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6권 [번외] 붉은 카드

붉은 카드(紅いカ- ド)

 

발렌티누스는 한숨을 쉬었다. 혼자서 창가에 잠시 머물면서...

붉은 카드는 그로부터 어떻게 된 것일까? 어두운 땅 속에서 아직 묻혀있는 채였을까, 아니면 정당한 소유자의 손에 들어가서 고요한 잠을 자고 있는 걸까? 전자라면 빨리 구출되는 편이 좋다. 거꾸로 잊혀진 채로 그 마음과 함께 일생동안 묻혀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기분이란 것은 제멋대로니까. 마음은 흔들려서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1

 

그날.

"미후유(美冬)."

당당한 목소리로, 그녀가 부른다. 점심시간에 그녀를 생각하면서 멍하게 밖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자 예상외의 일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하고, 살짝 고개를 흔들고는 용건을 말했다. 거물이자 바쁘기 그지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급우의 작은 동요 따위는 일일이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오늘 일직, 너랑 토모코였지?"
"어? 응..."
"빨리 이과준비실에 가봤으면 하는데? 아까 복도에서 오오모리 선생님이 불러 세워서는, 5교시 수업에 쓸 자료를 일직이 가지러 오라고 했었어." 
"이과준비실..." 
"공교롭게도, 토모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라서, 일직 동료인 토모코는 그녀의 언니에게 수제 초콜릿을 건네러 갔다. 
지금쯤은 은행나무가 늘어선 갈림길에 있는 마리아상 앞에 있겠지...

"그럼, 혼자서 갈께."

마중 나갈 시간이면 준비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기대고 있던 창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그게 아니라...'라고 말하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도와줄까...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

나는... 다행히도 그녀의 그 말이 호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단순한 '호의'라는 것조차도... 마침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대안이 없으니까... '혼자하면 힘들잖아'라고 사치코는 일단 말을 해본 것뿐. 그뿐이었다.

"미후유?"

그녀는... 슬쩍 봐도 완벽한 숙녀였다. 거기다, 이 학원의 고등부를 대표하는 존재.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외모도, 태도도, 인기조차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괜찮아. 자료 정도라면 혼자서도..."

정중하게 거절하자, 생각했던 대로 그녀는 '그래?'라고 말하고는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 그럼 부탁할께. - 얼마나 무정한 말인가? 결코 차갑게 대할 의도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냥한가하면 절대 아니다. 나와 그녀의 사이에는 온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인간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대한다. 비유해보자면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악수를 한다는 느낌이다.

"사치코."

나는... 이쪽에서 그녀가 내민 호의를 거절한 주제에 그냥 이대로 헤어지기가 뭐해서, 검고 긴 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제복의 뒤에 대고 말을 걸었다.

"뭐야?"

그녀는... 천천히 돌아선다.

"저... 고마워. 그리고 오늘, 열심히 해." 
"응."

그녀는 조금 입술 끝을 올리고는 대답했다. 웃은 것일까, 쓴웃음일까? 그녀의 미소를 그다지 많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판단할 수 없었다.

나, 우자와 미후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리리안 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2학년 2학기니까, 벌써 고등부의 반 정도를 마리아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이 땅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수험을 보고 왔다고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학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정말로 처음으로 리리안 여학원의 문을 두드린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과는 조금 조건이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학교의 신참자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전에 한번 리리안 여학원을 지망해서 수험을 쳤고, 어떻게 합격을 해서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유치원이라고 하는 꽤나 옛날이야기라서 자랑이 되지도 않겠지만... 당시,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가 명문에 합격한 것을 광분할 정도로 좋아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조모(祖母)가 리리안의 졸업생이라서, 딸도 리리안에 보내는 것이 어머니의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서 어머니는, 치바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리리안 여학원에 다니는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다니려고 했다면 못다니는 것도 아니었다고 어머니는 마지막에 말했지만, 아무리 학력이 합격 라인에 도달했다고 해도 통학에 편도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학생을 리리안이 받아 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대학생이라면 어떻게든 되었겠지만, 어머니가 다니고 싶었던 시기는 중등부에서 고등부까지 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유치원에 들어간 나는 반년정도 리리안 생활을 즐기고 있을 무렵에 예상치 못한 불행을 겪어야 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부득이하게 도쿄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순수 배양의 온실에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슬퍼했지만, 나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다만, 어린 아이에게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날에 마중 나온 어머니에게 재촉받아서, 급우들에게 평범한 작별인사를 하고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서 손에 이끌려 학교 밖으로 나왔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 때 어머니가 별거해서라도 도쿄에 남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호소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같이 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라고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옳다. 딸의 유치원을 이유로 별거할 정도의 아내라면 이혼당해도 할 말이 없다. 거기다 아버지가 정말로 그렇게 하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 양친은 지금도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질 정도로 사이가 좋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중학교 3학년을 슬슬 마칠 시기에, 아버지는 도쿄 본사에 불려가게 되었다. 그것과 동시에 나도, 어머니도 리리안 여학교에 다시 다닌다고 하는 꿈에 부풀어 오르게 되었다. 사립이란 곳은 꽤나 융통성이 있다. 과거에 한번 리리안에 적을 두었던 나는, '외부에서의 수험생'이 아니라, 리리안 중등부의 학생과 같은 조건으로 입학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기가 좋았고, 집안에 졸업생이 있다는 점도 다소 유리하게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동경하던 학교에 딸을 입학시키고 싶다는 일념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달랐다. 리리안이 명문이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여기에 돌아오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어떤 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 사람은 아직 이 학교에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등부라도, 중등부라도 좋으니까 리리안에 돌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고등부가 되어서야 간신히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고등부 입학식 당일. 나는 학급 편성표를 보면서 기쁨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이름이, 내 이름 바로 아래 써있었기 때문이었다. 오가사와라 사치코. 유치원에서 같이 있었던 원생 중에서, 유일하게 잊혀지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2

유치원에서의 사치코는, 지금과 같이 상당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우선 등교부터 달랐다. 
아침에 유치원 근처의 서쪽 문에 시꺼먼 차가 멈춰 선다. 뒷좌석에서 내려서는 것은 유치원 제복을 입은 예쁜 소녀. 운전석에 앉아있는 것은 학부형이 아니었다. 뒷좌석에 남아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녀는 기분 나쁜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서 멀어진다. 문에서 유치원 구역까지, 그렇게 돌아보지도 않고서 묵묵히 걸어간다. 이윽고 차는 왔던 길을 돌아간다. 타이어가 노면을 스치는 희미한 소리에, 그녀는 딱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는 다시 정면을 향하고, 시선을 들어 올리고는 다시 걸어 나간다. 마치 전장에라도 향하는 것처럼. - 그것이 사치코. 도보로 등교했던 나는, 그 광경을 몇 번인가 목격했다. 그녀에게는 유치원을 다니는 것이 고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에 막 들어갔을 때에는 마중나간 어머니에게 매달려서 좀처럼 교실에 들어오려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유치원에 대한 좋은 이미지만 심어주었기 때문에 입학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기도 했었고, 순응하는 것도 빨랐다. 유치원은 말하자면 처음 경험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장시간 부모 곁을 떠나서 지내는 것조차 상당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거기다 그곳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동시대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낯가림을 한다거나 '밖에서는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더라도 금방 적응되지는 않는 환경이었다.

나는 사치코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론 너무나 눈에 띄는 용모에. '타고났다'는 말이 분명 있긴 했지만, 그녀의 모습에는 그런 말로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가가고 싶어지는 무언가가... 나중에 그녀의 특수한 가정환경 따위를 알고서 납득하게 되었지만, 네다섯살의 아이가 그런 것을 이해할 리는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도보등교와 버스등교처럼, 그것은 단순하게 집이 가깝다는 것과 멀다는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 사치코의 집은 유치원 버스의 코스에서 벗어난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사치코는 예의상 하는 말로도 유치원에 적응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이라는 존재는 자신과 다른 분위기를 가진 사람에 대해 민감하니까. 처음에는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듯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듯한 그런 급우들이 많았다. 사치코는 사치코대로 그것을 쭉 보면서 평소에도 불쾌한 듯한 얼굴을 더욱 더 찡그리고는 혼자 있는 것처럼 무시했다. 사치코는 침묵으로 싸우고 있었다. 유치원이 유쾌한 장소가 아니라고 해서, 돌아가고 싶다고 울음보를 터트리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렇게나 어렸는데도, 그녀에게는 벌써 프라이드 같은 것이 거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게 해도, 공작을 시켜도 사치코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특히 대단했던 것은 춤 시간에 간단한 댄스를 선생님에게서 배웠을 때였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아가면서 불안하게 춤을 추는 우리들 속에서, 그녀만이 특별했다. 달과 자라. 까마귀 근처의 학. 우리들이 지상에서 아둥바둥거리는 애벌레라면, 그녀는 우아하게 춤추는 나비였다. 그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걔, 발레를 배우고 있데."

그런 위안도 되지 않는 말을 누군가가 살짝 중얼거렸지만, 진 것에 대한 분한 마음조차 가질 수 없었다. 반에서 발레를 배우고 있었던 것은 사치코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급우의 의미 없는 한마디가 원인이 되어서, 사치코는 자가용 등교를 그만두었다. 조금 놀렸을 뿐이었다.
신경 쓸 정도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버스 등교로 갈아치웠다. 진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전부터 생각한 것이었고, 놀림은 계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 집합소가 보이는 길모퉁이 한편 앞에서 차를 내려서 걸어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했다. 평범했던 나는, 사치코씨의 그런 자잘한 일상에서 한시라도 눈을 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길지 못했다. 아버지의 전근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근과 병행될 이사라던가 무언가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지냈고, 나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멍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곧 있으면, 사치코를 볼 수 없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 때의 내 기분은, '사치코와 헤어진다는 것이 괴롭다'는 것이 아니라, '사치코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유감'이라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그랬다. 나는 사치코와 함께 놀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어느 날의 쉬는 시간, 나는 부주의하게도 크게 흔들리던 그네에서 떨어졌다. 그 무렵에 그네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유행이었기에, 선생님이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 하급반은, 상급반의 언니들을 흉내 내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조금 흔들리는 그네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멍하게 있던 나는 친구에게 이끌려서 순번을 기다려서는, 이윽고 나의 순번이 되자 그네에 앉았다. 집 근처의 공원에서 종종 연습했기 때문에, 뛰어내리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휙휙. 나는 바람을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 뒤에 이 장소에서 나 자신이 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몰랐다. 자신이 떠나가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스치듯이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 속에서 한 명의 소녀의 모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오가사와라 사치코. 
그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내가 여기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 나 이외의 것이 나에게서 사라져버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치코씨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얼굴을 이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의 모습을 담자, 곧 아름다운 그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그 혐오라고 할 정도의 표정이 나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심장은 권총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꽉 잡고 있었을 그네의 사슬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거의 한순간의 일이었지만, 나는 하늘을 날아가는 바람이 되었다. 하늘이 뱅글 돌아서, 평소와는 다른 장소처럼 보였다고 생각한 순간, 신체의 어딘가가 지면에 격돌했다.

"미후유짱!"

같이 그네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당황해서 가까이 다가와서는, 무릎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피를 보고서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도 그네 주변에는 흙 위에 모래가 뿌려져있었기 때문에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나는 한번 굴렸던 모양이지만, 지면에 격돌하는 순간에 손과 무릎이 닿았기 때문에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하게 구른 정도의 충격은 있었기 때문에 찰과상을 입은 상처에서 그 정도의 피는 나오는 것이었다. 시간감각과 같이 아픔이 덮쳐왔기 때문에, 피와 함께 눈물도 나왔다.

"선생님을 불러올께."

용기 있는 아이가 유치원을 향해서 달려가자,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나도', '나도'라고 외치고는 그 뒤를 따라가서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안 말이었지만, '거미새끼가 흩어지듯이'라고 자주 말해지는 모양이었다. 다른 놀이기구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도, 관계되는 것을 무서워해서 순식간에 나에게서 반경 5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었다. 그러던 중에 하나의 인영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치코였다.

"괜찮아?"

그녀는 어쨌든 그 장소에서 가장 적당한 말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눈물 어린 눈을 크게 뜨자, 한숨을 쉬고는 이번에는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하는 거야?"

눈앞에 하얀 손수건이 내밀어졌다. '눈물을 닦아'라는 것일까... 하지만, 부드러울 것 같은 거즈의 손수건은,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로 고급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로 있자, 사치코씨는 그 장소에서 쭈그리고 앉아서는, 망설이지도 않고서 그 손수건을 살짝 나의 무릎에 감쌌다.

"앗!" 
"아파? 선생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으니까 벌을 받는 거야."

나는 그늘에서 떨어지기 전에 본 사치코의 불쾌한 표정의 이유를 간신히 알게 되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어긴 그 행위에 대해서였던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이끌려서 유치원을 나온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서, 사치코는 일어섰다.

"아, 손수건..." 
"줄께. 또 한 장 가지고 있으니까."

너무나 무정하게 대답하고는, 사치코씨는 그 장소를 떠나가 버렸다. 쫓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무릎도 마음도 아파서, 불러 세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달려온 선생님이 무릎을 씻기고서, 소독약이 스며든 탈지면으로 상처 입은 곳을 닦아내는 와중에도 나는 조금 피가 스며든 그 손수건을 꽉 쥐고 있었다. 사치코씨와 1대1로 말한 것도 처음이었고,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나는 사치코가 학급에 섞기지 않았던 것은 누구보다도 정신적으로 언니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동시대의 소녀들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웠기 때문에, 같은 레벨에서 사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이윽고, 내가 리리안 여학원의 유치원에서 작별을 고하는 날이 왔다. 교실에서 작별인사를 마친 나는, 교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치코에게 말을 걸어서 학교 건물의 음지로 불러내었다. 버스 노선은 2개 구간이었다. 하지만 한 대의 버스만이 할당되었기 때문에 노선 간에 시간차가 있었다. 하얀색 노선과 빨간색 노선. 사치코는 빨간색 노선이었기 때문에 뒷번이었다. 덧붙여서, 가족이 바래다주는 것은 노란색 노선이라고 했다. 사치코씨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라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빌린 손수건을 돌려준다는 대의명분과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세탁과 함께, 확실한 다리미질을 부탁드렸던 물건. 치바에 계신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피가 뭍은 것을 빼는 법을 전수받은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노란 색으로 남아있던 피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준다고 했잖아?"

손수건을 내밀자, 사치코는 언제나처럼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려주라고 해서..."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집어주신 작은 꾸러미를 사치코에게 내밀었다.

"뭐야?" 
"초콜릿이라던데?" 
"초콜릿?" 
"고맙다는 선물."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심부름꾼 같은 말 외에는 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어렸던 나는,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그래."

조금 생각해보고는, 사치코는 손수건과 초콜릿을 담은 작은 꾸러미를 받았다.

"미후유짱의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나는, 처음으로 사치코가 '미후유짱'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스쿨버스가 최초의 노선을 돌고서 돌아왔다. 사치코는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나에게 "또 보자"라고 한마디했다. 또 보자. 나도 그것을 따라서 말했다. 또 보자, 사치코짱. 버스의 창에서 보이는 사치코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5살의 아이처럼 보였다. 또 보자. 나도 손을 계속 흔들었다. 사무소에서 모든 수속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말을 걸 때까지, 버스의 뒷모습을 향해서. 더 이상은 그녀가 이쪽의 모습을 볼 수 없는데도. 작별인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다시 여기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3

다시 만난 사치코는 예상대로라고 할까, 의외라고 할까... 신기한 인상을 남기면서 그곳에 있었다.
외견에는 유치원 무렵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어른에 조금 가까워져서 아름다움에 세련됨이 더해진 느낌. 여전히 무신경하고, 급우들과 함께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 타인을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엄격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언가 의외라고 생각했다면, 그 원인은 모두 나의 확신에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만나지 못한 동안에 사치코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상의 여성으로 갈아치우고 말았다. 날카로운 곳은 둥글게 되고, 어른스러운 부분은 상냥함으로 바뀌어서 성모 마리아와 같은 점잖고 우아한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라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또, 간단하게 바뀌는 것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같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요?"

교실에서 모습을 보고서 반가움에 바로 말을 걸었던 나는, 사치코가 해준 말을 듣자 지난 10년간이 산산조각이 나서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기억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나는 한번 보면 잊지 못할 것 같은 용모도 아니었고, 그네 낙하 사건 이전에는 별로 눈에 띄는 행동도 하지 않는 원생이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마 잊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장이 약 140cm어서 꽤 작은 편인 나는, 일반 학생에 비해서 변화의 정도도 적은 편이었는데... 어쨌든 나는 다시 처음부터 사치코와의 인간관계를 고쳐 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회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태클을 받은 탓이었는지 그다지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또, 틈이 없는 사치코는 무방비로 접근해서는 안될 존재같이 느껴졌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평안하셨는지요' 라던가, '프린트를 뒤로 돌려주세요'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출석번호순이었던 좌석이 변경되자, 주고받던 말도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치코가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의 동생으로 선택된 것에 의해, 그녀는 더욱 머나먼 존재가 되었다.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나는 사치코를 보면서 살아왔다. 고쳐 쌓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10년 전의 인간관계의 끈은 강하게 묶여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었던 사치코씨에게 우정의 일면을 느꼈던 것은 아마도 나만의 확신이었을 것이다. 이사 가지만 않았더라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유치원에 다녔다면, 분명히 사이좋게 되었을텐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치코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유치원 무렵의 모습에서 파워업한 듯한 사치코씨를 쫓으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수업이 있으면 지겨운 수업도 있는 법이지만, 학교는 그런대로 즐거웠다. 부활동에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친한 선배도 만들지 않았고, 당연히 동생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가지고 싶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의 관심이 상급생에게 향해진 것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1년을 보내고 나서 2학기를 맞이하자, 급우가 한명 없어졌다. 작별인사도 없이,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시작되자 교실 안의 그녀의 책상이 없어져 있었다. 그녀의 인상은 각각이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가도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라서, 등교하고 처음 만났던 때에 로사 기간티아 앙 부통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어서,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사람 하나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처음에는 이야기거리였다가도 바쁜 일상에 휩쓸려서 이윽고 잊혀져간다. 이번에는 보내는 입장에 섰기에, 나는 그것을 절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4

'도와줄까'라고 사치코가 이야기했을 때, 나는 어째서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그럼 부탁할께.' - 어째서인지 나로서는 이 한마디를 말할 수 없었다. 2년간 같은 교실에서 배운 사이였다. 지금까지 얼마든지 사치코와 친해질 기회가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몇 번이나 있었다. 오늘처럼. 그것을 나는 살리지 못했다. 스스로 찬스를 뿌리쳤던 것이었다. 나는 사치코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언제나 거절당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차가운 눈초리가 향해지는 것을 상상하고는 슬퍼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사치코를 보고 있을 때에. 그런 감정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단지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뒤흔드는 사치코씨를 밉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화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나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자신에게 또 자기혐오를 느껴서 침울해지는 것이었다.

1년 전에도 그랬다. 작년의 발렌타인 데이. 나의 가방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11년 전에 손수건을 빌려준 친절한 친구를 위해 준비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건네줄 용기 따위는 있지도 않으면서, 나는 그것을 계기로 사치코가 옛일을 생각해 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그리고 또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공상 속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는데다, 결과가 좋은 결말을 준비하는 것 역시 쉬웠다. 나는 이 작은 신체 안에서 만큼은 신神이 될 수 있었다.

찬스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반이어서 언제나 건넬 수 있다는 좋은 조건이었지만, 뒤집어서 보면 결단을 내리기에는 나빴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30분정도 지났을 무렵에, 반 앞의 복도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2월의 중반, 무척이나 추운 시기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교실의 문은 앞뒤 모두 닫혀있었다. 호기심 그 자체와 같은 급우 한명이 일단 엿보러 갔다가, 흥분하면서 돌아와서는 말했다.

"사치코, 큰일이야."

그것은 사치코에게 초콜릿을 건네고자 방문한 학생들의 집단이었다.

"..."

우리들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초콜릿을 가진 소녀들은, 어째서인지 일렬로 서서는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1학년이면서 초콜릿 공격을 받다니 일반적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거기다가 연상인 2, 3학년의 모습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이 '쾌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일은 잠시 접어두고서, 나도 순수하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나는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치코에게 초콜릿을 건넨다는 대담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하지만, 생각해보니 사치코를 동경하고 있는 것은 나 한사람만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그때, 기분이 좋아져서 줄의 맨 끝에 서보자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지?"

사치코는 급우들에게 떠밀려서, 열의 선두가 대기하고 있는 앞문까지 마중 나가겠다고 했다. 복도에 늘어선 학생들은 마치 그곳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문에 난 레일 홈에서 한 발짝도 안에 들일 수 없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서 서있었다.

"저, 이거..."

선두의 학생이 귀여운 빨간 주머니를 내밀었다. 옆반의 학생이었다.

"..."

10초는 넘게 침묵하다가, 사치코는 "무슨 의미야?"라고 물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에 관련된 물건을 받는다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알아차리게 되는 법이었다. 용기를 쥐어짜내서 왔을 텐데... 얼굴을 붉히고는 조금이라도 책망한다면 지금이라도 눈물을 흘려버릴 것만 같았다. 제일 처음이란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부터 여기에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초콜릿입니다. 저,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라서... 그러니까..."

'전부 다 말할 건 없잖아'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치코는 그런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묻고 있는 것은 어째서 그것을 자신에게 건넨 것인가였다. 조그맣게, 선두의 소녀는 중얼거리듯이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사치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런 건 받을 수 없어."

조금 크게 말한 것은, 뒤에 이어서 대기하고 있던 열의 뒤편까지 들리게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거절한 이유는 간결했다.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사치코는 그렇게 모든 초콜릿을 확실하게 거절했다. 그 철저함은 섬뜩하기까지 해서, 그런 사태가 되었는지 몰랐던 급우들이 부탁받아 날라준 것도 단호하게 받아주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보낸 사람의 반에 직접 가서 돌려주었다. 쉬는 시간에 신발장에 넣어져 있던 것에 대해서도 반과 이름이 확실히 써져 있는 것은 직접 돌려주었고, 불명인 것에 대해서는 3일이 지나도 받아가지 않으면 폐기하겠다는 뜻을 담은 메모지를 신발장 입구에 붙이고는 거기다 방치해두었다. 그 결과, 3일째의 아침에는 모든 초콜릿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멋지다'라고 생각한 동시에, '얼마나 엄격한 사람인가'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무시무시한 대응을 눈앞에서 보아버린 것에 의해 스스로 건네고자 했던 생각을 일순간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거의 1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열에 서서 그녀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확실하게 전할 수만 있었다면 사치코는 나의 초콜릿을 받아주었을까...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날, 사치코는 초콜릿을 받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받고 싶다는 말을 들을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5

그리고 올해의 발렌타인 데이. 나는 또 작년과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는 마치 데자뷰처럼, 작년의 자신을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3일전에, 어머니가 좋아해서 옛날부터 우리 집의 선반에서 비는 날이 없는 어느 메이커의 밀크초콜릿의 가장 작은 사이즈를 백화점에서 사왔다. 이 시기의 식료품 매장은 혼란스럽다. 보통 때도 어수선한 장소인데 어거지로 특설매장을 만들어서는, 보통 때는 들여놓지 않는 메이커나 들어본 적도 없는 메이커 따위도 작은 공간에다 점포를 낸다. 특히 저녁때가 되면, 집에 돌아가기 전의 사무직 여성이나 여학생이 모여서 '여기는 러시아워의 승강장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혼잡해진다. 그 중에서도 유명 메이커의 주위는 굉장해서, 번호표를 쓰기까지 해서 손님을 처리한다. 보통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전병 판매점에서조차 초콜릿으로 코팅한 전병을 파는 것을 보고서는, 웃겨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오래된 점포의 관록과는 너무나도 미스 매치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도 겸해서, 아버지의 몫까지 2개의 초콜릿을 샀다. '초과근무로 늦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는 아침에 드렸다. 회사에서 수많은 의리 초콜릿을 받은 뒤에 건넨다면 고마움을 느끼기도 어려운 법이었다. 첫 번째가 외동딸이라는 것에 기뻐한 아버지는, 조금 빠르기는 했지만 나를 데리고 출근했다. 통근용의 차를 얻어 탄 덕분에, 나는 꽤나 빠른 시간에 학교에 도착하고 말았다. 교문 앞에서 차에서 내리자, 앞서서 시커먼 차가 멈춰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처럼 리리안의 학생이 가족의 배웅을 받는 것이겠지... 
등교 시간의 피크에는 그다지 보이지 않지만, 이른 시간에는 그다지 드물지 않은 광경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고, 부활동의 연습이나 학원제의 준비 따위로 빨리 등교하지 않으면 안될 때, 혹은 짐이 크거나 많을 때라는 특별한 경우로 제한되어 있다. 바로 학생이 내렸는지, 정차하고 
있던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나도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도로가 한산했다고는 하지만, 평소보다 1시간이나 빨랐다. 자택에서 학교까지 전철통학할 경우에는 꽤나 돌아서가기 때문이었다. 이럴 바에는 유치원에 다닐 무렵의 좁은 집에 살았던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교문을 들어가자, 생각했던 대로 리리안 여학원의 제복인, 상아빛이 더해진 검은 원피스를 입은 학생의 뒷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이 사치코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라져가던 그 차를 볼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 시간동안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새로운 차로 바꾸었겠지만, 그 차는 예전에 본 사치코네의 자가용과 무척이나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 차에 걸맞은 학생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오가사와라 사치코 이외에는 없었다.

"사..."

나는 말을 걸려고 하다가 말았다. 급우라면, "평안하셨는지요"라고 인사하고는 교실까지 함께 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치코가 거물이라고는 해도, 같은 교실에서 배우는 학생이다.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그 때의 심리는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치코에게 말을 걸 기회를 놓친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마치 스토커처럼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는 뒤를 밟고 있었다. 사치코는 마리아 상 앞에 서서 양손을 모았다. 잠시 아침 기도를 드리는가 했더니, 얼굴을 들고는 다시 걸어갔다. 둘로 갈라지는 갈림길. 우측으로 가면 강당이나 성당이 있고, 무도관이나 수영장으로 이어진다. 좌측의 길은 도서관 건물을 따라 이어지고, 그대로 가면 고등부 학교건물이 나온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좌측의 길을 이용한다. 우측의 길로 간다 해도 다음 갈림길에서 선택을 잘못하지 않는다면 학교 건물로 갈 수 있지만, 그건 꽤나 멀리 돌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치코는 무슨 일인지 우측으로 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뒤를 쫓았다. 관습이었기 때문에, 건성이었지만 마리아상 앞에서 손을 모았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부활동도 하지 않는 그녀가 아침연습을 위해서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로사 페티다 앙 부통인 하세쿠라 레이를 만나러 무도관에 가는 걸까라고 생각해봤지만,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있는 그녀들이 수업 전에 만나야할 이유 따위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 때, 나는 오늘의 이벤트를 생각해냈다. 부통들이 숨긴 보물을 찾는다는, 신문부 기획의 예의 축제 소동. 미나코답다고 웃고서 넘기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멤버에는 사치코가 끼어있었고, 우승자는 부통에게서 선물을 받는다고 했다. 소문이긴 했지만, 반나절 데이트권이란 이야기도 돌았기 때문에 나로서도 속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사치코가 그와 같은 기획에 참여했다는 것에 놀랐다. 작년의 발렌타인 데이에서 보여준 태도로 볼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이 자연스러웠던 것이었다. 사치코라면, '뭐하러 보물을 숨기는 거야?', 혹은 '뭐하러 데이트는 한다는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이 정도까지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결론은 나온 것인가...

(보물찾기인가...)

나는 퍼뜩 생각이 났다. 사치코는 오늘의 이벤트 건으로 레이와 만나서 이야기할 예정을 가진 것은 아닐까하는... 그렇다면,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을 고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로사 기간티아 앙 부통인 토도 시마코도 함께일지도 몰랐다. 분명히 셋이서 무도관에서 만날 예정일 것이다. - 그런데, 사치코는 갑자기 멈춰 섰다. 바로 낡은 온실에 접어드는 곳이 아닌가. 무도관에 향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궤도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치코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이쪽으로도 향했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나무그늘에 몸을 숨겼다. 발견되었을까 생각하니 두근두근했다. 하지만 사치코가 주변을 경계하듯이 좌우로 한번 고개를 움직이자, '휴'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듯 했다. 이런 때는 작은 체형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아동복 메이커의 귀여운 옷이나 구두가 몸에 맞는 때 정도... 사치코는 온실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문에 손을 대기 전에, 먼저 가방을 꼭 안고 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온실. 아무리 내가 스토커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온실 안에까지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이 이상 접근하면 이쪽의 존재가 발견되어 버릴 테니까. 중간중간에 유리가 금이 간 낡은 온실이었지만, 일단 밖과는 차단된 공간이다. 한 발짝이라도 발을 들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만약이라도 사치코가 묻는다면, 나는 온실까지 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밖에서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앞으로는 후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쪽에서 등교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으므로 사치코가 옆으로 나의 모습을 본다 해도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있는 장소에서는 사치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레이나 시마코가 있는지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사치코가 온실에서 나왔다. 혼자서는 아까처럼 주변을 돌아보고는 나왔지만, 출입구의 반대편에 있었던 나를 눈치 채지는 못한 듯했다. 나는 사치코를 쫓아갈까, 온실에 들어갈까 망설이다가 후자를 택했다. 사치코는 그대로 곧바로 교실로 가는 듯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학원에서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다. 사치코가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너무나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 없었다. 안에는 아직 누군가가 남아 있을 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것은 절대로 사치코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사치코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은 없었다. 온실에 들어가자, 공기가 바뀌었다. 아무도 없었다. 유리를 통해서 내리쬐는 아침햇살은 색조차 띄지 않았지만, 스테인 글라스처럼 어째서인지 성스러웠다. 나는 온실 안을 걸어 다니다가 단서를 발견했다. 사치코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발견되었다. 온실 안에 들어오고 나서 10분 이상이 경과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였다.

"이것은..."

낡은 온실에는 마루판이 벗겨져서 드러난 흙에 식물을 심은 화단이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조그만 차이점. 이름도 모를 관목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주변의 흙을 일부분 파낸 흔적이 있었다. 정성껏 평평하게 해놓았지만, 흙의 표면은 축축했다. 지금 방금 작업이 행해졌다는 의미였다. 신선한 흙냄새가 났다. 나는 가슴의 고동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억누르면서 그 장소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흙은 부드럽게 부서졌다. 주변을 돌아보고는 화분이 놓여있는 선반 위에서 묘삽을 발견해내고는 그것으로 단숨에 파내려갔다. 망설임은 없었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필사적이었다. 사치코의 비밀을 밝혀내고 싶을 뿐이었다. 10cm정도 팠을 무렵에 묘삽에 미끄러지는 듯한 감촉이 느껴지고는, 바로 비닐 주머니가 나타났다. 안에는 빨간 카드가 들어 있었다. 보자마자 그것이 오늘 행해질 보물찾기의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흙을 털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가방에다 넣었다. 그것이 어떤 행위였는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욕심이 동한 아이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함부로 집어가는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흙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도망치듯이 온실을 나섰다. 이것으로 빨간 카드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 누구의 손에도 넘기지 않을꺼야.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면서 빠르게 고동쳤다.

 

 

 6

빨간 카드는 조커와 같았다.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오늘의 보물찾기의 행방을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빨간 카드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생각해두지 않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찾아낸 보물을 철판 깔고서 장미의 관으로 가지고 갈 정도의 배짱은 나에게 없었다. 단지, 나는 묘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급우들의 화제는 발렌타인 데이와 보물찾기 밖에 없었다. 같은 반의 사치코가 보물을 숨기는 입장이다 보니, 그 중에서도 보물찾기의 이야기가 싫어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참가할 예정의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언제, 어디다 사치코가 보물을 숨겼는지를 예상하느라 달아올라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서도, 반의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건네려고 온 학생들에 섞여서 사치코의 상태를 엿보러 온 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부터 숨기러 간다면 뒤를 따라갈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치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보물은 이미 숨겨진 뒤였다. 그리고 벌써 발견된 뒤이기도 했다.

사치코는 쉬는 시간에 몇 번이나 복도로 불려나갔다. 작년 정도로 많지는 않았지만, 초콜릿을 건네려는 학생들은 올해도 있었다. 전부다 그녀가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는 1학년들이었다. 모르니까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올해의 사치코는 작년에 비해서는 비교적 부드럽게 초콜릿을 거절하는 듯했다. 그녀가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노여움이 초콜릿의 수에 비례한 것인지... 하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사치코를 겨냥한 초콜릿을 카드만 바꿔 써서 하세쿠라 레이님에게 건네자는 따위의 생각을 하는 1학년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해버린 나로서는, 사치코가 분노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그 다음에 줄 상대를 찾는다니 본말전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날 나는 발렌타인 데이의 인간군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방과 후가 가까워져오자 나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저지른 행위의 중대함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온실로 가서 카드를 돌려놓고 와.'라고 천사가 말했다. '하지만, 간신히 손에 넣은 카드를 순순히 돌려준다니 아깝지 않아?'라고 악마가 속삭였다. '거기다 원래대로 되돌린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 그렇게 하면 오늘 아침, 카드를 손에 넣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는 않아.' - 답은 명백했다. 시간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것 따위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묻었던 카드를 순진한 척하면서 파낸다니, 좀처럼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벌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드를 손에 넣었던 그 순간부터, 보물찾기 게임을 즐길 자격을 잃은 것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카드를 이대로 가지고 있을 것인가, 카드를 되돌려놓고 보물찾기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인가... 나에게 남은 길은 둘 중의 하나였다.  
 

7

하지만, 나는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보물찾기가 시작되고서도 아직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 개시 시간이 되자, 중앙정원에 모인 참가희망자 사이에 살짝 끼어들어서 계약서 및 등록서를 받아들었다. 뒷면에 있는 지도의 한쪽 구석에는 온실이 눈에 띄지 않게 그려져 있었다. 부통들의 한 가운데에 사치코가 있었다. 나는 사치코에게 살짝 시선을 보내었다. 하지만, 사치코는 나 따위는 보지도 않고 있었다. 신문부의 츠키야마 미나코에 의한 룰 설명은 그다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왼손에 들려진 손가방 안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들어있던 빨간 카드는 말없이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스타트 직전에 부통의 쇠르들이 앞으로 불려나갔다. 나는 사치코의 동생인 후쿠자와 유미에 주목했다. 예전에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녀는 '이거'라고 할 만한 특징이 없는 눈에 띄지 않는 소녀였다. 어째서 사치코가 동생으로 삼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치코가 골랐을 정도니까 뭐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 있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나는 학원제가 끝난 직후부터 계속 그것을 생각했었다. 성적은 평균점이고, 용모도 특별히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신장은 나보다는 컸지만 작은 편이라고 할 정도였고, 무지하게 살이 쪘다거나 반대로 너무 말랐다든지 하는 신체적 특징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오늘까지도 답을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차분하지 못한 아이라는 최초의 인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부통의 쇠르들에게 패널티가 주어지고는,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참가자 집단에서 떨어져서, 낡은 온실로 향했다. 지도의 끝에 그려진 온실 따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듯해서, 온실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같은 조건이라도, 무도관은 레이가 부활동을 하는 거점이었기에 사람들이 그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갈라진 유리 너머로 보였다. 예의 장소에 도착하자, 아침에 파헤쳤던 흙은 잘 말라서, 꽤나 눈에 띄지 않게 되어있었다. 이 장소라고 알고 있지 않다면, 이제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묘삽으로 그 장소를 팠다. 역시 카드는 돌려놓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던 중이었다. 이런 장소에 숨긴다면 분명히 아무에게도 발견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다고 해도 안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게 되어버려서, 그냥 흙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돌려놓은 흙이 눈물로 흐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질러 버렸을까... 사치코에게 기억되지 못했다는 것의 화풀이일까? 그냥 돌아봐주었으면 했을 뿐인데...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 더 이상은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이 낡은 온실에서 빨간 카드와 함께 갇혀 버렸다.

 

 

 8

 

"아..."

그 사람은 갑자기 온실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안녕하셔요. 미안, 놀라게 해버린 모양이야."
"아니야."

놀란 것은,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었다. 들어온 사람이 후쿠자와 유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잠시 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마음 속의 어둠에 갇혀있던 나는, 한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있던 지도를 보고나서는 생각이 났다.

"유미양, 여기에는 카드를 찾기 위해서?"
"응. 너도?"

그녀는 아마도 나를 모를 것이다. 물론, 내가 이미 사치코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이렇게 무방비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매우 평범하고 명랑한 '아가씨'로써.

"유미양보다 조금 일찍 여기에 도착했는데, 있을 거라 생각해?"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떠보았다.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이 장소. '만약 유미가 카드를 찾기 위해서 온실에 겨우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가능성은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정보를 받았다면 사치코도 공범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이 지은 죄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도 죄인이라면 혼자서만 죄책감을 품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러네."

유미는 온실 안을 걷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곧바로 흙을 다시 파서 묻었던 그 장소로 접어들었다.

"역시"

분명히 그 장소에서 유미는 소리를 내었다. 마루판을 때내어서 흙을 북돋아, 화단을 만든 장소였다.

"뭐야, 유미양?"

나는 뒤쫓아 가서 물었다.

"아마도 여기일거라고 생각해서."

갑자기, 유미양은 그 흙덩어리에 양손을 찔러 넣고는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저, 유미?"

등 뒤에서 몇 번이나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았는지 필사적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그것도 맨손으로, 열심히... 마치 개와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몇 번을 도전한다 해도,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열심히 흙을 판다는 것은 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아마도 유미는 자력으로 이 장소를 추리한 것 같았다. 순수하게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괜찮다면 도와주지 않을래?"

유미는 손을 놀리지 않고서 중얼거렸다.

"발견하면 두 사람이서 신청하러가자."

(...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약에 그곳에서 카드가 나온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유미의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그곳에 같이 있었을 뿐인 사람에게 어째서 권리의 반을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일까... 사람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가 가지는 것이 마땅할 카드를 숨기고는 가지고 있다. 되돌려놓을까 놓지않을까 망설이면서, 지도에 싸서는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두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나는 어깨너머로 '괜찮다면'이라고 말하면서 묘삽을 내밀었다. 활기찬 유미를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파내어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그 결말을 연장시키면 시킬수록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는 없다고 생각해."

나는 목소리를 짜내듯이 말했다.

"뭐?"

유미는 한순간, 입을 떡 벌린 채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어째서 그런 걸 아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띄우고는 이쪽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곳을 파보았던 사람은 나인걸."
"에!?"

말한 이상, 나는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말하는 것이 늦어져서 미안해. 사실 나, 유미가 오기 전에 그곳을 파보았어." 
"그런..."

유미는 파낸 흙과 자신이 만든 구멍, 그리고 묘삽을 교대로 처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것으로 납득해준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 돌리고는 물어보았다.

"저, 유미양은 어째서 여기라고 생각했어?" 
"어째서라니?" 
"온실에 들어오자마자 이 장소로 직행했잖아? 무언가 근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나는 어째서인지 알고 싶었다. 유미가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면, 어떤 이유로 이 장소를 찾아내어서 왔는지. 유미 이외에는 누구 한사람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기 때문에.

"아, 그건..."

유미는 카드가 숨겨져 있던 장소 근처에 심어져 있던, 푸른 잎을 펼쳐 보이고 있는 작은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장미, 로사 키넨시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은 사치코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꽃의 이름이었다.

"... 그런 것이었구나."

나는 지고 말았다. 완패였다. 온실에 들어 온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로사 키넨시스가 교내에 심어져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어떻게 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여기까지 오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 너는 어째서 파보았어?"

보기와는 다르게, 유미는 예리하게 핵심을 찔렀다.

"그건... 땅의 색이 그곳만 달랐기 때문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로!?"

그 말을 듣자마자 유미는 묘삽을 들고서 다시 그 땅을 파기 시작했다. 카드가 거기에 묻혀 있다고 확신하고는 더 깊게 구멍을 파볼 모양이었다. 나는 자수하려면 지금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없었다면 유미는 분명히 정당하게 게임의 승자로서 빨간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유미의 등을 향해서 몇 번이나 카드를 내밀려고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를 밝힐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음을 지지 못했던 것이었다. 20cm정도 팠을 쯤에야 유미는 겨우 포기했다. 시계를 보니 4시 35분을 넘기고 있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이제는 늦었다. 시간까지 장미의 관에 카드를 들고 가지 않으면 우승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룰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참회 대신에, 유미와 함께 흙을 되돌려놓았다. 그리고 온실 안에 있던 수도에서 손을 씻고서는 둘이서 같이 온실을 나왔다. 
게임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유미와 함께 중앙정원에 갈 수 없었다.

"유미양, 신경쓰지 말고 가봐."

밖에서는 찾고 있던 학생들이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라는 느낌으로 하나둘씩 나타나서는 학교건물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자, 그럼..."
"부디 건강하시길."

유미의 뒷모습을 마중하면서, 나는 무리해서 묶고 있던 머리의 리본을 풀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알게 되었다. '유미는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사치코는 확실히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9

 

결국, 나는 온실에 돌아와서는 카드를 원래의 장소에다 묻어 놓았다. 나중에서야 나는, 카니나 시즈카가 로사 기간티아를 향해 품은 뜨거운 마음을 등나무 반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다. 시즈카가 로사 기간티아에게 자신을 보아주었으면 해서 학생회 임원 선거에 입후보 했다는 것도. 나도 그녀처럼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서 자신을 어필하면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을 안전한 장소에 두고서는 바라볼 뿐. 그래서는 마음이 전해질 리 없다. 나는 쭉 사치코가 좋았다. 그러니까 거절당해도 좋다는 각오로 몸으로 부딪치는 편이 나았다. 카드를 숨기는 대신에잊혀졌다는 것을 화내고서 생각나게끔 이러저런 말을 걸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빨간 카드도 무사히 파내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이나마 노력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치코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손을 빌릴 수 있을만한 때에는 솔직하게 부탁하기도 하는... 그런 당연한 것을 조금씩.

발렌타인 데이가 끝나고 나서, 이번에는 고등부 학교건물에 부통들의 데이트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 언니."

가사실에서 돌아가는 길에, 사치코들과 복도를 걷다보니 맞은편에서 유미가 왔다.

"저, 이번의 일요일 말인데요..."
"일요일? 아, 잠깐만... 미안하지만 먼저 돌아가 줄래?"

사치코가 우리들에게 말하자, 나는 사치코의 재봉상자를 맡겠다고 이야기했다.

"부탁해도 될까?" 
"물론. 사치코의 책상 위에 놓아둘께."

'천천히 와'라고 말하고는 그 장소를 떠나자, 유미는 우리들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녀는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다.

"자매도 닮는 걸까..."

걸으면서 나는 작게 웃었다.

"에?"

급우가 되물었다.

"아니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유미는 머리모양이 바뀐 나를, 역시나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