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4-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었고, 내 가슴은 청춘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나는 잭의 곁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 가슴아픈 장소에서 잭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나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쳤던 개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 개들은 희생 정신 때문에 존경받았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그런 동상과 기념비들은 언제나 개들이 죽은 후에 세워진다. 나는 잭이 내게 바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니란 것을 안다. 아직 잭의 정신이 맑았고 포도주 병이 항상 옆에 있던 즐거웠던 시절에, 그는 내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넌 운이 좋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나는 운이 좋아! 앞으로도 내겐 행운이 따를 거야!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Licky I am! Lucky I'll be!

I wonder what's in store up ahead!

 

나는 내 어리석음을 곧 깨닫고 '내 앞'에 대신 '나를 위하여(in store for me)'로 두 번째 줄을 고쳤다. 그리곤 시를 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면서 잭이 누워 있는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것이 그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는 잭이 바라는 대로 그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모든 애정을 담아 차가운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문지르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 다음 방금 전에 잭을 위해 지었던 시를 한 번 더 읊으며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또 쥐들을 겁주기 위해서 하수도를 향하여 짖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다리 밑의 터전을 떠났다. 지난 1년 간 나에게 집과 같았던 장소를 떠나면서 나는 잭과 잭이 내게 가르쳐 주었던 인생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방법, 하다 못해 음식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도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꼬리를 쳐들어라! 내 발들아, 앞으로 전진하자!

Upright, my tail! Forward, my feet!

  

그런데 두 번째 줄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상한(fleet)'이란 단어를 쓰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주의를 끌었다. 그래서 난 그것을 얼른 시로 옮겼다.

 

길 건너 아이가 보이는구나!

I see a child across the street!

 

정말 소년이 있었다. 이 더러운 도시에, 낙서로 뒤덮인 나무 울타리 옆에 이상한 모자를 쓴 소년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얼굴에는 사람을 끄는 미소를 짓고 혼자 서 있었다. 비록 자신감에 차 있긴 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소년은 이 도시에서 혼자 어슬렁거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을까? 엄마는 가장 위험한 적은 자동차라고 수없이 주의를 주었다. 나는 길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차가 오는지 혹은 스카가 나를 공격하기 위해 어디 숨어 있지나 않은지 살핀 다음 길을 건너 소년에게 달려갔다.

그리곤 숨을 헐떡이며 소년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그가 환영의 표시로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꼭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우리 개들은 두 귀 뒤쪽 부분을 긁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머리를 만질 때마다 우린, 정말 우리가 좋아하는 데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때까지 참아야 한다. 나는 머리를 만지는 것은 싫었지만 이 소년이 그런다면 참을 생각이었다. 내 머리를 그의 다리에 문지르면 그는 몸을 숙일 테고 그 때 내 머리를 조금 낮춰서 그의 손이 내가 좋아하는 곳에 놓이도록 해야지. 그를 가르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잭은 굉장히 빨리 배웠다. 이 소년은 잭보다 훨씬 어리니까 배우는 것도 빠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년이 나를 쓰다듬기는커녕 오히려 발길질을 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소년이 신고 있는 신발은 너무 커서 운동화 앞부분과 발가락 사이가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발로 쓱 미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놀랐고 또 실망했다. 그 모든 행동은 엄마가 내게 가르쳤던 것과 반대였다.

"꺼져 버려!"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내 상식으로는 아이가 멋진 개를 처음 보았을 때 하는 첫 말은 대부분 '내가 가져도 될까요?' 였다.

나는 내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청년기에 들어선 나는 깃털 같은 내 꼬리가 특히 자랑스러웠고, 소년 앞에서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소년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하고 있는데 거기다 꺼져 버리라는 소리까지 하다니. 나는 소년을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커다란 신발에다 만들다 망친 컵 케이크 같은 모자를 쓰고, 아주 헐렁한 바지와 글씨가 써진 야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썩 꺼져."

소년은 내게 고함쳤다. 성격이 못되었다기보다는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너 때문에 촬영이 개판이 되었잖아!"

개판이라고? 나 말고도 다른 개들이 있단 말인가? 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에워싸고 있었다. 손에 공책을 든 키 큰 여자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듯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고, 남자 하나는 사람들 뒤에서 은색 우산을 펴고 조명등을 조정하고 있었다.

"웬 개예요?" 여자가 공책에서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 개 누구 개예요? 윌리 개예요?"

"내 것이냐고요?"

두꺼운 무명으로 만든 겉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가 되물었다.

"천만에요.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화가 나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왜 사람들은 개들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잭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자신의 소유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잭과 나,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다. 만약 나보고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는 저 말라깽이는 절대로 고르지 않을 것이다. 뭐, 음흉하기 짝이 없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그 때 윌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가죽 가방을 들고 나를 향해 뛰어왔다.

"네 머리 손 좀 보자."

그는 명랑하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빗을 꺼냈다. 나는 움찔했다. 누가 내 털에 손을 대는 것은 정말 질색이었다. 더구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윌리는 아이의 모자를 벗기더니 머리를 빗겨 마치 바람에 날리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방금 빗질한 머리 위에 그 이상한 모자를 다시 씌웠다.

"이 개가 가질 않아요."

아이가 투덜거리자 윌리가 카메라 담당에게 말했다.

"이 개 어떡하죠? 나보고 저 개를 끌어 내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꼭 나를 물 것 같거든요!"

개! 나는 그 말이 싫다. 게다가 물어뜯는 짐승이라니! 잭이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잭이라면 그들에게 썩 꺼지라고 말했을 텐데.

잭과 함께 지낼 때도 가끔 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잭은 그들에게 단호한 태도로 개들은 감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지적이고, 웬만한 사람보다 더 위엄이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개들은 이름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잭이 내민 손에다 동전을 던진 다음, 개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친구라고 잔소리를 하는 잭이 귀찮아서 서둘러 떠나 버렸다.

"난 개가 좋아. 저 개를 데리고 있어요.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

공책을 들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항상 도움이 되었다. 나는 활달했고, 음식을 구해 왔으며, 쥐들을 쫓아냈고, 잭이 힘들어 할 때마다 위로했다.

"개의 머리털이 좀 부스스했으면 좋겠는데. 윌리, 해 줄 수 있어요?"

여자가 말했다. 나는 윌리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건 내 곁에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진짜로 짖는 것은 아니었는데 윌리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난 사람 머리만 만져요. 개들은 절대로 안 만진다구요. 개 미용사를 데려오도록 할게요."

나는 누운 채로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일찌감치 일어서서 이 인간들이 이상한 짓을 하건 말건 자리를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자꾸만 앞으로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좋아, 제자리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다투는 소리가 좀 사그라졌을 때 카메라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소리쳤다.

"아직 해가 있을 때 빨리 끝내도록 합시다! 앤드루, 아까 그 포즈를 다시 잡아 봐!"

아이는 얼른 내가 그를 처음 보았던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런 다음 길 건너편에 있던 나를 유혹한 그 미소와 함께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했다. 나는 소년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귀가 팽팽히 일어서며 더부룩한 꼬리는 깃발처럼 휘날렸다.

 

나는 소년 옆에 선다! 포즈를 잡는다!

귀야, 꼿꼿이 서라! 코는 반짝반짝 빛나거라!

Beside the boy! I stand! I pose!

Erect, my ears! Shine, my nose!

 

"아주 멋져!" 사진 작가가 소리질렀다.

"대단한 개야! 기다려!"

그래서 난 기다렸다. 내 앞에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사진 촬영이 끝나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용사 윌리는 그의 화장품 가방을 탁 닫더니 옆에서 기다리던 차에 탔다. 공책을 들고 있던 여자도 공책을 덮더니 윌리가 탄 차에 탔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은 후에 택시를 타고 차량의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나마 내가 바라던 아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은 카메라를 치우자마자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어른 두 명이 타고 있는 차로 걸어갔다. 그의 일을 도와 주는 사람들 같았다. 끝까지 소년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가 떠나 버리자 '소년과 그의 개'라는 나의 환상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기다렸다. 반은 호기심으로 또 반은 할 일이 없어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사진 작가 뿐이었다. 그는 복잡한 조명 기계와 촬영 도구를 정리하더니 큰 가방에 담아 지프에 실었다. 나는 꼼꼼하게 뒷정리를 하는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짐을 다 챙긴 사진 작가는 빠뜨린 것이 없는지 보려고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그는 빈 필름 통을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드디어 나를 발견했다.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자세였다. 눈을 반짝이면서 머리는 꼿꼿이 세운 채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라는 태도로 내 자리를 지켰다. 미소 지으며 다가온 사진 작가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우리 개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곳, 귀 뒤를 긁어 주었다. 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틀림 없었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친구, 아직 안 갔구나?"

그는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나에게 새 이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럭키가 아니었다. 하지만 새 이름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옛날의 내 이름은 럭키였으나, 이제는 친구이다!

Lucky I was, now I'll be Pal!

 

내 기분과 관련된 두 번째 줄을 생각하고 있는데 사진 작가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섰다. 그리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했다.

"가자."

사진 작가의 말이 떨어졌다. 나를 보고 웃는 사진 작가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사진 작가를 따라서 씩씩하게 지프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차 문을 열어 주자 별 망설임 없이 깡충 올라 탔다. 차가 출발하자 나는 의자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몹시 흥분되었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었다. 나는 유리창에 내 얼굴이 닿지 않게 주의했다.

그 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차를 탄 날이었다. 하지만 개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또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차 안에서 침도 흘리지 말고 유리창에 입술 자국도 남기지 말아야 내 앞날이 밝을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지금 내게 애정 표시를 한다면 나도 그에게 키스를 퍼부을 수 있다는 것을. 성공한 개가 되려면 때와 장소에 따라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을 못하는 개는 가죽 끈에 묶인 채 땅바닥에 앉아 평생 복종하는 법이나 배우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언뜻 창 밖을 내다보니 우리는 잭과 함께 걸어다녔던 바로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패스트 푸드점에서 스카에게 쫓겨나 도망치다가 처음 잭을 만났던 장소도 지나갔다. 스카는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운수였다. 잭이 머물렀던 장소에는 그를 기념할 무슨 표시가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 장소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저 쓰레기통과 우체통과 가로등 기둥만 있을 뿐이었고, 나와 잭 사이를 알리는 어떤 표시도 그 곳에는 없었다.

신호 때문에 차가 속력을 줄이자 멋지게 조각된 나무 문이 보였다. 바로 '투쥬르 퀴진'의 출입문이었다. 여전히 식당 유리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내가 태어난 골목을 지나는 중이었다. 나는 다리를 길게 뻗고 일어섰다. 의자가 미끄러워 잠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나는 결국 유리창에 침이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창문에 댄 채 골목을 바라보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차를 멈춘 사진 작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돌아 보았다.

"어디 아프니? 차 멀미가 나서 그래?"

그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잠시 섰다 가면 안 될까요? 제발 부탁해요.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엄마와 헤어졌어요. 잠깐만 내려 주세요.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 만날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면 내 형제들만이라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여동생 위스피만이라도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는 그저 내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는 따뜻하고 지적인 데다가 동정심이 가득했지만, 내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차는 출발했다.

"집에 거의 다 왔어, 친구."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다음에 머릿속으로 슬픔이 가득한 시를 지었다. 비가(悲歌; 슬픈 노래)라고 부르면 좋을 시였다. 언제나처럼 첫 줄은 쉽게 음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참된 시란 단어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기를 내자, 내 마음아. 고요하게, 침착하게!

아듀, 잭. 위스피. 엄마─

Be brave, my heart; be still, be calm!

Adieu to Jack, to Wisp, to Mom─

 

내 인생은 끝없는 이별의 연속 같았다. 내 슬픔과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한 사진 작가가 차를 운전하여 모퉁이를 돌자, 아직도 내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운 장소들이 뒤쪽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잠시 후 우리는 갈색 벽돌집 앞에 섰다. 옛날에 살던 곳으로부터 불과 두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이별의 노래를 지은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다 왔어, 친구."

사진 작가가 차에서 장비들을 내리면서 내게 말했다.

"여기가 너의 새 집이야. 편하게 지내도록 해라. 난 가죽 끈 같은 것은 없으니까 네가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아. 그리고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 배고픈 것 같은데 파스타 남은 것 좀 먹겠니? 네가 여기서 살겠다면 내일 아침 개 먹이를 좀 사 오마."

나는 모퉁이를 돌아서 내가 살던 골목으로 되돌아가고픈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이 사진 작가도 잭처럼 개를 묶어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집에는 숨막히게 목을 조르는 목걸이도, 가짜 다이아몬드를 박은 개줄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베들링턴테리어(털이 짧고 머리가 작은 테리어 개의 일종)가 가짜 다이아몬드를 박은 개줄에 묶인 채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은 너무도 가여워서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한때는 럭키였고 지금은 친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는 원하기만 하면 묶이지도 않은 채 따뜻하고 쾌적한 지붕 아래 살 수 있다. 게다가 파스타도 있다. 솔직히 내가 사진 작가 집에서 살기로 한 것은 파스타 때문이었다.

 

다리는 절도 있게! 입은 먹을 준비!

Legs, be steady! Mouth, get ready!

 

나는 사진 작가를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갔다. 배도 고픈데다 음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고상한 시를 지으려고 고민하는 대신 유치하고 직설적인 시를 지었다. 그런 다음 헐떡거리면서 층계를 한꺼번에 세 계단씩이나 뛰어 올라갔다.

 

스파게티 스파게티 스파게티 스파게티.

spaghetti spaghetti spaghetti spaghetti.

 

 

나는 새로운 집에 쉽게 적응했고 대체로 행복했다. 그러나 잠자리 때문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사진 작가는 나에게 방 한구석에서 담요를 깔고 자라고 했는데 나는 담요 위에서 자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담요에서 잔다면 항상 파스타를 주겠다는 바람에 결국 고집을 꺾었다. 물론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개들이 사람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우리 말을 이해한다면 사는 게 훨씬 쉬울 텐데…. 우리 개들은 사람들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온갖 표정과 갖가지 몸짓에 의지해야만 한다.

우리가 내 잠자리를 정하기까지 어떻게 다투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내려졌다. 밤에는 사진 작가가 침대에서 자고 나는 침대 밑바닥에서 잔다. 만약 그가 집에 있다면 나는 낮에도 바닥에서 잔다. 그렇지만 만약 그가 집을 비우거나 일을 하느라 암실에 있으면 그 때는 내가 침대에서 잘 수 있다. 그는 외출하기보다는 암실에서 일을 하는 때가 많았다. 그가 침실로 들어오면 나는 흐느적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에서 자는 게 지루했다는 듯이 쇼를 하면서. 침대 위에는 내 발자국이 남았지만 사진 작가는 그걸 모른 척 했다. 소파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다툼은 잠시 미뤄 두었다.

 

사진 작가와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사흘때 되던 날이었다.

"친구?"

암실에서 나오면서 사진 작가가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 사진 좀 봐. 아마 너도 믿지 못할 거야!"

그는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진을 들고 있었다. 그리곤 내가 지켜 보는 가운데 사진을 들고 창가로 가더니 햇빛에 대고 사진을 들어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내 집으로 정해진 담요 위에 앉아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섰다. 대부분의 경우 개들은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면 자기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휘파람은 다른 사람들이 개를 부를 때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나지막하고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고 감탄하여 휘파람을 분 것이다.

나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그를 이해했고, 무슨 일을 성취했을 때 맛보는 황홀감과 자부심도 이해했다.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 특히 바람 부는 날 내 털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내 멋진 꼬리가 장식 깃털처럼 휘날려서 내가 정말 멋있어 보일 때, 나는 그런 기분을 느낀다. 만약 나도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바로 그런 때 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 입은 그 생김새가 휘파람을 불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기쁜 일이 생기면 낮게 으르렁거렸는데 사람들은 그 소리를 그냥 끙끙대는 소리로 이해했다.

 

"이것 좀 봐!"

흥분한 사진 작가는 젖은 사진을 들고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누구에게 사진을 보여 주는 것은 그의 습관이었을 뿐이지 정말 내가 그의 작품을 보고 감상해 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개는 오직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새끼 낳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오해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들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동물이고, 얼마나 까다로운 미식가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태도에 감동해서 정말 열심히 그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비록 그는 내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그의 손을 핥는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내가 감동했다는 뜻이었다. 그 사진은 바로 사흘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찍은 것이었다. 나는 소년 옆에 서 있었다.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신 그리고 마카롱(달걀 흰자, 설탕, 살구씨 따위로 만든 프랑스 고급 과자) 모양의 모자가 정말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던 그 소년 말이다. 내 표정에는 경멸감이 가득했다. 소년과 그의 우스운 옷차림과 그의 거만한 미소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이었다. 내 입술은 뒤틀려 있었고, 눈은 지루함 때문에 반쯤 감겨 있었으며, 귀는 따분함으로 축 처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세련된 자태였다. 내 모습에 나도 감탄했다. 그런 자세를 취한 내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낡은 담요 위에 앉은 채 앞에 놓인 사진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진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눈꺼풀을 내리고 입술을 보일듯 말듯 뒤튼 채 목을 왼쪽으로 거의 표시도 나지 않게 살짝 돌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사진 작가가 벌떡 일어나 흥분해서 소리질렀다. 나는 '투쥬르 퀴진' 뒷문에서 그런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오븐에서 방금 꺼낸 그랑 마로니에 수플레(달걀 흰자에 우유를 섞어 구운 과자)를 보고 그 크기와 냄새에 감탄한 주방장이 사진 작가처럼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친구!"

너무 기쁜 나머지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사진 작가가 나를 불렀다.

"또 했구나. 만약 명령한다면 또 할 수 있니?"

물론 나는 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을 땐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명령을 하겠다고?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자존심이 있는 개라면 명령 따위는 받지 않는다. 부탁한다면 또 모르지만.

"뭐라고 할까? 뭐라고 명령할까?"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도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났어, 생각났어!"

별안간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비웃는 모습을 해 봐."

나는 하품을 하고, 관심 없다는 태도로 몸을 돌린 다음 담요 위에 다시 앉았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십자가 모양으로 앞발을 포갠 다음 머리를 올려놓았다. 사진 작가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리곤 한숨을 쉬면서 내 귀를 긁었다.

"친구, 제발 부탁이야. 날 위해 해 주지 않겠어? 비웃는 표정을 지어 봐."

아까보다는 훨씬 정중한 말투였다. 겸손한 부탁은 고함 지르며 하는 명령보다 훨씬 무게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들고 사진 작가를 바라보면서 비웃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 작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재주를 넘었다. 정말 보기에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나는 방 안에 우리 둘 외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바보짓을 시키기란 얼마나 쉬운가! 나는 속으로 낄낄 웃었다. 별안간 사진 작가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러더니 냉장고로 달려가서 차가운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하나 꺼내 왔다. 사진 작가는 그것을 내 코 앞에서 흔들었다.

"한 번 더 해 봐."

나는 또 다시 하품을 했다. 뇌물로 나를 어떻게 해 보시겠다고요? 하나님, 맙소사.

사진 작가는 내 태도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는 뇌물을 냉장고에 도로 갖다 두었다. 그리곤 다시 내 앞으로 오더니 예의 바르게 부탁했다.

"친구, 비웃는 포즈 좀 해 줄래? 부탁한다."

나는 그를 위해 다시 한 번 그 포즈를 취했다. 그는 너무 좋아서 또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나는 마침내 우리가 파트너이며 친구가 되었다는 표시로 그의 손을 핥아 주었다.

이렇게 해서 화려한 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