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3권 가시나무 숲 -2- 하얀 장미

하얀 장미(シロイバ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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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은 뭘까. 나는 자문했다.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친구라는 말로 끝내 버릴 만큼 냉정한 관계는 아니며, 그러나 동성인 이상 아마 연애라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이름을 갖지 않은 감정은, 매일 조금씩 커져 가서 조그마한 이 몸 안에서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를 주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꺼내 줘.
카호리에게 이 마음을 알려야만 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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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이는 고등학교 2학년 봄, 처음으로 카호리와 같은 반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과 정반대인 카호리에게 반발심마저 느꼈으나, 차츰 자신에게 빠진 부분을 채우려는 듯, 카호리의 존재가 마음 속의 점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평생 곁에 있고 싶어. 세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카호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정해져 있었다.
어른들은 점점 친밀해져 가는 소녀들을 걱정해, 카호리의 전학 이야기가 두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진행되어 간다. 자신들의 장래에 절망하고,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된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의 밤, 서로 손을 맞잡고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종착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숲으로 들어간 세이와 카호리는, 천국에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믿으며 수면제를 마신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죽을 수 없었다.
이윽고 세이가 눈을 떴을 때, 굳게 이어져 있어야 할 카호리의 손은 그곳에 없었다. 하얀 병원의 천정을 바라보며, 세이는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 오열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가시장미 숲'은 그런 내용이었다.

"이, 이렇게 슬픈 얘기라니"
침대 위에 드러누운 유미는, 손을 뻗어 베갯머리의 상자 휴지를 집었다. 일단 볼에서 턱에 걸쳐 좍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패앵- 하고 코를 풀었다.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깊은 숲의 광경이,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금단의 사랑, 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긴 하지만, 심리묘사가 섬세해서 곧바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자신과 사치코님에게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주인공인 세이씨를 응원하면서도 틀림없이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예감을 안고 단번에 읽었다.
두 시간 조금 안 되었을까. 이렇게 빨리 문고 한권을 읽은 건 처음이야. 집에 들어오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지금은 벌써 밖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유-미, 잠깐 들어간다?"
노크와 동시에, 동생 유우키가 들어왔다.
"뭐야, 불도 안 켜고"
라면서 문 바로 옆의 스위치를 멋대로 켠 그는, 대홍수가 지나간 누나의 얼굴을 보고 솔직히 말을 잃고 있었다.
"들어와도 돼, 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 방에 들어오는 게 예의잖아"
아직 훌쩍훌쩍 하고 있는 코를 티슈로 누르며 유미는 말했다. 동생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래 뵈도 레이디니까.

 

 

 

"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아마도, 최대한의 용기를 짜내어서, 유우키는 물어 왔다. 이런 면은 남자애다. 경우에 따라서는 힘이 되어 줄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문고본, 읽고 있었어. 슬픈 이야기"
"뭐-야"
명백하게 안도한 듯한 얼굴을 하고, 어깨로 심호흡 같은 걸하고 있는 걸 보니, 조금 복잡. 좀더 놀래켜 주면 좋았을 걸.
"뭔가 볼일이라도 있어?"
"고어사전 빌려줘. 내거랑 다른 거 가지고 있잖아"
뭔가 딱 떠오르는 게 없어서, 라며 가지고 온 자신의 사전을 한손으로 흔들며 말했다. 출판사에 따라서 그렇게나 다른 걸 까나.
"괜찮지만"
유미는 책상 위에서 고어사전을 집어, '자' 하고 유우키에게 넘겼다. 케이스에서 꺼내, 뭔가 팔락팔락 살펴본 후, 그는 만족스러운 듯이 '응' 하고 끄덕인다.
"이거, 내일까지 빌려 줘"
"안돼"
이건 그다지 동생 괴롭히기가 아니다. 그러나 유우키는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왜"
"그야 나, 내일 고문(古文) 테스트 있는걸 뭐"
유미의 대답을 들은 유우키는, 무표정으로 한마디 '바보?' 라고 말했다.
"내일 시험 있는데, 소설 읽고 울고 있으면 말이 안 되잖아"
그 말대로니까 뭐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다. 네가 맞아, 동생아. 하지만, 알고 있어도, 책이 이 방에 있는데 읽지 않고 놔둘 정도로 의지가 강하진 않단다, 누나는.
"나쁜 말안할테니, 공부하자.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해도 백점 맞을 만큼 우수한 유전자를 이어받지않았으니까"
톡톡. 마치 10년은 어린 아이를 타이르는 듯, 유우키는 유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이어이, 약간이긴 하지만 내가 먼저 태어났다구, 하고 유미는 찔러주고 싶었지만, 보호받는 입장 같은 게 조금 기분 좋아서 그대로 여동생 기분을 맛봤다.
아아, 이게 유우키가 아니라 사치코님이었으면, 하고 생각해 버린다.
"너도, 학교에서 고생하고 있구나"
"왜?"
"아무 것도 안해도 백점 받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 같아"
"누나 주위에도 있잖아"
"..."
있고말고. 게다가 이쪽은 용모수려, 집안까지 굉장하다구, 어때 졌지. -라고 말해봤자 그만큼 지는 건 이쪽이란 걸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았다.
"뭐, 사람에겐 각자 자랑거리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침울해지기 직전의 누나를 위로하는 듯이, 유우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우리 자랑거리란 뭐야"
"...아기 너구리 같이 애교 있는 얼굴에, 선천적인 맹함"
"뭐야 그게"
"선배한테서 들은 말" ←그래, 카시와기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겠지ㅡ,.ㅡ
"유우키, 어디가 맹하다고"
"유미는, 나보다 더 맹하니까 모르는 거야"
"하지만, 얼굴의 너구리도(度)는 유우키 쪽이 높아"
"..."
"..."
"그만두자. 레벨 낮은 싸움은 허무할 뿐이야"
"남매싸움할 시간에 공부하는 쪽이 좋으니까"
"응"
"이 사전 가져가도 돼. 난 유우키 사전 쓸 테니까"
드물게 '좋은 누나'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는 남매. 뭔가 싫다아. 재방송해줄 때 밖에 볼 수 없는 오래된 드라마 같아.
"미안"
유우키는 방에서 나갔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5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주위에 가득 차있던 훈훈한 공기는 에어컨을 '건조'로 맞춘 것 보다 빨리, 바싹바싹 말라 버렸다.
"얘들아, 저녁 먹으렴!"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외침에, 한창 먹을 나이의 애들은 '예에-' 하는 밝은 대답과 함께 방을 뛰쳐나와, 앞 다투어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 버렸으니까.
너구리 얼굴에, 선천적 맹함. 거기 더해서 먹성이라는 것도 자랑거리에 넣어 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유미는 소극적으로나마 생각한 것이었다.

 

                *               *               *

 

요시노양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밤 9시 반쯤이었다.
<밤늦게 미안. 하지만, 왠지 누군가 의견을 듣고 싶어서.>
"왜 그래?"
하고 물으며, 아마 로사 기간티아 일이겠지, 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요시노양도, 시험공부하지않고 '가시장미 숲'을 읽어버린 게 된다.
<레이쨩이 말이지.>
"헤?"
한순간, 레이와 세이를 잘못 들은 건가 했다. 설마 요시노양이 로사 기간티아를 '세이쨩'이라고는 부르지 않을 테고, 소설의 등장인물에게 '쨩'을 붙일 거라고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가시장미 숲'의 세이도 아니겠지.
"레이님이, 왜?"
<...이 일에서 손을 뗀다고.>
어째서일까, 라는 요시노양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다.
"어째서, 라니. 내가 알 리 없잖아. 요시노양한테 묻고 싶을 정도야"
<그런가... 나만 알 수 없는 건 아니구나. 왠지 혼란스러워서, 내 감수성에 문제가 있는 건가하고 걱정해 버렸어.>
"침착해, 요시노양. 레이님이 손을 뗀다니, 무슨 일이야? 시험공부 때문에 '가시장미 숲' 읽는 걸 뒤로 미룬다거나, 그런 거 아냐?"
<소설은, 벌써 읽었나 봐.>
"읽었어?"
<하지만, 읽지 않은 걸로 하겠어, 래. 소문에 대해서도, 이후로 일절 상관하고 싶지않다고.>
"통 모르겠네. --앗"
<왜, 유미양.>
"사치코님도, 왠지 꺼리는 기색이었어. 문고본을 사면서도, 읽는 걸 주저하고 있다는 느낌"
<사치코님도?>
"...응"
뭘까, 하고. 두 사람은 수화기를 쥔 채, 서로 말이 없어져 버렸다.
설령 사치코님이 레이님과 같은 이유로 소극적이 되었다고 해도, 결국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렸나 하는 것에 대한 힌트는 전혀 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잠시 후, 요시노양이 물었다.
<유미양은 그거 읽었어?>
그거, 란 물론 '가시장미 숲' 이겠지.
"읽었어. 요시노양은?"
<나도.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라니. 요시노양이 묻고 있는 건 소설의 감상이라기보다, 아마도 로사 기간티아가 쓴 것인가 어떤가 하는 거겠지. 이심전심이랄까, 얼굴을 보지 않아도 친해지면 그런 걸 알 수 있게 된다.
'가시장미 숲'의 작가 프로필 란에는 단서가 될만한 건 전혀 쓰여 있지 않았다. 라기 보다 거의 백지상태. 물론 인쇄미스 같은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빼놓은 것이다.
"글쎄 어떨까. 주인공 세이, 로사 기간티아와는 조금 타입이 다른 것 같은데"
하지만, '전기'가 아니라 '자전적 소설' 이니까 뼈대가 현실이라고 해도 살 부분은 꽤 각색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나, 읽으면서 생각난 게 있어. 로사 기간티아는, 옛날엔 지금처럼 털털하지 않고,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
요시노양과 레이님은 사촌자매에다 이웃이니까, 옛날부터 학교 일 같은 걸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특히 작년은, 고 1과 중 3으로 학교도 조금 떨어져버린데다 산백합회니 장미님이니 드문 이야깃거리가 많았으니, 요시노양은 좀더좀더하고 이야기를 졸랐다. 거기서 당연한 듯이, 산백합회의 간부진이 어떤 사람들인지 들었다는 건데-.
<이야기한 본인보다, 들은 사람 쪽이 이미지에 강렬하게 남거나 하는 법이야. 게다가, 실물을 모르니까 상상만 제멋대로 걸어가서는.>
"응?"
<로사 기간티아라는 사람은 - 당시에는 로사 기간티아 안 뷔통이었지만, 조금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올해 4월, 로사 기간티아를 처음 보고는 다른 사람인줄 알았을 정도.>
"..."
그, 능글능글에다 너털너털의, 어디가 무섭다는 걸까. 요시노양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역시 다른 사람 아닐까, 하고 유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름이 같은 거야. 사토 세이.>
요시노양은, 스가 세이가 로사 기간티아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1년 전의 로사 기간티아는, 그 '가시장미 숲'의 주인공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면 로사 기간티아는 동급생과 동반자살을 기도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게 되어버린다. 그런 일이 실제로 로사 기간티아에게 일어났었다니, 조금 믿을 수 없었다.
<적어도 레이쨩이나 사치코님은, 그 주인공을 로사 기간티아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그다지 건드리고 싶지 않다거나.>
"...그럴지도 모르겠어"
전부는 아니라도, 1년 전에 일어난 무언가를, 고등부 1학년이었던 두 사람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서 손을 떼야한다고 판단한 거라면, 동생인 자신들도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왠지, 몸 전체가 차츰차츰 시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뭐하고 있는 걸까"
낮의 기운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 하루, 시험 열심히 하자.>
"...응"
기분 탓인지, 요시노양도 시무룩한 목소리였다.
수화기를 놓은 후, 유미는 흐릿하게나마 깨달은 것이 있다.
어쨌거나, 자신은 로사 기간티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도, 지금의 마음도, 아무 것도. 그러니까, 책을 읽고 알았다는 기분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의 로사 기간티아를 무시하고서, 과거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는데.

 

 

    2

 

방학 동안의 연락사항이라거나, 꽤 중요한 것들을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하고 계신 HR. 듣는 척만 하고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딴 생각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선생님은 칠판에 요점만 적은 후 끝내 주셨다.
시험공부가 신통치 않았으니, 2학기 성적표를 받는 건 조금 무서운 유미였다. 하지만, 약 1주일 후의 일은 일단 잊어버리고, 시험방학이라는 숙제도 아무 것도 없는 휴가에 들떠 있었다. 어쨌거나, 시험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시마코양, 장미의 관에 가기 전에 로사 기간티아께 잠깐 들르지 않을래?"
"왜?"
폭신폭신한 곱슬머리가 갸웃거리는 머리의 움직임에 맞춰 슬로우 템포로 튀었다.
"그 소문 알고 있잖아? 나, 직접 로사 기간티아께 물어 보려고"
한번은 레이님 말대로 없었던 일로 할까 했었지만, 정말로 모르는 일이었다면 또 모를까, 한번 알아버린 것을 모르는 척 하고서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 자신이 로사 기간티아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깨지는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대하는 것 보다, 정면에서 부딪쳐 오는 게 차라리 기분이 편하다. 물론, 이건 유미의 의견이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마찬가지로 느껴 주실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만약 기분 나쁘신 것 같으면, 그때는 미련없이 사과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미의 관에서 물어도 괜찮지만, 그러면 상관하고 싶지않다는 레이님이나 사치코님까지 끌어들이게 되니까"
"...그래서, 날 부른 건 왜?"
"그야, 로사 기간티아는 시마코양의 언니잖아?"
"응, 물론"
시마코양은 부드럽게 미소지은 후, '하지만' 하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연히 유미양과 함께 간다는 생각은 이상해"
"어, 어째서"
"나도, 굳이 말하자면 레이님들에 가까운 생각이니까. 거기다, 로사 기간티아에 대해 뭔가 하려고 할 때, 동생인 나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어"
시마코양이 한 것과 비슷한 말을, 전에 한번 로사 기간티아의 입에서 들은 것 같다. 시마코양이 로사 기간티아 외에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싫다거나 하지 않다, 라던가 뭐라던가.
"하지만, 신경 쓰이잖아?"
"아니"
즉각 대답.
그런 자매니까, 하고 시마코양은 덧붙였다.
'그런 자매라니, 그런 자매라니, 그런 자매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야 사람들끼리 이어진 거니까, 자매의 형태도 제각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경우에는 사치코님과 친하게 지내는 1학년을 발견하면 싫은데다, 요시노양도 컵케이크를 선물한 아이를 신경 쓰고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와 시마코양은, 차가워. 이건 아무래도 다른 자매와 달리 2학년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성격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로사 기간티아는 시마코양을 자신과 닮았으니까 함께 있으면 편하다고 하셨었고.
"그보다 유미양, 이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에?"
"유미양이 찾아온다는 걸 모르시니까, 빨리 가지 않으면 로사 기간티아는 장미의 관에 가버릴 거야"
"맞아...!"
유미는 가방을 안고, 황급히 복도로 나갔다.
"이따 봐, 시마코양"
실패 실패. 한 가지 일에 신경 쓰느라 다른 곳을 소홀히 하는 건 나쁜 버릇이다. 시험이 끝나면 오랜만에 다들 모여서 다과회하자고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니, 로사 기간티아는 이미교실을 나갔을지도 몰라.
3학년 교실인가, 장미의 관인가. 갈 곳을 헤맨 끝에 전자를 골라 한발 내딛었을 때, 경쾌한 음악과 함께 교내방송이 흘렀다.
<3학년 등나무반, 사토 세이양. 즉시, 생활지도실로 와 주세요. 반복합니다->
'에?'
머리보다 먼저, 유미의 몸은 빙글하고 방향을 바꿨다. 사토 세이양이라면, 로사 기간티아 말이다.
<3학년 등나무반, 사토 세이양.>
그러니까 가야 할 곳은, 교실도 장미의 관도 아니다.
<즉시 생활지도실로 와 주세요.>
그곳은 교무실 옆에 있다.
'하지만, 어째서...?'
방 입구에 걸린 팻말의 문자를 눈으로 확인하며, 유미는 깜짝 놀랐다.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입장인 로사 기간티아가, '생활'을 '지도' 받기 위한 방에 호출받다니.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거기다 자기 일도 아닌 유미마저 이렇게 분한데, 지금쯤 로사 기간티아는 얼마나 굴욕적일까.
그런데도.
"어라-, 유미쨩도 호출?"
당사자인 로사 기간티아는, 예상 외로 밝게 등장하셨다. 유미가 달려온 것과는 반대쪽의 복도를 느긋하게 걸어온다. 아무래도 유미쪽이 호출 받은 사람보다 먼저 와버린 모양이다.
"그럼, 호출 이유는 불순동성교제일까나"
"무...!"
농담같은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렇고, 깔깔 웃는 로사 기간티아의 뒤쪽에 멀찌감치 여학생들이 뒤따르고 있는 모양새는, 분명히 말해 좀 꺼림칙했다. 대부분은 1학년이지만, 개중에는 신문부 부장 같은 사람도 섞여 있다. 방송을 듣고, 가만있을 수 없어진 학생들이 뭉쳐져 버린 듯 하다.
"혹시, 이 배후령들이 나한테 붙어 있는 이유, 유미쨩은 알아?"
"알고 있냐...라뇨. 뭐어, 대충이라면"
과연 로사 기간티아. 배후령이라니 딱 맞는 말이다. -하고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냐.
"호, ...혹시, 로사 기간티아. 요 며칠의 소동을 모르신다거나"
"무슨 일이 있었어?"
이번엔 조금 진지한 얼굴. 역시 거물은 다르다. 생활지도실에 불려 올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데도, 이렇게 밝게 출두할 수 있으니까.
"맞아. 저도 묻고 싶었어요. '가시장미 숲'은 로사 기간티아가 쓰신 건가요?"
"가시장미...?"
로사 기간티아가 고개를 갸웃한 그 뒤에서, 문이 열렸다.
"아아, 사토양. 와 있었구나. 들어오렴"
생활지도 담당 수녀님이 얼굴을 내밀고 들어오길 권했다.
"예. ...그럼, 유미쨩, 얘기는 나중에 계속하자"
윙크까지 하면서 여유만만하게 들어가는 로사 기간티아와는 대조적으로, 유미는 속이 타고 있었다.
왜냐니, 힐끔 본 것뿐이지만, 생활지도실 안에는 학원장님, 중고등부 교장선생님, 학년주임 선생님, 3학년 등나무반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굉장한 멤버들이 노려본다면, 아무 잘못이 없어도 '죄송합니다.'라고 해 버릴 것 같다.
"유미양"
배후령들을 헤치고, 요시노양이 땋은 머리를 흔들며 유미에게 달려왔다. 그걸 계기로 그 주위에 가득 차 있던 긴장감이 풀려, 그때까지 긴장하고 있던 소녀들의 집단도 하나둘 흩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곳을 떠날 기세는 없이, 교무실과 생활지도실 주위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다. 다들, 로사 기간티아가 나올 때까지 여기 있을 모양이다.
"로사 기간티아, 뭐래?"
요시노양 또한 교내방송을 듣고서 황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평소처럼 밝았어. 그리고, 호출받은 이유, 모르시나봐"
"모르셨어?"
이렇게 소동이 벌어져 있는데, 라며 요시노양도 놀랐다. 1학년만큼은 아니더라도, 3학년 교실에서도 그런 기색은 떠다니고 있을 텐데.
그때, 자세를 낮추고 쫄랑쫄랑 생쥐처럼 전방을 향해 전진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교복을 입은 생쥐는 생활지도실 정면에서 멈추고는, 그 문에 몸의 측면을 찰싹 붙인 채 정지했다. 벽과 동화하려는 닌자냐, 아무튼.
"...저기, 생활 지도실은 벽도 문도 방음처리되어 있어요"
보다 못한 요시노양이, 여보셔요 하고 말을 걸었다.
"어, 어머, 싫다. 나도 참 무심코 정신이 팔려서. 그다지 엿들으려고 한건 아니여요. 오호호호호..."
생쥐, 닌자, 다시 말해 신문부 부장, 츠키야마 미나코님은 쑥스러움을 숨기려고 그 자리에서 높이 웃었다.
"오호호호호호호"
입가에 가져간 손이, 생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거기 계신 분은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의 스-루, 시마즈 요시노양. 게다가 로사 키넨시스 안 뷔통의 스-루, 후쿠자와 유미양 아니신가요. 안녕하셔요"
"아, 안녕하셔요"
상급생의 인사를 무시할 수도 없이, 유미와 요시노양은 일단 인사를 한 후 슥하고 뒤로 돌아했다. 요시노양은 무심코 말을 걸어버린 거겠지만, 이 미나코님이라는 사람은 그다지 얽히지 않는 편이 좋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신문부가 끼어들며, 별 것 아닌 일이라도 백배 천배로 부풀어서 퍼져버린다.
"어머, 도망칠 필요 없잖아?"
미나코님은 한명에 한손씩 어깨를 잡고,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뒤로 돌아를 다시 뒤로 돌아하면. 예, 정답은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그리고, 정면에는 뭔가를 살피는 듯한 미나코님의 얼굴.
"도망친다는 건, 뭔가 나한테 알리면 곤란한 일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 아뇨"
"당치도 않아요"
두 사람은 고개를 붕붕 옆으로 흔든다. 사치코님 정도로 기가 세지 않으면, 이 사람과는 동등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을까. 입을 쩌억- 하고 벌려서는, 단번에 삼켜 버릴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마침 좋은 때에 만났으니까, 이번의 '백장미 사건'에 대한 감상 같은 거, 이 언니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까나"
활기찬 목소리를 갑자기 고양이를 타이르는 듯 한 목소리로 바꿔서 바싹 다가온다. 이렇게 되면 이 나름대로, 오히려 무섭다. 그건 그렇고, 이미 '백장미사건'이라고 타이틀을 붙여버린 거라던가... 전작인 '황장미혁명'에 비하면 조금 싸구려스러운 네이밍이긴 하지만, 그건 이번엔 다듬을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아무 것도 말하면 안돼, 유미양"
요시노양이 팔꿈치로 유미의 팔을 찔렀다.
"알고 있다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한마디라도 이야기할 생각은 유미도 전혀 없었다.
그 한마디가, 로사 기간티아에게 얼마나 폐를 끼치게 될 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충분히 상상이 된다. 내부사정을 아는 후쿠자와 유미양과의 담화, -라고 '리리안 백서'에 적히기라도 했다간, 그냥 짐 싸서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는 수밖에 없다.
"신용 없네에. 이래 뵈도, 그때 이후로 반성하고 조금은 자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인가요"
요시노양과 레이님의 앙케이트 용지를 혼동해서 발표한 것 말일까. 아니면, 요시노양이 레이님께로사리오를 돌려줬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을 토대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아름다운 자매애의 소설 나부랭이를 써낸 것 말일까.
"실은 곤란한 상태라구. 시험공부에 치여서 츠키야마 미나코쯤이나 되는 자가, 이 소동을 어제 오후까지 몰랐던 거야. 생각해봐, 신문부가 뒤에 처져서야, 말이 안 되잖아? 내일부터는 이미 시험 방학이고 하니, 일단 여기서는 일주일 후에 초점을 맞춰서 크게 한방 터뜨리고 싶거든? 그러니까 협력해 주지 않을까나"
'...안돼'
이 사람, 전혀 반성하지 않았어.
"협력해 주면, 로사 기간티아를 위해 '리리안 백서'가 팔 걷어붙이고 힘써 줄 텐데 말이지이"
밀어서 안 되면 당기라고. 이번엔 먹이를 뿌려 왔다. 아무리 유미가 먹보라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쉽사리 집어삼킬 만큼 바보는-, 바보는--.
"괜찮을까나? 그렇게 좋아하는 로사 기간티아가 퇴학당해 버려도"
"퇴, 퇴학?"
끝에는 분명히 낚싯바늘이 달려 있는 수상한 먹이를, 유미는 단번에 집어삼켰다.
"유미양, 침착해"
요시노양이 어깨를 잡고, 한발 앞으로 내딛은 유미의 몸을 끌어당겨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가 퇴학당해 버리면!"
"잘 생각해보라구. 학교 측이 소설 쓴 것 정도로 학생을 퇴학시킬 리 없잖아"
"...아"
유미는 낚싯바늘 달린 먹이를 입에서 토해냈다. 위험해, 위험해. 자칫하면 신문부에게 낚여 버릴 뻔 했어.
"그럴까나아. 정말로 괜찮을까나아"
미나코님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우리 학교는, 아르바이트 금지고 말이지? 소설 써서 원고료니 인세니 받게 되면, 분명한 교칙위반이지"
"하지만, 아르바이트 금지는 원칙일 뿐이고, 제대로 허가만 받으면 해도 괜찮도록 되어있을 거예요"
놀랍게도 요시노양, 마음을 다잡았는지 미나코님 상대로 반론을 시작했다. 확실히 소수이긴 하지만, 리리안 여학원에서도 이유에 따라 아르바이트는 허가되어 있다. 주로 가계를 돕기 위해서라거나, 특수기능 육성을 위해. 특수기능이라 함은, 다도나 꽃꽂이나 무용 등으로 제자가 있는 사람이나 극단에 들어 있어서 예능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등이 그 대상이 된다. 물론, 어떤 형태건 학생 신분으로 외부에서 수입을 얻는 거니까 학교 측이 보호자와 본인을 불러내어 충분히 이야기를 한 후에야 허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로사 기간티아가 허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려온 거잖아?"
"...그건"
그러나 요시노양, 건투에도 불구하고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무리라니까, 신문부 부장 상대로 대등하게 논쟁이라니.
"물론, 교칙위반 한번 정도로 퇴학 까지 가는 일도 그다지 없겠지만. 절대로 없는 것도 아니거든"
말을 너무 빙빙 돌려서 유미 머리로는 처리속도가 따라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뭐야, 교칙위반 한번 정도로 퇴학당하는 일도 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데이터에 의하면, 몇 년인가 전에 풍속 관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은 생활지도실에 불려간 그날 곧바로 퇴학처분이 되었었어"
데이터라니, 대체 무슨 데이터인지.
"하지만 풍속 가게와 소설가는 전혀 레벨이 다르잖아요"
용기를 짜내어, 유미도 반론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어머' 라는 냉랭한 웃음.
"생각하는 건 각자 사람 나름 아냐? 자신의 몸을 파는 것과 정신을 파는 것, 대체 어디가 달라"
"...에 그러니까"
전혀, 완전히,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것을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츠타코양 같으면, 이럴 때 상대를 말로 압도할 기술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멀리서 보고 있던 1학년생들이 '풍속' 같은 학교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듣고 소곤대기 시작했다. 곤란해. 이대로라면, 로사 기간티아가 풍속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서 불려왔다는 오해의 소문이 퍼져버릴 거야.
"'리리안 백서'에서 서명운동을 벌일 수도 있어. 로사 기간티아를 퇴학시키지 말아주세요, 하고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저희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어머, 유미양은 아까 로사 기간티아와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실제로는 어때? 예의 '가시장미 숲' 이라는 소설, 로사 기간티아가 쓴 거야? 아냐?"
아까까지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고 반쯤 단정짓다시피 했었으면서. 츠키야마 미나코님은 다시 살피듯 다가왔다.
'사치코님의 클로즈업과는 또 다른 식으로 무서운데.'
슬금슬금슬금. 점점 벽 쪽으로 몰려간다.
과연 미나코님. 보기엔 물러서 금방 넘어갈 듯한 요시노양을 몰아붙이지 않고, 곧바로 유미를 택하는 점 같은 건, 꽤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 요시노양은 저렇게 보여도 사실 심지가 굳고 꽤나 완곡하니까.
"정말로,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요"
유미가 눈을 감고 외친 것과 동시에, 등 뒤의 벽이 쓰러졌다.
"유미양, 뒤, 문, 열려!"
일본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의 말 같은 요시노양의 어드바이스도 무색하게, 유미는 갑자기 비어버린 등 뒤의 블랙홀에 뒤통수부터 빨려 들어갔다.
"히에---"
어째서 문에 기대고 있어 버린 걸까, 라던가, 어째서 문이 밖으로 열리는 게 아니었을까, 라던가, 하필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문이 열릴 것까지야, 라던가. 뒤로 넘어지는 그 한순간 동안, 몇 겹의 우연이 겹친 불운을 더할 나위 없이 한탄했다.
'이대로라면 뒤통수 부딪혀서, 더 머리 나빠질 것 같아.'
"위험해!"
풀썩.
'...풀썩?'
위기일발로 유미를 부드러운 무언가가 구했다. 머리는 아프지 않고, 몸은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지긴 했지만, 실내화 바닥은 제대로 양쪽 다 바닥에 닿아 있다.
"유미쨩, 꽤 무거워..."
"엣"
정수리 근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바쳐서 유미를 구한 건, 놀랍게도 로사 기간티아였다. 샴푸의 냄새일까, 아련히 풍기는 민트 종류의 향에 딱 어울리는 상큼한 웃음이 고개를 돌린 그 앞에 보였다.
"로사 기간티아, 로사 기간티아, ...저"
"미안. 더이상 버티질 못하겠으니까 비켜줘"
로사 기간티아는 어기영차 하고 유미를 살짝 들어올려 혼자 세웠다.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받은 거라,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어버렸던 듯, 아무리 로사 기간티아라 해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게다가, 생활지도실 안에서 끌어안은 채 넘어지면 곤란해"
귓가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에, 오싹 했다. 생각해 보니 열린 문 너머에는 입을 벌리고 이쪽을 보고 있는 학원장님이니 수녀님이니 학년주임이니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로사 기간티아는 안의 선생님들께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유미의 머리도 함께 꾸벅하고 누른 후 방을 나왔다.
"유미쨩이 말했던 '가시장미 숲', 대강은 알았어"
아주 조금만 쓴 웃음 지은 로사 기간티아는, 곧바로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던 배후령(지금은 부유령인가)들에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신경 쓰여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테니까 보고하겠는데, 아쉽게도 '가시장미 숲'을 쓴 건 내가 아니니까 분명히 알아두도록"
한순간 썰렁- 해진 후, 명백하게 낙담한 듯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대체 그녀들, 뭘 기대하고 로사 기간티아를 쫓아온 걸까.
"어라, 요시노쨩도 걱정해서 와 준 거야?"
로사 기간티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요시노양에게 말을 걸었다.
"예에. 정말이세요"
"정말, 정말. 나 자신도, 좀 전에 처음 사태를 파악한 참이야. ...그렇고 하니, 이번엔
'리리안 백서'의 기사거리를 제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츠키야마 미나코양"
신문부에게 부드러운 비꼼과 견제를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걸로 기사 쓰거나하면 가만 안 둬, 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거겠지. 제아무리 미나코님이라도 상급생인데다 장미님에게 맞설 용기는 없을 것이다. 이번엔 헛소문이었고 하니.
"자자, 그럼 갈까요"
오른손으로 유미, 왼손으로 요시노양의 어깨를 안고, 로사 기간티아는 기분 좋은 듯 걷기 시작했다.
"아, 어디로요?"
"장미의 관이잖아? 마중나와 준 거 아니었어?"
"맞아, 다과회!"
교내방송 같은 거 덕에, 완전히 그걸 잊고 말았다.
지금쯤 다들, 장미의 관에서 어떤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을까. 로사 키넨시스랑 로사 페티다, 사치코님이랑 레이님.
그리고 시마코양은-.
"덥구만"
밖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는데, 로사 기간티아는 왠지 계절에 맞지않는 말을 하며 미소지었다.
  

    3

 

"호들갑스럽게도 불려가던데?"
장미의 관 2층 살롱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사 키넨시스가 맨 먼저 그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불려간 일 없으니까, 약간 부럽기도"
하고 말한 건 로사 페티다.
"그건 고맙군"
손을 흔들며 로사 기간티아는 경쾌하게 방 한가운데로 가, 비어있는 자리에 유유히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세 장미의 쓰리 샷. 역시 좋구나 화려해서, 하고 유미는 황홀하게 넋을 잃고 바라보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우아하게 서로 미소 짓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로사 기간티아가 확실히 스가 세이가 아니라고 부정한 걸 들은 유미마저도 아직 소화불량이라 이것도 저것도 하고 질문을 쏟아 붓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고 있는데. 장미의 관 대기조는 호출에 대해서 약간 언급만 했을 뿐, 그 뒤로는 아무 것도 물을 기색이 없다.
"드세요"
그때 시마코양이 등장해,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돌렸다. 함께 방에 들어온 요시노양도 설탕이니 분말 크림 등의 스틱을 테이블에 놓고 있다. 그렇게 되니 세팅 관계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어서 별 수 없이 전기 포트에 수돗물을 채운 후 자리에 앉았다.
"생활지도실에 갔다 왔니?"
옆자리에 이미 앉아 있던 사치코님이 작은 목소리로 유미에게 물었다.
"...예"
야단맞는 건가 했지만, 사치코님은 그저 '그래'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사치코님은, 생활지도실까지는 오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것도 주저하는 듯 했다. 어쩌면 동생인 유미가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 일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을 쾌히 여기시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지 않다. 레이님도 요시노양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수고했어.' 라고, 전원 홍차로 건배했다. 누군가 몰래 가져왔는지, 시판되는 과자가 티슈 위에 놓여 있었다. 다과회는 정말 오랜만으로, 이렇게 멤버 전원이 모이는 것도 올해가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잠깐 보고하게 해 줘"
분위기가 일단 가라앉은 때, 로사 기간티아가 천천히 일어나서 말했다.
"요시노쨩과 유미쨩에게는 말한 거지만 소문거리가 된 소설의 작가, 그거 나 아니니까. -이상"
이상, 이라니. 그것만 문자 그대로 '보고'한 후, 로사 기간티아는 재빨리 자리에 앉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차를 마셨다. 시마코양이 탄 홍차를 '품위있어서 좋아' 라던가 뭐라던가 이야기하면서.
"그게 불려간 이유야?"
로사 키넨시스가 물었다.
"그런 거지"
"그래서?"
로사 페티다가 말했다.
"뭐 그다지. 내가 아냐, 라고 확실히 말하니까 풀어 줬어. 그것 뿐. 나 자신도 실물을 읽지 않았고, 실제로 그런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 자체를 좀 전에 막 알았으니까. 뭔가 물어봐도 대답할 도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책을 읽지 않았던 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일단 소문이 퍼져 있고 하니까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어쨌든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두자는 취지로 불러낸 것이었던 듯 하다.
"알았어. 그럼, 이 얘기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자. 어때요, 로사 페티다?"
"이의 없음, 이에요. 로사 키넨시스"
두 사람의 장미님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인 후, 그렇게 이야기를 멋대로 마무리를 지어 버렸다.
'에엣-!? 그런 걸로 괜찮은 거야?'
유미는 마음 속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 올렸다. 물론 실제로도 로사 기간티아의 보고대로일테니까, 그걸로 OK 하고 끝내 버려도 아무 문제없겠지만.
하지만, 장미님들이라면 소문이 퍼진 원인을 생각한다거나, 앞으로의 대책을 세운다거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사 키넨시스도 로사 페티다도, 소문에 휘둘리지 않았으니까 로사 기간티아의 화제에 집착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유미 같은 건, '가시장미 숲'을 읽고 울어버린 데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로사 기간티아 본인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런 식으로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건 왠지 납득할 수 없다.
'아아... 이미 이야기는 완전히 크리스마스 일색이 되어 버렸고.'
완전히, 불완전연소. 이런 상태로는 모처럼의 시험방학도 로사 기간티아 일이 신경쓰여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아차 했다. 그것과 훔쳐보기의 다른 점은 뭘까.
'결국, 나도 로사 기간티아의 배후령중 하나였던 걸까나...'
로사 키넨시스도, 로사 페티다도, 사치코님도, 레이님도, 시마코양도. 이 일에 대해서 적극적이 되지 않은 건, 흥미본위로 움직이고 있지 않아서라면-. 조금, 아니, 꽤나 우울해져 버렸다. 이런, 속물에다 어리석은 나에겐 이곳에 있을 자격 같은 거 없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사치코님의 동생이 되어서 우쭐해져 있었지만, 용모라던가 학력이라든가 그 외에도, 근본적으로 나에겐 뭔가가 빠져 있는 것 아닐까. 그 뭔가라는 게, 의외로 선천적인 것이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자기를 몰아붙여서 재기불능이 되어버리다니. 꽤나 바보다. 나란 앤.'
덜컥 하고 고개를 떨어뜨렸을 때, 머리 위에서 뭔가 떨어져 정수리 근처에 명중했다.
"?"
그건 한번 튕겨서 유미의 컵 옆에 떨어졌다.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은 은색의 공 모양으로, 생각보다 작다. 주워 돌려 보니, 그건 초콜릿을 싸고 있던 은박지를 동그랗게 뭉친 것이었다.
유미가 두리번두리번 돌아보자, 범인은 자수하려는 건지 테이블 위에 올린 손을 약간 들어올려서 작게 흔들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뭐예요, 로사 기간티아.'
입술만 움직여서 묻자, 로사 기간티아는 이번엔 양손을 보자기 모양으로 펼쳤다.
'10?'
그리고 오른손과 왼손의 둘째손가락을 세워서 크로스.
'가위표?'
다시 양손을 보자기 모양으로 한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
'10, 가위표, 10에 얼굴?'
하나도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로사 기간티아는 다시 일련의 동작을 유미에게 해 보였다. 이번에는 입도 뻐끔뻐끔 움직이고 있다.
  '10 곱하기 10인가.'
10 * 10은... 말할 것도 없이 100. 100에 얼굴이라,,,?
"백면상!?"
무심코 유미는 일어서 버렸다. 당연히 소녀들의 그칠 줄 모르는 수다가 뚝 하고 끊어져, 유미에게 눈길이 모였다.
"뭐야? 유미쨩, 할 말이라도 있어?"
"로사 페티다가 어린애에게 묻는 것처럼 물어왔다.
"아, ...예. 아뇨, -죄송합니다"
새빨개지면서 횡설수설 대답한 후, 흐지부지 자리에 앉았다.
"졸지 마"
사치코님이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자고 있던 게 아닌데....'
원흉으로 말하자면, 비스듬히 앞쪽 자리에서 어깨를 떨며, 게다가 눈에 눈물까지 고여서는 웃고 있었다.
'이런 사람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니...'
왠지 바보 같아져서, 더 이상 낑낑대는 걸 그만뒀다.

 

 

     4

 

"사치코- 유미쨩 빌려줘"
다과회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로사 기간티아가 유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외쳤다.
"그건 괜찮지만-"
"걱정마, 걱정마. 교복 벗기고 논다거나 하진 않을 테니"
"....장난치시면 거절할 거예요"
사치코님은 조금 익숙해졌는지, 로사 기간티아의 도발을 쌀쌀맞게 피했다.
"저기, 키스라는 것도 없기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잡혀가는 몸이 된 유미는 바동거리며 말했다. 로사 기간티아는 다른 사람의 동생이건 뭐건 가리지 않고 끌어안기라거나 볼에 쪽이라거나 해버리니까 방심할 수가 없다.
"OK, 아쉽지만 약속할게. 그럼 빌린다"
로사 기간티아는 그렇게 말하고 발길을 돌리더니, 유미를 연행한 채 이번엔 레이님 자리로 가서 요시노양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요시노만 괜찮다면"
레이님은 사치코님처럼 조건을 붙이지 않고 쾌히 승낙했다.
"레이가 시끄럽게 뭐라고 하지않는 이유? 그건 단순해. 내가 요시노쨩에겐 손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로사 기간티아는 깔깔 웃었다.
"에? 그럼, 왜 나만"
나쁜 선배의 먹잇감이.
"리액션이 좋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사치코의 반응도 재미있어. 한 알로 두 번 맛있는 스-루. 감사합니다. 합장"
"..."
뭐라고 해줄 말이 없다. 왠지, 감탄해버릴 정도로 명쾌한 대답. 하지만 합장은 좀 아니지. 적어도 리리안은 가톨릭이니까.
"-그런 관계로. 뒷정리는 셋이서 할 테니까, 여러분은 부디 먼저 가 주세요"
말은 정중하지만, 로사 기간티아의 그것은 조금 억지로 훼방꾼을 쫓아낸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들 몰아내고 나서, 대체 뭘 시작할 셈일까. 뭐어, 요시노양도 같이 있으니까 덮치거나 하진 않겠지 싶지만.
그럼, 뒤는 부탁해. -등의 목소리를 남기고, '여러분'은 차례차례 2층의 방을 나간다. 사치코님도 조금 수상쩍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오후부터 일이 있다던가 해서 레이님을 뒤따라 떨떠름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뭔가 도울 것, 있나요?"
제일 마지막으로, 시마코양이 물었다. 뭐어, 유미들이 남아있으니까 같은 1학년으로서는 거기서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로사 기간티아의 동생인 시마코양이 동떨어져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별로, 이렇다할 건 없는데"
로사 기간티아의 대답은, 그 말 외에 다른 정보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잘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자매니까 말 뒤쪽에 '사실은 너도 남아줬으면 좋겠어.' 라던가 '유미쨩이나 요시노쨩을 빌린 건 사정이 있어서 그래,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라던가, 그런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 있어도 좋지 않을까나. 적어도 미안한 얼굴을 해 보인다거나, 말이지.
"그러신가요.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어이어이. 거기서 물러나도 괜찮은 거냐구. 시마코양을 눈으로 쫓자, '언니에게 휘둘리게 해서 미안해' 하는 미소가 돌아와 버렸다.
"안녕히(ごきげんよう)"
평소와 다름없이, 천사 같은 미소를 남기고 시마코양도 퇴장해버렸다. 풍성한 곱슬머리의 잔상이, 오늘은 왠지 눈에 남아 있다.
"시마코양이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요시노양도 유미와 마찬가지로 생각한 거겠지. 로사 기간티아에게 항의하듯 물었다.
"어째서? 시마코가 남고 싶다면, 전혀 상관없는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면, 남고 싶어도 못 남아요. 그렇지, 유미양"
대답에 대해 더더욱 흥분한 요시노양은, 유미에게 동의를 구해 왔다.
"그런 거야? 유미쨩"
로사 기간티아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유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제가 시마코양이었다면, 역시 남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흐-응"
흐-응, 이 아니잖아. 알았으면, 빨리 시마코양을 쫓아가면 될 텐데. 로사 기간티아도 참, 의자에 턱하니 앉은 채 전혀 움직이려고 하질 않는다.
"뭐하면, 제가 쫓아가도-"
유미가 비스킷 문으로 가려고 하자, 로사 기간티아는 가볍게 말렸다.
"아, 괜찮아"
"어째서요"
"시마코는 설령 남지 말라고 해도, 남고 싶으면 자기 의지로 남을 애니까"
"헤?"
"그런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왠지 연막에 싸여 버린 것 같은데. 하지만, 어쨌거나 로사 기간티아가 그렇게까지 자신있게 단언하는 걸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하아, 그런 건가요"
유미와 요시노양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시마코양이란,로사 기간티아에게 어떤 존재일까.
"요시노쨩이든 유미쨩이든 누구라도 괜찮으니까, 지금 '가시장미 숲' 가지고 있어?"
"아, 예"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자신의 가방 안을 뒤졌다. 먼저 유미의 책이 나왔기 때문에, 로사 기간티아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빌려줄래?"
"괜찮지만요. 뭐 하실 건데요?"
"책 빌린다면 읽는 게 당연하잖아. 냄비받침으로라도 쓸 거라고 생각한 겐가, 자네는"
"아뇨. 사인한다거나"
"스가 세이라고? ....웃기지 않아, 유미쨩"
그래도 입가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가시장미 숲'을 읽는다는 건, 정말로 로사 기간티아는 저자가 아니라는 거다.
"뒷정리, ...할까"
"...응"
말 꺼낸 사람이 의자를 창가에 놓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해 버렸기 때문에, 유미와 요시노양은 별 수 없이 둘이서 테이블 위의 찻잔을 옮기고, 먹다 남은 과자를 한곳에 모았다.
"비기 순간 물 데우기"
요시노양이, 싱크대의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걸 수돗물로 조금 불린 후에 컵과 스푼과 스펀지를 안에 담갔다.
"이 안에서 씻고, 헹구는 것만 수돗물을 쓰는 거야. 어때?"
"그건 굿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요시노양 말이지, 요즘 검객물에 그치지 않고 닌자물도 읽는 거 아냐?"
"들켰나"
수돗물은 더더욱 차가와져 있어서, 확실히 한겨울에는 얼만도 하다고 유미에게 재확인시켰다.
'...차가운 물.'
차가운 공기. 안개가 자욱한, 녹색의 깊은 숲. 장미 가시로 봉인한, 세이의 마음이 잠드는 숲.
차갑다는 감각이, '가시장미 숲'의 한 장면을 유미의 뇌리에 불러일으켰다. 세이와 카호리가 손을 맞잡고, 죽을 장소를 찾아 숲을 헤매는, 그런 정경.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찡-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걷다 지친 두 사람은 식어버린 차로 한 알씩 번갈아가며 수면제를 먹는다. 약이 다 떨어졌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손가락을 번갈아 걸고,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의 입맞춤을 나누는 것이다.
"이야- 수고 수고"
환상의 세계에 질퍽질퍽 하고 흙발을 내딛듯이, 로사 기간티아는 평소의 '아저씨 사양'으로 등 뒤에서 다가왔다.
"설마, 벌써 다 읽으신 건가요"
행주로 테이블을 닦고 있던 요시노양이, 무심코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야, 설마지. 10분 15분 만에 문고본 한권 다 읽을 수 있을 리 없잖아"
확실히. 로사 기간티아가 속독술을 익히고 있다고 들은 적도 없고.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니까, 상을 주려고 잠깐 중단한 것 뿐. 또 금방 읽을 거야."
"중간에 그만두셔도 괜찮으신가요?"
라는 요시노양의 물음에, 유미의 '상?' 이라는 질문이 겹쳐졌다. 로사 기간티아는 한순간 유미를 보고, 뿜어내려는 걸 위장하려는 듯 일단 요시노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절대, 절대, 마음 속에서 웃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이렇게나 정직하기 그지없게 말로 나와 버리는 걸까.
"감상이라고 할 만큼 읽지 않았으니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흥미 깊은 건 분명해.
...일부 사람들이, 여기 적혀 있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알 것 같아"
렇게 말하며 로사 기간티아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두장의 종이조각을 꺼내 유미의 얼굴 앞에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자, 기다리던 상"
"뭔가요, 이건"
색깔 있는 도화지에 고무도장을 찍어서 만든, 지하철표 크기의 종이조각. 자세히 보니, '면식'이라고 적혀 있다. 대학생이 이용하는 식당중 하나, 면식당의 식권이었다.
"언제였더라, 담임 선생님을 돕느라 저녁때까지 같이 잔업했을때, 답례로 두장 받은 거야. 친구랑 라면이라도 먹고 가렴, 하고. 하지만 말이지, 그 시간까지 남아 있는 친구도 없었고, 애초에 면식당이란 거 네 시 전에는 문 닫아 버리거든"
과연. 식권 뒤에는 3학년 등나무반 담임선생님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기본적으로 중고생은 대학교 식당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선생님의 허가가 있으면 Ok로, 그 증명서 대신 뒤쪽에 도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대로 남아 있었어. 2장으로는 쓸 기회가 잘 없으니까"
장미님들이 함께 가기에는 한 장 모자라는 거다. 그렇다고 대학교 구역 내에서는 꽤나 눈에 띄는 교복 차림인 채로 혼자 두번 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진땀난다.
"그럼, 시마코양하고 같이 가시면 되잖아요"
질린 듯이, 요시노양이 말했다. 요시노양으로서는 2라는 숫자가 곧 자매라고 당연하게 답이 나와 있는 거겠지. 예를 들어 레이님이 식권 두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요시노양과 함께 가야하는 것이다.
"시마코랑? 마주 앉아 라면 먹으면서, 무슨 얘기 해?"
생각도 못했어, 라고 로사 기간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든지 괜찮잖아요. 평소에 얘기하는 거라거나"
"평소에, 그다지 얘기하질 않으니 말이지이"
"하지만, 자매잖아요?"
"시마코는 소중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생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서로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게 좋은 거지. 그게 둘 다 마음 편해"
"그런 거..."
요시노양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버렸다. 언제나 함께 있고, 그게 당연하다는 자매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사람으로선, 아마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유미는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네는, 그저 '그런 자매'일 뿐인 것이다.
로사 기간티아 쪽과 요시노양 쪽이 양쪽 끝이라면, 유미와 사치코님은 한가운데에서 약간 로사 기간티아 쪽으로 기울어 있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약간, 이 아니라 꽤나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희가 식권 한 장씩 받아 버리면 로사 기간티아 몫이"
"나는 필요 없으니까. 둘이서 갔다 와"
"그런. 셋이서 라면 두 그릇 나눠 먹어요"
유미는 이제 완전히 얻어먹는다, 라는 기분이 되어 있었다. 과자만으로는 모자라서, 사양이라는 단어를 어딘가 잃어버리고 와 버린 모양이다.
"그런 것보다, 지금은 이걸 읽고 싶은 기분. 그러니까, 가능하면 천천히 라면 먹고 와줬으면 좋겠는데"
"저희가 방해되는 건가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책이라면, 일주일 정도 무이자로 빌려드릴게요"
후배에게 라면 사면서(정확히는 받은 식권이지만) 까지 지금 여기서 읽어야만 할 이유 같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데.
"집에 가면 읽고 싶지 않게 되니까. 미안하지만, 금방 읽을 테니까 기다려 줘"
그런 걸까. -별 수 없이 유미는 식권을 받아 들었다. 아직 그다지 납득하고 있지 않은 요시노양을 억지로 끌고, 면식당에 가기로 했다.
"어-이. 깜빡했어"
장미의 관을 나온 직후, 머리 위에서 로사 기간티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예요?"
중앙 정원을 가운데로 조금 걸어 들어가자, 2층 창문에서 몸을 내민 로사 기간티아가 보였다.
"미안하지만, 올 때 면식당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 사다 줘. 제일 작은 블랙 뜨거운 걸로"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동전이 날아왔다.
"걋"
겨우겨우 나이스 캐치할 수 있었던 건, 잡는 사람의 실력이야 어쨌거나 던진 사람의 컨트롤이 무지무지 좋았던 덕분이다.
"거스름돈 대신, 너희들 것까지 사 와도 되니까. 그럼, 부탁햇"
이쪽의 대답도 듣지 않고 2층 창문은 탁 하고 닫혀 버렸다. 지상의 두 명은, 유미의 손바닥 위에 있는 떨떠름한 동전들과 닫힌 창문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로사 기간티아란..."
"종잡을 수가 없네"
"갈까"
"...응"
배고픔 때문은 아니겠지만, 왠지 갑자기 피곤해져버려서. 그로부터 면식당까지의 긴 길을,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로사 기간티아는 '조금 아는 선배' 정도라면 굉장히 좋지만, 깊이 사귀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사람일 지도 모른다. 아니 뭐, 식권 준다거나 동전 던진다거나 한 것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사치코님도 좀 예측하지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직선적이니까 한번 패턴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어렵지는 않은 것이다. 로사 기간티아의 경우에는, 좀더 비비 꼬여서 더욱 더 안쪽에 본질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로사 기간티아의 동생을 맡고 있는 시마코양이란, 역시 굉장한 사람이겠지-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지나가는 대학교 구역 안을 움츠리고 걸으며, 유미는 결론내린 것이었다.

 

 

   5

 

면식당은 대학교 매점 옆에 있다.
넓이는 주방 포함 교실 하나 정도. 면식당 바로 위에는 카페가 있어서, 샌드위치나 커피나 케이크 같은걸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매점과 면식당과 카페로 하나의 건물이 되어있다. 그게 학생식당과 대학교 건물 사이에 작게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학생들의 요청이라던가 뭔가가 있어서 뒤늦게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점심시간도 꽤나 지나 있었고, 대학교도 방학 전이라 휴강 같은 게 많은 듯, 면식당은 인기척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달리 선택지도 없어서 망설이지 않고 라면을 주문하고 아주머니께 식권을 내밀었다.
"국물 냄비 불을 꺼버린 참이라, 조금 시간이 걸리는데"
아주머니는 식권 뒤를 체크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없어서, 경비절감을 위해 가스곤로를 꺼놓았던 모양이다. 어지간히도 한가했는지, 보통 2~3명은 있을 주방에 아주머니 한명 밖에 없다.
"시간은 괜찮으니까요"
요시노양이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티 없이 웃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웃을 수 있다는 건,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재능일 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탁받아서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
"그럼, 다시 불 붙여 볼까"
아주머니는 식권을 전용 상자에 집어넣고, '으엿차' 하며 큰 냄비 쪽으로 갔다.
"앉아서 기다려요. 다 되면 부를 테니"
끄덕이고, 두 사람은 근처의 자리에 앉았다. 달리 손님이 없다곤 해도, 역시 대학교 시설을 이용하는데 그다지 당당하게 있을 수는 없다.
"나, 면식당에서 먹는 거 처음이야"
"나도"
유미는 요시노양과 눈을 맞추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유치원 때부터 쭉 리리안에 다녔는데도 조금 영역 밖의 장소니까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콩닥콩닥한다거나. 그건 아마, 초콜릿 봉봉을 처음 먹어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조금 시간이 걸린다면"
"얼마나 걸린다는 걸까나"
어차피 로사 기간티아가 '한 시간 안엔 오지 마' 라고 했었으니까, 마침 시간 때우기에는 잘 된 일이다. -하고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자, 달랑 5분 될까 말까 만에 '다 됐어' 라는 목소리가 들려와 버렸다. 평소라면 대체 몇 초만에 나오는 걸까.
나란히 가지러 가자, 아주머니는 손수건을 목에서 늘어뜨리고 먹는 게 좋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아무리 애써도 라면 국물은 절대 튀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가... 이 아이보리색 옷깃에 튀면 큰일이니까"
애기 같아서 부끄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고 하니 두 사람은 들은 대로 손수건을 옷깃에 건 후 나무 젓가락을 갈랐다. 라면에는 챠슈와 나루토(일본식 라면에 고명으로 들어가는 돼지고기와 소용돌이 모양이 새겨진 어묵 - 역자주)가 하나씩, 그리고 가늘게 썬 파, 김, 말린 죽순이 올려져 있다.
"잘 먹겠습니다-"
일단, 국물을 한 모금.
"...맛있다"
"응"
간장 양념의 따뜻한 국물이, 위에서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장미의 관에 있는 로사 기간티아께도 한입 나눠드리고 싶어.
"로사 기간티아 말이야"
면을 한입 먹은 후, 요시노양이 작게 말했다.
"뭣 때문에 우리를 남도록 한 걸까나"
"엣...?"
챠슈를 베어 물면서, 유미는 고개를 들었다. 요시노양은 역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생각해봐. '가시장미 숲'을 빌리기 위해서 만이라면, 유미양이 아까 말한 대로 집에 가져가면 되잖아? 집에서 읽고 싶지않다면,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어도 안 될 것 없고. 만약 일주일동안 빌린다는 게 성격상 신경 쓰인다면, 보통 애초에 빌린다는 생각하기 전에 서점에서 사지 않을까?"
"빌리면 공짜니까, 그래서 아닐까?"
4백 몇 십엔 정도의 돈을 내는데 아까워할 타입은 아니지만, 달리 그럴싸한 이유가 없으니까, 일단유미는 그렇게 대답했다.
"3인분의 캔커피 값에 백엔 더하면 '가시장미 숲' 정도는 살 수 있어"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느냐 하면 완전히 두 손 다 든 상황.
애초에 일의 발단은 뭐였던 걸까. 하고 다시 생각해 봐도, 겨우 이틀인가 사흘 전의 일이 라면에서 피어오르는 김 저편으로 흐려져 버릴 만큼 멀게만 느껴졌다. 배가 불러지니 애초에 좋다고는 못할 사고력이 더욱 저하되는 모양이다.
"그럼 말이지. 우리가 귀여우니까, 라면을 사주고 싶어졌다, 라던가"
"유미양, 머릿 속까지 녹아버렸어"
요시노양은 질린 듯이 한숨을 쉬고, 다시 라면 그릇을 마주했다. 국물이 튀지 않도록 신중하게, 가닥의 노르스름한 면이 천천히 핑크색 입술에 빨려 들어간다.
유미는 시계를 보았다. 장미의 관을 나온 뒤부터 약 30분. 한시간에서 30분을 빼면, 나머지는 똑같은 30분.
'좀 애매한 시간일까나.'
지금대로의 속도로 라면을 다 먹고 돌아가면,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 없이 약속한 한 시간을 소화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라면이 꽤나 불어 버리잖아.'
그렇다고 교복에 국물이 튀는 건 좀 사양하고 싶고. 결국, 요시노양을 본받아 조금씩 담담히 입으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설령 면식당 출입금지가 풀린다고 해도, 중고생이 이곳에 몰려올 위험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교복을 더럽히지 않고 라면을 먹는다는 기술은 상당히 어려운 데다 시간도 나름대로 걸리는 거니까.
주방에서는 밖에서 쉬고 있던 나머지 한명의 아주머니가 돌아온 듯, 본격적으로 문 닫을 채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6

 

"커피, 있었어?"
장미의 관에 돌아온 유미들에게 향한, 로사 기간티아의 마중 첫마디는 '어서 와'가 아니라 '커피 있었어?'였다. 귀여운 후배보다도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려서 조금 맥빠짐.
"...있었어요"
굳이 의자에서 일어서서는 어린애처럼 '커-피' '커-피'를 연호하며 발을 구르는 로사 기간티아에게 유미는 요청받은 캔 커피와 거스름돈을 넘겨줬다.
"그렇게 커피가 드시고 싶으셨다면, 인스턴트 커피 끓이셨으면 될 텐데"
"인스턴트, 라는 기분이 아니었거든. 마음 같아서는 커피 전문점에서 막 끓인 블루 마운틴 주문하고 싶은 기분"
캔의 마개 손잡이를 당겨서 꿀꺽꿀꺽하고 목으로 흘려 넣고는 '후-웃' 하고 숨을 내쉬었다. 작은 캔이니까 단번에 반 이상 마셔버린 것 아닐까 싶다.
"인스턴트 커피 < 캔커피 < 막 끓인 커피인 건가요?"
"응. 요시노쨩은 안 그래?
"굳이 말하자면, 종류보다도 우유 비율을 중시하는 편이네요. 그리고 온도"
"마일드 판가. 유미쨩이랑 같구나"
"제 경우, 유미양만큼 단걸 좋아하진 않지만요"
요시노양은 설탕이 적은 캔 카페오레를 얼굴 옆에서 흔들며 '잘 먹겠습니다' 하고 웃었다.
"유미쨩은 뭐 사온 걸 까나-?"
단거 좋아한다든가 그런 말 듣고 나면, 내놓기 힘들어진다. 그런 유미의 기색을 재미있어 하며, 로사 기간티아는 '에잇, 내놔봐' 하고 쫓아온다.
"그 캔 음료수, 누구 돈으로 사 온 거지?"
아무튼, 스폰서는 강하다. 로사 기간티아는 유미에게 뒤에서 풀넬슨 락(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넣어서 뒤통수를 누르는 굳히기 기술 - 역자 주)을 걸고는 재빨리 캔을 빼앗았다. 3, 2, 1.
"부앗 핫 핫 핫"
예상대로, 딱 3초 후에 로사 기간티아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장미의 관 2층에 울려 퍼졌다.
"뭐야, 이거. 캔 단팥죽!? 이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야!? 게다가 대학교 자판기에서 팔고 있다는 건, 제대로 수요가 있다는 거!?"
"...있잖아요. 이렇게, 예비군인 여고생이 사고 있을 정도니까"
이런 대 폭소에는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유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그래요, 저 단 거 좋아해요. 단 거 좋아하는 어디가 나빠요, 하는 기분.
"과연. 헤에..."
로사 기간티아는 '이런 게 말이지이' 하고, 캔을 말끄러미 쳐다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로 지금까지 캔 단팥죽이라는 것의 존재를 몰랐던 것 같아서, 세상에는 캔 식혜라는 것도 있다고 가르쳐드리자 데굴데굴 구르며 좋아했다.
로사 기간티아가 쓰고 있던 창가 의자의 옆에, 새로이 의자 두개를 꺼내 놓고 세 명은 마주 보듯이 앉았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아주 조금이긴 해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기 가지고 오는 동안 뜨거워서 혼났던 캔 음료수도 딱 마시기 좋게 식어 있었다.
"읽었어, 책"
로사 기간티아는 갑자기 불쑥 본론을 꺼냈다.
"문고본 한권에 한 시간, 인가요"
굉장한 집중력이라고 감탄하자, '일본어니까'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어쩌면 원서 같은 것도 그대로 읽어버리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초인이면,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스가가 슈가라는 걸 알아챘을 때, 나 혼자서 웃어 버렸어. 사토와 설탕이라니, 굉장한 억지잖아? 하지만 스가 세이라는 이름에서 사토 세이까지 생각해낸 맨 처음 사람, 대체 누굴까"
세미 커트의 머리카락을 긁어 올리며 나른한 듯 웃은 로사 기간티아는, 평소와 조금 타입이 다른 느낌이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얇은 카디건 한 장을 입었나 벗었나, 그 정도로 미묘한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버전 쪽이 좀더 맨 모습에 가까울 지도 몰라. 라는 건 유미의 억측일 뿐. 어떤 얼굴을 보이고 있어도 로사 기간티아는 로사 기간티아, 한명 밖에 없다는 결론에 결국에는 도달하는 거지만.
남은 캔커피를 다 마신 후, 로사 기간티아는 예절바르게 캔 안쪽을 물로 씻은 후 캔 전용 쓰레기통에 버렸다. 과연 학생회장, 쓰레기 분리수거도 빈틈없다.
"그렇긴 하지만 꽤 감이 괜찮은 걸지도 몰라"
"하아...?"
누가 말씀이세요, 라고 요시노양이 물었다. 유미와 마찬가지로, 로사 기간티아의 어디서 이어져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말에 물음표였던 모양이다.
"내가 썼다, 라는 설을 꺼낸 사람 말이야"
로사 기간티아는 웃으며 다가와서, 유미의 캔 단팥죽을 빼앗아 입에 댔다.
"아-앗!"
"한입쯤은 괜찮잖아, 째째하긴"
돌아온 캔의 내용물은 꽤 줄어 있었다. 얻어먹어 놓고 불평하는 것도 뭐하지만, 로사 기간티아의 한입이란 꽤 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잖아요?"
남매다툼 레벨의 실랑이가 끝나는 걸 기다려서, 요시노양이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럴 때의 요시노양은 냉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쓴 건 내가 아냐. 그건 아까 말했던 대로. 작년의 일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신력, 나한텐 없어"
"하지만, 감이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로사 기간티아는 요시노양의 말에 끄덕인 후 이야기했다.
"그야, 비슷하잖아. 나랑"
스트레이트.
별 것도 아닌 한마디인데, 왠지 똑바로 절묘한 타이밍과 스피드로 던져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도 이하고 아니라는 것, 말로는 자주 쓰이는 거지만. 정말로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일이란 분명히 있는 거구나.
비슷하잖아, 나랑. -이라는, 로사 기간티아의 말은 그 의미만을 꼭 집어 나타내고 있어서. 비슷하다는 말 안에 수많은 정보가 채워져 있지만, 결국에는 단 하나의 사실을 전하고 있는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로사 기간티아의 말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이쪽이 어떻게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물어봐도 괜찮아'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로사 기간티아가, 말이 없어진 유미와 요시노양에게 말한 것이다.
"둘 다, 신경 쓰이지? 그 소설을 쓴 게 나라고 소문이 퍼진 이유가 이름만이 아니라고 조금씩 깨닫고 있을 테니까"
"..."
그 말대로였기 때문에, 대답할 말도 없다.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 분명히 있었다. 그것 자체가 로사 기간티아께 죄송한데다, 더욱이 그걸 본인에게 들켜버리다니 최저. 그렇게 욕심 많은 얼굴을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런 얼굴 보고 싶어서 얘기한 건 아닌데 말이지-"
로사 기간티아는 의자에 덜컥하고 고쳐 앉고는, 유미들의 턱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살짝 들어올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로사 기간티아의 클로즈업인데, 오늘은 묘하게 두근두근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알고 싶은 걸 가르쳐 주려고"
"어째서-"
"그야, 어영부영 납득은 하더라도 너희들만 모른다는 건 불공평하잖아?"
"..."
그 논리, 맞는지 틀리는지는 제쳐 두고. 그런 식으로 말해 버리는 로사 기간티아란, 역시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책 빌린다는 건 혹시 저희를 남겨놓기 위한 구실이었던 건가요?"
"그런 건 아냐. '가시장미 숲'을 가능하면 빨리 읽고 싶었던 건 사실이고. 사실무근이라곤 해도 나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니는 이상, 그 원인인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잖아"
그래도 상급생들을 먼저 돌려보낸 것은, 불필요한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려고 마음을 써주신 거겠지. 만약 이 자리에 사치코님이 계셨다면, 유미가 로사 기간티아의 과거에 대해 질문한다거나 하는 것, 절대로 막을 테니까. 어제 오늘의 상황을 보면 예상이 된다.
"2, 3학년들이 설명하지 않는 건, 날 배려해주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1년 전의 난 말이지, 그 일을 건드리는 거 굉장히 힘들어했어.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말이야"
아직도 민감한 걸 거야, 라니 로사 기간티아.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구나.
"나, 굉장히 사이좋은 친구가 있었어. 그야말로 부모형제보다도 소중해서, 그 사람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없을 정도로 좋아했어"
유미는 '가시장미 숲'의 세이와 카호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 자신이 비슷하다고 말한 만큼, 이미지가 딱 들어맞게 겹쳐졌다.
"장래에는 수녀가 되려고 생각하던 순수한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때 없어져버렸어"
"엣!?"
유미와 요시노양은 동시에 외쳤다.
"그럼, 완전히 똑같잖아요!"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데, 거기다 상대가 장래의 수녀에,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때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 까지 같다니. 그런 우연, 있을 수 있는 걸까. 설마 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들 비슷한 인생을 보낼 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렇다 해도 로사 기간티아는 역시 '가시장미 숲'과 같은 일을 겪었던 것이다. 왠지 슬프다. 사치코님들이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전부 똑같지도 않아. 그래서 그 이야기가 실화라고 생각하면, 조금 곤란해.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수면제를 한 알씩 먹는다는 로맨틱한 경험도 한 적이 없어"
게다가 '가시장미 숲'에서는, 마지막에 카호리가 죽은 것 아닐까 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지만, 로사 기간티아의 친구 분은 전학 갔다는 것이었다.
"그럼, 살아계신 건가요, ...카호리씨"
"뭐야, 살아있어서 맥 빠졌어?"
로사 기간티아는 유미의 이마를 둘째 손가락으로 튕겼다. 뭐, 살아있으니까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시장미 숲'을 보고 그렇게나 울었던 독자의 한명으로서는 '뭐-야' 하고 생각해버리는 건 어쩔 수도 없는 일. -그러니까, 그건 로사 기간티아가 쓴 게 아니라고 알고 있어도,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건 그리 쉽게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유미쨩, 카호리가 아냐. 그녀의 이름은 쿠보 시오리(久保 杆)"
그런 식으로 정정당하면, 역시 로사 기간티아가 '가시장미 숲'의 세이인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그에 비해, 요시노양은 날카롭다.
"혹시 로사 기간티아는, 누군가가 로사 기간티아의 일을 참고로 삼아서 이 소설을 썼다, 하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유미 같은 건 그저 그저 놀라고만 있을 뿐, 그런 가능성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런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는 거구나.
"글쎄다"
로사 기간티아가 웃었다.
"다른 부분도 많고, 놀랄 정도로 겹쳐지는 부분도 있어"
자전적이라고 하니까 완전히 만들어진 얘기는 아니겠지만, 소설의 형태를 가진 이상 어느 정도는 픽션도 섞여있을 테니까 그런 건 뭐라고 말하기 힘든 것 같다.
"자전적 소설, 인가요"
자전적 소설, 이라는 건 꽤나 제멋대로인 말일지도 모른다. '자전'이란 자신의 전기이고, '적'은 '의'라는 의미잖아. 거기다 '소설' 이란 건 굳이 나누자면 '만들어낸 이야기' 라는 느낌이고. 자전에다 만든 이야기, 라니 무슨 말인지 대체.
"잠깐만요. 이건 분명히 자전적 소설, 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럼, 이상해요"
요시노양은 뭔가 반짝 떠올랐는지,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듯한 기세로 로사 기간티아에게 다가갔다.
"왜, 왜 그래?"
늦을세라 유미도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로사 기간티아를 모델로 해서 썼다는 거라면, 모순되잖아"
"아, 그런가"
'가시장미 숲'의 세이가 로사 기간티아를 모델로 해서 그려진 거라면, 스가 세이 = 로사 기간티아여야만 한다.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는 그 건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고 있으니.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비슷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로사 기간티아가 중얼거린다. 그곳을 요시노양이 놓치지 않고 공격한다.
"베낀 데다 거짓말, 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어요"
"거짓말이라-"
그 뒤로는, 완전히 두 사람의 탁구 랠리. 유미같은 건 대화에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오른쪽 왼쪽하고 로사 기간티아와 요시노양을 교대로 바라볼 뿐이었다.
"단순한 우연치고는, 소설 속에 나오는 학교, 리리안 여학원이랑 너무 똑같은 걸요. 우리 학교 학생이나 관계자가 쓴 것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요시노쨩. 출판사는 거짓말하지 않아"
"하지만, 자기 일을 썼어요. 하고 작가가 말하면, 편집부 기자는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 스가 세이라는 작가, 이게 데뷔작이고 프로필도 실려 있지 않으니, 들킬 리 없다며 깔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과연"
"과연, 이라뇨. 분하지 않으세요? 로사 기간티아 자신의 일을 멋대로 적혀서, 그 때문에 작가라고 오해받고. 결국에는 생활지도실에 불려가기까지 했는데"
"뭐 그다지, 생활 지도실은 처음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요시노양도 참, 결국 로사 기간티아 대신 화내고 말았다. 기분은 알겠지만. 로사 기간티아도, 완전히 엉뚱한 반응만 하고 있는걸 뭐.
"예를 들어 말이지, 요시노쨩 말대로 누군가가 내 일을 참고로 소설을 썼다고 쳐도,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에?"
"스가 세이를 붙잡아서, 신문부에라도 기사거리 제공하라고 해? 아니면 취재비 명목으로 인세의 몇 할쯤 청구하는 거야?"
확실히 그건 그래, 하고 유미는 생각했다. 일단 세상에 나와 버린 것을, 이제 와서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없앨 수도 없고. 무엇보다, 로사 기간티아가 움직이면 소동이 그만큼 커질 거라는 건 뻔히 보이는 일인데.
"저는 그저, 로사 기간티아가 화나는 걸 별 수 없이 참는 게 견딜 수 없을 뿐이에요"
"억지로 참거나 하지않잖아? 생활지도실에 불려가긴 했지만, 단순히 이야기만 들은 것뿐이고 처벌을 받는다거나 하지도 않았어. 이렇다 할 피해는 없어"
"하지만-"
뭔가 말하려던 요시노양은, 입을 다물었다.
유미는 입을 다물어 버린 요시노양의 기분을 어떤지 잘 알 수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는 틀림없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거다, 라고 요시노양은 지적하려고 했던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소문이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거의, 건드리고 싶지 않은 부분을 파헤쳐서 드러내어져 버렸다는 건 변함없다. 상처를 입지 않았다니,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 이야기는 하면 안된다고, 요시노양은 느꼈으니까. 그래서 입을 닫은 것이다. 과거의 일이 알려졌다고 해도 신경쓰지않아, 라는 태도야 말로, 로사 기간티아의 프라이드인 거니까.
"저기 말이지. 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소중한 사람들만 알아주면 돼. 알겠어?"
로사 기간티아는 의자 위에서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는 말했다. 스커트의 주름 사이로 살짝 보이는 다리는, 하얗고 곧아서 멋있었다.
"그러니까, 유미쨩이랑 요시노쨩이 들어줬으면 한 거야. 오해나 억측이 개입된 채로의 관계라는 건 싫으니까"
"로사 기간티아..."
가슴이 꼭하고 죄어왔다. 로사 기간티아는 지금, 우리들을 '소중한 사람들' 이라고 말해 주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외야는 어쩌건 상관없다고, 로사 기간티아는 말하지만. 사실은 더 이상 이 화제를 끌고 가고 싶지않을 것이다.
그렇겠지. 힘든 기억이라면,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사별이건 전학이건, 그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 때문에 로사 기간티아가 굉장히 상처 입었다면, 그건 어느 쪽이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람 마음 속의 무거움 같은 건, 결코 다른 사람이 잴 수 없는 거니까. 로사 기간티아에겐, 분명히 그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필요했던 거니까.
뭔가 질문있냐는 말에, 유미는 사양않고 손을 들었다. 물어서 안 될 말이라면, 로사 기간티아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실 것이다.
"전학 간 친구 분은, 지금 어쩌고 계신가요"
"글쎄... 어쩌고 있을까나"
로사 기간티아는 창 밖을 바라왔다. 헤어진 뒤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만나고 싶으세요?"
이번엔 요시노양이 물었다. 그것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만나고 싶어' 나 '만나고 싶지 않아'가아니었다.
"만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사람과 사람의 연이란, 그렇게 단순명쾌하게 갈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사 기간티아와 그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로사 기간티아가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하지만, 가까이 있어선 안 되는. 그런 관계가 있다니, 유미는 처음 알았다. 로사 기간티아의 본질은, 어쩌면 불처럼 격렬할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화상 입지 않도록 멀리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건, 사실은 굉장히 행복한 일인 거구나. 유미는, 괜히 몹시도 사치코님이 만나고 싶어졌다.

 

 

    7

 

 

"유미"
종점에서 버스를 내려 M역의 계단을 올라가려는 때,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치코님...?'
계단에 한 발짝 올려놓았던 발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두리번해도 사치코님은 고사하고 리리안의 교복을 입은 소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환청?'
만나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걷고 있다 보니, 사치코님의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어 버린 것이다. 나도 참 단순하지, 하고 생각하며 유미는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뭐하는 거니 유미. 여기야, 여기"
이번엔 확실히 들렸다. 그래서 크게 뒤돈 후, 온 길을 몇 발짝 돌아가 본다. 그러자, 버스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직선도로에 검은색 자동차가 서 있고, 그 뒷좌석 창문에서 사치코님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는 것 아닌가.
"어, 어떻게 되신 거예요, 언니!"
반짝반짝 흑요석 같은 차에 유미가 주저주저하며 다가가자, 사치코님의 손이 나와 있던 창문이 위잉- 하며 닫히고, 닫힌 것과 동시에 이번엔 문이 벌컥 열렸다.
"우왓, 우왓, 우왓"
유미가 흥분한 건 멋지게 문이 열려서. --가 아니라,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치코님이 예상외의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타렴"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당연한 듯 유미에게 명령하는 사치코님은. 머리카락을 잘 묶고, 기모노를 입고, 화장까지 하고. 정진정명 공주님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빨리 타, 추우니까"
어쩌지, 하고 주저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언니의 명령은 절대적. 구두 바닥이 융단을 더럽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유미는 차에 올라탔다.
"가요"
사치코님이 운전석에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 하자, 차는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
"바래다줄게. 집 근처까지 가면, 지시해줘"
대강의 위치는 이미 들었는지 운전사 아저씨 같은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역에서 최단거리를 골라 차를 달렸다. 선로 아래의 지하통로를 지나, M역 남쪽 출입구로 나왔다. 몰랐어. 차의 승차감이란, 각각 차에 따라 전혀 다른 거구나.
"후리소데(소매가 길고 풍덩한 여성용 예복 - 역자 주) 같은 걸 입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아, 언니는 교복 차림도 멋지지만, 기모노 차림도 굉장히 예뻐요!"
조금 흥분해서 부산을 떨었지만, 사치코님은 그다지 야단치거나 하지 않았다. 허리를 쭉편 채, 조금 웃는다.
"이건 후리소데가 아니라, 방문복이라고 하는 거야.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신 일본화가 선생님의 개인전이 있어서, 아무래도 얼굴을 내밀 수밖에 없는 바람에 유미들을 남기고 간 거지만"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 일이 신경 쓰여서, 일본화가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집에 가는 유미를 M역에서 붙잡을 수 있을 거라 계산하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도 깊으셔라.
그건 그렇고, 역시 사치코님은 상류가정의 아가씨였구나, 하고 새삼 느껴 버렸다.
고급스런 쪽빛 바탕에 하얀색과 분홍색 매화가 그려진 기모노에, 새 문양의 푸른색이 도는 은색 허리띠를 매고. 17살에 '기모노 입는 데는 익숙해요.' 라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역시 돌잔치 때와  정월에 밖에 입지 않는 사람과는 다르구나 하고 납득해 버린다. 사치코님은 평소에도 기모노 입고, 다도나 꽃꽂이 같은 걸 연습하거나 하시겠지.
하지만 기모노 입고 가야 하는 일본화 개인전이라니, 대체 어떤 곳일까. 거기다 황실 사람들이 타고 있는 걸 TV에서 보는 정도로, 보통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새까만 차. 하얀 장갑에 모자를 쓴 운전사 아저씨. 발밑에는 주황색인지 연지색인지 알 수 없는 융단 같은 바닥.
"로사 기간티아는,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셨어?"
사치코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다. 그래서 유미도 숨기지 않고, 사치코님이 나간 뒤부터 조금 전까지의 일을 모두 보고했다. 사치코님에게 알려져서 곤란할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돌아가려던 때 로사 기간티아에게서 '언니들이 다그치면, 입 열어도 괜찮으니까' 하고 허가를 받은 일이었다. 만약 안된다고 하면, 레이님에게 찰싹 붙어 있는 요시노양은 굉장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래... 로사 기간티아, 너희들에게 이야기하셨니"
사치코님은, 사치코님이야말로 비밀을 털어 놓은 본인인 듯이 어깨로 크게 한숨을 쉬고 '강한 분이구나' 하고 말했다.
"그때 난 1학년이었고, 로사 기간티아는 당시에 뷔통이었던 것치고는 그다지 장미의 관에 오지 않았으니까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가 시오리양과 친하게 지냈던 건 알고 있었고, 작년 이맘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어"
맞아맞아. 로사 기간티아의 카호리는, '시오리'라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2학년이 시작되었을 때, 시오리양이 전학 간 것과 로사 기간티아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에 놀랐어"
"변하다뇨?"
"그래. 길었던 머리는 싹둑 잘랐었고. 여위고, 수척한데다, 빈 껍질 같아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을 정도. 로사 키넨시스나 당시의 로사 기간티아가 보살펴주셔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그리고..., 그래. 시마코의 존재도 컸다고 생각해"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도 참, 시마코양에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실 건가 봐요. 서로,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 달까-"
"그런 것 같아"
그런 점이 로사 기간티아에게 이기지 못했던 이유라고, 사치코님은 웃었다. 그러고 보면, 전에 로사 기간티아와 사치코님 둘이서 시마코양을 서로 데려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 두 사람은, 상대가 뭘하건 뭘 생각하건, 그다지 관계없는 거야. 좀더 본질적인 부분에서 이어져 있으니까, 표면적인 부분은 어쩌건 상관없다는 느낌일까. 그렇게 보면, 특수한 자매라고 생각해. 언니가 동생을 가르친다는 자매제도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바꿔 말하면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본질적인 부분, ...인가요"
정신의 깊은 부분에서 강하게 이어져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의 존재가치가 흔들리거나하지않는다는 의미일까.
"주지 않고 바라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거기 존재하고만 있으면 괜찮다는 것 아닐까. 나도 최근에야 겨우 그런 거라고 알 것 같지만"
사치코님은 아마도 사미코양에게 채인 뒤로 쭉, 냉정한 눈으로 그 자매를 관찰해 온 거겠지. 미련같은 게 아니라, 순수하게 그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미는 사치코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왠지 숭배라는 말을 떠올렸다. 거기 존재하고 있어주기만 하면 돼, 라니. 마치 하느님에 대한 사랑 같아. 중앙대로를 직진하고 있던 차는, 교차로에서 부드럽게 우회전했다.
"그다지 부럽진 않아. 그런 형태도 있다고 인정은 하지만. 나에겐 맞지않는 걸"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듯, 사치코님은 유미 쪽으로 몸을 돌리고 '비뚤어져 있어' 라고 머리의 리본에 손을 댔다. 몸가짐을 바로잡히며, 유미도 그런 스킨십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럽지 않아' 라고 단언한 사치코님의 말이 자신 안에서도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런 기분의 겹쳐짐이란 건 꽤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똑같이 느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사치코님과 자매로 있을 수 있다고. 상성이란, 닮았다거나 닮지 않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서로가 편안한 공기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승부가 아닐까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항상 이용하고 있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는 걸 스윽 추월해서, 차는 T자형 도로에서 좌회전 한다. 편의점이라거나 주택가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작은 밭 같은 것들 사이를 고급 자가용이 거드름 피우지 않고 달려간다.
집도 가까워져서, 그 신호등에서 오른쪽이라거나, 막다른 길에서 왼쪽으로, 라던가. 운전사 아저씨께 지시를 하며, 이윽고 우리 집 앞까지 도착했다. 아버지가 설계하신 사무소 겸 주택은, 생활감이라거나 외관이라거나 꽤 마음에 들지만, 역시 엄청난 부잣집 아가씨께 보이려니 조금 마음 약해진다.
"멋진 집이구나"
사치코님의 집은, 아마 밖에서 건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정원 가운데 서 있겠지. 담장 같은 것도 굉장히 높고, 정원에는 정원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늘 다듬고 있을 듯한 일본식 정원 같은 게 있어서-. 아, 안돼. 점점 침울해졌다.
"그럼, 종업식 때 보자"
사치코님은, 헤어질 때의 여운이란 게 요만큼도 없었다. 뭐어, 하지만, 남녀 연인사이도 아니니까 키스하고 안녕 하는 건 이상하고, 그렇다고 악수라는 것도 종잡을 수 없는 거고. 애초에, 그런 허세를 부리는 사치코님이라니 절대 싫다.
바래다주신 인사라도 하게 어머니를 부르러 가려고 하자, 사치코님은 '그럴 필요는 없어' 하고 유미를 말렸다.
"내가 이런 차림 하고 있으면, 가족 분들은 깜짝 놀라 버리시는걸. 게다가, 뒤에 차가 밀려 있으니까. 나중에 차분히 인사드리도록 할께"
"그런가요"
슬슬 저녁때. 큰길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이 근처를 샛길로 이용하는 차가 늘어날 시간대이기도 했다.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도로 뭘. 안녕히(ごきげんよう)"
"...안녕히(ごきげんよう)"
검은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미는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사치코님은, 매일 바쁜 걸까나.'
아주 조금 쓸쓸해졌다. 종업식 때, 라는 건 시험방학 동안엔 저언-혀 만날 생각이 없다는 거다. 약 일주일간, 유미 같은 건 거의 한가하게 있으니까 전화 한통 주시면 어디건 날아갈 텐데. 그게 무리라면, 최소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치코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는 이미지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이쪽에서 연락한다니 송구스러워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결국,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는 거구나- 하고, 그런 예측만은 할 수 있으니까 맥이 빠져 버린다. 요시노양이 알면 '왜 전화정도도 못하는 거야' 하고 웃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자매니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