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툭하고 러시아어로 부끄러워하는 옆자리의 아랴 양 <번외편> 3-1

아랴 양이 메이드 복을 입는대
- 3권 TSUTAYA 특전 -

※ 3권의 내용을 보완하는 SS이므로, 본편을 읽은 후에 읽어 주십시오.


"으음, 그 때 방송에서는…."
마사치카의 집 거실. 아리사는 감기에 걸린 마사치카를 위해 보르시를 만들면서, 내일 교내 방송에 출연할 준비를 했다.
때때로 냄비 안을 신경 쓰면서, 아리사는 공책에 대본을 작성했다. 그런 그녀를… 갑자기 들려 온 문 열리는 소리가 방해했다.
"어…?"
퍼뜩 고개를 들며 귀를 기울여 보니, 현관에서 이 쪽으로 걸어 오는 누군가의 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 사실에, 아리사는 약간 혼란에 빠졌다.
(어, 누, 누구지? 가족? 설마 쿠제의 아버지? 어, 아직, 마음의 준비가─.)
혼란에 빠진 탓에 아리사가 얼어 붙어 있을 때, 거실로 이어지는 문이 철컥 하며 열렸다. 그리고 굳은 채로 쳐다보고만 있는 아리사의 앞에 나타난 건─.

"…수고 많으십니다, 아리사 님."
"…어? 키미시마 양?"
커다란 보스턴 백을 손에 든, 사복 차림의 아야노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하자, 아리사는 눈을 껌뻑거렸다.
"어, 어째서…?"
"네? 아리사 님이야말로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저는 마사치카 님께서 혼자 힘들어 하고 계시리라 생각한 유키 님의 지시로 간병하러 왔습니다만…."
"나, 나도 간병하러 온 거야… 어, 그게 아니라! 어째서, 이 집의 열쇠를…."
"유키 님께서는 유사시에 대비해 마사치카 님으로부터 여벌 열쇠를 받아 두셨으니까요."
"여, 여벌 열쇠…."
파괴력이 상당한 말이 들려 오자, 아리사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아야노의 시선이 자신의 공책으로 향하자, 아리사는 허둥지둥 공책을 덮었다.
유키에게 맞설 대항책을 짜던 참이라 과민하게 반응한 아리사는 속으로 '아차' 했지만, 아야노는 딱히 개의치 않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옷을 갈아 입고 오겠습니다."
"으, 응."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어? 옷을 갈아 입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아야노가 자리를 비웠다.
(…땀이라도 흘려서 옷을 갈아 입는 걸까?)
아리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넘어갔지만… 15분 후, 모습을 드러낸 아야노를 보고 얼이 나갔다.

"그, 건…?"
"네? 메이드 복입니다만?"
그건 보면 안다. 문제는 왜 그런 복장을 했느냐, 다. 그런 아리사의 의문을 눈치 챈 건지, 아야노는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마사치카 님의 시중을 들게 됐으니, 정장 차림으로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장…."
정장이라는 말과 달리 장식이 과다하게 달린 메이드 복을 위 아래로 훑어 본 아리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야노는 농담을 하는 것 같지 않았기에, 아리사도 무난한 발언을 하기로 했다.
"…귀엽네."
실용성은 제쳐 두고, 아리사는 디자인을 칭찬했다. 그러자 무표정한 아야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리사 님도 입어 보시겠습니까?"
"뭐?"
"이건 제 메이드 복을 만들면서 자료로 쓰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만…."
그렇게 말한 아야노는 보스턴 백에서 메이드 복을 한 벌 더 꺼내서 아리사를 향해 펼쳐 보였다.
"어떠십니까? 마사치카 님을 간병하실 거라면, 역시 이런 복장을 걸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왜, 왜, 그런 걸 가지고 온…."
아리사가 지당하기 그지 없는 의문을 입에 담자, 아야노는 잠시 얼어붙은 후에 시선을 슬며시 피하면서 '예비용입니다' 하고 작게 대답했다. 뻔한 거짓말이라 신경이 쓰였지만, 아리사는 추궁 대신 아야노가 가져 온 메이드 복을 응시했다. 솔직히 말해, 꽤 끌리는 제안이었다. 코스프레를 한다는 점은 좀 마음에 걸렸지만, 메이드 복 자체는 매우 귀여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평생 입을 일이 없는 의상이다. 또한, 메이드 복을 입은 아야노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무단 횡단도 여럿이서 같이 하면 무섭지 않은 것과 같은 심리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마사치카 님과 냄비가 신경 쓰이신다면, 안심하시길. 제가 살펴 보고 있겠습니다."
"으, 응…."
우려가 불식되자, 아리사의 마음 속 저울이 입어 보자는 쪽으로 확 기울었다.
"그럼, 한 번 입어 볼게…."
그 결과, 아리사는 머뭇거리며 아야노한테서 메이드 복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갈아 입기 위해 세면장에 들어간 후로 몇 분 후….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그, 그래?"
메이드 복으로 갈아 입은 아리사는 아야노의 솔직한 찬사를 듣고 멋쩍어 했다. 아야노는 무표정한 상태에서 눈만 반짝이며 아리사에게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귀여울 뿐만 아니라, 기품도 느껴집니다. 정말 멋지군요."
"그, 그래? 고마워."
"기왕이면 명찰도 달죠."
"며, 명찰?"
아리사가 당황한 사이, 아야노는 어느 새 꺼내 든 핑크색 하트 모양 명찰에 '아랴' 라고 써서 그녀의 가슴에 달아 줬다.
"더욱 귀여워지셨습니다. 완벽 그 자체군요."
"그, 그래? 그럼 됐어…."
아야노가 칭찬해 주자, 아리사는 당황하면서도 싫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쉬운 여자다.
"기념 삼아 사진도 찍죠. 스마트 폰을 빌려 주시겠습니까?"
"그래. 기왕이니까…."
기분이 좋아진 아리사는 스마트 폰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했다. 아야노가 그런 아리사를 놀리기는 커녕 계속 칭찬해 주자, 아리사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즐겁게 사진 촬영을 했지만… 불현듯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오자, 동시에 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 봤다.

"……."
그러자, 잠옷 차림인 마사치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 쯤 열린 문 틈으로, 포즈를 취한 채 얼어 붙은 아리사를 멍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
"……."
"……."
고통스러울 정도의 침묵 속. 마사치카는 갑자기 두통을 느낀 것처럼 이마를 손으로 짚더니,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리사의 온 몸에서 땀이 뿜어져 나왔다. 수치심 탓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오른 아리사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웅크렸다. 게다가 아야노는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꿈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열 때문에 의식이 몽롱한 상태이신 듯 합니다."
"으, 으으…."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리사는 부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