하늘은, 학생들의 한숨을 품어 안아 버릴 만큼 오늘도 크고 맑게 개어 있는 것이었다.

-

나는 그것을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잠재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숲은 지금도 가시장미들로 굳게 둘러싸여, 외부에서의 침입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죽을, 그 날까지.

-

 

 

 

 

    기말고사와 문고본(期末試驗と文庫本)

 

    1

 

왠지 모르게, 그런 기색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기말고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 이었던 것 같다. 그래봤자 '지금 생각해 보면' 정도일 뿐이니까 그다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험 직전이다 보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뭘까?' 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 금방 머리의 스위치를 다른 채널로 바꿔버렸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역시 '성적 항상 평균' 인 학생이라면 클래스메이트들의 소곤소곤 이야기보다 일본사의 시험범위나 화학기호 암기술 같은 정보 쪽에 귀가 돌아가 버리는 게 당연하겠죠.
'탈 평균점' 이 목표인 건 물론이지만, 자칫하면 평균을 밑도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가운데라는 건 한가운데 나름대로 힘든 입장인 것이다.
'역시, 로사 키넨시스 안 뷔통의 동생이 성적 나쁘다는 건 곤란하겠지......'
1학년 복숭아반 35번, 후쿠자와 유미는 남몰래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학생회인 산백합회의 간부, 그리고 그에 따르는 학생들은 한결같이 성적 우수자가 모여 있다. 그렇잖아도 외모의 콤플렉스를 안은 채 살고 있는데, 거기에 성적까지 더해지면 아무래도 아프다.
평소에 제대로 수업을 듣고 있으면 시험공부 같은걸 필요 없어. 가을에 경사스럽게도 자매의 연을 맺은 언니,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그건 일단 무시하고 시험 사이의 쉬는 시간 동안 특급열차처럼 참고서를 읽어 나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톱을 다툴 수 있는 사람과는, 애초에 머리의 질이 다르다. 평범한 사람은 그저 공부만이 있을 뿐. 조금이라도 요시노양이나 시마코양과의 차이를 좁혀야지. 언니의 입장도 있으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로사 기간티아?'
그런저런 상황이긴 했지만, 이번만은 클래스메이트들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로사 기간티아라고 하면, 역시 그 로사 기간티아 말일까.
'얼굴은 일본인답지 않아서 미술실의 석고상 같은 주제에, 속은 중년 아저씨에다 끌어안기 마인(魔人), 그런데도 하급생들에게는 무진장 인기라는, 그 로사 기간티아?'
뭐어, 그녀 외에 로사 기간티아가 있으면 그쪽이 오히려 문제지만.
이래저래 화제인 사람이니까, 평소에도 그 호칭을 들을 기회는 물론 많다. 그런데도 어째서 뭔가가 걸렸냐 하면, 그 말투가 평소의 핑크색 하트마크 붙은 게 아니라 좀더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요즘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소곤소곤 얘기와 파장이 딱 맞아 떨어졌다.
'대체 뭘까.'
고개를 들고 아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쪽을 돌아보자, 카츠라양을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작게 이야기하고 있다.
카츠라양이라고 하면 유미와 마찬가지로 시험 전에는 열심히 참고서를 넘기는 타입인데, 어째선지 이번에는 소문 이야기 같은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눈앞의 시험보다 호기심, 이랄까. 확실히 그런 면이 있지, 카츠라양은.
하지만.
'모르겠는 걸-'
카츠라양들의 화제는, 카츠라양이 손에 들고 있는 문고본의 내용인 듯 하다. 상황을 보니 그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
유미는, 가지고 있던 샤프를 교과서 위에 놓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문고본 이야기에 로사 기간티아가 등장하는 거지?
'카츠라양이 가지고 있는 책이, 로사 기간티아에게서 빌린 거라던가.'
하지만 이게 시마코양이라면 로사 기간티아의 동생이니까 그럴 듯하지만, 거의 접점이 없는 카츠라양이라면 조금 무리가 있다. 아니면 책은 누가 떨어뜨린 물건인데, 안에 적혀 있던 주인인 듯한 이름이 로사 기간티아의 이름이었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있을지도'
평소에 잘 부르질 않으니까 로사 기간티아의 본명이 맞는지 자신이 없어서, 카츠라양이 다른 애들에게 확인해 보았다. 그런 거라면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면 누구보다 먼저 시마코양에게 물을 테고. 게다가, 며칠 전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할 일도 아니다.
시마코양 자리를 살짝 훔쳐보자, 그녀는 잡지라도 읽는 듯이 교과서를 우아하게 넘기고 있었다. 좀 전의 '로사 기간티아가' 라는 것은 들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냐, 이럴 때가 아니었어!'
황급히 교과서에 시선을 떨어뜨렸지만,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환풍기의 찌든 때처럼 유미의 머리에서 닦아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런 성격이니까 '만년 평균점' 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야. 성적이 항상 반에서 1, 2등이라는 시마코양마저도 그에 안주하지않고 교과서를 펴고 있는데. 이래서야, 차이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날 뿐이다.
그냥 일본사 포기해 버릴까나, 하고 생각해도, 눈앞에 언니의 무서운 얼굴이 힐끔힐끔 떠오르는 바람에 실행할 수 없다. 이럴 때 분수에 맞는 언니라면 훨씬 편하겠지만-. 카츠라양들은 아직도 뭉쳐서 뭔가 이야기하고 있다. 마침 교과서의 펼쳐진 곳에 그려져 있던 '오다니의 아가씨'는, 사치코님과 조금 닮아 있었다.

 

 

    2

 

"아-, 아쉽지만 나도 아직 못 잡았어, 그거"
츠타코양은, 팔짱을 끼면서 '응응' 하고 끄덕였다.
"그래?"
"뭔가 사건의 냄새는 느끼고 있지만, 아직 범위가 좁아"
오늘의 시험도 무사히 끝난 오후. 유미는 역시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츠타코양을 붙잡고 의견을 물었다.
카츠라양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왠지 유미를 피하는 듯 하교해버리고. 어느 틈엔가 시마코양도 놓쳐 버리고. 그럴 때 츠타코양을 발견했으니, 그야말로 '딱 걸렸어'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때의 츠타코양은 믿음직스럽다. 어쨌거나, 신문부의 옆방에 부실을 꾸미고 있는 사진부. 자잘한 사건이라도 꽤나 파악하고 있으니.
"범위가 좁다니?"
"지금은 아직 반 안의 일부에서만 비밀스럽게 이야기되는 정도라고 봐. 다른 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반보다 시끄럽진 않을 걸.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퍼졌는데 신문부 부장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잖아?"
"-그렇구나"
"그런 거지. 그럼"
"아, 잠깐만"
천하의 츠타코양도 시험기간 중에는 부활동을 자제한다고 하니, 유미는 황급히 스쿨 코트를 걸치고 츠타코양의 뒤를 쫓았다. 요즘 한창이었던 사치코님과의 하교 타임도 시험기간 중에는 참기로 했으니까 마침 잘 된 일. 가면서 좀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유미의 반에서만 퍼진 무책임한 소문이라면 언니와 상담해서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없으니. 진상을 밝히고 보니 의외로 단순한 오해였다, 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르고.
"그 쪽은 아니라고 봐"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는 유미에게 예의 카메라를 향하며, 츠타코양은 선뜻 말했다.
"아니라니?"
"유미양 말이지, 카츠라양이 가지고 있던 책이 로사 기간티아의 것일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 쪽은 이미 아니라는 거야"
"어째서?"
구두끈을 매면서 유미가 묻자, 조금 숙인 그 포즈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츠타코양은 몇 번이나 셔터를 눌렀다.
"잠깐, 츠타코양"
"실례. 조금 열중해 버려서...... 그래서, 뭐였더라?"
"그러니까-"
"아아, 그래. 로사 기간티아의 책이 아니라는 이유였지. ......그야, 실물을 봤잖아?"
"문고라는 거 말고는 모르겠던데"
커버를 씌우진 않았었으니까 표지는 살짝 보였지만, 제목까지는 아무래도 확인할 수 없었다.
"표지 보고 알아채지 못했군. 흐-음. 유미양, 그쪽 책은 안 읽는 건가"
"그쪽 책, 이라니?"
"마침 잘됐어. 들렀다 가자"
"에?"
출입구에서 나오자마자, 츠타코양은 유미의 팔을 잡아끌며 길을 비스듬히 횡단했다.
"도, 도서관?"
"그래"
"어째서"
"입으로 설명하는 것 보다, 실물을 보는 쪽이 손쉽잖아? 이 자리에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이라도
있으면, 도서관에 들를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지"
"......?"
왜 거기서 레이님이 나오는 걸까-. 이미 유미의 머리 속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수습불능의 사태에 빠져 있다.
여보세요, 츠타코양.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던 건 로사 기간티아 아니었나요?
"그냥 잠자코 따라와 봐"
의미 불명의 중얼거림에는 해설도 붙여주지 않고, 츠타코양은 기운 좋게 반투명 유리문을 밀고는 영문을 모르는 유미를 억지로 도서관 안에 밀어 넣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것만으로, 공기는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도서관은 뭐랄까, 부드럽고 무거운 공기가 천천히 떠다니고 있다는 느낌. 바닥이나 벽 등의 재질 때문일까. 학교 안에서는 음악실과 조금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묵직.
"뭘 멍하니 서 있어. 도서관 처음 오는 것도 아닐 테고"
츠타코양은 정면의 사무소에 앉아 있는 사서 선생님께 인사한 후, 유미의 팔을 잡고 왼쪽의 양 여닫이문을 당겼다. 그러자 넓은 공간, 높은 천장, 책의 독특한 향, 부드러운 조명. 중, 고등부 열람실이 나타난다.
"에에 그러니까. 어디쯤이었더라"
목적의 책장을 향해서, 츠타코양은 성큼성큼 나아간다. 물론, 유미의 팔을 잡은 채.
"왠지 나, 연행당하는 거 같아"
"불만이면 얼른얼른 걷기"
"......예에"
시험기간 중이기도 해서 그런지, 열람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단책장이나 대여용 카운터는 텅텅. 반대로 책상은 완전히 만원상황. 다들 공부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다"
츠타코양이 갑자기 멈춘 건, 문고가 빽빽이 꽂혀 있는 책장 앞이었다. 책장이란 건 꽂히는 책의 크기에 따라서 깊이라던가 높이 같은 게 다르구나, 하고 유미는 새삼 느끼고 있었다. 벽 쪽에 떡하고 버티고 선 백과사전 책장과는 천하장사와 갓난아기만큼의 차이가 있다.
"유미양이 목격한 책, 이런 거였지?"
아무렇게나 꺼낸 책 한권을 보고, 유미는 크게 끄덕였다. 엷은 핑크색 꽃무늬가 인상적인, 굉장히 예쁜 표지.
"굉장해, 츠타코양. 제목이 보였어?"
"-그럴 리 없잖아. 내 시력은 안경 끼고서 양쪽 다 0.7이야"
과연. 트레이드 마크인 테 없는 안경은 폼으로 끼고 있는 게 아닌 것 같고. 그럼 어떻게, 라는 유미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 츠타코양은 방금 꺼낸 책장에서 두 권을 더 집어내 '자' 하고 유미에게 건넸다.
"어라?"
저것도 이것도 그것도, 전부 똑같은 것처럼 보였다. 카츠라양이 들고 있던, 그 문고. 하지만, 잘 보니 모두 타이틀이 다르다.
"표지가 전부 같은 거야?"
"색깔별로 네 종류 있지 않았던가. 정말로 모르는구나?"
"응"
"코스모스 문고. 평균적인 여고생인 유미양이 모른다니, 조금 의외네"
츠타코양은 빙글빙글 웃으며 유미를 보았다.
희귀동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보지 말아 줬으면. 평균이라곤 하지만, 좋게도 나쁘게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니까, 당연히 모르는 분야도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코스모스 문고라는 것은, 궁정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소녀소설 전문 문고 종류라고 한다. 정확히는 모두 표지가 똑같은 건 아니고, 핑크 외에도 노란색이나 파란색, 하얀색 등 장르별로 색이 나뉜다고.
'하지만, 소녀소설이라는 거 보통 만화책처럼 화려한 일러스트로 표지를 꾸며 놓는다는 이미지였는데 그렇지도 않은 건가'
"유미양 말이지. 100% 소녀소설이면서도 코스모스 문고가 일러스트를 떡하니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이유, 알고 싶지 않아?"
독심술마저 익혔나, 츠타코양.
"확실히, 일러스트는 중요하지. 어린 소녀들의 꿈꾸는 작업을, 살짝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거니까"
"...."
츠타코양도 충분히 '어린 소녀'에 해당되는 나이인데 말이야, 하고 유미는 생각했다. 왠지, 열 살 스무 살이나 연상인 것 같은 말투다.
"게다가 처음 읽는 소녀들에게 있어서 일러스트는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잖아? 작가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일러스트의 첫인상이 좋으면 집어 들어 줄지도 모르고 말이지"
"저기......, 츠타코양-"
왠지 전문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묘하게 말발이 서니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한 츠타코양은 언덕길을 굴러 내려가는 눈덩이가 되어 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서, 가속도가 붙으며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굴러가는 것이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중요한 건 알았어"
유미는 맞장구를 칠 타이밍에, 겨우 그렇게만 말했다. 이틈에 일시정지 시켜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으니까.
"표지뿐만이 아냐, 본문에도 봐봐"
츠타코양은 문고를 팔락팔락 넘기며 내용을 유미에게 보였다. 안돼. 일시정지해서 조금 방향을 바꿨나 했더니, 다시 굴러갈 듯한 낌새.
"안쪽도 전혀 일러스트 없음. 왜냐하면 말이지-"
데굴데굴, 데굴데굴.
유미는 단념하고 츠타코양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섣불리 입을 열어 봤자, 츠타코양에게 다른 얘깃거리를 제공할 뿐이라는 걸 안 것이다. 처음에 씨를 뿌린 건 이쪽. 배가 고프다고 해서 멋대로 셔터 내리고 바이바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츠타코양의 말을 모두 쓰면 길어지니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코스모스 문고는 어른이 읽을 수 있는 소녀소설을 지향하고 있다, 는 것이다. 혹은 어른스러운 소녀들 편의 문고, 라거나.
통근통학 그리고 쉬는 시간 등,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꽤 많다. 하지만 자신이 뭘 읽고 있는지는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은 법이다.
보통 문고본이라면 힐끔 본 정도로는 책 제목까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소녀소설의 경우에는, 한 페이지를 통째로 차지하는 일러스트가 가끔 나타나 버린다. 일러스트로 뭘 알겠어, 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소녀소설이라는 건 알 수 있는 데다, 튀어나온 일러스트가 남자끼리의 러브신이라던가 해 버리면, 역시 그다지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거기서 코스모스 문고는 일러스트를 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내용은 문고에 둘러져 있는 띠의 문구와 표지 안쪽의 줄거리를 보고, 그리고 분야별로 색을 나누어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보이즈 러브 계는 파란색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정해놨다는 것. 코스모스 문고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표지 색의 차이 같은 건 모를 테고,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였다고 해서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겠지. 그것마저 신경 쓰이는 사람은 북 커버를 씌우면 된다.
"......그러니까, 카츠라양이 가지고 있었던 게 어느 책인가 까지는 알 수 없다는 거야"
츠타코양은 10분은 충분히 넘게 이야기한 후, 겨우 이야기를 원래 위치 근처까지 돌려주었다. 일러스트가 없다, 표지가 똑같다, 그럼 코스모스 문고라는 건 분명하지만 어느 책이라는 것까지는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에구에구, 아무리 그래도 길었어.
"그러므로, 로사 기간티아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건 확정. 그 분, 소설 안 읽으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소설 읽지 않는다는 거, 어떻게 알아?"
"올해 5월쯤이던가, '리리안 백서'에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어. 소설이라거나 만화 같은 거 그다지 읽지않는다고"
"흐응"
고등부에 입학한 직후라면, 사치코님 외에는 흥미가 없었으니까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학교신문인 '리리안 백서'에 떡하니 실려있었다는, 레이님과 요시노양이 사촌자매라는 사실도 바로 요전까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나 스스로도 참 대단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거기까지 와서, 겨우 이야기가 연결되었다.
"그래서 아까 레이님이 나온 거구나"
"그런 거지"
레이님은 보이쉬한 외견에 반비례해서 알맹이가 여자애 여자애하고 있다. 애독서가 소녀소설 전반이라고 하니까, 코스모스 문고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이라면, 혹시 추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 소문 이야기라거나 그런 거에는 좀 약한 타입이니까 어떨지"
츠타코양도 참, 카메라 꼬마답게 과연 사람 보는 눈이 날카롭다. 확실히 유미도, 올곧은 레이님에게 소문의 진상을 묻는 건 좀 마음이 무겁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3

 

그 레이 말이지만.
두 사람의 어린 양들이 도서관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던 그 때, 성실하게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을 펴고 있었다.
 
학교와 집이 가깝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흔들리고 있을 동안 집에 도착해서, 점심식사까지 마쳐버릴 수 있으니. 도보 10분에 익숙해져 버린 몸이, 편도 한 시간 반 같은 걸 참아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외모와는 정반대의 아가씨 학교에 다닌 지 벌써 12년하고도 9개월. 이래서야, 아마 고등부 졸업 후에도 리리안 대학이나 단과대에 진학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있다.
"그건 그렇고, 레이쨩 요리는 정말 최고야. 이 핫샌드, 안의 치즈가 알맞게 녹은 데다, 콘크림이랑 고로케랑 양배추 다진 게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정말이지 최고"
레이가 리리안에 머물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 -스-루이며 사촌자매인 요시노가 마지막 남은 핫샌드를 입에 넣고, 런치 메뉴를 절찬했다.
"아부해도 아무 것도 안 나와. 자, 다 먹었으면 빨리빨리 교과서 펴기"
"아부가 아니라니까"
그러면서 요시노는 마지못해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대신 교과서를 테이블 위에 꺼냈다.
여기는 레이의 방.
오늘은 백화점의 연말 세일 시작이라고 둘의 어머니들이 함께 외출해 버린 바람에, 요시노를 불러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어머니들은 피가 이어져 있진 않지만 원래 리리안의 동급생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굉장히 사이가 좋다.
사이가 너무 좋아서 친구의 오빠와 결혼해버렸어, 라니. 게다가 이웃집에 살아버리다니, 사이가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하고 어머니에겐 질려 있었지만. 지금 와서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요시노와는 평생 이웃에서 살고 싶어, 하고 레이 자신이 바라게 되었으니까. 아아, 이제 두 번 다시 헤어지거나 하고 싶지 않아.
-하고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레이쨩"
시야 가득히 요시노의 클로즈업.
"와, 놀래라!"
밥상풍의 테이블에 손을 짚은 요시노는,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 몸을 내밀어 속삭였다.
"레이쨩, 저기. 지금 생각난 건데, 오늘 반에서 말이지-"
익숙한 얼굴일 텐데도, 두근두근 해 버린다. 요시노는 이렇게 눈이 컸었구나.
"......요시노. 잡담은 나중에 해"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쌀쌀맞게 말했다.
"내일 수학 시험, 무지무지 위험해서 나한테 보충수업 부탁한 거 아니었어?"
"하지만, 레이쨩"
"식사까지 나오는 가정교사, 보통 없어"
"예에-"
실은 레이가 아까부터 펴고 있는 교과서란 작년에 썼던 '수학 1'로, 요시노를 위해 책장 안쪽에서 찾아 꺼내 온 것이었다. 요시노는 가을에 수술을 위해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수업 진도를 한참 따라가지 못했다. 점심을 함께 먹은 건 그 뒤의 공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언니' 로서는 귀여운 동생이 낙제지옥에 빠져드는 걸 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이 연습문제 풀어 봐. 그리고...."
요시노를 보자, 땋은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며 불완전연소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에구에구, 하고 레이는 교과서를 덮었다.
"그래서, 뭔데?"
"에?"
"아까 이야기, 들을께. 대신, 그게 끝나면 제대로 공부에 집중. 알았지?"
말한 것과 동시에 요시노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그래야 레이쨩이지"
"나도 참, 무르기도 하지"
하지만,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인간 같은 거 없을 것이다. 천사의 미소. 인간이란 자신에게 없는 걸 원한다고 하는데, 그거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저기, 우리 반 얘긴데. 일부에서 이상한 소문이 흐르고 있어"
기쁜 듯이, 요시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상한 소문?"
나쁜 예감이 든다. 소문 같은 것에 신통한 건 없는 법이다. 1개월쯤 전, '황장미혁명' 이라며 소동이 일어나 엄청 고생했었다. 로사 페티다인 언니의 임신의혹도,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혼자 돌아다니며 일부의 학생들에게는 반쯤 진실로 회자되고 있었으니. 대체, 어째서 사랑니와 임신이 이어지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앗, 나랑 레이쨩은 이번엔 관계없으니까"
"관계있으면 큰일이지. ......그래서?"
일단은 안도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재촉한다. 요시노는 거기서, 조금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에는, 로사 기간티아"
"아?"
"그러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소문의 주인공이야"
"..."
10월에 홍, 11월에 황에다, 이번엔 백. 짠 것처럼 잘 이어진 이야기다. 혹시나 신문부가 꾸민 건가 했지만, 그렇다면 '리리안 백서'에서 특종 기사로 싣는 쪽이 훨씬 임팩트가 있다. 그 부장이라면 절대로 그쪽을 택할 터.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라면 뭘해도 그다지 의외는 아닌데 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약간 불량기에, 무서운 것도 없다. 어지간한 일을 해버리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라면 할만도 하지' 하고 끝나 버리겠지.
"그럼, 자전적 소설이라면?"
"뭐야, 그게"
"예를 들어 말이야, 로사 기간티아가 숨겨진 과거를 적나라하게 그린 고백적 소설을 낸다고 해 봐. 그거, 역시 굉장한 거지. 소동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냈어?"
"그러니까, 그게 '소문' 이라잖아"
"그거, 거짓말이지?"
"너무해-. 레이쨩, 날 의심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소문이 진실이 아냐, 라는 의미인데. 하지만 오해한 요시노는 흥분해서, 무려 옆에 있던 쿠션을 집어 들고 레이에게 던졌다.
"아무리 보충수업이 싫다고 해도, 나, 거짓말까지 해서 도망치려는 생각은 안 해"
"그러니까, 오해라잖아"
이만큼이나 건강해졌다고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역시 유혈사태까지 가는 건 곤란하니 접시가 놓인 쟁반을 집어 들려는 요시노를 양손으로 말렸다.
"1학년인 요시노들은 모르겠지만"
부루퉁한 얼굴의 요시노에게 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건 설명해둬야 한다.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라는 건, ......터부랄까,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기로 되어 있어"
"무슨 말이야?"
"암묵적인 양해랄까.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들 입을 다물고 지키고 있는 듯한 면이 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글쎄......, 난 1학년이었으니까. 자세한 건 못 들었어"
하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로사 기간티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듯 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과거, 라는 건 작년 이야기야?"
"그래"
작년의 겨울을 경계로, 로사 기간티아는 변해버렸다. 요시노에게 설명해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의 로사 기간티아는 지금의 로사 기간티아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쿨한, 나쁘게 말하면 대하기 힘든 선배였던 것이다.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란, 대체 뭐였을까. 2학년이 된 후 갑자기 리리안에서 사라진 예의 학생과 무슨 관계가 있었던 걸까-. 여러 가지로 상상해봤지만, 결국 진상은 알지 못했다. 단지 상당히 큰일이 있었을 거라는 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그만큼 큰일을 자기 스스로 소설로 써 버릴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주위에서 입을 닫은 것도, 로사 기간티아의 상처를 헤집는 짓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 틀림없으니까.
"소문이 퍼지면, 로사 기간티아가 확실히 부정하겠지만. 그 전에, 무책임한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필요가 있겠지"
소문이 소문을 부르는 일도 있으니, 손을 쓴다면 빠른 편이 좋다.
"막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그, 오해를 낳은 출처를 잡아서 대처하면 되잖아"
"출처라니, 어딜 말하는 거야? 레이쨩"
"로사 기간티아의 자서전이 실릴 예정인 책을 내는 곳 말이야. 문예부? '리리안 백서'의 별책이라면 신문부겠고"
시험기간 중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내일 발행 책임자의 반에 가서 설명과 협력을 요구하는 담판을 지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로사 기간티아께는 지금까지 여러가지로 신세를 졌는데도, 무엇 하나 보답다운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이럴 때라도 힘이 되고 싶어.
"우-웅"
하지만 요시노는, 여전히 어려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대체 어디야"
레이는, 아까와 반대로 요시노를 몰아붙였다.
"레이쨩, 간 떨어질 지도 모르는데"
"아까운 척하지 말고, 확실히 말해"
그러자 요시노는, 레이의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꽃무늬 문고를 가리켰다.
"저거"
"......에?"
"그러니까, 궁정사의 코스모스 문고"
ㅡ이건 더 이상, 수학 보충수업이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4

 

다음 날, 소문은 인플루엔자처럼 퍼져 있었다.
확실히 반 전체에 바이러스가 만연해서, 만약 이게 정말 인플루엔자라면 학급 폐쇄겠지, 하는 굉장한 사태가 되어 있었다.
 
"유미양, 오늘 시험 어땠어?"
요시노양이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뺨을 괸 채 물었다.
"엉망. 공부하려고 해도, 로사 기간티아 일이 신경 쓰여서"
"나도. 그럼 최소한 잠이라도 자려고 했는데, 잘 수도 없고"
"......응"
세 과목의 시험이 거침없이 끝난 오후.
별 일도 없는데 장미의 관에 온 뷔통의 동생들은, 사람도 없고 한 틈에 대대적인 한숨을 쉬었다.
내일은 시험 마지막 날. 즐거운 시험방학, 그리고 겨울방학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집에 돌아가서 열심히 남은 과목 공부를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얌전히 집에 간다 해도 결국은 어제와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 같아서, 이렇게 평소 모이는 곳으로 향해 버린 것이었다. 로사 기간티아의 소문이 신경 쓰여서, 공부고 뭐고 될 일이 아니다.
"선배들, 안 오시네"
"레이쨩......, 아니, 언니는 온다고 했었는데-"
소문이 가장 많이 퍼진 게 1학년인 듯하니까, 2, 3학년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평소라면 맨 먼저 장미의 관에 집합해서 대책을 검토할 사람들인데.
"시마코양은?"
요시노양이 생각난 듯이, 고개를 들고 유미에게 물었다. 그왜, 시마코양은 유미랑 같은 반이니까.
"내가 교실 나올 때는 벌써 안보였어"
"그래"
두 사람은 동시에 또 한숨을 쉬었다.
1학년이란, 이럴 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겨우 1, 2년 일찍 태어난 것뿐이라고 로사 기간티아는 자주 말하지만, 그 1, 2년의 차이라는 게 역시 무진장 크다. 하지만 앞으로 1, 2년 더 산다고 해봤자 그 초인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수가 없으니, 역시 선천적인 자질의 차이겠지.
"응?"
계단을 올라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알수 없었지만, 점점 발소리에도 특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레이님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수행이 모자라는 1학년들은 발소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건 알지만 누구 발소리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후한 계단과 바닥을 밟는 삐걱삐걱 소리는 유미들이 있는 2층의 회의실이라는 이름의 살롱 입구에서 멈췄다.
"누가 계시나요?"
비스킷 같은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배경에 진홍색 장미를 깐 채 등장(이라고 유미에게는 보였다).
"어, 언니!"
"어머, 유미. 요시노쨩도"
언제 봐도 화려한 얼굴, 늠름한 표정. 이거야말로 귀족의 공주님, 이라는 듯이 우아한 동작으로 유미의 '언니',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 오랜만에 뵙네요, 언니"
라니, 오늘 아침에만도 복도에서 마주쳤잖아. 하지만 사치코님은 '그렇구나' 하고 미소 짓고, 둥근 테이블의 유미 정면에 앉았다.
"그래서?"
사치코님은 등을 똑바로 펴고, 테이블 위에서 손가락을 모으며 물었다.
"대체 너희들, 뭘 하려는 거야?"
유미는 요시노양과 동시에 '에?' 하고 되묻는다. 그러는 사치코님은 뭘하러 오신 걸까.
"집에 갈까 했더니, 복도에서 레이가 부르잖니. 그리고는 장미의 관에 가 보라고"
"그래서, 그 레이님은"
"잘은 모르겠지만, 1학년에게 잡혀 있었어"
사치코님의 말에 겹치는 듯이, 우지끈 우지끈 하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틀림없이 레이님이겠지.
"늦어서 미안"
짧은 앞머리가 서서 이마를 다 드러낸 채 레이님은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이 거의 없는 틈을 타서 복도부터 뛰어온 모양이다.
"좀더 조용히 할 수는 없을까"
사치코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요시노양은 땀 맺힌 레이님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살짝 닦았다.
"밀크 홀에 들렀다 왔는데, 역시 들어온 양이 적은 모양이라 빵은 다 팔렸었어"
그러면서도 레이님. 곰 아저씨 그림의 귀여운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뭐야, 그거?"
요시노양이 물었다.
"아까 1학년한테서 받았어. 직접 만든 과자인가 봐. 다들 나눠먹자"
꺄앗- 하고 기성을 올린 것은 유미뿐이었다.
"그럼, 얼른 차 끓일게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아까부터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올 때는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도시락 같은 건 가져오지도 않았고.
"시험 중에 컵케이크 같은 걸 굽다니"
요시노양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 컵케이크는 레이님이 받은 거니까. 당연히 그 파티셰는 레이님을 동경하는 인물일 것이다. '동생'으로서는 역시 조금 질투하게 되는 거겠지. 입 밖에 내는 건 조금 싫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요시노양도 배가 고플 테니까. 이런 걸 딜레마라고 하는 걸까.
하지만 홍차도 다 돌아가고 이야기가 재개되자, 요시노양은 케이크가 여기 있게 된 경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맛있게 위장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아마 그건 예의 로사 기간티아에 대한 소문 쪽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기 때문이겠지.
 
"나도 코스모스 문고를 모두 읽은 건 아니니까, 절대로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하고 먼저 못을 박아둔 후 레이님은 말했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 신간이 아닐까 싶어"
"신간이라니, 언제 나온 거야?"
사치코님이 물었다.
"오늘. 매월 16일에 발매되니까"
"오늘!?"
요시노양과 유미는,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대학교 서점에 갈 생각이라면 헛수고야. 아까 보고 왔는데, 그런 책은 다 팔리고 없었어"
레이님의 한마디에 두 사람은 즉각 착석했다. 으-음, 행동을 완전히 읽히고 있어.
"코스모스 문고는 발행일에 한권씩 밖에 들여놓지 않는대. 개점과 동시에 고등학생이 사갔다니까, 시험 사이의 쉬는 시간에 고등부 건물에서 대쉬한 학생이 있었던 거지"
"힘도 좋아"
요시노양이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좀 전에 자기도 마찬가지로 대쉬하려고 했으면서.
"그럼, 지금 시점에서 단서는 없는 거군요"
"그게 말이지, 유미쨩"
레이님은 '기다리셨습니다.'라는 듯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어라?"
그건, 어제 츠타코양과 함께 도서관에서 봤던 것과 꼭 닮은 문고본. -그렇다. 코스모스 문고였다.
"하지만 레이. 분명히 다 팔렸었다고 했었잖아?"
사치코님이 우아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니까 오늘 발매된, 다른 책을 사 왔잖아"
"아무튼, 레이쨩도 참, 자기 살 것만 사 온 거야?"
요시노양은 완전히 질려버려서, '언니'도 존댓말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상태다.
"아니라니까. 뭐 확실히, 이것도 나중에 읽긴 하겠지만"
그러면서 레이님은 문고의 페이지 사이에 끼여 있는 전단지를 꺼냈다.
"'코스모스 통신'?"
4단으로 접힌 전단지의 표지 같은 면에, 장식된 문자로 크게 적힌 타이틀을 읽자 레이님이 '그래'하고 끄덕였다.
그것은 신간안내라거나, 작가의 한마디 메모라거나, 그런 것이 소개되어 있는 글자 그대로 '통신' 전단지라고 한다.
"애초에, 제목도 모르고서 어떻게 그 책을 서점에서 찾았다고 생각해?"
"글쎄요...."
그러고 보니, 하고 지금 생각했을 뿐, 그런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서, 이 '코스모스 통신'이 등장하는 거지"
열띠게 이야기하는 레이님은, 실례지만 유미의 눈으로 보자면 역시 미소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나데라의 교복을 입혀 놓으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생각하지만, 내용물이 보시다시피 소녀소설 애호가라서야 어딘가 언밸런스.
"신간안내 쪽에, 봐. 몇 줄 뿐이지만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아, 정말이다"
가리켜진 곳에 전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 - '가시장미 숲'  작/스가 세이 - 학교에서 보냈던 그 몇 개월은, 환상이었던 걸까-. 마음 속 가시장미 숲에, 세이는 모든 것을 닫아 잠갔다. 기대의 신인작가, 충격의 자전적 데뷔작! >
"과연"
사치코님은 작게 말했다. 하지만, 유미로서는 전혀 '과연'이 아니었다. 어째서, 겨우 그 정도의 정보로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는 게 되는 걸까.
"유미, 로사 기간티아의 본명 말해보렴"
"에 그러니까...... 분명히 사토-, 사토 세이"
"그래"
세이프. 장미님들의 이름을 대답하지 못하거나 했다간, 사치코님께 뭐라고 야단맞을지 상상도 되지않는다.
맞아맞아, 로사 기간티아의 이름은 사토 세이. 화려한 외관치고는 의외로 흔한 이름이니까, 기억에 잘 남아있어 주지않는다.
"아, 세이만은 똑같아"
그건 알아챘지만, '그래서?' 하는 느낌. 애초에, 발음은 같아도 한자가 전혀 다르다. 옆의 요시노양도 아직 알 수 없는 모양으로, 혼자 중얼중얼 '스가 세이' 라던가 '사토 세이'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슈가 세이!"
갑자기 반짝 떠오른 듯, 요시노양 치고는 드물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알았어. 스가는 분명히 슈가인 거야, 슈가. 유미양, 슈가라고 하면?"
요시노양, 완전히 춤이라도 출 것 같아.
"설탕? 설탕...이라면, 사토!?(일본어로 '설탕(砂糖)'을 '사토'라고 발음합니다. - 역자 주)"
그러니까, 스가 세이 = 사토 세이인 것이다, 라고. 억지라고 하면 그 뿐이지만, 꽤 잘 들어맞는 추리일지도 모른다. 스가, 슈가, 설탕, -그래서 사토.
"하지만, 그것만으로 로사 기간티아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라니"
"그래. 조금 섣부른 감이 있어. 그러니까, 소문의 출처가 과연 그 전단지 뿐일까?"
흥분한 기색의 1학년들과는 대조적으로, 사치코님은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담담히 말했다.
"라고 하시면?"
유미는 겉만이라도 가다듬으려고, 조금 얼굴 근육을 정리한 후에 되물었다.
"읽지 않았으니까 아직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예를 들면 소설의 내용이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와 아주 비슷하다거나. 그렇다면, 로사 기간티아가 스가 세이라는 근거가 되니까"
"저기, 하지만. 발매일은 오늘이잖아요? 그럼, 3, 4일 전부터 저희 반 아이들이 소곤대고 있던 건 이상하죠?"
발매가 되지않으면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1학년은 작년 로사 기간티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건, 거의 알 수 없을 것인데.
"발매일 전에 입수할 방법이 있는 거지, 이게 또"
레이님은 팔짱을 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칸다 근처의, 큰 서점에 가 보렴. 만화책이나 문고가, 발매일 3, 4일 전에 이미 진열되어 있을 테니까"
"칸다, 라면. 고서점 같은 곳이 잔뜩 있는, 그 칸다 말이세요?"
"응. 꽤 유명한 이야기야"
그게 정말이라면, 지방의 산속이라거나 작은 섬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발을 구르며 분해할 이야기다. 도쿄란 편리하구나, 라니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이 감탄해서 어쩌자는 거야.
"그럼 카츠라양은, 발매일 전에 칸다 같은 곳에서 그 '가시장미 숲'을 사서 읽었다는 건가요"
"그 카츠라양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학교에서는 쉬쉬하고있지만, 소문은 선배들에게서 들을 수도 있을 거고. 유미쨩도 두세 살 위의 친언니가 리리안에 다니고 있다면 얼핏 들은 이야기로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 레이쨩한테 들은 적 없어"
요시노양이 조금 삐진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니까, 한살 위의 우리 정도로는 거의 모르는 일이야. 분명히 두세살이라고 이야기 했잖아?"
저기, 두 분, 지금은 사랑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한심해하면서도, 조금 부럽기도. 그야 유미는, 이런 식으로 사치코님에게 보란 듯이 삐지거나 할 수 없었으니까.
사치코님 쪽을 힐끔 보자, 마침 나이스 타이밍으로 눈이 마주쳐 버렸다. 유미는 마치 훔쳐보다 들킨 어린애처럼 안절부절못해 버렸다.
"하지만, 시험 기간 중인데 굳이 칸다까지 가서 문고를 사고, 그걸 읽어버리다니 굉장하지않아요?"
요시노양은 '여유있구나' 하며 웃었지만, 그건 좀 다르지 않을까나. 카츠라양의 그건, 결코 여유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도피, 겠지"
레이님은, 유미가 생각하고있던 것과 같은 단어를 대뜸 잘라 말했다.
"도피?"
신기한 단어라도 들은 듯이, 사치코님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설마 사치코님쯤 되는 분이 '도피'라는 단어를 모른다건 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유미는 그 뜻을 설명했다.
"도피, 라는 건 말이죠. 해야만 하는 게 있으면서도, 뭔가 다른 것에 도망쳐 버린다는 현상이에요"
사치코님은, '그 정도는 알고 있어' 하는 얼굴을 했다. 거기서, 레이님의 지원.
"이 컵케이크 같은 게, 그야말로 그 전형이겠지. 나도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뜨개질 같은 것에 도망치고 싶어지는 걸"
"내가 알 수 없는 건, '해야만 하는 것' 이라는 게 뭘 뜻하는 건가 하는 거야"
"뭐냐니-"
시험공부잖아요, 그건. 사치코님을 뺀 세 사람은, 무심코 얼굴을 마주봤다.
'사치코님이란, 설마......'
유미의 예감은 맞았다.
언니는 비유도 뭐도 아니라, 정말로 시험공부라는 걸 전혀 하지않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5

 

이대로 새로운 정보도 없이 장미의 관에서 고민만 하고 있어 봤자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하니, 넷은 일단 해산하기로 했다.
그 문고의 실물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정확히 말하자면, 유미는 카츠라양이 가지고 있었던 그 비슷한 책을 멀리나마 보긴 했지만), 현재 상태로는 어디까지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 사건을 이러니저러니 주물러 대 봤자 아무 것도 될 일이 아니다.
이미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집 근처의 서점에서 '가시장미 숲'을 살 거라는 레이님과 요시노양에게 교문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유미는 사치코님과 둘이서 버스를 타고 M역으로 향했다.
역 빌딩 안에는 커다란 서점이 들어서 있다. 코스모스 문고도 많이 들여 놓으니까, 아무리 소문이 퍼졌다 해도 발매일에 다 팔려 버리거나 하진 않겠지, 라는 레이님의 어드바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텅 빈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은 사치코님은 말이 없었다.
"정말로, 로사 기간티아인 걸까요"
"......아니지 않을까"
"뭔가 근거라도?"
"별로"
이야기를 슬쩍 꺼내 보아도, 이래서야 이야기가 전혀 이어지질 않는다. 그러다 결국에는 잠자코 창 밖만 바라봐 버리니까,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게 귀찮은 건 아닐까 하고 유미는 이상한 걱정을 해버렸다.
버스는 로터리를 크게 돌아서 역 앞의 정류장에 멈춰 섰다. 역의 계단을 올라가, 개찰구를 옆으로 지나서 유미와 사치코님은 역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의 서점은 3층에 있다.
유리문을 열 때도 에스컬레이터에 탈 때도, 여전히 사치코님은 말이 없었다.
'나, 뭔가 기분 나쁘실 말 했나......?'
앞뒤로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이, 에스컬레이터 옆의 거울 같은 벽에 비치고 있었다. 잘 보니, 사치코님은 그다지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라, 그저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때 '생각 중'이라는 푯말이 머리 옆으로 나와 있으면, 이런 식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라던가 말이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 같은가, 사치코님의 경우엔 절대 하지 않겠지.
한 층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서점은, 에스컬레이터가 다 올라가기 전부터 서점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바로 앞의 잡지 코너에서 서점으로 들어가, 사치코님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이거야말로 숙녀, 라는 완벽한 폼으로, 사치코님은 문고를 정리하고 있는 남자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코스모스 문고의 신간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쓸데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따위, 사치코님의 행동 패턴에는 없는 거겠지. 변함없이 늠름하고 멋지고, 덤으로 '이래도냐.' 할 정도로 아름답기까지.
"아......, 예, 예. 코스모스 문고 말씀이시죠"
기분 탓인지, 점원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모델 중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미인이, 고개를 든 순간 나타났으니 별 수 없겠지만.
'--라니. 팔불출 다 드러내는구만......'
마음 속에서 혼자 옆구리를 찔러 가며, 걷기 시작한 사치코님 뒤를 쫓아간다. 그 앞을 걸어가는 점원, 이번엔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귀가 새빨갰다.
"이쪽입니다"
문고 코너와 만화책 코너 사이, 주니어 소설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코너에 두 사람은 안내되었다. 주로 선명한 일러스트를 표지로 한, 화려한 분위기의 문고가 옆으로 눕혀져 빼곡히 쌓여있다. 거기가 소녀소설 신간 코너인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발매된 '가시나무 숲'은-"
사치코님, 굉장해. 자기 스스로는 손대지 않고, 전부 점원에게 맡길 셈이다. 뭔가, 전통 있는 포목점에서 물건을 본다거나, 고급 보석가게에서 진열대 안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보이도록 하는 듯한 관록. 셀프 서비스로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서 계산, 이라는 일반적인 시스템을 설마 모르시는 것도 아닐 텐데.
"이걸로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아아, 드디어 점원 말투까지 바뀌어 버렸어.'
사치코 매직. 이 점원 분,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정도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괜찮으시겠사옵니까.' 라는 말 한번이라도 쓴 적이 있었을까.
"그것, 두 권 사도록 하죠"
사치코님은 말했다. 자기 것과 유미 것으로 두 권, 이라는 뜻이겠지.
"예, 여기-"
말하려던 점원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졌다. 잘 보니, 꽂혀 있는 문고의 산에 한 군데만 계곡이 생겨서, 책장의 위판으로 보이는 나무가 문고 한 권 사이즈로 드러나 있었다. 그곳이, 좀 전에 그가 '가시장미 숲'을 꺼낸 장소였던 것이다.
"다 팔린 건가요"
사치코님이 잠깐 살피고는 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싶을 정도로 점원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어쩔 수 없죠"
그럼 한권으로 괜찮다고 사치코님은 점원에게 말한 후, 유미에게 돌아섰다.
"미안하지만 유미. 넌 다른 서점에서 사 줘"
"아, 예"
뭐, 유미의 경우에는 사치코님보다 훨씬 가볍게 책을 살 수 있으니까 괜찮지만. 그래도 어쩌면 책장 아래의 서랍에 재고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조금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틀린 생각이었다.
"두 시간쯤 전에 보충해 뒀었는데, 벌써 다 팔리다니...."
점원분의 머리 근처에 무수한 물음표가 날아다니고 있었으니, 정말 굉장한 기세로 팔려나간 거겠지. 그 이유, 유미는 알 수 있다. 아마, 하교 중의 리리안 학생들이 피라니아처럼 사 간 것이틀림없다.
'어쩔 수 없죠.'
마음 속에서 사치코님 흉내를 내 보았다. '가시장미 숲'은 집에 가면서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다른 서점에 들러서 손에 넣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끝낸 사치코님은, 연말 바겐세일이라는 쇼 윈도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똑바로 개찰구가 있는 2층으로 내려갔다. 로사 기간티아 일은 물론 신경 쓰이지만, 이대로 언니랑 같이 쇼핑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마음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던 유미는 그래서 조금 힘이 빠져 버렸다.
뭐, 귀가 도중이고, 교복이니 들를 수 있는 건 서점 정도가 아슬아슬한 선이라는 건 알지만. 공인된 자매인데도 둘이서 어딘가 놀러간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으니. 이럴 때 조금쯤 즐거운 한때를 원하는 것도 그다지 투정이 아니라고 봐.
"......유미"
개찰구 바로 앞에서, 언제나처럼 유미의 타이를 살짝 고치며 사치코님은 약간 자조 섞인 투로 말했다.
"그만두는 게 좋을까"
"에?"
앞의 말이 전혀 없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유미는 눈을 깜빡였다.
"그만두다니, 뭘......말씀이세요?"
조심조심 물어본다. 설마 사치코님, 자매의 관계를 그만둔다거나 하시는 건 아니시겠지.
"이걸 읽는 거"
"하아?"
그 '이것'이, 사치코님의 학생용 가방에 들어가 있는 지금 막 산 문고본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놀랐다.
그야.
"읽으려고 사신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동생에게 양보 받아가면서까지 손에 넣은 마지막 한권의 책을, 어째서 지금에야 읽느냐 읽지 않느냐 고민하시는 걸까, 사치코님은.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를,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아"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라니.
'항상 자신만만한 언니가, 내 의견 같은 거 내 의견 같은 거......'
절대 참고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도망치고 싶어지는 걸 열심히 참고, 눈만 살짝 위로 떠서 사치코님의 얼굴을 보자, 사치코님은 아직 유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말이죠"
별 수 없이, 무거운 입을 연다. 언니의 질문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유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저라면, 이라는 걸로 괜찮을까요"
"물론?"
마음대로 말하렴, 하고 사치코님은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숙였다. 삼단같은 흑발이 사락사락 흔들린다.
"저라면 읽겠어요"
"어째서?"
"로사 기간티아를 좋아하니까요"
"나도, 좋아해. 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밝혀선 안 된다고, 지켜줘야만 한다고. 사치코님의 마음은 아플 정도로 알 수 있다.
"언니,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아마도 로사 기간티아는 '가시장미 숲'의 작가가 아니라고"
"말했던가"
"예. 그렇다면, 빨리 책을 읽어서, 로사 기간티아가 아니라는 확증을 얻고 싶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읽어도,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다지...."
"그다지, 라니"
"로사 기간티아가 스가 세이라면, 아마 존경할 거예요. 책에 사인받을 지도 모르죠"
하고 유미가 말하자, 사치코님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저기......, 언니?"
또 말도 안 되게 엉뚱한 소리를 해버린 걸까. 하지만, 사치코님은 웃고 있었다.
"좋아. 너의 그런 점"
"?"
"그렇구나. 조금 본받아 볼까. 읽을 만큼 읽고, 그 후에 생각해보면 되는 거니까"
"저기...."
전혀 종잡을 수가 없는데요. 설마, 로사 기간티아 앞에 둘이 나란히 서서 사인받는다는 생각 같은 걸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만.
이하생략이라는 식으로, 사치코님은 말을 줄이고 개찰구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요시노양들처럼, 최소한 집이라도 가까우면 좋을 텐데. 그럼 좀더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 테니까.
도중에 버스를 내려서 들른 서점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굉장히 작은 가게로, 코스모스 문고는 발매일에 한 권씩밖에 들여놓지 않는 것 같았지만 역에서 꽤 멀다는 것과 눈에 띄지 않는 외관 덕에 '가시장미 숲'은 무사히 유미의 소유물이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