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１부 - 시합 개시 #.5

　기리야마가 있는 정반대편인 섬의 북쪽 끝은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험한 지형이었다. 높이는 대략 20미터. 절벽 위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고, 제멋대로 자라난 풀이 모자처럼 뒤덮여 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절벽을 타고 올라와, 파도의 파편이 작은 안개가 되어 산들 바람을 타고 춤춘다. 

　오가와 사쿠라(여자 4번)과 야마모토 가즈히코(남자 21번)는 그 풀로 뒤덮인 절벽 끝에 나란히 걸터앉아 있었다.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두 사람의 다리, 무릎 아래는 절벽 밑을 향해 걸쳐져 있었다. 사쿠라의 오른손과 가즈히코의 왼손이 살짝 포개졌다. 두 사람 곁에는 지급받은 데이 팩과 짐이 놓여 있다. 두 개의 자석도. 

 

　기리야마 일행이 섬의 남쪽 끝에서 만난 것과 마찬가지로, 사쿠라가 가즈히코에게 쥐어준 종이쪽지에는("우리는 서로 죽인다"라는 글씨 옆에) "북쪽 끝에서"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기리야마와 방향이 달랐던 것은 일단 행운인 셈이어서, 적어도 두 사람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즈히코의 바지 벨트에는 콜트사의 357 매그넘 리볼버가 꽂혀 있었지만, 가즈히코는 이미 그걸 사용할 일이 없을 거라고 예감했다. 

 

　「조용하네.」 

　사쿠라가 속삭였다. 

　여자아이치고는 꽤 짧게 자른 머리카락 아래, 넓은 이마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옆얼굴의 라인이 살며시 웃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가 크고, 전체적으로 마른 인상의 체격, 평소처럼 등을 곧게 펴고 있다. 조금 전에 가즈히코가 겨우 거기 도착해 두 사람이 한동안 서로 껴안고 있을 때, 그 몸에서는 상처 입은 작은 새처럼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져 왔었다. 

 

　「그래. 그러네.」 

　라고 가즈히코가 대답했다. 콧등이 약간 도톰한 것 이외에는 단정하게 정돈된 얼굴이 다시 사쿠라에게서 바다 쪽으로 향했다. 달빛 아래 캄캄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바다 가운데 군데군데, 더욱 검은 섬의 그림자가,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더 큰 육지의 그림자가 보였다. 큰 육지는 아마 혼슈 쪽일 것이다. 

 

　오전 3시 반 조금 못 미친 시간. 어둠 속에 떠오르는 빛의 그 틈새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편안한 잠이 이어지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밤샘을 하는, 자기들과 같은 나이 또래이의 수험생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 멀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이미 지금 두 사람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세계였다. 

 

　가즈히코는 약간 앞쪽으로 시선을 당겨, 섬 앞바다 20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작은 검은 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사카모치가 이야기했던 "도망치는 사람을 사살하는 일이 중요 임무인 배"같았다. 보통은 야간에도 항해하는 배들이 끊이지 않는 세토나이카이인데, 다른 배의 그림자가 내는 빛은 주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정부에서 항해 제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름이 돋았지만, 가즈히코는 그 검은 점에서 눈을 거두었다. 그는 분교를 나올 때, 텐도 마유미와 아카마츠 요시오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여기 도착하기 전에, 어디선가 멀리서 총소리 같은 것도 들었다. 게임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조금 전에 사쿠라와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이젠 어찌되건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정말 고마워.」 

　사쿠라가 가즈히코와 잡고 있는 손과는 반대쪽 손에 쥔 아주 작은 꽃다발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가즈히코가 여기 오는 도중에 대충 꺾은 클로버와 다른 꽃들 몇 송이였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치어걸이 손에 들고 흔드는 것 같은 작은 꽃잎이 밀집해 있다. 별로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즈히코는 웃어 보였다. 

　「뭘.」 

　사쿠라는 그 작은 꽃다발을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즈히코가 입을 열었다. 

 

　「우리, 더이상 둘이서 함께 집에 돌아갈 수는 없네. 이제 둘이서 거리를 걷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거나 할 수 없는 거야.」 

　「싫어!」 

　가즈히코의 말을 사쿠라가 상당히 거친 말투로 가로막았다. 

 

　「저항할 수 없어. 나는 잘 알아. 우리 아버지는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셨던 것 같아. 그리고 어느 날….」 

　사쿠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잡은 손을 통해 가즈히코에게 전해졌다. 

　「경찰관이 와서 아버지를 죽였어. 체포 영장도 없었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쏴 죽인거야. 지금도 기억나. 우리집, 좁은 부엌 안이었어. 어린 나는 식탁에 앉아 있었지. 엄마가 나를 꼭 껴안고 있었어. 그리고 그뒤로 줄곧 나는 그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자랐어.」 

　사쿠라가 가즈히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항 같은 건 할 수가 없어.」 

 

　사귄 지 2년이 지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약 한 달 전, 바로 그 사쿠라의 집에서 처음으로 안은 뒤로도, 사쿠라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가즈히코는 다른 표현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말했다. 진부한 표현이었다. 

　「괴로웠겠구나.」 

　그러나 사쿠라는 생각지도 않게 살짝, 방긋 웃어보였다. 

　「마음씨가 착하구나, 가즈히코. 정말 착해. 나는 네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 

　「나도 네가 좋아. 무지 좋아.」 

 

　가즈히코는 만약에 자기가 이렇게 어리지 않고, 말주변도 없지 않았다면 그걸 설명하고 싶었다. 사쿠라의 표정이나 말, 또는 착한 행동, 한 점 때도 없는 아름다운 혼이 얼라마 자기 가슴을 울리는가를. 그녀의 존재 그 자체가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렇지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어쟀든 아직 중학교 3학년 학생에 불과했고, 특히 국어 점수도 좋지 않았다. 

 

　「어쨌든….」 

　사쿠라가 눈을 감고,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 숨을 토해냈다. 

　「나는 널 꼭 만나고 싶었어.」 

 

　가즈히코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사쿠라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니, 아까 네 이야기대로라면 이미 시작된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친구였는데, 서로 죽이는 거야.」 

　사쿠라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쿠라의 손에서 가즈히코의 손으로 다시 그 떨림이 전해졌다. 사쿠라는 가즈히코에게 공포와 혹은 자기들을 조롱하는 이 어이없는 운명에 대한 빈정거림이 섞여 있는 듯한 복잡한 느낌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이런 건.」 

　그렇다. 물론 그럴 것이다. 사쿠라는 아주 마음씨 고운 여자 아이였다. 가즈히코가 알고 있는 어떤 여자 애들보다 그랬다. 

　「그리고….」 

　사쿠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 이제는 둘이서 함께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만약에 우리 둘 가운데 누군가가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함께는 돌아갈 수가 없어. 그리고 만약에 내가 살아남아도 네가 없이는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사쿠라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가즈히코는 사루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을 거야, 나는. 여기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지금, 네 곁에서. 사쿠라는 그 다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대신 「그렇지만 넌 살아야 해」 라고 말했다. 

　가즈히코는 씁쓸하게 웃으며, 사쿠라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만약에 내가 살아남게 되더라도 네가 없으면 견딜 수가 없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말아 줘.」 

　그러자 가즈히코의 눈을 들여다보는 사쿠라의 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쿠라는 가즈히코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클로버 꽃다발을 쥔 왼손으로 눈을 훔치더니 불쑥 물었다. 

 

　「지난 번에 그거, 봤어? 목요일 아홉시에 하는 거. 『오늘밤, 바로 그 곳에서』 마지막 회.」 

　가즈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영방송인 DBS에서 하는 드라마로, 대동화공화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만든 드라마여서 그렇고 그런 뻔한 러브스토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그럴 듯한 스토리였다. 최근 몇년 동안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는 가장 높은 1위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 봤어. 네가 꼭 보라고 했잖아?」 

　「응. 그래서, 저어….」 

　사쿠라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가즈히코는 생각했다. 그래, 이건 우리가 평소에 하던 이야기들이야. 아주 평범하고, 별 의미없는 대화지만, 그래도 행복했지. 사쿠라는 마지막까지 단둘이 있고 싶어하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가즈히코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공인 두 사람이 맺어진 건 좋아, 정해진 거니까. 그렇지만, 미키의 친구인 미즈에라고 하는 애가─기타가와 안나가 맡은 역이야. 미즈에가 어째서 좋아하게 된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는지, 난 그게 불만이었어. 나라면 거기서 꼭 따라갔을 거야.」 

　가즈히코는 간신히 웃어 보였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어.」 

　그러자 사쿠라도 멋쩍은 듯이 후후, 웃었다. 

　「네겐 뭐든 다 들켜버리네.」 

　그러면서 사쿠라는 아주 행복한 듯이 말했다. 

 

　「나,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 너하고 같은 반이 되었을 때의 일을 지금도 기억해. 너는 키가 크고, 멋지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어. 이 사람은 분명히 날 이해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난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가즈히코는 입술을 입 안으로 약간 말아 넣으며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잘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서 사쿠라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였다. 왼손은 사쿠라의 오른손을 잡은 채, 오른손은 사쿠라의 어깨에 얹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기대어 입맞춤을 나누었다. 기껏해야 몇 초, 아니, 수십초 였을까? 아니, 어쩌면 영원? 그렇지만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졌다. 두 사람의 귀에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뒤쪽 수풀에서. 분명히 인기척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호였다. 손님, 열차는 이제 출발합니다. 빨리 타세요. 정말입니다. 

 

　이제 더 이야기해야 할 것은 없었다. 그렇다, 분명히 저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총을 들고 등 뒤에 누군가와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 허망한 싸움에 말려들기 전에 조용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떨리는 혼이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는 그녀를 따를 것이다. 작문 능력이 좀 더 있었다면, 그것을 "그녀의 가치관에 순교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식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몸이 절벽 아래, 캄캄한 바다를 배경으로 허공에서 춤추었다. 손을 꼭 마주잡은 채로. 

 

　수풀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우츠미 유키에(여자 2번)는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녀에겐 누군가를 상처 입힐 생각을 털끝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낸 소리가 두 사람에게 출발 시각을 알려 준 것이라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다만, 반에서 가장 사이 좋은 커플인 그 두 사람의 몸이 나란히, 풀로 뒤덮인 절벽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배웅할 뿐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그 암벽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히 이어지고, 부드러운 바람에 날려, 사쿠라의 손에서 떨어진 작은 클로버 꽃들이 풀 위에 굴렀다. 등 뒤에서 다니자와 하루카(여자 12번)가, 「왜 그래, 유키에?」 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키에는 한동안 그저 떨고만 있었다.

 

【남은 인원 32명】

 

 

　에토 메구미(여자 3번)는 어둠 속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이 섬에서는 유일하게 제 모양을 갖춘 마을의 외곽에 있는 한 가옥 안이다. 불이 들어 올지도 모르지만, 메구미는 물론 전등을 켜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메구미가 몸을 숨기고 있는 날긍ᄂ 부엌의 테이블 아래는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도 닿지 않아, 거의 완전한 어둠에 가까웠다. 그 어둠 속에서는 손목시계도 볼 수 없었지만, 메구미가 그렇게 거기에 앉아 있은지 벌써 두시간 정도는 지나서 오전 4시가 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불꽃놀이를 하는 듯한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온 것이 이미 한 시간 정도 전의 일인가? 그렇지만 메구미는 그것이 대체 무슨 소리였는지는 생각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자, 창가에 가까운 곳에 있는 개수대 위에 식기 선반과 주전자가 놓여있는 것이 달빛에 실루엣으로 보였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분명히 정부가 어딘가에 마련한 가설 주택 같은 곳에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거지만, 집 안에 아직 떠돌고 있는 생활의 냄새는 왠지 부자연스럽고 기분 나빴다. 어린 시절 들었던 바다 괴담-식사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승무원 전원이 사라져 버린 마리 세레스트 호의 이야기가 생각나, 메구미는 새삼 등골이 오싹했다. 

 

　출발한 직후, 그녀는 자기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마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갑자기 든 생각은 아직 출발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여섯 번째로 그 분교를 나왔다. 다섯 명이 먼저 나갔는데-겨우 다섯명이다-대충 5,60채는 되어 보이는 마을 안, 어느 집에 뛰어들어도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물쇠를 걸고 열어주지 않으면 적어도 그 금지 구역이라는 것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되기까지는 안전할 수가 있다. "금지 구역에 들어가면 폭발한다"고 하는 목걸이의 존재가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카모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벗으려고 해도 폭발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금지 구역과 그 시간을 알리는 사카모치의 정시방송을 듣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까운 집에 들어가려고 한 메구미였지만, 첫 번째 집은 좌물쇠가 걸려 있었다. 두 번째 집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집에 이르러서야 결국 뒷마당의 섀시 문을 마당에 있는 돌로 부셨다. 너무 큰 소리가 나서 얼떨결에 나무 밑에 엎드렸지만, 누구도 다가오는 기척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그 문만은 자물쇠를 채워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힘들여 덧문을 닫았다. 문이 닫혀서 캄캄해진 그 순간에도 성질고약한 도깨비이ㅡ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겼지만, 그래도 지급받은 회중전 등을 들고 집안을 뒤져, 단단한 낚싯대 두 개를 발견하고, 그걸 덧문에 버팀목을 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 부엌의 테이블 밑에 있다. 서로 죽인다니,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만약에─ 만약에, 여기(지도에서 확인하면 이 마을 거의 대부분이 H=8이라는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가 마지막까지 금지 구역에 포함되는 일이 없다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메구미는 여전히 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정말 무섭다. 물론 이 게임의 룰에 따르면 모두가 적이고, 누구를 믿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여기서 떨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때, 게임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만약에 내가 살아남아 있다면 당연히 나머지 다른 애들은 죽은 셈이 되는 것이다. 친한 몇 명의 친구들(이나다 미즈호와 미나미 가오리), 또는 메구미가 그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나하라 슈야마저도. 

 

　메구미는 어둠 속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슈야 생각을 했다. 메구미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그 목소리였다. 약간 쉰,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톤, 그는 정말 록이라고 하는 금지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음악 시간, 정부나 총통을 떠받드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아주 불만에 찬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그 노래의 맛은 특별했다. 애드리브로 기타를 연주하는 그 소리를 들으면, 메구미가 들어본 적이 없는, 몸이 자연히 움직일 듯한 리듬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름다운 교회의 종이 울리고 있는 듯한 경쾌함이 있었다. 그리고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브루스 스프링스틴 흉내를 낸 거야」 라고 언젠가 슈야가 말했지만, 메구미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약간 졸린 듯한 느낌의(귀여운 고양이 같다, 고 메구미는 이따금 생각했다.) 쌍커풀이 진 아름다운 눈. 초등학교 시절, 리틀 리그의 핵심 맴버였기 때문에 가능한 유연한 몸놀림…. 슈야의 그 얼굴과 목소리를 생각하고 있다 보니, 몸이 떨리는 것고 약간 가라앉았다. 아아, 지금 나나하라 슈야가 곁에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슈야에게 내 생각을 고백하지 않았을까, 러브 레터? 어디로 나와 달라고 해서 만난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로라도?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메구미의 머리에 뭔가가 잡혔다. 전화. 그래, 사카모치가 이야기했었다. 집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전화는 쓸 수 없다고. 그러나….

 

　메구미는 서둘러 지급받은 데이 팩과 나란히 놓아두었던 자신의 나일론 백을 끌어당겼다. 지퍼를 열고 필사적으로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헤집었다. 손 끝에 사각의 단단한 물건이 잡히자, 끄집어냈다. 휴대전화였다. 메구미의 어머니가 여행 중에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쓰라고(무슨 일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수학여행을 핑계 삼아 사주신 것이다. 분명히 반에서도 한두 명밖에 갖고 있지 않은 휴대전화는 자기도 가지고 싶었고, 뭔가 자신만의 비밀 통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메구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모는 너무 과보호하는 생각이 옛날부터 들었고,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중학생에게 이런 건 필요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반짝거리는 그 전화를 백 안에 넣어 두었다가 지금까지 그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메구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의 플립을 당겨 열었다. 자동적으로 착신 대기 상태에서 발신 대기 상태로 전환되면서 작은 액정 패널과 다이얼 버튼에 녹색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그 빛에 자기 스커트의 무릎과 짐이 보였다. 그런데 패널에 통화가 가능하다고 표시하는 안테나와 전파 마크가 제대로 뜨는 게 아닌가! 

 

　「아아! 하느님!」 

 

　메구미는 서툰 동작으로 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시로이와 읍의 집 전화번호. 0,8,7,9,2….

　잠시 침묵 후, 전화를 갖다 댄 메구미의 귀에 호출음이 들려왔다. 메구미의 가슴에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서 받아. 아빠든, 엄마든 어서. 물론 전화를 금방 받을 만한 시간은 아니지만 딸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실 테니, 어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아빠!」 

　메구미는 쭈그린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마음이 놓여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살았다, 살았어! 

　「아빠! 나야! 메구미! 아아, 아빠! 구해 주러 와 줘! 아빠, 구해 주러 와!」 

　거의 착란 상태에서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상대가 아무 말도 없자 문득 제 정신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어째서 아빠는? 아니야, 이건…. 마침내 전화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아니다, 메구미. 사카모치다. 전화를 쓰지 말라고 했잖아. 메구미.』 

 

　메구미는 힉, 하고 비명을 지르며 전화를 내던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그 전화를 거의 두들겨 패듯이, 서둘러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그리고 메구미의 가슴은 이제 다시 절망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아, 틀렸어. 역시 안돼. 나는 여기서 죽는 거야, 죽는 거야! 

 

　그 순간, 메구미의 심장이 한 번 더 크게 뛰는 일이 일어났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던 것이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메구미는 얼른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봐았다. 아까 자물쇠를 점검한 거실 쪽이었다. 누가 온 것이다. 누군가가! 어째서? 집은 여러 채가 있는데, 어째서 여길! 

　메구미는 서둘러 흐릿한 녹색 비을 내고 있는 휴대전화의 플립을 닫았다. 주머니에 집어넣고, 데이 팩 위에 놓여 있던 지급받은 무기-양쪽에 날이 있는 다이버용 나이프-를 플라스틱 칼집에서 꺼내 쥐었다. 도망가야만 해. 어서 빨리. 

　그러나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메구미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제발, 제발, 제발 하느님, 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창이 열리는 소리, 또 닫히는 소리, 그리고 살금살금 움직이는 조용한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잠시 집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듯했지만, 이윽고 메구미가 있는 부엌으로 다가왔다. 메구미의 심장이 점점 더 크게 뛰었다. 가느다란 회중전등의 불빛이 휙 하고 부엌을 비추었다. 개수대 위의 주전자 냄비 위를 그 빛이 스쳐 지나갔다. 휴우, 하고 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다행이야, 아무도 없네.」 

 

　누군가가 말했다. 말소리는 그대로 부엌까지 들려왔는데, 그 소리에 메구미는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친한 친구라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그, 소마 미츠코(여자 11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학교 최고의 불량소녀, 사랑스러운 천사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으면서도, 선생님마저 시선 하나로 떨게 만드는 그 소마 미츠코였다. 메구미에게 소마 미츠코는 이런저런 소문이 있는 기리야마 가즈오나 가와다 쇼고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것은 미츠코가 메구미와 같은 여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2학년이 되어 처음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메구미는 자신이 미츠코의 그룹인 시미즈 히로노에게 약간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다. 복도를 걸어가다 보면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스커트를 칼로 찢기도 하고. 최근에는 히로노가 이미 메구미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그러지는 않았다(그래도 3학년 올라올 때 반이 바뀌지 않은 것은 우얼했다). 미츠코 자신은 메구미를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츠코는 그런 히로노마저도 꼼짝 못하는 상대인 것이다. 

　맞아, 소마 미츠코라면 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릴 것이다. 메구미의 몸이 다시 약간씩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 왜 이래? 그만, 떨지마. 소리가 들리면…. 메구미는 자기 몸을 두 팔로 꼭 껴안고, 떨지 않으려 애를 썼다. 

 

　메구미가 있는 테이블 아래서 회중전등을 쥔 미츠코의 손과 그 빛에 비치는 스커트의 허리 부근이 보였다. 개수대의 꼭지를 부스럭부스럭 찾는 소리가 났다. 어서 제발, 어서 나가. 적어도 이 방에서 나가만 준다면...그래, 목욕탕 쪽으로 도망치면 된다. 거리라면 안에서 자물쇠를 걸 수가 있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있다. 제발, 어서. 

 

　뚜루루루루, 하고 갑자기 전자음이 울려, 메구미의 심장이 거의 목구멍까지 뛰어올랐다. 소마 미츠코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바로 회중전등의 불이 꺼지고, 미츠코의 스커트 라인도 사라졌다. 후다닥 방의 구석으로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메구미는 전자음이 주머니에서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후다닥 휴대전화를 꺼냈다. 거의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 반사적으로 플립을 열었다. 그리고 단추를 아무 거나 마구 눌렀다. 

 

　『사카모치다. 메구미 양, 전원을 끄는게 좋아, 이 전화. 선생님이 이렇게 전화를 하면 네가 어디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잖아? 응? 그러니까….』 

 

　메구미의 손가락이 통화 정지 버튼을 찾아 누르자, 사카모치의 목소리는 끊어졌다. 숨 막히는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메구미?」 

　하고 부르는 미츠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메구미니? 거기 있어?」 

　미츠코는 어둠에 묻힌 부엌 한쪽 구석에 있는 것 같았다. 메구미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나이프만 움켜쥐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어, 나이프는 완전히 자기 손에서 도망가려는 물고기 같았지만, 그래도 세게, 세게 움켜잡았다. 

 

　미츠코가 나보다 키는 크지만 힘은 그리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미츠코의 무기가 설마 권총이라면…. 아니야, 총이라면 미츠코는 이미 자기가 있는 쪽을 향해 쐈을 것이다, 권총이 아니라면 승산이 있다. 그래, 죽여야만 해, 죽이지 않으면 미츠코는 나를 죽일 게 틀림없었다. 죽여야 해. 

　찰칵 하는 소리가 나고, 다시 회중전등의 빛이 들어왔다. 테이블 아래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메구미는 순간 눈이 부셨다. 그러나 지금이다, 일어나서 빛이 나오는 쪽을 향해 나이프로 찌르면 된다. 그러나 메구미의 그런 생각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 때문에 어이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회중전등의 빛이 낮은 위치로 내려오며, 그 빛 안에 소마 미츠코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츠코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이야─」  

　부들부들 떠는 입술이 드디어 움직이며, 생각지도 못한 여린말을 쏟아냈다. 

　「나, 나, 너무 무서워서….」 

　미츠코의 목소리에는 오열이 섞여 있었다. 메구미에게 도와달라는 듯이 두 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무기 같은 것은 들려 있지 않았다. 한꺼번에 뒷말이 이어졌다. 

　「너라면, 너라면 괜찮겠지?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겠지? 나하고 함께 있어 줄꺼지?」 

　메구미는 순간 멍해졌다. 저 소마 미츠코가 울고 있다.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아. 슬며시 몸의 떨림이 사라지면서, 메구미의 가슴 속에서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의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랬다. 아아, 그랬었구나.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어떤 소문이 있다고 해도, 소마 미츠코도 또한 자기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3학년자리 여자 애에 불과했다. 아무리 소마 미츠코라고 해도 클래스메이트를 죽이다니, 그런 무서운 짓을 할 리가 없는 거다. 단지 외톨이여서, 너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아,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를 죽일 생각을 했다. 나는,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와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라고 하는 안도감이 메구미의 가슴을 메게 만들었다. 메구미의 눈에서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메구미의 손에서 나이프가 미끄러져 내렸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테이블 밑에서 나와, 미츠코가 내민 손을 잡았다. 가슴 안에서 뭔가 둑이 무너지는 듯이 아주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츠코! 미츠코!」 

　이번에는 다른 감정 때문에 자기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건 어찌 되었든 상관 없다. 나는, 나는. 

　「괜찮아, 괜찮아. 나는 너랑 함께 있는 거야. 우리 함께.」 

　「응, 응.」 

　미츠코가 눈물에 흠뻑 젖은 뺨을 하고, 메구미의 손을 잡았다. 「응, 응!」 하며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메구미는 그대로 부엌 바닥에서 미츠코를 끌어안았다. 미츠코의 체온이 전해지고, 의지할 곳 없이 떨리는 미츠코의 몸을 가슴에 느끼면서 죄의식은 더 강해졌다. 나는 정말 형편없던 생각을 했던 거야. 어쩜 그런 생각…. 이 애를 죽이려고 하다니…. 

 

　「저어….」 

　메구미가 입을 열었다. 

　「나─ 나는….」 

　「응?」 

　미츠코가 눈물에 젖은 눈으로 메구미를 올려다보았다. 메구미는 울음을 쏟아낼 것만 같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잠깐 너를 죽이려는 생각을 했어. 죽이려고 생각했었어. 너무 무서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츠코의 눈이 둥그레졌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다만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번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방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마, 그런거. 무리도 아니지 뭐.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신경 쓰지마. 나랑 함께 있어 줘, 응? 부탁이야.」 

 

　미츠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메구미의 얼굴을 왼손으로 다시 살짝 껴안고 메구미의 왼쪽 뺨에 자신의 왼쪽 뺨을 갖다댔다. 미츠코의 뺨을 적신 눈물이 메구미의 뺨에도 전해졌다. 아아, 메구미는 생각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소마 미츠코라고 하는 애는 이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여자 애였는데.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조차 괜찮다, 라는 한 마디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아아, 그, 이미 죽어버린 하야시다 선생님이 언젠가 이야기했었지, 소문같은걸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건 추한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메구미의 가슴은 다시 멨다. 그냥 미츠코의 몸을 꼭 안아 주고 싶었다.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정말 한심한 인간이었어, 나는 정말로….

 

　스윽, 하고 레몬을 써는 듯한 소리가 메구미의 귀에 들렸다. 꽤 듣기 좋은 소리였다.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잘 드는 칼, 싱싱한 레몬이 아니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레몬과 연어 마리네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기까지는 2, 3초 정도 걸렸다. 메구미의 눈에 미츠코의 오른손이 보였다. 자기 턱, 바로 아래, 왼쪽이다. 그리고 그 손에서 회중전등의 빛을 둔하게 반사해 내는, 마치 바나나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칼날이 뻗어 나와 있었다. 낫이다, 벼 베기를 할 때 사용하는. 그리고 그 끝이 자기 목을 파고 들어오고 있다. 

 

　미츠코가 메구미의 머리 뒤로 왼손을 두른 채, 오른손에 쥔 낫을 더 깊이 찔러 넣었다. 또 스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메구미는 목이 무섭게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다만 가슴 부근이 자기 피로 아주 따뜻해지는 촉감을 마지막으로 느끼면서, 메구미의 의식은 끊어졌다. 

　자기 목에 칼날이 들어오고 있다는 상황─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지막에 가족이나 또는 나나하라 슈야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하고, 메구미는 미츠코의 품 안에서 숨이 끊어졌다. 

 

　미츠코가 손을 놓자, 메구미의 몸이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미츠코는 재빨리 회중전등을 끄고 일어섰다. 성가진 눈물을 눈에서 훔쳐내고(눈물 같은 건 언제든 흘릴 수 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특기 가운데 하나다.), 오른손에 쥔 낫을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에 비추어 보더니, 홱 휘둘러 피를 털었다. 핏방울이 바닥에 튀는, 후드득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나쁘지는 않군, 첫 출발치고는… 미츠코는 생각했다. 좀 더 쓰기 편한 부엌칼 같은 것을 찾으려 하고 있는데, 이 낫도 의외로 나쁘지는 않다. 다만 누가 있는지 모르고 집에 들어오는 거, 좀 부주의했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지. 

 

　그리고 메구미의 시체를 내려다 보니 아주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나도 널 죽이려고 했었어.」

  

【남은 인원 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