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4권 산들바람 솔솔 -3- 매점 빵 사건

                               - 매점 빵 사건 -

 

 

                                      1

 

 점심시간..
 빵을 사러 '밀키 홀'(-리리안 중고등부 매점 이름)을 향해 서둘러 걸어가는데 문득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한 유미는 우선 말을 건네본다.
 "토우코--"
 양옆으로 하나씩 세로로 달린 저 특징있는 용수철 머리! 절대로 사람을 잘못봤을 리가 없는거다. 이름을 불린 그 애는, 한박자 뒤늦게 천천히 뒤돌아 본다.
 "유미님...."
 "혼자니?"
 유미는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헤치며 다가가서 나란히 섰다. 한학년 아래인, 조금쯤 건방지긴 하지만 귀여운 아이.
 "혼자면 안되나요? 그러시는 유미님도 동행이 있는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요?"
 은근히 태클거네... 별로 혼자여서 나쁘다거나 그런뜻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뭐.. 저애의 저 말투엔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됐으니까.
 그나저나 처음 만났을때랑 비교해 보면, 토우코의 저 가시돋친 말투에도 항체가 생긴게 아닐까...? 아님 익숙해진 탓이려나?
 왠지 삐-삐- 울어대는 새끼 고양이를 보는것만 같아서 귀여워 보이기조차 하니 말이다.
 "오늘 우리 엄마가 말이지, 밥통 타이머를 잘못 눌러놔서 밥을 못싸왔거든. 반찬밖에 없으니까 빵을 사러 온거야"
 유미는 도시락통이 든 작은 가방을 들어올려 보여준다.
 "전 그런거 안물어 봤는데요?"
 "그러니? '언제나 도시락이던 유미님이 어째서 '밀키 홀'에 온거지?' 라고 생각했던거 아냐?
 "그런걸 과대망상 이라고 하는 거예요. 누구나 유미님을 주목하고 있는건 아니란 말이예요"
 "흐응.. 그래?"
 "그래요. 그럼 전 이만"
 토우코는 그말을 뒤로하고 갑자기 뛰쳐 나갔다. 왠지모르게 따라가고 싶어진 유미는 일단 뒤쫓아 가본다.
 요 앞엔 매점이나 강당, 그밖에 다른 건물들도 많지만 지금 이시간 이라면 아마 나처럼 '밀키 홀'에 가려는 거겠지. 매점에 도착할 때까지 토우코의 뒷모습만 계속 보게되는 것도 왠지 이상하니까..
 "토우코- 찬바람 쌩쌩이네... 나, 조금 외로워"
 그러면서 착 달라 붙자,
 "저리 가세요"
 토우코는 반걸음 정도 옆으로 뛰면서 둘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아까처럼 유미를 뿌리치고 가려는 듯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며 단념한 것인지도 몰라.

 "요즘엔 장미의 저택에도 잘 들러주지 않잖아"
 나란히 걸으며 유미가 묻는다.
 "동아리 때문에 바빠요. 게다가..."
 토우코가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불길한 기운이 풍겨나니까"
 "불길한 기운?"
 유미가 되묻자 토우코는 깜짝 놀란듯이 고개를 든다.
 "방금 그말은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제 문제니까요"
 못들은 걸로 하고 말고 할것도 없어.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으니까 말야.
 "불길한 기운이라는 거.. 혹시 요즘 유행하는 말이니?"
 "유행...이요?"
 이번엔 토우코가 되물어 온다.
 "내 동생한테 들은건데.."
 "동생? 아..."
 "그러고보니 전에 한번 만난적 있었지? 우리 동생녀석"
 카시와기 스구르씨네 저택에서 '소년, 소녀를 만나다' 였던가? (*주1) 그얘긴 일단 뒤로 제쳐놓기로 하고..
 "동생 친구가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더라. 꼭 뭔가에 씌인것 처럼 말이야"
 "그럼 굿이나 기도라도 하면 되잖아요. 제 경운 악령 같은게 아니예요"
 "그건 동생 친구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지금 무언가에 씌인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어"
 유미는 일단 고개를 끄떡인다. 하지만.. 무언가에 씌인것 같다는 거랑 정말로 씌인 것과는 엄연히 다른 거니까.
 "그 애, 영감(靈感)을 느낄수 있어서 악령같은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대. 그리고 악령 같은것 보다 훨씬 귀찮은게 살아있는 사람의 사념(思念) 이라더라"
 잠시동안 묵묵히 듣기만 하던 토우코 였지만, 곧 스스로에게 들려주려는 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상대방이 사람이라서 귀찮다....인가. 정말 그말 대로야"
 혹시.. 저 애 한테도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거야?
 "가끔은 좀 놀러오고 그래. 사치코님도 기뻐하실 꺼야. 내가 방해되는 거면 없을때를 노리면 되잖아"
 토우코는 그 얘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밀키 홀'에 들어서자, 예상했던 대로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토우코는 입구 근처에 있던 자동 판매기에서 딸기 우유를 사고는 옆에서 기다리던 유미쪽을 돌아본다.
 "뭔가.. 오해하고 계신것 아니예요?"
 딸랑 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려오는 동전처럼, 아까 했던 얘기랑 이어지는 듯한 뉘앙스다.
 "오해?"
 "제가 싫어하는 건 유미님이 아니예요"
 "뭐?! 그럼 누구야?"
 그렇게 내뱉자 마자 '아차-' 라고 속으로 혀를 찬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그런 얘기에는 그다지 깊게 관여하지 않는쪽이 좋은거다. 당사자 끼리의 문제이기도 한데다가 만약 양쪽 모두 나랑 친한 사이라면, 두사람을 볼때마다 그 얘기를 떠올려 버릴 테니까..
 "저기.. 토우코?"
 할수만 있다면 방금 내뱉은 말은 못들은 걸로 해줄순 없는걸까? 아니면 토우코가 태클이라도 걸어준다면 좋겠는데 말야...
 "호소카와 카나코"
 잘못 듣는다는 건 있을수조차 없을만큼 큰 목소리다.
 과연 자칭 여배우! 복식 호흡이랑 매일매일 하고있는 발성연습의 성과인 거겠지.
 "전 그애랑 친해질순 없어요"
 이름을 꺼낸것 만으로도 당황해 버렸는데 '친해질순 없어요'라는 확인사살까지! 천적이란 말은 들었다지만 실제로 본인 입으로 들으니 더욱 당황되잖아. 토우코도 카나코도, 유미 입장에선 양쪽 다 귀여운 후배인데..
 "하지만 유미님이 사이좋게 지내시는 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물론 반대하거나 하지도 않을테구요. 그저..."
 토우코는 이어서 하려던 말을 꾹 삼켜 버린다.
 "그저...?"
 아무래도 그 말이 신경쓰이는 유미가 재촉해 봤지만, 토우코는 시선을 슬쩍 빵 판매대 쪽으로 향한채 웃어 보인다.
 "서두르지 않으면 다 팔리고 없어지겠네요"
 "앗-!"
 나중에 온 애들이 하나 둘씩 유미를 제치고 판매대 앞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텅 비어버린 빵 상자각이 벌써 몇개나 판매대 뒤로 치워져있는 상태다.
 "빵 당번한테 미리 부탁해 뒀으면 좋으셨을 텐데요"
 여유롭게 웃고있는 토우코를 보자니, 아무래도 저 애는 딸기 우유만 사려고 여기에 온것 같다.
 "맨날 도시락 이어서 주문해 두는걸 깜빡했단 말이야..."
 우리 엄마의 종종 깜빡 잊어버리는 증상까지 유전인 걸까?
 "그럼 난 이만 가볼께"
 유미는 빵 판매대를 향해서 벌떼처럼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건투를 빌께요"
 토우코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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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1) 원래는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의 제목이다.
        종종 저런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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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빵을 향해 달려드는 애들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굉장했다.
 아니.. 그냥 '활기가 넘친다' 정도로 정정해 두는게 좋겠어.
 이곳은 리리안 여학원, 얌전한 여자애들만 있는건 아니었어.
 "에휴.. 이건 애좀 먹겠는걸.."
 일단은 줄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행렬이 있긴 했지만, 빵을 파는 사람은 여러명 있는 거니까 모두 한줄로 선다고 되는게 아니었다. 그러니 '어떤 빵을 살까?' 따위 고민을 하다보면 줄 같은건 금새 망가져 버리기 일쑤.. 게다가 앞사람이 고민하는 동안에 뒷사람이 먼저 주문해 버리는 등, '일단은 줄을 서고는 있지만 뭐가 어떤 줄인지는 나도 몰라-' 상태..
 안그래도 이런거에 익숙하지 않은데 말야... 저 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건,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어렵잖아? 아까보다 그다지 앞으로 가지 못했단 느낌이 드는건 아무래도 유미의 기분 탓만은 아닐꺼다. 그런 가운데...
 톡 톡
 무언가에 쫓기듯 혼잡한 인파 속인데도 느긋하게 유미의 등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대체 누구지?
 뒤돌아 보니, 키가 큰 여자애가 웃으며 서 있었다.
 "카나코...?"
 "맨날 장미의 저택에서 도시락을 드시던 유미님께서 빵을 사려고 이런 혼잡한 가운데 섞여 계시다니.. 대체 어쩐 일이세요? 처음엔 사람을 잘못 본게 아닐까 싶었어요"
 "오늘 아침.. 사정이 생겨서 밥을 못했거든"
 그야.. 토우코의 말처럼 아침밥이 어쩌고 하는 후쿠자와 집안의 사정 같은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런지도 몰라. 그래도 상대방이 물어봤을땐 대답해도 상관없는 거잖아.
 "그건 큰일이로군요. 유미님은 어떤 빵을 좋아하세요?"
 "어떤거 라니? 글쎄.. 난 별로..."
 점심시간에 '밀키 홀'에서 파는 빵은, 각 학급마다 있는 빵 담당이 주문하고 남은 빵이다. 그러니 오늘은 어떤 빵이 남아있는건지 까지는 알수가 없는거다. 당연히 어떤걸 살런지 생각도 안해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거구 말야... 게다가 이렇게 복잡해서야 어떤 빵을 좋아한다거나 같은 느긋한 말은 할수가 없는 거잖아. 아무거나 좋으니까 한개 집어올수 있으면 행운인 거지.
 "그럼 제가 알아서 사올께요"
 그렇게 말한 카나코는, 유미가 아직 부탁한다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빵을 사려는 애들 속으로 휙 사라져 갔다.
 "아.. 카나코!"
 "유미님은 조금 떨어져서 기다려 주세요"
 저만큼 큰 키라면 혼잡한 가운데서도 잘 보이는 구나.. 그녀는 앞에있던 애들을 좌우로 가르며 정말 쉽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반찬은 있으니까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카나코에게 말을 해둔다.
 이미 여러 사람을 제치며 앞으로 가는 중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든다. 유미 입장에선 자기 빵을 대신 사러 가주고 있는 거니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거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금방 돌아온 카나코의 손에는 빵이 세봉지 들려 있었다.
 "아.. 3개 사온거야?"
 "예"
 "카나코가 먹을것도 있니?"
 "아녜요, 전 도시락 이거든요"
 역시...
 아까 유미가 했던 말은 카나코에겐 들리지 않았었나 보다.
 "꽤나 빨리왔네..."
 "예"
 "새치기 같은거 한거니?"
 "원래 유미님이 뒤쳐졌던 분만큼 앞으로 간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
 뭔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긴 한데, 그걸 카나코가 납득해줄 만큼 설명할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그저.. 차례는 지키는게 좋은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거다.
 "그것보다 어떤게 좋으세요? 어떤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눈에 띄는걸 전부 사왔어요"
 뭐야.. 그럼 아까 했던말은 다 듣고 있었나 보네? 그런데도 3개 씩이나 사온 카나코...
 "얼마니?"
 잔돈 지갑을 꺼내며 물어봤다.
 "이 딸기잼 빵 말이군요?"
 "아니, 그거 전부 말이야"
 "예?"
 3개나 먹을수는 없지만 일부러 사온건데 나머지 2개는 못먹겠어, 라며 돌려주기도 그렇잖아?
 "카나코.. 자기가 먹을려고 산거 아니지? 그럼 내가 전부 가져갈께"
 "그래도.."
 "괜찮으니까.. 얼마지?"
 "필요 없어요"
 카나코는 조금 토라지며 말을 꺼낸다.
 "저혼자 맘대로 사온 거예요. 유미님이 남는것 까지 걱정해 주시지 않아도 되요. 그건 전부 드릴테니까 산 백합회 여러분들과 같이 드세요"
 "카나코..."
 어떻게 하지? 3개 전부는 고사하고 한개몫의 빵값도 거부당해 버렸어.
 "그럴순 없어"
 유미는 허둥지둥 빵 봉지에 적혀있던 가격표기를 본다. 그리고 잔돈지갑에서 딱 맞게 꺼내어 카나코 손에 쥐어주려고 했는데...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순순히 받아주질 않네...
 "나도 그럴순 없다고 했잖아"
 이렇게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음식점에서 '제가 사겠습니다' '아녜요, 제가 낼께요' 라며 서로 언쟁을 하는것 마냥 끝이 없다. 그러고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은 대체 어떻게 결론을 내는 걸까? 가능하면 지금 참고하게 좀 물어봤으면 좋겠네..
 설마.. 가게문 닫을 때까지 언쟁을 계속하는건 아니겠지? 아마 어딘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서 해결을 하곤 할텐데 말이야...
 "거기까지!"
 갑자기 눈부신 플래시가 터진다.
 "유미, 그리고 그쪽의 너도! 조금은 머리를 식히고 주변을 좀 둘러보는게 어때?"
 그곳에 서 있던건 예상했던 대로 자칭 사진부의 차세대 주자이자 유미의 친구이기도 한 다케시마 츠다코. 그녀가 카메라를 한손으로 옮겨쥐고 천천히 둘에게 다가온다.
 "주변 이라니...?"
 지적당한 대로 주변을 둘러보자, 유미와 카나코를 둘러싸듯 사람으로 장막이 쳐져 있었다. 그렇게 큰 소리를 질렀던것 같지는 않은데 말야... 아무래도 나도몰래 흥분해 버렸었나 보다. 아직 언쟁이라고 할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다툼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는거다.
 "이런...."
 유미는 일단 웃음으로 넘겨보려 했지만, 이미 그걸로 수습이 될 단계는 아닌듯한 느낌이다. 츠다코에겐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하라는 충고를 받았다지만.. 이렇게 까지 소동이 커져 버린건 대체 어떻게 수습하면 된다는 거지? 카나코마저 고개숙인 채 가만히 있고 말이야...
 "일단 유미 넌 빵을 받아. 그리고 유미가 꺼내려던 돈 말인데... 그건 네가 받아둬. 알겠니?"
 모두의 눈길이 못박혀 있는탓에 어쩔줄 몰라하며 서있기만 한 당사자들 대신, 츠다코가 이래저래 교통 정리를 해준다. 하지만 카나코는 그 돈을 받아들려 하지 않는 거였다.
 "맘에 안드는 모양이지만 우선은 받아두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자리가 수습이 안되거든"
 "하지만..."
 "수습이 가능할때 수습해야 뒷탈이 없는거야. 일이 커지면 누구도 손을 댈수가 없게 되거든. 아니면 너.. 유미랑 껄끄럽게 되고싶니?"
 츠다코가 작은 목소리로 설득에 나서자 카나코가 겨우 꽉 쥐었던 오른손 주먹을 풀고 잔돈을 받아 들었다.
 "이젠 내가 유미한테 빵을 2개 살꺼야. 그럼 문제 해결이지? 자아 여러분,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누가 빵을 가져갈껀지 얘기하던 것 뿐이었어요. 즐거운 점심시간을 마저들 보내시기 바랄께요"
 츠다코가 유미랑 카나코 두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발걸음을 땐 탓에, 세명은 나란히 '밀키 홀'을 나서게 되었다.
 '여러분'이라고 불렸던 구경꾼들은 대체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하기사 유미 자신도 뭐가뭔지 알수없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던 거니까...
 그래도 하나 확실한건, 츠다코 덕분에 살았다는 거였다. 이 많은 애들 속에서 아까처럼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온다.
 '밀키 홀'을 나와서 조금 걷다보니 갑자기 카나코가 멈춰서서 츠다코 쪽을 바라본다.
 "방금 일을 수습해 주신건 감사해요. 하지만 그 빵은 3개 다 유미님을 위해서 산거예요"
 "알고 있어. 그건 유미도 알고있을 꺼라니까.. 그치?"
 츠다코의 물음에 유미도 고개를 끄떡여 본다.
 그야 당연히 잘 알고있어. 그래도 역시 양보할수 없는 일이란게 있는거지..
 끄덕, 머리를 숙여보인 카나코는 교실 쪽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츠다코의 혼잣말이 이어진다.
 "저애.. 뭣하러 '밀키 홀'까지 왔던 걸까?"
 "응? 그러고 보니 왜 왔지?"
 자기몫의 빵은 사지 않았어. 그렇다고 도시락을 들고 온것도 아니고 말야...
 "마실것을 사러 왔다거나?"
 아까 전의 토우코처럼. 그런 애들은 꽤 되니까 말야.
 "그런 거라면 빵 판매대 근처까진 않온다구"
 "그렇겠네"
 음료수 자판기는 '밀키 홀' 입구 부근에 있었다. 한편, 빵 판매대 쪽은 매점 안쪽에 있는거다.
 뭐.. 사람에겐 여러가지 사정이란게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일부러 신경을 쓸 필요따윈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보단 지금 해야할 일을 하는쪽이 좋은 거니까.
 "츠다코"
 유미는 나란히 걷고있던 발걸음을 멈춘다.
 "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제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두지 않으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란건 분명히 존재하고 있겠지만 말로 할수있는 상황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말해 두는게 좋은 거니까. 왜냐면 이쪽에서 열심히 내 마음이란 전파를 보냈는데, 상대방쪽 수신기는 전원이 켜져있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수신기가 고장나 있어서 나는 전해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도 있는거다. 그러니 아날로그 방식에 제일인 거야. 상대방에게 전해졌는지 아닌지 바로 알수 있으니까.
 "아니.. 배가 조금 고파와서 빵이라도 사려고 와 봤더니 왠지 소란스럽잖아. 그래서 조금 사정을 알아보려고 했던것 뿐이야. 그덕에 이렇게 빵이 생겼잖아? 그러니까 별로 신경쓸 필요는 없어"
 "응? 그러고보니 너.. 쉬는시간에 도시락 일찍 까먹었었지..."
 "헤헷..."
 츠다코는 조금 부끄러운 듯 소리내어 웃고는, 건물 입구의 매트에 신발 바닥을 털으면서 제안을 하나 해왔다.
 "지금 바뻐? 괜찮으면 잠깐 같이올래?"
 "그러지 뭐. 장미의 저택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었지만, 내가 빵을 사러 '밀키 홀'에 간다니까 아무도 내가 제대로 사올 꺼라곤 기대하지 않더라구.."
 그 말을 들은 츠다코가 '그럼 결정!'이라며 손가락을 튕긴다.
 "그럼 얼른 그 빵을 갖고 가서 써야지"
 "이 빵을?"
 무슨 얘기지? 유미가 물어보자 츠다코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뇌물로 쓰는거야"

 

 

                                      3

 

 한번은 발을 털긴 했지만, 결국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두사람 모두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럽 하우스..."
 유미는 학교건물 뒷편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을 올려다 본다.
 "응, 아마 여기 있을꺼야"
 츠다코의 대답은 자신만만해 보인다.
 "마미가 말이야?"
 "그래. 내일 나올 예정인 '리리안의 소리' 만드는게 잘 안되고 있나봐. 점심시간에도 분명 저기서 워드치고 있을꺼야. 머리가 산발처럼 되서 말이지"
 클럽 하우스..
 여긴 각 동아리방의 집단 주택이나 마찬가지 건물이다. 그렇다고 모든 동아리가 들어와 있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운동계열 동아리는 체육관이나 무도관에 있기도 하고, 미술부는 미술실에, 서예부는 서예실에, 화학부나 과학부는 과학실, 그리고 수예부는 피복실을 각각 동아리방 대신으로 쓰고 있는거다.
 그러니 이곳엔 따로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들이 모여있는 거였다. 예를 들자면 바둑부, 문예부, 만화 연구부, 츠다코가 속해있는 사진부, 그리고 학교 신문인 '리리안의 소리'를 발행하는 신문부도 같이 있었다.
 물론 어느 동아리방도 그다지 넓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방과후의 교실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문부는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동아리방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부서들중 하나인 거라나?
 일단, 건물 안에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신문부 동아리방이 어디에 붙어 있는건지 확인해볼 필요도 없을정도로, 복도까지 타이핑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츠다코가 노크를 하곤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문을 연다.
 "안녕(ごきげんよう), 마미"
 "츠다코...."
 방 안에는 마미 혼자만 있었다. 머리가 산발이 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머리띠를 둘러매고 엄청난 인상을 한채 뒤돌아 본다.
 "이런데 올 일이 없는 유미까지... 대체 무슨 일이야? 뭔가 꾸미고 있는거니?"
 아무래도 마미는 상당히 피곤한 모양이다.
 "그냥 먹을꺼 들고 잠깐 보러왔어. 계속 머리만 쓰다보면 단게 먹고 싶잖아"
 마미의 저런 상태를 자주 보아왔던 걸까? 츠다코는 상관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대로 혼자 복도에 서 있을수도 없는 거여서 유미도 '실례할께요'란 말과 더불어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잼이 발라진 빵이야?"
 갖고온 물건을 보자 아주 약간.. 마미의 표정이 풀어지는게 보인다.
 "응, 그리고 쵸코 콜로네랑 아몬드 데니쉬도 있어. 아무거나 좋아하는 걸로 하나 집어봐"
 마치 자기것인양 마미에게 권하고 있네? 그런 츠다코가 의심스런 표정으로 유미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나저나 전부 단것들 뿐이잖아.. 유미가 고른거야?"
 "아니라니깐..."
 이건 전부 다 카나코가 골라온 거란 말이야..
 "그래서?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마미가 제일 달것 같은 잼 들은 빵에 손을 뻗으며 물어온다. 역시 그냥 찾아왔다는 말에 넘어갈 만큼 만만한건 아닌가 보다. 저 빵은 뇌물로 쓰려고 가져온 거니까, 그 추측은 틀린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좀전에 유미한테 어떤 일이 있었거든"
 아무 의자에나 앉은 츠다코가 아몬드 데니쉬의 봉지를 뜯으며,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냥 보고 있어.. 란 눈빛을 보내올 정도니까 이번엔 잠자코 지켜보기로 하자. 그리곤 적당한 의자를 빼서 마저 앉았다.
 "그게.. 조금 눈에 띄였던 모양이거든. 아마 마미 귀에도 들어갔을 꺼라 생각하는데? 그래서 말인데, 이번 '리리안의 소리'에 그걸 내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부탁을 하려고 온거야"
 "조금 눈에 띄다니? 어떤 일인데?"
 마미는 한쪽눈을 약간 치켜떳다.
 "그냥.. 별일 아냐. 내가 돈을 내줄께, 아냐 내가 낼께... 그런 얘기지 뭐"
 "그래?"
 그정도면 정말 별일 아니네, 라고 판단한 모양인지 마미는 그 얘기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겨우 그런 정도의 일을 학교 신문에 낸다는게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
 "음... 알았어, 그러지 뭐"
 이걸로 한건 해결! 피곤해진 머리속에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듯이, 마미는 빵을 먹기 시작한다.
 유미도 반찬이 든 도시락통을 꺼내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란말이나 생선튀김을 빵하고 같이 먹으려니 왠지 저항감이 있는거다.
 "유미, 아까 얘기 말인데.. 그 댓가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산 백합회에 관해서 뭔가 기사로 내보낼 만한 정보가 없을까?"
 "없어"
 대답이 바로 튀어나온다.
 "너.. 방금 전까지 뭔가 열심히 타자치고 있었잖아?"
 "별볼일 없는 글을 그냥 치고있던것 뿐이야. 학교 선생님들의 좌우명 같은걸 기사꺼리로 하고싶진 않단 말이야-"
 먹다만 빵을 꽉 움켜쥐는 마미. 이봐 이봐, 빵 사이로 잼이 삐져나와 있거든.. 괜찮은 거야?
 "아니면 산 백합회에서 할 공연에 대한 거라도..."
 "그건 안되"
 모른다고 하면 그 사실마저 기사로 해버릴 만큼, '리리안의 소리'는 기사에 굶주려 있는듯 하다. 그런 상태니 말실수 한마디도 용서되지 않는 거지..
 "맞다! 유미. 너 혹시 '쁘띠-쉬르'를 만들 예정 같은건 없니?"
 "없어"
 "에이--"
 "정말이야"
 "그래... 그렇다고 해두지 뭐. 그럼 요시노 쪽은 어때?"
 "들은거 없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어떤 대답이 나올런지 예상이 되니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시마코는? 아... 그쪽은 이미 노리코가 있었지.."
 마미는 다 먹은 빵봉지를 접으며 조금 전까지 타이핑하던 키보드 위로 엎어진다. 특종감- 특종감-! 이란 생각이 간절한 탓인지, 산 백합회 임원들의 구성원 조차도 깜빡 할 정도인 거야...

 "그러고 보니 노리코라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응?"
 "유미, 넌 타쿠야란 사람 알고있니?" (*주1)
 "노리코랑 아는 사이잖아. 불상 애호가 친구라고 하던데?"
 일부러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시마코랑 노리코가 둘이서 얘기하던걸 듣다보면 가끔씩 튀어나오는 이름이다.
 "만난적은 있어?"
 "만나다니..? 누굴? 타쿠야란 사람 말이야?"
 "아냐.. 됐어"
 마미는 그만 그 얘기를 끝내려는 듯이 보였지만, 왠지 마음속에 걸리는게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유미는 아까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난 만난적이 없지만 시마코는 있는것 같아. 노리코랑 알게되기 전에도 타쿠야란 사람, 시마코네 집에 종종 들리곤 했었나봐"
 시마코네 집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절간 이었다. 오래된 불상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타쿠야씨가 시마코네 아버님께 부탁을 해서 알게 됐다는 정도는 금방 상상이 간다.
 "근데..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아냐, 그저.. 어떤 사람인지 갑자기 궁금해진것 뿐이니까"
 갑자기 궁금해 졌다?
 그런건 아닌것 같은데... 조금 더 찍어보면 뭔가 나올것도 같단 말야.
 "외부인을 '리리안의 소리'에 싣는건 별로 않좋을것 같은데?"
 "그럴 생각은 없어.... 지금은.."
 지금은.. 이란건 대체 어떤 뜻인거지? 나중에라면 싣겠다는 건가? 아님.. 예전엔 그럴 생각이 있었지만 포기했다는 얘긴가? 그 둘은 전혀 다른 뜻이 되버리는 거니까 말이야..
 "그렇게 궁금한거면 노리코나 시마코한테 부탁해 보는게 어때? 우리학교 축제때 초대한다고 하던것 같던데 말야. 그 두사람의 동의를 얻고 취재하면 되잖아"
 "그러니깐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그.. 그래?"
 아무래도 지금은 포기했단 얘기인가 보다. 그런데.. 왜 저리 열을 내는거지?
 "그랬구나... 타쿠야 오빠는 학원제때 올지도 모르는 거구나..."
 추억에 잠기는 듯한 눈길을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마미. 혹시.. 마미도 타쿠야씨를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지만 물어보는건 그만두는게 좋을것 같아. 아마도 아니라고 할것만 같으니까..

 그때였다. 클럽 하우스 2층 복도를 소란스럽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유미 귀에도 들어왔다. 그 발소리는 신문부 동아리방 앞에서 멈춘 뒤, 기세좋게 문을 활짝 열었다.
 "마미, 특종이야!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이 '쉬르'가 될만한 후보중 한명하고 매점에서 크게 싸웠대!!"
 방안으로 뛰쳐들어온 애는 신문부 2학년으로, 거기까지 말하곤 그자리에 유미가 있다는 사실을 겨우 눈치채며 두눈을 동그랗게 떠버린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빨리 전해주려고 열심히 달려왔던 탓인지, 한번 열었던 입은 자기 마음대로 닫혀지질 않았던 거였다.
 "그걸 중재한게 사진부의 다케시마 츠다......."
 "응, 안녕(ごきげんよう)? 내가 사진부의 다케시마 츠다코야"
 유미뿐만 아니라 츠다코까지 여기에 있는걸 발견한 저 불쌍한 신문부원은, '말도안되'를 반복하며 입구 부근에 털썩 주저 앉아 버린다.
 "그럼 눈에 띄는 일이라던게 호소카와 카나코랑..."
 마미가 천천히 츠다코의 얼굴을 훑어본다. 그나저나 카나코의 이름까지 알고있는 거라면, 벌써 그애를 점찍어 뒀단 얘기네?
 "맞아, 원인은 빵 때문이었어. 근데 그 빵은 네가 먹어 버렸잖아. 그러니 이젠 기사로 내보낼순 없는거지"
 "날 속인거야?!"
 "그런적 없어. 신문부를 위해서도 이게 좋았던 거라니까"
 "어디가 좋은거야!"
 츠다코의 저 능글맞은 태도도 마미의 화를 돋구고 있나보다.
 "쉬르 후보라며 분위기 띄워놓고 나중에 가서 오보였어요.. 라고 변명해 버리는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잖아?"
 "그럼 아닌거야?"
 "글쎄..?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면 어때?"
 그러자 마미는 츠다코를 향해있던 시선을 순식간에 유미에게 돌린다.
 "유미!"
 "난 아직 그럴 생각이 없거든"
 아까 전에도 '그럴 예정같은거 없어'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머리속이 혼란해진 마미는 벌서 잊어버린 모양이다.
 "쉬르로 삼을꺼니 말꺼니?"
 "마미.. 좀 침착해"
 이렇게 저돌적으로 압박해 오면 좀 무섭단 말야.. 그렇게 곤란해 하던 유미 곁에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저..."
 그건 츠다코도, 마미도, 더군다나 조금전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던 신문부원도 아니었다. 5번째 인물의 등장이다.
 "카나코는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의 '쁘띠-쉬르'가 될 생각이 없대요"
 그녀는 입구 앞에서 주저앉아 있던 신문부원을 가볍게 뛰어 건너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째서?"
 마미가 누군지 묻지도 않고 기사감에 매달리는걸 보아하니 그녀또한 신문부원 일테지.
 "본인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본인...? 호소카와 카나코 자신이?"
 "예"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신문부 부장인 츠키야마 미나코님과 현재 편집장인 야마구치 마미를 동경해서 신문부에 들어왔단다.
 그만큼 의욕이 넘치는 신입부원 이어서 하루라도 빨리 자기 손으로 특종을 잡을려고 날마다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 큰맘먹고 카나코한테 직접 물어봤거든요.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의 '쁘띠-쉬르'가 될 마음이 있는지 말이예요"
 "그래서?"
 그 뒤는? 이라며 마미가 재촉하자, 그 신입부원은 차갑게 '훗-'하고 웃는다.
 "이런 식으로 웃어 버리더라구요"
 "무슨 얘기야?"
 "그런 저질스런 욕구 같은건 필요없대요.."
 "저질스런진 욕구..란 말이지?"
 마미는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츠다코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후쿠자와 유미님이 직접 부탁해 온다면? 하고 물어봤더니 말이죠..."
 그 신입부원은 조금 유미의 눈치를 봤지만 '그래서? 뭐라고 대답한거야?!'라며 재촉하는 마미에게 떠밀려 사실을 토해 낸다.
 "거절한대요"
 "거절...."
 유미는 생각치도 못해봤던 그 말을 되풀이하며 중얼거렸다.
 거절한단 얘기는 '쉬르'가 되고싶지 않다는 뜻인거지? ...어째서 일까? 날 좋아해 주고 있는건 확실한데 '쉬르'가 되고싶진 않아, 인거야?
 카나코에겐 '쉬르'가 된다는건 '저질스런 욕구'인 데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올 만한 얘기라는 거야?
 "게다가 제가 신문부원 이란걸 알게되자 이걸 기사로 내보내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신입부원의 보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사로 하지 말라구?"
 "예, 뭐.. 그런 뜻이었어요. 실제론 훨씬 더 거친 말투였지만요..."
 지금 이자리에서 그대로 전하는게 힘들 정도의 독설이었나 보다. 그 말에 자기 마음속에 품고있던 카나코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더 흔들리는 유미였다.
 "좀 어때? 충격받았어?"
 츠다코의 지적에 유미는 얼굴을 든다.
 "충격이라구?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알수가 없네"
 "호소카와 카나코가 생각하고 있는거 말야?"
 "응"
 지금 유미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로 옮기자면 아마도 이런거다.
 "그애를 좀더 알고 싶다고나 할까.."
 카나코가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 건지, 후쿠자와 유미란 사람에게 어떤걸 바라고 있는건지.. '쉬르'제도를 저질스런 욕구라며 딱잘라 말하는 그애가 인정하는 가치란건 대체 어떤걸까? 그런걸 물어보고 싶어..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는거고 그만큼 여러가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 여러가지 생각이라는 건, 외부에서 알아채기엔 힘든 거니까.

 "유미, 잠깐만"
 머리띠를 풀으며 마미가 말을 건네온다.
 "쉬르가 되려는 생각따윈 없다는 1학년 애는 제쳐두고, 불쌍한 친구를 좀더 생각해 주는게 어때?"
 "생각해 달라니, 그런..."
 미안하지만 제공해 줄만한 소식같은건 없단 말야.. 힘빠진듯 어깨를 떨구는 마미에겐 마음 속으로 부터 동정하긴 하지만 말이지..
 "어쩔수 없네. 유미, 스스로 '불쌍한 친구'라고 할 정도로 급한 마미를 위해서 조금  나서보는게 어때?"
 츠다코가 카메라를 꺼내어 유미에게 향한다.
 "나서다니?"
 "물론 거저 해달라고 하는건 아냐. 방금 우리가 먹었던 빵값을 받는걸로 어때?"
 친구들 뒷바라지를 잘 해줄것만 같아 보이는 츠다코 였지만, 사실은 조금.. 아니 꽤나 돌아가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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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1) 13권에서 특종을 찾으려 노리코 뒤를 쫓던 마미가 본인인 줄도 모른채 타쿠야랑 만나서 모종의 음모(?)를 꾸민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네타가 될수 있으니 생략~ 단, 그때의 결말덕에 마미는 타쿠야에게 상당히 끌리게 된것만은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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