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2- 첫 만남

골목 끝에서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내 앞에는 넓고 복잡한 길이 있었다. 그 길은 내가 살았던 조용하고 쓸쓸한 골목과는 아주 달랐다. 우선 나는 주변의 냄새부터 맡았다. 그 다음에는 귀를 높이 치켜세우고 고개를 갸우뚱한 채 거리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는 감각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할 일은 코로 냄새를 맡는 거야. 그 다음에 귀로 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눈으로 살펴야 해. 절대로 이 순서를 잊으면 안 된다."

엄마가 그 말을 수십 번 한 덕분에 나는 그 순서를 정확히 기억했다.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다. 쉬워 보였다. 그런데 어리석은 형은 냄새도 맡지 않고 귀로 들어 보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가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엄마는 그에게 참을성이 없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었다. 어디선가 위험을 알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우선 냄새부터 맡기 시작했다. 처음 맡은 것은 가솔린 냄새였다. 그 냄새는 오른편 길에서 막 출발한 커다란 버스의 뒤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음에는 신문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왼쪽 건물 입구에 접힌 신문이 놓여 있었다. 신문에서는 남자 냄새도 났다. 잠시 후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내 코의 감각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의 입 냄새는 담배 냄새와 섞여 퀴퀴했다. 나는 예전에 식당의 접시닦이들이 뒷문에 모여서 담배를 피울 때 똑같은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이제 다음은 귀를 사용할 차례였다. 다는 귀를 그 남자 쪽으로 기울였다. 그는 탁 하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더니 담배를 대고 깊이 빨았다. 이윽고 그의 냄새는 신문, 담배 냄새와 함께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생생하고 독한 냄새는 사라졌다. 그런데 자꾸만 어디에선가 아침밥 냄새가 났다. 골목에서부터 맡았던 그 냄새는 아직도 공기 한가운데를 떠돌면서 나를 유혹했다. 나는 너무도 배가 고팠다. 하지만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이었다. 여기저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차, 고양이, 사람, 사나운 개, 그리고 이것들이 속에 감추고 있는 위험성들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들은 겉보다는 속이 훨씬 더 위험한 것들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이곳 저곳 냄새를 맡고, 사방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골목에서 나와 큰 길과 나란히 놓인 인도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아기가 누워 있는 유모차 곁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유모차에서 끈끈한 손이 뻗어 나오더니 피할 사이도 없이 내 왼쪽 귀를 잡았다. 나는 펄쩍 뛰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몸과 접촉했는데 그 감촉은 정말 싫었다. 그 아기는 아주 작았지만 그래도 내 귀를 잡자 무척 아팠다. 귀는 매우 감각이 예민한 곳이다. 나는 깨갱깨갱 비명을 질렀다.

"맥스!"

아기 엄마가 소리를 지르더니 깜짝 놀라며 내 귀를 아기의 손에서 떼어 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몹시 놀랐다. 내 귀는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게다가 아기의 손은 더러웠다. 손 안에 반쯤 먹다 만 과자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개를 만지지 마, 알았니? 절대로 안 돼!"

아기 엄마가 아직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귀에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을 걱정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기는 손을 마구 휘젓기만 할 뿐 엄마의 말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까불대기나 하면서 엄마의 주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 행동은 내 형제들과 너무도 비슷했다. 내 마음은 어느덧 아이에게 개를 친절히 대하는 법을 우아하게 설명하는 엄마에게 기울어졌다.

"맥스? 내 말 듣고 있니?" 아기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맥스, 너 잘 들어. 네 엄마가 너한테 개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고 계시잖아. 잘 들으란 말야. 나는 그에게 명령했다.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기 눈은 공처럼 둥글었고 콧속에 있어야 할 코딱지는 어쩐 일인지 윗입술에 붙어 있었다. 아기의 겉모습은 정말 지저분했다. 손톱에는 때가 까맣게 끼었고 오른쪽 집게 손가락을 치켜 들고는 당장이라도 내 얼굴을 찔러 댈 기세였다.

"개는 더러운 동물이야, 맥스! 그리고 위험해! 병을 옮기거든! 게다가 사람을 물기도 한단 말이야!"

아기 엄마의 말에 나는 너무도 놀라 기절할 것 같았다. 그녀는 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떠들었다. 처음엔 이 새빨간 거짓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곧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게 주먹질을 해 대는 맥스 쪽으로 다가가 손에서 먹다 만 과자를 빼 낸 다음 한 입에 삼켜 버렸다. 그리고는 아직은 짧지만 멋진 내 꼬리를 한 쪽으로 비스듬히 세워 흔들었다. 너 같은 것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표시였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침밥 냄새는 계속해서 큰 길 아래쪽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흘러 나왔다. 나는 인도를 따라, 짐 꾸러미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피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길에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란 걸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쁜 듯 서두르는 데다가 정신도 나간 듯이 보였다. 그리고 별 냄새가 다 났다. 정말이지 사람들에게선 아주 독한 냄새가 나서 그 냄새만 맡으면 이건 사람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또 여자와 남자를 구별해 주는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에는 비누, 향수, 분, 화장품, 샴푸와 아침 식사 때 먹은 음식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어떤 냄새들은 처음 맡는 것이라 낯설었다. 물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냄새도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가 가르쳐 준 것들로, 예를 들어 버터는 엄마가 프랑스 식당 뒷문에서 식사를 했을 때 입술에 묻혀 왔던 것이다. 크림도 좋아하진 않지만 커피처럼 내겐 익숙했다. 베이컨과 빵 냄새도 나는 구별할 수 있었다. 비누 냄새도 낯설지 않았다. 내 형제들을 잡아 간 접시닦이들의 손에서도 비누 냄새가 났었기 때문이다.

나는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여자들이 그런 것을 뿌리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개의 세계에서는, 남자들은 자연스럽고 오래 가는 여자들의 냄새를 가장 좋아한다. 때때로 좀 더 매력적인 냄새를 지닌 개들이 있긴 하다. 남자 푸들은 여자 푸들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여자 푸들에게서 아무런 매력을 느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오히려 요크셔테리어, 몰티즈와 댄디 딘몬트처럼 몸집이 작은 개들에게서 생기 발랄하고 상큼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골든 리트리버(사냥개의 일종)에게서는 아주 온화하고 따뜻한 흙 냄새가 났고, 뉴 펀들랜드(캐나다 동해안에 있는 섬이 원산인 큰 개)에게선 해초와 바다 냄새가 났다.

이 때만 해도 나는 여러 종류의 개들을 알지 못했다. 아직 어려서 다른 개들을 사귈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잃고 홀로 거리를 헤매던 첫 날에 벌써 사람들이 자기 본래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냄새들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개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존심 없는 개들이나 향수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높이 세우고 으스대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헤쳐 나갔다.

 

일어서라, 내 꼬리야! 내 발들아, 앞으로 전진!

이빨들아, 먹을 준비! 햄버거를 향하여 전진!

Upright, my tail! Forward, my legs!

Prepare, teeth! We approach hamburger!

 

나는 금방 둘째 운을 '햄버거'가 아닌 '고기(meat)'로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유명한 시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시를 바로 읽기도 하고 거꾸로 읽기도 하면서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는 가게로 다가갔다. 식당 카운터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지어 서 기다리고 있었고, 주문을 받은 점원들은 이상하게 생긴 종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뒷문으로 갔다. 엄마는 식당에서는 음식을 어디에 두는지, 어디로 가야 음식을 구할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었다. 식당에는 종업원들이 쉬는 방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개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있다. 종업원 방에는 대개 뒤로 난 문이 있으며 그 문은 대부분 열려 있다. 그래서 배고픈 개가 음식을 구하려면 바로 뒷문으로 가는 게 좋다.

나는 내가 문 옆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마음 속으로 그려 보았다. 우선 아주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눈을 크게 떠야지! 그리고 굉장히 배고플 때가 아니면 발로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태도는─물론 어쩌다 한 번씩 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라 생각했고, 나 또한 엄마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 음식 냄새와 '달걀 맥머핀이오', '블랙 커피 나가요' 하는 고함 소리로 정신없는 식당 안을 가로질러 나는 곧장 뒷문으로 갔다. 바라던 대로 그 문은 정말 열려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자리에는 이미 끔찍하게 생긴 개가 먼저 와 있지 뭔가! 내 경쟁자는 근육질에다가 얼굴이 넓적하고 가슴도 떡 벌어졌다. 그 개의 짧은 털은 본래는 하얀 색이었지만 지금은 때가 타서 얼룩얼룩했고 눈동자의 가장자리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또 한쪽 눈 아래에서 시작된 톱니 같은 상처는 입술가지 이어져 있었고 입술은 위로 치켜올라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 입은 영락없이 으르렁대는 모습이었다.

 

내 털들아, 부풀어 올라라! 오, 제발 용기를 내자!

Upright my fur! Be brave, O pup!

 

나는 안타깝게 내 자신에게 말했지만 등판의 털은 무서움 때문에 곤두섰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시를 끝낼 수 없었다. 엄마가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무서운 개였다. 역시 엄마가 옳았다. 나는 이 개가 너무도 무서웠다. 그는 덩치가 엄청 크고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말할 수 없이 사나워 보였다. 반대로 나는 몸집도 작고 자신감도 없을 뿐더러,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똑같이 배가 고팠다.

그에게서는 욕심 많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 이 식당 문은 그의 것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까치발을 해 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튀며, 꽁무니에 매달린 채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토막처럼 못생긴 그의 꼬리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적대감과 위협의 표시가 분명했다. 나는 그가 신체적으로 나보다 우월하고 순서도 나보다 앞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너무 배가 고파 물러설 힘조차 없었다.

그러자 그는 윗입술을 올려 이를 드러냈다. 개의 이빨이라고 하기에는 무시무시할 만큼 날카롭게 닳은 이빨은 색깔로 누런 데다가 특히 송곳니가 길고 뾰족했다. 그에 비해 내 이빨은 아직 젖니였다. 크진 않았지만 뾰족하기는 해서 지금까지는 밥 먹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니 비록 젖니이긴 하지만 나도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내 이빨을 내보였다. 하지만 내가 마음 속으로 스카(scar; 흉터)라고 이름 붙인 그 개는 여전히 사나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계속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내 딴에는 정말 용감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덩치도 컸고 경험도 많았따.

 

마침내 나는 후퇴하기로 결심하고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리고 도망치면서도 그를 노려보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테니까 그의 얼굴을 기억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깡패는 절대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오늘은 도망가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정말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건 지금 당장은 내가 패배자이다. 그의 공격권에서 충분히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나는 지쳤고, 망신을 당했다. 힘이 모자라 음식을 포기하고 도망가기는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는 법!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놀려 먹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오른쪽 다리를 들어 그가 자신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벽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면서 배고픔에 지친 채 길을 떠났다. 아마도 스카는 오랫동안 내 오줌 냄새를 맡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배고픔도, 창피함도 견딜 만 했다.

 

 

나는 아이가 필요했다. 엄마는 강아지에게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너무 엄하다. 무겁기만 하고 예쁘지도 않은 밥그릇에다 맛도 없는 밥을 담아 먹으라고 한다. 또 우리가 편한 곳에서 자는 것도 참지 못한다. 지하실이나 창고 또는 철사로 만든 개집─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는 '우리 개는 자기 집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손톱만큼도 맞지 않는 말이다─ 또는 삼나무 부스러기로 속을 넣은 벼룩 방지용 개 침대에서 자게 한다.

우리들은 개밥 대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기 좋게 썰어 주는 것이 좋다. 특히 파스타(이탈리아 국수의 총칭. 마카로니와 스파게티가 대표적)는 가장 즐기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못생긴 개밥그릇이 아니라 정찬용 접시에 음식을 담아 사람들이 밥을 먹는 식탁 바로 옆 바닥에 놓아 주었으면 좋겠다. 또 도망자들이나 가두어 두면 어울릴 것 같은 개장보다는 삼나무로 만든, 지붕이 뾰족한 집에서 살고 싶다. 집 입구에 큰 글씨로 개 이름을 써 주면 더욱 좋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과 함께 새털 베개에 머리를 대고 귀를 편하게 펼친 다음, 사람의 숨결과 땀 냄새가 밴 무명 침대보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자는 게 제일이다.

이러한 우리의 모든 바람을 이해하는 건 아이들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는 아이가 없었다.

스카에게 쫓겨 큰 길에서 한 걸음 물러난 나는 바쁘게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람 곁에 바싹 붙어서 걸어다니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개를 데리고 다니며 커다란 건물로 들어가서는 단추를 눌러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기계 상자를 부른 다음에 그 상자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에 쏙 드는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수십 가지 냄새가 나는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있었다. 길고 제대로 손질하지 않은 수염에서는 전에 먹었던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풍겼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고,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의 앞에 놓인 컵 안으로 동전을 떨어뜨렸다.

"커피 마실 돈 좀 주세요. 커피 마실 돈 좀 주세요."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만약 누군가 동전을 던져 주기라도 하면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복 받으세요, 복 받으세요."

그에게는 비누도, 샴푸도, 치약도, 애프터 셰이브 로션의 냄새도 없었다. 오직 커피와 담배와 불결한 냄새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흙 냄새, 오래 된 도넛과 상한 햄버거 냄새가 뒤섞인 기가 막히게 좋은 냄새였다. 나는 살며시 그의 곁으로 다가가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곁에 앉았다. 그가 몸을 숙여 내 귀 뒤쪽을 긁어 주었을 때, 나는 그가 아이 다음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착한 녀석, 착한 녀석."

그가 내게 말했다. 그는 무슨 말이든 두 번씩 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착한 계집애'라고 부르지 않는 한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접시닦이들이 내 형제들을 불렀던 것처럼 누가 나를 '암놈'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견딜 수 없다. 나는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아 보려고 그의 손을 핥았다. 손에 침 묻은 과자를 쥐고 있던 버르장머리 없던 아기, 맥스를 제외하곤 이 때가 제대로 된 사람과 처음 신체적으로 접촉한 날이었다. 그의 손에서는 여러 가지 맛이 났는데 그 중에는 음식 맛도 있었다.

 

오, 처음 핥아 보는 사람의 손!

오, 더러움! 오, 맥주 맛! 감초 막대기 사탕 맛도 나는구나!

O hand of man! My first to lick!

O dirt! O beer! O licorice stick!

 

사실 그 때 내가 맛보았던 것이 감초 막대기 사탕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기침용 시럽 같기도 했다. 그 때 난 풋내기 시인이었지만,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라면 진실로부터 살짝 벗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가장 겉에 입은─그 아래로 최소한 두 개 이상 다른 겉옷을 입은 것 같았다─ 외투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상하게 생긴 덩어리를 꺼내 내게 주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재빨리 그것을 한 입에 삼킨 다음 다른 주머니에 먹을 것이 또 있지나 않을까 하여 애타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미안하다, 아가야. 미안하다, 아가야."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배고픈 강아지에게 먹을 것 좀 주세요. 배고픈 강아지에게 먹을 것 좀 주세요."

마치 노래하듯 선율에 실어서 그가 구걸을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가던 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리곤 나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그의 손에 동전을 떨어뜨렸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파스타를 먹을까? 스튜는 어떨까? 나는 엄마한테서 들었던 모든 음식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 중 개에게도 적당한 것은 무엇일까? 야채 수프도 괜찮은데…. 나는 내 밥을 사러 어디로 가면 좋을지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나의 새 친구는 컵에 동전이 가득 차자 동전들을 겉옷 주머니에 쏟아 부었다. 그 다음 다시 빈 컵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개를 돌볼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노래를 되풀이했다.

 

그는 쨍그랑거리는 주머니를 흔들어 보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앉아라."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우리는 좀 전에 내가 비굴하게 도망쳤던 패스트 푸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스카가 찾아올 경우를 대비해 보호자가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는 나를 먹여 줄 것이고 그와 함께라면 스카의 땅도 뺏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만약 식료품점으로 간다면 나는 얌전히 그의 발뒤꿈치를 따라 걸을 것이다. 그의 주머니에 든 동전 숫자로 보건대 식료품점에 갈 시간이 멀지 않았다. 우리는 벌써 필요한 식료품을 살 만한 돈을 충분히 벌었다.

"이 개 이름이 뭐예요?"

동전을 찾느라고 지갑을 뒤지던 여자가 물었다. 내 새 친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가장 멋진 폼으로 앉아서 고개를 약간 갸우뚱한 채 내 친구가 무어라고 말할지 귀를 기울였다. 이름은 대단히 중요하다. 엄마와 형제들이 내게 붙여 주었던 애칭 말고는 나는 아직까지 진짜 이름이 없었다.

"럭키(행운)입니다." 친구가 여자에게 말했다.

"럭키예요." 그 순간 시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나는 운이 좋아, 앞으로도 내겐 행운이 따를 거야!

오, 행운아여 행운아여 행운아여!

Lucky I am, and Lucky I'll be!

O lucky lucky lucky me!

  

이것은 아주 잘 지은 시는 아니지만 내 이름을 넣어 지은 최초의 시이다. 또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친구로 갖게 된 것이 너무도 기뻐 서둘러서 지은 시이다. 나는 그의 침대보가 부드러운지 혹시 담요에 음식물을 흘린 자국은 없는지 궁금했다. 나는 너무도 행복했고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차서, 다음 번에는 방금 지은 시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시를 지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그 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나는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내가 새 친구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보다.

저녁에 친구는 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그 집은 내가 살던 집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내가 더러운 골목에서 골판지 상자를 집 삼아 살았다면 이 남자는 강가 다리 밑에 크고 납작한 함석판을 지붕 삼아 살고 있었다.

"자, 럭키. 이제 다 왔다."

그는 함석판을 들어올린 다음 제법 예의바른 태도로 나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곤 불을 지펴 그 날 번 돈으로 사 온 캔에 든 음식을 데웠다.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내 이름은 잭이야."

집이 초라해서 조금 실망한 뒤였지만, 개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 말씨에 감동했다. 별로 오래 살지도 않았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에게 불친절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사랍시고 '야, 임마' 하는 것은 보통이고, 음식을 줄 때도 그 음식이 아무리 비싼 고급 프랑스 요리일지라도, 개 앞으로 휙 던지기 예사였다. 성격이 까다로웠던 우리 엄마는 사람들이 음식을 던지는 것에 대해 자주 불평했다. 언젠가 '투쥬르 퀴진'에 다녀온 엄마가 몸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핥으면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음식을 줄 때는 최소한 소시송 앙 브리오슈(소시지 빵)를 내올 때처럼 우아하게 접시에 담아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니?"

물론 나는 잭과의 첫 식사를 고급 요리와 비교하고 싶진 않다. 잭은 깡통에 든 스튜에다가 강에서 떠 온 물을 타서 내게 주고 자신은 맥주를 마셨다. '끄윽' 트림을 하고서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따뜻한 동지애를 느꼈다. 비록 우아함은 부족했지만 그와 함께 있으니 무서움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마음이 든든했다. 내가 몸을 둥글게 말고 옆에 눕자 잭은 가장자리가 다 닳아 빠진 낡은 군용 외투를 꺼내 그와 나를 덮은 다음 양 옆을 꼭꼭 눌러 아물렀다.

그렇게 나와 잭은 함석 지붕 아래서 편안한 첫 날 밤을 보냈다.

  

오, 행운아여 행운아여 행운아여!

O lucky lucky lucky me!

  

잠들기 전 나는 다시 한 번 내 시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