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5- 화려한 모델 생활

나와 찌그러진 머핀(작고 동그랗게 구운 빵) 같은 모자를 쓴 소년을 찍은 사진은 그 다음 일요일 <패션 시대>라는 신문의 부록에 실렸다. 나와 사진 작가는 그 사진을 보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사진 작가는 혹시라도 이웃 사람이 집에 오면 볼 수 있게 그 사진이 실린 쪽을 펼쳐서 커피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다. 그 날 아침 늦게 나는 바닥에 엎드려서 라자냐(치즈, 토마토 소스, 다진 고기 따위로 맛을 낸 이탈리아 요리)를 먹고 있었고, 사진 작가는 보풀이 인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그가 전화를 받았다.

"네, 제 개 맞습니다. 무슨 종이냐고요?"

그가 고개를 빼고 나를 보았다. 무슨 종류라니? 나는 머리를 쳐들고 하품을 했다. 그러면 좀 다르게 보일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 중에는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비단결 같은 털과 오만한 얼굴을 가진 아프간 개가, 떠돌이 양치기 개와 잠시 놀아난 어미 개가 촌구석에다 낳은 세 가지 색 털을 가진 셰퍼드보다 더욱 쓸모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개의 능력 차이는 전적으로 타고난 성격과 지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은 어릴 때 엄마로부터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 터득한다. 나는 재치도 있고 얼굴도 잘 생겨서 언제 어디서든지 최고의 쇼를 펼칠 수 있다. 물론 내 멋진 꼬리가 쇼를 돋보이게 하는 데 한 몫 한다.

다행히 사진 작가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윙크했다. 인간들은 이상한 행동을 잘 한다. 나는 사진 작가의 윙크에 어느덧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수화기에다 말했다.

"혼혈이에요. 아주 독특한 혼혈이죠."

독특하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몸이 잘 빠졌다', '맵시 있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두 번째 전화한 사람은 내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네, 이름은 친구예요. 그리고 나이는… 음… 아직 어려요."

그는 나를 보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도 되받아 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는 지금 몇 살인지 몰랐다. 한 두 살쯤 되었을까? 사람들은 개 나이를 이상한 방법으로 계산한다. 나는 사람으로 치자면 지금 십대일 것이다. 그러나 어리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

 

내 몸값에 대해 묻는 전화도 몇 건 있었다. 몸값이라고? 개들은 돈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시견은 그저 집이나 제대로 지키면 된다. 어떤 때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짓을 하는데도 돈을 준다. 나는 땅 욕심도 없고 사람들을 위협할 마음도 없었지만, 잭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밤마다 감시견 노릇을 했다. 나는 잭의 보호자였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므로 돈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안내견들도 돈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비심 때문에 그 일을 한다. 그들은 주인이 복잡한 거리를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빵빵대는 차들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데 큰 기쁨을 느낀다. 지난 날 나는 잭의 몸이 허약해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를 도왔던 것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좋아서 도왔을 뿐인데 왜 그런 일에 돈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사냥개들은 사냥터에서 꿩이 숨어 있는 덤불을 알려 주지만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그들의 고상하고 세련된 자태를 칭찬해 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집에서 사는 애완견들은 그저 주인이 무릎에 올려 놓고 긁어 주고, 털을 다듬어 주고, 먹여 주면 만족해 한다. 공을 굴리며 장난을 하다가 주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을 느낀다. 그런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사지 못한다. 나는 다양한 능력을 지닌 개이다. 감시견 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책임감 있게 잭의 집을 지켰고, 안내견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넓은 마음과 끈기로 잭을 안내하고 이끌었다. 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즐기기 위해 또는 잡아먹기 위해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필요에 따라 내가 사냥터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맑은 가을 아침에 멋진 꼬리를 휘날리면서 사냥터를 주름잡는 나를 상상해 보라!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애완견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돈을 받는 것은 역시 사양하겠다. 사진 작가가 내 몸값이 아주 비싸다고 하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비싸요."

그는 내 몸값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그는 비싼 모델입니다."

사진 작가의 말에 그들은 더욱 흥미를 느꼈는지, 내가 언제 시간이 나느냐고 물었다.

"다음 화요일 쯤?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 일정표 좀 볼게요."

나는 담요 위에서 못마땅한 소리를 내면서 입술에 묻은 토마토 소스를 핥았다.

"내 말은, 그의 일정표라는 뜻이에요."

내 기분을 알아차린 사진 작가가 얼른 고쳐 말했다.

"그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사실 나는 그 때 전혀 바쁘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 포즈를 취했고, 단 한 번 비웃는 표정을 지었으며, 단 한 번 신문의 부록에 사진이 실렸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찾는 데가 많아졌다.전화하는 사람마다 그들이 '한 방'이라고 부르는 일을 위해 나와 시간 약속을 하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사진 작가는 내가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내 왼쪽 귀 뒤를 긁어 주면서 그 말은 누굴 한 방 때려 눕힌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냥 사진 '한 방' 찍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넌 그냥 저기 서서 비웃는 모습만 보여 주면 돼. 그럼 난 부자가 될 거야."

나는 그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우리."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부자가 될 거야. 그리고 유명해질 거야."

십자말풀이도 끝내지 않았는데 그는 신문을 덮고 커피 잔을 씻더니 내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 보았다.

"저기 말야, 친구?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좀 씻겨야 할 것 같아."

 

일요일 오후를 망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목욕을 해야 하다니! 이것은 최악의 경우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목욕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대충 한 번씩 핥아 주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깨끗했다. 한 번은 골목 근처의 진흙탕에서 뒹굴며 노는 바람에 온 몸이 진흙 투성이가 된 적이 있었다. 온 몸을 마구 흔들어 몸에 묻은 진흙을 사망으로 털어 보았지만 그것만으로 깨끗해지진 않았다. 그 때 엄마는 혀로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아 깨끗이 해 주었다. 물론 엄청난 꾸중도 들었다. 몸이 더러우면 얼굴이 아무리 잘 생겨도 소용이 없다고 엄마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 댔다.

엄마와 헤어진 다음에 나는 잭과 살았다. 잭과 나는 목욕을 하지 않았다. 강은 우리가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지만 항상 누런 거품으로 덮여 있어서 그 물로 목욕을 했다가는 오히려 몸이 더 더러워질 것 같았다. 비록 우리 겉모습은 때가 덕지덕지 덮여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잭과 나의 명예의 표시로 생각했다. 더럽기는 했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의 위엄을 지켰다. 어느 습기 가득한 아침의 일인데 한 번은 잭이 낄낄 웃으며 그의 신발에서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신발은 밑창이 떨어져 너덜거렸는데 바로 그 부분에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우리 사이의 언어 차이 때문에 그 날 아침 잭의 신발에서 발견했던 곰팡이에 대해 사진 작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몸에 묻은 더러움을 털어 낸다면 사진 작가는 나를 씻기려는 계획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사진 작가가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나는 살금살금 발 끝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몸을 납작 엎드려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더러움을 털어 내기 위해 침대 밑을 마구 뒹굴었다.

"친구?"

사진 작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숨소리를 죽이고 숨어 있었다.

"친구?"

그가 나를 또 불렀다. 나를 불러 내기 위해 거짓 애정과 우정을 가장한 목소리였다. 난 그것을 무시했다.

 

오, 조용하게, 숨 죽이고 내 굴 속에서 꼼짝 말자!

만약─

O silently, stealthily, safe in my lair!

If only─

 

자주 벌어지는 일이지만 완벽한 음을 찾는 데 열중하다 보니 두 번째 줄을 마칠 수 없었다. 두 번째 줄의 음을 '쾌활한(debonair)'이라는 말로 맞추면 어떨까? 아니면 '저돌적인(devil-may-care)'이라는 말을 써도 아주 멋질 것 같다. 그런데 음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느라 꼬리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끝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여기 있었군!"

사진 작가는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내 꼬리를 잡아당겼다. 꼬리 끝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내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침대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할 수 없이 나는 목욕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내가 물이 반쯤 찬 욕조 안에 앉자 사진 작가는 내 털에다 샴푸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내 몸에 물동이로 물을 퍼붓는 동안 나는 이를 딱딱 마주치면서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위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다 씻고 나자 사진 작가는 두툼한 타월로 나를 감싸 안고 젖은 털을 비벼 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어 드라이어로 내 털을 말린 다음 빗질을 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잘 참았다. 하지만 그가 내 목에 목걸이를 묶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목을 비틀어 목걸이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사진 작가는 순순히 자신이 졌다는 것을 시인했다.

"사실 이 목걸이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멋있어 보일 것 같았거든. 그럼 그냥 두자. 좋은 생각이야, 친구."

사진 작가가 말했다.

마치 자기가 생각해 낸 것 같군, 흥! 어쨌든 그는 가죽 목걸이를 서랍 속에 도로 넣었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 몸값은 마구 치솟았다. 사진 작가가 수표가 든 봉투를 열어 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흡족한 듯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그 수표를 안전한 장소에 보관했다. 그와 나는 날마다 지프를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보그> 지에 실을 사진은 바닥까지 끌리는 흐늘흐늘한 가운을 입은 호리호리한 여자와 함께 증권 거래소의 계단에서 찍었다. 사진 작가가 내게 신호를 보내면 나는 깔보는 듯한 자세를 잡았고 이어 카메라가 찰칵 했다. 캘빈 클라인의 광고는 맨몸에 바둑판 무늬 타월만을 걸친 피곤한 얼굴을 한 남자와 함께 찍었다. <구르메>의 표지를 찍을 때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있는 어떤 언덕에서 피크닉 도시락을 비웃듯 바라보았다. 나는 입가에 우유를 묻힌 채 여러 가지 잡지를 위해 포즈를 취했고 광고판에도 등장했다. <베니티 페어>에도 내 사진이 실렸는데 그것은 칸느 영화제에 나타난 나를 취재하려고 내 앞길을 막은 한 떼의 파파라치(유명인을 미행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비웃는 사진이었다.

나는 전 세계의 공항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었고 프랑스 어와 영어 뿐 아니라 이제는 이탈리아 어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폴 뉴먼의 샐러드 드레싱을 비웃는 광고를 찍어 수만 달러를 모은 다음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그리고 경쟁사의 제품을 비웃으며 개밥 광고도 찍었고, 그 다음에는 간 맛이 나는 너겟 크런치─윽, 정말 그 맛은 구역질이 났따─를 먹는 광고도 찍었다. 뿐만 아니라 스트롬 서먼드 상원 의원과 함께 정치 포스터에도 등장했다. 제이 리노 쇼에 출연했을 때는 시빌 셰퍼드와 같은 소파에 앉았는데 셰퍼드는 나처럼 비웃는 표정을 지으려다가 대신 깔깔거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 순간 셰퍼드는 실크 드레스 어깨 끈까지 흘러내리고 말았다.

나는 달력에 실을 사진도 찍었지만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는 것만은 거절했다. 또한 자서전 쓰는 것도 거절했다. 그러나 출판업자들은 거의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서 가장 유명한 대필자를 구해 주겠다고 끈질기게 졸라 댔다.

 

물론 나를 흉내낸 개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독일산 셰퍼드인에 그는 명령을 받으면 매력적으로 입을 벌릴 수는 있었지만 나처럼 당당하게 깔보는 표정을 짓지는 못했다.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했던 한 쌍의 포메라니안(애완견으로 포메라니아 종의 작은 개)은 둘이 동시에 그들의 윗입술을 들어올렸지만 칭찬도 받지 못했고 더 이상의 광고 요청도 받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사진 작가와 나는 그 날 저녁 늦게까지 그 쇼를 시청했는데, 그들이 단지 불쌍한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만족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역사와 냄새가 밴 낡은 담요가 사라졌다. 대신 내 잠자리는 삼나무 부스러기를 채운 '엘.엘.빈' 표 개 침대로 수준이 높아졌다. 값도 비싸고 멋진 침대이긴 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함께 지낸 지 1년 쯤 되었을 때, 사진 작가와 나는 우리가 살던 조촐한 아파트로부터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방 일곱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 아파트는 8층이었는데 아파트에서는 강 풍경이 잘 보였다. 나는 발코니에서 강을 내려다 보며 지난 날을 추억하곤 했다.

사진 작가는 남서부 지방의 특색을 지닌 능직(직물 기본 조직의 하나)과 도자기들로 아파트 내부를 장식했고 바닥에는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는 값비싼 나바호 양탄자를 깔았다. 나는 그 양탄자를 밟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든 것이 새 것이었고 값도 비쌌고 완벽했지만, 독창적이거나 개성은 없었다.

사진 작가는 너무 바빠졌다.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사교 모임에 나가기라도 하면 모든 사람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는 부자가 되었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나를 산책시킬 사람까지 고용했다. 새로 고용된 사람은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온 일거리를 얻지 못한 배우로, 매우 유쾌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마다 고집스럽게 끈을 사용했다. 끈에 묶인 채 끌려 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슬슬 도망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옛날에도 똑똑했고 지금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명하게 극복했다. 어느 날 나는 개의 지적 능력에 따라 개 등급을 매겨 놓은 책을 보게 됐다. 그 책을 읽은 다음에 푸들을 가진 사람은 기뻐했고, 아프간 하운드를 가진 사람은 실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책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 의심스러웠다. 그 책이 소개하는 개를 테스트하는 방법이란 것이 겨우 개의 머리에 타월을 덮은 다음 그 타월로부터 얼마나 빨리 빠져 나오는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정말 별의 별 우스운 테스트도 다 보겠다. 그런 식으로 테스트를 하다가는 진짜 중요한 요소들은 빼먹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나는 삼나무 부스러기를 채운 내 침대에 누워 있고, 그 방에서 사진 작가는 친구들을 잔뜩 불러들여 놀고 있다(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방 안에는 짜증나는 음악이 쩡쩡 울리고, 그의 친구들이 피워 대는 담배 때문에 방 안은 불쾌한 회색 연기로 가득 찼다(이런 일도 실제로 벌어졌다). 이 때 누군가가 내 머리 위로 타월을 떨어뜨렸다면?

그 책에 의하면, 내가 그 타월을 밀어 내면 나는 '굉장히 똑똑한' 개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푸들이건 아프간 하운드건 들개건 코요테(북미 서부 대초원의 이리)건 간에 정말 똑똑하고 자존심이 있는 동물이라면 오히려 타월을 던져 준 것에 고마워하며 그것을 들어올린 다음 그 난장판을 안 보려고 눈을 가리고 편안하게 잠이 들 것이다. 나는 여러 혈통이 섞였기 때문에 그 책에는 내 혈통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영리한 개이며, 언제 타월을 덮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나는 완벽한 탈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하루 하루가 너무 빡빡한 데다가 간섭을 많이 받고 있어서, 혼자서 무엇을 생각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잭과 함께 살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잭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동안 난 자주 혼자서 돌아다녔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따로 운동할 필요가 있었고 잭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때때로 나는 그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도 돌아다녔다. 모퉁이를 돌아서 내 이웃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았다. 사실 나는 언제나 두 가지를 살피면서 다녔다. 하나는 스카로, 그를 보면 잽싸게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그 땐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여동생 위스피로, 나는 항상 위스피가 어느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

스카의 모습은 어쩌다 한 번씩 보였다. 언제나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것을 노리느라 나를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달아날까 아니면 싸울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카는 비겁하게도 대개 어린 강아지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지막 대결은 흐지부지 끝났지만 언젠가는 그와 또 다시 맞부딪칠 것이다.

잭과 함께 지냈던 마지막 날들엔 나는 오직 내 친구에게만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그 때는 누구와 싸울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당한 때가 오면 스카를 내 주위에서 영원히 쫓아 버릴 것이다. 나는 한 하늘 아래서 도저히 함께 못 살 그 원수를 볼 때마다 내가 지은 씩씩한 시를 읊조렸다. 비록 실제 행동은 미루고 있지만 나는 그 시를 외울 때마다 정말 강해지는 것 같았다.

 

스카, 나는 맹세한다, 내 모든 힘을 다해!

언젠가 너를 때려 눕히리라!

I vow this, Scar, with all my might!

Someday I'll beat you in a fight!

 

두 번째 행은 시시했다. 사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말은 '대결(confrontation)'이었는데 이 단어로는 음을 맞출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어렵고 세련된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일하느라고 너무 바빴던 나는 어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위스피와 위스피를 찾기 위한 내 노력을 주제로 짧은 시를 하나 지었다.

 

위스피, 내 동생아, 내 시를 들어 보렴─

이 세상 끝까지라도 너를 찾을 테니 기다려 다오!

Wispy, sister, hear my rhyme─

I'll seek you till the end of time!

 

처음에 나는 '내 생명이 끝날 때까지(till the end of my life)'라고 썼다. 그게 더 진실하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를 지을 때 감정을 있는 대로 나타내는 건 초보자일 때나 하는 것이다. 그 시를 쓴 뒤부터 내게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건 이 시를 외울 때마다 마법이 생겨서 위스피가 내 앞에 나타났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잭과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그런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내 여동생처럼 몸집 작은 개를 보기도 했지만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 보면 언제나 실망할 뿐이었다. 이 세상에는 점박이에다가 비틀어진 꼬리를 가진 볼품 없는 혼혈 개가 정말 많았다. 산책이 끝나면 나는 늘 잭에게 돌아갔다. 내가 의지할 뿐 아니라 나를 깊이 사랑하는 잭을 떠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처음 사진 작가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도 도망갈 기회는 아주 많았다. 끈이나 개장, 어떤 구속도 없었다. 내가 남은 이유는 사진 작가가 친절했고, 내게 파스타를 주었으며, 그의 바둑판 무늬 목욕 가운에서 독특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다. 나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무시무시한 끈을 고집했고, 그 끈을 묶으려면 나는 목에 가죽 목걸이를 둘러야 했다. 또 사진 작가가 새 캐시미어 목욕 가운을 입을 때마다 나는 재채기가 났다. 우리들이 함께 파스타를 먹던 일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이제는 나도 유명해졌고 부자가 되었다. 나는 내 이름인 '친구'를 새긴 산타페 도자기 밥그릇에 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 혼자 산책할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일을 할 때면 항상 보디가드가 내 곁에 붙어 있었다. 그들은 비번인 경찰관들로, 나에게 손을 흔들고 휘파람을 불어 대는 군중들로부터 나를 떼어 놓기 위해서 고용되었다. 지프 역시 이제는 과거의 일로, 차고 한 쪽 구석에 처박혀졌다. 나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리무진을 이용했다. 사진 작가가 휴대용 전화로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유리창에 얼룩을 남길까 걱정하지 않고, 서글프게 색유리창에 내 코를 갖다 댔다. 그리곤 오직 이 감금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갈 기회만 엿보았다.

나는 번번이 새로운 장소에서 목걸이를 하고 끈에 묶인 채 사진 찍을 장소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가끔씩 내 심부름꾼이 물 한 그릇이랑 맛도 없는 비스킷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다음엔 새 옷을 입은 비쩍 마른 사람─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으며 가끔은 중성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옆자리로 끌려갔다. 그 때만은 목걸이와 끈으로부터 풀려났다.

"앉아. 멈춰."

사람들은 나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만약 내 맘대로 포즈를 바꾸거나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당장 고함 소리가 날아왔다. 그 고함 소리는 위협적이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난 그저 '개'일 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포즈와 표정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고, 묵묵히 일만 하면서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만을 노렸다.

 

 

그러던 어느 봄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나는 항히스타민제(기관지 천식, 두드러기 등 알레르기성 질환에서 히스타민의 작용을 없애는 약제) 광고 사진을 찍으러 도심에서 꽤 떨어진 골프장에 있었다. 골프장까지는 한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갔는데 가는 동안 사진 작가는 휴대용 전화로 전화를 네 번이나 걸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대본에 따르면 나는 골프장 끝에 앉아서 헐렁한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챙 모자를 쓴 두 명의 골퍼가 몇 인치 앞에 있는 컵에 공을 넣기를 얌전히 기다린다. 두 명 모두 재채기 때문에 공 넣기에 실패한다. 밝은 색 옷을 입고 골퍼들을 격려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에 둘러서 있으라고 고용된 40명의 사람들은 골퍼들이 실패할 때마다 탄식을 터뜨린다. 그러면 알레르기가 있는 두 골퍼는 공을 못 넣어 몹시 실망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코로 가져간다. 이 때 나는 그 쪽으로 걸어가 코로 공을 밀어 컵 안으로 넣는다. 그러면 군중들은 환호하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카메라를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정말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나는 그들이 왜 이런 광고가 항히스타민제를 잘 팔리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사진 작가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했지만 그 일은 그저 지루한 내 삶에 모델 경력 하나를 더 추가시켰을 뿐이었다.

 

여러 주일 동안 나는 시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사색적이고 흥미진진한 자세─사실은 굉장히 지겨웠지만─로 골프장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천둥 소리가 들려 왔다.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지자 사람들은 당황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사진 작가는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카메라를 재빠르게 덮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번개가 치면서 지평선 끝에 톱니 같은 섬광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빗줄기가 굵어지자 나무 아래로 몰려갔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사색적이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순식간에 흩어지면서 나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사진 작가는 허겁지겁 촬영 도구를 챙겼고 골퍼 역할을 맡았던 두 명의 배우는 차를 향해 달려갔다.

"나무 밑에서 나와요!"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나무 밑에 있으면 위험해요!"

다른 사람이 맞받아쳤다.

"무슨 소리! 훤히 트인 데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아까보다 더욱 요란하게 천둥이 치면서 바로 옆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고함 소리와 빗소리, 천둥 소리와 차들이 출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내게 명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냥 걸었다. 처음 몇 걸음을 옮겼을 땐 금방이라도 누군가 '당장 이리 오지 못해!' 하고 소리칠 것 같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빨리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내 다리를 쭉쭉 뻗어 성큼성큼 달렸다. 그리고 열네 번째 페어웨이(골프 코스에서 티 숏의 위치에서 그린까지 사이로 땅을 반반하게 고른 잔디 지대)를 지난 다음에 울타리를 뛰어 넘었다.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나는 비바람을 헤치면서 시골길을 힘차게 내달렸다. 털 속까지 푹 젖었지만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물에 젖었어도 여전히 풍성하고 멋진 내 꼬리는 뒤에서 깃발처럼 나부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I'm free I'm free I'm free I'm free!

 

첫 줄과 어울릴 두 번째 줄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

I'm me I'm me I'm me I'm me!

 

나는 다시 시를 찾았다.