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2권- 사막의 호랑이 :: 해설/역자 후기

 

 

[해설]

마이니치 방송 프로듀서 다케다 세이지

 

과학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20세기가 낳은 수많은 테크놀로지 중에서도 가장 큰 견인력을 지닌 것이 바로 핵 분열을 위시로 한 핵 관련 기술이다. 원자 폭탄이라는 끔찍한 선물을 안겨 주었지만, 문명 발달에는 언제나 위험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21세기 산업을 크게 이끄는 것은 염색체 관련 유전자 조작 기술로 예상되나, 이 또한 핵 관련 기술과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의 폭주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유전자 조작, 복제 인간 등 DNA에 얽힌 화제가 급증하고 있다. 이번 건담 SEED에서도 유전자 조작된 우수한 코디네이터와 자연스럽게 태어난 내츄럴로 갈라진 양 진영의 상극이 기본적인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의 주제로 굳이 유전자 문제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 인간의 생명 그 자체 그리고 생명의 특성, 나아가 행복이 무엇이냐는,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코 앞에 닥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감한 주제라 신중히 다뤄야 하기에, 제작 현장에는 감독과 작가들이 머리를 맞댄 토론 끝에 줄거리를 진행시키고 있다.

가령 작품에 등장하는 코디네이터를 예로 들자면, 그들은 세대를 거칠 수록 출생률이 낮아진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어떤 약물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로 인해 자프트 군이 전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디네이터들은 유전자 조작 때문에 그 시대의 환경에는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지만, 일단 환경이 크게 변화할 경우 유전자 수준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되므로 100% 대응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전멸할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반면에 일상 생활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간주되는 유전자 특성이, 위기의 상황에서는 종족의 보존을 위해 큰 역할을 맡는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가령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겸형 적혈구 등은 평상시에는 악성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 요인이지만, 말라리아 모기의 위력을 무력화 시킨다. 또한 유럽에는 콜레라와 흑사병과 같은 탈수 증상에 유독 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이러한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살아 남은 유전자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일상 생활에서는 마이너스 요인 밖에는 되지 않는다.

즉, 아스란도 코디네이터 사회와 같은 다양성을 상실한 세계에서는 뛰어난 인재일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약하고 아슬아슬한 존재나 다름 없다.

 

현재 지구 상에는 다양한 인종, 종교, 국가, 이데올로기와 함께 수많은 가치관들이 존재한다. 이게 바로 건전한 세상이지만, 인간은 항상 남들과 다른 점을 논쟁 거리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분쟁의 불씨를 일으킨다. 유전자조차 다양성을 배제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상 생활 속에서 차이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제거하려는 행위는 문명인이 할 짓이 못 된다.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것, 그럼으로써 풍요로운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것이 바로 '현대'인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하자 일본도 본격적인 논의 없이 찬성했지만, 이번 전쟁이 새로운 증오를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분쟁의 씨앗을 뿌릴 것이 분명하다.

건담 SEED에는 전쟁의 허무함, 전쟁으로 인해 원한의 고리가 끊임 없이 이어진다는 무의미함을 충분히 전달하고자 하는 후쿠다 감독, 시리즈 구성을 맡은 모로사와 씨의 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반전보다는 차라리 싸우지 않는 것, 즉 비전(非戰) 이외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TV 시청자와 이 책의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 애니메이션이 과학 기술의 폭주와 전쟁이라는 문제를 한 번 쯤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영국인 의용군으로서 스페인 내란에 참전해 프랑코 독재 정권과 맞서 싸운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르포르타주 '카탈루냐 찬가'에서 '왜 싸워야 하나?' 라는 질문에 "Common Decency 를 위해서" 라고 대답한다. Common Decency 란, '보편적인 인간성'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Decency 는 인간의 품위라든지 인간성,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뜻하는 단어이자 오웰의 사상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건담 SEED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더 나아가서 이러한 Decency 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면서 해결하지 않는 한 전쟁을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제작자에게 있어서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역자 후기]

 

발진!(어디로?) 건담 SEED 2권을 번역한 김정현입니다.

 

1권은 우주가 배경, 2권이 사막이었기 때문에 3권에서는 심해를 무대로 수중전을 전개시켰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답니다. 헤엄치는 스트라이크…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보다도 다음에는 어떤 별명을 가진 인물이 등장할지 궁금하답니다! '사막의 호랑이'가 있었으니… '바다의 백상어'나 '심해의 괴물 오징어'… 뭐 그런 적군들이 등장할 만하지 않습니까? …농담입니다. ^^;

 

이번 2권의 특징을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의미로 '대조(contrast)' 혹은 '대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1권은 소위 '대립'이었죠)

사막과 도시, 게릴라와 지배자, 재빠른 지상군과 버벅거리는 우주군, 요구르트 소스(백색)와 칠리 소스(적색), 뜨거운 연인과 비참한 솔로(심지어 독방 수용) 등등.

이처럼 극단적인 설정 덕분에 이도 저도 아닌 회색 분자─주인공의 갈등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주인공 키라는 코디네이터이면서도 내츄럴과 함께 동포인 코디네이터와 싸워야 한다는 절망적인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늘 의문을 느끼는 위태로운 그의 정신은,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죠. 내용 중에 발트펠드가 지적하듯이, 일시적인 기억 상실 상태나 다름 없는 '버서커'로 변해 버리는 겁니다. 무의식이 잠재 능력을 끌어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금기(싸워서는 안 되는 존재와 싸워야 하는)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싸우는 동안 잠시 기억을 제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쌍한 키라. 아직 열 여섯 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년인데…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네요.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과연 그의 마음이 편해질 날이 올까요…?

(여기서 갑자기 한 살 어린 프레이가 떠올랐지만 안 보고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ㅡㅡ;)

 

아크 엔젤의 명 정비사 머독의 말을 인용하며 이만 마칩니다.

"어휴~! 요즘 애들은 왜 저러냐~?!"

 

그럼 다음 역자 후기에서 뵙겠습니다. 친구의 애인을 넘보지 말지어다!

 

2005년 10월, 케밥에는 고추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역자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