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3권 가시나무 숲 -3- 스가 세이는 누구?

스가 세이는 누구지?(須加 星は誰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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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는 감각은, 그게 강해지면 아프다는 감각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진다.
나는 마주잡은 손이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감각이 마비된 손가락은 카호리의 손은 고사하고, 그 손가락 자체가 거기 존재하는 것인가 조차 내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목숨을 끊을 각오는 할 수 있어도, 결국 죽음이란 건 개개인에게 따로 찾아오는 것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때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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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흘쯤 지난 어느 날 오전, 요시노양에게 전화해 봤더니 집에 놀러오지 않겠냐고 하기에. 뻔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양않고 나갔다 오기로 했다.
그다지 사치코님 대신 같은 건 아니지만, 사실은 역에서라도 만나서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 먹으며 함께 머릿 속을 정리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노양은 오후 늦게까지 집 보고 있어야 한다니까.
근처의 빵집에서 미트 고로케 샌드 두개와 컵 샐러드를 두 종류 사서 평소에는 통학에 이용하는 버스를 탔다. M역에 도착한 후, 개찰구를 옆으로 지나 북쪽 출입구로 나가서 이번에도 익숙한 버스. 하지만 오늘은 리리안 학생은 한명도 없다. 같은 버스인데,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창 밖의 풍경도 왠지 신선하게 보이거나 한다. 교문 앞에서 내리자, 약속대로 요시노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셔요"
"안녕하셔요"
서로 교복 차림도 아닌데, 무심코 평소대로 인사하고는 어깨를 으쓱 했다.
요시노양은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스웨터에 무릎길이의 타탄체크 플리츠스커트, 거기다 검은 타이츠를 입고 있었다. 교복차림일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피부가 하야니까 검은색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아-. 유미양, 남자 옷 입고 있어!"
"헷헷헤. 요시노양, 눈 좋구나"
유미는 회색 큐롯 스커트 위에 스웨터와 파란색 얇은 코트를 걸치고 왔는데, 스웨터와 코트는 동생의 옷장에서 잠깐 빌려 온 것이었다. 사이즈가 같은 형제란 있어야 하는 거다. 대신에 여자 옷을 빌릴 수 없는 유우키에겐 좀 안된 일이지만, 부탁만 하면 스커트건 뭐건 뭐든지 빌려줄 준비는 되어있다.
평소와 다른 차림으로 만나니, 그것만으로 이야기꽃이 피어 버린다. 머리모양도, 오늘은 둘 다 양 갈래로 묶지않았고. 요시노양이 입원했을 때도 그랬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 걸어서 10분 될까 말까 만에 요시노양의 집에 도착했다.
울타리를 둘러친 꽤 넓은 땅에, '시마즈'와 '하세쿠라'라는 문패가 사이좋게 늘어서 있다. 문은 두 개 있어서, 거기서 각각의 현관까지 돌다리가 이어져 있지만 마당은 안에서 그냥 이어져있었다.
"이건, 이웃이라기보다-"
"응. 오히려 2세대 주택에 가깝지"
두 집이 늘어선 뒤쪽에는 레이님의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도장이 있어서, 하세쿠라가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저녁때가 되면 근처의 초등학생 등이 검도를 배우러 와서 꽤 떠들썩해진다고.
"들어와"
요시노양은 드르륵 하고 여닫이문을 열었다. 열쇠는 채워져 있지 않았다. 좀 부주의한 거 아닐까나, 쓸데없는 참견일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실례합니다-"
현관에 들어서서, 바로 앞의 계단을 올라간다.
"저기, 그러고 보니 요시노양 집 보고 있어야 했잖아? 괜찮아? 나 마중 나오거나 해도"
유미는 요시노양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괜찮아괜찮아. 나대신 집 볼 사람을 남겨놨으니까"
"헤?"
짙은 갈색의 소박한 문을 열자, 거기엔-.
"아, 다녀왔어?"
하고, 코타츠(일본의 탁자식 전기난로)에 옹크리고 있는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이 한명.
"레, 레이님!"
"에, 뭐야, 유미쨩!?"
요시노양도 참, 양쪽에 모두 비밀로 했던 듯, 서로 기습공격을 당한 듯이 이름을 부르며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요시노양과 레이님이란, 정말로 가까운 존재로구나-, 하고 실감해버린다. 집 보기까지 맡겨 버리니까 말이지.
'비교하면 안돼, 비교하면 안돼.'
"아, 유미양. 지금 머리 속에서 사치코님에게 집 보기 맡겨 봤지"
"어떻게 그걸!"
"얼굴에 쓰여 있어"
요시노양은 감이 좋아서 조심해야지. '자, 들어와' 하고 코타츠 이불을 들치며 자리를 권하는 티없는 웃음에 무심코 매번 속고 있지만. 경찰물이라던가 추리소설 같은 것도 애독하고 있는 그녀는, 여탐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요시노양의 방은 그다지 장식이 없었다. 벽은 아이보리, 책상이나 책장, 창틀 같은 건 모두 짙은 갈색. 거기다 커튼이나 침대 커버, 코타츠 덮개 같은 건 전부 옅은 무채색이니까 젊은 여자아이 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레이스랑 꽃병을 가져다 두는 것  만으로 굉장히 로맨틱한 방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책장에 주루룩 꽂혀 있는 문고본의 타이틀이 'xx체포수첩' 이라거나 '검객 xxx'라서야, 소녀의 방이라는 것도 이름뿐이겠지만.
"유미쨩이 놀러온다니, 몰랐어"
잠깐 실례, 하며 코타츠에서 나와 레이님은 잠시 자리를 떴다.
'우-음. 청바지 차림의 레이님도, 꽤 멋있어.'
엉덩이 위치가 높고, 다리도 긴데다 곧고. 하지만 제복 차림으로도 거시기한 레이님, 이렇게 되면 완전히 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탕탕탕탕 하고 규칙적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요시노양은 작게 말했다.
"시험 마지막 날 집에 왔더니, 레이쨩이 거실에서 잠복하고 있었어"
레이님도 사치코님처럼, 방과 후 뭘 했는지 신경 쓰여서 오자마자 요시노양에게 보고 시켰다고 한다. 이만큼 가까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조금 귀찮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했지만 요시노양은 싫지만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이가 좋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 그때부터 이것저것 생각했거든"
요시노양은 진지한 얼굴로 유미에게 말했다.
"로사 기간티아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역시 로사 기간티아는 '가시장미 숲'의 작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를 위한 일이라면, 개인적으로 조사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나."
"요시노양이 무슨 말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로사 기간티아를 위한 알, 이라니. 그 로사 기간티아가 '이제 됐어' 라고 하시는데. 게다가 개인적으로 조사한다거나 해도, 로사 기간티아께 비밀로 일을 벌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뭐어, 그래도 요시노양이 굉장히 의욕에 넘치니까, 일단 말만은 들어 보기로 했다.
"신문부 부장......, 츠키야마 미나코님의 말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거야"
미나코님의 말이라니? ......아아, 로사 기간티아가 퇴학당할 지도 모른다, 라는 거? 하지만 그럴리 없다고 한 건 요시노양이잖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학교 측이 부당한 처분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라고 요시노양은 중얼거렸다. 로사 기간티아가 '내가 아냐' 라고 한 말을, 어디까지 믿어 줄 건가하고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시험방학 중에 선생님들이 '가시장미 숲'을 읽었다 치자? 로사 기간티아 본인조차 자기 일 같다고 하시잖아. 1년 전 일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고 믿어버리지 않을까나"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가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
사실도 아닌 죄로 벌 받거나 하는 일, 학교 안에서 벌어질 리가 없다. 마녀재판도 아니고. 하지만, 요시노양은 유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로사 기간티아, 그렇게 말하지 않을지도 몰라"
"어째서?"
"'가시장미 숲'을 읽었으니까"
"에?"
"그러니까, '가시장미 숲'을 읽었기 때문이야. 로사 기간티아, 마음이 바뀌어서 죄를 인정해버릴지도 몰라. 이유는 말이지, 친구를 감싸기 위해서. 왜냐면 '가시장미 숲'의 작가, 스가 세이의 정체는 쿠보 시오리씨이기 때문이야"
"에-엣?"
뭔가 굉장한 것을 요시노양은 잘라 말했다. 예상외의 말에, 왠지 너무 놀라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그럼 시오리씨가 세이고, 로사 기간티아가 카호리인 거야?"
"그게 아니라. 상대의 시점에서 썼다는 거지"
그야 확실히 그녀도 당사자니까, 만약 '가시장미 숲'을 쓴 본인이라면 자전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가, 이야기가 세이의 시점으로 쓰여 있었으니까 맹점이 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거 정말이야?"
코타츠 위로 몸을 내밀고 확인하자, 요시노양은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억측"
"뭐-야"
"하지만 말이지"
자전적 소설이라는 간판에 거짓이 없다는 전제 하에 생각하니,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먼저 가능성은 세 가지 있었어"
"세 가지?"
유미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세 가지라니, 그렇게나 있을까. 그러자 설명할까, 하고 요시노양이 웃었기 때문에, 유미는 부탁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일단 하나는, '가시장미 숲'이란 소설은 로사 기간티아와 전혀 관계없는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그 경우 스가 세이와 로사 기간티아라는 이름의 비슷함이라거나, 상당히 공통점이 많은 에피소드 같은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우연의 일치라는 게 되지"
확실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하고 요시노양은 말했다. 학교에 대한 묘사까지 리리안을 빼닮았으면,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리리안의 재학생이라거나 졸업생이라는 가능성은?"
"범위를 한정하면, 확률은 더더욱 낮아지잖아"
"아, 그런가"
우연의 일치가 거듭된다. 이 정도나 비슷한 일이, 좁은 범위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것. 그렇다면, 차라리 동일인물이라는 쪽에 신빙성이 있다.
"거기서 두 번째.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는 것"
"하지만, 로사 기간티아는 쓰지 않았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것도 아냐. 나도 로사 기간티아의 말 믿을 수 있어. 그래서 나머지 세 번째가"
스가 세이, 쿠보 시오리 동일 인물설.
"로사 기간티아도 그렇게 생각하실까나-"
"모르겠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붕 떠 있어서, 힘들지 않을까나. 시오리씨가 쓰지 않았다고 믿는다 해도, 만약 '가시장미 숲'을 그녀가 읽기라도 하면하고 생각하거나 하지 않을까?"
"시오리씨는, 로사 기간티아가 썼다고 생각하겠지"
응. 그건 꽤 힘들지도. 하지만, 헤어진 후에 그 사람과 한번도 만나지 않았으니까,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정하고 있었으니까, 로사 기간티아는 오해를 풀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걸 포함해서 우리가 스가 세이의 정체를 밝혀내 버리면 되지 않을까?
로사 기간티아는 '가시장미 숲'에 관여하는거, 분명히 무서워할 테니까"
시험방학 중인 지금이라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라고. 그래서, 맨 처음의 '개인적으로 조사해 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거다. 왠지, 요시노양의 이야기에 보기 좋게 말려들어갈 것 같다.
"기다렸지"
레이님이 돌아와서, 이야기는 일시중단되었다.
"일본차로 괜찮겠어?"
쟁반을 일단 바닥에 놓은 후, '자' 하고 양손으로 차를 들어 유미 앞에 놓았다. 그것도, 찻잔에 뚜껑과 받침이 딸려 있는 본격적인 스타일.
"레이님이, 차 서비스를...."
"응? 아아,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유미라도, 이번만은 사치코님이 우리 집 부엌에서 차 끓이고 있는 그림이라는 걸 상상해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와, 과자까지 있어.'
왠지 맛있어 보이는 작은 케이크가 과자접시에 예쁘게 놓여 있었다. 예기치 않은 손님에게 이만한 대접을 할 수 있겠냐 하고 물어보면, 솔직히 유미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애초에, 과자 사 둔 게 어디 있는가 라던가 과자접시 보관 장소라던가, 하나도 모르고.
"레이님은 어른 여성 같아요"
"그건 고마운데"
겉보기엔 완벽한 미소년인 그 사람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나 전화 해 보려고"
갑자기, 요시노양이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이었다.
"전화라니, 무슨 말이야?"
차를 다 내놓고 나가려던 레이님이, 얼핏 듣고는 문 근처에서 되돌아왔다.
"당연히 코스모스 편집부지"
요시노양은 태연하게 잘라 말했다.
"진심이야?"
"응, 레이쨩도 협력해줘"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요시노양 옆에서, 레이님은 덜컥 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몰래몰래 범인 찾기 같은 흉내 내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요시노양은 물러서지 않았다. 레이님 상대로 꾹꾹 밀어붙인다.
"로사 기간티아 일을 걱정만 하고 있어서야 아무것도 안 되잖아. 게다가, 몰래몰래가 아닌걸. 로사 기간티아께 말하지 않은 것뿐이잖아"
"그게 몰래몰래라는 거야"
"로사 기간티아가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으로, 어째서 우리 행동까지 제약을 받아야 해?"
팍팍팍하고 말하고 싶은 걸 다 말해 버리는구나, 여기 자매는. 왠지 다른 일면을 본 것 같아서 조금 득본 기분이지만, 이대로 말다툼을 말리지 않아도 괜찮을지 어떨지. 그게 유미에게 있어서의 고민거리였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의 맨얼굴을 폭로해 버리고 싶다니, 요시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폭로라니 그런 식으로 말 하지 않아도"
"하지만 그렇잖아"
"그렇지 않은걸 뭐, 레이쨩 바보"
황당하게도 요시노양은, 레이님을 향해 쿠션을 내던졌다.
'어이어이, 말로 못 이긴다고 폭력에 기대는 건 나쁜 거야, 요시노양.'
레이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한손으로 쿠션을 나이스캐치 했다.
"적당히 해 둬. 모처럼 유미쨩이 와 줬는데"
'에에-, 이야기를 나한테 돌려!?'
"봐도 괜찮잖아. 이게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그런 레이님의 남 눈을 신경 쓰는 면 같은 게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깽깽 짓는 강아지처럼 요시노양은 마구 소리를 질러대며 수습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 처음 알았다. 요시노양이란, 완전히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타입이었던 거다.

 

 

    2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 하면, 레이님이 꺾였다. 라기 보다, 뿌리째 뽑혔다.
'가시장미 숲'의 작가 찾기에는 여전히 반대의견이면서도, 요시노 플러스 유미만으로 무모한 행동을 일으킬 바에야 감시 역으로 참가하겠어 라고, 그런 식이 되어버린거다.
'하지만, 어느 틈에 내가 요시노양 동료로 들어가 버린 거지?'
자신은 확실히 의사표시를 한 기억이 없는데, 하고 유미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폭주한 요시노양을 말리는 건 이미 누구도 불가능하다. 맨 처음 요시노양은, '전화해 보려고'를 실행하기로 했다.
"요시노양, 편집부 전화번호 알아?"
느긋하게 수화기를 집으려고 하니까, 걱정 되서 물어 본다.
"전화번호 안내(104)에다 궁정사 대표번호 물어서, 일단 거기 걸어 볼 거야"
요시노양은 당연한 듯 말해다. 그러자, 그걸 듣고 레이님.
"잠깐 기다려봐. 3분이면 돼"
뭔가 떠오른 듯 방을 나가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시간 때우기로 시계를 보면서 기다리고 있자, 딱 3분 후에 방문이 열리고 레이님은 손에 잡지를 들고 돌아왔다.
"자, 이거"
내민 책은 만화 월간지 정도의 크기에 그 반 정도의 두께의 잡지였다. 표지에는 꽃에 둘러싸인 소녀의 일러스트. 타이틀은 한자로 네 글자 '秋櫻友達'.
"가을벚꽃친구?"
요시노양과 유미는, 동시에 그렇게 읽었다.
"코스모스 프렌드라고 읽는 거야. 코스모스 편집부에서 내고 있는 격월간지"
"레이쨩의 애독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여기 봐봐"
레이님은 잡지를 뒤집어서 뒤표지 구석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작은 글자지만 코스모스 편집부의 직통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굉장해, 레이님"
"과연 감시원"
요시노양은 곧바로 삑뽁삑하고 인쇄된 전화번호를 누른다.
<예, 코스모스 편집부입니다>
일곱번째 벨에서 상대쪽의 반응이 있었다. 유미도 레이님도 똑같이 요시노양 옆에 달라붙어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 코스모스 문고의 독자입니다만.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코스모스쪽 사람들은 지금 다들 나가 있거든요. 오후에라도 다시 전화해주시면 안 될까요?>
젊은 남자인 듯한, 가벼운 목소리.
"저, 오후라면-"
요시노양은 시계를 힐끔 눈길을 주었다. 오전 11시 50분. 궁정사의 점심시간은 다른 곳보다 빠른 걸까.
<어디 보자, 한 시나 두 시 정도면 누군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다시 걸겠습니다"
요시노양은 전화를 끊고, '하아-'하고 숨을 내쉬었다. 기세 좋게 전화를 했더니, 페인트였다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지"
레이님이 말했다.
"출판사 같은 곳은, 9시부터 5시까지가 아니라고 들은 적 있어. 밤늦게까지 일하는 일도 흔하다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럼 아침엔 언제 와?"
"그러니까, 오후인거 아닐까? 출근하는 게"
"......한 시나 두 시에"
"......응"
"...."
야구선수라거나 물장사라거나, 그런 사람이라면 활동시간이 어긋나 있다고 머리 속에서 알고는 있었지만. 출판사처럼 보통(이라고 얼핏 생각되는) 회사의 샐러리맨이 날샐 때 까지 일하다 오후 출근이라니. 왠지 이상해서. 어른의 세계에는 애들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간표가 존재하는구나, 하고생각하거나 한다.
아무도 감상다운 감상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정오가 되어서 유미가 사온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3등분해서 점심으로 먹었다.
"그건 그렇고, 편집부에 물어본다고 해서 가르쳐 주는 걸까나"
달콤하고 따뜻한 로열 밀크티로 빵 귀퉁이 부분을 넘기며, 유미는 문득 생각난 것을 입에 담았다. 참고로 이 로열 밀크티는 요시노양이 타 준 것. 이 집 딸로서는 아무래도 역시 옆집 언니에게 두 번 세번이나 마실 걸 준비시킬 수양 없는 거겠지만, 요시노양은 그다지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어느 쪽이냐면 스가 세이 찾기를 묵인해 준 레이님에게의 자그마한 감사의 마음, 그걸 이런 형태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면, 굉장히 정성스레 끓여져 있었으니까.
"일단,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레이님은 빵이 들어 있던 비닐 봉투의 가게 이름을 바라보며, 당연하겠지 하는 느낌으로 중얼거렸다.
"이 가게 빵 맛있네. 유미쨩네 집 근처?"
"예에, 그런데요. ......역시 작가에 대해서 같은 거 간단히 가르쳐 주지 않겠죠"
슬금슬금. 그냥 두면 다과회에서 친구들의 이야기 같은 오순도순 분위기가 될 듯한 것을, 요시노양이 끼어들어 호통을 친다.
"그런 거,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에 달린 거야. 두 사람 다, 할 생각 있는 거야!?"
"할 생각, 이라고 해도...."
"......그렇지이?"
할 생각 있냐, 라고 질문 받은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봤다. GOGO 상태인 건, 처음부터 요시노양 뿐이었는데.
"참고로, 요시노양은 그럼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 건데?"
물어 보자, 뭐 그냥 봐 둬 하며 수화기를 손에 들고 리 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요시노 거짓말해서 듣거나 하는 건 없기야"
못 참고 레이님이 잔소리를 했다.
"알고 있다니까, 시끄럽긴"
한 시에서 15분이 지나 있었다.
삑뽁삑뽁뽁.
요즘 전화는 똑똑하니까,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벌써 기억해 뒀던 번호로 걸어주고 있다.
"아, 여보세요"
전화는 비교적 빨리 이어졌다. 요시노양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독자라는 걸 말하고, '가시장미 숲'의 담당편집자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을 정중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 그러신가요. 아뇨, 괜찮습니다"
아까처럼 수화기에 가까이 있지 않으니까, 상대편 목소리 까지를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요시노양의 반응으로 이야기의 내용을 상상할 수밖에 없을 듯 했다.
"실은 저희 학교에서, 지금 '가시장미 숲' 때문에 소동이 벌어져 있어요. ......예, 어느 선배가 쓰신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퍼져 버려서. 그 왜, '가시장미 숲'을 쓰신 스가 세이 선생님은 프로필이 전혀 없잖아요? 그 선배,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라-"
이런 식으로, 요시노양은 학교가 아르바이트 금지라서, 선배는 호출을 받고 생활지도 선생님께 호되게 추궁 당했다, 라고 오버하며 설명을 했다. 쓰지 않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 하고 절절히 이야기한다. 뭐어 처음에 미나코님이 그렇게 협박했었으니까, 전부 거짓말인 건 아니지만-.
"예에. ......예. ......그런가요. 예, 알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예.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그 시간, 약 5분. 문의전화 치고는 짧은 건지 긴 건지. 어쨌든 요시노양은 답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표정으로 봐서, 헛수고로 끝났다는 건 명백했다.
"그런 문의에는 일절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래. 퇴학 운운하는 사태가 되어 있다고 해도, 학교 측의 정식 조회 요청이 없으면 대답을 들을 순 없을 것 같아"
"그야 그렇지"
"거짓말로 들어내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전도다난. 세 명은 팔짱을 끼고 '우-웅' 하며 고민했다.
어쨌든, 스가 세이에 대한 문의는 꽤 많은 것 같다. 요시노양 이야기에 따르면 전화 받은 사람은 담당 편집자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말투가 매끄러워서 대응하는데 익숙해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어쩔 수 없지"
요시노양이 코타츠에서 벌컥 일어섰다. 유미는 레이님과 거의 동시에 '포기하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렇다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나, 하고 둘 다 생각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설마"
하지만, 요시노양은 불사신인 모양이다. 역경은 오히려, 그녀의 에너지를 증폭시켜주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전화로는 결판이 안나. 편집부로 가자"
"에에---!?"
어째서 그렇게 힘이 넘치는 거야, 요시노양. 바로 얼마 전까지 심장이 안좋아서 얌전하게 있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앞날을 위해 고치처럼 가만히 힘을 모으고 있었던 거구만.
"'편집부에 놀러오고 싶은 친구는, 연락해♡'"
지금이라도 나갈 기세의 요시노양에게, 레이님은 잡지 '코스모스 프렌드'를 양손에 든 채 나직이 말했다.
"-라고 여기 쓰여 있어. 편집부에 일이 있을 때는, 사전에 약속을 해 둬야 한다구"
"그럼, 이번엔 레이쨩이 전화해. 오늘 거기 가서 '가시장미 숲'의 편집자에게 만날 수 있도록 얘기해 줘"
"왜 내가"
"그야, 아까 전화한 사람이랑 같은 목소리라면, 경계할 거잖아. 오늘 처음 전화했습니다 하는 분위기로 부탁해"
"에-. 하지만 요시노가 멋대로 꺼낸 일이면서"
라고 불평을 하면서도 수화기를 받아들어 버리는 점이, 레이님의 무른 점이다. '그럼 유미양' 이라고 하면 어떡하나 했지만, 요시노양은 맡겨도 될지 안 될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의바른 말씨로 레이님은 코스모스 편집부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오늘 전화해서 당일에 바로 방문하는 건 무리인 듯, 친구와 이야기해서 다시 전화 하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어쨌거나, 담당자분은 오늘 편집부에 없나 봐"
"흐응-,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 끄덕였기 때문에, 요시노양은 이번에야말로 포기하겠지 했더니.
"그럼, 직접 가 보자?"
당연한 듯이,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오늘은 오지 말라고 하니까, 여기선 천천히 대책을 다시 세우는 게 정답 아닐까나.
"예를 들면 그 담당자분, 스가 세이와 이야기를 하고 마침 돌아온 참에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요시노양은 콧구멍을 넓혀 가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굴러다닐 리 없다. 작가는 출판사 안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거, 모를 리도 없는데.
"게다가 안 되도 본전이고"
"본전이 아냐. 교통비 쓰고, 추위에 떨고, 그래서 안 되면 보람도 없잖아"
그 말 대로다. 유미는 큰 박수를 레이님께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유미양도, 그렇게 생각해?"
"에 그러니까...."
'곤란하네.'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폭발해 버릴 듯한 기세. 요시노양이 터지면 좀 귀찮겠다, 하고 곧바로 계산할 수는 있었다. 히스테릭한 점은 사치코님과 맞먹을 것 같으니.
"오늘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게다가 그 왜, 요시노양 집 봐야 하잖아?"
"오늘 도착할 택배만 받으면, 열쇠 잠그고 나가버려도 괜찮아"
"택배, 왔어?"
"아직, 이지만"
"그럼 안 되잖아"
이대로 갈 수 있겠다, 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레이님도 요시노양에게 보이지 않게 '가라가라' 하는 포즈로 응원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리일까나아"
요시노양이 중얼거린 바로 그때. 딩동- 하고 묘하게 밝은 인터폰이 2층의 이 방까지 들려왔다.
"럭키-"
요시노양은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은 후, 계단을 경쾌하게 내려갔다.
  

    3

 

오후 세시가 지난 시각.
세 사람은 제각각 다른 표정으로 궁정사 앞에 서 있었다.
돌격, 이라는 느낌의 요시노양. 그걸 말리지 못한 자신의 칠칠치 못함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레이님. 그리고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와 버렸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돼 버리는 걸까' 의 유미.
JR로 신쥬쿠까지 나와서, 거기서 지하철. J역의 지상 출구에서 회사 빌딩의 정면 현관까지는 컵라면 하나 끓일 정도 시간 만에 도착해 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큰 빌딩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책 인쇄까지 하는 건가하고 착각해서 레이님과 요시노양이 대폭소를 터뜨리게 하고 말했다. 인쇄는 인쇄소가 하는 거라고. 그야 그렇지.
"자, 간다"
요시노양이 선투에 서서,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유리 자동문이 미끄러지듯 열린다.
"어서 오십시오"
들어선 것과 동시에 접수창구에 있던 언니 두 명이 화사한 웃음으로 이쪽을 돌아봤다. 얼굴로 채용된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 다 굉장한 미인이다. 접수창구 안쪽에는, 체격 좋은 아마도 경비원인 듯한 아저씨가 버티고 있고, 그 뒤로 유리문이 하나 더 있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 같다.
"저, 코스모스 편집부 분과 만나고 싶은데요"
아무리 '돌격' 태세의 요시노양이라곤 해도 경비원을 때려눕히고 이 문을 돌파할 생각은 없는 듯, 접수창구로 직행해서 용건을 말했다.
"예. 약속이 있으셨다면, 이쪽 용지에 기입해 주십시오"
접수 직원이 내민 그 종이는 도서관의 예약표 같은 형식으로, 방문자의 이름이라거나 전화번호 등을 적는 란이 있었다. 요시노양은 그 종이를 받아들고, 창구 옆의 필기대에서 중간까지는 입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볼펜을 놓았다. 어느 편집부의 누구와 몇 시에 약속했나 하는 것까지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약속은 하지 않았어요"
"예?"
어중간하게 기입된 용지를 받아들면서, 접수 직원은 머리를 작게 갸웃 하며 요시노양의 말을 반복했다.
"약속은 하지 않으셨다......?"
"예. 코스모스 편집부 직원 분께 꼭 좀 이야기를 들어 주셨으면 해서"
"작품의 투고, 라거나"
"아뇨. 그냥 독자입니다"
유미는 이야기를 들으며, 출판사라는 곳은 '작품 투고'를 하려는 사람들도 오는 거구나, 하고 감탄해 버렸다. 요시노양에게 끌리다시피 해서 여기까지 와 버렸지만, 꽤 좋은 사회견학이 되었어, 하고.
"접수창구입니다만-"
이야기를 들은 후, 접수 직원은 내선전화 같은 수화기를 들고, 코스모스 편집부에 약속하지 않은 독자가 찾아왔다는 걸 간결하게 전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은 후, 세 명을 향해 생긋 하고 웃었다. 애들 상대로도 제대로 대응해 주는 점은 역시 프로구나-. 유미의 예상으로는, 애초에 접수에서 튕겨버릴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현관에는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잘 관찰하고 있으니, 유미들처럼 용지에 기입하고 접수창구에 수속을 부탁하는 사람과 사원 증 같은 것을 기계에 넣고 접수창구를 그냥 통과하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0분정도 후 청바지에 운동복 차림의 약간 통통한 남자가 나타났다.
"너희들인가? 코스모스 문고에 용건이 있다는 건"
분위기라던가 차림새라던가, 주위에 없는 타입이라서 나이가 얼마쯤 될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편집부 사람이라는 걸 듣고, 조금 맥이 빠져 버렸다. 그야, 이만큼 큰 회사 사원이 정장 이외의 차림으로 나타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오늘은 좀 바빠서, 천천히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 며칠 후에 다시 와 줄 순 없을까. 예약 형식으로 그 시간 비워 둘 테니"
"아뇨,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뭘까나. 작가 프로필이라면 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요시노양은 처음부터 가볍게 막혀 버렸다. 코스모스 문고 오라버니의 예측, 과연 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가시장미 숲'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건 틀림없는 거죠? 그럼 작가인 스가 세이 씨는, 전 리리안 여학원의 쿠보 시오리라는 사람 아닌가요?"
요시노양은 굉장한 속도로 단숨에 말했다.
'어이어이, 질문은 하나 아니었던가......'
게다가, 가르쳐줄 수 없다고 미리 말해 뒀던 걸 그대로 곧장 물어 버리고는. 아마, 반쯤 이판사판 아닐까 싶다.
"그런 질문 굉장히 많지만, 스가 세이 선생님의 경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거니까 말이지"
"하지만,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가르쳐 주셔도"
"고유명사 들 테니까 맞는지 아닌지 대답해 달라는 걸 하나하나 대응 하고 있으면 끝이 없어"
전례를 만들어 버리면, 다들 같은 일을 해야 하게 된다. 그건 잘 알겠어. 응응. 하고 납득하고 있자, 요시노양은 또 굉장한 말을 했다.
"스가 세이 씨 본인이 대답해도 된다고 하면, 괜찮은 건가요?"
"그야, 뭐어"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는 얼굴로 편집부 직원은 웃었다.
"그럼, 스가 세이 씨께 물어봐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리리안 여학원의 시마즈 요시노라고 합니다. 사토 세이 씨에 관련된 중요한 일이에요. 쿠보 시오리 씨인가 아닌가 하는 것만 대답해 주실 수 없을지, 하고"
"안돼안돼. 그런 건 못해. 그거야말로 예외잖아. 게다가, 나는 담당편집자가 아니니까.
......어쨌든, 이 일은 포기해 줘요"
아아, 이 사람 이제 완전히 마무리할 태세에 들어가 있어. '앞으로도 코스모스 문고를 잘 부탁해' 하면서 바이바이 할 셈이다. 그때.
"어머, 야마기시 씨?"
등 뒤에서 자동문이 열렸나 싶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왓"
세사람 앞의 운동복 + 청바지 씨가 실은 '야마기시 씨' 이었던 듯, 이름이 불리자 허둥지둥 등줄기를 꼿꼿이 폈다. 하지만 '우왓' 이란 거, 대체 무슨 대답일까.
"무슨 일이야? 어머나, 귀여운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서"
돌아보자 캐리어 우먼이라는 느낌의 젊은 여성이 생글생글 미소 짓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들어온 사람은 예의 용지를 접수 직원에게 받아서 필기대에서 기입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대로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이 회사 사람일까나......'
그러자 야마기시 씨는,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침착성을 잃었다. 다가오는 그 여성에게, 오지마 오지마 하는, 그런 몸짓으로 마저 보인다.
"안녕(ごんにちは)"
야마기시 씨를 무시하고, 그 여성은 세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입버릇이란 무서운 것이다. '안녕(ごんにちは)' 이라는 인사를 받고도, 학교 친구가 곁에 있는 탓인지 유미는 무심코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레이님도 요시노양도, 따라서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라고 인사했다.
"꺄-, 멋져.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라니. '가시장미 숲'의 세계!"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여성의 옆에서 야마기시 씨는 힘이 다한 듯 털썩 하고 바닥에 무릎과 손을 짚었다.
"어머, 잠깐 왜 그래? 야마기시 씨. 나, 뭔가 말 잘못한 거야?"
야마기시 씨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태도로 자백해 버리고 있다. 이 여성, 야마기시 씨로서는 하면 안 되는 말을 해 버린 거다.
"빙고"
레이님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여성의 정면으로 가서, 진지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가시장미 숲'의 관계자 분되시죠?"
"아아-앗...."
야마기시 씨의, 비명 같은 한숨이 낮은 위치에서 들려왔다.

 

 

    4

 

캐리어 우먼 풍의 그 사람은 사사키 씨라고 했다.
사시키 씨는, 완전히 탈력상태의 야마기시 씨에게서 대강의 사정을 듣자, '과연' 하고 끄덕였다. 마침 좋은 때 돌아온 거네, 하고.
"확실히, 나는 스가 세이 선생님의 담당이야. 하지만, 누구한테 물어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그래도 편집부 사람이 작가의 비밀을 가르쳐줄 리 없잖아. 게다가, 미안하지만 나 지금부터 일이 있어서-"
사사키씨가 손목시계에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그 때.
"저기"
갑자기, 외야에서 이야기에 참가해온 사람이 있었다. 필기대에서 용지에 기입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괜찮잖아, 사사키 씨. 이야기만이라도 들어 드리면?"
접수 직원에게 용지를 넘겨주고 대신 뱃지 같은 것을 받은 그 사람은 세 명의 여고생과 코스모스 편집부의 두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하이힐로 또박또박 걸어왔다. 조금 자그마하고 말라 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꽤 나이가 드신 여자분이었다.
"일이라곤 해도 상대는 나잖아요. 조금쯤이라면 시간 괜찮아"
"하지만, 카스가 씨...."
생각지도 못한 지원병에, 코스모스 편집부의 두 사람은 완전히 당황 곤란 상태.
"뭐든지 안돼 하면서 셧아웃 시켜버리는 건 좋지 않아요.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에 대해 확실히 납득할 수 있게 사정을 설명하는 정도의 여유는, 서로 간에 필요하지 않겠어?"
딱 할머니 정도의 세대일까나, 하고 유미는 생각했다. 이정도 연세의 사람은 까다롭고 설교가 많으니까. 이번엔 그 덕분에 도움을 받았지만.
"대신, 도와줬으니까 나도 같이 이야기 들어도 괜찮지?"
젊은 사람들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하고 붙임성 있게 미소 지었다. 귀여운 할머니,라는 느낌이 드는 분. 물론이죠, 하고 세 사람은 힘 있게 끄덕였다. 이 분이 아니었더라면 분명히 사사키 씨도 이야기를 들어줄 리 없을 것이다. 상황을 보고 있던 사사키 씨는, '에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듣는 것만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괜찮지?"
"예"
"알았어. 그럼,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뭐하니까 로비로 갈까"
접수창구 직원에게 비어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사사키 씨는 창구 옆쪽으로 이어진 커피샵 같은 곳에 안내해 주었다. 야마기시씨는 '난 몰라-' 하는 식으로 재빨리 도망쳐 버려서, 칸막이로 나뉜 박스 석에는 여자 다섯명이 둘러앉게 되었다.
통로를 지날 때 다른 자리가 살짝 보였는데, 남자 두 사람이 테이블에 펼쳐 놓은 만화 원고 같은 걸 둘러싸고 고민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시노양은.
재촉 받는 대로 로사 기간티아를 '선배', 시오리씨를 그 '친구' 라는 대명사로 바꿔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했다. 사사키씨는 그에 대해서 '그래서?' 라던가 '응응' 이라던가 맞장구를 치면서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듣는 게 능숙한 사람, 이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과연. 너희들은 그 선배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은 것뿐이고, 흥미본위로 스가 세이라는 작가의 정체를 조사하려는 건 아니구나. 그건 잘 알았어. 하지만 말이지, 너희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아"
"에?"
레이님과 요시노양과 유미는,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세쌍둥이처럼 우스울 정도로 똑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토 세이 씨라는 분, 좋은 친구들을 잔뜩 가지고 계시는구나"
노부인이 미소 짓자, 주위 일대가 가느다란 실을 덮어씌운 듯 화려해졌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식으로 품위 있게 웃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했다.
"--라니, 잠깐만요!"
요시노양이 테이블에 손을 얹은 채 몸을 내밀었다.
"저, 한마디도 '사토 세이' 라고 말한 적 없는데요!?"
'......앗!'
유미도, 거기서 겨우 알아챘다. 요시노양, 로사 기간티아라고도 사토 세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할머니가 알고 있는 거지, 라는건 당연한 의문이다.
"리리안 여학원의 로사 기간티아. 사토 세이 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코스모스 편집부에 없어"
사사키 씨가 쓴 웃음 섞인 투로 설명해 주었다.
"4, 5일 전부터 코스모스 편집부에, 스가 세이의 본명은 사토 세이인가 하는 전화가 잔뜩 걸려오고 있거든"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은 행동력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는 이쪽의 노부인이 알고 계신 건, 좀 전에 사사키 씨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사 기간티아는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초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스가 세이를 가면작가로 데뷔시켰을 때,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생각도 못했으니까. 사토 세이 씨에게는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해 버렸어"
"이름의 발음이 같았던 불행"
"정말로"
사사키 씨와 노부인이 각각 말하며 끄덕인 후,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하지 않아서야 안되지하고 레이님이 물었다.
"저, 그러면 사토 세이 씨가 스가 세이 선생님이 아니라고 인정하시는 거죠? 그리고, 학원측은 이미 알고 있다, 라고?"
"그렇게 되는 구나"
"리리안 여학원이 정식으로 조회 요청을 해 온 건가요"
"아니 그건 아냐, 그게 말이지-"
노부인은 말하려다, 옆에서 견제하고 있는 여성의 시선을 깨닫고 '말해도 괜찮지' 하고 물었다.
"안된다고 해도, 말씀하시고 싶으시죠? ......그 대신, 셋 다 절대로 이건 못 들은 걸로 하기야"
사사키씨가 일부러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입술에 둘째손가락을 세웠기 때문에, 유미들은 서둘러 크게 끄덕였다.
"그게 말이지"
일단은 중단된 곳으로 말을 되돌리며, 노부인은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어느 인물에게서 코스모스 편집부에 문의 전화가 있었대"
"어느 인물?"
"그래. 그게 누구인지,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할께. 그래서 그 인물은 사토 세이 말고 다른 이름을 대고, 스가 세이의 본명이 아닌가 하고 물었어. 코스모스 편집부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놀랐어. 어째선지 알아?"
"스가 세이 선생님의 본명이었던 거군요"
요시노양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맞아. 그리고, 문의해온 인물의 정체를 알고 더 놀랐어"
"'가시장미 숲'의, 또 한명의 주인공이었다, 라거나"
"대정답. 사흘 전 '가시장미 숲'을 읽고, 거기 쓰여 있는 게 자신에 대한 거라는 걸 알았다나 봐. 하지만, 소식불명이었던 친구의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편집부에 연락한 거지"
유미는 그때, 전화한 건 로사 기간티아라고 생각했다. 로사 기간티아가, 쿠보 시오리 씨 = 스가 세이라는 걸 확신하고, 그리고 확인하기 위해 행동을 한 것이다.
"쿠보 시오리 씨가, 스가 세이 선생님 인가요"
유미보다 먼저, 레이님이 물었다.
'빙고!'
마음 속으로 외친다. 지그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 속에, 차가운 가시장미 숲의 풍경이 펼쳐지고, 이제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거기서 사사키 씨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누구야, 그 사람?"
그리고, 추격타를 넣듯이 노부인도.
"쿠보 시오리 씨......라니 누구?"
순간 스톱모션이 걸린 듯, 박스 안이 얼어붙었다.
말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요시노양도 레이님과 유미와 같은 해답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 가장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잠깐만요...."
머리 속을 정리하듯 이마를 누르고 일단 고개를 숙인 요시노양은, 이윽고 완전히 힘 빠진 표정으로 대답을 다시 이끌어냈다.
"쿠보 시오리라는 이름을 편집부 직원분이 모른다는 건, 그러니까 사토 세이 씨는 '가시장미 숲'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건가요"
힘도 빠지겠지. 지금껏, 스가 세이는 아니더라도 소설속의 세이는 로사 기간티아라고, 지금까지 내-내 결론 짓다시피 하고 있었으니까.
덜컥덜컥 와르르.
다 만들어 졌다고 믿고 있던 지그소 퍼즐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 건가, 하고.
"그래. 그건 아까 이야기 했잖아?"
노부인은 당연한 듯이 주장했지만, 아까 들은 건 사토 세이가 스가 세이는 아니라는 것뿐이었고, 사토 세이가 '가시장미 숲'과 전혀 관계없다는 것은 지금 막 처음 나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학교 측이 로사 기간티아의 무죄를 알고 있다는 건-"
"맞아, 유미양. 편집부에 연락해 온 인물은, 리리안 여학원과 관계가 있어"
유미는 요시노양과 함께 흥분해 버렸지만, '그럼, 그건 누구?'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 한명의 후보자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려봐"
레이님이 중얼중얼 하고 이야기했다.
"어느 인물이란 '가시장미 숲' 에서 나온 카호리인 거지? 그럼, 역시 그 소설은 리리안이 무대라는거야? 하지만, 그거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그 경우를 맨 처음 제외했잖아? 왜냐면 로사 기간티아 외에, 그런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카호리 쪽이 학교 측에 있다는 모순. 아니면 역시 쓴 사람이 카호리고, 학교에 남아있는 쪽이 세이인 건가.
'아-, 완전히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
평소부터 어려운 일을 생각해서 머리를 단련하지 않으면, 앞으로 2년도 넘게 남아있는 고등학교 생활을 견뎌낼 수 없을 지도 몰라.
"왜 그래, 벌써 두손 든 거야?"
사사키 씨는 그렇다 치고, 또 한명의 여성분은 퀴즈를 좋아하시는 듯, 유미들이 추리하는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적어도 이 두 여성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졌어요, 하고 손들고 싶은 심정이지만. 요시노양이 절대 용서해 줄 리 없기 때문에, 관뒀다. 레이님은 뿌리부터 승부사니까, 이런 때 절대 백기를 올릴 것 같지도 않고.
"거기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
레이님이 중얼거렸다.
"에?"
"장소는 리리안인데, 거기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 그건-"
"......타임머신?"
요시노양이 대답했다. 정답을 찾았어, 라는 얼굴을 하고. 그리고, 레이님도 '그거다' 하고 크게 끄덕였다.
타임머신.
순간적으로 세이와 카호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인지 과거인지로 사라져버렸다 같은 생각을 한 유미는, 머릿 속에 바람구멍이 뚫려 있었다. 요시노양은, 그저 예로서 그 말을 쓴 건 뿐이다.
"시대가, 엄청나게 다른 거야. 그래. 그야말로, 소문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세이와 카호리가 리리안에 있었다는 게 분명하다면, 어째서 우리는 모르는 걸까. 몇 년쯤 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사건이라면 전설처럼 이야기가 이어져 와야 하지않을까. 로사 기간티아의 소문만 해도, 아무 것도 모르는 1학년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로사 기간티아가 졸업하면, 소문은 분명히 전설이 될 것이다. 전설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신화화되고, 그리고 그것마저 오랜 시간 속에서 풍화한다.
"타임머신. 과연. 그 말대로일지도 몰라"
노부인의 읊조림에, 요시노양과 레이님은 동시에 반응했다.
"아가씨 두 사람은, 벌써 알아낸 거지?"
두 사람은 반신반의의 표정으로, 그래도 똑바로 노부인을 보며 끄덕였다.
'자, 잠깐. 둘이서만, 어떻게 그런 힌트로 알아내버리는 거야?'
혼자 뒤에 처져버린 유미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쩌면, 난 이해력 제로인건 아닐까. 지금까지 국어 시험이 평균점이었던 건 한자 베껴쓰기라거나 객관식을 운으로 맞춘다거나 그런 요행 덕이었던 걸까. 시대가 다르다고, 거기까지는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부터 어떻게 답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까. 타임머신은 두 사람을 어디로 옮긴 걸까. 세이와 카호리는, 대체 어디의 누구인 걸까.
"나머지 한 명 친구가 고민하고 있어. 가르쳐 주는 게 어때?"
나머지 한 명의 친구인 유미는, 열심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요시노양도 레이양도 알수 있었어. 힌트는 아마 그 근처에 떨어져 있을 터. 중요한 것은, 이 박스석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다. 그것도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세대가 다른 두 여성이 말한 이야기 안에 있다.
한사람은 20대 후반에서 30대 가량의 여성. 궁정사 코스모스 편집부의 사사키 씨. 또 한사람은, 연령불명. 아마 60에서 80까지에는 틀림없이 들어가리라고 보지만, 멋쟁이에 우아한 할머니. 이름은, 사사키씨가 뭐라고 불렀던 것 같지만, 잊어먹어버렸다.
'어라......?'
한번 눈을 돌렸다가 그래도 신경 쓰여 다시 그 사람을 보았다.
이 사람, 대체 누굴까.
사사키 씨의 일과 관련해서 아는 사람으로, 마침 이 자리에 같이 있게 된 사람이고, 조금 참견쟁이에 호기심 많은 할머니.
'......그런 것치고는 사정에 너무 밝지 않아?'
생각해 보면 왠지, 이 노부인의 존재만이 이 자리에서는 부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붕 떠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가장 잘 섞여들어 있다고 할까. 자기 집에 초대한 여주인처럼, 이 자리를 마음대로 다루고 있다.
"서, 설마"
다들 잊어버릴 정도의 옛날이란, 대체 얼마나 전 일일까. 10년, 20년, 30년. 아니,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지도 몰라. 50년, 60년 전에 청춘시대를 보내 온 사람들은 지금 몇 살 정도가 되어 있을까. 이 노부인 정도의 나이가 아닐까.
"정답이야"
금방 얼굴에 나와버리는 타입의 유미에게, 그 사람은 참 잘했어요하는 웃음을 주었다.
"그럼, 저기, 할머니가-"
긍정당하긴 했지만 역시 믿을 수 없어서, 유미는 입을 뻐끔뻐끔해가며 물었다.
"내가 스가 세이에요. 애독해줘서 고마워"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요시노양이 예로 들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스가 세이가, 이야기가 끝난 뒤 담당편집자와 함께 궁정사에 돌아올 지도 몰라, 라는. 요시노양은 예지능력을 갖추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파워로 미래를 이쪽으로 끌고 와버린 건지. 어쨌든, 초능력자라는 의심은 버릴 수 없다. 얕볼 수 없는 친구야, 라고 생각했다.

 

 

    5

 

"그건 말이지, 신문에까지 났을 정도의 사건이었는데도 전쟁 때문에 잊혀진 이야기야"
스가 세이, 즉 카스가 세이코 씨는 먼눈을 하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나면 '뭐야' 하는 느낌이지만, 펜네임의 스가 세이는 본명의 맨 앞과 맨 끝 한자씩을 빼서 다른 한자를 붙였다는, 아주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카스가 세이코가 스가 세이로. 몇번을 생각해도, 역시 '뭐-야' 다. 사토 세이가 슈가 세이가 되어서 스가 세이로 이어지는 '사토 세이, 스가 세이 설' 쪽이 좀 꼬여 있어서 좋지 않을까나.
하지만, 본인은 사토가 설탕에서 슈가(스가)로 바뀐 걸 유미들이 말할 때 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듯, 사사키 씨와 함께 박스 석에서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저 단순히, 세이라는 이름이 같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저...... 신문에까지 났었다는 건, 그 이야기는 역시 실화인 건가요"
요시노양의 질문에 레이님이 '실례야' 하고 나무랐지만, 카스가씨는 그다지 싫지 않은 듯 했다.
"지금 소녀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시대배경은 현대로 바꿔서 썼고, 이름 같은 건 조금 바꿔 놨지만 내용은 거의 같아. 카호리도 본명은 사오리라는 이름이었고, 나는 세이코잖아?"
아직 관계자 중에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니, 완전히 똑같은 건 곤란하겠지 라는 배려인 듯 하다. 라는 건, 둘이서 동반자살 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라는 거다. 하지만 눈앞의 할머니가, 그렇게 격렬한 사람이라니 믿기 힘들다.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둘이서 손을 맞잡고 숲 속으로 들어가, 그리고 한알씩 수면제를 입에 넣었다고. 여기와는 다른 세계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하지만, 마지막이 달랐었나 봐"
달랐었나 봐, 라고 카스가 씨가 다른 사람 일처럼 말했다. '가시장미 숲'을 쓴 본인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있었다.
"사오리가 살아 있다고, 어제 연락을 받을 때 까지 정말로 몰랐어. 그녀도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었나봐. 그도 그럴 것이 지방 신문에 우리 사건이 작게 실린 걸 회복한 뒤에 부모님들이 보여 줬었는데, 거기는 '한명 사망, 한명 중태' 라고 적혀 있었는 걸"
"한명 사망?"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자기가 살아 있으니 상대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카스가씨는 깔깔 웃었다.
"어째서 그런 기사가...."
"우연한 오보였어. 어제 도서관에 가서 옛날 신문기사를 조사해 봤는데, 다음날 신문에 사과와 정정 기사가 실려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들이 그걸 잘 이용한 거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으니까"
"에-, 그런"
"뭐어, 딸을 생각해서 한 일이었겠지만. 적어도 죽기 전에 밝혀 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버지는 뇌일혈로 맥없이 돌아가 버리셨고, 어머니는 오래 사셨지만 말년에 치매를 앓으셨으니 어쩔 수 없었을까"
그래서, '세이와 카호리' 즉 세이코 씨와 사오리 씨는, 서로 죽었다고 믿은 채 몇십년이나 살아온 것이다.
"맞아. 그럼 이렇게 해요, 카스가 씨. '가시장미 숲'의 속편을 쓰는 거에요"
사사키 씨가, 갑자기 직업용 얼굴을 하고 제안했다.
"어느 날, 죽었다고 생각했던 카호리에게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식으로...."
"괜찮군요. 하지만, 현실 쪽이 따라가질 못해"
조만간, 카스가 씨는 사오리 씨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몇십 년이나 전에 헤어졌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왔으니까, 하느님이 선물을 주신 걸지도 모르겠어"
다음부터 스가 세이 씨에 대한 문의에는, 코스모스 편집부에서 좀더 유연하게 대응할 거라고 한다. 사실 조금 전 점심식사를 하면서 카스가 씨와 사사키 씨는 그런 이야기도 하고 왔다고. 기본적으로 프로필은 밝힐 수 없지만, 오해한 사람에게는 본인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대답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앞으로는 로사 기간티아처럼 오해를 받는 사람이 적어질 것이다.
그건 그렇고, 스가 세이가 가면 작가로 데뷔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카스가 씨가 지금은 어느 회사의 회장님이라서, 본명으로 작가 일을 하면 지장이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가시장미 숲'에 나오는 세이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작가 프로필을 전혀 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전적이라고 하면, 독자인 소녀들은 작가 본인의 지금 모습을 보고 싶어할 테니까. 거기서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내면, 꿈이 깨져 버릴 거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유미는, 눈앞에 있는 카스가 세이코 씨를 보고 세이의 이미지가 깨어졌다고 생각하지않았다. 왜냐면, 이렇게나 멋진 할머니니까.

 

또 만나요, 하고 인사하며 카스가 씨와 사사키 씨가 빌딩 안으로 사라져 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반으로, 궁정사 접수창구도 슬슬 닫을 시간이라고.
"또, 래"
요시노양이 웃었다.
"책 속에서 말일까"
레이님이 중얼거렸다.
"아"
자동문이 등 뒤에서 닫히고, 한발 걸어 나가려던 차에 유미는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저기, 사오리 씨는 지금 리리안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 거야?"
"아"
"아"
요시노양과 레이님이 연창하듯 작게 소리쳤다.
돌아가려고 해도, 유리문은 지금 막 잠겨버린 참으로, 긴급사태도 아닌데 억지로 '문 열어요' 하고 문을 열게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설사 열어 준다고 해도, 사사키 씨를 다시 불러낼 정도의 배짱도 없다는, 없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어쨌든 오늘은 이것저것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세 사람 다 몸도 마음도 파김치였다. 빨리 집에 가서 뜨거운 물에 잠기고 싶어. 그러지 않으면, 머리 속 정리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실제 유미가 그렇게 머리 속을 조금씩 정리정돈하기 시작하자, 또 다시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
'......사인 받아 둘 걸.'
아아 아무튼, 이제 와서, 라는 일투성이라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