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6권 버라이어티 기프트 -1- 크리스마스의 기적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マリア樣が見てる)

버라이어티 기프트(バラエティギフト, Variety gift)

 

작가: 콘노 오유키, (그림) 히비키 레이네

 

 

성탄제의 기적(降誕祭の奇跡)
쇼쿌라와 초상화(ショコラとポ-トレ-ト)
양 한마리 울타리를 넘어(羊が一匹さく越えて)
독이 든 사과(毒入りリンゴ)
 
마리아님께서 보고 계셔 16권 《종합 선물 세트: バラエティギフト》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산뜻한 아침 인사가 맑게 갠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인 소녀들이 오늘도 천사처럼 순수한 미소를 짓고 높은 정문을 지나간다. 
  더러움을 모르는 몸과 마음을 감싸는 건 짙은 색의 교복. 
  치마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옷깃은 휘날리지 않도록, 여유롭게 걷는 것이 여기의 몸가짐이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메이지《明治》34년에 창립된 이 학원은 원래 옛 귀족 아가씨들을 위해 세워졌던, 유서깊은 가톨릭 계열 여학교이다. 
  도쿄도《東京 都》 내, 무사시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녹지가 많이 남아 있는 이 지역에 신의 가호 아래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일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가 변하고 연호가 메이지에서 세 번 바뀌어 헤이세이가 된 오늘날에도, 18년 동안 다니면 온실에서 자라난 아가씨들이 포장된 채 배출 되는 구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귀중한 학원이다.

 

  그런데, 가을 어느 날. 
  장미의 저택에 생각치도 못한 선물이 왔다. 
『귀여운 여동생들에게』 
  유명 백화점 포장지에 흘려 쓴 쪽지가 예의상 붙여진 티를 내고 있었다. [주1]
  이 글자를 분명히 본 기억이 있었다. 
  좌우 대칭으로 묶여진 넥타이처럼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면서 언제나 단아한 그 글씨는 그 사람의 것이 틀림없었다.

 

 

 

                                                      버라이어티 기프트 I

  목요일의 방과후. 
  평소와 다름없이 유미《福? 祐巳》가 청소를 끝내고 장미의 저택 2층에 발을 디디자, 거기엔 이상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
  보면 안 될 걸 봤어. 그런 생각이 들어 연지 얼마 안 되는 문을 살그머니 닫아 버렸다(다행스럽게도 아직 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놓고 있지 않았다). ――그럴려고 했는데, 그 곳에 있던 사람은 이 쪽의 기척을 제대로 감지하고 있었는지 태연히 불러 세웠다. 얼굴을 이 쪽으로 향하지 말아 줘. 
「유미씨」라고. 
「펴, 평안하세요.」 
  발각당했으니 어쩔 수 없네. 유미는 닫아 버린 문을 다시 열고, 즉,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무위로 돌리며 얼버무리는 듯이 인사했다. 오늘 하루 같은 교실에서 6시간 수업받은 사람을 상대로, 이제 와서 「펴, 평안하세요.」라니. 
「지금, 도망치려고 했지?」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서서히 얼굴을 움직여 유미를 바라보았다. 
「아핫, 에엣, 설마 그럴 리가.」 
  부정해 봤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아~니, 도망치려 했어. 그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째서 열어 둔 문을 그대로 닫는 거지?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자기 몸을 복도에 놔두고 왔던 거야?」 
  의자에서 일어나 찌릿찌릿하며 다가왔다. 마침내 박력에 눌려 유미는 체념했다. 
「그러니까. 요시노《島津 由乃》씨가 무서웠어.」 
「무섭다니? 친한 친구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요시노는 우선 유미를 해방하고 나서 고개를 움츠렸다. 
「친한 친구든 생판 모르는 타인이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라고.」 
   자~알 알고 있는 사람 편이 오히려 무서운 경우도 있다. 유미는 방금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걸 그대로 묘사해 보았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어둑어둑한 방 한가운데에 테이블의 한 점을 응시한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는걸?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쪽이 이상하겠지. 게다가 내가 들어온 걸 눈치챈 것 같지도 않았고, 날씨 탓도 있지만 방 안에는 괴이한 그림자가 붙어 있지, 적어도 전등쯤은 켜놓고 있었으면 나도 겁내지 않았을 거야.」 
「그 건 미안해. 잊고 있었어.」 
  요시노씨는 정말로 이제서야 기억해 냈는지 전등 스위치를 '팟'하고 올렸다. 
「쭉 저 것한테 사로잡혀 있었거든.」 
  '휙'하며, 요시노씨는 턱을 그 쪽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이 거라니, 이 것?」 
  유미는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확인했다.

 

  방이 밝아진 덕분에 알아차렸다. 방금 전까지 요시노씨가 바라 보고 있던 곳에는 네모진 상자가 놓여 있었다. 유명 백화점의 포장지로 꼼꼼히 싸인, 「증정」이란 말이 딱 빠져 있는 듯한 분위기의 물건. 자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치수는 모르지만, 가로 세로 30센치에 높이 10센치 정도일까. 
「이 게 어때서?」 
  상자의 겉모습을 관찰하고도 알아 낸 것이 없어서, 유미는 요시노씨에게 질문했다. 
「여기에 있었어.」 
「언제부터?」 
「일러도 5교시 다음이야.」 
「흐음.」 
  점심시간 때 여기서 도시락을 먹었을 땐 분명히 이런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면, 유미 일행이 오후 수업 받으러 나가 있는 사이나 쉬는 시간, 종례 도중이나 청소 시간에 누군가 이 방에 들어와 이 상자를 두고 갔다는 얘기다. 
「누가 가져 온 거지?」 
「여기 봐.」 
  요시노씨는 상자의 위에 붙어있는 직사각형의 쪽지를 가리켰다. 그건 아주 작아서 유미는 『○일까지 드셔 주세요라고 씌여진 꼬리표라고 생각하고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건 카드로서, 거기엔 『귀여운 여동생들에게』란 친필 메시지가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미씨. 이 거 에리코《鳥居 江利子》님의 글씨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 그렇게 말하니――」 
  그렇다는 건, 이 건 에리코님이 보낸 선물이구나. 요시노가 심각해서「설마 이 건 미스테리!?」라며 흥분했는데, 알아내자「뭐야.」란 상태로 단 번에 탈력이었다. 하지만, 요시노씨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무슨 속셈일까?」 
「"무슨"이라니?」 
「체육대회의 일을 잊어 버린 건 아니겠지?」 
「……여동생 얘기?」 
  시마즈 요시노씨의 사촌 언니 뻘인 하세쿠라 레이《支倉 令》님한테 언니가 되는 토리이 에리코님은 예측불허이신 분이다. 요전 날에도 체육대회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요시노씨한테 「여동생을 소개할게」란 약속을 시킨 건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이 상자가 여동생《프띠 스루》의 일과 관계 있다고 보는 거야?」 
「없을 리가 없지! 상대는 그 에리코님이야. 이 건 뭔가를 담은 메시지가 아니면, 날 골탕 먹이려는 교묘한 함정이야.」 
「――」 
「흐음」 
   다시 분위기는 미스터리로 기울어졌다. 다만, "요시노씨 혼자서 고조되고 있다"란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에리코님은 고등학교에 계실 때 이런 음식물을 자주 집에서 가져오곤 했기 때문이다. 집이 장사를 하기 때문에 답례품이나 방문선물 등을 많이 받아서 모두 소비할 수 없는 편이니 사양하지 마라는 얘기를 덧붙이며. 
   물론 그 건 에리코님 뿐만 아니라, 모두들 들고온 차나 과자 덕분에 장미의 관이 쾌적한 응접실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만――。 
「연다.」 
  결심했는지 요시노씨는 상자에 손을 대었다. 
「에엣, 괜찮은 거야?」 
「괜찮지 않기는? 왜냐하면, 여기에 써 있잖아 『귀여운 여동생들에게』」 
「하지만.」 
  일단, 레이님을 기다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귀여운 여동생에게』라면 나도 신중히 대할 거야. 레이쨩한테 보낸 것일 테니까. 하지만 「들」이야. 모두라는 의미겠지. 나한테 몇 분의 1 정도는 개봉할 권리가 있단 얘기야.」 
「그러면 이치엔 들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므로 레이쨩한테 보내려던 게 아니야. 이 건 반드시 나한테 보낸 거야.」 
「……제멋대로 확신하고 있네.」 
「확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기세에서 밀릴 테니.」 
  말마따나, 기세를 아군 삼아, 요시노씨는 상자 바닥에 봉인처럼 붙여진 백화점의 로고가 들어 있는 스티커를 찌지직 벗겼다. 스티커는 단면이 톱니모양처럼 되어 있는지 벗겼을 때 비스듬히 찢어져 버리는 바람에 이젠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재차 봉인하는 곡예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나중에 기죽지 않겠다는 요시노씨는 자포자기한 듯 난폭하게 종이를 뜯기 시작했다. 실제론 마음 속 몇 퍼센트 정도는, 슬며서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싶다는 건 아닐까 싶었다. 
  포장지란 옷을 벗기자 나온 건 예쁜 양철통이었다. 뚜껑 주위의 테이프를 벗겨 뚜겅을 열자―― 
「……종합 선물 세트?」 
  그 건, 별 게 아니라, 답례용 과자 세트였다. 
  통 안은 여러 구역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쿠키에 박힌 오렌지 껍질이라든지 키스 초콜렛의 은박지라든지, 사탕의 화려한 포장지가 반짝반짝 요란스레 빛나고 있었다.

  그래. 
  마치 액세서리 상자 같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크리스마스의 기적

 

　                                     　　　　　　　　　＊

 

    저기, 기적을 믿으세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소녀가 물었다. 
  일순간, 세계가 휘청거리며 기울었다. 
  그 건 십수 년 전에 본 광경이 데쟈뷰처럼 지금 모습에 겹쳐지면서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빨간색이나 파란색이 약간 어긋나 버린 채 인쇄된 잡지의 컬러 페이지를 보고 있노라면 탈것에 타고 있지 않아도 멀미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상했다. 
「선생님, 듣고 계세요?」 
「으응, 미안해.」 
  카토리 마키《鹿取 ?紀》는 살짝 고개를 움직여 십수 년 전의 환상을 뿌리쳤다. 그러자 남은 건 현실의 풍경이었다. 평소처럼 붐비는 교무실. 그녀 책상 옆에는 그다지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언제나 깔끔하게 묶은, 서글서글한 눈동자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기적이라……본 적이 없는 걸.」 
  마키는  바라보고 있던 출석부를 닫으며 대답했다. 기말고사 전날부터 병결이던 학생이 오늘 돌아온 덕에 마키가 맡은 학급 전원이 모두 함께 종업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질문하고 답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요. 국어 시험이었다면 오답이에요.」 
「하하하. 역시 쿠로스답네. 족집게야.」 
  "기적을 믿으세요?"란 질문의 답은 "예" 아니면 "아니오"다. 하지만, 마키는 즉시 대답할 수 없어서 얼버무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묘하게 어긋나다」가 아니라「미묘하게 피했다」가 올바르겠지. 
  어쩔 수 없다, 는 투의 표정을 지으며 소녀는 웃었다. 
「그럼,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쿠로스 히카리《?須 ひかり》. 마키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국화반의 학생이었다. 
「그래. "있었으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한 적은 여러 번 있지.」 
  "얼굴이라든지 전혀 닮지 않았는데."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옛 모습이 겹쳤다. 평생 잊을 리 없어, 그 소녀를. 
「그럼, 선생님께 기적 얘기를 해드려도 될까요?」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 말이니？」 
「다른 거에요. 저한테 일어난 기적이에요.」 
「아니, 뭐.」 
  "그 건 그 건."이라며 마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기적이 지천으로 있었다니. 
「선생님이라서 특별히 가르쳐 드리는 거에요. 누구한테도 비밀이에요.」 
「신뢰받고 있나 봐.」 
「네, 하지만 선생님뿐이에요, 입시 지도 때 제 얘길 웃지 않고 들어주신 분은.」 
「그랬니?」 
「그러셨어요. 잊어 버리셨나요?」 
「면접이 한 둘이어야지.」 
   마키는 기지개를 켜면서 답했지만, 그 건 거짓말이었다. 쿠로스하고 한 입시 지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입시 지도가 한둘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 어떤 대화를 했는지까지 기억나는 학생은 얘뿐이었다. 
『꿈에서 만난 사람과, 리리안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어요.』 
  그 때 쿠로스 히카리는 리리안 여학원에 들어온 이유를 그렇게 밝혔던 것이다.

 

 

히카리

 

   말해 봤자 믿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난 꿈 속에서 만난 언니를 찾아 리리안 여학원의 중등부에 입학했다. 
   국민학교 6학년의 12월 중반. 동요, 클래식, 팝송과 함께 거리엔 가지각색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차례차례 흘러 넘치고, 빨간색과 초록색과 노란색과 흰색 같은 흔한 색깔이 온갖 장소에 범람하고 있는, 예년이라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계절에, 나는 대학병원의 뜰에 심어진 키 작은 전나무의 일루미네이션(역주: 조명에 비친 모습)을 병실 창문을 통해 한숨 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위중하지 않은, 간단한 눈 수술을 받으려 입원 중이었던 것이다.
   수술 전 날 밤,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나를 보살펴 주시던 엄마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낯선 병원 침대에서 혼자 울었다. 
「심하게 울면 눈이 붓게 돼. 그러면 수술하기가 힘들어져요.」 
  그런 간호사 언니의 충고는 더욱더 내 눈물에 박차를 가했다. 
「히까리쨩은 이미 열두 살이니 운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만한 나이 아니니.」
  울어대는 환자를 맡게 된 당직 초년생 간호사 언니는 커다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나서, 위로하는 듯이 내 눈꺼풀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침대 둘레를 감싸는 커튼을 닫은 다음, 간호실로 돌아가셨다.
   울어 봐야 소용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신 덕에 스스로 이해한 채 수술 받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과 거리가 먼 곳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은 성공률이 높다거나 수술 시간이 짧다느니, 그런 과거의 데이터를 보여 준다고 해서 쉽사리 뿌리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것쯤이야 알고 있지.」   
  그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에 있던 간호사 언니와 다르게 소녀의 목소리였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목소리로 볼 때 나보다 약간 나이가 위일 거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걸.」 
「누구세요?」 
  어둠을 향해 난 물었다. 
「교오코《キョウコ》야.」 
「교오코요?」 
「저녁때 여기에 입원했어. 몸이 안 좋아서 룸메이트한테 인사도 못 했는데.」 
  저녁에 입원해 온 사람이 있었나? 
   난 얼음주머니로 눈꺼풀을 식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여긴 침대 여섯이 놓인 대형 병실로서, 복도에서 안으로 들어와 왼쪽에서 두 번째, 즉 한가운데가 내 침대였다. 왼쪽은 귀가 조금 어두운 할머니이셨고, 오른쪽은 통통한 아주머니이셨다. 반대편에는 미인이지만 코골이가 심한 서른 갓 넘은 사무직(원문: OL) 언니가 있었고, 그 옆의 창가 침대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골절을 입은 대학생 언니였다. 
   그렇다고 하면, 내 쪽에서 정면으로 비스듬한 데 있는 복도 쪽의 빈 침대에 새로운 사람이 입원했다는 것인데――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교오코 언니, 바로 옆에 와주신 거에요?」 
「아니. 나, 아까 전에도 얘기했지만, 몸이 불편해서……배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어.」 
「배요?」 
「응. 맹장이 부었거든. 수술은 내일이야.」 
「아, 저도 그래요. 내일 눈 수술이 있어요.」 
「으응. 간호사 언니가 하는 얘기가 들렸어. 그래서 동지를 발견했다 싶어서 무심코 말을 건 거야.」 
「동지요?」 
「응, 수술 동지. 나는 배를 가르는 건 겁나지만, 다른 수술실에서 히카리쨩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을 거야.」 
「저도요. 저도 아프면 교오코 언니를 생각할게요.」 
  배를 가르는 것하고 눈에 메스를 대는 것, 어느 쪽이 큰 수술인지 몰랐지만 나 혼자만 수술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자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 난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히카리쨩. 학교는 즐거워?」 
「전혀요.」 
「어라, 어째서?」 
「내년 수험 때문에 지금 모두 안절부절 초조해져 있거든요. 이 시기에 제가 입원한 것도 보나마나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 거에요.」 
  나이 차도 크지 않고 우리 학교와 관계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는 부모님한테도 하지 않은 얘기까지 교오코 언니한테 말해 버렸다. 
「후?응. 히카리쨩, 공부 잘 하나 보네.」 
「어째서요?」 
「성적이 별로인 사람이 공부 못 하게 돼 봤자, 자기한테 도움이 안 되니 같은 반 애들이 기뻐할 리 없지.」 
「그런가요? 그렇네요.」 
  확실히 내 성적은 학급 수석이어서 1등을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두에서 초조해 하고 있는 장본인은 나였다. 당연히 병문안하러 와 주는 친구 같은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학교는 말이지, 굉장히 즐거워.」 
「에, 교오코 언니는 어느 학교 다니는데요?」 
「리리안 여학원. 알고 있니?」 
「리리안요? 들어 본 적은 있는데요.」 
  분명히 레벨이 몹시 높은 학교였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들어가려고 하는 제1지망보다 순위가 높은 것이다. 
「교오코 언니야말로 우등생 아니에요?」 
「그 건 말이지, 교복을 입고 싶어서 벼락치기로 스르륵 들어간 거야. 하지만, 들어가 보면 그렇게 공부에 매달린 학교도 아니야. 가톨릭 학교니까 행사가 많아서 즐겁지.」 
「크리스마스는 어떤데요?」 
「응. 이제 곧 크리스마스네. 그 때까지 퇴원해서 종업식에 늦지 않았으면 좋을련만.」 
  그리고 교오코 언니는 자기가 다니는 학교 얘기를 여러 가지 나한테 가르쳐 줬다. 
  교내에 세워진 성당의 아름다움. 
  "장미님"이라 불리며 학생들한테 우러름 받는 세 명의 선배와 그 분들이 일하는 "장미의 저택"이란 낡은 건물. 
  빵을 주문하는 법. 밀크홀(역주: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매점)을 요령있게 이용하는 법. 
  교오코 언니의 음성에 이끌려, 난 아직 가본 적 없는 리리안 여학원의 안뜰을 산책하고 교실을 둘러보며 마리아상에 손을 맞대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돋군 건 자매 《스루》 제도였다. 그 건 리리안의 유서 깊은 제도로서, 선배가 후배를 일대일로 지도하는 듯 했다. 
「좋아요. 저, 교오코 언니의 여동생이 될래요.」 
「좋겠네. 그럼 약속이야. 난 지금 2학년이니까 내년에 3학년이 되겠지만,  두 살 터울인 자매가 없는 것도 아니니 1년을 함께 더할 나위 없이 보내는 쪽이 좋겠지.」 
  가벼운 마음으로「여동생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 것이었지만, 교오코 언니는 혼자서 자꾸자꾸 들떠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자매의 언약을 잇는 아이템인 로사리오의 돌은 어느 색이 좋을까?"나 "발렌타인 데이에는 이런 초콜렛을 받고 싶어"처럼.

「하지만……붙을 수 있을까요, 리리안에?」 
  난 중얼거렸다. 현실적인 문제라서 제일 관심이 가고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교오코씨는 웃었다. 
「괜찮아. 반드시 붙을 거야. 그런 예감이 들어.」 
「그럴까요.」 
「안심해, 안심. 평소에도 공부 잘 하는 히카리쨩이라면 침착하게 대응하면 쉽게 붙을 거야. "걱정도 팔자."라고 하지? 수술도 보나마나 생각보다는 대수롭지 않을 거야.」 
「우응.」 
「……그런 낙관적인 사고방식은 내 동급생한테서 빌려 온 거지만.」 
「동급생?」 
「응, 굉장히 밝은 애야.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꼭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거라고 믿는 거지. 그리고 실제로 이뤄내지. 하지만, 그 건 걔의 그런 성격이 운을 불러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그 사람, 교오코 언니를 병문안하러 올 건가요?」 
「오지 않을 걸. 그렇게 친하지 않으니.」 
  게다가 갑작스레 수술하게 되어서 아직 담임 선생님한테 밖에 얘기 못 한 것 같았다. 
「그 사람한테라도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마음속으로 힘껏 격려해 줬을 수도 있잖아요.」 
「으응, 그렇네……정말 그대로구나.」 
  그 때 난 왠지 모르게 "교오코 언니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란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 언니가 순찰하면서 드는 회중전등이 병실에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들의 얘기는 중단됐다. 
  이윽고, 수다 덕분에 기분이 가라앉은 건지, 얼음주머니가 부어있는 눈언저리를 기분 좋게 식혀 준 덕분인지 몰라도, 나한테 잠의 요정(원문: 睡魔)이 방문했다. 오늘 밤은 잠을 이루지 못 하거나 울다가 지쳐 잠들든지, 둘 중 하나라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잠에 들어 버리다니. 난 교오코 언니의 수술이 무사히 마치길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눈을 감았다. 
  자기 쪽의 소원을 비는 건 깜빡 잊어 버린 채.

  다음날, 난 오전부터 수술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딱 준비하고 수술실로 옮겨 졌다. 
  나보다 어린, 즉 아기라든지 초등학교의 저학년이라면 망설임 없이 전신마취를 시킨다고 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초등학교 6학년생의 나한테 의사선생님은 어느 쪽이든 원하는 대로 골라도 좋다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난 전신마취를 선택했다. 
   물론, 국부 마취 쪽이 신체에 부담이 덜 가지만 수술 부위가 눈인 경우,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하는 것뿐이지 자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수술 모습이 일일이 상세히 보인다는 결점이 수반된다. 메스나 봉합바늘 같은 게 눈 안에 들어오는 걸 직시하다니 난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 수술은 전신마취로 잠들고 있는 동안에 순조롭게 끝나 그날 내로 큰 방에 돌아왔다.

「교오코 언니의 수술은 성공했어?」 
  내 침대에 눕혀진 다음, 내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교오코 언니라니, 누구니?」 
  시중들고 있는 엄마는 내 머리를 눕히면서 가볍게 되물었다. 
「저기 말이야, 반대쪽 줄의 복도 쪽 사람. 어제 입원해서 오늘 맹장 수술을 받았어.」 
「그렇니?」 
  엄마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침대에서 벗어나 몇 발자국 걷다가 돌아왔다. 하나, 둘, 셋, 넷……모두 일곱 발자국. 붕대로 가려진 눈을 보완하려는 듯, 내 귀는 민감해져 있었다. 
「저 침대구나. 커튼이 열린 사이로 봤는데 아무도 없어.」 
「그럼, 아직 수술중인가 보네.」 
  난 맹장 수술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몰랐다. 그러나 교오코 언니의 수술이 몇 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니까 수술에 필요한 평균 시간을 알아 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수술하고 나서 당분간은 간호실 옆의 독방에서 경과를 지켜본 적도 있는 것 같으니 어쩌면 오늘은 이 방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쩌지? 나중에 간호사 언니한테 물어보도록 하자. 그러니 좀 더 푹 쉬렴. 나중에 눈 뜰 때는 뭔 일인지 꼭 알 수  있을 테니.」 
「응.」 
  그리고 난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 눈 뜨면, "교오코 언니가 돌아왔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눈을 떠봐도 교오코 언니와 만날 수 없었다. 
「꿈을 꾼 거야, 히카리쨩.」 
  얼굴이 일그러진 채 엄마는 웃었다. 담당 의사선생님이 눈을 감고 있던 붕대를 떼가신 다음에 보는 풍경은 평상시와 달리 사물이 어째선지 일그러져 보였다. 
     「간호부장 언니한테도 물어 봤지만 그 침대는 히카리쨩이 입원하기 전 날부터 빈 침대였대.」 
「그럼, 다른 침대는?」 
「교오코란 사람은 오지 않았대.」 
  난 보조 탁자나 문에 부딪히면서 복도로 나와서 입구에 달린 플라스틱 팻말 위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랬는데, 엄마가 얘기했듯이 교오코란 이름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입원했을 때 이미 있던 사람들의 이름만 간호사 언니의 흘려 쓴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히.」 
  교오코 언니는 이 방에 있었어. 수술에 겁먹어 울고 있는 날 위해 말을 걸고, 자매의 약속을 맺었는걸. 
「입원환자의 이름을 찾아 볼려고 해도 성을 모르니까 조사해 볼 수도 없어.」 
  엄마는 복도에 주저앉아 있는 날 일으켜 세워 안아 들듯이 침대로 옮겼다. 
「꿈을 꾼 게 아니에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진 사이에 세계가 뒤집혀 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경과하는 사이에 꿈이 아니었다는 자신감도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차츰 회복되면서 사물이 분명히 보이게 되자 수술 뒤 처음 붕대를 풀었을 때 본 일그러진 풍경도 기억해 낼 수 없게 된 것처럼, 교오코 언니가 보이지 않는 나날이 겹겹이 쌓여 지면서 저 건 역시 현실이 아니었나 싶어진 것이다. 
  커튼이 둘러 쳐진 침대는 비록 지척일지라도 목소리를 키우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오코 언니나 나나 침대에 누운 채 평범하게 얘기하고 있었다는 건 모순이었다. 
  나 이외에 교오코 언니를 만난 사람은 없었다. 나 자신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지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이다. 
  현실이 아닌 걸 뭉뚱그려 꿈이라고 부른다면, 그 건 꿈이었다. 하지만, 난 도저히 단순한 꿈으로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나, 리리안 여학원에 들어가고 싶어.」 
  나는 퇴원하자마자 부모님께 선언했다. 
  그제서야 지망교를 바꾸는 건 어리석은 짓이란 걸 충분히 염두에 둔 채, 난 리리안 하나만 노리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불합격되면 공립 중학교에 가서 삼 년 뒤에 리리안의 고등부에 다시 도전할 셈이었다. 리리안 외에는 어디에도 갈 생각이 없었다. 교오코 언니와 만나서 대화한 일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선, 내가 약속을 지켜 리리안의 학생이 되는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혹시, 교오코 언니가 기다려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교오코 언니는 실제로 어딘가에 있고, 그 날 두 명은 꿈 속에서 만난 건지도 모르니까.

  무모하다고 충고하는 담임선생님의 질린 얼굴이나 동급생들의 냉소를 뒷전으로, 난 리리안 여학원의 중등부에 합격했다. 들어가기 힘든 리리안에 합격됐다고 어머니는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난 학급 수석을 했을 때처럼 우쭐대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한테 리리안은 오직 교오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학교일 따름이지,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난 교오코 언니 탐색을 시작했다. 현재 3학년이고 작년 12월에 병으로 결석했던「교오코」란 이름의 학생. 금년도 3학년의 교실을 방문하거나, 작년에 2학년 담임이었던 교사한테 얘기를 듣거나, 게시판의 자유 코너에 찾는 사람의 포스터를 붙인다든지, 그런 내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겠지만, 리리안의 교사는「뭐든지 해보렴」이란 분위기로 따뜻히 지켜 봐 주셨다. 동급생 가운데 재밌어 보이는지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4월이 끝나갈 무렵인가,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전단지를 작성하고 있던 나한테 동급생인 오가사와라 사치코《小笠原 祥子》씨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유치원, 초등부를 지나 중등부에 올라온 학생으로 또래의 여자애 눈으로 봐도 접근하기 힘든 미소녀였다. 
「히카리씨. 꿈에서 만난 분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치코씨는 내가 만든 전단지의 원고를 가리켰다. 학교에서 돌아가서 교습이 있는지, 책가방 말고도 휴대용 자루를 어깨에 매고 있었다. 
  내가 직접 사치코씨한테 그 얘기를 한 건 아니지만, 입학한지 한 달이 지나자 내가 교오코 언니를 찾고 있다는 걸 모르는 동급생은 없었다. 
「자매가 되기로 약속했다면서요?」 
「네.」 
  뭔가 정보를 주려는 건가 싶어 난 활기차 다기보단 긴장돼 있었다. 그러자 사치코씨는 잠시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가시다는 인상이었다. 
「중등부에 자매 제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거에요?」 
「에엣.」 
「리리안의 전통이라고 알려졌지만 자매 제도가 있는 건 고등부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만약을 위해서 고등부의 3학년을 찾아 보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서 가르쳐 주려고요.」 
   그 말을 끝내고 나서, 사치코씨는「평안하세요(ごきげんよう)」란 무뚝뚝한 인사를 남기며 손목시계에 눈길을 돌리며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의 친절한 충고에 답례하는 것이나 인사하는 것마저 잊은 채 오로지 교오코 언니와 대화한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분명히 중학교 수험이라고 얘기했나. 
  교오코 언니가 리리안의 2학년이라고 얘기했을 때, 중등부인지 고등부인지까지 헤아리고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아. 
  두 살 터울이라고 생각했던 교오코 언니는 다섯 살 연상의 언니였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해 보니, 난 깜짝 놀랐다. 만약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고등부에 다닐 수 없는 우리는 영원히 자매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맹장으로 입원한 학생을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난 고등부 학교 건물에도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자매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난 역시 교오코 언니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교오코 언니는 그 곳에도 없었다. 
  내게는, 이제 찾을 장소마저 없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그 때 교오코 언니의 학년이라고 짐작했던 고등부 2학년이 되었다. 
  5년이나 지나고 나니 교오코 언니 찾기를 그만 뒀지만, 아직도 교오코란 이름과 만나면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교오코란 이름은 드물지 않기 때문에 대개 학급에 한두 명은 그 이름이었다. 리리안은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교오코씨」란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두근거렸다. 마치 수상한 사람처럼.
  고2에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된 미타 교오코《三田 今日》씨도 교오코씨라서 내가 「교오코씨」에 반응하기  때문인지 언제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고등부 때부터 리리안에 입학한 재능있는 아가씨(원문: 才女)였다. 본인은「우연」이라고 얘기했지만, 고등부 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건 중등부 때 들어오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교오코씨는 조용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꽃꽂이부에서 들어가 있어, 부활동하다 남은 꽃을 작은 꽃병에 꽂아서 교실을 장식해 주고 있었다. 
「교오코 선배 계시나요?」 
  후배도 잘 돌보는지, 꽃꽂이부의 1학년생이 자주 교실에 찾아 왔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직 여동생이 없었다. 
「교오코씨, 여동생 만들지 않을 거에요?」 
  어느 날, 동급생 한 사람이 내가 항상 궁금하게 여겨온 걸 교오코씨한테 물었다. 
  그 건 과학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처없는 잡담이었다. 나와 교오코씨는 하필이면 그 날 같은 조에서 실습했기 때문에 하는 김에 동행하는 중이었다. 
「어라, 그렇게 말하면 히카리씨도 마찬가지에요.」 
난처해진 교오코씨는 나를 동지로 끌여 들였다. 함께 걷고 있던 네 사람 가운데 여동생이 없는 건 나와 교오코씨뿐이었다. 
「히카리씨는 마음 속에 정한 분이 있거든. 그 분 외에는 자매를 맺을 생각이 없대..」 
  옆에서 하세쿠라 레이씨가 나타나서 장난스런 말투로 설명했다. 《로사 페티다 앙 부통》인 그녀는 우등생인 언니, 그리고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다. 
「마음 속에 정한 분이 있다고요?」 
「으응, 꿈 속에서 만난 분.」 
  교오코씨의 질문에 답한 사람은 또다시 레이씨였다. 중등부에서 올라온 레이씨 일행은 당연히 내 꿈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교오코 언니를 찾아 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꿈? 꿈이라니, 잠잘 때 꾸는 그 꿈말인가요?」 
「웃어도 좋아요. 저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십 년 후라도 이십 년 후라도 좋고, 또다시 꿈 속이라도 좋아요. 만나게 될 때 성장한 저 자신을 보여 주고 싶어요. 가능하면 좋아해 주길 바라고요.」 
  교오코씨는 웃지 않았다. 
「응. 왠지 모르게 알겠어요……알아요.」 
  교오코씨는 내가 지금 가장 원하던 표정을 지어 주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더 교오코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학교를 쉬어 버리는 바람에 사이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다.

 

　　　　　　　　　　＊

 

「――그래서?」 
  고등학교 교사 카토리 마키는 볼펜의 뚜껑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예전 일은 대충 알았지만. 요점인 기적은? 이제 슬슬 나오니?」 
  이러니 저러니 20분은 얘기하고 있었다. "길어질 것 같으면 돌아가는 길 내내 들어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확실히 쿠로스 히카리는 마키와 같은 지하철 노선의 M역을 지나 돌아갔다. 
「조금 전에요.」 
  히카리가 빙긋 웃었다. 
「에?」 
「조금 전에 일어났어요. 선생님. 눈치채지 못 하셨나요?」 
「뭐 말이니?」 
「미타 교오코씨의 병결에 관한 자료. 당연히 파악하게 계시겠죠?」 
「미타의? 물론이지. 난 담임인 걸.」 
  기말고사 전 날 저녁, 자택에서 복통을 호소해 입원. 시험 기간과 시험 뒤의 휴일을 모두 쉬고 오늘 간신히 복귀. 
「병명은 뭐죠?」 
「충수염.」 
「다른 말로는요?」 
「……맹장.」 
  중얼거리다가 마키는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 가운데 아무 분이나, 고등부 2학년 때 크리스마스 직전에 맹장으로 입원한 학생을 알고 계십니까?」 
  히카리는 분명히 4년 7개월 전에 이 교무실에서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호소한 그 대사를, 마키 한 사람에게 재현했다. 
「설마.」 
「그, "설마."가 맞다면, 기적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미타 교오코가 너의……?」 
「네, 왜냐하면 교오코씨가 오늘 아침 만나서 저한테 말해줬거든요.」 
  쿠로스 히카리는 보물상자의 뚜껑을 살며시 여는 것처럼, 조심스레 말했다. 
「히카리쨩이라 부르는 거에요. 히카리쨩, 리리안은 즐거워? 거기다가, "그리고 눈 쪽은 이제 괜찮아?"라든지, 계속해서 그러니 이상한 거 있죠? 5년이나 지난 얘기인데 교오코씨한테는 겨우 며칠 전의 사건이었던 거에요.」 
사실이라면 이 건 정말로 굉장한 기적인데 쿠로스 히카리는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선뜻 말했다. 
「저,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요. 교오코씨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면, 자매가 되려고 해도 힘들었을 텐데 동급생이 되다니 꿈만 같아요.」 
「정말이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갑자기 믿을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이 게 전부 쿠로스 히카리가 혼자서 꾸민 얘기라고 볼 수 없었다. 미타 교오코가 동급생의 망상에 입을 맞췄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선생님.」 
  마치 마음 속을 읽어낸 듯, 히카리가 말했다. 
「기적은, 믿지 않으면 그 곳에 있어도 보지 못 하고 지나쳐 버려요. 적극적으로 잡지 않으면.」 
  그 말은, 성당의 종소리처럼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기적 이야기를 마친 소녀가 떠나고, 텅텅 빈 교무실에 남겨진 마키는 갑자기 쿠로스 히카리의 꿈 속에 휘말린 듯한 착각에 빠졌다. 
  여기는 현실 세계인 걸까. 
  원래, 쿠로스 히카리란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출석부를 열어 확인했다. 
「쿠로스 히카리……미타 교오코」 
  분명히 있다. 
  "난 대체 뭘 생각하고 있던 거지"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무심코 출석부에 부딪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가 떨어졌다. 
「으응, 큰일났네.」 
  마키는 당황한 채 주워 올렸다.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천사 마스코트가 올해도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저기, 기적을 믿으세요?  ――라고.

 

 

마키

 

「저기, 기적을 믿으세요?」 
  몸집이 작고 피부가 새하얀 소녀가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난 딱히 누구한테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을 들었다. 
  기말 고사 마지막 날, 동급생들은 시험 결과보다 시험이 끝난 뒤의 휴일과 겨울 방학의 스케쥴, 그리고 크리스마스 쪽에 신경이 쏠린 듯, 조례가 이미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교실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 떨기에 바빴다. 
  난 연말연시에 누구한테 연하장을 보낼 생각도 없었고 타인의 스케쥴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준비물을 정리하는 걸 끝내면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아, 잠깐 기다리세요, 마키씨.」 
「네?」 
  불러 세워져 뒤돌아 봤다. 그러자, 교단 근처에 모여 있던 여럿이 날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뭔가요?」 
  나는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동급생들의 고리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마키씨, 사회 과목의 아츠미《渥美》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급생 가운데 한 명이 당돌하게 말했다. 
「어떻게라니요?」 
  나는 질문의 의도를 모른 채 되물었다. 그러자, 되돌아 온 건―― 
「즉, 좋아하냐고 묻는 거에요.」 
  ――였다. 
「좋다든지 싫다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는 거에요?」 
「달라요, 달라. 아츠미 선생님한테 사랑을 느끼는지 아닌지 쪽의 얘기에요.」 
「사랑!?」 
  적어도, 호감도를 조사하는 앙케이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 쳐도 사랑이라니……. 
「수업은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지만, 그런 감정은 없어요.」 
  난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츠미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 묻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 말없이 내버려 뒀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의해 봤자 헛수고겠네요.」 
「대체, 뭔데요?」 
  솔직하게 질문에 답한 나한테 알 권리 정도는 있겠지. 그러자, 한 사람이「실은 말이죠.」라며 소리를 낮췄다. 
「저기요, 종업식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잖아요? 수업이 끝나고 모두 함께 교무실에 가서 아츠미 선생님한테 선물을 건네 주자고 의논하고 있던 거에요.」 
「모두라니요?」 
「여기 있는 전원.」 
「아하」 
  난 주위를 둘러 보고 납득했다. 
  하나, 둘, 셋……모두 여덟 명.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여학생들은, 대충 「아츠미 선생님을 좋아한다」란 걸로 이어져서 모인 면면이었다. 
「아츠미 선생님이군요.」 
「어라, 마키씨. 무슨 말을 하셨나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는 목을 움츠렸다. 
「아츠미 선생님은 멋있지 않나요?」 
「우리 학교에선 드물게도 젊은데다가 멋있고.」 
「20대의 남자 교사란 건 귀중해, 귀중하다고. 그런데도, 평균 이상의 외모라니.」 
  동급생들은 눈을 빛내며, 제각기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뭐, 반론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동갑내기 남자가 없는 실정인 여학교에서 상궤에 벗어난 연애는 번성하기 때문이었다. 교사나 동성의 선배라든지 말이다. 
「그렇단 거지요. 그래서 마키씨, 이 계획에 동참하실래요? 하시 않으실래요?」 
  아무래도 함께 교무실에 가서 전달하자는 아까 전의 얘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째서 제가 아츠미 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려야 되는 거죠? 반대라면 몰라도.」 
「어째서 선생님이 마키씨한테 선물을 줘야 하는 거죠?」 
  키득키득거리며, 동급생들한테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는 말이에요. 어쨌든, 전 참여하지 않을 거에요.」 
  난 쓴웃음과 함께 손을 저으며, 이 번에야말로 교실을 빠져 나왔다.

  복도를 열 발자국 정도 걸었을 무렵, 방금 내가 닫은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닫히면서 학생 한 명이 뛰쳐 나왔다. 그리고 나한테 종종걸음으로 다가 와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같이 가요.」 
  아베 미카《安倍 美嘉》씨. 학급에서 제일 키가 작고, 제일 피부가 새하야며, 제일 깡마른 데다가, 아기사슴 같은 눈동자를 지닌, 보호하고 싶어지는 타입의 소녀. 덧붙여, 아츠미 선생님 팬클럽의 8분의 1……이 건 앞에서 판명난 거지만. 
  어휴, 이런. 
  나는 멈춰 서서, 미카씨한테서 가방과 휴대용 자루를 받아들었다. 황급히 날 뒤쫓아 왔는지, 안고 있는 학교 코트와 가방, 휴대용 자루는 당장이라도 손에서 떨어질 듯만 했다. 
「마키씨는 친절하시네요.」 
  양손이 빈 미카씨는 천천히 코트를 입고 나서 「고마워요.」라고 하며 내 손에서 자기 물건을 받았다. 
  나는 뭐라 답해야 좋을 지 모른 채, 등을 돌려 앞장서 걸어 갔다. 
  코트를 입고 있는 동안 가방을 들어주는 것 정도야, 누구든 하는 것이야. 그 걸 친절하다고 부르는 미카씨는 조금 과장이 심하네. 
「고백해서 어떻게 될 거 같애?」 
  도서관의 옆을 나란히 걸으면서 난 물었다. 
「어떻게 된다라……그렇죠, 고백하면 제가 좋아한다는 걸 상대방이 알게 되지요.」 
  미카씨는 대범하게 대답했다. 내쉰 하얀 숨결이 미카씨의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에 살며시 닿으며 사라졌다. 
「알아주면 그 걸로 된 거야?」 
「게다가 상대방이 절 좋아한다면 사귀게 될지도 모르죠.」 
「교제?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고함을 지르며 부정했다. 가까운 남학교의 학생이나 오빠 친구라면 몰라도, 미카씨가 고백하려는 상대는 같은 학교의 교사이다. 
「그런가요? 하지만, 옛날에 선생님과 결혼한 졸업생도 상당한데요.」 
「그 건 몇 안 되는 행운의 커플이야.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교제하고 있었거나,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고백했겠지. 그러니 미카씨도 앞으로 세 달 기다려야 할 거야.」 
「세 달인가요……」 
  흐린 하늘을 올려다 보며 미카씨가 중얼거렸다. 나는 소녀한테 흔히 있는 변덕이란 게 미카씨의 사랑 열기를 식혀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순 없는데요.」 
  독백처럼 그렇게 말한 뒤, 미카씨는 손을 합치며 눈을 감았다. 이야기에 열중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지만, 어느새 우리 둘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장소까지 와 있었다. 
  리리안 여학원을 다니는 사람한테 당연한 습관이니 나도 따라서 손을 합쳤다. 그러나 마음속에선 성모 마리아님 대신 방금 들은 얘기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릴 수 없다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갑자기 두려워 져서 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먼저 인사를 마친 미카씨는 내 대각선 뒤에 그대로 있었다. 
「왜 그러세요, 마키씨……?」 
  이런 눈에 보이면, 난 어째선지 불안해졌다. "미카씨가 추운 날 입김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한 건 입에 낼 수 없었다. 말해버리는 순간, 마법이 풀려 정말 뭔가가 미카씨를 데리고 가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를 걸어 교문을 벗어나 버스를 탄 다음, M역에서 헤어졌지만, 그 사이에 아츠미 선생님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잡담을 나누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상점가의 분장한 산타이라든지 그런 얘기. 
「어이, 카토리.」 
  주변 역의 역전에서, 누군가 등 뒤에서 날 불렀다. 뒤돌아 보니, 거기엔 차 안에서 상냥하게 손을 흔드는 남자가 있었다. 
「……아츠미 선생님.」 
「지금 돌아 오는 길이니? 태워 줄게.」 
  천천히 내 옆에 정차해 조수석의 문을 열려고 하시는 아츠미 선생님.
「사양하겠습니다. 밀실에서 가족 이외의 남성과 단둘이 되면 안 된다고 수녀님께서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렇니. 우응, 그렇구나. 그런 완고한 면이 마음에 들어.」 
  농담 삼아 얘기할 작정이었는데 의도와는 달리 우등생 티를 낸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황급히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이 앞의 서점에서 문제집을 봐 두고 싶거든요.」 
「아, 마키쨩은 수험생이지.」 
  카토리와 마키쨩. 
  아츠미 선생님은 어딘가에 있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내 호칭을 부르고 계셨다. 
「큰일이네. 리리안 여대에 그냥 들어가면 편할텐데.」 
「그래서요? 대학 졸업하면 교사와 결혼하는 건가요?」 
「하하하하.」 
  행복해 보이는 쑥스러운 웃음. 가까운 시일 내, 그 그늘에 여러 학생이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몰라. 아츠미 선생님은 죄 많은 남자다. 
  생각에 잠긴 사이, 공연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바람에 심통이 나서 아츠미 선생님을 냉랭히 쫓아 버렸다. 
「먼저 가실래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셔요. 약혼식의 일정이라든지 뭔가 얘기하셨어요. 」 
「그러면 서둘러라, 카토리, 오락실 같은 덴 가지 말고.」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새 차가 떠나는 모습을 전송하며 중얼거렸다. 
「흐음, 선생 티를 낸다니까.」 
  주변머리 없는 아츠미 선생님. 사람 기분도 모르고. 
  덕분에 이 쪽은 1시간 정도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아예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지경인걸.

  미카씨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건 시험이 끝나고 연휴 닷새 째의 일이었다. 
「아베입니다. 갑자기 전화 드려서……」 
  들은 적이 없는 어른 여성의 목소리.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미카씨의 성이 아베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어머니께서 직접 내게 전화를 걸으실 줄은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무례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마키씨께서 와주시길 바라는 장소가 있어서요.」 
「네……?」 
  미카씨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미카씨는 이틀 쯤 전부터 몸이 불편해 예방차 입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심심하기 때문에 문병해 줬으면 좋겠다고.   입원이라 해서 나는 곧장 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알려 주신 병원은 내 집에서 버스로 십 분 정도인, 비교적 가까운 장소에 있었다. 
「뭐라고요, 어머니께서 알려 주셨다고요?」 
미카씨는 독방의 침대 위에서 미소를 띈 채 나를 맞이했다. 조금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입원할 만큼 상태가 나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감기야?」 
  선천적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는 병 이름에 어두웠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다고 들으면, 이퀄(역주: 등호) 감기라고 생각해 버린다. 
「조금 피곤했나 봐요. 괜찮아요, 전염병은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상점가의 꽃집에서 산 연한 핑크색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든 채, 나는 미카씨에게 다가 섰다. 꽃집에 들어간 적도 없는 내가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처음으로 산 꽃이었다. 미카씨의 이미지를 따온 셈이다. 
「……피곤한 거라니?」 
「요즘 조금 무리를 해서 그런가 봐요.」 
  자, 이불 아래서 등장한 건 바느질 상자였다. 
「뭐야……!」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에요. 시끄러워질테니까.」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대는 미카씨.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시끄러울 거야. 이불 속에서 바느질을 하다니, 무슨 속셈이냐고.」 
  바늘이나 가위가 몸에 박히거나 하면 어쩌지.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졌다. 
  그런 나의 걱정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내며 미카씨는 웃음을 띈 채 바느질 상자에서 초콜릿 색의 물건을 꺼냈다. 
「이제 곧 끝낼 거에요.」 
  그 건 펠트로 만들어진 천사 마스코트 인형이었다. 
  머리카락은 노란색 털실, 옷은 레이스 달린 하얀 색의 손수건. 머리의 고리는 띄우는 게 힘들었는지, 손오공처럼 머리에 달려 있었다. 눈은 까만색 단추, 코와 입은 뜨개질 실로 꿰맸다. 하얗고 조그만해서 매우 귀여웠다.  그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미카씨와 닮아 있었다. 
「차 안을 장식하기에 딱 좋은 크기에요.」 
「그래?」 
  그 만큼 얘기를 나누고, 우린 그 게 아츠미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란 걸 서로 이해했다. 아츠미 선생님이 최근 자가용을 구입해서 간절히 바라던 자가용 출퇴근을 시작한 건 유명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저기, 기적을 믿으세요?」 
  미카씨가 천사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천사는요, 기적을 전해 준데요.」 
「기적이라니, 뭔데?」 
「글세.」 
  미카씨는 구체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떠올리는 생각은 아츠미 선생님이겠지.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이 아닐까?」 
  왜 그런지 몰랐지만, 나는 약간 초조해졌다. 
「하지만, 기적이란 말이 존재한다는 건, 이 세상에 기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미카씨는 반론했다. 
「그런가.」 
  환자를 상대로 말다툼하다니, 어째선지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감정을 절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신한테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있어요」 
  흥분한 나와는 달리, 미카씨는 고요한 호수면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단호히 얘기했다. 
「저 말이에요, 예전에 감기가 악화돼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그 건 6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계절은 정확히 지금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요, 그 때 천사가 나타나 가여운 제 머리를 어루만져준 거에요. "이렇게 어린데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니"라고 하면서.」 
「천사가?」 
「네.」 
  미카씨는 진지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래서요, 저, 꿈속에서 그 손을 붙잡고 소원을 빌었어요. "좀 더 살게 해주세요"라고.」 
「좀 더 라니? 막연한 걸.」 
  나는 어째서 좀 더 길게 기한을 잡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어차피 부탁할 바에, 앞으로 오십 년이나 백년이라고 얘기했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미카씨는 고개를 저었다. 
「기적은『이뤄지기 힘든 소원』이죠? 너무 엉뚱한 건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이뤄지지 않아요.」 
  그래서, 미카씨가 겸손했기 때문에 천사가 소원을 들어 줘서 지금 무사히 살아 있다는 얘기였다. 
「이 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적……」 
  그럴까. 정말 기적이라 불러도 좋나? 
  6년 전에 감기가 악화돼 열이 나 괴로워 하는 동안, 미카씨는 천사의 꿈을 꾸었다. 그런 식의 이야기겠지. 
  미카씨는 아마 현대 의학의 힘으로 나을 수 있어서 낫게 됐다. 그렇다면, 그 건 기적이라 볼 수 없다. 
「전 좀 더 오래 살아서, 그저 평범히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들고,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요. 그 소원을 천사가 들어 줬어요.」 
  그저 평범히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들고, 그리고――. 
「미카씨. 하지만, 아츠미 선생님은.」 
  말을 꺼내자, 나는 목이 메었다.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 대신, 돌연 눈물이 솟아 올라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적은 그렇게 호락호락 일어나지 않아.」 
  나는 건네줄 타이밍이 늦은 장미꽃을 미카씨의 손에 건네준 다음, 그대로 병실에서 뛰쳐 나왔다. 눈물이 넘쳐 흐르는 걸 보여 주면 안 돼.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력을 다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인기척 없는 층계참의 벽에 기대어 홀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알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데도 애써 만든 천사 마스코트는, 결코 미카씨에게 기적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란 걸. 
  만약 이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이 세상에서 없애 주길 바래. 뭘 위해서 짝사랑 같이 괴로운 게 존재하는 걸까. 
  나는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채,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틀 뒤, 종업식 날. 미카씨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나왔다. 나는 엊그제 헤어진 게 거북스러워서 눈을 맞출 수 없었지만, 그녀는 내 앞을 평소처럼 「평안하세요.」하고 인사한 뒤 지나쳐 자기 자리에 도착했다. 평소 때와 다름없는 미카씨. 몸 상태는 회복된 것 같았다. 
   미카씨 일에만 마음이 쏠리고 있던 나는 그 때 학급 여기저기서 소곤소곤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이름이 불려 성적표를 받으러 앞으로 나갔을 때,「사회 성적 올라간 거 아냐?」라고 누가 말한 걸 들은 것 같았지만, 그 게 날 가리킨 거라곤 생각치 못 했다. 
「마키씨, 잠깐만요.」 
  나는 수업이 끝나고서야 처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아츠미 선생님 팬클럽」의 8분지 7이 맞대놓고 나한테 질문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미카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키씨가 아츠미 선생님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알고 있어요?」 
「뭐엇?」 
「시험 마지막 날, 둘이서 사이좋게 상점가에서 쇼핑하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해서요.」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을 뿐이야. 선생님이 차에서 얘기하셔서 잠시 서서 얘기하긴 했지만.」 
  제의 받았을 때 차를 타지 않은 건 정답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누군가한테 보이고 있다는 건 몰랐다. 사실에 꼬리와 지느러미가 꽤 달려 있는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귀와 입을 통과했는지 증명하는 거겠지. 
「그럼, 아츠미 선생님이 마키씨 집에 들어갔다는 건 무슨 얘기죠?」 
「무슨 얘기라니?」 
「병맥주 한 박스를 사신 다음이니, 가정 방문은 아니겠지요.」 
「……」 
「일식점 타츠《辰》에서 고급 초밥을 배달시켰죠. 그 게 아츠미 선생님이란 건 무관하나요?」 
  아무래도, 우리 학교 관계자 가운데 사립탐정을 압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아츠미 선생님이란 사람, 근처의 술집에 들르고 나서 집에 오다니, 무방비한 남자구나. 
「마키씨, 아츠미 선생님한테 아무 관심도 없다고 말했으면서, 선수친 거에요?」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지나치게 변명을 하면 오히려 불리하지만, 사실이 아닌 걸 부정하지 않으면, 난 어느새인가 아츠미 선생님의 애인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럼, 어떤 일이죠? 설명이라도 해주세요.」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진작에 했지. 
「미안해요. 지금은 실례할게요.」 
  나는 도망치듯이 교실을 빠져 나왔다. 교실문에서 나오니, 미카씨가 있었다. 
「미카씨……」 
  나는 미카씨가 이 소문을 어디까지 들었고, 어떤 식으로 받아 들였는지 굉장히 신경쓰였다. 하지만, 미카씨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마키씨, 저기요.」 
  그녀는 미소지으며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 것, 받아 주시겠어요?」 
「이 거라니.」 
  작은 상자 속에서 나타난 것은 그 천사의 인형이었다. 
「저, 그 때부터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아츠미 선생님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다들 떠들어 대니까 편승해 보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아츠미 선생님께 드리는 것도 그래서, 마키씨에게 주고 싶어요.」 
「……」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카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츠미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했으면서. 그렇지 않으면, 아픈데도 이런 귀여운 천사를 만들 수 없어. 
  내가 가만히 우두커니 서 있으니, 미카씨의 어머니께서 마중 나오셔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미카씨를 데리고 돌아가 버리셨다. 아직 몸이 불편하면서도 종업식에 꼭 나오고 싶다고 얘기해서 병원에서 직접 온 것이란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눈 앞에서 미카씨가 사라진 덕분에 말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 나는 가슴 속 어디선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곧바로 어쩔 줄 모르게 돼버렸다. 
  이 천사를 어떻게 한담. 
  뒤쫓아 가서 되돌려 줄 수 없었다. 미카씨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며, 아츠미 선생님께 억지로 드릴 수도 없었다. 
  이 건 미카씨의 연정이니까. 
  미카씨는 천사 인형과 함께 연정을 내게 맡기고 간 것이었다. 
「미안해.」 
  나는 복도 한 구석에서 천사를 안은 채,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상하게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아츠미 선생님은 연초(年初)에 서둘러 약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내년 봄 리리안 여자대를 졸업하는 나의 언니였다.   하지만, 그래도 미카씨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새해를 맞이하는 일 없이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새해 나흘째,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고, 엿새째 학급 위원 두 사람을 포함한 네 명이 미카씨의 장례식에 갔다.   우리는 너무나 갑작스런 일인데다 인간의 죽음이란 것에 여태까지 접하지 않고 살아 왔기 때문에 여우한테 홀린 듯한 기분으로 손을 마주쳤다. 
　이렇게 간단히 소녀가 죽다니. 폐렴이라고 했지만 혹시 자살이 아닐까. 
　나는 종업식의 일 때문에 자신이 적지 않게 그녀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서 가슴에 무거운 짐이 얹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분향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친척 같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부터 위중한 지병(持病)이 있어 국민학교를 졸업할 수 없을 거란 말이 있었는데, 17세까지 살았다는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폐렴이었다고 하지만, 폐렴을 극복할 수 있을만한 힘이 이제 그녀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그랬다. 
  미카씨의 죽음에 관한 책임은 나한테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장래에 처제가 되는 내가 아츠미 선생님의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그다지 바람직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께서 나보고 졸업할 때까지 얘기하지 말라고 주의를 내렸다. 　하지만, 꾸중 듣거나 아츠미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게 될지언정, 미카씨한테는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해 받은 채로, 떠나가 버릴 바에. 
  내 해명이 두 번 다시 닿지 않게 되어 버릴 바에.

  그래서, 내 수중에 천사 마스코트 인형만 남게 되었다. 
  나는 추억을 남긴 채 이 장소에서 떠날 수 없어서 리리안 여대를 졸업한 후, 교사로서 되돌아 왔다. 
  미카씨가 남기고 간 천사는 상자에 넣은 채 책상 서랍의 맨 안 구석에 보관해 두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만 꺼내 그녀에게 사과했다. 한 해에 한 번. 그렇게 정하지 않으면 나는 하루종일 미카씨를 떠올리며 하릴없이 울며 지낼테니. 
  그런 생활이 괜찮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나름대로 가족이나 동급생이 걱정해 그 원인을 찾으려 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언니와 아츠미 선생님의 결혼 생활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는 점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미카씨가 제3자한테 더럽혀지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

 

  마키는 고등부 교무실을 나오면서 복도에서 걷고 있는 사람과 가볍게 부딪혔다. 
「이런, 카토리 선생님.」 
「아츠미 선생님……실례했어요.」 
  부딪힌 탓에 떨어져 버린 물건을 각자 주웠다. 겨울 방학 전에 뭔가 들고 가야 되는 것이 있었다. 
「돌아 가는 거지? 나한테 차 있으니까 타고 가자.」 
  아츠미 선생님은 바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면서 웃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츠미 선생님의 집은 제 맨션과 정반대가 아닌가요?」 
「그러니까 함께 가자는 거지. 사키《渥美 早紀》가 요리와 케이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어.」 
「삼십이 넘었는데도 아직 독신인 외로운 동서를 단란한 가족의 크리스마스로 꼬시는 거에요?」 
「뭐어, 그런 셈이지. 이 것도 처제 사랑이야……그렇지 않으면 선약이 있는 거니?」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분하게도 없네요. 그러니 감사히 초대에 응할겠습니다.」 
  이야기도 마무리 지었으니, 복도에 납작 엎드려서 남아 있는 물건을 찾았다. 끝까지 행방불명이었던 천사 마스코트는 아츠미 선생님에 의해 발굴되었다. 
「뭐지, 이 거? 귀여운 천사네.」 
「갖고 싶으세요?」 
  마키는 스커트의 먼지를 털어 내며 가벼운 기분으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갖고 싶어. 차의 마스코트로 이런 걸 찾았거든.」 
  아츠미 선생님은 생각 이상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럼, 드릴게요.」 
「에엣, 하지만, 이 거 네가 학생한테서 선물 받은 거 아니니――?」 
「그 게 말이죠. 그 아이, 사실은 아츠미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대요. 하지만, 부끄러워서 직접 건네줄 수 없어 저 보고 전해 달라며 가져 왔어요.」 
「정말이니? 정말 기분 좋네. 누굴까, 2학년 국화반의 학생이야?」 
  나이도 40에 가깝고, 더 이상 독신도 아닌데다 중년에 살집이 붙은 아츠미 선생님은 최근 몇 년째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 데이에 언급되지 않게 돼버렸다. 요즘은 왠지 여성인 마키 쪽이 학생에게 인기 있을 정도였다. 
「비밀이에요. 억지로 들으려고 하시면 안 드릴 거에요.」 
「에엣.」 
「언니한테 말해버릴 거에요.」 
「용서해 주라. 겁나니까.」 
「잘 말해 두세요. 애정을 잃을 수도 있으니.」

  저기, 기적을 믿으세요? 
  차의 움직임에 맞춰 즐거운 듯이 흔들리면서, 천사가 묻는다. 
       (응, 믿어.) 
  아주 낡은 차의 조수석에서 마키도 미소짓는다. 
  작년에 태어난, 아츠미 선생님의 막내딸은 우연히 미카라고 한다. 
  대천사 미카엘님의 미카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