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3권 [번외] 새하얀 꽃잎 -2- 여름의 온실

여름의 온실(夏の 溫室)

 

    1

 

나와 시오리는, 그 봄날의 만남 이후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친해져 갔다. 학년이 다른 우리는 가능한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한번은 단 둘이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침 성당에 나가는 시오리에게 내가 함께 하는 일도 있었고, 점심시간에 밖에서 식사를 할 때도 있었다. 클럽활동을 하지 않는 두 사람은, 방과 후 교정을 함께 산책할 수도 있었다.
나는, 단 둘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오리를 장미의 관에 데려가는 것은 물론, 언니를 포함한 산백합회 간부들에게 소개하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점점 더 장미의 관에서 멀어졌고, 시오리에게 몰두했다.
"좀,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않겠어?"
초여름의 어느 날.
방과 후, 요코가 우리 반까지 와서 충고했다.
"무슨 말이야?"
이 다음에 시오리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초조해 있었다.
"알고 있잖아? 쿠보 시오리에 대해서야. 그 아이, 너의 뭐야?"
"뭐라니"
일부러 찾아와서는,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런 쓸데없는 질문이나 하다니. 참견에도 정도가 있다. 얄팍한 영어사전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나는 무심코 쓴 웃음을 지었다.
"웃을 일이 아냐"
"아아, 미안해. 그냥, 너도 참 마음 편할 날이 없구나 싶어서. 손갈 일 많은 동생 돌보는 것만으로도 큰일일 텐데. ......사치코의 과외교습을 전부 그만두게 했다는 거, 정말이야?"
"지금은 우리 스-루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쿠보 시오리와 너의 문제야"
"문제, 라니"
요코가 말고자 하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나와 시오리의 관계는 특수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요코와 사치코같은 관계가 아니었고, 나와 언니의 그것과도 달랐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우리는 모처럼 두개씩 가지고 태어난 손을, 양쪽 다 같은 상대와 마주잡아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더라도, 다른 많은 것들을 붙잡을 수 있도록 나머지 한쪽 손을 비워두는 많은 사람들과는 그것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요코가 말하는 '거리를 둔다.' 라는 말은 아마도 그런 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 아닐까. 시오리와 맞잡은 손을, 적어도 한쪽만이라도 놓아야 한다고.
단 한 사람의 인간만을 인정해서 나머지가 보이지 않게 되는 건 확실히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시오리와 이어진 깊은 인연의 실은 잘라내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그것에 수정을 가해 버리면 그건 이미 우리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네가 동생으로 맞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 딱히 무리하게 갈라놓으려는 게 아냐. 하지만, 지금 이대로 괜찮을 리 없잖아? 정식으로 로사리오의 수수(收受)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개하도록 해"
"생각해볼께"
나는 가방을 손에 들고, 의자를 책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한순간이라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볼께. ......그러니까, 가도 될까?"
"......그래. 꼭이야"
요코는 의외로 쉽게 놓아 주었다. 그녀는 똑똑하니까, 너무 나무라면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이미 계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들이 뜸해진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달려 시오리를 향했다.
생각해 본다곤 했지만, 나는 시오리를 동생으로 맞을 생각 따위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대등한 관계였으니까. 이제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을 위해 로사리오를 주고받는다니, 너무나도 웃기는 짓이다. 자매의 의식이란, 상징이 없으면 안심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나는 마음 속에서 냉소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눈이 마주친 것과 동시에, 시오리가 말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냐"
나는, 시오리의 어깨를 안고 걷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리 더러운 곳이라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눈만 닿지 않는다면, 내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청정한 곳이 되겠지.
나는, 시오리를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지저분한 눈에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우리가 친해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일 같은 것도 없다. 적어도, 나는 시오리와 사귀게 되면서 그녀의 영향으로 성실하게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각과 결석도 하지않게 되었다. 칭찬은 받을지언정, 비난받을 일 따위 없을 터였다. 우리는, 그저 함께 있고 싶을 뿐. 그것뿐인데.
건물 뒤쪽에서, 나는 시오리를 껴안았다.
"무슨 말, 들었어?"
시오리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작게 중얼거린다.
"우리들 편은 아무도 없을지도 몰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돼"
틀림없이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시오리는 절대로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았다. 장미의 관과 멀어졌다곤 해도 나는 아직 로사 기간티아 안 뷔통이고, 등 뒤에는 산백합회 간부들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다. 나와 시오리의 관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항의를 한다면, 그건 새내기에다 나이도 어린 시오리가 표적이 되는 일이 많겠지. 말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시오리 쪽이야 말로 나 때문에 힘든 일을 겪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안돼, 자포자기하면"
우리는 학교생활에서 점점 더 고립되었고, 그만큼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깊어져 갔다.

 

 

    2

 

여름방학이 되었다.
나는 매일같이 학교에 가서, 시오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학생 기숙사가 8월중 거의 문을 닫기 때문에, 그동안 시오리가 리리안 안에 있는 수도원에 몸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긴 방학인데도 시오리는 나가사키의 삼촌에게 돌아가지 않고, 도쿄에 머물렀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굳이 물어보려 하지도 않았지만, 시오리의 보호자인 삼촌과 아는 사이인 우리 리리안 여학원 학원장님이 도쿄에서 시오리의 부모님 대신으로 되어있는 듯 했다.
도서관 개방 일에, 나는 오전부터 열람실에 틀어박혀 숙제를 끝내는 것에 열중했다. 그날그날 시간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잠시 후에 수녀님들의 보조를 마친 시오리가 와서 마찬가지로 자신의 숙제를 꺼냈다.
우리는 성실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우리 둘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학력이 떨어지면 즉각 상대 탓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공부하고, 숙제가 다 끝난 후에는 하염없이 흥미 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우리는 낡은 온실에 있었다.
시오리는 오전에 수영 보충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게 끝날 시간에 맞춰 교문을 지났다. 맞은 편에서 머리가 젖은 소녀들의 집단이 돌아가는 것과 마주쳤다. 생각보다 일찍 수영 수업은 끝난 모양이다.
시오리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내 걸음은 곧장 빨라졌다. 빨라진 것 뿐 아니라,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있었다.
마리아님 앞의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았을 때, 내 이마와 어깨에 커다랗고 미지근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다. 도서관 옆을 지나, 강당을 시야에 둔 채 달리자 이윽고 시오리의 모습이 보였다.
"시오리!"
비는 갈수록 강해져서, 아무래도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둥의 로맨틱한 상황은 아니었다. 나설 때는 맑게 개어있었기 때문에, 물론 접는 우산 같은걸 가져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아직 한낮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이건 소나기(일본어로 '夕立') 라고 해도 될 정도의 비였다.
나와 시오리는, 낡은 온실에 뛰어들었다.
유리가 깨져 있다거나 바닥이 꺼져 있다거나 했지만, 당장 비를 피할 수는 있다. 수영한 직후인 시오리에게는 적당히 따뜻한 공기가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던 양팔을 열고, '따뜻해' 하고 미소지었다.
"한바탕 뿌릴 지도 모른다며 일찍 마쳐 주셨어. 하지만 선생님 예상보다 비가 조금 더 빨랐던 모양이네"
선반의 화분을 옮겨 놓고, 우리는 그곳에 나란히 앉았다.
"수영하느라 젖는 건 별 수 없지만, 교복이 젖으면 비참하잖아, 라고. 다들 비 오기 전에 버스 탔을까"
시오리는 비닐 백 안에서 스포츠 타월을 꺼내 내 머리카락에 묻은 물방울을 살짝 닦았다. 타월에 스며 있던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한순간 코를 간질이고, 곧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자기 머리나 닦는 게 어때?"
퉁명스레 말한 건,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오리가 머리를 닦아 준 그것만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격렬한 충동에 솔직히 말해 당황해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대로, 시오리는 자기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한쪽 어깨 앞으로 들어뜨리고, 타월을 대었다. 타월로 감싸듯 천천히 수분을 흡수시켜 가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역시 자신이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런 마음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는 시오리는, 작게 하품을 했나 싶더니 어느새 졸기 시작했다.
피곤한 거겠지.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그대로 옆에 다가갔다.
세찬 비라면, 금방 멈춘다.
비에 갇힌 낡은 온실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오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시오리의 모든 것은 내 것이었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개체로 태어나 버린 걸까.
어째서, 둘은 동화되어 하나의 생명체가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시오리의 숨결을 느끼며, 두 사람의 젖은 머리카락을 별 생각 없이 한 가닥씩 뽑아, 그걸 하나로 엮었다. 하지만 색도 질도 다른 두 종류의 머리카락은, 잡고 있던 손을 떼자 금방 하늘하늘 떨어져 버린다. 따분하기도 하고 해서, 새끼줄처럼 꼬아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왠지 오기가 나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땋아 보았다. 시오리의 머리카락을 두 가닥, 내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서. 그리고 그제야 우리의 머리카락은 하나가 되었다.
"뭐 해?"
졸린 듯한 눈으로, 시오리가 물었다.
"으응, 아무 것도 아냐. 좀더 자도 돼. 비가 그치면 깨워 줄께"
"응"
나는 머리카락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하나씩 시오리의 손가락 사이로 밀어 넣었다. 간지러워, 하고 몸을 비틀며 시오리는 웃었지만, 내 손을 떼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비여, 멈추지 마라.
나는 눈을 감았다.
비여, 멈추지 마라.
어둠은, 우리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가린다. 확실한 것은, 시오리의 고동과 온도와 숨결 뿐.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나는 반쯤 진심으로, 이대로 시간이 멈출 거라고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