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6권 버라이어티 기프트 -2- 초콜릿과 초상화

                                                      버라이어티 기프트Ⅱ

 

 

  에리코님의 선물이라고 짐작되는 상자의 내용물이 예상밖이었는지, 요시노씨는 뚜껑을 여는 자세 그대로 망연히 서있었다.
「폭탄이라도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유미는 물어 보았다. 그러자 요시노씨는 손에 들고 있는 뚜껑을 탁자에 올려 놓고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지만 용수철이 달린 인형 정도는 나와야――」
「……에리코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요즈음, 라이벌한테 깜짝 상자를 주는 것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은 없어. 게다가 생각해 보니, 백화점 포장지에 제대로 포장되어 있었으니 내용물을 바꿔치기 할 재간은 없겠지. 그런 바, 안의 과자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얘기. 경사났네, 경사났어.
「분해.」
  그렇게 말하며 요시노씨는 마블 쿠키에 손을 뻗었다.
「앗」
  유미의 고함소리를 뒷전으로, 쿠키는 요시노씨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3학년생 가운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당돌한 짓이람.
「분하니 자포자기하고 먹어 버릴 수 밖에 없잖아.」
  요시노씨는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왼손으로 두 개 째의 쿠키를, 한 술 더 떠 오른손으로 쵸콜릿을 집었다.
「분하다니, 뭐가?」
  유미는 말리는 걸 포기했다. 이미 한 개를 먹어 버렸으니 두 개나 세 개나 마찬가지야. 
「이런 별 볼 일 없는 선물로 에리코님한테 놀림거리가 된 자신이 한심하거든. 어쩌면, 이 과자로 식중독이 일아날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 과자에 독이 들어간 건 아니잖아. 유통기간도 아직 남았고.」
  유미는 포장지에 붙여진 꼬리표에 인쇄된 날짜를 요시노씨한테 읽어 주었다. 11월 말이라고.
「그러면, 과식해서 배가 아파지면 되겠네.」
「되겠네라니. 조금 심한 걸.」
  뭔가 아귀가 안 맞아. 비록 에리코님의 선물을 먹어서 배가 아프게 되었다고 할지언정, 과식이라면 에리코님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잖아? 
  「그보다 어쩔 속셈이야. 언니들한테 확인도 해보지 않고 제멋대로 상자를 연 데다가, 이렇게 먹고 어질러――」
  진심으로 복통을 일으킬 생각인지, 요시노는 연달아 새로운 과자에 손을 대고 있었다. ――전 종목 제패도 멀지 않다고 봐.

「아무 속셈도 없어.」
  피식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아무 속셈도 없다』니!?」
  부럽기 그지 없는 여유만만함이었다. 그런데 마주 보는 쪽에는 남의 일인데도 마구 안달복달하고 있는 소심자가 한 명.
  “이런 때, 「성격이니까」라고 한 마디로 자르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유미는 곰곰히 생각했다.
「모두 먹어 버렸다고 얘기하면 혼낼 수 없지.」
「『모두』!?」
  요시노씨는 아까 전부터 메아리로 대답하는 유미를 냉랭히 쳐다봤다.
「괜찮아, 무리해서 한 패가 되지 않아도. 유미씨는 반드시 언니가 무서울 테니까.」
「그런 문제가――」
  항의할 차에, 비스킷 문이 열리며 소녀 셋이 방 안에 뛰어 들어 왔다.
「평안하세요, 요시노님. 평안하세요, 유미님.」
  선두는 눈이 초롱초롱한, 잘 알고 있는 마츠다이라 토오코《松平 瞳子》쨩.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어서,  큰 키와 길다란 머리카락에 유미를 뒤쫓아 다니던 전력이 있는 남자기피증의 호소카와 카나코《細川可 南子》쨩.
「종례가 오래 끄는 바람에 청소도 늦어졌거든요……아, 지금 차를 가져 올게요.」
   맨 마지막은, 단발머리가 이치마츠 인형(역주: 일본 전통 인형)을 연상케 하는 불상 감상의 취미를 지닌 니죠 노리코《二? 乃梨子》쨩.
   이상, 1학년 동백 반의 세 아가씨.
   노리코쨩은 백장미의 꽃봉오리 《로사 기간티아 앙 부통》이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학원제 때까지 기간이 한정된 도우미다.
「앗, 쿠키. 초콜릿도 있네요.」
   제일 먼저 그 것을 찾아낸 사람은 토오코쨩이었다. 양쪽 귀에 달린 용수철 같은 드릴(원문: ?ロ?ル)을 튕기듯이 다가왔다.
「졸업한 선배한테서 온 선물이야.」
「잠깐, 요시노ㅆ――」
「괜찮으니까  먹어도 돼.」
  유미가 한 마디하려는 걸 제지하며, 세 사람 앞에「어서 어서」라고 내미는 요미노씨.
  (아앗!)
  사정을 모르는 후배를 길동무로 할 작정이야. 방금 전에 「괜찮아, 무리해서 한 패가 되지 않아도.」라고 한 건 이런 전개를 예측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과자를 싫어하는 소녀가 없진 않겠지만 꽤 소수파이기 때문에, 다분히 그 쪽에 속하지 않는 세 아가씨도 기뻐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모두 눈을 빛내며 종합 선물 양철통에 달려 들었던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네, 드세요.」
  “드세요.”라니. 요미노씨는 마치 자신이 가져온 것처럼 굴고 있어.
「그러고 보니, 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초콜릿을 보고 떠올렸는지, 카나코쨩이 중얼거렸다. 노리코쨩이 그 걸 받아치며 말했다.
「우리는 고등부 때부터 리리안에 다녔으니까 소문 밖에 모르지만, 동급생 가운데 작년 고등부의 학생 사이에 잠입해 몰래 참가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우리 라는 건 이 경우, 노리코쨩과 카나코쨩 얘기겠지. 그러면, 나머지 한 명이란 건.
「토오코쨩은 어때? 리리안의 중등부에 있었지?」
  요시노씨의 질문에 토오코쨩은 「에에, 뭐 그래요」라며 풀죽은 대답을 했다.
「중등부에 있었지만, 고등부에 끼어 참가하진 않았어요. 제가 잠입했다면, 그 때 꽃봉오리이셨던 홍장미님한테 발각되었을 테니까요. 보세요, 저희는 친척이라 어릴 때부터 귀여움 받고 있었거든요.」
「혈연은 아니지만.」
  요시노씨의 돌연한 딴죽에 토오코쨩은 갑자기 고양이처럼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친척이란 건 틀림없습니다.」
「미안해. 그랬지, 머나먼 친척이었지, 참.」
  (아아, 또 시작이다……)
  후배한테 반박당하고서 가만히 있을 요시노씨가 아니지.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이 빠직빠직 불꽃을 튀기는 걸 세 사람이 끼어 들어 「자, 자」하고 달랬다. 똑같이 「개성이 강」하지만, 예를 들어 시마코《藤堂 志摩子》씨가 두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식으로 되진 않았겠지만.
   「제의를 받았습니다만, 거절했습니다.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달리는 건 제 품격에 어울리지 않거든요.」
　초콜릿의 은박지를 정리하면서 새침한 표정을 짓는 토오코쨩에게, 그 자리의 네 사람은 동시에 태클을 걸었다.
「똑똑히 봤잖아!」
   ――라고.

 

 

쵸콜렛과 초상화

 

「사진, 싫어해요?」
  그 사람은 준비 자세를 취했던 카메라를 아래에 내리고 나서 말했다.
「저도 그래요.」
「에, 그러나, 하지만.」
  내 의문에 그녀는 「아, 이 거?」라고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가볍게 올렸다. 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단순한 모순은 이어진 한 마디에 간단히 풀렸다.
「싫어하는 건, 찍히는 쪽이에요.」
「아……역시.」
  나도 찍히는 쪽이 싫었고, 그래서 뭔가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뻤다.
  찍는 쪽에서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사진에 찍히길 원치 않는 사람의 기분을 살핀 다음, 셔터를 누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도 무리하게 강권하지 않아. 한 번 든 카메라를 내가 피하자마자 거둬 주었다.
  그 때 난 어째선지 이 사람한테라면 찍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응, 그렇지 않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좀 더 적극적인 기분이었다.
  찍혀져도 좋아.
  그런 기분이 드는 사진사를 만난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１

 

「저기, 쇼오코《笙子》씨. 알고 있어? 」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남아 영어 단어를 찾고 있을 때, 동급생인 아츠코《敦子》씨와 미유키《美幸》씨, 둘이서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뭘?」
  어머, 당연히 그렇게 묻지. 왜냐하면, 갑자기 「알고 있어?」라고 들어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는 거지. 예를 들어, 수업 중 꾸벅꾸벅할 때, 선생님이 「듣고 있었니?」라고 물으시면, 아마 망설이지 않고「네」라고 대답해 두겠지만.
「이 거야.」
  아츠코씨가 내민 건 「리리안 백서」란 머릿말이 달린 종이였다. 정확히 영일사전 위에 덮어 졌기 때문에, 그 예습서는 황급히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어째선지 나는 예습이나 복습을 성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그 건 가족한테도 다를 바 없어서, 집에 돌아 오면 책상에 그다지 붙어 있지 않았다. 변명처럼 「아―아, 숙제 하지 않으면 안 돼.」나 「시험 공부하고 싶지 않아.」라고 중얼거리지 않으면, 마음 편히 교과서도 열지 않는 식이었다.
  그렇긴 한데.
  아츠코씨가 보여준 「리리안 백서」는 우리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의 신문부가 발행하고 있는 학교 신문이지만, 우리 중등부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몰래 애독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꽤 유명한 신문이었다.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싶은 나이인 우리한테 그 것은 고등부의 언니들의 사정을 알기 위한 귀중한 정보원이었다.
「발렌타인 데이날, 산백합회에서 보물 찾기의 이벤트를 개최한대. 재밌는 기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보물 찾기――」
「어머, 모르고 있었어?」
「아니, 어렴풋이.」
  나는 「리리안 백서」아래서 살며시 영일사전과 단어장과 리더의 교과서를 빼내 책상 아래의 선반에 넣었다.
「확실히, 꽃봉오리들이 교내 어딘가에 숨긴 보물을 찾는다고――」
「아, 쇼오코씨의 친언니는 고등부에 다니고 있었지. 언니한테서 이것저것 들었나 보네.」
「으응……뭐 그래.」
  나는 애매하게 목소리를 흐렸다.
  내가 언니에게서 그런 걸 듣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물론,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집에사는 언니의 존재 덕분이지만, 눈 앞의 두 사람이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자매의 즐거운 대화 따위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언니는 공부벌레로 그러한 이야기에는 도통 까막눈이었다. 아니,  까막눈이라기 보다 일부러 의식해 피하고 있는게 아닐까. 대놓고 싫어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증거로 나는 매 번  언니 쓰레기통에서 꾸깃꾸깃 구겨져 있는「리리안 백서」를 몰래 주워서 읽고 있거든.
  그러나  나는 “「친언니」라니”라고 생각했다. 외부인이 들으면, 복잡한 가정 사정을 연상하는 게 아닐지. 여기에 있는 일행은 머릿속이 고등부의 자매《스루》제도에 전염되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고등부에는 학생이 일대일로 지도하거나 지도받는 관계를 맺는다고 하는 전통이 있다. 이른 바, 자매 제도다.
  자매가 되면 후배는 선배를 「언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언니」라고 부르는, 한 부모한테서 태어난 언니 동생 쪽을 이야기할 때도,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친 」같은 걸 붙여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략 어깨까지 오는 천연 곱슬머리를 검지로 빙글빙글 휘감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하곤 그 이벤트, 직접 상관은 없지.」
  떠들어 봐야, 우리는 결국 중학생. 얄짜없는 불청객이다.
     내 조그만 의문에, 미유키씨와 아츠코씨는 얼굴을 마주 보며 살짝 웃었다.
  조금 악동틱한데다가 눈깔사탕 하나 크기만한 기쁨이 더해진 느낌으로.
「저기요, 실은 우리 그 날 몰래 보러 가자고 의논하고 있었어. 그래서 쇼오코씨도 함께 가자.」
「나도?」
  진부한 동작이지만, 나는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던 집게 손가락으로 내 코를 가리키며 확인했다.
「응. 쇼오코씨라면 말이지.」
「어머, 그 건, 그 건……」
  다들 「리리안 백서」의 애독자니까 당연히 지금까지 여러 번 그 쪽의 화제로 어울렸다. 그러나, 과거에 얼마나 얘네들과 짝을 이뤄 움직였는지 세 보면, 단 한 번도 없었다.
「토오코씨한테도 제의해 봤는데 거절당해 버렸어.」
  미유키씨가 말했다.
  맞다, 맞아. 얘네들 옆에 있기에 적당한 사람은 마츠다이라 토오코란 이름의 꽈배기를 양 쪽 귓 옆에 매단 소녀였다.
「아무래도, 홍장미의 꽃봉오리와 친척이라서. 자기가 가면 눈에 띄기 때문에 걱정이 된대.」
  아츠코씨가 보충했다.
「어머. 토오코씨는 꽃봉오리와 친척인 거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소 과장된 투로 감탄했다. 참고로, 꽃봉오리《부통》이란 것은, 장미님이라 불리는 고등부 학생회장의 여동생이다.
「에에, 조금, 우쭐대는 것 같아.」
  미유키씨가 교실 문 너머 복도도 넘어 가는 데 시선을 던지며 쓴웃음 지었다. 아마 정원 근처에서 토오코씨가 소속된 연극부가 부활동을 하고 있겠지. 희미하지만, 발성 연습하는 게 여기까지 들렸다.
「어떡할래?」
  두 사람으론 안심이 안 된다. 다섯 명은 눈에 띈다. 이럴 때는 세 사람이나 네 사람 쯤이 적당한 숫자겠지.
  숫자를 맞추려고 권유하는 것이었지만, 기분 상하지 않았다. 나한테 있어서 이 건 오히려 운좋은 제의라고 봤다.
    왜냐하면, 무엇을 숨기랴, 난 며칠 전부터 고등부의 학생회가 주최한다고 하는 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기분을 띄어 준 셈이다.
「그래. 그 거 굉장히 즐거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결정」
  아츠코씨와 미유키씨는 손을 마주치며, 다음 날의 계획을 내게 얘기했다.  나는 아마 거기에 뭔가 있을 거라고 보고 있었다. 날 사로잡아 가슴을 뛰게 만들 것 같은 뭔가가. 고등부는 그런 걸로 가득 넘치는 장소일 거야.

 

 

　　　　　２

 

「저기, 언니~」
  그 날 밤, 난 카츠미《克美》 언니의 등에다 말을 걸었다.
「내일이 수험일이라고 했지?」
「응. 그게 어째서?」
  참고서에 집중해서 얼굴도 올리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언니의 「공부하고 있습니다」란 분위기에 약해서 타인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게 된 게 아닐까?
「저기,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지? 고등부에서 뭔가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입시 끝나고 가나 싶어서.」
「간다니, 말도 안 돼. 내일 모레도 시험이 있어. 그럴 틈이 있으면 영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는 쪽이 이득이야.」
「……알았어.」
  나는 언니의 옷장에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되돌아 올 대답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일단 물어 봤을 뿐이다.
「저기, 뭔데.」
  불쾌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샤프를 놓으며, 언니는 의자를 돌려 뒤돌아 보았다.
「으응. 이벤트에 참가하면 뭘 하는지 알고 싶다고 같은 반 친구가 물어 봤거든……그래서.」
「줏대 없긴. (원문: ミ?ハ).」
「……」
  이런 언니다. 진심을 털어 놓기도 버겁다.
「그런 친구와 사귀고 있으면 너도 바보가 되는 거야.」
  언니는 다른 사람을 비판 할 때 봐주지 않는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그런 때는 약속한 듯이, 목소리의 어조가 조금 강하게 되었다.
「네가 시시한 일에 들떠 있는 동안, 라이벌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어. 고등학교 3년은 순식간이니까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회사 들어가고 싶으면 공부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렴.」
「대학은 리리안 쪽에 가니까 괜찮은 걸.」
「순진하구나.」
  언니는 입술의 한 쪽 구석만 올리며 싸늘하게 웃은 다음, 내 생각을 부정했다.
「우선 말이지, 학부는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선택할 수 있어. 그 전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대학의 커트라인에도 떨어지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는 건 중등부에서 고등부로 올라 가는 것하곤 전혀 다르다는 걸 기억해 둬.」
「……흐음.」
「지금 공부해 두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해.」
  아니, 공부만 하다가 후회할 거라고 나는 생각해. 만일,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 거기서 겨우 「뭔가 해 보자.」라고 생각할지언정, 고교 시절에 하지 못 한 걸 만회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난 해 볼 수 있는 건 지금 즐길 거라고 다짐했다. 언니와 정반대인 라이프 스타일로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붕 떠 있는 사람들을 되돌아 봐야 소용 없어.」
  언니는 다시 책상으로 향하며 공부에 빠져 들었다.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수업 끝나고 남겨 둔 영어 낱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벌써 주무시고 계셨다. 이 상황에선, 언니는 또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겠지.
  Treasure――보물.
  사전을 찾아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붕 떠 있는 사람들, 이란 건 대관절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 거지.  그 사람들은 언니에게, 도대체 뭘 잘 못한 거지.

 

 

　　　　　３

 

「……기합이 들어가 있어. 쇼오코씨.」
  방과후.
  각자 담당하고 있는 구역의 청소를 마치고, 전부터 약속해 둔 집합 장소에 나타난 아츠코씨와 미유키씨는 내 모습을 보고 확실히 기가 질린 듯 했다.
「어머나, 그렇지만. 중학생으로 보여지지 않게 공들여 변장한 건데.」
「으응. 하지만. 거기까지――」
  완벽한 변장이라고 득의만만해 하며, 여기 고등부와 중등부 건물의 경계까지 왔는데 두 사람 얘기를 들어 보니 다소 오버였나 보다.
「머플러나 학교 코트를 입거나 머리 모양을 조금 바꾸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저기……」
  아츠키씨와 미유키씨는 얼굴을 마주 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언니 방에서 여벌의 교복을 꺼내 와서,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갈아 입고 왔던 것이다.
  중등부의 교복과 고등부의 교복이란 것은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가슴 언저리가 다소 차이가 있다. 옷깃이 그대로 넥타이가 되는 고등부의 교복과 비교해, 중등부는 넥타이 라인과 똑같은 까만 색의 리본을 묶는 식인 것이다.
  동급생 두 명의 평가에 따르면, 어쨌든 내 변장 모습은 완벽했다. 이 것이라면,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비집고 들어가도 괜찮겠지. 고등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내 얼굴을 알고 있다고 해도 좋은 언니는 오늘 학교에 없으니, 이미 이겼다고 봐도 좋다.
  이겼다고 봐도 좋다.
  마음 속에서 다시 한번 되뇌어 봤지만, 자기 자신도 의미를 몰랐다.

  3시 40분.
  고등부 건물 사이의 중앙정원은 이벤트의 참가자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겁먹은 아츠코씨와 미유키씨를 건물에 남겨 두고 참가자 사이에 슬며시 끼어 들었다. 학급 별로 줄 서는 게 아니라서 중학생이 하나 섞였다 하더라도 교복이 같으면 아무도 눈치 챌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참가자 흉내를 내며 내주는 프린트를 당당히 받았다.
  그 건 신청 용지이고 참가자한테 주어지는 규칙 설명서이자 보물 찾기의 지도이기도 했다.
  나는 신청자 란에 언니의 이름과 반을 적었다. 약간 짖궃은 장난이었다.「그 괴팍한 녀석이 참가했다니.」라고, 이 걸 본 누군가가 놀라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신가하게도 동경하던 꽃봉오리 《부통》의 실제 모습을 봐도 그다지 두근거리지 않았다. 미인이라곤 생각했지만, 뭐랄까, 「리리안 백서」의 기사를 읽었을 때 가슴 설레던 느낌 같은 게 예상에 어긋나게도 펑펑 솟아 오르진 않았던 이다.
  주최자의 한 사람이라고 하는 신문부 부장의 설명에 주위의 열기가 서서히 올라갔다. 거기에 반해, 내 기분은 식어가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는 보물 찾기의 이벤트는 3명의 꽃봉오리들이 교내에 숨긴 빨간 색, 하얀 색, 노란 색의 카드를 찾아내는 단순한 게임으로, 우승자에게는 상품으로 꽃봉오리와의 반나절 데이트권이 주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앞에 나란히 서 있는 꽃봉오리이란 사람과 어울린다 해도, 함께 외출해서 뭘 하면 좋을지 상상하며 들떠오를 리가 없었다. 저 분들은 언니와 같은 고등부의 학생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TV에 나오는 여배우와 다르지 않은, 낯선 타인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 고등부의 학생이 아닌 나한테 그런 권리는 없겠지만.  꽃봉오리의 자매들이 핸디캡을 덧붙이기 위해서 호출됐다. 참가자는 여동생인 1학년생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3학년 두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백장미님《로사 기간티아》와 황장미님《로사 페티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홍장미님《로사 키넨시스》를 더해, 세 분이서 금년도의 학생회를 이끌고 계셨다. 성적에서는 학년 톱을 다투는 사람들이라고 소문을 들었으니까, 아마도 이 분들이 언니의 라이벌이겠지. 그러고 보니, 이런 놀이에 참가하고 있을 틈은 있는 걸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여유롭고, 왠지 아주 즐거워 보였다.
「홍장미님은?」
  바로 옆에 있는 참가자 그룹의 한 사람이 동료에게 물었다. 그 건 나 역시 알고 싶은 정보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수험일이래. 안 되셨어.」
「홍장미님이라면 사치코님의 카드를 곧바로 찾아내셨을 텐데.」
  사치코님이란 홍장미의 꽃봉오리《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이었다.
「여동생인 유미씨는요?」
「어떡하지. 쫓아가 볼까?」
  그러면 보물 찾기가 아니라 미행이지. 게임 참가자로선 너무 재미없을 걸.
  눈여겨 보니 앞에 끌려나온 유미란 1학년생, 어쩐지 눈에 힘이 없어서 갑자기 울어버릴 것 같이 허약해 보였다.
  나는 ‘뭐, 이런 아이를 선택하다니.’ 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동정했다. 연상한테 상당히 무례한 감정인지 모르지만. 
   「시작하겠습니다.」
  삑, 이란 피리 신호에 보물 찾기가 시작됐다. 꽃봉오리의 자매를 남겨둔 채, 다들 사방팔방 흩어져 갔다. 나는 어느 쪽이 좋을지 몰라서 당분간 숨쉬기가 편해진 중앙정원의 잔디 위에 잠시 멈춰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 행동은 확실히 대담했지만, 내용은 물컹물컹한 스펀지와 다름 없었다. 즉, 구체적으로 누구의 카드를 노린다는 것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함께 온 두 사람은 달랐다. 미유키씨는 오가사와라 사치코님, 아츠코씨는 하세쿠라 레이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각자 빨간색 카드나 노란색 카드의 행방에 신경을 쏟으며 불타 오르고 있었다. 두 명은 미리 가위바위보를 해 어느 쪽의 카드를 먼저 찾을지 정해두고 있었다.  방금 전의 그룹 가운데 한 사람이 내 쪽을 눈여겨 보며 동료에게 귀엣말을 했다.
  나는 중학생인 게 벌써 들켰나 싶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특별히 소란을 피우지 않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며 내 옆에서 벗어났다. 유미님이 장미의 저택에서 나왔기 때문에 예정대로 그 뒤를 따라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불안해져서 새삼스레 미유키씨와 아츠키씨한테 합류하려고 했지만, 그녀들이 아까 전까지 있던 곳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불평할 셈은 아니었다. 고등부의 교복을 입고 중앙정원에서 신청해서 책자를 받은 순간, 나는 더 이상 동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봐, 괜찮다면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않을래? 꽃봉오리들이 있어.」
  그리스 조각상 같은 얼굴을 한 3학년, 백장미님이신 사토 세이《佐藤 聖》님께서 호객 행위를 하며 아직 중앙정원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장미의 저택으로 불러 들였다. 백장미님의 실제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지만, 인상은 언니한테테 들은 것이나「리리안 백서」에서 읽은 것하고 차이가 있었다.
  나는 좀 더 차갑고 경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타인을 바보 취급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 하지만 전혀 달랐다. 친절하고 어깨에 힘주지 않으며 재미있는 사람. 그런 느낌이었다.
유혹에 넘어가 함께 얘기를 나누어도  괜찮았겠지만, 나는 중등부의 학생인데다 일단 보물 찾기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당초의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홍장미의 꽃봉오리《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의 여동생을 쫓아가기로 작정한 무리의 흐름에 정처없이 붙어 있다가 도중에 헤어졌다.

 

 

　４

 

  카드가 숨겨진 장소를 찾으리란 기대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전에, 고등부의 학교 건물에 밝지 않고, 어딜 어떻게 찾아 봐야 좋을지 몰랐다. 그 건 지도를 읽어 봤자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해 봐야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학원제에 온 손님이 지도를 보면서 허둥지둥대는 것처럼 외부인한테는 미로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난 꽃봉오리들의 행동 패턴이나 취향은 전혀 모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어두웠다. 물론 , 『리리안 백서』를 읽고 주워들은 지식은 있지만, 백장미님 한 분만 봐도 상상과 현실의 차이는 상당히 있었고, 나 정도의 지식을 갖고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면 보물 찾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가위 바위 보 대회를 하는 게 낫겠지. 예를 들어, 검도부의 하세쿠라 레이님이 숨긴 노란색 카드가 체육관의 장판 아래서 나온다거나, 경건한 기독교 신자이신 토오도 시마코님의 흰색 카드가 도서관 열람실에 있는 성경책 책갈피에서 나온다거나,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의 붉은색 카드가――、……그 건 바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돌연히 머리를 땋은 소녀가 튀어나와 내 눈 앞을 달려갔다. 
  그 뒤를 고등부의 학생들이 우르르 뒤쫓아 가는 걸 확인했는데, 선두가 시마즈 요시노님이라 이해가 갔다. 후쿠자와 유미님과 똑같은 패턴으로, 짐덩어리를 단 채 보물찾기를 하고 있나 보다. 가엾게시리. 
「가엾게시리.」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왠지 마음 속에서 중얼거린 것하고 똑같은 말이 내 귀에 닿았다. 
「아, 놀래켰다면 미안해요.」 
  뒤돌아 보자, 거기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아니,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앞을 가리며 렌즈를 피했다. 
「사진, 싫어해요?」 
  그 사람은, 준비 자세를 취했던 카메라를 아래에 내리고 나서 말했다. 
「저도 그래요.」 
「에, 그러나, 하지만.」 
  내 의문에 그녀는 「아, 이 거?」라고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가볍게 들었다. 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단순한 모순은 이어진 한 마디에 간단히 풀렸다. 
「싫어하는 건, 찍히는 쪽이에요.」 
「아……역시.」 
  그러면 이해가 간다. 공교롭게도 내 쪽은 찍는 걸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실례했어요.」 
  그녀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와 다른 방향에 셔터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찰칵’ 이란 기분 좋은 소리를 난 입 다문 채 듣고 있었다. 
  같은 구도로 몇 차례 셔터를 누르다가, 한 번 일단락 되면 또 다른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리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쓸데 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달랐다. 그녀는 분명히 누군가를 뒤쫓고 있었다. 
「신문부에 계세요?」 
  나는 물었다. 보물찾기하는 모습을 찍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리리안 백서』에 쓸 사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으응, 사진부. 흐음, 그렇군요. 고등부에서 절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있었다니.」 
「아,  죄송해요.」 
  나는 뒷걸음질쳤다. 그녀가 그만큼까지 유명인이라고는 중등부의 학생으로선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 아니. 저는 사진부의 에이스――」 
「……1학년 복숭아반, 다케시마 츠타코《武嶋 ?子》다!」 
   나는 퀴즈의 정답을 알아 낸 듯한 기분에 얼떨결에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게다가 경칭마저 생략한 채.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감정이 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맞아요. 뭐어, 알고 있었네요.」 
「가끔 『리리안 백서』에 사진이 실려 있고, 학원제 때 홍장미의 꽃봉오리와 그 분 여동생의 대형 패널 사진도 봤고요. 죄송합니다. 당사자 얼굴을 모르고 있어서……아니, 기억하지 못 해서요. 」 
「그 건 어차피 제 쪽도 그 쪽 얼굴을 보고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무승부에요. 에, 그러니까.」 
「쇼오코입니다.」 
   늦었다, 카츠미 쪽이 좋았을텐데. 뭐어, 어느 쪽이든지 별다른 차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만나는 게 마지막일테니까. 
「그럼, 쇼오코씨.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도 보물 찾기의 참가자인가요?」 
  다케시마 츠타코님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보고 말했다. 
「네.」 
「참가자처럼 안 보이는데요?」 
「안 보인다니요?」 
  나는 되물었다. 
「즐거워 보이지 않아서요. 아, 미안해요. 쓸데없는 참견이었네요.」 
「아니에요.」 
  처럼 안 보인다. 그 건 자기 자신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였다. 하지만, 몇 마디 주고 받았을 뿐인데 알아 맞춰 버린 이 사람의 통찰력에 놀랐다.   눈 앞에서 후쿠자와 유미님이 달려 나갔다. 츠타코님은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셔터음을 울렸다. 뒤에서 쫓아 가는 학생들의 무리. 그 것도 빠뜨리지 않고 필름에 담았다. 
「저 건, 즐거워 보이죠?」 
「네」 
  저 것이라는 건, 어느 쪽을 가리키는 거지? 유미님 쪽일까, 아니면 그녀를 뒤쫓고 있는 무리쪽일까. 양 쪽 모두 함께 도매금으로 넘겼나. 그러나 그 허약하게 보이던, 홍장미 꽃봉오리의 여동생이 스카트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는 모습에 약간 감탄했다.
「저한테 찍히는 걸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거에요. 똑같은 수십 분 동안이라도, 대단히 알찬(원문: 濃縮)시간이지요.」
  그러자 난 츠타코님한테 눈치채인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난 즐거워 보이지 않었다. 어쩔 수 없는 걸. 왜냐하면 중등부의 부정 참가자인 걸.
「아, 늦었어요.」 
  손목시계를 보며, 츠타코님이 중얼거렸다. 
「성모 마리아상의 앞에 약속이 있거든요. ……함께 가 보시겠어요?」 
  츠타코님이니까 내가 겉도는 걸 금새 간파한 걸지도 몰랐다. 
「괜찮나요?」 
「물론이죠.」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니까,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주러 가는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달랐다. 그 모습을 찍어 달라고 의뢰 받았나 보다. 
「조금 전에 한 번 찍어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은 것 같아서 일단 보물 찾기 사진을 찍고 가는 거에요.」 
  걸으면서도 츠타코님은 셔터를 눌렀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학원 부지 내의 곳곳에 학생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 중딩(원문: 中坊)이 있어. 귀여워어~」 
  그 건, 아츠코씨와 미유키씨였다. 일단 변장하고 있지만, 곧바로 중등부의 학생이라고 간파당해 버린 것이다. 
「그렇구나. 지도도 없으니 범위 밖까지 찾으러 다니는 거네.」 
  츠타코님은 웃으면서, 그 쪽에 카메라를 향하며 셔터를 눌렀다. 
「쟤네들도 즐거워 보이나요?」 
「아아. 혹시 아까 전의 얘기 아직 신경쓰고 있어요?」 
「아니요……」
  즐거워 보이지 않아. 그런 말을 들은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쟤네들을 질투하는 듯한 이 감정. 이 건 도대체 뭘까. 
「즐겁다라지만. 하지만, 즐거워 보이지 않아도 찍어요. 울고 있는 사람이나, 화난 사람도요. 하지만, 그런 얼굴은 찍게 해 주지 않겠죠? 우연히 찍혔다고 해도, 그 걸 발표해 버리면 싫어할테니. ……난감하죠.」 
「그래서 즐거워 보이는 장면을 찍나요?」 
「글세요. 다만, 오늘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인 건 틀림없네요」
  은행나무 가로수의 갈림길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듣던 바대로 여긴 초콜릿을 주고 받는 명소였다. 
「다행이야. 늦지 않았어.」 
  츠타코님은 정연하게 두 줄로 선 행렬에 가까워지자, 선두에서 다섯 번째인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약속한 학생인가 보다. 
「5분이네요.」 
 줄에서 벗어나면서, 츠타코님은 말했다. 거리를 둔 다음,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촬영했다.

「카메라를 의식하며 포즈를 잡는 사람도, 찍어 주는 게 즐겁나요?」 
  내 질문에는 다소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나름대로 즐거워요.」 
  셔터 소리가 울렸다. 
「어째서요?」 
「진정성(원문: ドラマ)이 보여요.」 
「포즈를 잡고 있는데도요?」 
  나는 재차 물었다. 포즈라는 건,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연극이나 다름없어. 
「포즈를 잡고 있는 것 자체가 진심일 수도 있으니까요.」 
  츠타코님의 대답은 옳고 그름을 떠나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여 버리게 하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왠지 「사진 얘기라면 뭐든지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해 버린 건지도 몰랐다. 나는 생각에 앞서, 입을 열고 있었다. 
「저. 사진발이 안 좋아요.」 
  찰칵 소리와 츠타코님의 「어?」란 탄성이 동시에 들렸다. 나는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색한 거에요.」 
츠타코씨는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지만, 오른손 검지를 살며시 셔터에서 뗐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이야기해도 좋다고 마음대로 해석버린 다음, 모조리 털어 놓으려고 했다.
  「어렸을 때 어린이 모델을 했는데요. 자, 여길 보고 웃어, 라든지. 귀여워, 이 번엔 오른손 올리고 머리를 기울여, 라든지.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카메라를 향하면 자기 스스로 뭘 해야 될지 몰라요. 모델을 그만 두고 나서도 사진 찍는다고 하면, 팍 굳어서 직립 부동으로 딱딱한 얼굴 밖에 할 수 없거든요, 그러면 안 된다고 해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고. 뭘 하든지 뽀록이 나서, 망친 사진만 늘어났어요.」 
「체육 대회 사진은? 그 건 꽤 자연스럽게 비춰질텐데요?」 
  츠타코씨가 그렇게 조언했지만, 나는 목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카메라가 시야에 들어 오면, 경기하는 도중에도 의식해요, 단체 경기나 창작 댄스 같으면 카메라를 덜 의식하지만, 그런 건 사진을 멀리서 찍기 때문에, 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요.」 
  게다가, 제대로 된 클로즈업 사진이 찍혔다고 해도 괜찮은 게 체육대회 사진 뿐이라니. 그런 건 매우 한심하다. 
「이러다간 저, 결혼할 수 없어요. 맞선 사진을 찍지 못 하니까.」 
  나는 절반 쯤은 진심으로 얘기했는데, 츠타코님은 웃었다. 
「연애 결혼하면요?」 
「연애 결혼을 해도, 결혼 사진이 있잖아요.」 
「글세, 억지로 촬영 안 해도 괜찮거든요. 아, 미안해요, 시간이 되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남겨 두고 걸어갔다. 보아하니, 사진 촬영을 부탁한 사람이 성모 마리아상의 앞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커플 한 조에 1분 이내라고 하는 불문율이 있는 건지, 5분 기다리자 츠타코님의 친구 차례가 돌아 왔다. 
  츠타코님은 초콜릿을 주고 받는 두 명을 여기저기서 여러 포즈로 찍으며 딱 1분만에 촬영을 끝냈다. 
「하지만, 알았어요. 쇼오코씨의 문제는 찍히고는 싶은데 자신감 부족이군요」 
  돌아온 츠타코님은 여기를 떠나기 전의 화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서 1분 전에 하던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츠타코씨는요?」 
  나는 물었다. 찍히는 것에 익숙치 않은 츠타코님도 나하고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말이죠. 쇼오코씨와는 달리, 단순해요. 찍히는 쪽에 서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카메라한테서 도망치면 문제 해결이죠. 단체 사진은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만요.」 
「결석했다간 좀 더 크게 나와 버리니까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츠타코님은 나를 가리켰다. 
「그래요. 오른쪽 위 구석에. 그러고 보니 경험자죠?」 
「정답이에요. 사진 찍히기 싫어서 중등부 입학식을 땡땡이 쳤어요.」
  훗날, 중앙정원에서 찍힌 내 못생긴 사진은 동그랗게 처리되어, 동급생들이 나란히 선 줄 뒤에 심어진 벚나무의 활짝 핀 꽃 사이에 마치 풍선처럼 떠 있었던 것이다. 
「푸, 풍선? 하, 하하하하.」 
「하하하.」 
  츠타코님이 배를 감싸며 웃었기 때문에, 나도 끌려 웃었다. 그러자. 
「그 얼굴, 멋져요.」 
  다음 순간, 카메라의 렌즈가 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셔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역시 등을 돌렸다. 
「좋아, 좋아, 쇼오코쨩. 웃는 얼굴 보여 줘 봐.」 
  츠타코님은 연예인 사진집(원문: グラビア) 촬영을 하는 카메라맨을 흉내내며, 나한테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마법에도 걸리지 않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중증이네요.」 
  오히려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츠타코님이 카메라를 내게서 다른 데로 돌렸으므로, 나는 다시 츠타코님과 마주 보았다.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피하고 있었지만, 결코 츠타코님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우리 사이에 말은 없었다. 하지만, 테 없는 안경 안의 츠타코님의 눈동자를 바라 보고 있는 동안, 왠지 모르게 깨달았다. 
  아마, 문제는내 마음속에 있겠지. 
  자신이 어떤 식으로 비칠지 과잉 의식해서 포즈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츠타코씨, 저희도 찍어 주실래요?」 
  나중에 온 학생 한 명이 우리 사이의 침묵을 깨뜨렸다. 
「아,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요.」 
  나는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츠타코님은 이제 곧 보물 찾기가 끝나기 때문에, 한 조 찍고 나서 학교 건물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지만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이 때 마음 속에서 솟구친 기분이 뭔지 홀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돌아 가기 시작한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라 도중에 뒤돌아 보았다. 
「저기. 츠타코씨. 언젠가, 절 본다면. 그런데, 그 게 무의식 중에 셔터를 누르고 싶은 모습이라면 단호히 찍어 주시겠어요?」 
「……괜찮지만 왜요?」 
  츠타코님은 약간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지었다. 
「저, 그 걸 받아 보물로 삼을게요. 학창 시절의 유일한 초상화로서 장식해 두는 거에요.」 
  나는 등을 돌린 채 걸으면서 외쳤다. 츠타코님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웃고 있었다.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원문: 大げさな).」 
「아니. 진심이에요.」 
「알았어요. 전 수업 때 빼고는 대개 카메라를 들고 있거든요. 하지만  제대로 나올 거라고는 보장 못 해요.」 
「츠타코씨의 사진이라면 괜찮을 거에요.」 
  단연코 좋을 거라고. 그야말로 아무 증거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안심한 채 교사로 향했다.

 

 

　　５

 

  학교 건물 안에서 시계를 보자, 벌써 4시 반으로 게임이 끝날 시간까지 10분 남아 있었다. 결국 나는 그토록 기대하고 있던 보물 찾기에 거의 참여하지 못 한 셈이었다.  최소한 결과라도 들어 보려고 출발 지점의 중앙정원을 향해 복도를 걷고 있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기다려 주세요.」
   어깨를 살짝 덮는, 살랑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헤어 밴드로 다듬은 그 사람은 바로 황장미님이신 토리이 에리코님이셨다.
「저기.」
  나는 엉겁결에 멈칫했다.  왜냐하면 소문에 민감한 내가 에리코님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 쪽이 날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불러 세운 이유가 뭔지 전혀 몰랐다.  성장기 때의 세 살 차이는 크다. 나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 박력에 눌려 몸이 굳어 버렸다. 실제 모습으로 본 토리이 에리코님은, 『리리안 백서』나 언니 앨범으로 본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소녀였다.
「그, 교복말인데요.」
  그 말에, 일순간 나를 사로 잡고 있던 마법(원문: 呪縛)을 풀었다.
  들켰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교복을 바꿔 입어도 눈이 좋은 사람이 보면 알아채나 보다. 그보다, 과연 황장미님다우셔. 뒷모습만 보고도 중등부의 학생임을 간파할 수 있는 눈썰미를 갖고 계신 거니까.
「기다려 주세요, 여보세요.」
  황장미님은 뒤쫓아 오셨다. 그래서 나도 도망쳤다.
「어째서, 도망치는 거죠?」
  황장미님이 뒤에서 외치고 있었다.
  ‘어째서긴요, 황장미님께서 쫓아 오기 때문이에요.’라고 나는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어째서 내가 추격을 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지만, 실제로 복도를 달리고 있는 나한테 명확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건가.  하지만 잡혀 봤자, 내가 한 짓은 보나마나 교무실에 불려서 꾸중듣는 정도의 일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거지.
   아, 그래.
  잡혀 버리면, 언니한테도 폐를 끼치게 된다. 장난치려고 한 건데. 이런 일로, 언니의 수험에 방해가 되면 어떡한담.
  나는 유미님이나 요시노님, 그 분들을 뒤쫓고 있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분명히 그들처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어. 만약 츠타코씨가 우연히 여기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인파를 밀어 헤치며 도망쳤다.
  그러나 나는 학교 건물 사이를 이은 곳에 있는, 아주 조그만 계단턱 같은 것에 발이 걸려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이제 끝났어. 보기 흉하게 넘어질 바에, 황장미님께 체포당하는 쪽이 아프지 않았을텐데. 어차피 넘어지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고.
  짧디짧은 순간에, 사람은 오만가지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몹시 차분하게, 손을 대지 않으면 얼굴이 부딪힐 거라고 생각하며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곳에,
「위험하잖니, 쇼오코.」
  어찌 된 일인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들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로막은 그 사람의 가슴에 힘껏 얼굴을 부딪히는 바람에 그대로 온 몸의 체중을 맡겨 버렸던 것이다. 
  그 사람은, 어째선지 언니인 카츠미였다.
「뭘 하고 계시는 거죠, 에리코씨?」
  언니는 날 안은 채, 따라 잡은 황장미님에게 물었다. 조금 엄한 말투로.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요.」
「다만, 교복에 관해 주의를 주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카츠미씨와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라면 카츠미씨에게 맡길게요.」
  황장미님은 고개를 돌린 채 굳어있는 내 교복의 옷깃을 살며시 어루만진 다음, 떠났다.
  뒤돌아 봤을 때, 황장미님은 이미 우리 쪽에서 눈을 떼고 둘러싼 학생들한테 뭔가 귓속말을 들으며 눈썹을 살짝 찌푸리셨다. 노란 카드라고 들린 것 같았지만 잘 못 들었는 건지도 모른다.  황장미님은 떠나면서, 우리 쪽에 한 번 시선을 던졌다.
「카츠미씨. 저, 안심했어요. 당신도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네요.」
「미안하군요.」
  언니는 예상대로 쌀쌀맞은 독설로 돌려주었던 것이었다.

 

 

　　　　　６

 

  게임 종료의 방송을 들은 건 학교 건물의 비상구로 나왔을 때였다.
  다행히, 방금 전까지 학교 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은 모두 중앙정원에 모였는지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람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뭐하고 있었니?」
  여기까지 말없이 손 잡고 끌고 온 언니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말이지. 내 교복을 입고선.」
  교복이라고 듣자 난 또다시 갑자기 겁이 나서 언니 팔에 매달렸다.
「어떻게 하지, 언니. 황장미님, 선생님께 얘기할까?」
「뭘?」
  언니는 웃으면서 내 목 뒤에 손을 뻗어 뭔가를 틱 뜯어냈다. 
「세탁표가 붙어 있는 걸 말이니?」
  언니 손가락 위에 놓인 건 꼬리표와 같은 종이 쪼가리였다. 거기에 적힌 ○○세탁소의 글자를 보고 난「앗」하며 소리를 질렀다.
  황장미님은 이 걸 얘기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보물 찾기가 시작된 직후, 날 보고 있던 학생도 보나마나 똑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덜렁이구나. 쇼오코는.」
「……으응.」
  마치 마법처럼 나타나서 날 구해 준 언니지만, 오늘 학교에 오지 않는 예정이 아니었어? 그렇게 물어 보니 언니는, 그 자리에서 기지개를 켰다.
「왠지, 기분 내보고 싶었어. 시험이 끝나서 집에 바로 가도 괜찮았는데, 어째선지 학교에 와버린 거야.」
「으응.」
「발렌타인 데이도 없이 3년이 끝난다고 생각해 보니, 조금 허전해서 그랬나 봐.」
「……」
「그런데, 오는 도중에서 초콜릿 사버렸어. 성실한 나한테는 대단한 모험이지.」
  언니는 주머니 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 내 눈 높이로 들었다.
「같이 먹자.」
  노란색 포장지 위에 달린 가느다란 녹색 리본을 풀었다.
「하지만,」
  “사실은 건네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위해서 산 거 아냐?”라고 말하려 했지만 관두었다. 그 건 자매 사이에도 함부로 손대면 안 될 영역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언니는 반드시 건네주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늘 그 사람을 만나면 꺼낼 수 있도록, 주머니에 숨길 수 있을만한 작은 꾸러미를 산 건지도 몰랐다. 혹시, 그 기회를 내가 깨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물어봐도 아니라고 할 게 뻔했다.
　상자의 내용물은 다섯 개의 아몬드 초콜릿이었다. 나는「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하나를 입으로 옮겼다. 언니는 조용히 그 걸 바라 보며 「맛있어?」라고 물었다.
「응, 맛있어.」
  조금 기분을 낸 언니는, 멍청한 짓을 저지른 날 아무 말 없이 용서해 주었다. [주2]
「……그래」
  언니는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눈으로 웃으며, 하늘을 바라 보았다.
「나 같은 거, 눈에 들어 오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중앙정원에서 보물 찾기 결과를 발표하면서 환성이 나왔다.
  하지만, 나에 있어선 언니와 단둘이서 몰래 초콜릿을 집는 쪽이 보다 어울리는 발렌타인 데이라고 생각했다.

 

 

　　　　　７

 

「후우」
  1학년 복숭아반 교실에서 다케시마 츠타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츠타코씨, 무슨 일이야?」
  그 한숨소리를 들은 동급생 유미씨가 기분 좋은 듯이 뛰어 왔다. 발렌타인 데이에서 며칠 지난 방과후였다.
「아, 발렌타인 데이 사진이니?」
「아, 응.」
  인화된 스냅 사진을 책상 위에 흩어 놓고, 분류하고 있는 중이었다.
「와앗. 나, 엉망이야.」
「어머, 귀여워. 사치코님과의 독사진. 타이틀은, 그래……『싸움 끝에 화해. 언니, 죄송해요.』」
「부탁하는데 이 건 신문부에 제출하지 말아 줘――」
  유미씨는 매달리는 눈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심술 부리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 ――하지만, 오늘은 용서해 주자. 왜냐하면,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 알아?」
  츠타코가 내민 사진을 유미씨는「몰라.」 한 마디로 잘라 버렸다.
「그렇지. 유미씨는 자기하고 별달리 관계없는 사람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지.」
  대뜸 잘랐다.
「아, 잠깐만 기다려 봐. 이쪽 사람은 본 기억이 나.」
  유미씨는 왼쪽 사람을 가리켰다. 츠타코는 쓴웃음 지었다.
「3학년 국화 반, 나이토 카츠미님. 황장미님의 동급생으로, 언제나 시험에서 학년 5등 안에 들어가 계신 분이야.」
「그렇구나. ……라는 건, 츠타코씨도 알고 있잖아.」
「그 거야, 유미씨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이니. 문제는, 이 쪽 사람이야」
  오른쪽 , 아직 약간 앳띤 모습의 옆 얼굴을 가리켰다.
「1학년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본 적이 없어. 선배란 얘기인데, 연상처럼 보이진 않고.」
「나이토 카츠미님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유미씨, 모르니? 그 나이토 카츠미님은 공부 빼고는 꽉 막힌 걸로 유명해. 그런 사람한테 학교 건물 뒤에서 초콜렛을 먹고 있는 사진을 보여 줄 거라고 생각해?」
「왠지 협박하는 것 같아.」
「그렇겠지? 아――곤란해, 곤란해.」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유미씨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왜? 평소 때처럼, 예의 바르게 폐기처분하면 되잖아?」
「그 게 말이지. 이 쪽한테서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 받았거든.」
  “어째서 반을 묻지 않은 거야?”하고 유미씨한테 듣지 않아도, 츠타코는 소홀했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실수였어. 쇼오코란 이름만 살펴 봐도, 수두룩……성을 들어 두었으면 학생 명부로 조사하기 쉬웠을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하지만, 리리안 여학원의 학생이라면 이름 쪽으로 통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쇼오코? 쇼오코씨 라고 해?」
「지금 보니, 쇼오코도 아닌 것 같아. 슈우코나 쵸오코라든지,」
「초콜렛이라든지.」
「남이 얘기하는데 훼방 놓는 거니?」
  츠타코가 앞머리를 휙 올리자, 유미씨는 펑펑 어깨를 두드리며 말참견했다.
「3학년이 아니면 3월에 졸업하지 않으니 서두를 필요 없잖아? 반드시 머지 않아 만날테니.」
  말뿐이었지만, 왜 그런지 몰라도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런가, ……그렇네.」
  쇼오코란 이름의 그 소녀는, 「언젠가」라고 말했다. 그 순간이 의외로 일찍 찾아 왔기 때문에 어서 사진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서두를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한테는 시간이 있으니까.
  만날 때 건네주면 돼요.
  그런 때가 오면, 아마 또다시 만날 수 있겠지.
  츠타코는, 「훗날」이라 적힌 흰 봉투에 약속한 사진을 넣으며 가방 안에 넣었다.
  두 명의 소녀가 초콜릿을 집는, 그 모습은 그림 엽서 같은 초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