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4권 산들바람 솔솔 -1- 처음 한 걸음

                              < 산들바람 산들산들 >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 소녀들의 인사소리가 맑은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뜰에 모인 소녀들이 오늘도 천사같은 미소를 띄고 높다란 문을 지나간다.
 청결한 몸과 마음을 감싸는 것은 짙은색의 교복.
 치맛자락의 주름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는 휘날리지 않도록 우아하게 걸어가는 것이 이곳에서의 몸가짐.
 당연한 말이지만 지각할 시간이 되어서야 뛰어다니는 품위없는 학생은 있을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메이지 34년에 창립된 이 학원은, 원래 옛 귀족 영애들을 위해 세워졌던 유서깊은 카톨릭 계열 학원이다.
 도쿄 내, 무사시노의 옛 모습을 간직해 녹림이 많이 남아있는 이 지역.
 신의 가호를 받으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연계된 교육을 받을수 있는 소녀들의 뜰락.

 시대는 변해 연호가 메이지로부터 3번이나 바뀌어 헤이세이가 된 오늘날에도, 18년간 다니면 우아한 숙녀들이 대량으로 배출된다는 시스템이 아직 남겨진 귀중한 곳이다.

 

 활기찬 여름을 보낸 탓인지 가을엔 대개 '외롭다'거나 '울적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
 앞으로 갖가지 이벤트들을 준비하고 있는 여고생들에겐 흘러가는 계절을 아쉬워하거나 낙엽과 더불어 감상에 젖거나 할 시간 따윈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덥거나 춥거나, 계절이나 날씨에 관계없이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그정도의 일인 거다.

 

 

 

                                - 처음 한걸음 -

 

 

                                       1

 

 하늘색 문을 열어보자, 그곳엔 여학교 안이라고는 생각할수 없는 광경이 펼쳐저 있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첫타자로 나선 레이님의 나긋한 목소리에,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출입문 쪽으로 모아진다.
 그리고 일제히 일어서며 '오오-'라거나 '우와-'같은 감탄사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아니.. 그건 억지로 문자로 적으려 했을때의 얘기고, 그 소리들을 정확히 표현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우와-'라니, 동물원 구경이라도 온거냐? 대체...

 아니.. 이곳은 틀림없는 리리안 여학원인 것이다.
 그저 여느때라면 거의.. 아니, 절대로 서식하고 있을 리가 없는 남자 교복을 입은 떼거지들이 섞여 들어와 있을 뿐인거다.

 좀전에 들렸던 야생동물이 우는 것만 같던 소리들도, 아마 그들만의 세계에선 별 이상할 것도 없는 언어인 게 아닐까?
 절대로 위협을 주려고 했던게 아닌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남자에 대한 면역이 극단적으로 약한 사람에게는, 그런 구별따윈 의미가 없는거다.
 "사치코님..."
 유미는 문 뒤에서 굳어가고 있는 사치코님의 손을 살포시 잡아쥔다.
 "괜찮아"
 사치코님은 유미의 손을 꼭 잡아주며 웃어 주신다.
 어떻게든 미소를 띄우려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어설퍼 보이는것 까지야 어쩔수 없겠지...그래도 이정도면 그럭저럭 버티실수 있을거야.
 학생회실 격인 장미의 저택만큼 친숙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여기도 리리안 여학원 안이다. 이쪽의 홈 그라운드임엔 틀림없는 거다.
 "첫타자 쪽이 더 긴장될 테니까.."
 사치코님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들려주며 이어서 방안으로 들어간다.
 "하나데라 고교 여러분, 잘 오셨어요"
 가슴을 펴고 언제나처럼 여왕님 같은 태도를 보인다.
 지는걸 싫어하는 공주님은, 요전번의 추태를 만회하려고 각오를 다지며 전장으로 한걸음 나아간다. (*주1)
 사치코님의 뒷차례를 시마코에게 양보한 유미는 요시노와 함께 들어갔다.
 시마코는 사치코님의 상태를 걱정하며 유미에게 먼저 들어가도록 신경을 써주었지만, 아무래도 장미님들을 먼저 들여보내는게 모양새가 좋잖아? 게다가 지금의 사치코님 이라면, 유미가 옆에 바짝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될만큼 약해진 상태도 아닌것 같고...
 실제로 사치코님의 경우, 너무 신경을 써주면 도리어 부작용만 커질 경우가 많아서 신경쓰는 정도를 잘 조절한다는게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그 부작용이란 건, 물론 '날 뭘로 보는거니?' 라며 화를 낸다는 뜻이다.

 실내에는 접이식 긴 테이블 4개가 '田'자 모양으로 놓여져 있어서, 하나데라와 리리안의 학생회 대표가 6명씩 마주보며 앉게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왠지 단체 미팅같아...
 그러고 보니 옛날에 봤던 TV프로에서 이거랑 비슷한 상황을 본적이 있었다. 아마 맨 끝자리에 앉은 사람이 폭탄 제거반이 되는 거였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나데라쪽 끝자리를 바라본다. 그런데..
 그자리에 앉아있는 건.. 놀랍게도 동생인 유우키잖아?!
 그 맞은편 자리는 아직 공석이었지만, 혼자뿐인 1학년 노리코가 앉을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유우키 vs 노리코라...
 어느쪽이 더 빨리 상대방 폭탄을 떨쳐낼 것인가?
 아.. 이게 아니지....
 아무튼.. 오늘은 하나데라와 리리안 학생회 임원들간의 상견례 자리다. 장소를 하나데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치코님을 고려해서 이쪽으로 오게끔 요청했던 거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장미의 저택으로 부를수도 없는 일이어서, 결국 도서관 2층에 있는 회의실을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은 것이다.
 노리코가 물통에 담아온 마실것을 종이컵에 따라주고 나면 자연스레 서로간의 자기소개 시간이 될 흐름이었는데, 사치코님이 일어서며 '그 전에..'라며 말을 꺼낸다.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란 느낌으로 남학생 일동이 일제히 머리를 숙인다.
 "자기소개를 하기전에 먼저 사과를 드릴려구요. 전에는 제 몸상태가 안좋았던 탓에 상견례 자리가 늦어지게 된점, 사과드려요.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말이죠"
 사실 사치코님은 하나데라 사람들의 개성 풍부한 용모와 의상에 충격을 받아 졸도한 거였지만, 절대로 그런 티를 내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라고 우긴다.
 "지금은 좀 어떠세요?"
 유우키의 친구인 고바야시란 애가 말을 건네온다.
 여름 방학때의 불량스런 이미지에서 범생이 우등생 타잎으로 변신한 그는, 상대가 누구든지 가볍게 말을 건넬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덕분에 문제없어요"
 사치코님이 가볍게 웃음을 띄운다.
 "더무 더워서 그런걸 꺼예요. 여름엔 좀..."
 오오- 노력하고 계시잖아.
 무리해서 '남자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란 상태를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시작이 반인거다. 이것도 의미있는 첫걸음이 되겠지.
 교복에 몸을 감싼 하나데라의 남학생들.
 쓸데없는 장식따윈 하나도 없어서, 사무적이고 깨끗해 보인다.
 다른학교에 방문한다는 걸 의식해서 였을까?
 건너편에 앉아있는 남학생들은 모두, 사복일때 보다는 훨씬 긴장한 얼굴들 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만났으면 사치코님도 조금은 충격을 덜 받았을지도 몰랐겠어. 그래도 여름방학 동안에 그런 강렬한 만남이 있었으니까 오늘이 있는건지도 모르지만...

 "그럼 저희쪽부터 자기소개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마침 나이 순서대로 앉아 있으니까 그렇게 하죠.... 괜찮지, 유우키?"
 고바야시는 일단 끝에있는 유우키의 의사를 물어본다. 그렇다는 건, 하나데라쪽 학생회엔 1학년은 없다는 얘기다.
 유우키는 4월 1일생이라 아슬아슬하게 2학년인 상태였다. (*주2)
 덕분에 누나인 유미와 거의 1년이나 차이나는 동생 유우키가 같은 학년이 되어 버린거다.
 조산으로 빨리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당연히 한학년 차이가 났을텐데.. 태어날때 부터 고생문이 훤했다니까.
 "그럼 닛코우(日光) 선배님부터"
 유우키가 맨 앞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건네자 그사람 뿐만이 아니라 옆자리에 있던 사람까지 함께 일어선다.
 "전 하나데라 고등학교 3학년, 야쿠시지 아키미츠"
 "마찬가지로 야쿠시지 토모미츠"
 '.......'
 산 백합회 멤버들이 전원 마른침을 삼킨다.
 동시에 일어선 그 둘은 마치 산처럼 거대한 몸집들이다. 아니.. 그 표현은 좀 과장됐다 쳐도 그에 필적할 만한 위압감이 있었다.
 한 2미터는 되는거 아냐?
 이정도로 큰 교복이면 역시 주문제작 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의문이 떠오를 만큼...
 "저.. 쌍둥이세요?'
 주춤거리며 요시노가 물어본다.
 "예"
 "예"
 스테레오 방송처럼, 서로다른 위치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겠네요"
 저만큼이나 쏙 빼닮은데다 크기까지.. 이래놓고 쌍둥이가 아니라면 그쪽이 더 놀랄 노자다.
 '닛코우'와 '각코우'
 유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 둘은 피서지에서 만났던것 같아.
 '쌍둥이도 아닌데 닮았네'
 분명 유미와 유우키를 비교해 보며 그런말을 했던것 같아. 그때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그건 아마도 자기들이 쌍둥이여서 물어봤던 걸테지. 유미가 한달쯤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자기소개는 이어지고 있었다.
 "2학년 다카다 마가네. 취미는 몸만들기"
 "모.. 몸만들기.....?!"
 리리안 안에선 아직 들어본적이 없는 단어여서 사치코님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체력쌓기가 아니라 몸만들기... 아주 비슷한 단어이긴 하지만 서로 풍겨오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 둘의 차이를 설명하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듣는쪽이 받게될 뉘앙스는 절대적으로 다른거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다카다는...
 "예, 좋아하는건 닭 가슴살이랑 프로틴 입니다"
 자기에게 흥미를 가졌다고 착각했는지, 들뜬 표정으로 가슴 근육을 움직여 보여준다. 그냥 앉아있기만 하는 거라면 조금 살찐 사람처럼도 보였지만, 알고보니 근육맨이었나 보다. 그러고보니 여름방학때, 반팔 소매에서 튀어나온 근육 덩어리를 본것도 같아. 아무튼 스마트한 교복은 체형을 커버해주는 기능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이런 남자애는 아마 사치코님 주변에선 찾아볼수 없을꺼라 생각해. 갑자기 저런 '강한 남자' 이미지를 어필해 버리면, 열심히 참고있는 사치코님이 폭발할런지도 몰라...
 "다음은 고바야시, 네차례야"
 미묘한 동요를 눈치챈건지, 유우키가 그 말을 꺼내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어.. 같은 2학년이고 고바야시 마사무네 입니다. 수학은 잘하지만 나머지는 젬병이예요"
 "후훗.."
 겨우 사치코님이 웃었다.
 다행이야.. 이대로 다음타자로 돌격-! 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차례는 묘하게 차분한 남자애였다.
 "전.. 아리스가와 라고 합니다. 2학년 이예요"
 선이 가늘고 눈동자가 반짝이는게, 인기 그룹가수들 가운데 한명인것만 같은 귀여운 느낌이다.
 사치코님이 기절하셨던 그날, 저런 애도 있었던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유미는 '맞아!'라며 그때를 떠올려 본다.
 그러고 보니...
 흰색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캐미솔에 빨간 바지를 입고 양산을 쓰고 온 여자애. 하나데라는 분명히 남학교니까, 응- 그렇다는 건.....
 '여장남자도 있어요'
 전에 들었던 고바야시의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역시 그런 얘기였나...?!

 사치코님은 그 사실을 모르는 건지.. 지금은 굳어있지도 않았고 표정도 언제나 대로다. 유우키들이 걱정했던것 같았지만, 적어도 아까의 다카다란 애보단 낳은것 같아. 역시 근육맨을 보는쪽에 더 인내심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사치코님이 편하게 대하는 유우키도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않는 타입이네..
 "마찬가지로 2학년인 후쿠자와 유우키 입니다. 제 누나가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방금했던 유우키로 하나데라쪽 자기소개는 끝이다.
 "역시 유미랑 닮았네..."
 요시노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
 "응..."
 그거야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어왔던 얘기니까... 누가봐도 똑같은 남매니까 그냥 끄떡여 줄수밖에 없는거다.
 그런것보다, 이제 곧 시작하려는 리리안쪽 자기소개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역시 처음은... 그래, 유미의 언니인 사치코님 일테니까.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3학년, 오가사와라 사치코예요. 산 백합회 안에선 '로사 키넨시스'라고 불려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기품 넘치는 자태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해본다.
 하지만... 세상엔 유미처럼 도취되어 바라보는 사람만 있는건 아닌 모양이다.
 "산 백합회란건.. 학생회를 말하는 거죠? 그리고 로사 어쩌구.. 라는건, 아무래도 외우기가 힘들것 같네요"
 수학을 빼면 전부 꽝이라던 고바야시. 미안하지만 그 호칭은 방정식으로 풀수 있는게 아니라 그냥 통채로 외울수 밖에 없는거다.
 "하나데라 여러분께선 억지로 그 호칭을 부르실 필요는 없어요. 성(姓)이든 이름이든 편하신 쪽으로 불러주세요" (*주3)
 "알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사치코님은 관대한 제안을 해 주셨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사치코-' 따위로 부르기만 해봐! 내가 용서하지 않을꺼야... 라는 눈빛을 고바야시랑 그 주변에 유미가 뿌려댈 동안, 사치코님 다음으로 레이님이 일어선다.
 "마찬가지로 '로사 페티다'로 불리는 하세쿠라 레이 입니다"
 "아! 소문은 종종 들었습니다"
 근육맨인 다카다가 말을 꺼낸다.
 "어떤 소문인데요?"
 "실력있는 여검사죠. 우리쪽 검도부 에서도 꼭 한번 하세쿠라씨랑 목도로 겨뤄보고 싶다는 애들이 꽤 되거든요. 똑바로 치고 들어오는 걸, 자기 몸으로 겪여보고 싶다던가..."
 "예에...."
 레이님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기침을 했고, 요시노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유미는.. 역시 레이님께 목도로 얻어맞고 싶어하는 남자애도 있었어, 라며 새삼스레 상상해 보곤 하는거다.

 "2학년, 토도우 시마코예요. '로사 기간티어'입니다"
 "아... 그 쇼구우사(寺)댁의..."
 고바야시가 중얼거린다.
 "예?"
 "예전에 주지스님께서 저희학교에 강연을 오신적이 있었거든요. 그땐 정말 재미있어서 강당이 폭소 때문에 무너질뻔 했다니까요. 그 따님이 리리안에 다닌다는 건 최근들어 알았지만... 그래서 꼭 한번 만나뵙게 되는걸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저희 아빠가 결례를 범했었나 보네요..."
 시마코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알수없는 대답을 했다.
 그나저나 딸한테 저런말을 듣는 아빠라니, 시마코네 아버님은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시마코가 도로 자리에 앉자 다음은 피해갈수 없는 유미 차례다.

 "2학년, 후쿠자와 유미예요"
 긴장.. 긴장...
 조금 목소리 톤이 올라가 버렸지만 괜찮을 꺼야.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을 맡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냥 끝내는건 좀 어색해서 아까 유우키가 했던것 처럼, 하나데라쪽 사람들에게 한마디 덧붙이기로 했다.
 "거기있는 후쿠자와 유우키의 누나예요..... 일단은..."
 "일단은.. 이라니? 그거 무슨 뜻이야?!"
 건너편 자리에서 유우키의 태클이 들어온다. 그러자 양쪽 모두에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안되-!
 이대로 가면 유미/유우키의 후쿠자와 남매 개그가 되버려..
 "끝-"
 고개숙여 인사하곤 얼른 자리에 앉았다.

 "2학년, 로사 페티다 앙 뷔통을 맡고있는 시마즈 요시노예요. 아까 소개했던 하세쿠라 레이의 사촌 동생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요시노는 유미쪽을 슬쩍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운다.
 "이쪽은 진짜예요" (*주4)
 히엑--!
 안그래도 적당히 분위기가 뜨고있는 상황이었는데, 요시노가 절묘한 타이밍에 터뜨려 버린탓에 폭소가 실내를 뒤흔든다.
 으그그...
 이래선 아까의 남매 개그는 그냥 분위기 띄우기 용이 되버린거나 마찬가지잖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긴다더니, 맛있는 부분만 가져가 버리다니... 그야 뭐.. 웃길려고 했던건 아니었지만 왠지 승부에 진것만 같아서 조금 분하다.

 "1학년, 니죠우 노리코예요. 취미는 불상 감상입니다"
 "불상? 그런 거라면 우리 학교에도 많은데.. 축제때 겸사겸사 놀러와요"
 아리스가와가 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그런거 있었냐?"
 고바야시가 멍청한 얼굴로 유우키에게 묻는다.
 "너도 본적은 있을꺼 아냐? 왜.. 부처님 오신날에 선보이는 녀석도 있고.."
 "아- 맞다 맞다"
 부처님 오신날 이란건 석가모니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로, 크리스트교 에서의 크리스마스나 마찬가지인것 같다. 그러고보니 하나데라는 불교계열 학교였지...
 "탄생불 말이로군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노리코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해본다.
 "매니아다!"
 다카다가 웃는다.
 "역시 불상에 향수를 뿌리시나요?"
 "우린 대신 감차를 뿌리거든요. 철썩 철썩- 하고..."
 석가님 조각상에 감차를 뿌리다니 대체 어떤 느낌일까? (*주5)
 배경 지식이 없는 유미는 평소에 안쓰던 머리를 열심히 굴린 결과, 양동이 릴레이 같은데서 연이어 갈색 액체 - 감차가 뭔지 모르는 탓에 설탕을 듬뿍 넣은 보리차를 상상하면서 - 를 뒤집어 쓰는 높이 160센티 정도의 불상을 떠올려 본다.
 실제론 십여센티 정도 길이의 국자처럼 생긴 녀석으로 떠서 뿌려준다는 걸 알게 된것은 귀가한 뒤 동생의 해설을 듣고나서 였다.
 하나데라에는 탄생불 이외에도 몇개인가 불상이 있는듯 하다. 보통땐 소장되어 있지만 행사 같은게 있으면 보여지는 모양이다. 절차만 밟으면 외부인 에게도 공개가 된다는 말에 노리코가 조금 흥분해 버렸다. 노리코, 정말 불상을 좋아하는 거구나...

 리리안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해온 탓일까?
 하나데라쪽 사람들의 물흐르듯 매끄러운 이야기와 밝은 성격들 덕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편안한 분위기가 흐른다.
 한때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다카다의 근육맨 어필도, 다행히 다른 사람들의 보조덕에 그다지 사치코님의 눈에 들지않은 채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고바야시가 이제는 마치 자기가 시회자인양 대화를 진행시킨다.
 "리리안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셔야 할 부분 말인데요.. 세분 장미님들께는 이벤트 심사위원 겸 상품수여를 부탁드리려 합니다"
 "심사위원 겸 상품수여 라면..."
 사치코님이 레이님 쪽을 쳐다본다.
 "작년하고 비슷하네"
 고바야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둘의 대화를 끊는다.
 "아니요, 올해는 작년의 '미스 하나데라 콘테스트'와는 다르거든요"
 미스 하나데라 콘테스트라니...? 작년엔 그런것도 했었단 말야? 예전 장미님들은 그 심사위원을 했었던 거구나...
 응...?!
 그러고보니 하나데라는 남학교잖아!
 '미스 하나데라'란 대체....
 유미는 리리안에도 '미스터'란 수식어가 붙은 인물이 있다는 걸 깜빡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떻게 다른거죠?"
 작년도 '미스터 리리안'의 영광에 빛나는 하세쿠라 레이님이 질문하자, 고바야시는 괜히 폼을 잡고는 소리높여 선언을 한다.
 "이름붙여 '하나데라 대난투'!"
 "하나데라 대난투-?!"
 산 백합회 임원들, 그러니까 방안에 있던 여자애 전원이 동시에 되묻는다.
 "대난투 라면... 편을 갈라서 무언가 하는건가요?"
 레이님이 대표로 그렇게 물었다.
 "맞아요. 체육계열 동아리랑 그외의 동아리들로 팀을 나눠서 체력과 재치로 승부를 겨누는 거죠. 쉽게 말해서 게임을 하는 겁니다. 매 게임마다 득점 포인트란게 있어서 마지막에 종합 득점이 많은쪽이 이기는 거죠" (*주6)
 한번 설명을 들은 걸로 유미 머리속에서 정리되는건 역시 무리였다. 하지만 옆을 슬쩍 쳐다보자 모두 알겠다는 표정을 띄우고 있다. 아무래도 나만 이해가 안가는 건가봐...
 "그래서? 심사위원이란 무얼 하면 되는거죠?"
 사치코님의 질문에 이번엔 유우키가 대답한다.
 "게임 중간 중간에 도전자에게 퀴즈를 냅니다. 그 정답 여부를 가려주시면 되요"
 "그럼 상품수여 쪽은?"
"활약이 있는 동아리나 개인에게 상품을 건네주시면 됩니다. 상품쪽은 아직 결정이 안됐지만, 뭐.. MVP상 이나 노력상 같은걸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그 상품 이란건...?"
 "다음달에 있을 리리안 여학원 학원제의 입장권"
 "엣-?!"
 동생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놀란 유미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바로 사치코님이 작은 소리로 일러주신다.
 "소리 지르면 어떻게 하니? 매년 해왔던 거야"
 "아... 그런 건가요?"
 리리안 여학원의 학원제에는,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올수가 없는거다. 재학생중에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있다면야 손쉽게 입장권을 손에 넣을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그 수량에는 제한이 있어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이웃 학교에 다닌다 해도 안에 들여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산 백합회에선 하나데라의 축제때마다 선물로 10장씩 가져다 준다는게 연례 행사처럼 굳어진 거다. 하나데라의 축제가 리리안보다 먼저 열리는 것에도 그런 이유가 포함된 것 같고...

 "이해가 되셨나요?"
 "대강의 내용은 알겠어요. 세부 사항은 앞으로 얘기를 맞춰가야 할테지만.."
 사치코님과 레이님, 그리고 시마코가 하나데라쪽 의견을 받아 들였다. 물론 세 장미님들이 승낙을 한 거니까 그 '뷔통'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는거지.
 "혹시 질문사항 있으신가요?"
 "예"
 노리코가 손을 든다.
 "축제에 관한게 아니라도 상관 없나요?"
 "그야 물론이죠"
 "그럼 묻겠는데요... 저기 아리스가와씨"
 "예? 옙!"
 지명당한 아리스가와의 작은 어깨가 떨리는게 보인다.
 "저... 성(姓) 말고 이름을 아직 못들은것 같은데요?"
 "예?"
 "그래서 건네주신 자료들을 좀 살펴 봤는데..."
 노리코는 사전에 넘겨받은 명단을 살펴보며 말을 잇는다.
 "여기에도 안적혀 있거든요. 나중에 연락드리거나 할때 필요할것 같아서 알아두는게 좋을꺼라 생각해요"
 유미도 덩달아 그 명단을 확인해 봤지만, 노리코 말대로 '아리스가와(有栖川)'라고만 적혀 있었다.
 '有'가 성(姓)이고 '栖川'가 이름인 것도 아닌것 같아. 왜냐하면 그 아래 적혀있는 유우키 같은 경우, 성(姓)하고 이름 사이에 한칸이 띄워져 있으니까.. 아니, 다른 사람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이름 말인가요..."
 유우키가 곤란한 듯한 표정을 하고선 천정을 바라본다. 다카다는 두꺼운 팔뚝으로 팔짱을 낀채 생각에 잠겨 버렸고, 고바야시는 안경을 벗어서 안경알을 닦는 시늉을 하고있다. 야쿠시지 형제 쪽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노리코...."
 하나데라 쪽의 알수없는 분위기에 문언가를 이해한 것인지, 시마코가 노리코를 불러 세운다.
 "죄송합니다. 물어봐선 안되는 거였군요"
 노리코가 그렇게 사과하자,
 "아니, 괜찮아요"
 계속 시선을 떨구고 있던 아리스가와가 무언가를 결심한듯 고개를 든다.
 "앨리스..."
 유우키가 멈추려고 말을 꺼낸다. 하지만 아리스가와는 상관않고 입을 열었다.
 "저.. 제 이름은 아리스가와 긴타로 라고 해요" (*주7)
 "........"
 유미는.. 아니, 산 백합회 임원들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앨리스'에다 '긴타로' 라니...
 풋.....
 "역시 이상하죠? 처음 만나서 자기소개를 할때마다 모두 웃어버려요. 그래서..."
 하지만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웃을수가 없었다.
 "그렇네"
 사치코님이 조용히 일어나 아리스가와 쪽으로 다가간다.
 "앨리스...?"
 "예?"
 "앨리스란 거 애칭이죠? 긴타로 라는 이름도 멋있지만 앨리스 쪽이 더 어울려"
 그러자 아리스가와는...
 "사치코님---"
 부럽게도 사치코님께 달려들어 안겨서는, 그대로 울어버렸다.
 "전.. 하느님이 실수로 남자 몸을 주신 거예요. 여자로 태어나서 리리안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사치코님의 쉬르가 되서, 그다음에..."
 "잠깐ㅡ!"
 보다못한 유미가 급히 나선다.
 "그것만큼은 안되, 안됫! 절대로 안되-! 사치코님의 쉬르는 나란 말이야!"
 몸과 마음이 따로노는 아리스가와는 정말 안됐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사치코님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준다니.. 어떤 조건을 달고 나와도 절대로 용납할수는 없는거다.
 "그렇게 됐거든... 미안해, 앨리스"
 사치코님은 조용히 아리스가와에게서 떨어진다.
 "아니예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아리스가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사치코님은 냉정하게도 뒤를 보인채 돌아보지 않는다.
 아니, 돌아보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는거다. 벌써 반쯤 굳어진 상태일 테니까.
 아리스가와를 동정해서 다가간것 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안겨오자 머리속에 스파크라도 튄게 아닐까...?
 그야 머리로는 아리스가와 내면의 여자다운 부분을 존중해 주려 하지만, 그 몸은 어찌할 수 없는 남자인 거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스스로 아리스가와에게서 떨어져 걸어오는 사치코님도 장족의 발전이셔.
 유미는 마치 버팀목처럼 사치코님의 팔을 붙잡고 자리로 되돌아 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언니를 뺏기지 않으려는 심술쟁이 쯤으로 보일테지만 상관없어. 사치코님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그리고 아리스가와를 위한 배려야말로 급한 거니까.

 "아까웠네 앨리스. 리리안에 다녔다면 '쉬르'까진 무리였어도 유미씨랑 친구가 될수는 있었을텐데 말야"
 고바야시가 아리스가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다. 사치코님을 일단 의자에 앉게하자 한숨돌린 유미가 그 말에 얼굴을 든다.
 "친구? 그런 거라면 이제부터 하면 되잖아"
 "....예?!"
 "물론, 사치코님은 넘겨줄수 없지만"
 웃으며 윙크를 보낸다.
 "나.. 기뻐"
 앨리스라 불리는 아리스가와는,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뛰어오른다. 저렇게 좋아하니까 뭐.. 괜찮은 거겠지. 성별은 남자 일지라도 안에 든 건 여자애니까.. 그냥 여자친구가 한 명 늘었다고 생각하면 되.
 "앨리스, 우리들도 친구로써라면 대 환영이야"
 레이님도 그렇게 제안해 주신다.
 그런데.. 사복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니,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우리 레이를 뺏어가면 안되, 앨리스"
 요시노가 일부러 노려보는 듯한 표정을 만들며 웃었다.
 "알겠어요"
 무서운 얼굴을 들이 밀었는데도, 그저 기쁜가보다.
 "잘 부탁해요, 앨리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노리코랑 시마코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고마워요 여러분..."
 산 백합회 전원에게 받아들여진 앨리스는 눌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무렵 쯤에는 반쯤 굳어있던 사치코님도 눈앞의 광경을 보며 웃을수 있을 정도로 부활해 계셨다. 작은 충격들이 연이어진 탓에, 조금씩 단련되고 있는걸까?

 "음.. 그럼 앨리스 문제는 이걸로 일단락 짓기로 하고"
 유우키가 왠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본다.
 그럴만도 하지. 처음엔 이름을 물어본것 뿐이었는데, 어느새 '우린 친구야' 까지 가버렸으니까..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왠지 저녀석 한테만 좋은 일 한 것 같지 않냐?"
 고바야시가 혼자서만 여자애들과 친해져버린 앨리스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그러자 옆에있던 유우키가 말을 꺼낸다.
 "다른땐 항상 손해보는 역할이니까 그냥 눈감아 줘"
 "하긴"
 "그래"
 다카다도 고개를 끄떡인다.
 여고생들 사이에 간단히 섞여 들어갈수 있는 앨리스라면, 남학교 안에선 여러가지로 고생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같은 고교 2학년 이라지만, 각자의 고민이란건 역시 사람마다 천차만별 인거다.

 "아무튼 사이가 좋다는건 다행인 거지. 그럼 이만 회의를 끝낼까요?"
 경과야 어찌됐건, 서로의 얼굴을 익혀둔다는 오늘의 목적은 충분히 이루어진것 같다.
 도서관 2층 회의실의 사용허가 시간도 슬슬 끝나가서, 각자 앞에 놓여진 음료수로 건배를 하고 일어나기로 했다.
 "건배-"
 어쨌거나 제1회, 하나데라-리리안 학생회 대표회의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막을 내리.....
 "저기.."
 종이컵을 미처 내려놓기도 전에, 갑자기 시마코가 입을 연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던 하나데라쪽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본다.
 "하나데라의 학생회장님은 결국 어느분이신 거죠?"
 "아!"
 그러고보니 들은적이 없어!
 분명 자기소개 때도 학년이나 이름은 들었지만, 학생회장이나 서기 같은 직함까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거 같아.
 맞아 맞아, 나이순 이라면서 차례대로 인사를 했을 뿐이었어. 건네받은 자료에도 그런건 전혀 적혀있지 않았고..
 그 지적사항을 들은 사치코님과 레이님은, 허둥지둥 넘겨받은 자료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자료의 발신자 칸에는 그저 '하나데라학원 학생회로부터'라고 적혀있을 뿐으로 학생회장의 이름 까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야쿠시지씨가 학생회장인건....?"
 사치코님이 물어본다.
 그야 3학년 인데다가 무게감도 있고... 그나저나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어느쪽인 걸까? 둘다 쏙 빼닮아서 구별이 안되.
 "난 제일 발언이 많았던 고바야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이님의 중얼거림.
 하긴.. 아까부터 사회자처럼 대화를 진행시켜 온건 그였으니까.
 "아.. 전 회계예요"
 수학만큼은 잘한다고 했었지? 그럼 적임자네..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닛코우/각코우.. 아니, 야쿠시지 선배님들은 작년도 학생회 임원으로 현재는 은퇴해서 후견인 격의 고문을 맡고 계시죠"
 그러고보니 저 두사람은 분명 무게감은 있었지만,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었네? 고문역할 이라면 그럴만도 하지.
 그렇다는 건, 남은건 세사람 뿐인데...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이란 말에 바로 떠오르는건, 역시 작년도 학생회장 이었던 카시와기씨. 하지만 남은 3명뿐 아니라 여기있는 6명 전원 가운데 카시와기씨 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퀴즈로 할까요? 아니면 아예 설문조사를 해볼까요? 누가 제일 학생회장 같아 보이는지..."
 "고바야시, 실례잖아"
 유우키는 그렇게 말을 끊고는 앉은자세를 고친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꺼내려나 싶었는데...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제가 올해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그자리에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거였다.
 흐응- 유우키가 학생회장이란 말이지?
 .......응?!
 "엣---?!"
 유미는 회의실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내어 외쳐본다.
 말도안되, 그런거.. 그런거 난 처음 듣는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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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1) 13권 후반부에 유미와 유우키의 계략(?)으로 성사될뻔 했던 상견례 자리에서 상대방의 엄청난 외양에 지대한 정신적 데미지를 입은 사치코님은 그만 졸도를 해버리고 만다.

 * 주2)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3월이 아닌 4월에 모든게 시작된다.
        게다가 나이를 세는 방식도 달라서, 태어나고 첫 생일을 맞이하는 해부터 1살이 된다.
        즉, (우리나라 나이 - 1살 = 일본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니 일본에서 조기입학 하는건, 3월 말일까지가 아니라 4월 1일까지 라고한다.

 * 주3) 일본인의 성씨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그 종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물론 흔한 성씨들도 꽤 되지만, 우리나라의 '김'씨 '이'씨 처럼 10명중 3~4명꼴로 같은 성씨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한반에 같은 성씨를 쓰는 경우는 많아봐야 2~4명 정도?
        그래서인지, 처음 만나거나 친하지 않은 경우엔 서로 성(姓)으로 부르고, 친한 사이일 경우 이름으로 부른다.

 * 주4) 이 부분은 의역을 하거나 빼버릴까도 했지만, 그냥 원문대로 넣어 둔다.
        이 상황은 일본의 만담 쪽에서 전형적으로 내려오는 웃음의 한 코드이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말을 할때, C라는 말로 받아치면 웃긴다'라는 공식 비스무리한 건데.. 아무래도 문화가 다른 우리에겐 그다지 웃기지 않는 듯.

 * 주5) 9권에서도 누누히 얘기했었지만, 일본 내에서 우리가 말하는 그런 의미의 종교인이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더군다나 유미같은 경우, 그다지 종교엔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불교에서의 '마리아님 = 석가님'.. 그러니까 '마리아님 조각상 = 석가님 조각상'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거다. 또다시 얘기를 꺼내서 질리신 분들도 계실테지만, 해당 종교인의 입장에선 말이 안되는 표현들도 꽤 섞여 있는 이유는.. 역자가 몰라서 그런 경우도 상당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고 놔둔 것이다. 그점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 주6) 원문에는 源氏(겐지-源이란 씨족 이름임) 및 平氏(헤이시-역시 平이란 씨족 이름임)의 유명했던 전투(源平合戰)에서 따온 것으로 되어있다. 고대 일본의 패권을 두고 일어났던 것인데.. 어차피 배경지식을 장황하게 소개해봐야 머리만 아플테고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어서 그냥 빼버리고 적당한 말을 넣었다...

 * 주7) 有栖川 金太郞 : 아리스가와의 이름인 긴타로는 요즘엔 거의 찾아볼수 없는 이름이다.
                        대강 마당쇠나 돌쇠 같은 느낌의 이름으로 상당히 웃긴 이름이다.
                        그리고 영어 이름중에 '앨리스'를 일본에선 '아리스'라고 적는다.
                        그래서 아리스가와를 줄여 아리스, 즉 앨리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왜 여자이름인 앨리스가 되었는지는 조금 아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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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러니까.. 라며 동생 녀석이 말을 꺼냈다.
 "우리 하나데라에선 옛날부터 2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거든"
 "파벌...?"
 "응, 체육계열 동아리랑 그외 예능계열 동아리... 뭐.. 대충 무식한 스포츠맨 하고 허약한 인텔리 같은 느낌이랄까...?"
 M역 남쪽 출구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에서야 유우키가 누나인 유미에게 속사정을 얘기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 만능인 인텔리도 있는거 아냐?"
 뒤에서 두번째인 2인용 의자에 나란히 앉으며 비밀 얘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줄인다.
 "그러니까 대충이라고 했잖아.. 대개는 자기가 속해있는 동아리에 따라서 나뉘게 되"
 그러니까 하나데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아리에 든다는 것은, 3년간의 고교 생활을 미리 정하는 중요한 이벤트인 건가보다. 신입생일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는듯 하다나?
 "그럼 넌? 동아리활동 안하잖아?"
 "응, 그게 실수였어..."
 "왜?"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입장이란 녀석도 학생회장의 조건중 하나거든.."
 하기사 두 파벌로 나뉘어서 대립하고 있는 상태라면야 학생회장의 색깔 하나로 우열이 바뀔수도 있는 걸테니까.
 "카시와기씨는...."
 "그사람은 나랑은 반대였어. 왠만한 동아리엔 여기저기 다 들어 있었거든. 체육계열 동아리에서도, 예능계열 동아리에서도 똑같이 활약을 했었으니까.."
 헤에-
 그러고 보니 유미가 알고있는 것들만도 검도에다 다도같은 예법에다 댄스까지 있었네? 게다가 유우키의 말을 들어보니 그밖에도 더 있나보다. 하나데라 대학에 특례입학 해버릴 정도로 머리도 좋은데다 예체능까지! 진짜 슈퍼맨 같은 사람이었잖아?
 "그래도 너 말고도 동아리 없는 애들, 있을꺼 아냐?"
 크게 두가지 파벌이 있다고 치고... 그 어느쪽에도 들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있을텐데?
 "응, 얼마 안되긴 하지만 있긴 해"
 유우키 대답은 분명 '있다'는 거잖아?
 "그럼 꼭 네가 학생회장 같은거 하지 않아도..."
 "카시와기 선배가 날 지명해놓고 가버렸어"
 "전임자가 지명한다고 학생회장이 결정되 버리는거야?!"
 "설마.. 선거는 거쳤어. 유미네 학교에서도 그런건 있지 않아?"
 "응, 그야 뭐..."
 하긴,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에서도 뷔통들이 그대로 다음 장미님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학생회 임원선거는 매년 행해지는 거니까. 그러고보니 올해 선거에선 뷔통들 이외의 후보자까지 나와서 큰 소동이었어...
 "내 경우엔, 따로 신청자가 없었어"
 유우키는 자학적으로 웃어 보인다.
 부회장인 다카다는 체육계열, 서기인 앨리스는 예능계열, 회계인 고바야시는 유우키처럼 아무데도 들지 않았단다.
 각 파벌이 골고루 섞여있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그들도 모두 작년도 학생회 임원들이 서로 단합해서 지명했던 모양이다.
 "대강 그런 사정이거든. 아무튼 잘 부탁해"
 마침 버스가 정거장에 서려하자 유우키는 얘기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다.
 "잘 부탁하다니..? 잠깐 기다려"
 유미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먼저 버스에서 내린 동생 뒤를 따라 얼른 승강구에 발을 내딛는다.
 "왜 지금까지 숨겨온 거야?"
 버스에서 내린뒤 유우키의 등뒤에 그렇게 묻는다.
 "숨긴 거 아냐. 말하지 않았던 거 뿐이지"
 유우키는 유미가 뒤따라 올때까지 기다리다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손님을 내리고 새 손님을 태운 버스가 유미들을 앞서나가 저멀리 작아져 간다.
 "같은말 이잖아. 나 예전에 올해 학생회장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본적 있단말야. 그때 유우키 너, 적당히 얼버무렸잖아"
 조만간 알게되, 라면서 말이지...
 학생회장한테 괴롭힘 당하는건 아닐까, 아니면 작년처럼 그런쪽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주1)
 그런 걱정까지 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 당사자가 학생회장 이라구?! 정말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나 하고말야!
 "난 그런것도 동생한테 듣지 못하는 누나인 거야? 내 기분이 어떤지 알겠어?"
 유미의 그 말에 유우키가 멈춰선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바로 고개를 숙여보이는 동생, 제대로 반성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니까 그만 용서해 주기로 한다.

 "어째서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은거야?"
 "유미가 누나니까 말 못했던 거야. 이름뿐인 학생회장 이라니... 실권은 하나도 없고 그냥 장식같은 거니까"
 "..그런거야?"
 "나한테 무슨 권력이라도 있는것 처럼 보여?"
 "......안보여"
 유미는 오늘 리리안 여학원을 찾아왔던 하나데라쪽 사람들을 떠올려 보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유우키는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우키 외에 딱히 이사람이다! 싶은 인물이 없는것 또한 사실이잖아...
 "유우키, 넌 말야..."
 "응?"
 "카시와기씨 처럼 되고싶어?"
 "뭐?!"
 유우키가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돌아본다.
 "무리할 필요는 없잖아. 실권없는 학생회장이면 뭐 어때. 우리같은 서민파 한테야 어차피 그런건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카시와기씨가 왜 유우키를 지명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거를 거쳐서 뽑힌거니까 조금은 더 가슴을 펴도 되는게 아닐까?
 아마 하나데라 사람들도 카시와기 스구르씨의 판박이를 요구하는 건 아닐꺼야. 자기들하고 같은, 평범한 후쿠자와 유우키를 고른걸 테니까..
 작년 학원제때 유미가 사치코님 같은 신데렐라를 해내지 못했듯이, 사치코님 또한 유미같은 신데렐라는 못했을 꺼야. 아마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니.. 유미도 언젠가는 학생회장이 될지도 모르는 거구나"
 그 전에 선거가 있긴 하지. 유우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서 표를 받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것 치고 느긋한 이유는 아직 시기가 많이 남아서 일까? 아니면 될대로 되라지, 하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건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 그 시기가 오면 실감이 나서 두근두근 할지도 몰라.
 두사람은 잠시동안 아무말 없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길 왼쪽으로 다양한 집들이 세워져 있는게 보인다.

 오래된 집, 새로운 집
 큰 집, 작은 집
 특이하게 생긴 집, 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이는 집

 어떤 집 안뜰에선 가장인 듯한 분이 호스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게 보인다. 거기엔 아직 여름 향기가 조금 남아있는것 같은 느낌도 든다.
 차츰 우리집이 보인다.
 우리 아빠가 설계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 하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땐 그저 평범한 단독주택 일런지도 모르지..

 "유미"
 대문을 열면서 유우키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응?"
 무슨말을 꺼내려나 싶었는데,
 "너.. 강해졌구나"
 라니... 나 참.
 "뭐야-"
 농담이라도 하는거야? 유미가 웃어 넘기려는데 유우키가 진지한 얼굴로 덧붙인다.
 "나.. 조금 뒤쳐지는 것 같아..."
 그리곤 마치 지지 않으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 거였다.
 "뭐니 그거?"
 왜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유우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쪽이 누나란다 얘야. 유미는 작게 작게 속삭이며 저녁밥 냄새가 풍겨오는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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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1 : 작년도 학생회장인 카시와기를 떠올리며 하는 걱정임. 1권 및 4권을 보면 그 이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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