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오찬호

[온도 조절을 상실한 사회]

 

한국인들에게는 '뜨거운 에너지'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뜨거워야 할 때를 모른다면 그 에너지가 무슨 소용인가.

우리 곁에는 자신의 감정을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뜨거워야 할 때 차갑게 식지 않는 사람, 차가워야 할 때 괜히 달궈지지 않는 사람은 그 옆의 사람을 '괜찮게' 했다.

좋은 사회를 희망한다면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지 않겠는가.

 

 

 

Part.0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은 모든 표현의 형식 중에서 가장 고유하고 인간적인 것이다.”

－찰스 다윈

 

 

1) 층간 소음

 

"내가 내 집에서 걷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그 쪽 눈치 봐야 해요?"

"층간 소음 걱정하면서 아파트에는 왜 살아?"

 

층간 소음은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 철학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다.

 

길거리 흡연자에게 항의를하면 "내 돈 주고 담배 사서 피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

자동차를 내 돈 주고 구입했으니신호 위반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자기 돈으로 산 식칼도부엌을 벗어나면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흉기다.

 

사적 재산권은 그것이 자기것이라는 뜻이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적 재산권'은 가장 남용되는 말이다.

 

 

2)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

 

[비만에 대한 혐오]

"뚱뚱한 건 사실이잖아"

"솔직히 뚱뚱한 인간들이 미련해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외모를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만큼 타도의 대상이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타인을 조롱하려는 본능을 드러내면 다른 모든 이의 삶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도 그런행동을 해도 된다고 승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천적 관절만곡증을 앓고 있는 뉴욕타임스 기자를 조롱한 데 대하여, 배우 메릴 스트립이 2017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남긴 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동네 주민이 목숨 걸고 재산권을 지키겠다는 듯이 결사 반대를 외친다.

연민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는데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가려서 연민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지않게 해 달라는 너무나 지당한 문구 하나를 인권 조례에 넣으려고 해도 온 국민이 대동단결해서 저지한다.

성적 지향을 문제삼지 말아달라는데 자신에게는 그런 지향을 싫어할 취향이 있다는 궤변이 난무한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와 사랑한다. 누군가가 이성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찌 이성애자의 인권이 침해당한단 말인가?

이런 무리수가 가능한 건그 상대가 늘 혐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은 혐오다]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할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작가 은유

 

수영장의 노키즈존은 아이의안전을 위해 있다. 그러나 식당이나 카페의 노키즈존은 시끄러운 아이에 대한 불쾌감을 차단하는 효과밖에없다.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아이들의출입을 금할 권리가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행동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권고 뿐이다.

 

 

3) 사회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사회

 

*객관적인 불평등을 외면하는 '긍정적 사고'의 위험성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의투자 정도, 입시 결과의 상관성을 말할 때 "우리아이는 학원 다닌 적 없지만 특목고 갔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

지방(대) 출신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이야기할 때 대기업에 합격한 자기계발서의 "남 탓 하지 않는 주인공"을 내세우는 사람들,

이들은 억지로 예외를 찾아서 '산다는 건 사람 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한다.

 

여성 차별 문제는 객관적으로존재하지만 주관적으로 부정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점의 자기계발 코너에는 '가난을 보란 듯이 이겨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지만, 평균적으로 가난은 '보란 듯이 이겨내기' 힘들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의평균치를 부정하는 조언은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언어적 습관이다.

좋은 사회란, 예외가 되지 않더라도 행복한 개인들로 넘쳐나야 한다.

이는 객관적 불평등을 직시하는시민의 구체적인 노력이 모여, 정의로운 사회 구조가 탄탄해져 갈 때만 가능하다.

단언컨대, 예외를 가지고 평균적인 불평등을 부정·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반드시 나쁘게 변한다.

 

 

4) 대한민국은 꼰대 천국

 

*젊은 꼰대도 얼마든지 있다

 

꼰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몰라서, 정확히는 이를 알려고 하지 않기에 꼰대다.

자기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그러니까 사는 대로 생각하겠다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없이 존재한다.

이들은 꼰대를 혐오하면서도본인이 꼰대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꼰대는 사는 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 여러후진적 모습들이 남아 있는 것은 지금껏 정치인들이 죄다 꼰대였기 때문이다.

 

 

5) 차별의 정서

 

미국 사회에는 인종 차별이존재한다.

여기서 끄집어내야 할 일반화는 '백인 모두가 차별하는 건 아니다' 라는 폭력적 기만이 아니라,

'흑인 모두가 차별의 대상일 수 있다' 라는 상식적 추론이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라는피켓을 들고 있는 절박한 흑인 앞에서

'All lives matter(모두의 목숨은 소중하다)' 라는피켓을 들면서 '나는 차별한 적이 없다'고 떠벌리지 않을까?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문구처럼 보이지만, 차별에 항의하는 사람 옆에 나란히 서게 되면 '왜너희만 힘들다고 난리냐?' 라는 뜻을 발현한다.

객관적인 차별을 희석시키니그 팻말은 굉장히 차별적이다.

 

차별이 실재한다고 피해자가증언하고 있음에도 '차별 부정자'들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고 목격한 적도 없다면서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한다.

그 사람들이 너무 예민한것이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피해자가느끼는 것이지 가해자가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괜히 예민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선하다고 생각할 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6) 폭력의 정당화

 

*왕따 문제

 

왕따의 피해자는 '그럴 만한 아이'가 아니다.

현장 안에서 적용되어야할 원칙은 하나다. '하는 자'가 잘못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단 따돌림을 '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고 혹은 알아도 어떻게 할 도리가없으니 소수의 피해자에게 '그럴 만한 이유'를 돌려 책임을전가한다.

그 덕분에 폭력은 피해자가예방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폭력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거나 저항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을 목표물로 삼는다.

힘을 가진 사람의 자기합리화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만큼 위험하다.

 

 

7) 화목하고 불평등한 가정

 

남편(저자)은 1박 2일 강의를 나가면서도 아내에게 허락받지 않는다.

아내는 막내 아이가 유치원에있는 시간에만 외출이 가능하고 남편에게 외출해도 좋은지 일정을 묻는다.

남편은 쉬는 날 아이를돌보고 집안일을 돕는데 사람들은 다정다감한 남편이라고 치켜세운다.

아내는 다른 남편에 비하면복받았다면서 가끔 도움받는 것도 항상 도움받는 것처럼 고마워한다.

 

남자가 일하는 것이 소득면에서 집안에 유리하니 여자가 그만두자는 자연스런 합의가 생성된다.

남편이 아내를 혐오해서남자는 일하고 여자가 희생하는 게 아니다. 서로 사랑해서 내린 결정이다.

악순환의 완벽한 선순환은이렇게 완성된다.

 

*기울어진 운동장 :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을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유리한 제도나 질서가 있을 때, 그 상대방은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편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경쟁에서 이기기힘들다는 뜻.

 

 

8) 가난한 사람은 성실해도 가난하다

 

아버지가 변호사고 서울대를졸업하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원 출신인 대학 전임강사 L교수는,

처음부터 유리했던 본인의배경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간강사인 저자를 게으르다고 비난한다.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사당동 더하기 25, 조은 교수

 

 

9) 꼼수 권하는 사회

 

*건강보험료를 절약하는 사람들

 

유령 1인 회사를 차린 후 지인 한 명을 최저임금으로 고용한 척해서 20만원내던 보험료를 2만원으로 줄이는 꼼수,

꼼수를 부리지 않는 사람들을 '절약정신이 부족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

실비보험 본전을 뽑겠다며과잉 진료 패키지 코스를 받는 사람들.

이로 인해 건강보험료는더 인상된다.

 

“원칙을 경직됨으로 평가절하하며 그 빈틈마다 본인의 상대적 기준을 들이미는 순간, 유연함의 이름으로 포장된 예외의 남발을 막을 길이 없다.”

-영화감독 민규동

 

예 : 게임을 불법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고 있는것으로 보임.)

 

그릇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많은 사회의 평균적 '삶의 질'이 좋을 리 있겠는가?

이기적인 공동체에서 이타적개인이 존재할 리 없다. 결국 각자도생만이 해법이기에 '나'는 '우리'로 뭉치지 못하고원자화된다.

연결되지 못한 원자들은 '약하기에' 어떻게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상책으로여긴다. 그것이 의무라도 말이다.

 

 

10) 부끄러움 불감증

 

부끄러움은 인간만의 감정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 라고 했다.

인간다움의 조건인 부끄러움이원칙 없이 팔색조로 응용된다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부끄러움이 그다지 인간성을 결정 짓는 요소가 되지않음을 뜻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함에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화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시적으로 아프게 한다.

 

 

 

Part.0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습관 가운데서도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정신의 습관이다.”

－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中

 

 

1) 배려가 배제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강연을하다 보면 "남자가 군대 다녀와서 무슨 이익이 있냐고"항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군 복무가 '남자다움'의 웬만한 평균치를 보장한다는 징표가 되면서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왔으니' 조직을 이끌어 보길 권유받고, '군대 갔다 왔으니' 극한의 일을 경험한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배우고 도전 정신은 물론 주어진 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갖춘다.

기업은 남녀를 차별하지않고 '리더십', '열정','구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러니까그게 결국은 남녀차별이 된 셈이다.

 

 

2) 독함은 권장될 수 없다

 

*다단계에 빠진 아주머니

진짜 독했다. 독했으니 몇 명의 고객을 확보했을지 모르겠다.

독해서 고객이 생기고 그래서수입이 늘어날 때마다 그녀는 왜 진작 독하게 살지 않았는지 후회하면서 타인을 막무가내로 대하는 자신의 현재를 정당화할 것이다.

(중략) '독한' 그녀는나의 가치관을 자신이 최고에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뚫어야 하는 장벽 정도로 이해했다.

 

*독해지라 권하는 서적들

'독(毒)하다'는 '독기가 있다', '마음이나성격 따위가 모질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아도 인간에게 권고될성질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독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이토록 독해지길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여야 한다.

(중략) 독해지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원래 엉망인 세상은 더 엉망이 된다.

 

 

3) 시간에 대한 강박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철학적으로음미될 수준을 넘어 개인을 겁박하는 도구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65)는 그가왜 미국에서 추방당했는지 알려 준다.

이념으로 사람을 재단하던시대의 광풍을 피하지 못하고 채플린은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채플린이 오랫동안 위대한예술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그 영화의 모습처럼 살기 때문이다.

 

 

4) 이상한 체면

 

*보헤미안 스타일

'혼밥족', '혼술족'을사회학적으로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기자들이 있으나, 이는 특별한 시대 현상이 아니다.

옛날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쭉 있어 왔고, 이는 특징일 뿐 문제 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어울리지 못한다'며 당사자에게 결함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며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려는 이들이 많다.

 

혼자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홀로'가 아니라 사회적 관습을 잠시라도 거부하는 '적극적 자아'다.

 

*평범함이 곧 결핍인 시대

의기소침한 딸은 성적이좋지 않을 때마다 잠수를 타 버려 아버지의 애간장을 녹인다.

아버지가 그건 사람에 대한무시하면서 왜 떳떳하게 대면하지 않는지를 묻자 딸은 대답한다.

딸 : 내가 내세울 게 있어야지 뭐 하나 해 놓은 게 없는데 무슨 낯으로 떳떳이 아빠 앞에 나설 수가 있겠어?

아버지 : 스물두 살에 내세울 게 있다면 그게 더 웃기는 거야. 네 나이때는 내세울 게 없는 것이 정상 아니냐?

-이승욱, 칼럼 '아버지란무엇인가' 中

 

내세울 것을 찾아가는 삶이란그 목표가 선명하다.

전인적 인간, 공생하는 삶, 자유롭고 개성적인 일상 등의 공허하고 추상적인 가치에매몰되지 않고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타인보다 돋보여야 한다.

물론 모두가 이를 목표삼아 살아가니 평균치가 워낙 높아져 웬만큼 노력해도 내세울 건 없다.

 

내세울 것이 있다는 것은타인을 희생시켰다는 징표일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사람들 중 가족의 희생이 없었던 경우가 있을까?

 

 

5) 부정을 부정하는 긍정

 

기업은 '사실을 부정하는', '불의를 보고도 참을' 긍정적인 사람을 인재라 한다.

이를 잘 알기에 자기소개서를작성하는 청춘들은 가치관을 통일시킨다.

회사의 문제를 외부에 알려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이 하늘을 찌른다.

 

한국 사회는 긍정 마인드를남발하며 비판과 비난을 동의어로 생각한다. 이런 사회의 특징이 부정적 감정을 금기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 상황을객관적으로 인지하여 부당한 것에 대한 '정당한' 감정을 가지는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긍정부터하라는 이들의 분위기에 눌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세상의 앞면은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있다.

뒷면에는 '개인이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평범한 삶조차 쉽사리 획득할 수 없는현실이 존재한다.

이 모순은 수면 위로 쉽게드러나지 않는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필요이상으로 많은 곳에서는.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것이 중요하다.

-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6) 외모 강박

 

'원하는 대로 고쳐 주겠다'면서 외모 차별로 고통받는 이에게 "고치면 되잖아" 라고 조언하는 곳에서 외모는 품평의영역이지 논쟁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를 보고 수치심을느끼도록 길러지는 이런 곳에서 현대인들의 몸 관리를 "체제에 순치된 욕망 아니냐"고 따져 봤자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생들의 화장 문제

화장을 '순수'의 훼손이랍시고 학생 떄는 못하게 하면서 10대만 벗어나면 화장 안 했다고 무례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여성들의 삶에 나는 분노한다.

다만 점점 화장에 집착하는학생들이 많아지는 현재 상황이 과연 자유를 찾아가는 적극적 개인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냉정하게 말해 초등학생까지화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점이 과거보다 빨라진 시대의 결과물이다.

10대는 '외모'가원인이 된 집단 따돌림을 하거나, 당했다.

 

 

7) 혼자는 문제인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인간 관계가 수학 공식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서로 간의 갈등은당연지사며 인맥이 넓든 좁든 각자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타인과의관계가 많고 원만할 수록 '좋은 사람'으로 규정된다.

그러니 낯을 가리는 '별 문제 아닌' 성격도 문제가 되니 자신의 협소한 인간 관계를 걱정하는사람들이 많다.

 

<자살론>의 저자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에 강력한사회적 요인이 있음을 증명했다. 결속력 강한 집단일 수록 자살을 안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어릴 떄부터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자살률이 1위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껏 한국 사회가 강조한 인간 관계는 엉터리였기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원하는 연대가 없었다.

누구를 왕따하는 행동이나쁘다는 말은 없고 어떻게 해야 왕따 당하지 않을지에 대한 비법을 사회성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교육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인간관계란 관행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기득권에 그만큼 잘 적응한다는 말일 뿐이다.

인맥조차 없는 순수한 사람들에게이 문화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8) 백화점에 거울이 많은 이유

 

백화점에는 창문과 시계는없고 거울은 많다. 외부 세계와 차단시켜 오롯이 백화점 '안' 자신을 보라는 뜻일 게다.

백화점은 누가 거지 행색이든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거울이 대신 한다.

수많은 거울은 그곳을 지나다니는사람에게 '백화점에 온 사람처럼 굴어라'라고 말한다.

 

백화점은 이 곳을 이용하는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한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같은 '소비의초보'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왜 그럴까? 모멸감을 극복하겠다는 소비자가 백화점의 가장 충성스러운 손님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배타성은 '미래의 충성스러운 고객'을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이 곳은 젊은 대학생들에게 '성공해서 다시 오렴'이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우리는 소비의 동력을 '열패감'에서 찾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소비 하나로 사람을 측량하는사회, 그 결과는 끔찍하다.

 

 

9) 바위에 계란을 쳐라

 

“쇠귀에 경읽기에서 문제는 쇠귀이지 경이 아니다.”

 

바위가 부당하다면 깨질줄 알아도 계란 던지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 덕택에

2000년대 초반 학생 인권 운동의 교본으로 불리는 '노컷운동(No-Cut; 두발자유화)' 이 등장할 수 있었다.

 

사회의 진보는 지금까지의익숙한 삶과 반대되는 쪽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야만 가능하다.

이 과정은 갈등으로 비춰지지만갈등이 아니라 진짜 균형을 잡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도,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도, 학생의 두발 자유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바위가 깨지든 말든계란을 던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런 사회에서나마 살고 있다.

 

 

10) 세상의 부조리

 

<신 없는 사회>의 저자인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이런질문을 던진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왜 미국 사회는 이렇게 불평등하단 말인가?"

주커먼이 관찰한 결과는간단명료하다. 불평등이 너무 심하니 그렇게 기도하는 것일 뿐.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무난하게하려면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쥐어 짜야 하는' 경멸할 만한삶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된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여기서 기준을 마련하여 좋은 쪽의 삶을 지향하고 나쁜 쪽을 지양해야 한다.

내 삶의 방향이 그릇된것임을 직시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 씩 걸어가는 것만이 대안이다.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이것만이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이다.

 

 

 

Part.03 불균형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법

 

“개인의 삶은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인류는 물처럼 지속·순환의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간다.”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中

 

 

01) 우리 사회는 정말 성장했는가

 

첫째, 우리나라는 성장하지 않았다.

나는 자동차가 집집마다생기고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고 성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양극화, 빈곤, 소외, 자살 등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부정적 키워드가 단순히 성장의 이면 정도로 소개되는 것을 싫어한다.

이건 부작용 정도가 아니라표면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세계 58위라는 사실이 경제규모 11위의 그림자 정도로 해석되어선 안 된다.

성장은 외형이 변한 사회의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로 행복한지를 따져 보고 판단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학적 비판은 국가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보장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희망하며 우리의 일상을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애국이다.

<고백론>의 저자인 고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선행은 악행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된다'고 했듯이,

우리가 악한 성장의 공범이었음을뼈저리게 느낄 때 사회는 좋은 쪽으로 변한다.

노동자가 제때 밥 먹을자유가 보장되는 말든 배송이 번개처럼 빠르니 좋다고 하고,

정의롭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벌어지는데 가족 같은 일터의 정겨운 장점으로 보자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좋든 나쁘든, 개인의 변화 없이 사회가 변화된 적은 없다. 사회는 사람 하기 나름이다.

 

 

02) 엉터리 자신감

 

*일등에게 박수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

 

언제부터 경쟁심이 심했냐는외국인의 물음에

한국 대학생이 초등학교때 교사가 100점 받은 사람만을 일으켜 세워 모두로부터 박수받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1등 아니면 소용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 외국인은 화들짝 놀라면서 대꾸한다.

"정말이야? 다들 보는 앞에서 한 명만 일으켜서 박수받게했다고?"

 

"올림픽 시상식에서 은메달 받고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선수는 한국인밖에 없다" -강준만 교수

 

카페에 자리가 없어서 4인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서울대 학생증을 내밀면서"우리 공부해야 하니 비켜 달라"고 당당하게 말해 황당했다는 일화

 

자존감은 자아 존중감이라는사전적 뜻에서 한 걸음 나아가

'자신감이 없어도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상태'라고 정의하고싶다.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명확한 방법은 '우리가' 자존감을 잃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03) 다수의 생각이면 정의일까

 

이유가 어떠한들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는 하나다. 그런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죄가 될지언정주변에서 수군거리지 않는 한 괜히 먼저 나서서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고,

반대로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주변에서 수군거리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사회가 한국이다.

이를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라 한다.

 

다양성은 절대악이 저지르는폭력에 맞서시 위한 개념이지 악을 악이 아니라고 할 때 적용될 수 없다.

 

타인에게 한 점 부끄러움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광범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위해 개인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안전벨트 강제 법규),

합의된 절대악은 지나칠정도의 자기 검열을 통해서 예방되어야 한다.

 

 

04) 공감의 결여

 

공감(共感)은 남의 감정을 자신이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Empathy'는 '안으로'라는어원에서 출발한다. 타인의 내적 경험을 함께 느끼는 정신적 현상을 말한다.

 

무엇에 어떻게 노출되었느냐에따라 감정은 학습된다.

 

*세월호의 비극

하루, 한 주, 한 해가 지날수록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채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진정 공감하기위해 오랫동안 슬퍼할수록 잘 살 수 있다. 공감이 깊을수록 문제의 원인이 정확하게 보여 실질적인 재발방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감의 시작은 자신이 타인의상황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 라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기를거부하고, "어쩌다가 그랬어?" 라고 묻는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성찰적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05) 개인의 존엄성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비교하면서배우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집단주의가 과잉된 사회에서는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해석하는 우를 자주 범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정상적인 개인주의자라 할지라도 한국에서는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핀잔을 들으며

비정상적인 사람이나 사회생활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주의의 무서움은 집단이개인을 괴롭혀서만이 아니다.

집단의 객체로서, 그러니까 옳고 그름 안 따지고 시키는 것만 하고 살아가는 인생에 익숙해지면

공동체의 개체로서 어떻게살아가야 하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객체는 수동적이고 개체는능동적이다. '공동체의 개체'로 산다는 건 개인의 진정한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 서서 노력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집단의 객체가 되면시키는 것만 하는 것은 물론 그 책임을 집단에 전가시킨다.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면서도자신을 집단 속으로 밀어넣고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진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06) 법의 가치

 

세상이 완전히 정의로웠던적은 없다. 그렇다고 인류가 정의를 쫓는 것을 포기한 적도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에 우리가확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이유다.

지금 정의롭지 못한 순간순간을찾아내서 개선하여 정의의 일부를 차곡차곡 만들어 '보편적 인권'의영역에 많은 사람이 포함되도록 애쓰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법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옳은 방향으로 실천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다.

'그래도 된다'의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노력이다.

법은 내 자유를 허락하고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규제를 가한다. 제한을 통해 허용을 보장받는다.

개인이 우주 최강으로 행복해지고싶다는 욕망은 모두가 행복의 최소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을 때만 정당하다.

 

 

07) 민주주의

 

권리 행사를 잘 하려면정치가 자신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인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모두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인지하든 못하든 상관 없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